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번뇌를 끊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3독을 끊어 그 마음이 인간과 하늘의 5욕(欲)에 집착되지 않음이요, 둘째는 비록 인간이나 하늘의 오욕에 집착되지는 않으나 보살의 공덕과 과보에 대하여는 아직 5욕을 버리지 못함이니, 이런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비유하건대 장로 아니로두(阿泥盧豆)가 숲 속에서 좌선할 때 정애천녀(淨愛天女) 등이 맑고 묘한 몸으로 찾아와서는 아니로두를 시험하려 했다. 이에 아니로두는 말하기를 “아가씨들아, 푸른빛으로 오너라. 뒤섞인 빛은 필요 없다”라고 하고는 부정(不淨)을 관하려 하였으나 관을 이루지 못했다. 황색ㆍ적색ㆍ백색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 즉시 천녀들이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의 복덕으로 나타난 형상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보살의 한량없는 공덕의 과보로 닦는 5욕겠는가.
또한 견다라(甄陀羅) 왕이 8만 4천의 견다라들과 함께 부처님께 와서 거문고를 튀기고 노래를 불러 부처님께 공양했다. 이때 수미산왕과 산과 나무와 인간과 금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춤을 추었으며, 부처님 곁의 대중들과 큰 가섭까지도 모두가 자리에서 안정을 찾지 못했다.
이때 천수(天須)보살이 큰 가섭에게 물었다.
“나이 많은 구숙(舊宿)께서는 12두타(頭陀)의 법을 행하심에 으뜸이거늘 어찌하여 자리에서 스스로 안정을 찾지 못하십니까?”
큰 가섭이 대답했다.
“삼계의 5욕이 나를 요동시킬 수 없지만, 이는 보살의 신통한 공덕과 과보의 힘인 까닭에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하는 것이다. 내게 마음이 있어서 스스로 안정치 못한 것이 아니다. 비유하건대 수미산은 사방에서 바람을 일으켜도 움직일 수 없으나 대겁이 다할 때에 이르러 비람풍(毘藍風)이 일어나면 마치 마른 풀이 날리듯 요동치는 것과 같다.”
이런 일로 인하여 두 가지 번뇌 가운데 한 가지를 아직 끊지 못했다면 이러한 보살들은 응당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아비담(阿毘曇)29)에서의 주장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반야바라밀은 유루의 지혜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살이 보리수[道樹] 밑에 이르러서야 번뇌를 끊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비록 큰 지혜와 한량없는 공덕이 있었으나 모든 번뇌를 아직 끊지 못했나니, 그러므로 보살의 반야바라밀을 유루의 지혜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 발심할 때로부터 보리수하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지혜를 반야바라밀이라 하고 마지막 성불할 때의 반야바라밀은 다시 살바야(薩婆若)30)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의 유루ㆍ무루의 지혜를 모두 합해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은 열반을 관찰하고 불도를 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인하여 보살의 지혜는 응당 무루일테지만, 아직 번뇌를 끊지 못했고 일을 다 끝내지 못했으므로 유루라 해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보살의 반야바라밀은 무루이고, 무위이고, 볼 수 없고[不可見], 대할 수 없다[無對].”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 반야바라밀은 얻을 수 없는 모습이니, 혹은 있는 듯, 혹은 없는 듯, 혹은 항상한 듯, 혹은 무상한 듯, 혹은 공한 듯, 혹은 실한 듯하다. 이 반야바라밀은 음(陰)?계(界)?입(入)에 속하지 않는다.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며,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곧 유무(有無)의 사구(四句)를 벗어나 실로 집착할 바가 없다. 비유하건대 마치 불꽃이 사방 어디에서도 손을 댈 수 없는 것과 같다. 손을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의 모습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질 수 없으니, 삿된 소견의 불이 태우기 때문이다.”
[답]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각각 이치가 있으니, 모두가 진실이다” 했다. 마치 경의 말씀과 같다. 곧 5백 비구가 각자 두 가[二邊]와 중도(中道)의 이치를 말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두 도리가 있다” 하셨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대답한 것이 진실이다. 왜냐하면 깨뜨릴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법이 털끝만치라도 틈이 있다면 모두가 허물이 있으면 가히 깨뜨릴 수 있고, 설사 없다고 할지라도 또한 깨뜨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반야에는 유(有)도 없고 무(無)도 없고 비유비무(非有非無)도 없다. 나아가 이러한 말조차 없으니, 이것을 적멸하고 한량없고 희론 없는 법이라 한다. 그러므로 깨뜨릴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다. 이것을 참된 반야바라밀이라 하니, 가장 뛰어나 지날 이가 없다. 마치 전륜성왕이 모든 적을 항복시키고도 스스로 교만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온갖 말과 희론을 깨뜨렸으나 깨뜨린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 뒤로 품마다 갖가지 의문(義門)으로 반야바라밀을 설명하나 모두가 진실한 모습이다.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6바라밀을 구족한다’를 풀이하리라.
問曰。云何名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能具足六波羅蜜。
[문] 어떻게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능히 육바라밀을 구족한다고 하는가?
[답] 이와 같이 보살은 온갖 법은 항상함이 아니요 무상함도 아니며, 괴로움이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공도 아니요 실도 아니며, 나도 아니요 나 없음도 아니며, 생멸도 아니요 생멸치 않음도 아닌 줄로 관찰하며 이처럼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되 반야바라밀의 모습에 집착되지도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머무른다’고 한다. 만일 반야바라밀의 모습을 취한다면 이는 머무는 법으로 머무는 것이 된다.
問曰。若不取般若波羅蜜相。心無所著。如佛所言一切諸法欲爲其本。若不取者。云何得具足六波羅蜜。
[문] 만일 반야바라밀의 모습을 취하지 않아서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법은 탐욕이 근본이 된다’ 하셨는데 만일 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6바라밀을 갖출 수 있겠는가?
[답]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먼저 서원을 세우기를 “내가 반드시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 한다. 정진의 힘 때문에 비록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서 열반의 모습 같은 줄 알지만 다시 모든 공덕을 행하여 6바라밀을 구족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기 때문이다.
때에 맞추어 비를 내리니 나라에 흉년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감사하여 항상 중춘(仲春)계절이 되면 모두 모여서 용이 사는 곳으로 가서는 큰 대회를 열었다. 풍악을 연주하고 진리를 토론하며 이 날 하루를 보냈다. 그 모임은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용의 이름을 따서 이 대회의 이름을 짓게 되었다.
이 날에는 의례히 네 개의 높은 자리를 마련했다. 하나는 국왕을 위한 것이요, 둘은 태자를 위한 것이요, 셋은 대신을 위한 것이요, 넷은 논사(論士)를 위한 것이었다.
爾時舍利弗以八歲之身。問衆人言。
此四高座爲誰敷之。
衆人答言。爲國王太子大臣論士。
이때 사리불은 여덟 살의 몸으로서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이 네 개의 높은 자리는 누구를 위해 베푼 것인가?”
이에 사람들이 대답했다.
“국왕?태자?대신?논사를 위한 것입니다.”
是時舍利弗觀察時人婆羅門等。神情瞻向無勝己者。便昇論床結跏趺坐。
衆人疑怪。或謂愚小無知。或謂智量過人。
이때 사리불이 사람들과 바라문들을 관찰해 정신[神情]을 들여다보니 자기를 이길 자가 없었다. 문득 자리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대중들은 의아해 하고 기이하게 여겼다.
혹은 생각하기를 ‘어리석고 무지한 짓이다’ 하고, 혹은 생각하기를 ‘지혜가 보통 사람을 지날 것이다’ 했다.
雖復嘉其神異。而猶各懷自矜。恥其年小不自與語。皆遣年少弟子傳言問之。
제각기 그의 신기하고 특이함을 가상히 여겼으나 또한 제각기 자존심[矜]을 품고 있었기에 그가 나이 어림을 부끄러이 여겨 직접 마주하여 이야기하지 못한 채 모두가 나이 어린 제자들을 보내 물었다.
其答酬旨趣辭理超絶。時諸論師歎未曾有。愚智大小一切皆伏。王大歡喜卽命有司。封一聚落常以給之。
그의 대답은 이치와 이론이 월등히 뛰어나니, 이때 모든 논사들은 처음 보는 일이라 찬탄하며 어리석건 지혜롭건 크건 작건 모두가 굴복했다. 왕도 매우 기뻐하여 곧 관리[有司]에게 분부하여 한 고을을 봉헌해 항상 그로부터 물건을 보내주도록 했다.
王乘象輿振鈴告告宣示一切十六大國六大城中無不慶悅。
왕은 코끼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방울을 흔들면서 열여섯 큰 나라와 여섯 큰 성에 이 사실을 널리 알리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是時告占師子名拘律陀。姓大目揵連。舍利弗友而親之。舍利弗才明見重。目揵連豪爽最貴。
이때 이 사실을 알린 점술사[占師]의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구율타(拘律陀)요, 성은 대목건련이었다. 사리불과는 벗으로서 친한 사이였는데, 사리불은 재주가 총명하고 견해가 신중했으며, 목건련은 호쾌하고 고귀했다.
此二人者才智相比德行互同。行則俱遊住則同止。
이 두 사람은 재주와 지혜가 비슷하고 덕과 행이 서로 같아서 다닐 때에도 함께 다니고 머물 때에도 함께 머물렀다.
少長繾綣結要終始。
짧건 길건 항상 정답게 지냈으며,약속을 맺어 변치 않기를 원했다.
後俱厭世出家學道作梵志弟子。情求道門久而無徵。以問於師。師名刪闍耶。而答之言。
나중에 모두 세상을 싫어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워 범지(梵志)의 제자가 되었다. 간절하게 도문(道門)을 구했으나 오래 지나도록 징조가 없기에 그의 스승인 산사야(刪?耶)5)에게 이 사실을 물으니, 그는 대답했다.
自我求道彌歷年歲。不知爲有道果無耶。我非其人耶而亦不得。
“나도 도를 구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도과(道果)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없는 것인지, 과연 내가 도를 얻을 사람이 못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도를 얻지 못하고 있다.”
他日其師寢疾。舍利弗在頭邊立。大目連在足邊立。
喘喘然其命將終。乃愍爾而笑。
다른 어느 날 그 스승이 병들어 누우니, 사리불은 머리맡에 섰고, 대목건련은 발 곁에 서 있는데,
스승은 숨 가쁘게 임종을 재촉하면서 가엾은 듯 빙긋이 웃었다.
二人同心俱問笑意。師答之言。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웃는 뜻을 물었더니 스승이 대답했다.
世俗無眼爲恩愛所侵。我見金地國王死。其大夫人自投火𧂐求同一處。而此二人行報各異生處殊絶。
“세상 사람들은 바른 안목이 없어 은애(恩愛)의 침해를 당하고 있다. 내가 보니 금지(金地)6)의 왕이 죽었는데, 그 대부인이 스스로 불더미에 뛰어들어 한 곳으로 가려 했으나 이 두 사람의 행과 보가 각각 다르므로 두 사람이 태어난 곳도 동떨어지게 달랐다.”
是時二人筆受師語。欲以驗其虛實。
두 사람은 스승의 말씀을 기록해 두어 그의 허와 실을 입증해보고자 했다.
後有金地商人。遠來摩伽陀國。二人以疏驗之果如師語。乃憮然歎曰。
뒤에 금지국의 상인이 멀리 마가다까지 왔기에 두 사람이 기록과 맞추어 보니, 과연 스승의 말과 같았다.
그러자 처연히 탄식하며 말했다.
我等非其人耶。爲是師隱我耶。二人相與誓曰。若先得甘露要畢同味。
“우리들은 진리를 아는 그런 사람이 못 되는구나. 이를 스승께서는 우리에게 숨겼던 것이로다.”
是時佛度迦葉兄弟千人。次遊諸國到王舍城頓止竹園。二梵志師聞佛出世。俱入王舍城欲知消息。
이때 부처님께서 가섭의 형제 천 사람들을 제도하시고 여러 나라를 유행하시다가 왕사성에까지 오셔서 죽원(竹園)에 머무셨는데 두 범지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 함께 왕사성으로 들어가서 그 소식을 들으려 했다.
爾時有一比丘。名阿說示。(五人之一)著衣持鉢入城乞食。
그때 아설시(阿說示)[다섯 비구 가운데 한 사람]라고 부르는 비구가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와 걸식을 하고 있었다.
舍利弗見其儀服異容諸根靜黙。就而問言。汝誰弟子師是何人。
사리불은 그의 거동과 복장이 특이하며, 모든 감관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음을 보고는 가까이 가서 물었다.
“그대는 누구의 제자이며, 스승은 어떤 사람인가?”
答言。釋種太子厭老病死苦出家。學道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我師也。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석씨 종족의 태자께서 늙음?앓음?죽음의 고통을 싫어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는데, 그가 나의 스승이시다.”
舍利弗言。汝師敎授爲我說之。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의 스승께서 가르친 것을 나에게 말해 주시오.”
卽答偈曰。
이에 아설시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我年旣幼稚 學日又初淺
豈能宣至眞 廣說如來義
나는 나이도 어리고
배운 지도 오래지 않으니
어찌 지극한 진리를 펴서
널리 여래의 법을 말하랴.
舍利弗言。略說其要。爾時阿說示比丘。說此偈言。
사리불이 다시 “그 요점을 간략히 말해 주시오”라고 말하니,
아설시 비구가 이런 게송을 읊었다.
諸法因緣生 是法說因緣
是法因緣盡 大師如是說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기나니
그 가르침은 인연을 설함이며
이 법은 인연에 의해 다한다고
우리 큰 스승께서 말씀하셨네.
舍利弗聞此偈已卽得初道。還報目連。目連見其顔色和悅迎謂之言。
汝得甘露味耶。爲我說之。
사리불은 이 게송을 듣고는 곧 초도(初道)7)를 얻었다.
곧 목건련에게 말하러 가니, 목건련은 그의 얼굴이 화평하고 기꺼운 것을 보고 맞이하면서 말했다.
“그대는 감로의 법을 얻었는가? 나에게도 말해 달라.”
舍利弗卽爲其說向所聞偈。目連言。更爲重說。卽復爲說。亦得初道。
사리불이 곧 그를 위해 들었던 게송을 말해 주니, 목건련이 말했다.
“한 번 더 설명해 주시오.”
이에 다시 말해 주었더니, 역시 그도 초도를 얻었다.
二師與二百五十弟子俱到佛所。佛遙見二人與弟子俱來。告諸比丘。
汝等見此二人在諸梵志前者不。
두 사람[師]이 25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부처님께로 오니, 부처님께서는 두 사람이 제자들과 함께 오는 것을 멀리서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 범지들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았느냐?”
諸比丘言。已見。
비구들이 대답했다.
“이미 보았나이다.”
佛言。是二人者。是我弟子中智慧第一神足第一弟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두 사람은 나의 제자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며, 신통이 제일인 제자가 되리라.”
大衆俱來以漸近佛。旣到稽首在一面立俱白佛言。
世尊。我等於佛法中欲出家受戒。
그들은 제자들과 함께 점점 부처님께 가까이 오더니, 이윽고 부처님 곁에 이르자 머리를 숙여 절하고 한쪽에 서서 다 같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불법 가운데 출가하여 계를 받고자 하옵니다.”
佛言。善來比丘。卽時鬚髮自落法服著身。衣鉢具足受成就戒。
부처님께서“잘 왔구나,비구여”라고 말씀하시니,머리칼과 수염이 저절로 깎여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지고 의발이 갖추어져 성취계(成就戒)를 받았다.
過半月後佛爲長爪梵志說法。時舍利弗得阿羅漢道。
반 달이 지난 뒤에 부처님께서 장조범지(長爪梵志)8)에게 설법하실 때 사리불은 아라한도를 얻었다.
所以半月後得道者。是人當作逐佛轉法輪師。應在學地現前自入諸法種種具知。是故半月後得阿羅漢道。
반 달 뒤에 도를 얻은 까닭은 장차 이 사람은 부처님을 따라 법륜을 굴릴 스승이 될 것이기에 배우는 이의 경지에서 앞에 나타난 모든 법에 스스로 들어가서 갖가지로 갖추어 알아야 했다.그러므로 반 달 뒤에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如是等種種功德甚多。是故舍利弗雖是阿羅漢。佛以是般若波羅蜜甚深法。爲舍利弗說。
이러한 갖가지 공덕이 매우 많나니, 그러므로 사리불은 비록 아라한이었지만
부처님은 이런 까닭에 반야바라밀의 매우 깊은 법을 사리불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問曰。若爾者何以初少爲舍利弗說。後多爲須菩提說。若以智慧第一故應爲多說。復何以爲須菩提說。
[문] 만약에 그렇다면 어찌하여 처음에 사리불에게 조금만 말씀하시고 나중에 수보리에게는 많이 말씀하시는가? 만일 지혜가 제일이기 때문이라면 응당 그에게 많이 말씀하셨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다시 수보리에게도 말씀하셨는가?
答曰。舍利弗佛弟子中智慧第一。須菩提於弟子中。得無諍三昧最第一。
[답] 사리불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요,
수보리는 제자들 가운데서 무쟁삼매(無諍三昧)9)를 얻은 것으로 으뜸이다.
無諍三昧相常觀衆生不令心惱多行憐愍。諸菩薩者弘大誓願以度衆生憐愍相同。是故命說。
무쟁삼매의 특징은 항상 중생을 관찰하여 마음에 번뇌를 내지 않게 하고 가엾이 여기는 행을 많이 하는 것이요, 보살들은 큰 서원을 세워 중생을 제도한다. 곧 가엾이 여기는 모습이 같으므로 수보리에게 명하여 말하라 하신 것이다.
復次是須菩提好行空三昧。如佛在忉利天夏安居受歲已還下閻浮提。
爾時須菩提於石窟中住自思惟。佛從忉利天來下。我當至佛所耶。不至佛所耶。
또한 이 수보리는 공삼매(空三昧)를 행하기 좋아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利天)10)에서 여름안거를 보내 법랍[歲]을 하나 더하신 뒤 염부제에 내려오셨는데, 이때 수보리가 석굴 속에 있으면서 생각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오셨으니, 내가 부처님께 가야 하는가, 가지 말아야 하는가?”
又念言。佛常說。若人以智慧眼觀佛法身。則爲見佛中最。。
또한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지혜의 눈으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관찰하면 그것이 부처님을 뵙는 가운데서 으뜸이다’ 하셨다.”
마타라(摩陀羅)13)라는 바라문출신의 논사가 있었는데, 왕은 그 사람이 토론에 능하다 하여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읍을 주었다. 마타라는 줄곧 가정에 머물렀는데, 아내가 딸을 하나 낳았다. 눈이 사리새[舍利]를 닮았으므로 그 딸을 사리14)라 불렀다. 다음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무릎 뼈가 굵고 크므로 구치라(拘?羅)15)[진나라 말로는 큰 무릎(大膝)이다.]라 했다.
이 마타라 바라문은 줄곧 집에 있으면서 아들딸을 기르며, 배우던 경서는 모두 폐지하여 잊고 다시 새로운 것을 익히지 않았다.
是時南天竺有一婆羅門大論議師字提舍。於十八種大經皆悉通利。是人入王舍城。頭上戴火以銅鍱腹。
이때 남천축에 한 바라문 출신의 큰 논사가 있었으니,이름이 제사(提舍)16)였다.그는 열여덟 가지 큰 경[十八大經]을 모두 통달했는데 왕사성에 들어갈 때엔 머리에는 불을 이고 구리[銅]로 배를 감았다.
人問其故。便言我所學經書甚多恐腹破裂。是故鍱之。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내가 배운 경서가 매우 많아서 배가 찢어질까 걱정이다.그러므로 감싼다”라고 대답했다.
又問。頭上何以戴火。
答言。以大闇故。
“머리에는 어찌하여 불을 이고 가는가?”라고 물으면, “매우 어둡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衆人言。日出照明何以言闇。
사람들이 물었다.
“해가 떠서 밝은데 어찌하여 어둡다 하는가?”
答言。闇有二種。一者日光不照。二者愚癡闇蔽。今雖有日明而愚癡猶黑。
그가 대답했다.
“어두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덮인 것이다.
지금은 비록 해의 광명이 있으나 어리석음 때문에 오히려 어둡다.”
衆人言。汝但未見婆羅門摩陀羅。汝若見者腹當縮明當闇。
사람들이 말했다.
“그대가 아직 바라문인 마타라(摩陀羅)를 만나지 못했구나.그대가 그를 본다면 배는 쭈그러지고 총명함[明]도 어두워지리라.”
是婆羅門逕至鼓邊打論議鼓。國王聞之問是何人。
그 바라문은 즉시 북 있는 곳으로 가서 논의를 청하는 북을 쳤다.
왕이 북소리를 듣고는 “누구의 짓이냐”고 물으니, 신하들이 대답했다.
衆臣答言。南天竺有一婆羅門名提舍大論議師。欲求論處故打論鼓。
“남천축에 한 바라운이 있어 이름이 제사인데 큰 논사입니다. 토론할 대상을 구하기 위해 토론을 알리는 북을 쳤습니다.”
王大歡喜卽集衆人而告之曰。有能難者與之論議。
왕이 매우 기뻐하면서 곧 대중을 모아놓고 말했다.
“능히 힐난[難]할 자가 있다면 그와 토론해 보거라.”
摩陀羅聞之自疑。我以廢忘又不業新。不知我今能與論不。
마타라는 이 말을 듣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내가 오랜 동안 공부를 쉬었고 또한 새 업을 짓지도 않았으니, 내가 이제 그와 겨룰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僶俛而來。於道中見二特牛方相觝觸。心中作想。
그가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오고 있었는데, 도중에서 때마침 두 송아지가 싸우려는 것을 보자 문득 혼자 생각하기를
此牛是我彼牛是彼。以此爲占知誰得勝。此牛不如便大愁憂而自念言。如此相者我將不如。復欲爲之封一聚落。
‘이편의 소는 나요, 저편의 소는 그라고 생각하고 이것으로 점을 쳐서 누가 이길지 알아보리라’ 했다. 그런데 이쪽의 소가 지고 말았다. 그는 문득 큰 걱정을 하면서 생각했다.
“하나의 총명한 사람만 오면 한 고을을 봉하시면서 공신에게는 상을 주지 않으시고 빈 말씀으로 칭찬만 하신다면 국가를 다스리고 안정시키는 도가 아닌 줄로 여기나이다. 이제 마타라가 토론해서 졌으니 응당 그에게 봉했던 읍을 빼앗아서 이긴 자에게 주어야 합니다. 다시 또한 이기는 이가 생기면 다시 빼앗아서 그에게 주면 될 것입니다.”
왕은 그들의 말을 따라 당장에 빼앗아서 뒷사람에게 주었다.
是時摩陀羅語提舍言。汝是聰明人。我以女妻汝。男兒相累今欲遠出他國以求本志。
이때 마타라가 제사에게 말했다.
“그대는 총명한 사람이니, 내 딸을 그대에게 시집보내겠노라. 사내아이가 태어나 대를 잇게 될 테니 이제 나는 멀리 다른 나라로 가서 본래의 뜻을 구하리라.”
提舍納其女爲婦。其婦懷妊夢見一人。身被甲冑手執金剛。摧破諸山而在大山邊立。覺已白其夫言。我夢如是。
제사는 그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다.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고 꿈을 꾸니, 어떤 사람이 몸에는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금강방망이를 들고 산들을 두드려 부순 뒤에 큰 산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꿈을 깬 뒤에 그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이러이러한 꿈을 꾸었습니다.”
提舍言。汝當生男。摧伏一切諸論議師。唯不勝一人當與作弟子。
그러자 제사가 말했다.
“그대가 아들을 낳으면 모든 논사들을 모두 굴복시키되 오직 한 사람만은 굴복시키지 못하고 그의 제자가 될 것이오.”
사리부인은 잉태한 뒤로 그 뱃속의 아기 때문에 엄마까지도 매우 총명해져 토론에 매우 능숙해졌다. 그의 동생인 구치라가 누이와 토론하면 항상 지기만 할 뿐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는 잉태한 아기가 반드시 크게 지혜로울 것임을 알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거늘 하물며 태어난 뒤에야 어떠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는 곧 집을 버리고 떠나 학문을 닦았다. 남천축까지 가서 손톱도 깎지 않은 채 열여덟 가지 경서를 읽어 모두를 환하게 통달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장조(長爪) 범지라 불렀다.
[답] 지혜의 문을 일러 종(種)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한 지혜의 문으로 관찰하고, 어떤 사람은 둘?셋?열?백ㆍ천?만 나아가서는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아승기 지혜의 문으로 모든 법을 관찰한다. 지금은 온갖 지혜의 문으로 온갖 종자에 들어가서 온갖 법을 관찰하나니, 이것이 일체종이다.
범부들은 세 가지로 관찰하나니, 욕계를 여의고 색계를 여의고자 하는 까닭에 욕계ㆍ색계의 추악함과 거짓됨과 혼탁함을 관찰한다.
부처님의 제자에게는 여덟 가지의 관찰이 있다. 곧 무상하고, 괴롭고, 비어있고, 나 없고, 병과 같고, 종기 같고, 화살이 몸에 박힌 것 같고, 매우 괴로워함과 같다고 관찰한다.
이 여덟 가지 관찰은 4성제(聖諦)에 들어가면 열여섯 가지 행[十六行]19) 중의 넷이 된다.
열여섯 가지란, 먼저 고를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무상함?괴로움?공함?나 없음이요, 고의 원인을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쌓임[集]?인(因)?연(緣)?남[生]이요, 고가 멸함을 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다함[盡]?사라짐[滅]?묘함[妙]?벗어남[出]이요, 고의 멸에 이르는 길[道]을관찰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길[道]?바름[正]?행함[行]?자취[跡]이다.
들고나는 호흡에도 또한 열여섯 가지 행이 있다. 하나는 드는 호흡을 관찰함이요, 둘은 나는 호흡을 관찰함이요, 셋은 호흡의 길고 짧음을 관찰함이요, 넷은 호흡이 온몸에 두루함을 관찰함이요, 다섯은 몸의 모든 활동[行]을 제거함이요, 여섯은 기쁨[喜]을 느낌이요, 일곱은 즐거움[樂]을 느낌이요, 여덟은 마음의 모든 활동을 받아들임이요, 아홉은 기쁨을 짓지 않음이요, 열은 마음을 가다듬음[攝]이요, 열하나는 심해탈(心解脫)을 이룸이요, 열둘은 무상함을 관찰함이요, 열셋은 흩어지고 무너짐을 관찰함이요, 열넷은 욕망을 여읨을 관찰함이요, 열다섯은 멸을 관찰함이요, 열여섯은 버림[棄捨]을 관찰함이다.
일체법이라 했는데, 의식이 반연하는 법이 곧 일체법이다. 이른바 안식(眼識)은 색을 반연하고, 이식(耳識)은 소리를 반연하고, 비식(鼻識)은 냄새를 반연하고, 설식(舌識)은 맛을 반연하고, 신식(身識)은 촉(觸)을 반연하고, 의식(意識)은 법을 반연한다. 눈을 반연하고, 색을 반연하고, 안식을 반연하며, 귀와 소리ㆍ코와 냄새ㆍ혀와 맛ㆍ몸과 촉감에 대해서도 이와 같으며, 나아가 뜻을 반연하고, 법을 반연하고, 의식을 반연한다.
또한 지혜로써 반연하는 법이 곧 일체법이다. 이른바 괴로움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을 알고, 원인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멸함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의 사라짐을 알고, 길을 아는 지혜로써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알며, 세속의 지혜로써 고ㆍ집ㆍ멸ㆍ도ㆍ허공 및 비수연(非數緣)의 멸21)을 안다. 이것이 지혜로써 반연하는 법이다.
또한 두 가지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곧 색법과 무색법, 볼 수 있는 법과 볼 수 없는 법, 대할 수 있는 법과 대할 수 없는 법, 유루와 무루, 유위와 무위, 마음과 서로 응하는 법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법, 업과 서로 응하는 법과 업과 서로 응하지 않는 법[단주에 말하기를 심법(心法) 가운데 생각[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업과 상응한다. 곧 이것은 생각이기 때문에 제한다.], 가까운 법과 먼 법 등 이와 같이 갖가지 두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단주에 말하기를 ‘현재와 무위는 가까운 법이요, 미래와 과거는 먼 법이다’ 했다.]
또한 네 가지 법이 있다. 곧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법과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법, 욕계에 얽매인 법ㆍ색계에 얽매인 법ㆍ무색계에 얽매인 법ㆍ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법, 원인이 선한 법ㆍ원인이 불선한 법ㆍ원인이 악한 법ㆍ원인이 무기인 법ㆍ원인이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니며 무기도 아닌 법, 인연을 반연하는 법[緣緣法]ㆍ인연을 반연하지 않는 법[緣不緣法]ㆍ인연을 반연하기도 하고 인연을 반연하지 않기도 하는 법[緣緣不緣法]ㆍ인연을 반연하지도 않고 인연을 반연하지 않는 것도 아닌 법[非緣緣非不緣法]이다. 이러한 네 가지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有五種法。色心心相應心不相應無爲法。如是等種種五法攝一切法。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색법ㆍ심법ㆍ마음에 상응하는 법ㆍ마음에 상응하지 않는 법ㆍ무위의 법이다. 이러한 갖가지 다섯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有六種法。見苦斷法見習盡道斷法思惟斷法不斷法。如是等種種六法。乃至無量法攝一切法。是爲一切法。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괴로움을 보고 끊는 법[見苦斷法]ㆍ원인[集]을 보고 끊는 법ㆍ멸(滅)을 보고 끊는 법ㆍ길[道]을 보고 끊는 법ㆍ사유로써 끊는 법ㆍ끊지 못하는 법[不斷法]이다. 이러한 갖가지 여섯 법 내지 한량없는 법으로 일체법을 포섭한다. 이것이 일체법이다.
[문] 모든 법이 매우 깊고 미묘하여 불가사의하니, 일체 중생으로도 알기 어렵거늘 하물며 한 사람이 온갖 법을 다 알고자 함이겠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대지를 재려는 것과 같고, 대해의 물방울을 세려는 것과 같고, 수미산을 재려는 것과 같고, 허공의 끝을 알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알 수가 없거늘 어찌 일체종으로써 일체법을 알려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기원(祇洹)에 머무시고 계셨다.해질 무렵 경행을 하시는데 사리불이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이때 어떤 매가 비둘기를 쫓으니,비둘기는 부처님 곁으로 날아와서 숨었다.부처님께서 경행하시면서 그 비둘기를 지나니 그림자가 비둘기를 덮었다.그러자 비둘기는 편안해지고 두려움이 제거되어 다시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중에 사리불의 그림자가 비둘기 위에 이르니,비둘기는 다시 소리를 지르면서 처음과 같이 두려움에 떨었다.
이에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의 몸과 저의 몸에는 모두3독(毒)이 없거늘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둘기를 덮으면 비둘기는 소리를 내거나 두려워하지도 않더니 저의 그림자가 그 위를 덮으면 비둘기는 전과 같이 소리를 내고 두려워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3독(毒)24)의 습기가 다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대의 그림자가 덮일 때엔 두려움이 제거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이 비둘기가 몇 생 동안이나 비둘기가 되었는지 전생 인연을 관찰해 보거라.”
사리불이 즉시 숙명지삼매(宿命智三昧)25)에 들어가 관찰해 보니, 이 비둘기는 비둘기로부터 왔으며, 마찬가지로 1생?2생ㆍ3생 나아가서는 8만 대겁에 이르기까지 항상 비둘기의 몸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지나는 일은 볼 수가 없었다.
사리불이 삼매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 비둘기가 8만 대겁 동안 항상 비둘기의 몸이었으나 이보다 이전의 일은 더 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일 지난 일을 다 알 수 없다면 미래의 일을 관찰해 보거라. 이 비둘기가 언제라야 벗어나겠는가?”
사리불이 곧 원지삼매(願智三昧)에 들어가서 이 비둘기를 관찰해보니, 1생?2생?3생 나아가서는 8만 대겁 동안 비둘기의 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지난 뒤의 일은 역시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삼매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 비둘기를 보건대 1생ㆍ2생에서 8만 대겁에 이르기까지 비둘기의 몸을 벗지 못하겠으나 그 뒤의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과거?미래 현재의 끝까지를 모르겠사옵니다. 이 비둘기가 언제라야 벗어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둘기는 성문이나 벽지불이 아는 한계를 넘어서고 다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대겁 동안 항상 비둘기의 몸을 받으리라. 그러다가 죄를 다하고 비둘기의 몸을 벗어나면 5도(道) 가운데 헤매다가 나중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5백 생을 지나야 비로소 예리한 근[利根]을 얻게 되리라.
이때 어떤 부처님이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신 뒤에 무여열반에 드시니, 남기신 법이 세상에 있으리라. 이 사람은 5계를 받은 우바새가 되어 비구에게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공덕을 듣고는 여기에서 비로소 발심하여 부처가 되기를 서원하리라. 그런 뒤에 3아승기겁 동안 6바라밀을 행하고 10지(地)를 구족해 부처가 되며,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뒤에 무여열반에 들리라.”
이때 사리불이 참회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한 마리의 새에 대해서도 그 본말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물며 어찌 일체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만일 부처님의 이러한 지혜를 알 수 있다면, 부처님의 지혜를 위하여 차라리 아비지옥(阿鼻地獄)26)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겁의 고통을 받는다 해도 마다하지 않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