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o4kwWLVYO1A 

 

 

https://www.youtube.com/watch?v=QSqVmXMtaDc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jsessionid=I7UGrHQD4typxv3shfzCuHjbyhzznt1gTLaBH8XEJcJhWyNQnUczZYD2nIFrfQME.cpawas2_servlet_engine1?pageNo=1_1_1_0&ccbaCpno=1123119420000 

 

보물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華城 龍珠寺 大雄寶殿)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 보물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華城 龍珠寺 大雄寶殿) Daeungbojeon Hall of Yongjusa Temple, Hwaseong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www.heritage.go.kr

 

https://ko.wikipedia.org/wiki/%EC%9A%A9%EC%A3%BC%EC%82%AC

 

용주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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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wikipedia.org

용주사(龍珠寺)는 조계종의 절로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화산

에 위치해 있다.

이 절은 신라 말기인 854년에 廉巨和尙(염거화상)이 지었고, 원래 이름은 갈양사(葛陽寺)였다. 고려 때인 10세기에 확장되었다. 조선 정조때에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서 정조의 명으로 18세기에 다시 지어졌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효찰 대본산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창건주는 염거화상으로 도의국사에 이어 가지산문 제2대 조사이다. 고려 광종 때는 혜거국사가 머물며 국가의 축원도량으로 삼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지만 갈양사는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

갈양사가 다시 중창하게 된 것은 조선 제22대 정조 임금 때다. 정조는 즉위 13년을 맞던 해 전농동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수원화성 행궁을 만드는 대대적인 역사를 벌인다. 아버지 묘와 화성의 건설과정을 보기 위해 수시로 이곳까지 거둥하게 되자 아예 시흥으로 질러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하고 안양의 만안교라는 돌다리도 새로 만들어 놓게 된다.

이때 정조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스님이 보일당 사일스님이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출신이었던 보일스님은 정조에게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설해주었다고 한다. 정조는 보일스님이 들려준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아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그 주변에 폐사된 갈양사터에 절을 새로 중창하여 용주사라 이름 붙여서 사도세자 묘의 능침사찰로 삼았다.

용주사는 이렇듯 정조대왕의 효성이 깃든 효심의 본찰이자 경기도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80여 사찰을 거느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오랜 역사와 문화재 그리고 수행의 전통을 간직한 사찰이다.

보물

호성전에는 사도세자 내외분과 정조 내외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고, 곁에는 부모의 영정을 두고 명복을 비는 이들도 보였다. 지장전의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듯하다. 

 

영상한국사 I 298 용주사 후불탱화는 과연 김홍도의 작품일까?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NcQSquT_tPA 

 

 

 

 

https://www.youtube.com/watch?v=BXrJ0ByYozQ 

YouTube에서 보기 를 클릭하시면 열립니다. 이 노래는 어버이날 노래가 아니라 <어머니 마음>입니다.

 

 

1.懷耽守護恩

累劫因緣重 今來托母胎 月逾生五臟 七七六精開

(누겁인연중 금래탁모태 월유생오장 칠칠육정개)

體重如山岳 動止?風災 羅衣都不掛 裝鏡惹塵埃

(체중여산악 동지겁풍재 나의도불괘 장경야진애)

 

⊙ 나를 잉태하시고 지켜 주신 은혜⊙

여러 겁을 내려오며 인연이 중하여서  어머니의 태를 빌어 금생에 태어날 때

-임신부터 분만까지 자식하나가 태어 날때까지 소비된 피의 양과 

출산시 하혈까지 그 양이 서말 서되나 될정도 많다는 비유- 

날이 가고 달이 져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 달에 접어드니 육정이 열렸어라

한 몸이 무겁기는 산악과 한가지요 가나오나 서고 안고 바람결 겁이 나며

아름다운 비단옷도 모두 다 뜻 없으니 단장하던 경대에는 먼지만 쌓였더라.

 

2, 臨産守苦恩

懷經十個月 産難欲將臨 朝朝如重病 日日似昏沈

(회경십개월 산난욕장임 조조여중병 일일사혼침)

惶怖難成記 愁漏滿胸襟 含悲告親族 惟懼死來侵

(황포난성기 수누만흉금 함비고친족 유구사래침)

 

⊙해산에 임하여 고통을 받으신 은혜⊙

아기를 몸에 품고 열 달이 다 차서 어려운 해산달이 하루하루 다가오니 

하루하루 오는 아침 중병든 몸과 같고 나날이 깊어가니 정신조차 아득해라

두렵고 떨리는 맘 무엇으로 형용할까 근심은 눈물 되어 가슴속에 가득하니 

슬픈 생각 가이없어 친족들을 만날 때면 이러다가 죽지 않나 이것만을 걱정 하시네

 

3, 生子妄愚恩

慈母生君日 五臟憁開張 身心俱悶絶 血流似屠羊

(자모생군일 오장총개장 신심구민절 혈류사도양)

生己開兒建 歡喜倍可常 熹定悲還至 痛苦徹心腸

(생기개아건 환희배가상 희정비환지 통고철심장)

 

⊙자식을 낳았다고 근심을 잊어버리는 은혜⊙

자비하신 어머니가 그대를 낳으신 달 오장육부 그 모두를 쪼개고 헤치는 듯

몸이나 마음이나 모두가 끊어 졌네. 짐승 잡은 자리같이 피는 흘러 넘쳤어도

낳은 아기 씩씩하고 충실하다 말 들으면 기쁘고 기쁜 마음 무엇으로 비유할까

기쁜 마음 정해지자 슬픈 마음 또 닥치니 괴롭고 아픈 것이 온몸에 사무친다.

 

4, 咽苦吐甘恩

父母恩深重 恩憐無失時 吐甘無所食 咽苦不嚬眉

(부모은심중 은련무실시 토감무소식 인고불빈미)

愛重情難忍 恩深復倍悲 但令孩子飽 慈母不詞飢

(애중정난인 은심부배비 단령해자포 자모불사기)

 

⊙입에 쓰면 삼키고 단 것이면 뱉어서 먹이신 은혜⊙

중하고도 깊고 깊은 부모님 크신 은혜 사랑하고 보살피심 어느 땐들 끊일 손가 

단 것이란 다 뱉으니 잡수실 게 무엇이며 쓴 것만을 삼키어도 밝은 얼굴 잃지 않네.

사랑하심 중하시사 깊은 정이 끝이 없어 은혜는 더욱 깊고 슬픔 또한 더하셔라

어느 때나 어린 아기 잘 먹일 것 생각하니 자비하신 어머님은 굶주림도 사양하지 아니 하네

 

5, 廻乾就濕恩

母自身俱濕 將兒以就乾 兩乳充飢渴 羅袖掩風寒

(모자신구습 장아이취건 양유충기갈 나수엄풍한 )

恩怜恒廢寢 寵弄振能歡 但令孩子穩 慈母不求安

(은령항폐침 총농진능환 단령해자온 자모불구안)

 

⊙마른자리에 아기를 눕히고 진자리에 누우신 은혜⊙

어머니 당신 몸은 젖은 자리 누우시고 아기는 받들어서 마른자리

눕히시며 양쪽의 젖으로는 기갈을 채워 주고고운 옷소매로는 찬바람 가려 주네

은혜로운 그 마음에 어느 땐들 잠드실까 아기의 재롱 으로 기쁨을 다하시며 

오로지 어린 아기 편할 것만 생각하고 자비하신 어머니는 단잠도 사양했네.

 

제6, 乳哺養育恩

慈母象於地 嚴父配於天 覆載恩將等 父孃意亦

(자모상어지 엄부배어천 복재은장등 부양의역연 )

不憎無眼目 父嫌手足격 誕腹親生子 終日惜兼憐

(불증무안목 부혐수족격 탄복친생자 종일석겸련)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아버님의 높은 은혜 하늘에 비기오며 어머님의 넓은 공덕 땅에다 비할 손가 

아버지 품어 주고 어머니 젖 주시니 그 하늘 그 땅에서 이 내 몸 자라났네.

ㅡ출산 부터 다음 임신이 될 때까지 2~3년간 먹여 준 젖의 양이 여덟 섬 너말이나 된다는 뜻이며

당시 한 말이란 개념은 소두이며 요즘 5되(9리터)이다.ㅡ

아기 비록 눈 없어도 미워할 줄 모르시고 손과 발이 불구라도 싫어하지 않으시네.

배 가르고 피를 나눠 친히 낳은 자식이라 종일토록 아끼시고 사랑하심 한이 없네.

 

제7 洗濯不淨恩

憶昔美容質 姿媚甚豊濃 盾分翠柳色 兩검奪蓮紅

(억석미용질 자미심풍농 순분취유색 양검탈련홍)

恩深玉貌 洗濯損盤濃 只爲憐男女 慈母改顔容

(은심옥모 세탁손반농 지위련남여 자모개안용)

 

⊙깨끗하지 못한 것을 씻어 주신 은혜⊙

생각하니 그 옛날의 아름답던 그 얼굴과 아리따운 그 모습이 풍만도 하셨어라

갈라지 두 눈썹은 버들잎 같으시고 두 뺨의 붉은 빛은 연꽃보다 더했어라

은혜가 깊을수록 그 모습 여위었고 기저귀 빠시느라 손발이 거칠었네. 

오로지 아들딸만 사랑하고 거두시다 자비하신 어머니는 얼굴 모양 바뀌셨네.

 

제8, 遠行憶念恩

死別誠難忍 生離亦悲傷 子出關外出 母意在他鄕

(사별성난인 생리역비상 자출관외출 모의재타향 )

日夜心相逐 流淚數千行 如猿泣愛子 憶念斷肝腸

(일야심상축 류누수천행 여원읍애자 억념단간장)

 

⊙자식이 멀리 가면 생각하고 염려하시는 은혜⊙

죽어서 헤어짐도 참아가기 어렵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아프고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나가 먼 길을 떠나가니 어머니의 모든 마음 타향 밖에 나가 있네.

밤낮으로 그 마음은 아이들을 따라가고 흐르는 눈물 줄기 천 줄긴가. 만 줄긴가.

원숭이 달을 보고 새끼 생각 울부짖듯 염려하는 생각으로 간장이 다 끊기네.

 

제9, 爲造惡業恩

父母江山重 深恩報實難 子告願代受 兒勞母不安

(부모강산중 심은보실난 자고원대수 아노모불안)

聞道遠行去 行遊夜臥寒 男女暫辛苦 長使母心酸

(문도원행거 행유야와한 남여잠신고 장사모심산)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을 하시는 은혜⊙

부모님의 은혜가 강산같이 중하거니 깊고 깊은 그 은덕은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이 고생하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자식이 머나먼 길 떠난다 들을 지면 잘 있는가. 춥잖은가 밤낮으로 걱정하고

자식들이 잠시 동안 괴로운 일 당할 때면 어머님의 그 마음은 오래 두고 아프셔라

 

제10, 究竟憐愍恩

父母恩深重 恩憐無失時 起座心相逐 遠近意相隨

(부모은심중 은련무실시 기좌심상축 원근의상수)

母年一百歲 常憂八十兒 欲知恩愛斷 命盡始分離

(모년일백세 상우팔십아 욕지은애단 명진시분리 )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을 하시는 은혜⊙

부모님의 은혜가 강산같이 중하거니 깊고 깊은 그 은덕은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이 고생하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자식이 머나먼 길 떠난다 들을 지면 잘 있는가. 춥잖은가 밤낮으로 걱정하고

자식들이 잠시 동안 괴로운 일 당할 때면 어머님의 그 마음은 오래 두고 아프셔라

 

단기4348년. 불기 2559년,(서기 2015년 9월 4일)

글 쓴이 청파(靑波). 취람(翠嵐). 여포(呂布). 편집(編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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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은중경 요약

어머니명절에 즈음해 어머니의 크고 깊은 은혜에 보답하라고 가르치는 불교 경전,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떠올려 봅니다.

부처님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제자 아난에게 길가 숲속에 뼈 무더기를 여자의 뼈와 남자의 뼈로 나누라고 명했다. 

아난이 난색을 표하자 부처님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남자의 뼈는 희고 무겁지만 여자는 아기를 한번 낳을 때마다 서 말 서 되의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여야 하므로 뼈가 검고 가벼 우니라”

 

이어 부처님은 어머니의 은혜로 10가지를 꼽았습니다.

1.임신 후 아기를 태중(胎中)에 잘 보호해준 은혜, 

2.산고를 겪으며 아기를 낳아준 은혜,

3.자식을 낳고 나면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는 은혜,

4.입에 쓴 것은 자신이 먹고 단 것만 자식에게 먹이는 은혜,

5.마른 자리에는 자식을 눕히고 젖은 자리에는 자신이 눕는 은혜,

6.젖을 물려 키워준 은혜,

7.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준 은혜,

8.자식이 먼 길 떠나면 내내 걱정해주는 은혜,

9.자식을 위해서라면 나쁜 일도 마다 않는 은혜,

10.자식을 끝까지 염려하고 사랑해주는 은혜”

 

어머니의 마음(양주동詞, 이홍렬曲)

https://www.youtube.com/watch?v=N7RwLrwla5M 

 

 https://kydong77.tistory.com/8221

 

아! 어머니 -신달자

아! 어머니 -신달자 어디에도 펼 곳이 없어서 둘둘 말아 가슴 밑바닥에 숨겨둔 그 꿈 어머니 지금은 어느 곳으로 흘러 한 자락 구름이라도 되었을 까요? 구름이 되어 애끊는 비가 되어 맨몸으로

kydong77.tistory.com

 

1.회탐수호은(懷眈守護恩) or 『회태수호은(懷胎守護恩)』

아이를 배어 지키고 보호해준 은혜, 임신과 임신중 태내 성장

 

2.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해산함에 임하여 고통받으신 은혜

 

3.『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자식을 낳고서야 근심 잊으시는 은혜

 

4.『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건 삼키고 단 건 뱉아 먹여준 은혜

 

5.『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신 은혜

 

6.『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먹이고 사랑으로 길러주신 은혜

 

7.『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목욕 세탁 더러움을 씻어주신 은혜

 

8.『원행억염은(遠行憶念恩)』

멀리 떠나가면 근심 걱정하신 은혜

 

9.『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자식을 위해서는 모진 일 하신 은혜

 

10.『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임종 때도 자식 위해 근심하신 은혜

 

https://kydong77.tistory.com/22007

 

佛說 부모은중경 10도(圖),어머니 마음&정조의 지극한 효심/무애(无涯) 양주동선생님 偉業

*진행이 느려터진 카눈을 보내고 나니, 문득 노래가 생각키우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zLgmEOMuUHU * 어버이날 노래로 불러왔던 이 노래는 의 어머니의 은혜 10가지를 바탕으로 양주동 선생님께

kydong77.tistory.com

『부모은중경』은 이민수 현대역 을유문고본도 있습니다.

 

http://nabizone.net/nara/sub2_5/79394

 

漢 詩 -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원문 및 해석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원문 및 해석 1.懷耽守護恩 累劫因緣重 今來托母胎 月逾生五臟 七七六精開 (누겁인연중 금래탁모태 월유생오장 칠칠육정개) 體重如山岳 動止?風災 羅衣都不掛 裝鏡惹塵埃 (체중여산악 동지겁풍재 나의도불괘 장경야진애) ⊙ 나를 잉태하시고 지켜 주신 은혜⊙ 여러 겁을 내려오며 인연이 중하여서 어머니의 태를 빌어 금생에 태어날 때 -임신부터 분만까지 자식하나가 태어 날때까지  소비된 피의 양과 출산시 하혈까지  그 양이 서말 서되나 될정도 많다는

nabizone.net

 

https://www.youtube.com/watch?v=29QfJN9VBdA 

 

 

https://www.youtube.com/watch?v=y2A5moP44j8 

 

 

 

무여스님과 함께 하는 사찰여행 - 용주사(경기 화성), Yongjusa Temple - YouTube

 

한문 표기는 좌에서 우측 방향으로 쓰는 게 원칙이나 이 문의 표기는 한글 표기법을 따랐다. 문자는 한자인데.....

 

http://world.kbs.co.kr/special/unesco/contents/excellent/e2.htm?lang=k 

 

해인사 장경판전 I 한국의 유산, 세계의 유산 I KBS WORLD Radio

최고의 목판 경전,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의 본 이름은 ‘고려대장경’ 이었으나 경판이 81,340 여 장에 이르고 8만4천 법문을 수록했다 하여 ‘팔만대장경’으로 불리게 됐다. 이 경판의 길이를

world.kbs.co.kr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200500&code=kc_age_20 

 

우리역사넷

팔만대장경은 현재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하고 있는 고려의 재조대장경을 지칭한다. 경판의 수가 81,258매에 달한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 일컫고 고려의 초조대장경을 다시 새긴 것이므로

contents.history.go.kr

팔만대장경은 현재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하고 있는 고려의 재조대장경을 지칭한다.

경판의 수81,258매에 달한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 일컫고 고려의 초조대장경을 다시 새긴 것이므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오늘날에는 흔히 고려대장경이라고 부른다.

고려의 팔만대장경은 13세기 중반에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를 기원하고자 국가가 주도하여 조성하였다. 불교가 보편적인 문화로 향유되던 중세 동아시아에서 대장경의 조성은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기술을 상징하였다. 고려의 국력을 대내외에 과시했던 고려 팔만대장경은 현재에도 그 경판이 국보 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2007년 등재)으로,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국보 5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5년 등재)으로 등재되어 있다.

팔만대장경은 동아시아의 현존하는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완본(完本)이다. 팔만대장경에 포함되어 있는 서적 가운데에는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유일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 서적은 팔만대장경이 현존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또한 팔만대장경은 당대에 유통되던 초조대장경과 개보장, 거란장 등을 세밀하게 교감하여 제작한 것인 까닭에, 대장경 가운데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오자가 적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일본이 1885년 『대일본교정대장경(大日本校訂大藏經)』과 1924년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을 간행할 때 모두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삼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불교가 보편적인 문화로 향유되던 중세 동아시아에서 대장경의 조성은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기술을 상징하였다. 경판과 장경판전이 국보일 뿐만 아니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그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oBuKj3baETc 

 

 

https://www.youtube.com/watch?v=EWnkM7-InMc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합천 해인사 삼층석탑 (陜川 海印寺三層石塔<庭中塔>)

 

https://www.youtube.com/watch?v=JoIU9aHwO78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122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를 의미하는 신앙대상. 법신불(法身佛)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이다.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하여 비로자나라고 한다.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이 없는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眞如實相)주1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부처를 신(身)이라고 하였을망정 평범한 색신(色身)주2이나 생신(生身)주3이 아니며, 갖가지 몸이 이것을 근거로 나오게 되는 원천적인 몸을 뜻한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시킬 때는 천엽연화(千葉蓮華)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다.

불상의 화대(華臺) 주위에 피어 있는 1,000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100억의 국토를 표현한 것으로, 이 부처님이 있는 세계의 공덕무량함과 광대장엄함은 헤아릴 길이 없음을 조형화한다.

*참고로 법신불(法身佛)의 '法'이란 불교에서는 진리의 의미로 사용한다. 따라서 佛法은붓다가 설한 불교의 진리의 의미다.

그 핵심은 계정혜 3학, 4성제, 8정도, 12연기로 요약된다.

 

3學 · 4성제(四聖諦) · 8정도(八正道) · 12연기(緣起)

https://kydong77.tistory.com/20640

 

3學 · 4성제(四聖諦) · 8정도(八正道) · 12연기(緣起)

www.youtube.com/watch?v=NEr14e7C5-M ko.wikipedia.org/wiki/%EC%82%AC%EC%84%B1%EC%A0%9C

kydong77.tistory.com

 

비로자나불의 수인(손모양)

                                                                          ↑ 대웅전 측면

 

 

https://www.youtube.com/watch?v=rcE-RdDUAu8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B9%98%EC%9B%90

 

최치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은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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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리고 이어 아찬(阿飡)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인하여 그 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亂世)를 비관, 산림과 각지를 유랑하다가 경주 남산, 강주(현, 영주시)의 빙산, 합천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합포현의 별서 등에서 은거하다가 마지막에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그의 작품으로는 난랑비서문이 있어 신라 화랑도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으며, 계원필경과 동문선 등에 그의 시문이 일부 전하며, 금석총람에도 비문이 전한다.

 

최치원, 격황소서(檄黃巢書)·쌍녀분기(雙女墳記 )·사산비명(四山碑銘)/ 현승환, 최치원설화의 형성(논문)

https://kydong77.tistory.com/22184

 

최치원, 격황소서(檄黃巢書)·쌍녀분기(雙女墳記 )·사산비명(四山碑銘)/ 현승환, 최치원설화의

중국 양주 최치원 기념관 얖 백옥석상 https://kydong77.tistory.com/3613 최치원,격황소서(檄黃巢書) 최치원(崔致遠) ,격황소서(檄黃巢書)동문선 제49권 격서(檄書)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K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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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OqaIJzKwCWU 

 

위 전서체 글씨를 해서체로 바꾸면.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역천겁이불고 긍만세이장금
영겁의 시간이 흘렀어도 옛날이 아니요.
만세의 앞날이 오더라도 늘 지금이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https://www.youtube.com/watch?v=kDXjMVYwzWA 

 

가야산 홍류동계곡 물소리길

https://www.youtube.com/watch?v=RQLVdoSw1H4 

 

 

합천 롱산정(陜川 籠山亭)

https://ko.wikipedia.org/wiki/%ED%95%A9%EC%B2%9C_%EB%86%8D%EC%82%B0%EC%A0%95

 

합천 농산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합천 농산정(陜川 籠山亭)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에 있는 건축물이다.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72호 농산정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경상남도 고시 제2018-485호,《경상남도 지정문화재(문화재자료) 명칭변경 고시》

..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https://www.youtube.com/watch?v=9g60FD-H3OU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 가야산 독서당에서 짓다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신라말)

狂奔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 첩첩한 바위에 무겁게 달려 겹겹한 산이 울려

人語難分咫尺間
인어난분지척간, 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 분간하기 어렵네.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항상 시비의 소리 귀에 닿을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
고교류수진롱산, 일부러 흐르는 물로 다 산을 둘렀네

孤雲集』 卷一

 

*경주에도 시무10조를 상소한 上書莊이 있는데....

문창후 고운 선생은 사실적 표현이나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 측면에서 한국 최고의 천재 문장가이고 현실주의자이시다.

ㅡ 운영자 생각

 

https://kydong77.tistory.com/22184

 

최치원, 격황소서(檄黃巢書)·쌍녀분기(雙女墳記 )·사산비명(四山碑銘)/ 현승환, 최치원설화의

중국 양주 최치원 기념관 얖 백옥석상 https://kydong77.tistory.com/3613 최치원,격황소서(檄黃巢書) 최치원(崔致遠) ,격황소서(檄黃巢書)동문선 제49권 격서(檄書)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K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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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1641

 

咸陽上林공원, 신라 최치원 홍수방지용 인공숲/최치원의 時務十條

https://ko.wikipedia.org/wiki/%ED%95%A8%EC%96%91_%EC%83%81%EB%A6%BC 함양 상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함양 상림은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1962년 12월 3일 지정되었다. 상림의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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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선생의 은거지를 내려오면서 찍은 紅流門 사진이다.

山中問答(산중문답)
ㅡ 李白(이백, 701~762)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왜 산에 사냐고 내게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대답 없이 웃으니 마음 절로 한가로워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물에 떠서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여기는 신선세계, 인간 세상 아니라오.

 

'紅流'란 陶潛(도연명)의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 이후 이상향을 대변한다.

상류엔 복사꽃잎보다 고귀한 팔만대장경이 있으니 이보다 더한 이샹향이 세상천지 또 어디에 있겠는가!

 

https://kydong77.tistory.com/20749

 

陶潛(도잠),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

www.youtube.com/watch?v=J_OLAY1YzQA blog.daum.net/1958hms/175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 -陶潛(도연명)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 -陶潛(도연명) 도잠(365 - 427) 자는 淵明 자호는 오류선생. 동진대의 시인. 강서성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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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buan114.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49 

 

능가산 관음봉 기슭에 있는 관음성지 내소사

부안군 진서면에는 관선불 정녕 관세음보살 영험이 스며든 곳일까?백제 무왕 34년(633) 헤구두타惠丘頭陀 스님이 세운 내소사來蘇寺는 능가산 관음봉 기슭에 있다. 당시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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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W8pMRcrA3f4 

 

https://www.youtube.com/watch?v=SVRzVcaOW9M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2487

 

내소사(來蘇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가 창건한 사찰. 시도기념물.
 
이칭, 소래사(蘇來寺)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가 창건한 사찰. 시도기념물.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무왕 34)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1902년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였다.

 

https://namu.wiki/w/%EB%82%B4%EC%86%8C%EC%82%AC

 

내소사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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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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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문경 대승사 묘적암 마애불좌상

 

 

사불암(四佛巖, 사면石佛)

 

四佛山 掘佛山 万佛山

竹嶺東百許里有山屹然髙峙, 真平王九年甲申,校勘 093 忽有一大石四面方丈彫四方如來, 皆以紅紗護之, 自天墜其山頂. 王聞之命駕瞻敬, 遂創寺嵓側, 額曰大乗寺. 請比丘亡名誦蓮経者主寺, 洒掃供石香火不廢. 号曰亦徳山, 或曰四佛山. 比丘卒旣葬, 塚上生蓮.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四佛山 掘佛山 萬佛山)

죽령(竹嶺) 동쪽 1백리 가량 떨어진 마을에 높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眞平王) 46년 갑신(甲申)註 249에 홀연히 사면이 한 발이나 되는 큰 돌에 사방여래(四方如來)註 250를 조각하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감싼 것이 하늘로부터 그 산 정상에 떨어졌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쳐다보고 예경한 후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

≪법화경(法華經)註 251≫을 외우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를 청하여 절을 맡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돌을 공양하며 향불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 산을 역덕산(亦德山)이라고 하며, 혹은 사불산(四佛山)註 252이라고도 한다. 비구가 죽자 장사지냈더니 무덤 위에서 연(蓮)이 났었다.

註 249진평왕 9년(587)은 간지로 정미(丁未)이고, 갑신(甲申)은 진평왕 46년(624)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다.

註 250사방의 불국토에 사는 부처를 말한다. 동방 아축불(阿閦佛), 서방 아미타불, 남방 보생불(寶生佛), 북방 미묘성불(微妙聲佛)을 가리킨다.

註 251≪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약칭이며 ≪연경(蓮經)≫이라고도 한다. 대승경전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7권 28품으로 이루어졌다. 천태종·법상종의 소의경전이다.

註 252경상북도 문경시 대승사(大乘寺)가 위치한 산으로, 산 위 바위에 새겨진 사방불에 이하여 산 이름이 지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a4EQ-eCNmSY 

 

四佛山 四面石佛

진평왕 9년 587년에 갑자기 사면이 한 길이나 되는 큰 돌이 나타났다. 하늘에서 죽령 동쪽 산마루에 비단으로 싸인 채 떨어졌는데 바위의 사면에 여래가 새겨져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N3ZFdlLg7s 

 

[나옹선사 지음]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5행과 7행의 兮 : 어구를 맞추기 위해 덧넣은 字.

나머지 兮 는 7언한시가 아님을 나타낸, 우리말답게 표현한 덧글자.

 

 

 

https://kydong77.tistory.com/20917

 

문경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 탑명(塔銘), 이색(李穡) 奉敎撰

대성사 묘적암의 나옹선사 부도 https://www.youtube.com/watch?v=hNAqBFOpqCg 위 노래는 한물간 인기곡의 가사로 나옹회상의 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보고

kydong77.tistory.com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542

 

대승사(大乘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https://4242.net/260

 

[경북 문경] 대승사 마애여래좌상 (시도유형 제239호)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239호 (문경시) 명칭 대승사마애여래좌상(大乘寺磨崖如來坐像) 분류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수량/면적 1구 지정일 1988.09.23 소재지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산38-1

4242.net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21937 

 

경북문경 대승사 묘적암 마애불좌상 | 소장품 검색

국립중앙박물관,원판번호 無190030 (격납상자제목: 大正八年度[1919] 谷井). 경북문경 대승사 묘적암 마애불좌상. 유제면 좌측 하단에 검정색 글씨로 大正, 붉은색 글씨로 八-三0, 좌측 상단에 연필

www.museum.go.kr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542

 

대승사(大乘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8884

 

묘적암(妙寂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https://www.youtube.com/watch?v=BTa-ZHvXm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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