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尊德性’(자신에게 내재하는 덕성을 높임)과 ‘道問學’(묻고 배움에 말미암음)

 

 

출처

대상

邦有道

邦無道

중용27

 

其言足以興

其黙足以容

진심상42

 

以道殉身

以身殉道

계씨2

 

禮樂征伐自天子出

禮樂征伐自諸侯出

공야장1

남용

不廢

免於刑戮

공야장20

甯武子

태백13

전체

貧且賤焉, 恥也.

富且貴焉, 恥也.

헌문1

전체

穀, 恥也.

穀, 恥也.

헌문4

전체

危言危行

危行言孫

위령공6

史魚

如矢

如矢

蘧伯玉

可卷而懷之

 

 

www.youtube.com/watch?v=olSpBnRXA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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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1. 大哉 聖人之道

27장-1. 大哉 聖人之道 大哉! 聖人之道. 위대하도다. 성인의 도여! 包下文兩節而言. 아래의 두 문장을 포괄하여 말하였다. 주자 주를 보면 26장은 天道라고 했고, 27장은 人道라고 했죠? ‘大哉 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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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1. 大哉 聖人之道

大哉! 聖人之道.

위대하도다. 성인의 도여!

包下文兩節而言.

아래의 두 문장을 포괄하여 말하였다. 


주자 주를 보면 26 天道라고 했고, 27 人道라고 했죠? ‘大哉 聖人之道참 멋있죠? 여기서 주자는 包下文兩節而言(아래의 두 절을 포괄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주를 달았는데, ‘아래의 두절이란 뭐죠? ‘洋洋乎! 發育萬物 峻極于天’ ‘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이 바로 그 두절입니다.

  

洋洋은 말로 할 수 없는 광활함에 대한 예찬

洋洋乎! 發育萬物, 峻極于天.

(성인의 도는)넓고 넓도다! 만물을 生하고 기르며 우뚝 솟아 하늘에 다하였다.

峻, 高大也. 此言道之極於至大而無外也.

峻은 높고 크다는 것이다. 여기선 도가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데로 극진함을 말하였다.


이 절은 앞에서 주자가 말한 대로
, ‘大哉 聖人之道!’에서 말한 聖人之道의 거대함을 구체적으로 상술해 들어간 부분인데그 거대함의 느낌을 전체적으로 洋洋乎!’라고 했습니다洋洋乎이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우리가 의기양양하다라고 할 때도 이 양양인데이 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바다 자죠? 

옛날 사람들에게 있어서 ‘크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대강 다음의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하나는 하늘, 눈에 아무 것도 걸리지 않는 완벽하게 트인 저 광막한 하늘을 볼 적에 느끼는 거대함이 있겠고, 반면에 이 땅이라는 것은 언덕이나 산과 같은 주위 지형에 종속되어 하늘에 비해 시선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죠. 그런데 이러한 땅의 세계에서 그러한 제한이 거의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이 바로 바다예요. 옛날에는 관동별곡 같은 작품을 봐도 상상할 수 있지만, 이 내륙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바다를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내가 어렸을 적에만 해도 지금처럼 여기저기 다닌다는 것은 도대체가 있을 수 없는 얘기였으니까요. 인간이 지금처럼 이렇게 쏴 다닌 역사가 없었어요. 옛날에는, 예를 들어 경상도에 산 사람들 중에 문경새재를 넘어 본 사람이 아마 전체 인구의 0.00000.1%도 안 됐을 겁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기 지역에서만 그 로칼리티를 지키면서 사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런 시절에 이 바다를 본다는 경험은 고대인들에게 엄청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가서 보면, 거대한 평야를 볼 적에도 그렇겠지만, 바다처럼 완벽하게 시선이 탁 트인, 촤~악~터진 경험을 준 것은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나도 바다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 바다에 가서 받은 느낌을 전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洋洋乎‘라고. 그러니까 이 말은 사실은 번역이 안 되요. 바다의 그 광활함과 넘실넘실 탁! 트인 그 장엄한 모습을 洋洋乎라고 표현한 겁니다. ‘의기가 양양하다’, 이런 표현도 나의 氣가 바다처럼 탁 트인 모습을 묘사한, 같은 표현들입니다.

‘發育萬物 峻極于天’에서 發育이란 생하고 기른다는 말이고 峻이라는 말은 높다라는 뜻입니다. 峻 자를 보면 ‘山’이 들어가 있죠? 땅과 관련된 표현에서 가장 높은 것을 상징하는 것은 역시 산이거든요. 바다는 넓음으로서 浩浩蕩蕩하다든가 洋洋하다라는 표현을 쓰지만, 만물을 발육시키는 땅에서는, 그 만물을 길러주는 성인의 道의 거대함을 그 땅의 가장 전형적인 상징인 산의 높음에 빗대어서 “우뚝 솟아 하늘에 다 하였다”라고 한 겁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무엇이 느껴집니까? “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표현이 연상되죠? 그럴 때, “言其上下察也”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洋洋하게 만물을 생하고 길러서 그것이 하늘에까지, 그 높음이 하늘에 다하였다”는 말입니다. 카~ 멋있지요?

 

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

많고도 많도다! 기준이 되는 의례가 삼백가지요, 세부적인 의례가 삼천가지도다!

優優, 充足有餘之意. 禮儀, 經禮也. 威儀, 曲禮也.

優優는 충족되면서도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禮儀는 큰 줄기가 되는 예법이다. 威儀는 세세한 일상의 예이다.

 

此言道之入於至小而無間也.

여기서는 도가 지극히 작아 사이가 없는 데로 들어감을 말하였다.

주자 주에 “優優 充足有餘之意(優優라는 말은 충분하여 넉넉하다는 뜻이다)”라고 했죠? 우리가 우등생이라 할 적에도 이 優 자죠. 넉넉하고 크다는 뜻인데, 역시 이것도 앞의 ‘洋洋乎’처럼 잘 번역이 되지 않는 감탄사의 일종입니다.

그런데, 주자는 여기서 ‘洋洋乎 發育萬物 峻極于天’이라는 절하고 ‘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이라는 절을 둘로 나눴죠. 그래가지고 혜시의 말을 빌어, 전자는 ‘至大而無外(지극히 커서 바깥이 없는 세계)’, 후자는 ‘至小而無內(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세계)’로 대비시켰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성인지도의 매크로한 세계, 천지가 하나로 통하는 거대한 세계, 인간의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봤고, 후자는 같은 큼이지만 성인지도의 마이크로한 세계, 일상생활의 개별적인 사소한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주자는 여기서 洋洋乎 發育萬物 峻極于天이라는 절하고 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이라는 절을 둘로 나눴죠그래가지고 혜시의 말을 빌어전자는 至大而無外(지극히 커서 바깥이 없는 세계)’, 후자는 至小而無內(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세계)’로 대비시켰습니다다시 말하면 전자는 성인지도의 매크로한 세계천지가 하나로 통하는 거대한 세계인간의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봤고후자는 같은 큼이지만 성인지도의 마이크로한 세계일상생활의 개별적인 사소한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봤습니다.주자 주에 “優優 充足有餘之意(優優라는 말은 충분하여 넉넉하다는 뜻이다)”라고 했죠? 우리가 우등생이라 할 적에도 이 優 자죠. 넉넉하고 크다는 뜻인데, 역시 이것도 앞의 ‘洋洋乎’처럼 잘 번역이 되지 않는 감탄사의 일종입니다.  

 

핵심적인 예와 세부적인 예 

禮儀와 威儀의 義란 무엇이죠?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지켜야 할 질서이며 의례, 즉 제식ritual이예요. 그런데 주자는 禮義를 ‘經禮’라고 했고 威義를 ‘曲禮’라고 했습니다. 經이란 기준이 되는 핵심적인 큰 것을 말하고, 曲이라는 것은 經에 상대되는 개별적이고 세부적인 것을 말해요. 옷감을 짠다면은 기준이 되는 씨줄이 經이고, 그것에 따라 세부적으로 짜들어 가는 것이 曲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서 우리가 도올 서원에서 강의를 시작하고 끝낼 때 서로 맞절을 하는 것이 경례라면 그 때 죽비를 한번 치면 맞절을 하고, 또 한 번 치면 일어나고, 마지막 한 번 치면 반절을 하는 것은 曲禮에 해당됩니다. 經禮가 있으면 曲禮가 있고, 禮義가 있으면 威義가 있게 마련이죠. 여기서 威義라는 말의 威자를 위엄을 갖는다는 뜻으로 해석하기 쉬운데, 본문의 禮儀三百과 짝하는 것으로 봐야 하므로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바는 매사에 經禮와 曲禮의 감각이 다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Detail로 들어가면 한이 없어요. 삼천 가지가 아니라 삼만 가지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장의 구조를 보면 ‘洋洋乎 發育萬物 峻極于天’이라고 말하고, 이에 짝하며 ‘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이라고 말하여, 매크로한 세계와 마이크로한 세계를 대비시키고 있으며, 이 후에도 쭉 계속하여 이 장의 주요 테마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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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2. 待其人而後行

27장-2. 待其人而後行 待其人而後行. 그 사람을 기다린 후에야 행하여지는 것이다. 總結上兩節. 윗 문장을 총결지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매크로한 세계와 마이크로한 세계, 거대한 천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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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3. 尊德性而道問學

27장-3. 尊德性而道問學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 敦厚以崇禮. 그러므로 군자는 하늘로부터 받은 덕성을 높이면서도 동시에 묻고 배움에 말미암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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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4. 尊德性과 道問學의 조화

27장-4. 尊德性과 道問學의 조화 致知를 등한시하다 나는 中庸을 궁극적으로 역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 또는 Homeostasis로 푼다고 했습니다. 사실 中庸이란 말에 대하여 중국사상사가 저질러 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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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덕성(尊德性)과 道問學 - 기독교와 불교/구원(심판): 해탈(오온)/ 神觀의 有無

* ‘尊德性’(자신에게 내재하는 덕성을 높임)과 ‘道問學’(묻고 배움에 말미암음)

*유교는 현실세계의 "How to live?"의 문제를 중심으로 가치관을 확립함.

www.youtube.com/watch?v=JNW124nNZis

 

 

[뉴스]

www.yonhapnewstv.co.kr/news/MYH2021010200910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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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의 사면 승부수…당내 강력 반발 직면 [앵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던진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이 새해 벽두 정국을 강타했습니다. 이 대표는 진영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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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watch?v=s9Fomq26GwM

 

 

20장-4.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20장-4.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曰君臣也父子也夫婦也昆弟也朋友之交1, 五者天下之達道也. 知ㆍ仁ㆍ勇三者, 天下之達德也. 所以行之者一也.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길이 다섯이 있고, 그 길을 실천하게 하는 인간의 조건은 셋이 있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과 동생, 친구 사이의 사귐이 그 다섯이고, 知·仁·勇 이 셋은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지키지 않을 수 없는 德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하게 하는 것은 하나(곧 誠)다.

達道者, 天下古今所共由之路, 卽『書』所謂五典, 孟子所謂“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是也.

達道는 천하고금의 공유하는 길로 곧 『서경』에서 말한 ‘五典’이고, 맹자가 「등문공」상4에서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라 말한 게 이것이다.

 

知, 所以知此也. 仁, 所以禮此也. 勇, 所以强此也. 謂之達德者, 天下古今所同得之理也.

知는 達道를 알게 하고, 仁은 이것을 체현하게 하며, 勇은 이것을 힘쓰게 한다. 達德이라 말하는 것은 천하 고금에 공통으로 획득해야 하는 이치다.

 

一, 則誠而已矣. 達道雖人所共由, 然無是三德, 則無以行之.

一이란 것은 誠일 뿐이다. 達道가 비록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 것이지만 三德이 없으면 행하여지지 않는다.

 

達德雖人所同得, 然一有不誠, 則人欲間之, 而德非其德矣.

達德이 비록 사람이 함께 획득해야 하는 것이지만 하나라도 誠이 없으면 人欲이 끼어들어 덕이 덕이 아닌 게 된다.

 

程子曰: “所謂誠者, 止是誠實此三者. 三者之外, 更別無誠.”

정자가 “이른바 誠이란 오직 이 세 가지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세 가지 외엔 다시 별도의 誠은 없다.”라고 말했다. 


는 이미 주어진 것이고 은 이루어나가는 것이다1장에서 말한 이란 말이 다시 나오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 達과 道, 達과 德이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노자 『道德經』의 道德과 같은 것이죠. 達道, 達德을 말하는 中庸에 『道德經』이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내가 『道德經』을 한글로 푼 책의 제목으로 道德을 일컬어서 『길과 얻음』이라고 했듯이, 道의 세계는 길이요, 어떤 의미에서 사실fact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德이라는 것은 ‘得也’, ‘畜之accumulation’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길道로부터 얻어서 쌓아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꽁푸工夫라고 하는 것이 바로 몸의 德의 문제인데, 온갖 형태의 꽁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道라고 하는 것은, ‘君臣 父子 夫婦 兄弟 朋友’라고 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주어져 있기 때문에 임의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처럼, 바로 주어져 있는 사실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 뜻으로 부모를 골라서 택한 것도 아니요, 이미 그렇게 태어난 마당에 내가 싫다고 나의 부모를 부정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인간관계에 있어서 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타고나는 부모의 조건이 일단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 자식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집에 3만권의 장서가 이미 구비되어 있는데, 이것을 보고서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재수일 뿐입니다. 道인 것이죠. “나에게는 왜 3만권의 장서가 없느냐”고 아무리 탓해봐야 소용없는 일입니다. 인간은 어차피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르게 태어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주어져 있는 그 道를 가지고서 내 몸에 쌓아가면서 실천하며 이루어가는 것은 德의 세계입니다. 그것이 도덕적인 덕성(moral virtue)인 것이죠.

 

德의 세 가지, 知. 仁. 勇 

이 도덕적 덕성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知·仁·勇이라는 겁니다. 知·仁·勇의 문제에서 주자는 知·仁·勇 각각을 다른 어떤 것에다가 대입시키고 있는데, 中庸의 저자는 대입관계에서 이 말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 앎, 知 

知라고 하는 것은 지식knowledgy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식과 지혜에 차별성을 두지 않아도 좋겠으나, 굳이 분별을 한다면, 지혜와 지식이 서로 대적적인 관계는 아니면서도 반비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식이 증가하면 지혜가 줄어들고, 지혜가 늘어나면 지식이 불필요해지게 되는 것이죠. 점점 지식에 대한 갈망이 적어진다는 겁니다. 지식과 지혜의 가장 큰 차이는, 지식은 부분적인 앎이지만 지혜는 전체적인 앎이라는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말은 항상 전체를 파악하는 사람을 이를 때 쓰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온전한 앎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앎이 폐하리라”, “내가 어리숙하고 미숙할 때는 거울을 보는 듯이 희미했으나, 장성하여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것과 같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사랑은 성내지 아니 하며,.”은 사실 이 ‘사랑장‘에서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라요. 여기서 말하는 거울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유리거울이 아니라, 청동거울銅鏡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 뜻을 새겨야 합니다. 옛날에 아무리 청동거울을 빤질빤질하게 잘 만들었어도 거기에 비친 모습은 부옇고 희미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내가 어렸을 적에는 (청동)거울로 보는 것 같이 모든 것이 부옇게 흐릿했으나, 장성하여 지혜가 들고 나서는 얼굴과 얼굴을 막바로 보는 것처럼 명백해졌다”는 말입니다. 고린도는 희랍의 도시 이름으로서(코린트식.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할 때의 그 코린트를 말한다), 그곳은 유명한 거울생산지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코린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 다가 그곳 사람들이 잘 알아들 수 있도록 거울에 비유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죠.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를 보게 하는 힘이요, 부분적인 앎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왜 온유하고 참느냐, 전체를 보기 위해서 온유하고 참고 시기하지 말고 그러라는 겁니다.

이 「고린도 전서」 13장을 제대로 해석하는 목사를 여태 본 적이 없어요. 고전을 모르니까 그렇지요. 그저 한다는 소리가 “사랑은 온유하다, 남편이 화낼 때 참고 어쩌고, 서로 싸우지 말아라 그게 사랑이다” 맨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없는 해석을 하고 있으니 성경이 제대로 눈에 보일리가 있겠습니까? 고전학을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사랑이죠. 사도 바울이 쓴 사랑이라는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항상 전체를 보는 눈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식이 없어도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사실은 많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부분적인 지식은 없을지라도 삶의 본질을 터득하고 있는 위대한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혜롭습니다!

 

 

  

민감성의 仁 

仁이라고 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센시티비티이고, 勇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용기입니다. 뒤에 나오는 ··용에 대한 설명문장을 보면,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이라고 했는데, 知와 仁을 풀어 설명하면,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전체적 앎으로의 나아감이고, 힘들여 행하는 것이 仁이다”는 말입니다. 실행하는 것, 실천하는 것은 센시티비티가 없으면 못합니다. 걷는 것조차도 걷는 것에 대한 지적인 앎이 있어서가 아니라, 막상 걸을 때는 걸음걸음에 대해 仁해야 걸을 수 있습니다. 力行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감성적인 것이고 센시티비티의 문제인 것입니다. 무엇을 힘들여 행한다는 것, 행동이라는 것은 막상 해볼려고 하면 감성의 체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표한 것에 도달하는 勇 

그런데, “용기라는 것은 知恥也”라고 했습니다. 용기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수치를 알 적에 생긴다는 말입니다. 근본적으로 수치를 알 적에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갈망, 실천의 용기가 생기는 법입니다. 勇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앞으로 달려 나가게 하는 힘Driving power, 즉 지속성을 말하는 것이죠. 도올서원에 등록했다가 중간에 그만 두는 사람들은 용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중간에 불가피한 일이나 그럴 만한 핑계도 많을 수 있으나 용기 있는 자, 드라이빙 파워를 지닌 자만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所以行之者 一也’ 여기의 이 ‘一’은 뒤에서 誠으로 나타납니다. 中庸의 ‘誠論’이 도입되는 지점인 것이지요. 天下之達道의 5가지, 知仁勇 3가지에서 誠 하나로 나가는 것입니다. 자! 中庸의 진짜 맛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www.youtube.com/watch?v=qzXzaQ7dcOU

 

[공자의 이상세계]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나이 드신 분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벗을 믿게 해주며, 어린이들을 품어주는 것입니다.”

 

 

 

www.youtube.com/watch?v=4dZ2JhA8SoE

 

 

leeza.tistory.com/1437?category=830135

 

중용 20장-1. 정치의 기본은 修身을 통해 知天하는 것(思知人, 不可以不知天)

20-1. 정치의 기본은 修身을 통해 知天하는 것 (思知人 不可以不知天) 哀公問政. 子曰: “文ㆍ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 人道敏政, 地道敏樹. 夫政也者, 蒲盧也. 故爲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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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20장-1. 정치의 기본은 修身을 통해 知天하는 것(思知人, 不可以不知天)

哀公問政. 子曰: “文ㆍ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 人道敏政, 地道敏樹. 夫政也者, 蒲盧也. 故爲政在人, 取人以身, 修身以道, 修道以仁. 仁者, 人也, 親親爲大; 義者, 宜也, 尊賢爲大. 親親之殺, 尊賢之等, 禮所生也. 故君子不可以不修身; 思修身, 不可以不事親; 思事親, 不可以不知人; 思知人, 不可以不知天.

哀公問政.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哀公君, 名.

애공은 노나라 임금으로 이름은 장이다.

 

子曰: “文ㆍ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왕과 무왕의 정치가 목판이나 죽간에 펼쳐져 있으나 그 사람이 있다면 정치는 거행될 것이지만, 그 사람이 없다면 정치는 사라질 것입니다.

方, 版也. 策, 簡也. 息, 猶滅也.

方은 목판이다. 策은 죽간이다. 息은 滅과 같다.

 

有是君, 有是臣, 則有是政矣.

올바른 임금이 있고 올바른 신하가 있으면 올바른 정치가 있게 된다.

 

人道敏政, 地道敏樹. 夫政也者, 蒲盧也.

사람의 도는 정치에 민감하게 나타나고, 땅의 도는 나무에 민감하게 나타납니다. 정치라는 것은 갈대 같아 쉽게 이루어집니다.

敏, 速也. 蒲盧, 沈括以爲蒲葦是也.

敏은 빠르다는 것이다. 蒲盧는 심괄이 ‘갈대蒲葦’라 했으니, 맞다.

 

以人立政, 猶以地種樹,

사람이 정치를 수립하는 것은 땅에 나무를 심는 것과 같아

 

其成速矣.

이루어짐이 빠르다는 것이다.

 

而蒲葦又易生之物, 其成尤速也.

갈대는 또한 쉽게 자라는 생물로 성장함은 더욱 빠르다.

 

言人存政擧, 其易如此.

사람이 있으면 정치가 거행되니, 쉽기가 이와 같다는 말이다.

 

故爲政在人, 取人以身, 修身以道, 修道以仁.

그렇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사람을 취하는 것은 덕성이 배어 있는 권력자의 몸에 달려 있으며, 修身은 道에 달려 있고, 도를 닦음은 仁에 달려 있습니다.

此承上文人道敏政而言也.

이 장은 윗문장의 ‘人道敏政’을 이어서 말하였다.

 

爲政在人, 『家語』作“爲政在於得人,”

‘爲政在人’은 『孔子家語』엔 ‘爲政在於得人’라고 쓰여 있으니,

 

語意尤備.

말의 뜻이 더욱 완비되어 있다.

 

人, 謂賢臣.

‘取人’에서 人은 어진 신하를 말한다.

 

身, 指君身.

‘修身’에서 身은 임금의 몸을 가리킨다.

 

道者, 天下之達道.

道라는 천하의 공통된 道다.

 

仁者天地生物之心, 而人得以生者,

仁이란 천지의 살아 있는 생물의 마음으로 사람이 획득하고 태어나니,

 

所謂“元者善之長”也.

‘元은 모든 선한 것의 으뜸이다’라는 것이다.

 

言人君爲政在於得人,

임금이 정치를 함은 사람을 얻는 데에 달려 있고,

 

而取人之則又在修身.

사람을 취하는 것은 또한 수신에 달려 있다.

 

能仁其身, 則有君有臣,

그 몸을 仁하게 할 수 있다면 훌륭한 임금이 있게 되고, 훌륭한 신하가 있게 되니,

 

而政無不擧矣.

정치가 거행되지 않음이 없어진다.

 

仁者, 人也, 親親爲大; 義者, 宜也, 尊賢爲大. 親親之殺, 尊賢之等, 禮所生也.

仁이란 사람人이니, 친한 이를 친하게 함이 큼이 됩니다. 義란 마땅함宜이니 어진 이를 높임이 큼이 됩니다. 친한 이를 친하게 여기며 차등 지어가는 것과 어진 이를 높임에 등급 짓는 것이 禮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人指人身而言. 具此生理,

人은 사람의 몸을 가리켜 말함이니 이 이치를 구비하여

 

自然便有惻怛慈愛之意, 深體味之可見.

자연히 측은해하고 슬퍼하며 사랑하는 뜻이 있어 깊이 체험해보면 볼 만한 게 있다.

 

宜者, 分別事理, 各有所宜也. 則節文斯二者而已.

宜라는 것은 사리를 분별하는 것으로 각각 마땅한 것이 있다.

 

禮는 仁義, 이 두 가지를 품격에 맞게 하고 문채 나도록 함이 이것이다.

(在下位不獲乎上民不可得而治矣.)

 

氏曰: “此句在下,

鄭玄이 말했다. “이 구절은 아래에 있는데

 

誤重在此.”

잘못되어 거듭 여기에 있게 됐다.”

 

故君子不可以不修身; 思修身, 不可以不事親; 思事親, 不可以不知人; 思知人, 不可以不知天.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몸을 닦지 않을 수 없고, 몸 닦기를 생각함에 어버이를 섬기지 않을 수 없으며, 어버이 섬기기를 생각함에 사람을 알려하지 않아선 안 되고, 사람 알기를 생각함에 하늘을 알려하지 않아선 안 된다.

爲政在人, 取人以身,

정치를 함이 사람에게 달려 있고 사람을 취함은 몸에 달려 있기 때문에

 

故不可以不修身.

修身하지 않을 수 없다.

 

修身以道, 修道以仁,

修身하기를 道로써 하고, 道를 닦음을 仁으로써 하기 때문에

 

故思修身, 不可以不事親.

修身을 생각함에 어버이를 섬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欲盡親親之仁,

친한 이를 친히 하는 仁을 다하려 하면

 

必由尊賢之義,

반드시 어진 이를 높이는 뜻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故又當知人.

또한 마땅히 사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親親之殺, 尊賢之等, 皆天理也,

‘親親之殺’와 ‘尊賢之等’은 다 천리기 때문에

 

故又當知天.

또한 마땅히 하늘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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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20장-2. 다섯 가지 達道와 세 가지 達德, 그걸 행하게 하는 하나의 근본인 誠(天下之達道五~

20-2장. 다섯 가지 達道와 세 가지 達德, 그걸 행하게 하는 하나의 근본인 誠 (天下之達道五~治天下國家矣)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曰君臣也, 父子也, 夫婦也, 昆弟也, 朋友之交也, 五者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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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20장-3.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인 九經과 그것을 실행하게 하는 誠(凡爲天下國家有九經)

20-3.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인 九經과 그것을 실행하게 하는 誠 (凡爲天下國家有九經) 凡爲天下國家有九經: 曰修身也, 尊賢也, 親親也, 敬大臣也, 體群臣也, 子庶民也, 來百工也, 柔遠人也, 懷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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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20장-4. 誠과 誠之에 대해(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20-4. 誠과 誠之에 대해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凡事豫則立, 不豫則廢. 言前定則不跲, 事前定則不困, 行前定則不疚, 道前定則不窮. 在下位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獲乎上有道, 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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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20장-5. 誠해지기 위한 노력(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20-5. 誠해지기 위한 노력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 有弗問, 問之弗知弗措也; 有弗思, 思之弗得弗措也; 有弗辨, 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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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시며, 신중히 생각하시고, 분명히 판단하시며, 독실하게 행동하시옵소서.

此誠之之目也.

이것은 誠之의 조목이다.

 

學ㆍ問ㆍ思ㆍ辨, 所以擇善而爲知, 學而知也.

學ㆍ問ㆍ思ㆍ辨은 擇善하는 것으로 知固가 되니, ‘學而知之’다.

 

篤行, 所以固執而爲仁, 利而行也.

篤行은 固執으로 仁執이 되니 ‘利而行之’다.

 

程子曰: “五者廢其一, 非學也.”

정이천이 말했다. “다섯 가지(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중에 그 하나라도 없다면 학문이 아니다.”

 

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우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고,

 

有弗問, 問之弗知弗措也;

묻지 않을지언정 물으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며,

 

有弗思, 思之弗得弗措也;

생각지 않을지언정 생각하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고,

 

有弗辨, 辨之弗明弗措也;

분별하지 않을지언정 분별하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며,

 

有弗行, 行之弗篤弗措也.

행동하지 않을지언정 행동하려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는데 그만두지 마시고,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남들이 한 번에 그것을 잘한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하고, 남들이 열 번에 그것을 잘한다면 나는 천 번이라도 하는 것입니다.

君子之學, 不爲則已.

군자의 학문은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다.

 

爲則必要其成,

그러나 한다면 반드시 이루길 요구하기 때문에

 

故常百倍其功.

항상 그 공부를 백배로 해야 한다.

 

此困而知ㆍ勉而行者也. 勇之事也.

이것은 ‘困而知之’와 ‘勉强而行之’로 勇의 일이다.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과연 이 道를 실천할 수 있다면, 비록 어리석어도 반드시 밝아지고, 비록 유약해도 반드시 강해집니다.”

明者, 擇善之功. 强者, 固執之效.

明은 擇善의 공효다. 强은 固執의 공효다.

 

氏曰: “君子所以學者, 爲能變化氣質而已.

呂大臨이 말했다. “군자가 배우는 이유는 기질을 변화시키고자 할 뿐이다.

 

德勝氣質, 則愚者可進於明,

덕이 기질을 이기면 어리석은 사람도 분명함으로 나가고

 

柔者可進於强.

유약한 사람도 강함으로 나간다.

 

不能勝之, 則雖有志於學,

그러나 기질을 이기지 못하면 비록 배움에 뜻을 두더라도

 

亦愚不能明, 柔不能立而已矣.

또한 어리석음이 분명해지지 않고 유약함이 서질 못할 뿐이다.

 

蓋均善而無惡者, 性也, 人所同也;

대체로 선을 고르게 하여 악이 없는 것이 性이니 사람의 공통된 것이다.

 

昏明强弱之稟不齊者, 才也, 人所異也.

어둡고 밝고 강하고 약함의 기품이 가지런하지 않은 것은 才이니 사람의 다른 것이다.

 

誠之者, 所以反其同而變其異也.

誠之란 공통된 것을 돌아봐 다른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夫以不美之質, 求變而美,

아름답지 않은 자질을 구하여 변화시켜 아름답게 만들려 하는데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공부를 백배로 하지 않는다면 이르기엔 부족하다.

 

今以鹵莽滅裂之學, 或作或輟,

지금의 거칠고 엉성하여 支離滅裂한 학문이 혹 했다가 혹 그쳤다가 하며

 

以變其不美之質, 及不能變,

아름답지 못한 자질을 변화시키려 하나 변화되지 않음에 이르면

 

則曰天質不美, 非學所能變.

‘천부적인 자질이 좋지 않아 배워도 변하질 않는다’고 말한다.

 

是果於自棄, 其爲不仁甚矣!”

이것이 자포자기에 과가함 것으로 불인함이 심함이로다!“”

 

右第二十章.

여기까지 20장이다.

 

此引孔子之言, 以繼大舜周公之緖,

여기선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순임금과 문왕, 무왕, 주공의 실마리를 이어

 

明其所傳之一致,

전한 내용이 일치함을 밝혔고,

 

擧而措之, 亦猶是爾.

내용을 들어 거기에 두더라도 오히려 이와 같을 뿐임을 밝혔다.

 

蓋包費隱, 兼小大, 以終十二章之意.

대개 費隱을 포함하고 大小를 겸하여 20장의 뜻을 마쳤다.

 

章內語誠始詳,

이 장 안에서 誠을 말함이 처음으로 자세했으니,

 

而所謂誠者, 實此篇之樞紐也.

이른바 誠이란 실로 이편의 중추다.

 

又按『孔子家語』亦載此章,

또 생각건대 『공자가어』 또한 이 장이 실려 있지만,

 

而其文尤詳.

『공자가어』의 문장이 더욱 자세하다.

 

成功一也之下, 有“公曰: 子之言美矣!至矣!

成功一也 이하에 “애공이 ‘공자의 말씀이 아름답고도 지극합니다.

 

寡人實固不足以成之也.”

과인은 실로 그것을 이루기엔 부족합니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故其下復以‘子曰’起答辭.

그 아래에 ‘子曰’로 답을 일으킨 말이 있다.

 

今無此問辭, 而猶有‘子曰’二字,

이제 이 물은 말이 없으나, 오히려 ‘子曰’ 두 글자가 있는 것은

 

子思刪其繁文以附于篇,

대개 자사가 그 번거로운 문장을 깎아 이편에 붙일 적에

 

而所刪有不盡者,

다하지 못한 게 있었을 것이니,

 

今當爲衍文也.

이제 마땅히 연문이 된다.

 

博學之以下, 『家語』無之,

‘博學’ 이하는 『공자가어』에 없으니

 

意彼有闕文,

『공자가어』에 빠진 글이 있거나,

 

抑此或子思所補也歟?

그게 아니면 여기에 혹 자사가 보충한 것이리라.

 

www.youtube.com/watch?v=Xdj489qwWXc

 

 

중용 44강

ㅡ 공자가 꿈꾸는 세상, 

www.youtube.com/watch?v=DZ-FXVaPq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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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안지(老者安之), 붕우신지(朋友新之), 소자회지(少者懷之)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공자님 말씀 중 하나.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편 제25장 顔淵季路侍. 子曰: "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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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공야장 - 25. 안연과 자로와 공자가 각자의 포부를 얘기하다(老者安之朋友信之少者懷之)

25. 안연과 자로와 공자가 각자의 포부를 얘기하다 (老者安之朋友信之少者懷之) 顔淵, 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 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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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안연과 자로와 공자가 각자의 포부를 얘기하다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 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해석

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안연과 계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는데, 공자께서 “어찌하여 각자 너희들의 뜻을 말하지 않는가?”라고 말씀하셨다.

盍, 音合.

○ 盍, 何不也.

합(盍)은 ‘어찌 안 하는가?’라는 것이다.

 

子路曰: “願車馬, 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자로가 “수레와 말, 가벼운 가죽옷을 입는 것을 친구와 함께 공유하여 그것이 해지더라도 섭섭해하지 않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衣, 去聲.

○ 衣, 服之也. 裘, 皮服.

의(衣)는 그것을 입는다는 것이다. 구(裘)는 가죽옷이다.

 

敝, 壞也. 憾, 恨也.

폐(敝)는 해진다는 것이다. 감(憾)은 한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안연이 “잘하는 것을 과장하지 않으며 공로 있음을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伐, 誇也. 善, 謂有能.

벌(伐)은 과장한다는 것이다. 선(善)은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施, 亦張大之意. 勞, 謂有功,

시(施)는 또한 과장하는 뜻이다. 노(勞)는 공이 있다는 말이다.

 

』曰“勞而不伐” 是也.

『주역』에 ‘공로가 있으나 자랑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或曰: “勞, 勞事也. 勞事非己所欲,

어떤 이가 ‘노(勞)는 수고로운 일이니, 수고로운 일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故亦不欲施之於人.” 亦通.

또한 남에게 베풀고자 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또한 통한다.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자로가 “부자의 뜻을 듣길 원합니다.”라고 말하니, 

공자께서

 “나이 드신 분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벗을 믿게 해주며, 어린이들을 품어주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老者養之以安, 朋友與之以信,

나이 드신 분을 편안함으로 봉양하고 벗은 믿음으로 함께하며

 

少者懷之以恩.

어린이를 은혜로 품어준다.

 

一說: 安之, 安我也;

다른 설에는 “‘안지(安之)는 나를 편안히 여긴다는 것이고,

 

信之, 信我也; 懷之, 懷我也.

신지(信之)는 나를 믿게 한다는 것이며, 회지(懷之)는 나를 회고하게 한다는 말이다.

 

亦通.

또한 통한다.”라고 말했다.

 

○ 程子曰: “夫子安仁,

정이천이 말했다. “부자는 인(仁)을 편안히 여겼고,

 

顔淵不違仁, 子路求仁.”

안연은 인을 어기지 않았으며, 자로는 인을 구했다.”

 

又曰: “子路顔淵孔子之志,

또한 말했다. “자로와 안연과 공자의 뜻은

 

皆與物共者也,

모두 남과 더불어 함께한 것이니,

 

但有小大之差爾.”

다만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又曰: “子路勇於義者,

또한 말했다. “자로는 의에 용맹한 자이니

 

觀其志, 豈可以勢利拘之哉?

그 뜻을 보면 어찌 권세와 이익으로 그를 구속할 수 있겠는가?

 

亞於浴沂者也.

기수에서 목욕하겠다던 증점에 버금가는 사람이다.

 

顔子不自私己, 故無伐善;

안자는 스스로 사사로운 자기가 없었기 때문에 잘 하는 걸 자랑하지 않았고

 

知同於人, 故無施勞.

남과 함께 할 줄을 알았기 때문에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다.

 

其志可謂大矣, 然未免出於有意也.

그 뜻이 크다고 할 만하지만 뜻이 있음을 면하지 못했다.

 

至於夫子, 則如天地之化工,

부자에 이르러선 천지의 조화의 공[化工]이

 

付與萬物而己不勞焉, 此聖人之所爲也.

만물에 부여하고 자신은 수고하지 않음과 같으니, 이것이 성인의 하는 것이다.

 

今夫羈靮以御馬而不以制牛,

지금의 굴레와 고삐로 말을 부리고 소를 제어하지 못하니

 

人皆知羈靮之作在乎人,

사람은 모두 굴레와 고삐를 만든 것이 사람이 했다는 것만 알지,

 

而不知羈靮之生由於馬,

굴레와 고삐의 생산이 말에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聖人之化, 亦猶是也.

성인의 교화함이 또한 이와 같다.

 

先觀二子之言, 後觀聖人之言,

먼저 두 사람이 말을 보고 후에 성인의 말을 보면

 

分明天地氣象. 凡看『論語』,

천지의 기상이 분명하니, 『논어』를 볼 적에는

 

非但欲理會文字,

문자를 이해하려 할 뿐만이 아니라,

 

須要識得聖賢氣象.”

반드시 성현의 기상을 알려고 해야 한다.

 

 

논어 16편(계씨) 0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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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독서, 음악, 일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트위터 @inge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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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曰 공자왈

生而知之者 上也 생이지지자 상야

學而知之者 次也 학이지지자 차야

困而學之 又其次也 곤이학지 우기차야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곤이불학 민사위하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면서 아는 사람이 가장 나은 사람이다.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 다음 사람이다.

곤란함을 당하여서 배우는 사람이 또 그다음 사람이다.

곤란함을 당해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 가장 못한 사람이다.

출처: https://ingee.tistory.com/search/생이지지 [있는 그대로]

 

www.youtube.com/watch?v=qzXzaQ7dcOU

 

 

凡事豫則立, 不豫則廢. 言前定則不跲, 事前定則不困, 行前定則不疚, 道前定則不窮.

범사예칙립, 불예칙폐. 언전정칙불겁, 사전정칙불곤, 행전정칙불구, 도전정칙불궁.

모든 일은 사전에 대비하면 계획대로 진행되지만 사전에 대비하지 않으면 계획은 뒤틀립니다. 말도 사전에 정해두면 어그러지지 않습니다. 일도 사전에 정해두면 곤란해지지 않습니다. 행동도 사전에 정해두면 근심하지 않습니다. 道도 사전에 정해두면 궁하지 않습니다.

凡事, 指達道達德九經之屬.

범사, 지달도달덕구경지속.

모든 일이란 達道와 達德, 그리고 九經의 종류를 가리킨다.

 

豫, 素定也. 跲, 躓也. 疚, 病也.

, 소정야. , 지야. , 병야.

豫는 평소에 정하는 것이다. 跲은 넘어진다는 것이다. 疚는 병이다.

 

此承上文, 言凡事皆欲先立乎誠,

차승상문, 언범사개욕선립호성,

이 장은 윗 문장을 이어 모든 일이 모두 誠을 세워야 함을 말했다.

 

如下文所推是也.

여하문소추시야.

아래문장은 誠을 미루어 가는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在下位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재하위불획호상, 민불가득이치의. 

아래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얻어 다스릴 수 없습니다. 

 

獲乎上有道, 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획호상유도, 불신호붕우, 불획호상의;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방법이 있으니 벗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합니다. 

 

信乎朋友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신호붕우유도, 불순호친, 불신호붕우의;

벗에게 신임을 받는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 孝順하지 않으면 벗에게 신임을 받지 못합니다. 

 

順乎親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矣; 

순호친유도, 반제신불성, 불순호친의;

어버이에게 孝順하는 방법이 있으니, 몸을 되돌아봐서 誠하지 않으면 어버이에게 효순하지 못합니다. 

 

誠身有道, 不明乎善, 不誠乎身矣.

성신유도, 불명호선, 불성호신의.

몸을 성실히 하는 방법이 있으니, 선에 밝지 못하면 몸이 誠하지 않습니다.

 

此又以在下位者, 推言素定之意.

차우이재하위자, 추언소정지의.

여기서는 또한 아래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素定’의 뜻을 미루어 말한 것이다.

 

反諸身不誠, 謂反求諸身而所存所發,

반제신불성, 위반구제신이소존소발,

‘反諸身不誠’은 몸에서 돌이켜 구하였지만 보존되고 발설한 것이

 

未能眞實而無妄也.

미능진실이무망야.

眞實無妄하지 않은 것이다.

 

不明乎善, 謂不能察於人心ㆍ天命之本然,

불명호선, 위불능찰어인심천명지본연,

‘不明乎善’은 人心과 天命의 본연을 살펴

 

而眞知至善之所在也.

이진지지선지소재야.

참으로 지극한 선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誠者, 天之道也; 

성자, 천지도야誠은 하늘의 道이요, 

 

誠之者, 人之道也. 

성지자, 인지도야.

誠之는 사람의 道입니다.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성자, 불면이중, 불사이득, 종용중도, 성인야.

誠은 힘쓰지 않아도 的中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지며 유유자적하게 道에 합치되니 聖人이다.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성지자, 택선이고집지자야.

誠之는 선을 택하여 굳세게 그것을 잡는 것이다.

 

此承上文誠身而言.

여기선 윗 문장의 몸을 성실히 한다는 것을 이어 말했다.

 

誠者, 眞實無妄之謂, 天理之本然也.

성자, 진실무망지위, 천리지본연야.

誠은 眞實無妄하는 것을 말하니, 天理의 본연이다.

 

誠之者, 未能眞實無妄, 而欲其眞實無妄之謂, 人事之當然也.

성지자, 미능진실무망, 이욕기진실무망지위, 인사지당연야.

誠之란 眞實無妄하지 않고 眞實無妄하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人事의 당연함이다.

 

聖人之德, 渾然天理, 眞實無妄,

성인지덕, 혼연천뢰, 진실무망,

성인의 덕은 천지와 어우러져 眞實無妄하여

 

不待思勉而從容中道, 則亦天之道也.

부대사면이종용중도, 칙역천지도야.

생각하고 힘쓰길 기다리지 않아도 유유자적하게 도에 합치되니 또한 하늘의 道다.

 

未至於聖, 則不能無人欲之私,

미지어성, 칙불능무인욕지사,

성인에 이르지 못하면 人欲의 사사로움이 없지 않아,

 

而其爲德 不能皆實.

이기위덕 불능개실.

덕 됨이 모두 진실하지 않다.

 

故未能不思而得,

고미능불사이득,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지지 않는다면

 

則必擇善, 然後可以明善;

칙필택선, 연후가이명선;

반드시 선을 택한 후에 선을 밝힐 수 있다.

 

未能不勉而中, 則必固執,

미능불면이중, 칙필고집,

힘쓰지 않아도 적중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굳게 잡은 후에

 

然後可以誠身, 此則所謂人之道也.

연후가이성신, 차칙소위인지도야.

몸을 성실히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사람의 도라 한다.

 

不思而得, 生知也.

불사이득, 생지야.

생각하지 않고도 얻는 것은 生而知之이고,

 

不勉而中, 安行也.

불면이중, 안행야.

힘쓰지 않아도 적중하는 것은 安而行之다.

 

擇善, 學知以下之事.

택선, 학지이하지사.

선을 택하는 것은 學而知之 이하의 일이다.

 

固執, 利行以下之事也.

고집, 리행이하지사야.

굳게 잡는 것은 利而行之 이하의 일이다.

*어떤 이[仁者]는 이롭게 여겨서 그것을 행하다.

 

[참고]

제20장 6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급기지지 일야. 

어떤 이[知者]는 나면서부터 (앞 단락에 말한 달도를) 알게 되고,

어떤 이[仁者]는 배워서 알게 되며,

어떤 이[勇者]는 어려움을 겪은 뒤에 알게 되는데,

그것을 알게 된 결과 한 가지이다.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 一也.

혹안이행지, 혹리이행지, 혹면강이행지, 급기성공일야.

어떤 이[知者]는 편하게 (그것을) 행하며,

어떤 이[仁者]는 이롭게 여겨서 그것을 행하며,

어떤 이[勇者]는 애써서 그것을 행하는데,

그렇게 이룬 공에 있어서는 한 가지다.

 

 

저작 시기 1단계 2단계 3단계
본문 공자가어 중용 맹자』「이루12

 

 

www.youtube.com/watch?v=k6p6IbP_CzI

 

 

중용 20장-1. 정치의 기본은 修身을 통해 知天하는 것(思知人, 不可以不知天)

 

중용 20장-2. 다섯 가지 達道와 세 가지 達德, 그걸 행하게 하는 하나의 근본인 誠(天下之達道五~治天下國家矣)

 

중용 20장-3.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인 九經과 그것을 실행하게 하는 誠(凡爲天下國家有九經)  

 

중용 20장-4. 誠과 誠之에 대해(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중용 20장-5. 誠해지기 위한 노력(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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