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도난(蜀道難)>의 해제 해설과 구성

 

해제

장안에서 촉(蜀), 즉 지금의 사천(四川) 지역으로 갈 때 지나는 잔도(棧道)로 이어진 길의 험난함을 노래한 것으로, 상화가사(相和歌辭) 중의 하나이다. 〈촉도난행(蜀道難行)〉이라는 옛 노래가 있었다고 하나 오래전에 없어졌고, 남조 양(梁) 이후 소강(蕭綱; 503~551), 유효위(劉孝威; 496~549), 음갱(陰鏗; 511~563) 등의 〈촉도난(蜀道難)〉만 전할 뿐이다.

 

해설

이 시는 이백이 장안에 갔을 때 하지장(賀知章)에게 내보여준 야심작이다.

당시 하지장은 작품을 다 읽기도 전에 네 번이나 찬탄하며,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라는 뜻의 '적선(適仙)'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허리에 찼던 금 거북을 풀어 술과 바꾸어서 함께 취하도록 마셨다고 한다.

 

통상적인 시의 첫머리로 사용된 일 없는 거친 한숨소리로 시작하여,

촉도에 얽힌 까마득하고 아득한 전설은 장대하고 기괴한 정경들로 황홀하게 바뀌고,

칼끝보다 무시무시하며, 흉측한 맹수들보다도 두려운 것은

험난한 촉도의 최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수문장의 잔인함이라 탄식한다.

 

리와 빛과 움직임을 부여받은 갖가지 형상들은

3, 4, 5, 7, 9, 11언으로 바뀌는 자유로운 잡언체(雜言體) 속에서 살아 뛰놀고,

작품 전체를 감싸는 세 토막 형식은

천마(天馬)의 고삐처럼 작품에 안정감을 부여하며

이 환상적인 걸작을 완성하고 있다.

 

당인선당시집(唐人選唐詩集)인 《하악영령집》을 엮은 은반(殷潘)은

이백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이 〈촉도난〉을 가리켜

'기이하고 또 기이한 작품'이라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근인 첨영(詹鍈)은 이 작품과

그의 〈검각부(劍閣賦)〉 〈송우인입촉(送友人入蜀)〉시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내어,

서로 선후관계에 있는 작품들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실제로 이백에게 가음 〈백운가송유십육귀산(白雲歌送劉十六歸山)〉 외에

〈백운가송우인(白雲歌送友人)〉 시가 있는 사례 등으로 미루어볼 때,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 작품의 높은 회화성은 실경(實景)을 묘사한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촉도가 이리도 험하니, 공명을 어이 구하랴.[蜀道難如此, 功名詎可要.]"라는

진(陳) 음갱(陰鏗)의 〈촉도난(蜀道難)〉과 연관지어,

공명(功名)으로 가는 길의 고단함을 비유한 시로 읽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수문장이 친하지 않다면[所守或匪親]"이후

후반부의 모호한 내용으로 인해 작자의 의도를 추측하는 견해들도 분분하였다.

 

그것은

〈1〉현종(玄宗)의 촉(蜀) 지역 행차를 풍자한 것이다.

〈2〉촉(蜀)지역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 엄무(嚴茂)의 무례함을 비난한 것이다.

〈3〉토번(吐藩)을 물리치며 위세를 떨치던 술수가(術數家) 장구겸경(章仇兼瓊)을 풍자한 것이다. 등이다.

 

그 중에 753년 이후의 사건들을 담고 있다는 〈1〉〈2〉의 주장은,

이 작품이 실린 《하악영령집》이 714년부터 753년간의 시를 모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이전에 나온 것이어서 근거를 잃었다.

 

이에 비해 양송본(兩宋本) 및 무본(繆本) 《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의 〈촉도난〉 제목 아래에는

"장구겸경을 풍자한 것이다[諷章仇兼瓊也.]"라는 이백의 자주(自注)가 붙어 있어

이 작품의 배경으로서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데,

《하악영령집》 《돈황잔권당시선(敦煌殘卷唐詩選)》 《문원영화(文苑英華)》 《당문수(唐文粹)》와 같은 선집에는 이 여섯 글자가 빠져 있어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촉도난 [蜀道難] - 촉으로 가는 길 어려워 (고풍 악부 가음, 2014. 5. 26., 도서출판 역락)

 

구성

 

1단:신화와 태백산의 광경

2단:靑泥嶺으로부터 촉으로 들어가는景象

3단:連山의 絶壑과 물이 우레처럼 솟아나는 險阻함

4단:險閣의 崢嶸함과 險要, 자기의 돌아옴을 그리는 심정.

 

唐(당)나라 李白(이백)이 지은 악부의 이름.

그는 촉나라 사람으로서 촉도의 험함을 알고 이를 상세히 진술하여

현종황제가 西幸(서행)하는 일이 불리한 일이라는 것을 풍자함.

촉 나라 길의 가기 어려움. 이백(李白)이 지은 악부(樂府) 가사이며 비파 곡조 이름.

촉 땅의 내력, 산세의 험준함 등을 그렸고,

당 현종(唐玄宗)의 서행(西幸)이 불리함을 풍자했다고도 하고,

촉 땅을 진압할 때 무제(武帝)의 횡포를 풍자했다고도 함.

[네이버 지식백과] 촉도난

 

 

https://kydong77.tistory.com/15344

 

079 이백(李白), 촉도난(蜀道難) -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

079 蜀道難(촉도난)/ 구성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 제1단:신화와 태백산의 광경 아, 위험하고 높음이여,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름보다 더 어렵구나. 촉나라 임금의 선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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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 촉도난(蜀道難)-이백(李白;701-762)
촉도길의 어려움

噫吁戱,

(희우희),아∼  아∼ 아∼

*[운영자 ]噫吁戱 - 세 글자 모두 감탄사. 감탄사를 세 번이나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한 번 가지고는 제2구의 의미를 전달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겠지요.
危乎高哉!

(위호고재)!험하고도 높구나!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도지난난우상청천)!촉도의 여려움이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구나!

蠶叢及魚鳧,

(잠총급어부),잠총과 어양 같은 촉나라 왕들이

開國何茫然!

(개국하망연)!나라를 연 것이 어찌 그리 아득한가!

爾來四萬八千歲,

(이내사만팔천세),개국이래로 사만팔천년에

始與秦塞通人煙.

(시여진새통인연).비로소 잔나라 변방과 인가가 통하였다네

西當太白有鳥道,

(서당태백유조도),서쪽으로 태백산과 통하여 험한 좁은 조도가 있어

可以橫絶峨眉巓.

(가이횡절아미전).아미산 꼭대기를 가로 자른다

地崩山摧壯士死,

(지붕산최장사사),땅이 무너지고 산이 꺾기고 장사가 죽어서야

然后天梯石棧方鉤連.

(연후천제석잔방구련).구름다리와 돌길이 비로소 놓였다네

上有六龍回日之高標,

(상유륙룡회일지고표),산 위에는 육룡이 해를 둘러싸는 정상을 알리는 표시가 있고

下有沖波逆折之回川.

(하유충파역절지회천).밑에는 물결을 찌르고 거슬러 껶어지는 돌아가는 냇물이 있다 .

黃鶴之飛尙不得,

(황학지비상부득),황학이 날아도 이르지 못하고

猿猱欲度愁攀援.

(원노욕도수반원).원숭이가 건너려 해도 근심스러워 나뭇가지를 휘잡는다.

 

靑泥何盤盤,

(청니하반반),청니령 고개는 어찌 그렇게 돌아가나

百步九折縈岩巒.

(백보구절영암만).백 걸음에 아홉 번을 꺾어 바위 봉우리를 감쌌네.

捫參歷井仰脅息,

(문삼력정앙협식),참을 만지고 정을 지나 우러러 숨죽여
以手撫膺坐長嘆.

(이수무응좌장탄).손으로 가슴 만지며 앉아서 길게 탄식하나니

問君西游何時還?

(문군서유하시환)?그대에게 묻노니, 서방으로 떠나면 언제 돌아오나

畏途巉岩不可攀!

(외도참암부가반)!두려워라, 길이 험한 바위라 잡고 오르지 못하겠구나!

但見悲鳥號古木,

(단견비조호고목),다만 슬픈 새 고목에 앉아 슬피 울고

雄飛雌從繞林間.

(웅비자종요림간).수컷 날면 암컷 따라다니며 숲 속을 돌아다닌다.

又聞子規啼,

(우문자규제),또 자규새 울고

夜月愁空山.

(야월수공산).밤에 뜬 달은 빈산을 슬퍼한다.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도지난난우상청천)!촉도의 어려움은 푸른 하늘을 오르기보다 어렵구나!

使人聽此凋朱顔.

(사인청차조주안).사람이 이를 들으면 붉던 얼굴 창백해진다.

連峰去天不盈尺,

(련봉거천부영척),연이은 봉우리들 하늘에서 떨어진 거리 한 자도 못되고

枯松倒挂倚絶壁.

(고송도괘의절벽).마른 소나무 거꾸로 걸리어 절벽에 의지해 있네.

飛湍瀑流爭喧豗,

(비단폭류쟁훤회),나는 듯한 여울, 사납게 흐르는 물결 다투어 소란하고

冰崖轉石萬壑雷.

(빙애전석만학뇌).얼음 언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 온 골짜기에 우뢰 소리

其險也如此!

(기험야여차)!그 험함이 이와 같도다

嗟爾遠道之人,

(차이원도지인),아, 당신 길 떠나는 사람이여

胡爲乎來哉?

(호위호내재)? 어떻게 오시려오?

劍閣崢嶸而崔嵬.

(검각쟁영이최외).검각산은 가파르고도 높아라.
一夫當關,

(일부당관),한 남자가 관을 지키면
萬夫莫開.

(만부막개).만 명의 남자들도 열지 못하리.

所守或匪親,

(소수혹비친),지키는 곳이 익숙하지 못하면

化爲狼與豺.

(화위낭여시).변하여 이리나 승낭이 되리라.

朝避猛虎,

(조피맹호),아침에는 사나운 호랑이 피하고

夕避長蛇.

(석피장사).저녁에는 긴 뱀을 피하네.

磨牙吮血,

(마아연혈),이를 갈고 피를 빨아

殺人如麻.

(살인여마).사람 죽인 것이 삼대같이 많다네.

錦城雖雲樂,

(금성수운낙),금성이 비록 즐거우나

不如早還家.

(부여조환가).일찍 집에 올아옴만 못하도다.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도지난난우상청천)!촉도난이여 푸른 하늘로 올으는 것보다 어렵도다.

側身西望常咨嗟!

(측신서망상자차)!몸 돌려 서쪽 바라보며 늘 탄식 하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0%B1

 

이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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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李白, : Lǐ Bái 리바이, 701년 2월 8일 ~ 762년)은 당나라 시대의 시인이다.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두보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힌다. 이 두 사람을 합쳐서 "이두(李杜)"라고 칭하고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현재 약 1,100여 수의 가 남아 있다. 그의 시문학과 관련된 주제는 도교,  등이 유명하다.

이백 당나라 면주(綿州)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당나라 쇄엽(碎葉)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데 범전정(范傳正)이 지은 당좌습유한림학사이공신묘비(唐左拾遺翰林學士李公新墓碑)에 의하면 그는 당나라 황실의 먼 친척으로, 서량(西涼)의 군주 이고(李暠)의 8대손이라 한다. 그에 의하면 그는 당 태종이나 이헌성, 이원길과 같은 항렬의 족제가 된다. 그러나 다른 설에 의하면 이백의 할아버지가 이헌성, 이원길 중의 한 명으로, 현무문의 변을 피해 달아났던 자손이 그의 아버는 것이다.

이백의 아버지가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나 26세까지 고향인 촉나라에서 살면서 동암자라는 선인과 사천(四川)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을 여행하였으며, 아버지의 유산을 소비하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744년 43세에 현종(玄宗)의 칙령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어 장안에 머물렀으나 관리의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44세에 현종의 측근인 고역사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뤄양시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당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 지금의 구이저우 에 유배되었다. 다행히 삼협(三峽) 부근까지 왔을 때에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1세에 안휘성(安徽省) 당조(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종숙 이양빙(李陽冰)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장강(長江)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백은 고시와 절구를 특기로 했다. 그의 절구는 '신품'이라고 평해졌고, 그의 시재는 천래의 재, 즉 '천재'라고 했다. 그의 시는 스케일이 크고, 또한 박진감이 있으며, 때때로 환상적이다. 또한 그의 시는 매우 자유로우며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한 번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동시대에 살았던 11세 연하의 시인 두보가 1자 1구의 조탁에 뼈를 깎는 고심을 기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에 취해 있을 때 현종의 부름을 받고 그대로 궁전으로 들어가 계속해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https://kydong77.tistory.com/8157

 

李白, 行路難(살아가기 어려워라)

行路難 (三首中 其一)살아가기 어려워라 -李白 金樽淸酒斗十千 금항아리 맑은 술 한 말에 만냥 玉盤珍羞値萬錢 옥반의 좋은 안주 그 값이 만냥이라. 停杯投筯不能食 잔 멈추고 젓가락 던지며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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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路難   三首

李白

其一

金樽清酒斗十千,玉盤珍羞直萬錢.

(금준청주두십천, 옥반진수치만전)

금항아리 맑은 술 한 말 값이 일만 냥

옥반에 좋은 안주 일만 냥의 값어치라.

 

停杯投箸不能食,拔劍四顧心茫然.

(정배투저불능식, 발검사고심망연)

잔 멈추고 젓가락 던져 먹지 못하고

칼 빼어 동서남북 둘러봐도 마음은 아득하다.

 

欲渡黄河冰塞川,將登太行雪滿山.

(욕도황하빙색천, 장등태항설만산)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내를 막고

태행산에 오르려니 눈이 하늘을 가린다.

 

閑來垂釣碧溪上,忽復乘舟夢日邊.

(한래수조벽계상, 홀부승주몽일변) 

한가로이 시냇물에 낚싯대 드리우다

홀연히 배를 타고 서울 가기 꿈꾼다.

 

行路難,行路難,多歧路,今安在?

(행로난, 행로난, 다기로, 금안재) 

살아가기 어려워라, 살아가기 어려워라.

갈림길도 많았거니 지금 어디 있는거냐?

 

長風破浪會有時,直掛雲帆濟滄海.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트리는 그 큰 뜻 때가 오리니

높은 돛 바로 달고 창해를 건너리라.

 

<춘향전>

변학도 생일연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의 시구의 모델은

이백의  <行路難> 제1수이다. 제1~2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락시민루락,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079 蜀道難(촉도난)/ 구성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

 

제1단:신화와 태백산의 광경

아, 위험하고 높음이여,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름보다 더 어렵구나.

 

촉나라 임금의 선조들이여

개국은 아득하여

그 뒤로 사만 팔천년

처음으로 진나라 변방과 통하였다.

 

서쪽으로 태백산

새 다니는 길 겨우 있어

아미산 꼭대기를

가로 자른다.

 

땅이 무너지고 산이 꺾이고

장사가 죽고서야

구름다리 돌다리

비로소 놓였다.

 

위에는 정상에서

여섯 룡이 해를 끌고

아래는 회천에서

부딪치는 파도가 물을 되돌린다.

 

황학은 날아도

정산엔 못 가고

원숭이가 넘으려 해도

등반을 걱정한다.

 

제2단:靑泥嶺으로부터촉으로 들어가는景象

청니령 영마루

얼마나 구부러져

백 걸음에 아홉 번 꺾여

바위산을 감쌌다.

 

손 펴면 삼태성을 잡을 듯, 井星을 거칠 듯.

우르러 숨죽이고

손으로 가슴 만져

앉아서 길이 탄식한다.

 

묻노니, 그대여, 서방 여행

어느 때에 돌아오나?

두려운 건 바위산을

오르지 못하리라.

 

보이나니 산새들

고목에서 슬피 울며

수놈 날고 암논 쫓고

바위산을 돌아간다.

 

들리나니

자규새 울음이여

달밤에 슬피 울어

쓸쓸한 산 위에서 근심이 인다.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름보다 더 어렵구나.

이 말 들은 사람

붉던 얼굴 창백해진다.

 

3단:連山의 絶壑과 물이 우레처럼 솟아나는 險阻함

잇달은 봉우리, 하늘과의 거리는

한 자도 못되고

마른 소나무 거꾸로 걸리어

절벽에 기대었다.

 

나는 여울물 사나운 물결

다투어 시끄럽게

물결치는 낭떠러지 구르는 돌들

골짝마다 우레 친다.

 

그 험함이여,

이와 같은데

아, 먼 길 간 사람이여

어떻게 오시려나?

 

4단:險閣의 崢嶸함과 險要, 자기의 돌아옴을 그리는 심정.

검각산 가파르고

높고도 높아

한 사람이 관문 지키면

만 사람도 못 여나니.

 

관문지기

친한 사람 아니면

이리나 승냥이에게

먹히우리라.

 

아침에는 맹호를 피하고

저녁에는 긴 뱀을 피할지니

이를 갈고 피를 빨아

죽인 사람 삼대 같이 많았다.

 

금성

비록 즐겁다지만

일찍

집에 돌아옴만 못하리라.

 

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이여,

푸른 하늘 오름보다 어렵구나.

몸돌려 서천 향해

길게 탄식한다.

 

 

번역문의 원활한 의미 소통을 위해 한문국역을 함께 소개한다.

 

079 촉도난(蜀道難)-이백(李白;701-762)
촉도의 어려움

噫吁戱,

(희우희),아∼  

*[운영자 ]噫吁戱 - 세 글자 모두 감탄사. 감탄사를 세 번이나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한 번 가지고는 제2구의 의미를 전달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겠지요.
危乎高哉!

(위호고재)!험하고도 높구나!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도지난난우상청천)!촉도의 여려움이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구나!
蠶叢及魚鳧,

(잠총급어부),잠총과 어양 같은 촉나라 왕들이
開國何茫然!

(개국하망연)!나라를 연 것이 어찌 그리 아득한가!
爾來四萬八千歲,

(이내사만팔천세),개국이래로 사만팔천년에
始與秦塞通人煙.

(시여진새통인연).비로소 잔나라 변방과 인가가 통하였다네
西當太白有鳥道,

(서당태백유조도),서쪽으로 태백산과 통하여 험한 좁은 조도가 있어
可以橫絶峨眉巓.

(가이횡절아미전).아미산 꼭대기를 가로 자른다
地崩山摧壯士死,

(지붕산최장사사),땅이 무너지고 산이 꺾기고 장사가 죽어서야
然后天梯石棧方鉤連.

(연후천제석잔방구련).구름다리와 돌길이 비로소 놓였다네
上有六龍回日之高標,

(상유륙룡회일지고표),산 위에는 육룡이 해를 둘러싸는 정상을 알리는 표시가 있고
下有沖波逆折之回川.

(하유충파역절지회천).밑에는 물결을 찌르고 거슬러 껶어지는 돌아가는 냇물이 있다 .
黃鶴之飛尙不得,

(황학지비상부득),황학이 날아도 이르지 못하고
猿猱欲度愁攀援.

(원노욕도수반원).원숭이가 건너려 해도 근심스러워 나뭇가지를 휘잡는다.
靑泥何盤盤,

(청니하반반),청니령 고개는 어찌 그렇게 돌아가나
百步九折縈岩巒.

(백보구절영암만).백 걸음에 아홉 번을 꺾어 바위 봉우리를 감쌌네.
捫參歷井仰脅息,

(문삼력정앙협식),참을 만지고 정을 지나 우러러 숨죽여
以手撫膺坐長嘆.

(이수무응좌장탄).손으로 가슴 만지며 앉아서 길게 탄식하나니
問君西游何時還?

(문군서유하시환)?그대에게 묻노니, 서방으로 떠나면 언제 돌아오나
畏途巉岩不可攀!

(외도참암부가반)!두려워라, 길이 험한 바위라 잡고 오르지 못하겠구나!

但見悲鳥號古木,

(단견비조호고목),다만 슬픈 새 고목에 앉아 슬피 울고
雄飛雌從繞林間.

(웅비자종요림간).수컷 날면 암컷 따라다니며 숲 속을 돌아다닌다.
又聞子規啼,

(우문자규제),또 자규새 울고
夜月愁空山.

(야월수공산).밤에 뜬 달은 빈산을 슬퍼한다.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도지난난우상청천)!촉도의 어려움은 푸른 하늘을 오르기보다 어렵구나!
使人聽此凋朱顔.

(사인청차조주안).사람이 이를 들으면 붉던 얼굴 창백해진다.
連峰去天不盈尺,

(련봉거천부영척),연이은 봉우리들 하늘에서 떨어진 거리 한 자도 못되고
枯松倒挂倚絶壁.

(고송도괘의절벽).마른 소나무 거꾸로 걸리어 절벽에 의지해 있네.
飛湍瀑流爭喧豗,

(비단폭류쟁훤회),나는 듯한 여울, 사납게 흐르는 물결 다투어 소란하고
冰崖轉石萬壑雷.

(빙애전석만학뇌).얼음 언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 온 골짜기에 우뢰 소리
其險也如此!

(기험야여차)!그 험함이 이와 같도다
嗟爾遠道之人,

(차이원도지인),아, 당신 길 떠나는 사람이여
胡爲乎來哉?

(호위호내재)? 어떻게 오시려오?
劍閣崢嶸而崔嵬.

(검각쟁영이최외).검각산은 가파르고도 높아라.
一夫當關,

(일부당관),한 남자가 관을 지키면
萬夫莫開.

(만부막개).만 명의 남자들도 열지 못하리.
所守或匪親,

(소수혹비친),지키는 곳이 익숙하지 못하면
化爲狼與豺.

(화위낭여시).변하여 이리나 승낭이 되리라.
朝避猛虎,

(조피맹호),아침에는 사나운 호랑이 피하고
夕避長蛇.

(석피장사).저녁에는 긴 뱀을 피하네.
磨牙吮血,

(마아연혈),이를 갈고 피를 빨아
殺人如麻.

(살인여마).사람 죽인 것이 삼대같이 많다네.
錦城雖雲樂,

(금성수운낙),금성이 비록 즐거우나
不如早還家.

(부여조환가).일찍 집에 올아옴만 못하도다.
蜀道之難難于上靑天!

(촉도지난난우상청천)!촉도난이여 푸른 하늘로 올으는 것보다 어렵도다.
側身西望常咨嗟!

(측신서망상자차)!몸 돌려 서쪽 바라보며 늘 탄식 하네.

 

 

 

https://kydong77.tistory.com/8157

 

李白, 行路難(살아가기 어려워라)

行路難 (三首中 其一)살아가기 어려워라 -李白 金樽淸酒斗十千 금항아리 맑은 술 한 말에 만냥 玉盤珍羞値萬錢 옥반의 좋은 안주 그 값이 만냥이라. 停杯投筯不能食 잔 멈추고 젓가락 던지며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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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路難   三首

李白

其一

金樽清酒斗十千,玉盤珍羞直萬錢.

(금준청주두십천, 옥반진수치만전)

금항아리 맑은 술 한 말 값이 일만 냥

옥반에 좋은 안주 일만 냥의 값어치라.

 

停杯投箸不能食,拔劍四顧心茫然.

(정배투저불능식, 발검사고심망연)

잔 멈추고 젓가락 던져 먹지 못하고

칼 빼어 동서남북 둘러봐도 마음은 아득하다.

 

欲渡黄河冰塞川,將登太行雪滿山.

(욕도황하빙색천, 장등태항설만산)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내를 막고

태행산에 오르려니 눈이 하늘을 가린다.

 

閑來垂釣碧溪上,忽復乘舟夢日邊.

(한래수조벽계상, 홀부승주몽일변) 

한가로이 시냇물에 낚싯대 드리우다

홀연히 배를 타고 서울 가기 꿈꾼다.

 

行路難,行路難,多歧路,今安在?

(행로난, 행로난, 다기로, 금안재) 

살아가기 어려워라, 살아가기 어려워라.

갈림길도 많았거니 지금 어디 있는거냐?

 

長風破浪會有時,直掛雲帆濟滄海.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트리는 그 큰 뜻 때가 오리니

높은 돛 바로 달고 창해를 건너리라.

 

<춘향전>

변학도 생일연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의 시구의 모델은

이백의  <行路難> 제1수이다. 제1~2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락시민루락,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시에서는 낙천주의자로 보이는 이백의 아버지는 서역길을 오가는 상인어서 天山 아래 살아기에 잔도가 아니면 오를 수 없는 天山 아래서 살았고  청년시절엔 무술을 하는 道家의 무리들과 어울려 무술을 익히기도 했다.

蜀道難(촉도난)은 인샐길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0%B1

 

이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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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의 아버지가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나 26세까지 고향인 촉나라에서 살면서 동암자라는 선인과 사천(四川)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을 여행하였으며, 아버지의 유산을 소비하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744년 43세에 현종(玄宗)의 칙령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어 장안에 머물렀으나 관리의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44세에 현종의 측근인 고역사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뤄양시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당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 지금의 구이저우에 유배되었다.

다행히 삼협(三峽) 부근까지 왔을 때에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1세에 안휘성(安徽省)  당도(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종숙 이양빙(李陽冰)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 잔간(長江)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백은 고시절구를 특기로 했다. 그의 절구는 '신품'이라고 평해졌고, 그의 시재는 천래의 재, 즉 '천재'라고 했다.

그의 시는 스케일이 크고, 또한 박진감이 있으며, 때때로 환상적이다.

또한 그의 시는 매우 자유로우며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한 번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동시대에 살았던 11세 연하의 시인 두보가 1자 1구의 조탁에 뼈를 깎는 고심을 기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에 취해 있을 때 현종의 부름을 받고 그대로 궁전으로 들어가 계속해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당시300수

안병렬님의 신역의 타자치기를 마치고 우선 기억에 떠오르는 두 수를 정리해 본다.

* 한시 제목의 끝에 덧붙이는 '行'은 詩임을 의미함.

078 桃源行

도원의 노래

 

고깃배 물 따라 흘러가면

봄날의 산 경치 사랑하나니

두 언덕의 복사꽃

나루까지 뒤덮었다.

 

붉은 나무 구경하다

멀리 온 줄 몰랐더니

어느덧 청계 끝

사람은 뵈지 않네.

 

산 어구 몸 굽혀 걸어가니

구부러지고 좁고 으슥하고 깊더니

산 열려 드넓은 곳에

평지가 둘러 있다.

 

멀리 보니 한 곳에

구름 속에 나무들 모여 있어

다가가니 일천 집이

꽃과 대나무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

 

찾아온 나무꾼은

한나라 성명 전하는데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진나라 옷 그대로다.

 

그 사람들 다같이

무릉원에 살면서

세상 밖 이곳에서

전원을 일으켰네.

 

달은 밝고 소나무 아래는

방들이 조용하고

해는 뜨고 구름 속에

닭 울고 개 짖는다.

 

세상 손님 왔단 소문 듣고

다투어 모여들어

이끌고 집에 데려가

고향이 어디냐고?

 

새벽엔 거리거리

꽃을 쓸어 열고

저녁엔 고기꾼 나무꾼들

물을 타고 돌아온다.

 

처음엔 난리 피해

사람 세상 떠났는데

이제는 신선되어

돌아가지 않는단다.

 

누가 알리? 골짝 속에

사람 일이 있는 줄을.

저 멀리 세상을 바라보니

부질없이 구름에 산뿐이라.

 

선경을 견문하기

어려운 줄 알건마는

세상 마음 끊지 못해

고향을 그리나니.

 

이 동네 나가서도

떨어진 이곳 산수 말하지 않으리니

이 다음 집 떠나 오래오래 여기 와서

마음껏 노닐리라.

 

지나온 그 길을

오래 잃지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어찌 알리, 산골짜기

이 제 와서 변할 줄을?

 

그때는 다만

깊은 산에 들어옴만 기억하거니

푸른 시내 몇 굽이나 휘돌아야

구름 수풀 그 선경에 이르리이까?

 

봄이 와서 온통

복사꽃 강물이거니

선경을 알지 못해

어느 곳에서 찾으리오?

 

 

번역문의 원활한 의미 소통을 위해 원문과 구역을 함께 소개한다.


078 도원행(桃源行)-왕유(王維)
도원의 노래

漁舟逐水愛山春
(어주축수애산춘) : 고깃배로 물 딸라 산속 봄을 즐겨보니

 

兩岸桃花夾去津

(양안도화협거진) : 양쪽 언덕 복숭아꽃 지나는 나루터를 끼고 있다.

 

坐看紅樹不知遠

(좌간홍수부지원) : 꽃과 나무 앉아 구경하느라 먼 줄도 모르고

 

行盡靑溪不見人

(항진청계부견인) : 푸른 개울까지 걸어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山口潛行始隈隩

(산구잠항시외오) : 산굴로 몰래 걸어가니 처음엔 후미지고 으슥한데

 

山開曠望旋平陸

(산개광망선평륙) : 산이 넓은 전망이 열려 곧 평원으로 되었다.

 

遙看一處攢雲樹

(요간일처찬운수) : 멀리 한 곳을 살펴보니 구름과 산이 모여 있어

 

近入千家散花竹

(근입천가산화죽) : 가까이 들어가니 집집이 꽃과 대나무가 흩어져있다.

 

樵客初傳漢姓名

(초객초전한성명) : 나무꾼이 처음에는 한나라 성명을 전하고

 

居人未改秦衣服

(거인미개진의복) : 그곳 사는 사람들은 아직 진나라 시대 옷을 바꾸지 않았다.

 

居人共住武陵源

(거인공주무능원) : 주민들은 무릉의 도화원에 함께 살며

 

還從物外起田園

(환종물외기전원) : 세상에서 돌아와 전원을 일으켰도다.

 

月明松下房櫳靜

(월명송하방롱정) : 달은 소나무 아래에 밝아 창문가로 조용하고

 

日出雲中雞犬喧

(일출운중계견훤) : 해는 구름 속에서 뜨고 닭과 개소리 시끄럽다.

 

驚聞俗客爭來集

(경문속객쟁내집) : 세상 손님 찾아왔다는 소문 놀라 듣고서

 

競引還家問都邑

(경인환가문도읍) : 다투어 집으로 데려가 고향 마을 소식을 묻는다.

 

平明閭巷掃花開

(평명려항소화개) : 날이 밝자 마을 골목길을 꽃을 쓸어 열고

 

薄暮漁樵乘水入

(박모어초승수입) : 해질 녘에 어부와 나무꾼은 배를 타고 들어온다.

 

初因避地去人間

(초인피지거인간) : 처음에는 난리를 피하여 인간세상 떠났으나

 

更聞成仙遂不還

(경문성선수부환) : 다시 선경을 이루고는 마침내 돌아가지 않았다.

 

峽裏誰知有人事

(협리수지유인사) : 협곡 속에서 인간의 삶이 있을 줄을 누가 알까

 

世中遙望空雲山

(세중요망공운산) : 세상에서 아득히 보면 쓸쓸한 구름 덮인 산이로다.

 

不疑靈境難聞見

(부의령경난문견) : 신령한 경지를 찾아보기 어려움을 생각도 못하고

 

塵心未盡思鄕縣

(진심미진사향현) : 세상 마음 다하지 못하고 고향 고을 그리워한다.

 

出洞無論隔山水

(출동무논격산수) : 동굴을 나와서는 산과 물 건너는 것 가리지 않고

 

辭家終擬長游衍

(사가종의장유연) : 집 떠나 끝내는 길이 도화원에 놀고 싶어 하였다.

 

自謂經過舊不迷

(자위경과구부미) : 스스로 지나가 본 옛 길은 잃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安知峯壑今來變

(안지봉학금내변) : 봉우리와 골짜기가 지금은 변해진 것을 어찌 알았으랴.

 

當時只記入山深

(당시지기입산심) : 당시에 단지 기억나는 노니,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靑溪幾度到雲林

(청계기도도운림) : 푸른 계곡물을 몇 번이나 건너 구름 긴 숲에 이렀던가.

 

春來徧是桃花水

(춘내편시도화수) : 봄이 되니 온통 복숭아꽃 떠 흐르는 물이라

 

不辨仙源何處尋

(부변선원하처심) : 선경의 도화원을 어느 곳에서 찾을지 분간하지 못하겠다.

 

 

 

 

020숙업사산방대정대부지(宿業師山房待丁大不至)

ㅡ 맹호연(孟浩然;689-740)

[업사산방에 묵으면서 정대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음]

夕陽度西嶺

(석양도서령), ; 저녁 해 고개를 넘으니

群壑倏已暝

(군학숙이명). ; 뭇 골짜기 갑자기 어두워졌네

松月生夜涼

(송월생야량), ; 소나무 사이의 달에 시원한 기운 감돌고

風泉滿淸聽

(풍천만청청). ; 바람 부는 샘물에는 맑은 소리 가득하다

樵人歸欲盡

(초인귀욕진), ; 나무꾼들 다 집으로 돌아가고

煙鳥棲初定

(연조서초정). ; 저녁 안개 속의 새들도 이제 둥지에 드네

之子期宿來

(지자기숙내), ; 그대 찾아 같이 자려 기약하고

孤琴候蘿徑

(고금후나경). ; 담쟁이 좁은 길목에서 거문고 타며 기다린다오

 

020

-업사의 산방에서 자며 정대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석양이

서산을 지나니

뭇 골짜기

갑자기 어두워지는구나.

 

소나무에 걸린 달빛

시원함 더해주고

바람 속 샘물은

맑은 소리 들려주네.

 

나무꾼들도

다 돌아가고자 하고

저녁 안개 가운데 새들도

곧 깃들어 쉬려 하네.

 

그대와 약속하여

이 밤 함께 자고자 하였더니

내 홀로 거문고 들고

담쟁이 덮인 길목에서 기다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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