오감도(烏瞰圖) 》

<시제1호>

이상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4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5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6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7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8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9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0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1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십삼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주해]

사전의 말은 조감도 (鳥瞰圖)이나 '鳥'를 '烏"로 바꾸어 언어를 부정함.

초현실주의의 詩作 활동-자동기술법, 내적 독백,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부정과 반역, 해체와 실험.

초록의 공포- 일상성에 대한 반역.

한 아해, 두 아해,.... ; 일상성의 반복


*시적 표현

①뒤집어 보기, 거꾸로 보기- 새로움 추구

②낯설게 하기

③새롭게 보기

④자유롭게 보기

⑤주인되서 세상 살기

[뜰보리수 1]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사 바람 속에서 -홍신선  (1) 2008.07.10
거울 -이상  (0) 2008.07.09
낡은 집 -이용악  (2) 2008.07.09
김지하, 황톳길  (0) 2008.07.09
타는 목마름으로 -  (1) 2008.07.09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 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貿穀)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래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도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 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1938년 발표)

* 은동곳 : '동곳'은 상투를 튼 뒤에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물건. 금, 은, 옥, 산호, 밀화, 나무 등으로 만드는 데 관자와 함께 재료에 따라 부귀(富貴)의 정도를 드러내는 남자의 장신구이다.

* 산호관자(珊瑚貫子) : 망건에 달아 망건 줄을 꿰는 작은 고리, 금, 은, 옥, 산호, 뿔, 뼈들로 만듦.

* 무곡(貿穀) : 장사하려고 많은 곡식을 사들임.

* 둥글소 : 황소의 방언으로 큰 수소를 말한다.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는 콩을 싣고 다니다가 늙어버린 수소를 일컫는다.

* 싸리말 동무 : 어렸을 때 마마를 함께 앓으면서 싸리말을 타고 나았던 친구. 죽마고우(竹馬故友)

* 짓두광주리 : 함경 방언으로 바늘, 실, 골무 헝겉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 받짇고리.

* 저릎등 : 방언인 '저릎'의 표준어는 '겨릎'으로 껍질을 벗긴 삼대. 따라서 '겨릎등'은 긴 삼대를 태워 불을 밝히는 장치이다.

* 갓주지 : 갓을 쓴 절의 주지 스님. 옛날에는 아이들을 달래거나 울음을 그치게 할 때 갓주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함. 어떤 이는 이 낱말을 '갖주지'의 오기로 보고 갖가지. 즉 가지가지의 방언이라고 해석함.

* 글거리 : 그루터기. 풀이나 나무 또는 곡식 따위를 베고 남은 밑둥. 그루. 나무나 곡식 같은 것의 줄기의 아랫 부분. 곧 돌보는 이 없어 황폐한 모습.


[리아트리스 & 동자꽃]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울 -이상  (0) 2008.07.09
오감도 ─이상  (3) 2008.07.09
김지하, 황톳길  (0) 2008.07.09
타는 목마름으로 -  (1) 2008.07.09
장춘체육관 & 주변풍경  (0) 2008.07.09

 

황톳길 

김지하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밤마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니파리
뻗시디 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대샆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 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메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든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 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며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https://cm.asiae.co.kr/article/2022050819051165131

 

[3보] '타는 목마름으로' 시인 김지하 별세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작품을 남긴 김지하 시인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다. 시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 생활을 한 끝에 이날 오후 강원도 원주시 자택에서 타계했다. 1941년 태어난

www.asiae.co.kr

 

 

[횟집 어항]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감도 ─이상  (3) 2008.07.09
낡은 집 -이용악  (2) 2008.07.09
타는 목마름으로 -  (1) 2008.07.09
장춘체육관 & 주변풍경  (0) 2008.07.09
동국대학교  (0) 2008.07.09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네 이름의 의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루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참나리꽃]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낡은 집 -이용악  (2) 2008.07.09
김지하, 황톳길  (0) 2008.07.09
장춘체육관 & 주변풍경  (0) 2008.07.09
동국대학교  (0) 2008.07.09
춘향 유문 -서정주  (0) 2008.07.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