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 낙양녀아행(洛陽女兒行)-왕유(王維)

낙양의 여인의 노래

 

洛陽女兒對門居(낙양녀아대문거) : 대문 맞은 편에 낙양의 처녀가 사는데

纔可顔容十五餘(재가안용십오여) : 겨우 열다섯 살에 용모가 아름답다.

良人玉勒乘驄馬(량인옥늑승총마) : 낭군은 옥장 장식 준마 타고

侍女金盤膾鯉魚(시녀금반회리어) : 시녀는 금쟁반에 잉어회를 바친다.

畫閣朱樓盡相望(화각주누진상망) : 화려한 집 붉은 누대에 진종일 마주보며

紅桃綠柳垂簷向(홍도녹류수첨향) : 붉은 복숭아 푸른 버들 처마 향해 늘어졌다.

羅帷送上七香車(나유송상칠향거) : 비단 휘장에 칠향거에 태워져 오르고

寶扇迎歸九華帳(보선영귀구화장) : 귀한 부채로 맞아들여 구화장 침실로 든다.

狂夫富貴在靑春(광부부귀재청춘) : 호탕한 지아비들 부귀는 어릴 적부터 있었고

意氣驕奢劇季倫(의기교사극계륜) : 의기는 방탕하고 차치함이 계륜보다 심하도다.

自憐碧玉親敎舞(자련벽옥친교무) : 스스로 미인들을 좋아하여 직접 춤을 가르치고

不惜珊瑚持與人(부석산호지여인) : 산호 보석 남에게 주는 것도 아끼지 않았도다.

春窓曙滅九微火(춘창서멸구미화) : 봄날 창가에 날이 밝아야 화려한 구미등불 끄고

九微片片飛花璅(구미편편비화소) : 구미 등잔에 불꽃이 편편히 꽃가루처럼 날린다.

戲罷曾無理曲時(희파증무리곡시) : 놀이가 끝남에 음악 익일 시간이 없어

妝成祗是薰香坐(장성지시훈향좌) : 화장이나 하고서는 향기만 풍기며 앉아있도다.

城中相識盡繁華(성중상식진번화) : 성안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 모두가 부호들이요

日夜經過趙李家(일야경과조리가) : 밤낮으로 조비연과 이평 같은 귀부인들이도다.

誰憐越女顔如玉(수련월녀안여옥) : 누가 어여삐 여길까, 여인의 얼굴이 옥 같아도

貧賤江頭自浣紗(빈천강두자완사) : 가난하고 천해서 강 가에서 빨래나 하는 것을.

 

[안병렬 역] 

076 왕유(王維)

낙양 女兒의 노래

 

낙양의 계집

문을 마주해 앉았는데

 

신랑은 옥굴레의

촘마타고 떠나고

시녀는 금쟁반에

잉어회를 바친다.

 

채색 누각 붉은 다락

서로 이어 바라보고

붉은 복숭아 푸른 버들

처마 향해 드리웠다.

 

호탕한 신랑 부귀함은

어릴 적부터고

의기에다 교만하고 사치롭기

계륜보다 더하다.

 

미녀를 사랑하여

춤을 몸소 가르치고

산호수도 아끼잖고

남에게 그저 준다

 

봄날 창에 날 밝아야

구미등불 끄는데

.구미등 불꽃 조각조각

꽃등 위로 날린다.

 

장난질 마치어도

곡조 익힐 틈이 없고

화장을 마치고도

향내 맡으며 앉아 있네.

 

성중에 아는 사람

모두 다 부호들이요

밤낮으로 만나는 사람들

조비연과 이평 같은 귀부인들이네.

 

누가 저 옥 같은 월녀를

가련해할까?

어린 시절 빈천하여

강가에서 빨래나 하던 일을.

 

075고종군행(古從軍行)-이기(李頎)

옛 군대의 노래

 

白日登山望烽火,

(백일등산망봉화),대낮에 산에 올라 봉홧불 바라보고

黃昏飮馬傍交河.

(황혼음마방교하).해지는 저녁에는 교화강가에서 말에게 물을 먹인다

行人刁斗風沙暗,

(항인조두풍사암),행인의 경계소리, 사막은 바람불어 어둡고

公主琵琶幽怨多.

(공주비파유원다).공주의 비파소리, 숨겨진 원망도 많다네

野雲萬里無城郭,

(야운만리무성곽),성곽은 없는데 들녘 구름 만리나 이어지고

雨雪紛紛連大漠.

(우설분분련대막).비 섞인 눈은 펄펄 날려 거대한 사막으로 이어진다

胡雁哀鳴夜夜飛,

(호안애명야야비),오랑캐 땅 기러기 슬피 울며 밤마다 날고

胡兒眼淚雙雙落.

(호아안누쌍쌍낙).오랑캐 눈에 흐르는 눈물 쌍쌍이 떨어진다

聞道玉門猶被遮,

(문도옥문유피차),소식 듣건데, 옥문이 아직도 막혔다니

應將性命逐輕車.

(응장성명축경거).응당히 목숨 걸고 빠른 전차를 따르리

年年戰骨埋荒外,

(년년전골매황외),해마다 전쟁에 죽은 뼈 황야에 묻히는데

空見葡萄入漢家.

(공견포도입한가).부질없이 보노니, 포도 과일이 한나라 왕실에로 들어가는 것을.

 

[안병렬 역] 

 075 이기(李頎)

옛 군대의 노래

 

한낮에 산에 올라

봉화를 바라보고

환혼에교하 가에서

말에게 물 먹인다.

 

행인의 경계소리에

모래 바람 어둡고

공주의 비파소리엔

그윽한 원한 많아라.

 

오랑캐 땅 기러기 슬피 울어

밤마다 날아가고

오랑캐 땅 어린애들 눈물

쌍쌍이 떨어진다.

 

듣건대 옥문관이

막히었거니

응당 목숨 걸고

전차를 따르리라.

 

해마다 전사자의 뼈

황야에 묻히는데

부질없이 보이는 건

한나라 황실로 들어가는 포도뿐.

 

 

 

七古樂府 (074-89) 

 

074연가행(燕歌行) 幷序 -고적(高適;707-765)

開元 二十六年 客有從 御史大夫張公(守珪) 出塞而還者,

作燕歌行 以示適 感征戍之事 因而和焉.

 

燕歌行

開元 26년에 손님이 어사대부 張守珪를 따라 변방에 나갔다가 돌아온 자가 있었는데,

燕歌行을 지어 나에게 보이거늘 征戍의 일에 감격하고, 인하여 이에 화답한다.

 

漢家煙塵在東北,

(한가연진재동배),한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니 동북쪽이라

漢將辭家破殘賊.

(한장사가파잔적).한나라 장군들 집을 떠나 적을 쳐부순다

男兒本自重橫行,

(남아본자중횡항),남아는 본래 거리낌 없는 행동을 귀히 여기니

天子非常賜顔色.

(천자비상사안색).천자는 특별히 기쁜 표정 보이시네

摐金伐鼓下楡關,

(창금벌고하유관),징을 치고 북을 치며 유관으로 내려가니

旌旆逶迤碣石間.

(정패위이갈석간).깃발은 구불구불 갈석산에 가득하다

校尉羽書飛瀚海,

(교위우서비한해),사막 위의 우서는 사막으로 날아들고

單于獵火照狼山.

(선우렵화조낭산).선우의 사냥 불은 낭산에서 비친다

山川蕭條極邊土,

(산천소조극변토),변방의 끝이라 산천은 쓸쓸하고

胡騎憑陵雜風雨.

(호기빙능잡풍우).오랑캐 사나운 말이 언덕에 의지하여 비바람과 섞여있네

戰士軍前半死生,

(전사군전반사생),전사는 군대에서 죽고 살기 반반인데

美人帳下猶歌舞.

(미인장하유가무).미인은 휘장 안에서 노래하며 춤을 추네

大漠窮秋塞草衰,

(대막궁추새초쇠),거대한 사막 저무는 가을에 변방의 풀은 시드는데

孤城落日斗兵稀.

(고성낙일두병희).외로운 성 지는 해에 싸울 병사는 드물다

身當恩遇常輕敵,

(신당은우상경적),몸은 응당 은혜 입어 적을 항상 만만히 보았으나

力盡關山未解圍.

(력진관산미해위).힘이 다한 관산에서 포위망을 풀지 못하네

鐵衣遠戍辛勤久,

(철의원수신근구),머나먼 원정길 무거운 철갑옷에 고생이 오래되니

玉筋應啼別離后.

(옥근응제별리후).아내는 이별 후, 옥 젓가락 같은 눈물 흘리며 울고 있으리

少婦城南欲斷腸,

(소부성남욕단장),젊은 아내 성남 땅에서 그리워 애간장을 다 끊고

征人薊北空回首.

(정인계배공회수).군인 간 남편은 계배 땅에서 부질없이 고향 땅 돌아본다

邊庭飄搖那可度,

(변정표요나가도),변방의 뜰에 바람 빨라도 어찌 그냥 지나리

絶域蒼茫更何有!

(절역창망갱하유)!성 너머 창망하니 다시 무엇이 더 있겠는가

殺氣三時作陣雲,

(살기삼시작진운),아침, 점심, 저녁 종일토록 살기가 구름되고

寒聲一夜傳刁斗.

(한성일야전조두).온밤 차가운 소리 경계 소리로 전해지네

相看白刃血紛紛,

(상간백인혈분분),보아라, 흰 칼날에 피가 분분한 것을

死節從來豈顧勛?

(사절종내개고훈)옛날부터 절개에 죽어야지 어찌 공훈을 돌아보랴

君不見沙場征戰苦,

(군부견사장정전고),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사막에 원정해 전쟁하는 고통

至今猶憶李將軍!

(지금유억리장군)!지금에야 이 장군을 생각한다네

 

칠고악부

074 고적(高適;707-765)

 

燕歌行

開元 26년에 손님이 어사대부 張守珪를 따라 변방에 나갔다가 돌아온 자가 있었는데,

燕歌行을 지어 나에게 보이거늘 征戍의 일에 감격하고, 인하여 이에 화답한다.

 

한나라 동북에

반란이 있어

한나라 장수 집떠나

도적을 소탕한다.

 

남아는 본디

橫行함 중히 하니

천자는 특별히

안색이 기쁘시다.

 

 징 치고 북 울려

검각으로 내려갈 제

깃발들 길게

갈석산에 늘어섰다.

 

교위의 우서는

사막으로 날아오고

선우의 사냥불은

랑산에서 비친다.

 

산천은 쓸쓸한데

변방 끝에 다다르니

오랑캐 말들 세력 믿고

고함소리 비바람에 섞인다.

 

전사들은 전선에서

죽고 삶이 절반인데

미인은 휘장 아래

노래하고 춤춘다.

 

큰 사막 저문 가을

변방 풀들 시드는데

오론 성 지는 해에

싸울 군사 드물구나.

 

몸은 응당 은혜 입어

적을 무시하련마는

 힘 다한 관산에서

포위를 못 풀었네.

 

철갑옷 먼 수자리

고생도 오래 되니

아내는 이별 뒤에

젓가락 같은 두 가닥 눈물 흘리리라.

 

젊은 아내 성남에서

창자가 끊어질 때

군인들 게배에서

부질없이 돌아본다.

 

변방 바람 빠르다지만

어찌 내 소식 지나칠 수 있나?

먼 지방 아득한데

다시 무엇 있단 말가?

 

낮에는 온종일 살기에

전장의 구름 만들고

밤에는 온밤 내내 찬 소리에

경계소리 전하네.

 

보아라, 흰 칼날에

피가 흐름을

예로부터 절개에 죽나니

어지 공훈을 돌아보랴?

 

그대는 못 보았나?

사막에서 전쟁하는 괴로움을.

이제껏 오히려

 

이장군을 생각한다.

https://blog.naver.com/swings81/220888714741

 

韓碑(한비:한유의 평회서비찬) - 李商隱(이상은)

당시삼백수 권1 칠언고시 73. 韓碑(한비) - 李商隱(이상은) <한유의 평회서비를 찬하...

blog.naver.com

 

韓碑(한비) - 李商隱(이상은) 

韓碑(한비)는 한유(韓愈)가 지은 평회서비(平淮西碑:고문진보 후집 권3 30)를 가리킨다. 회서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가 채주(蔡州)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당헌종 元和 12년(817)에 배도(裴度)가 총사령관이 되어 이를 토벌했다. 이때 한유(韓愈)는 행군사마(行軍司馬)로 종군했는데, 난(亂)이 평정된 후 황제가 한유에게 명하여 〈平淮西碑(평회서비)〉를 짓게 하였다.

이상은의 한비는 한유가 평화서비를 짓는 과정과 그 공을 극찬하며 평화서비가 참소에 의해 지워졌지만 후세에서 복구하여 남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

<평회서비(平淮西碑)>

배도와 이소(李愬)가 회서 반란을 평정한 후 헌종은 승리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배도 수하의 행군 사마였던 한유(韓愈)는 이름난 문장가인데다 배도를 따라 회서에 가본 적이 있어서 회서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헌종은 한유에게 명해 「평회서비(平淮西碑)」 즉 회서를 평정한 공적을 기리는 비문을 작성하게 했다.

 

 

073한비(韓碑)

ㅡ 이상은(李商隱;812-858)

 

元和天子神武姿,

(원화천자신무자),원화 천자의 신무한 자태여

彼何人哉軒與羲.

(피하인재헌여희).그분은 어떤 분인가! 헌원씨와 복희씨라

誓將上雪列聖恥,

(서장상설렬성치),맹세하여 장차 여러 대의 성군의 부끄러움을 씻고자

坐法宮中朝四夷.

(좌법궁중조사이).법궁의 중앙에 앉으니 사방 오랑캐가 조회를 하네

淮西有賊五十載,

(회서유적오십재),서진에 도적이 있어 이제 오십 년인데

封狼生貙貙生羆.

(봉낭생추추생비).이리가 너구리를 낳고 너구리가 곰을 낳았도다

不據山河據平地,

(부거산하거평지),산도 물도 아닌 평지에 웅거하여

長戈利矛日可麾.

(장과리모일가휘).긴 창 과 날카로운 창을 갖고 날마다 도둑을 모은다

帝得聖相相曰度,

(제득성상상왈도),황제님 어진 재상 얻었으니 재상은 배도라고 하네

賊斫不死神扶持.

(적작부사신부지).도적이 찍어도 죽지 않으니 신이 돕는다네

腰懸相印作都統,

(요현상인작도통),허리엔 상인 차고 도통이 되어

陰風慘澹天王旗.

(음풍참담천왕기).음풍이 참담한데 천왕의 깃발 드높인다

愬武古通作牙爪,

(소무고통작아조).네 무장인 이삭, 한공무, 이도고, 이문통을 선봉으로 삼고

儀曹外郎載筆隨.

(의조외낭재필수).의조랑과 원외랑은 붓을 들고 따라간다

行軍司馬智且勇,

(항군사마지차용),행군사마는 지혜롭고 용감하고

十四萬衆猶虎貔.

(십사만중유호비).십 사만 군사들은 더욱 호랑이와 비휴같이 용맹하다

入蔡縛賊獻太廟,

(입채박적헌태묘),채 땅에 들어가 도적을 포박하여 태묘에 바치오니

功無與讓恩不訾

(공무여양은부자).공이 없거나 사양한 사람도 황제님 은혜 한량없다

帝曰汝度功第一,

(제왈여도공제일),황제는 너 배도의 공이 제일이니

汝從事愈宜爲辭.

(여종사유의위사).너의 종사관 한유가 글을 지어야한다고 하신다

愈拜稽首蹈且舞,

(유배계수도차무),한유는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뛰고 춤추며

金石刻畫臣能爲.

(금석각화신능위).금석에 새길 글을 신이 능히 하리라하네

古者世稱大手筆,

(고자세칭대수필),옛날에는 대수필이라 하는데

此事不系于職司.

(차사부계우직사).이 일은 직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네

當仁自古有不讓,

(당인자고유부양),인에 이르러는 예부터 양보함이 없다하니

言訖屢頷天子頤.

(언흘누함천자이).말이 끝나자 황제님은 몇 번이나 끄덕끄덕 하시었네

公退齋戒坐小閣,

(공퇴재계좌소각),한공이 물러나 목욕재계 하신 후 작은 전각에 자리 잡고

濡染大筆何淋漓!

(유염대필하림리)!큰 붓에 덤뿍 적시니 어찌 그리 힘이 넘치는지

點竄堯典舜典字,

(점찬요전순전자),요전 순전의 글자도 하나하나 고쳐야하고

涂改淸廟生民詩.

(도개청묘생민시).청묘생민 시도 고쳐야하네

文成破體書在紙,

(문성파체서재지),문장은 남 다른 문체로 종이에 적어야 하는데

淸晨再拜鋪丹墀

(청신재배포단지).맑은 새벽 두 번 절하고 섬돌 위에 붉은 종이 펼쳐놓는다

表曰臣愈昧死上,

(표왈신유매사상),표하여 이르기를, “신 한유는 우매하여 죽어 마땅하나

詠神聖功書之碑.

(영신성공서지비).신의 성스런 공을 입어 이를 비에 새기려합니다하네

碑高三丈字如斗,

(비고삼장자여두),비의 높이는 삼 장이며 글자의 크기는 북두 같아

負以靈鰲蟠以螭

(부이령오반이리).신령스런 거북에 업히어서 용으로 서리었다

句奇語重喩者少,

(구기어중유자소),비문의 구절은 기굴하고 말은 심오하여 깨닫는 다 적어

讒之天子言其私.

(참지천자언기사).이를 천자께 사사롭다고 참소하니

長繩百尺拽碑倒,

(장승백척예비도),백 척 긴 밧줄로 비를 당겨 넘어뜨리고

粗沙大石相磨治.

(조사대석상마치).거침 모래 큰 돌로써 갈아버렸네

公之斯文若元氣,

(공지사문야원기),그러나 한공의 이 문장이 원기가 있는 듯

先時已入人肝脾.

(선시이입인간비).먼저 사람의 몸에 들어갔네

湯盤孔鼎有述作,

(탕반공정유술작),성당왕의 반과 공씨의 정에 새긴 글이 있어

今無其器存其辭.

(금무기기존기사).이제 그 그릇은 없어져도 그 글은 남아있다네

嗚呼聖皇及聖相,

(오호성황급성상),! 옛 성스런 황제와 어진 재상들

相與烜赫流淳熙.

(상여훤혁류순희).서로 더불어 그 밝음이 흘러 후세를 밝히네

公之斯文不示后,

(공지사문부시후),한공의 이 문장을 후세에 보이지 못한다면

曷與三五相攀追.

(갈여삼오상반추).어찌 세 다섯 재상들과 나란히 쫓을 수 있겠는가

愿書萬本誦萬過,

(원서만본송만과),원하노니, 일만 번을 베껴 쓰고 일만 번을 암송하여

口角流沫右手胝.

(구각류말우수지).입에 흘러 마르고 ,오른손에 굳은 살 져도 좋습니다

傳之七十有二代,

(전지칠십유이대),이 글을 전하기 칠십 이대

以爲封禪玉檢明堂基.

(이위봉선옥검명당기).왕 봉선시와 옥검 명당기의 글이 되게 하소서

 

[안병렬 역] 

073 이상은(李商隱;812-858)

韓碑 한비

 

원화천자의

신무한 모습이여

그 사람은 누구인가?

훤원씨와 복희씨라.

 

맹세하여 장차

열대 성군의 부끄러움 씻고자

법궁에 앉아서

사방 오랑캐의 조공과 축하를 받으리라.

 

회서에 도적이

오십 년만에

이리가 너구리 낳고

너구리가 곰을 낳아

 

산도 강도 마다하고

평지에 웅거하여

제멋대로 발호한다.

 

황제 언진 세상 얻었으니

재상은 배도

도적이 찍어도 죽지 않으니

귀신이 도우심이라.

 

허리에 재상인 차고

도통이 되사

음풍 참담한데

천왕 깃발 드높인다.

 

용감한 네 장수

선봉이 되고

의조랑 원외랑도

붓들고 따라간다.

 

행군사마 한유.

지혜 있고 용감하고

십사만 많은 군사

맹수 같이 사납도다.

 

채땅에 들어가 도적 잡아

태묘에 바치오니

골로상 받든 양보하든

황제 은혜 한량없다.

 

황제께서 하신 말씀

배도 너의 공로 제일이니

너의 종사 한유는

응당 글지어 바치거라.

 

한유는 머리 숙여 재배하고

뛰고 춤추면서

금석에 새길 문장

신이 능히 하오리다.

 

옛날에 이른바

문장가요

이 일은

직위와 무관하니.

 

에는 예부터

양보함이 없습니다.

말씀 듣자 천자께서

몇 번이나 수긍한다.

 

한유 물러나 목욕재계

작은 집에 자리잡아

큰 붓에 듬뿍 찍어 써내니

어찌 그리 힘 있고 상세한고?

 

요전 순전 문자도

고쳐 써야 하고

청묘 생민시도

고쳐야 되리.

 

문장은 남다른 체제

종이에 베껴 쓰고

맑은 새벽 재배하고

섬돌 위에 펴 놓고

 

표를 올려 아뢴 말씀

신 한유 우매하여 죽어 마땅하오나

황제님의 성스런 공로 읊었으니

이를 비석에 새겨 주옵소서.

 

비석 높이는 三仄

글자는 북두 같고

돌자라에 업히어서

용으로 조각됐다.

 

비문은 빼어나고 심오하여

깨닫는 자 적으니

천자께 참소하여

편협하고 사사롭다 아뢰오니.

 

백 자 긴 새끼로

비를 당겨 넘기고서

거친 모래 큰 돌로

갈고 다듬어도.

 

한유의 이 문장

원기가 있는 듯

이미 벌써 일찍이

남의 가슴 들어갔네.

 

성왕탕왕의 욕반, 공씨의 정상

모두 비석글 있었으나

이제는 반도 정도 없건마는

그 문장은 남았더라.

 

, 옛날의

거룩한 황제 어진 재상들

문장으로 빛내어서

후대까지 빛난다.

 

한유의 이 문장을

후세에 못 본다면

어떻게 너댓 친구들과

쫓아가며 드날릴까?

 

원컨대 일만본을 베끼고저 

만번을 외고서

입끝이 마르고

오른손에 군살이 베기어도.

 

이 문장 전해주어

천만 대 가오리니

성왕 봉선시의 기도문 되고

명당 제전터의 헌사되오리.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wings81&logNo=220888714741&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directAccess=false 

 

韓碑(한비:한유의 평회서비찬) - 李商隱(이상은)

당시삼백수 권1 칠언고시 73. 韓碑(한비) - 李商隱(이상은) <한유의 평회서비를 찬하...

blog.naver.com

당시삼백수 권1 칠언고시

73. 韓碑(한비) - 李商隱(이상은)

<한유의 평회서비를 찬하다>

 

韓碑(한비) - 李商隱(이상은) 

韓碑(한비)는 한유(韓愈)가 지은 평회서비(平淮西碑:고문진보 후집 권3 30)를 가리킨다. 회서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가 채주(蔡州)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당헌종 元和 12년(817)에 배도(裴度)가 총사령관이 되어 이를 토벌했다. 이때 한유(韓愈)는 행군사마(行軍司馬)로 종군했는데, 난(亂)이 평정된 후 황제가 한유에게 명하여 〈平淮西碑(평회서비)〉를 짓게 하였다.

이상은의 한비는 한유가 평화서비를 짓는 과정과 그 공을 극찬하며 평화서비가 참소에 의해 지워졌지만 후세에서 복구하여 남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

<평회서비(平淮西碑)>

배도와 이소(李愬)가 회서 반란을 평정한 후 헌종은 승리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배도 수하의 행군 사마였던 한유(韓愈)는 이름난 문장가인데다 배도를 따라 회서에 가본 적이 있어서 회서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헌종은 한유에게 명해 「평회서비(平淮西碑)」 즉 회서를 평정한 공적을 기리는 비문을 작성하게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대 문장가 한유 [韓愈直諫] (중국상하오천년사, 2008. 4. 25., (주)신원문화사)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wings81&logNo=220888714741&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directAccess=false 

 

韓碑(한비:한유의 평회서비찬) - 李商隱(이상은)

당시삼백수 권1 칠언고시 73. 韓碑(한비) - 李商隱(이상은) <한유의 평회서비를 찬하...

blog.naver.com

 

 

평회서비(平淮西碑) 한유(韓愈.韓退之. 768-824)

平淮西碑(평회서비)  韓愈(한유.한퇴지. 768-824) 淸末近代畵家(청말근대화가) 오징(吳徵) ...

blog.naver.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