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北學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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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북학의서(北學議序)

불치하문의 정신으로 조금이라도 낫다면 배워야 한다 북학의서(北學議序) 박지원(朴趾源) 모르는 게 있으면 배우는 게 학문의 방법 學問之道無他,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可也, 僮僕多識我一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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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있으면 배우는 게 학문의 방법

 

學問之道無他,

학문하는 방법이란 다른 게 없다.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可也,

알지 못하는 게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묻는 게 옳고

 

僮僕多識我一字姑學.

머슴이 나보다 한 자라도 많이 안다면 짐짓 배워야 한다.

 

汝恥己之不若人而不問勝己,

네가 ‘자기가 남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하여 나보다 나은 이에게 묻질 않는다면

 

則是終身自錮於固陋無術之地也.

이것은 종신토록 스스로 고루하고 재술(才術)이 없는 지경에 갇히게 하는 것이다.

 

잘 배운 이는 순임금과 공자

 

舜自耕稼陶漁, 以至爲帝,

순이 밭갈고 질그릇 굽고 물고기 잡던 때부터 임금이 됨에 이르기까지

 

無非取諸人.

남에게 취하지 않은 게 없었다.

 

孔子曰: “吾少也賤多能鄙事.”

공자가 “나는 어려서 가난했기 때문에 비천한 일을 많이 잘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는데,

 

亦耕稼陶漁之類是也.

비천한 일이란 또한 밭갈고 질그릇 굽고 물고기 잡는 부류가 이것이다.

 

雖以孔子之聖且藝,

비록 순임금과 공자의 성스러움과 재예를 지닌 사람이라도

 

卽物而刱巧, 臨事而製器,

사물에 나아가 기교를 창조했고 일에 다다라 기물을 제조하니

 

日猶不足, 而智有所窮.

시간은 오히려 부족했고 지혜는 곤궁한 게 있었으리라.

 

孔子之爲聖,

그러므로 순과 공자가 성인이 된 것은

 

不過好問於人, 而善學之者也.

남에게 묻길 좋아하여 잘 배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배우려하지 않다

 

吾東之士, 得偏氣於一隅之土,

우리 동방의 선비들은 한쪽 모퉁이 땅에서 치우친 기운을 얻어서

 

足不蹈凾夏之地, 目未見中州之人,

발로는 큰 땅을 밟지 못했고 눈으론 중국 사람을 보지 못했으며

 

生老病死, 不離疆域.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을 때까지의 일생동안 영토를 떠나지 않는다.

 

鶴長烏黑, 各守其天,

학은 다리가 길고 까마귀는 검듯이 각자가 천성을 지켜

 

蛙井蚡田, 獨信其地.

우물의 개구리나 밭의 두더지처럼 홀로 자기의 영토만을 믿는다.

 

禮寧野, 認陋爲儉,

예는 거친 게 낫다고 여겨 비루한 걸 검소하다 여겼고

 

所謂四民, 僅存名目,

사(士)ㆍ농(農)ㆍ공(工)ㆍ상(商)의 사민(四民)은 겨우 명목만 남았으며

 

而至於利用厚生之具, 日趨困窮.

이용후생의 도구에 이르면 날로 곤궁해지고 궁벽해진 데로 나아갔다.

 

此無他, 不知學問之過也.

이것은 다른 게 없이 배우고 물을 줄 모르는 잘못인 것이다.

 

 

중국을 오랑캐나라라며 천시하는 풍조

 

如將學問, 舍中國而何?

장차 배워 물으려 한다면 중국을 버리고 어떤 나라에 하겠는가?

 

然其言曰: “今之主中國者, 夷狄也.”

그러나 그들은 “지금 중국에 주인된 사람들은 오랑캐다.”라고 말하며

 

恥學焉, 幷與中國之故常而鄙夷之.

배우길 부끄러워하고 중국의 옛법들도 아울러 비루하고 오랑캐스럽다고 한다.

 

彼誠薙髮左袵,

저들은 진실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하고 있지만

 

然其所據之地,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곳이

 

豈非三代以來漢唐宋明之凾夏乎?

어찌 삼대 이후로 한ㆍ당ㆍ송ㆍ명의 큰 나라가 아니겠는가.

 

其生乎此土之中者,

이 땅 속에 사는 사람들이

 

豈非三代以來漢唐宋明之遺黎乎?

어찌 삼대 이후로 한ㆍ당ㆍ송ㆍ명의 남겨진 백성들이 아니겠는가.

 

苟使法良而制美,

진실로 법이 좋고 제도가 아름답다면

 

則固將進夷狄而師之,

참으로 장차 오랑캐에게 가서 그를 스승삼아야 하는데,

 

况其規模之廣大, 心法之精微,

하물며 규모가 광대하고 심법【심법(心法): 용심지법(用心之法)을 말한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청 나라 문물의 특장(特長)으로 ‘대규모(大規模) 세심법(細心法)’ 즉 규모가 크고 심법이 세밀한 점을 들었다】이 정미하며

 

制作之宏遠, 文章之煥爀,

제작한 것이 굉장하고 원대하며 문장이 찬란하며

 

猶存三代以來漢唐宋明固有之故常哉.

아직도 삼대 이후로 한ㆍ당ㆍ송ㆍ명의 고유한 옛 법을 보존하고 있는 경우라면 오죽할까.

 

以我較彼固無寸長,

우리나라를 중국과 비교하면 진실로 조금도 장점인 게 없지만

 

而獨以一撮之結, 自賢於天下曰:

홀로 한 움큼의 쌍투만으로 스스로 천하에 어질다고 여기며 말한다.

 

“今之中國, 非古之中國也”

“지금의 중국은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其山川則罪之以腥羶,

중국의 산천은 누린내가 난다고 그들을 탓하고

 

其人民則辱之以犬羊,

그곳에 사는 인민은 개와 양 같다고 욕하며

 

其言語則誣之以侏離,

그들의 언어는 사투리【주리(侏離): 방언(方言)을 뜻하는 말로, 소수민족 혹은 외국의 언어나 문자를 말한다】라고 무함하고

 

幷與其中國固有之良法美制而攘斥之.

중국 고유의 좋은 법과 미풍양속의 제도를 함께 배척해버린다.

 

則亦將何所倣而行之耶?

그러니 또한 장차 어디서 모방하며 실천해야 하는가?

 

 

열하일기와 완벽한 한 쌍인 북학의

 

余自燕還在先爲示其『北學議』內外二編,

내가 연경으로부터 귀국하자【연암은 정조 4년(1780) 5월부터 10월까지 진하 겸 사은별사(進賀兼謝恩別使)의 일원으로 중국 북경을 다녀왔다】 재선은 『북학의(北學議)』 내외 2편을 보여주니,

 

在先先余入燕者也.

대체로 재선은 나보다 앞서 연경에 들어갔던 사람이다【박제가는 정조 2년(1778)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일원으로 이덕무와 함께 북경을 다녀온 뒤 『북학의』를 저술하였다】.

 

自農蚕ㆍ畜牧ㆍ城郭ㆍ宮室ㆍ舟車, 以至瓦簟筆尺之制,

농잠ㆍ목축ㆍ성곽ㆍ궁실ㆍ배와 수레로부터 기와 대자리와 붓과 자 등의 제도에 이르기까지

 

莫不目數而心較.

눈으로 헤아리고 마음으로 비교하지 않은 게 없었다.

 

目有所未至, 則必問焉,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면 반드시 물었고

 

心有所未諦, 則必學焉.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은 것이면 반드시 배웠다.

 

試一開卷, 與余日錄,

시험삼아 한 번 책을 펴보니 나의 『열하일기(熱河日記)』와

 

無所齟齬, 如出一手

어긋나는 게【저어(齟齬): 이가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물이나 일이 맞지 않고 어긋남’을 이르는 말】 없어 한 손에서 나온 것 같았다.

 

此固所以樂而示余,

이것은 진실로 즐거워하며 나에게 보여준 까닭이고

 

而余之所欣然讀之三日而不厭者也.

내가 기쁘게 3일 동안 읽으며 싫어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噫! 此豈徒吾二人者得之於目擊而後然哉.

아! 이것이 어찌 다만 우리 두 사람이 목격한 후에야 그러한 것이겠는가.

 

固嘗硏究於雨屋雪簷之下,

진실로 일찍이 비 내리는 집에서와 눈 내리는 처마 아래서 연구하고

 

抵掌於酒爛燈灺之際,

술에 고주망태되고 등불이 꺼질 때까지 이야기한 것【저당(抵掌): ① 기분좋게 이야기하다 ②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다】을

 

而乃一驗之於目爾.

곧 한 번에 눈으로 증험해본 것일 뿐이다.

 

要之不可以語人, 人固不信矣,

요컨대 남에게 말할 수 없고 남은 진실로 믿지 않을 것이고

 

不信則固將怒我.

믿지 못하면 진실로 장차 우리에게 화를 낼 것이다.

 

怒之性, 由偏氣,

화내는 성품은 치우친 기운에 따른 것이고

 

不信之端, 在罪山川. 『燕巖集』 卷之七

믿지 못하는 단서는 누린내 난다는 산천을 탓함에 있는 것이다

【북학의서(北學議序): 박제가의 『북학의』에 붙은 원래의 서문 말미에 신축년(1781, 정조 5) 중양절(重陽節)에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9GMQa0BYw 

 

 

총석정관일출(叢石亭觀日出)

ㅡ 박지원(朴趾源)

 

行旅夜半相叫譍 

행려야반상규응. 나그네들이 한 밤중에 부르짖으며 응답하길

遠鷄其鳴鳴未應

원계기명명미응, 먼 닭의 울었나? 응당 울진 않았을 텐데.

遠鷄先鳴是何處

원계선명시하처, 먼 닭이 먼저 우니 이곳은 어느 곳이던가.

只在意中微如蠅

지재의중미여승, 다만 생각 속에 있을 뿐, 은미한 소리는 파리소리 같기만 하네

【『시경(詩經) 제풍(齊風) 계명(鷄鳴) 닭이 우는 것이 아니라, 파리 소리로다.匪鷄則鳴 蒼蠅之聲라고 하였다. 현비(賢妃)가 임금이 조회(朝會)에 늦지 않게 깨우려고 조바심하다가 파리 소리를 닭 울음으로 잘못 들었다는 뜻이다.

邨裏一犬吠仍靜

촌리일견폐잉정, 마을 안 한 마리 개가 짓다가 이내 조용해지니

靜極寒生心兢兢

정극한생심긍긍, 고요함이 극단에 이르니 한기가 생겨 마음이 불안불안.

是時有聲若耳鳴

시시유성약이명, 이때 소리가 들리니 이명인 듯하고이명증(耳鳴症)으로 헛소리를 들은 듯하다는 뜻이다..

纔欲審聽簷鷄仍

재욕심청첨계잉. 겨우 자세히 들으려 하니 처마의 닭소리 따르네.

此去叢石只十里

차거총석지십리, 여기서 총석정까지 거리는 다만 10리 이니

正臨滄溟觀日昇

정림창명관일승, 바로 푸른 바다에 다다르면 일출 보이리.

天水澒洞無兆眹

천수홍동무조진, 하늘가 물은 넘실거려 해 뜰 조짐 없고

洪濤打岸霹靂興

홍도타안벽력흥, 파도가 언덕을 때리니 벼락이 치네.

常疑黑風倒海來

상의흑풍도해래, 항상 의심스러운 건 검은 바람이 바다를 뒤집어

連根拔山萬石崩

연근발산만석붕, 연이은 뿌리째 산을 뽑아 온 바위가 붕괴될까?

無怪鯨鯤鬪出陸

무괴경곤투출륙, 고래 곤어가 다투다 육지로 나오더라도 괴이치 말고

不虞海運値摶鵬

불우해운치단붕, 바다 일어 만나 붕새와 엉기더라도 우려치 말라.

但愁此夜久未曙

단수차야구미서, 다만 걱정되는 건 이 밤에 오래도록 동트지 않아

從今混沌誰復徵

종금혼돈수부징, 이로부터 혼돈스럽다면  누가 다시 징계할까?

無乃玄冥劇用武

무내현명극용무, 바다신이 극렬히 힘을 사용하여

九幽早閉虞淵氷

구유조폐우연빙, 구유(九幽)를 일찍 닫고 우연(虞淵)을 얼리지 않겠는가.

恐是乾軸旋斡久

공시건축선알구, 아마도 하늘축이 돌고 돌기 오래도록 하다가

遂傾西北隳環絙

수경서북휴환환, 마침내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고리의 끈이 상했네.

三足之烏太迅飛

삼족지오태신비, 삼족오는 매우 빠르게 나는 새인데

誰呪一足繫之繩

수주일족계지승, 누가 한 발에 주술을 걸어 끈으로 묵어왔나?

海若衣帶玄滴滴

해야의대현적적, 해야(海若)해약(海若): 전설상의 해신(海神).의 옷과 띠는 검어 물방울로 적셔 있고

水妃鬢鬟寒凌凌

수비빈환한릉릉, 수비(水妃)의 쪽 찐 머리는 차가워 으슬으슬하네.수비(水妃): 전설상 수중의 신녀(神女).

巨魚放蕩行如馬

거어방탕행여마, 큰 고기가 방탕하게 달리길 말처럼 하고

紅鬢翠鬣何鬅鬙

홍빈취렵하붕승, 붉은 머리에 비취빛 갈기가 어찌하여 덥수룩한가.

天造草昧誰參看

천조초매수참간, 하늘이 어둔 세상 만들 적에 누가 참관했겠는가.

大叫發狂欲點燈

대규발광욕점등, 크게 부르짖어 발광하며 등불 켜려 하네.

欃槍擁彗火垂角

참창옹혜화수각, 혜성참창(欃槍]이 꼬리를 끌고 화성(火星)이 광망(光芒)을 뻗치네

禿樹啼鶹尤可憎

독수제류우가증, 낙엽 진 나무의 부엉이 울음 더욱더 밉상일레

斯須水面若小癤

사수수면약소절, 조금 뒤에 수면에 작은 부스럼 생긴 듯

誤觸龍爪毒可疼

오촉룡조독가동, 용의 발톱 잘못 긁혀 독기로 벌겋더니

其色漸大通萬里

기색점대통만리, 그 빛이 점점 커져 만리를 비추누나

波上邃暈如雉膺

파상수훈여치응, 물결 위에 번진 빛 꿩의 가슴 비슷하이

天地茫茫始有界

천지망망시유계, 아득아득 이 천지에 한계 처음 생겼으니

以朱劃一爲二層

이주획일위이층, 붉은 붓 한 번 그어 두 층이 되었구려

梅澁新惺大染局

매삽신성대염국, 매삽이라 신성이라 염색집이 하도 커서

千純濕色縠與綾

천순습색곡여릉, 몇 천 필 색을 들여 온갖 비단 으리으리

作炭誰伐珊瑚樹

작탄수벌산호수, 산호나무 누가 베어 참숯을 만들었나

繼以扶桑益熾蒸

계이부상익치증, 부상나무 뒤이으니 더욱더 이글이글

炎帝呵噓口應喎

염제가허구응괘, 염제는 불을 불어 입이 응당 비틀리고

祝融揮扇疲右肱

축융휘선피우굉,  축융축융(祝融): 불을 주관하는 신.은 부채 휘둘러 바른팔이 지쳤구려

鰕鬚最長最易爇

하수최장최이설, 새우 수염 가장 길어 그슬리기 제일 쉽고

蠣房逾固逾自𦚦

려방유고유자증, 굴껍질은 굳을수록 더욱더 절로 익네

寸雲片霧盡東輳

촌운편무진동주, 한 치 구름 조각 안개 동으로 다 쓸려 가서

呈祥獻瑞各效能

정상헌서각효능, 온갖 상서 바치려고 제 힘을 다하누나

紫宸未朝方委裘

자신미조방위구, 자신궁(紫宸宮)엔 조회 전에 바야흐로 갖옷을 모셔놓고

陳扆設黼仍虛凭

진의설보잉허빙, 병풍만 펼쳐 논 채 용상은 비어 있네

纖月猶賓太白前

섬월유빈태백전, 초승달은 샛별 앞에 오히려 밀려나서

頗能爭長辥與滕

파능쟁장설여등, 먼저 예를 행하겠다고 등설(滕薛)처럼 제법 맞서누나

赤氣漸淡方五色

적기점담방오색, 붉은 기운 차츰 묽어 오색으로 나뉘더니

遠處波頭先自澄

원처파두선자징, 먼 물결 머리부터 절로 먼저 맑아지네

海上百怪皆遁藏

해상백괴개둔장, 바다 위 온갖 괴물 어디론지 숨어 버리고

獨留羲和將驂乘

독류희화장참승, 희화(羲和,수레 모는 신)만이 홀로 남아 수레 장차 타려 하네

圓來六萬四千年

원래육만사천년, 육만이라 사천 년을 둥글둥글 내려왔으니

今朝改規或四楞

금조개규혹사릉, 오늘 아침 동그라미 고쳐 어쩌면 네모가 될라

萬丈海深誰汲引

만장해심수급인, 만길의 깊은 바다에서 어느 누가 길어 올렸을까

始信天有階可陞

시신천유계가승, 이제서야 믿겠노라 하늘도 오를 계단이 있음을

鄧林秋實丹一顆

등림추실단일과, 등림(鄧林)에 가을 열매 한 덩이가 붉었고

東公綵毬蹙半登

동공채구축반등, 동공(東公)이 채색 공을 차서 반만 올렸구려

夸父殿來喘不定

과부전래천부정, 과보는 헐레벌떡 뒤따라오고 있고

六龍前道頗誇矜

육룡전도파과긍,  육룡은 앞서 끌며 교만스레 자랑하네

天際黯慘忽顰蹙

천제암참홀빈축, 찌푸리듯 하늘가 어두워지다가

努力推轂氣欲增

노력추곡기욕증 , 어영차 해 수레 미니 기운이 솟아난 듯

圓未如輪長如瓮

원미여륜장여옹, 바퀴처럼 둥글잖고 독처럼 길쭉한데

出沒若聞聲砯砯

출몰약문성빙빙, 뜰락 말락 하니 철썩철썩 부딪치는 소리 들리는 듯

萬物咸覩如昨日

만물함도여작일, 만인이 어제처럼 모두 바라보는데

有誰雙擎一躍騰 

유수쌍경일약등, 어느 뉘 두 손으로 받들어 단번에 올려놨노

燕巖集 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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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총석정관일출(叢石亭觀日出)

총석정에서 일출을 보며총석정관일출(叢石亭觀日出) 박지원(朴趾源) 行旅夜半相叫譍 遠鷄其鳴鳴未應遠鷄先鳴是何處 只在意中微如蠅邨裏一犬吠仍靜 靜極寒生心兢兢是時有聲若耳鳴 纔欲審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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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누이가 시집가던 날의 어여쁜 모습이 산천에 그대로 담겨 있네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박지원(朴趾源) 초상 지르던 날의 풍경 孺人諱某, 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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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

 

초상 지르던 날의 풍경

孺人諱某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之曰:

유인 휘모씨【휘(諱): 원래 ‘기피한다’는 듯인데, 보통 죽은 이의 이름을 가리길 때 쓰는 말이다. 전근대 동아시아 문화는 남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큰 실례라고 생각했기에 ‘이름’을 ‘휘’라고 했다】는 반남 박씨【반남(潘南)은 박씨의 한 본관인데, 예전의 반남현(潘南縣), 즉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潘南面)에 해당한다. 반남 박씨는 조선 후기에 유력한 벌열 가문의 하나로 성장하였다】로 그 아우 지원 중미가 묘지명【묘지명(墓誌銘): 죽은 사람의 이름ㆍ신분ㆍ행적 따위를 기록한 글로, 보통 돌이나 도편(陶片, 도자기 조각)에 새겨 무덤 속에 넣는다. 묘지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엔 죽은 이의 이름과 행적을 산문으로 서술하는바 이를 ‘지(誌)’라 하고, 뒷부분엔 죽은 이에 대한 칭송을 운문으로 붙이는바 이를 ‘명(銘)’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남편의 품계에 따라 아내의 작호(爵號)가 정해졌다. ‘유인(孺人)’은 원래 정9품 및 종9품 문무관 처에 대한 작호인데,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양반의 처에 대해서도 높이는 의미에서 신주(神主)나 명정(銘旌)에 이 말을 사용했다. 연암의 큰누님이 돌아가셨을 당시 그 남편 이택모(李宅模)는 아직 아무 벼슬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후자의 용례로 쓰였다. / 예전부터 묘지명이나 비문은 유묘지문(諛墓之文), 즉 귀신에게 아첨하는 글이라 하여 포(褒)는 있어도 폄(貶)은 없는, 다시 말해 좋은 말만 잔뜩 늘어놓는 것이 상례이다. 그리고 글의 짜임새 또한 규격화되어 있어, 심지어 한유가 지은 여러 묘지명을 놓고는 사람 이름만 바꿔 넣으면 아무라도 괜찮다는 ‘중인동제지문(衆人同祭之文)’의 비난까지 있어 왔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 태학사, 2000년, 321쪽】을 다음과 같이 쓴다.

 

孺人十六, 歸德水李宅模伯揆.

유인은 16살에 덕수 이씨인 택모 백규에게 시집을 갔다.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2녀 1남을 두었고 신해년(1791년) 9월 1일에 돌아가셨으니 43살이 되었다.

 

夫之先山曰‘鵶谷’, 將葬于庚坐之兆.

가족의 선산은 ‘아곡(鵶谷)’【백아곡(白鵶谷)을 말하는데, 조선시대 지평현(砥平縣)의 한 지명으로,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楊東面)에 해당한다. 일찍이 택당 이식이 이곳에 부친의 장지(葬地)를 마련한 이래 그 후손들의 선영(先塋)이 되었으며, 이식은 여기에 택풍당(澤風堂)이나 집을 짓고 기거한 바 있다】에 있으며, 장차 경좌(庚坐)【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경방(庚方)을 등진 방향. 또는 그렇게 앉은 자리. 서남쪽을 등진 방향】의 남쪽에 장례지낼 것이다.

 

伯揆旣喪其賢室, 貧無以爲生,

백규는 이미 그 어진 아내를 잃었고 가난하여 생을 도모할 수가 없으니,

 

挈其穉弱婢指十, 鼎鎗箱簏,

그 어린 아이들과 허약한 종 한 명을 데리고 솥과 상자를 챙겨

 

浮江入峽, 與喪俱發.

강에 배 띄워 골짜기로 들어갔으니 상여와 함께 출발하였다.

 

仲美曉送之斗浦舟中, 慟哭而返.

나는 새벽에 두포(斗浦)【두포(斗浦)는 두모포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의 동호대교 부근에 있던 작은 나루로서, 한강나루의 보조 나루였다. 이 일대 한강을 동호(東湖)라 불렀으며, 강 건너편 돌출 부분에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에서 그들을 보내고 배 안에서 통곡하며 돌아왔다.

 

去者丁寧留後期

거자정녕류후기

떠나는 사람(이택모)은 정령 머물며 다시 만날 날 기약하자 해도

猶令送者淚沾衣

유령송자루첨의

오히려 보내는 사람으로 눈물로 옷을 적시게 하네.

扁舟從此何時返

편주종차하시반

조각배 이로부터 어느 때에나 돌아오려나

送者徒然岸上歸  

송자도연안상귀

보내는 이 망연자실하게 언덕에서 돌아오네.

 

28년 전 일이 스치듯 떠올라

嗟乎! 姊氏新嫁曉粧, 如昨日.

아! 누이 시집가려 새벽에 화장할 때가 마치 어제 같다.

 

余時方八歲, 嬌臥馬𩥇,

나는 겨우 8살로 교태부리며 누워서 발 장난 치면서【마전(馬𩥇): 말이 땅에 뒹굴며 몸을 비벼대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여기서는 발랑 누워 어리광을 부리며 발버둥을 치는 어린 연암의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개구쟁이 같은 여덟 살 소년 연암의 짖궂은 태도가 이 글자에 잘 집약되어 있다. 그후 28년이 흘러 이 글을 쓸 당시 연암은 서른다섯 살의 장년이었다】

 

效婿語口吃鄭重.

신랑의 말을 흉내 내어 더듬거리며 정중하듯 했었다.

 

姊氏羞, 墮梳觸額,

누이는 부끄러워하며 얼레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를 맞췄기에

 

余怒啼, 以墨和粉,

나는 성질을 내며 울면서 먹으로 분을 섞고

 

以唾漫鏡.

침을 거울에 뱉어 더럽혔었다.

 

姊氏出玉鴨金蜂,

그러자 누이는 옥으로 된 기러기와 금으로 된 나비 노리개를 꺼내

 

賂我止啼, 至今二十八年矣.

나에게 주며 울음을 그치게 했으니,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의 일이로구나.

28년 전 일이 현재의 풍경과 뒤섞이다

 

立馬江上, 遙見丹旐翩然,

말을 강가에 세워두니 아득히 붉은 명정(銘旌)【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 등을 기록하여 상여 앞에 들고 가는 긴 기(旗)를 말한다】이 나부끼는 게 보이고

 

檣影逶迤,

돛대 그림자 구불구불 흘러가

 

至岸轉樹隱不可復見.

강굽이에 이르러 나무 그림자에 가려져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而江上遙山, 黛綠如鬟,

이윽고【이(而):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사이에는 연속과 단절, 고조와 전환, 인식의 비상과 미학적 고양이 존재한다. 아무 뜻도 갖지 않는 이 한 글자가 이 모든 것을 매개하고, 이 모든 것을 실현시키고 있다. 이 점에서 이 글자는 천금의 값어치를 가지며, 아무런 질량도 없으면서도 굉장한 존재론적 무게를 갖는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암을 읽다』, 박희병, 돌베개, 2006, 25~26쪽】 강가의 먼 산은 검푸른 빛깔이 눈썹먹 같고,

 

江光如鏡, 曉月如眉.

강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눈썹 같기만 하다.

 

泣念墮梳, 獨幼時事歷歷,

울며 얼레빗을 떨어뜨릴 때를 생각하니 유독 어릴 때의 일이 하나하나 기억났고

 

又多歡樂, 歲月長,

또한 즐거움과 기쁜 일이 많아 세월이 더디 갈 것만 같더니,

 

中間常苦離患憂貧困, 忽忽如夢中.

중간부턴 늘 근심과 우환과 빈곤이 있어 아득히 마치 꿈인 것만 같다.

 

爲兄弟之日, 又何甚促也?

형제가 되었던 날(누나가 시집가기 전까지 8년을 말함)은 또한 어찌 그리고 금방이던가【연암은 23세 때 모친이 돌아가셨고, 이듬해에 집안의 기둥이었던 조부 박필균이 작고했으며, 31세 때 부친이 돌아가셨다. 부친이 돌아가신 지 4년 만에 다시 큰누님의 죽음을 맞은 것이다. -『연암을 읽다』, 27쪽】.

 

처남 이재성의 이 글에 대한 평

 

緣情爲至禮, 寫境爲眞文.

정을 따르면 지극한 예가 되고, 경치를 묘사하면 참된 글이 된다.

 

文何甞有定法哉?

글이란 게 어찌 일찍이 정해진 법칙이 있겠는가?

 

此篇以古人之文讀之, 則當無異辭,

이 글을 옛 사람의 글로 읽으면 마땅히 다른 말이 없겠지만,

 

而以今人之文讀之, 故不能無疑.

지금 사람의 글고문(古文)’이란 일종의 전통주의로서, 당송팔대가 등 과거에 이미 확립된 문장의 법도를 전범으로 삼는 창작 태도를 가리킨다. '금문'이란, 다른 말로는 시문(時文)’이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반전통주의로서, 고문의 법도에 구애됨이 없이 진솔하고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옮기는 창작 태도를 가리킨다. -연암을 읽다, 30로 읽으면 의심이 없을 수가 없다.

 

願秘之巾衍.

그러니 상자에 넣어 비밀스럽게 간직하길 원한다.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 13)~1805(순조 5) 생애 요약

조선 후기의 실학자ㆍ문인.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ㆍ열상외사(洌上外史).

1737   서울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출생. 장인 이보천(李輔天)의 아우인 이양천(李亮天)에게서 사기(史記)를 시작으로 역사서적을 통해 문장 쓰는 법을 습득함.
1752 16 전주 이씨 보천(輔天)의 딸과 결혼.
1754 18 10대 후반에 우울증에 시달려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18세 무렵에 광문자전(廣文子傳)을 지었다. 지음.
1757 21 민옹전(閔翁傳) 지음.
1759 23 모친 함평 이씨 별세.
1760 24 조부 박필균(朴弼均) 별세로 생활이 곤궁해짐.
1765 29  총석정관일출(叢石亭觀日出)을 지음. 처음 과거시험에 실패하자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게 됨.
1766 30 장남 종의(宗儀) 출생.
1767 31 부친 박사유(朴師愈) 별세.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소설을 완료 지음.
1768 32 백탑(白塔)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어 박제가(朴齊家이서구(李書九서상수(徐常修유득공(柳得恭유금(柳琴) 등과 이웃하면서 학문적으로 깊은 교유를 가짐.
1772 36 종루(鍾樓) 북쪽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우거. 초정집서(楚亭集序) 지음.
1777 41 장인 이보천 별세.
1778 42 황해도 금천군 연암동(燕巖洞)으로 와서 살다.
1780 44 처남 이재성의 집에 머물던 때에 삼종형 박명원(朴明源) 청의 고종 70세 축하사절로 가자 함께 따라가며 열하일기(熱河日記)라는 기록을 남김. 차남 종채(宗采) 출생.
1781 45 북학의서(北學議序) 지음
1783 47 벗 홍대용 별세. 홍덕보묘지명(洪德保墓誌銘) 지음. 열하일기(熱河日記)』 「渡江錄序 지음
1786 50 음보(蔭補)로 선공감 감역에 임명됨.
1787 51 부인 이씨 별세
1789 53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승진
1790 54 의금부 도사ㆍ제릉령(齊陵令)으로 전보됨.
1791 55 한성부 판관으로 전보됨. 안의(安義) 현감에 임명됨.
1792 56 안의에 부임함.
1793 57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을 지음
1796 60 임기 만료로 귀경(歸京). 제용감(濟用監) 주부ㆍ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ㆍ의릉령(懿陵令)으로 전보됨.
1797 61 면천(沔川) 군수로 임명됨.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 지음.
1799 63 과농소초(課農小抄) 지음
1800 64 양양(襄陽) 부사로 승진.
1801 65 양양 부사 사직함.
1805 69 노환으로 별세

 

평가.

1. 연암집(燕巖集), 과농소초(課農小抄), 열하일기(熱河日記), 담총외기(談叢外記)

열하일기 웃음과 유머 연암을 만나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연암을 읽는다
문체반정과 열하일기  
孔雀館文稿 自序 觀齋記
課農小抄諸家摠論後附說 琴鶴洞別墅小集記
蜋丸集序 泠齋集序
菱洋詩集序 綠天館集序
湛軒所藏淸明上河圖跋  
변화를 긍정하라亡羊錄 馬首虹飛記
伯夷論 上 伯夷論 下
髮僧菴記 北學議序
不移堂記  
象記 蟬橘堂記
騷壇赤幟引 酬素玩亭夏夜訪友記
素玩亭記 旬稗序
安義縣 厲壇 神宇記 夜出古北口記
念齋記 玉璽論
嬰處稿序 柳氏圖書譜序
以存堂記 原士
一夜九渡河記 일야구도하기를 지은 이유
自笑集序 族兄都尉公周甲壽序
鍾北小選 自序 晝永簾垂齋記
竹塢記 贈白永叔入麒麟峽序
贈季雨序  
楚亭集序 醉踏雲從橋記
최성대가 쓴 이화암 노승  
楓嶽堂集序 筆洗說
夏夜讌記 限民名田議
幻戱記後識 炯言挑筆帖序
好哭場論 繪聲園集跋
會友錄序  
   
伯嫂恭人李氏墓誌銘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李夢直哀辭 李處士墓碣銘
祭鄭石癡文 洪德保墓誌銘
孝子贈司憲府持平尹君墓碣銘  
放璚閣外傳 自序 穢德先生傳
許生傳 閔翁傳
兩班傳 虎叱
廣文子傳 / 書廣文傳後 烈女咸陽朴氏傳
   
與人 與人
答京之之一 答京之之二
答京之之三 與成伯之二
答仲玉之一 答南壽
答蒼厓之一 答蒼厓之二
答蒼厓之三 答蒼厓之四
答蒼厓之五 答蒼厓之九
答李仲存書 與仲存
答洪德保書() 答洪德保書()
答洪德保書() 映帶亭賸墨自序
與中一之三  
   
叢石亭觀日出 燕岩憶先兄
贈左蘇山人 麈公塔銘
元朝對鏡 遼野曉行
一鷺 渡鴨綠江回望龍灣城
極寒 馬上口號
山行  
熱河日記 過庭錄
  한국한시사

 

行旅夜半相叫譍
행려야반상규응
나그네들이 한 밤중에 부르짖으며 응답하길
遠鷄其鳴鳴未應
원계기명명미응
먼 닭의 울었나? 응당 울진 않았을 텐데.
遠鷄先鳴是何處
원계선명시하처
먼 닭이 먼저 우니 이곳은 어느 곳이던가.
只在意中微如蠅
지재의중미여승
다만 생각 속에 있을 뿐, 은미한 소리는 파리소리 같기만 하네【『시경(詩經) 제풍(齊風) 계명(鷄鳴) 닭이 우는 것이 아니라, 파리 소리로다.匪鷄則鳴 蒼蠅之聲라고 하였다. 현비(賢妃)가 임금이 조회(朝會)에 늦지 않게 깨우려고 조바심하다가 파리 소리를 닭 울음으로 잘못 들었다는 뜻이다.
邨裏一犬吠仍靜
촌리일견폐잉정
마을 안 한 마리 개가 짓다가 이내 조용해지니
靜極寒生心兢兢
정극한생심긍긍
고요함이 극단에 이르니 한기가 생겨 마음이 불안불안.
是時有聲若耳鳴
시시유성약이명
이때 소리가 들리니 이명인 듯하고이명증(耳鳴症)으로 헛소리를 들은 듯하다는 뜻이다..
纔欲審聽簷鷄仍
재욕심청첨계잉
겨우 자세히 들으려 하니 처마의 닭소리 따르네.
此去叢石只十里
차거총석지십리
여기서 총석정까지 거리는 다만 10리 이니
正臨滄溟觀日昇
정림창명관일승
바로 푸른 바다에 다다르면 일출 보이리.
天水澒洞無兆眹
천수홍동무조진
하늘가 물은 넘실거려 해 뜰 조짐 없고
洪濤打岸霹靂興
홍도타안벽력흥
파도가 언덕을 때리니 벼락이 치네.
常疑黑風倒海來
상의흑풍도해래
항상 의심스러운 건 검은 바람이 바다를 뒤집어
連根拔山萬石崩
연근발산만석붕
연이은 뿌리째 산을 뽑아 온 바위가 붕괴될까?
無怪鯨鯤鬪出陸
무괴경곤투출륙
고래 곤어북해(北海)에 살며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물고기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온다. 원문의  병세집에는 로 되어 있다.가 다투다 육지로 나오더라도 괴이치 말고
不虞海運値摶鵬
불우해운치단붕
바다 일어 만나 붕새와 엉기더라도 우려치 말라.
但愁此夜久未曙
단수차야구미서
다만 걱정되는 건 이 밤에 오래도록 동트지 않아
從今混沌誰復徵
종금혼돈수부징
이로부터 혼돈스럽다면혼돈은 천지개벽 초에 만물이 아직 구별되지 않은 어두운 상태를 가리킨다. 이 혼돈은 중국 고대 문헌에서 주로 부정적인 존재로 의인화(擬人化)되었다. 장자 응제왕(應帝王)에서는 눈, , , 귓구멍, 콧구멍이 없는 중앙의 제왕으로 소개되어 있다. 삼황(三皇) 이전 천지의 시초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또한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제홍(帝鴻) 즉 황제(黃帝)의 못난 자식으로서 그 후손이 요순(堯舜) 시대 때 악명 높은 사흉(四凶)의 하나였다고 한다. 신이경(神異經)에는 곤륜산(崑崙山) 서쪽에 사는 악수(惡獸)라고도 하였다. 원문의 從今 병세집에는 從玆로 되어 있다. 누가 다시 징계할까?
無乃玄冥劇用武
무내현명극용무
바다신이 극렬히 힘을 사용하여
九幽早閉虞淵氷
구유조폐우연빙
구유(九幽)구유(九幽): 땅속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킨다.를 일찍 닫고 우연(虞淵)우연(虞淵): 전설상 해가 지는 곳이다.을 얼리지 않겠는가.
恐是乾軸旋斡久
공시건축선알구
아마도 하늘축이 돌고 돌기 오래도록 하다가
遂傾西北隳環絙
수경서북휴환환
마침내 서북쪽으로 기울어져 고리의 끈이 상했네.
三足之烏太迅飛
삼족지오태신비
삼족오는 매우 빠르게 나는 새인데
誰呪一足繫之繩
수주일족계지승
누가 한 발에 주술을 걸어 끈으로 묵어왔나?
海若衣帶玄滴滴
해야의대현적적
해야(海若)해약(海若): 전설상의 해신(海神)이다.의 옷과 띠는 검어 물방울로 적셔 있고
水妃鬢鬟寒凌凌
수비빈환한릉릉
수비(水妃)수비(水妃): 전설상 수중의 신녀(神女)이다.의 쪽 찐 머린빈환(鬢鬟): 양쪽 귀밑머리를 잡아당겨 만든 환상(環狀)의 쪽 찐 머리를 말한다. 차가워 으슬으슬하네.
巨魚放蕩行如馬
거어방탕행여마
큰 고기가 방탕하게 달리길 말처럼 하고
紅鬢翠鬣何鬅鬙
홍빈취렵하붕승
붉은 머리에 비취빛 갈기가 어찌하여 덥수룩한가.
天造草昧誰參看
천조초매수참간
하늘이 어둔 세상 만들 적에 누가 참관했겠는가.
大叫發狂欲點燈
대규발광욕점등
크게 부르짖어 발광하며 등불 켜려 하네.
欃槍擁彗火垂角
참창옹혜화수각
혜성참창(欃槍): 혜성의 이름이고, 혜성은 비를 들어 쓸어 버린 듯이 꼬리를 길게 끌기 때문에 소추성(掃帚星)이라고도 한다.이 꼬리를 끌고 화성(火星)이 광망(光芒)을 뻗치네
禿樹啼鶹尤可憎
독수제류우가증
낙엽 진 나무의 부엉이 울음 더욱더 밉상일레
斯須水面若小癤
사수수면약소절
조금 뒤에 수면에 작은 부스럼 생긴 듯
誤觸龍爪毒可疼
오촉룡조독가동
용의 발톱 잘못 긁혀 독기로 벌겋더니
其色漸大通萬里
기색점대통만리
그 빛이 점점 커져 만리를 비추누나
波上邃暈如雉膺
파상수훈여치응
물결 위에 번진 빛 꿩의 가슴 비슷하이
天地茫茫始有界
천지망망시유계
아득아득 이 천지에 한계 처음 생겼으니
以朱劃一爲二層
이주획일위이층
붉은 붓 한 번 그어 두 층이 되었구려
梅澁新惺大染局
매삽신성대염국
매삽이라 신성매삽 신성은 그 의미가 불확실하나 염색집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원문의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 20일 조에는 으로 되어 있다.이라 염색집이 하도 커서
千純濕色縠與綾
천순습색곡여릉
몇 천 필 색을 들여 온갖 비단 으리으리
作炭誰伐珊瑚樹
작탄수벌산호수
산호나무 누가 베어 참숯을 만들었나
繼以扶桑益熾蒸
계이부상익치증
부상나무 뒤이으니 더욱더 이글이글
炎帝呵噓口應喎
염제가허구응괘
염제는 불을 불어 입이 응당 비틀리고
祝融揮扇疲右肱
축융휘선피우굉
축융축융(祝融): 불을 주관하는 신이다.은 부채 휘둘러 바른팔이 지쳤구려
鰕鬚最長最易爇
하수최장최이설
새우 수염 가장 길어 그슬리기 제일 쉽고
蠣房逾固逾自𦚦
려방유고유자증
굴껍질은 굳을수록 더욱더 절로 익네
寸雲片霧盡東輳
촌운편무진동주
한 치 구름 조각 안개 동으로 다 쓸려 가서
呈祥獻瑞各效能
정상헌서각효능
온갖 상서 바치려고 제 힘을 다하누나
紫宸未朝方委裘
자신미조방위구
자신궁(紫宸宮)자신궁(紫宸宮): 당송(唐宋) 시대에 천자가 신하나 외국의 사신을 조회하던 정전(正殿)이다.엔 조회 전에 바야흐로 갖옷을 모셔놓고임금이 죽고 새 임금이 아직 조정에 나와 앉기 전에는 선왕의 유의(遺衣)인 갖옷을 모셔놓고 조회한다.
陳扆設黼仍虛凭
진의설보잉허빙
병풍만 펼쳐 논 채 용상은 비어 있네
纖月猶賓太白前
섬월유빈태백전
초승달은 샛별 앞에 오히려 밀려나서
頗能爭長辥與滕
파능쟁장설여등
먼저 예를 행하겠다고 등설(滕薛)처럼 제법 맞서누나() 나라 은공(隱公) 11년 봄에 등후(滕侯)와 설후(薛侯)가 노 나라에 조현(朝見)을 왔다가 예를 행하는 데 있어 그 선후를 다투자 은공이 설후를 설득하여 등후가 먼저 예를 행하도록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隱公11』】
赤氣漸淡方五色
적기점담방오색
붉은 기운 차츰 묽어 오색으로 나뉘더니
遠處波頭先自澄
원처파두선자징
먼 물결 머리부터 절로 먼저 맑아지네
海上百怪皆遁藏
해상백괴개둔장
바다 위 온갖 괴물 어디론지 숨어 버리고
獨留羲和將驂乘
독류희화장참승
희화희화(羲和): 전설상 해를 태운 수레를 모는 신이다.만이 홀로 남아 수레 장차 타려 하네
圓來六萬四千年
원래육만사천년
육만이라 사천 년소옹(邵雍)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의하면, 우주가 개시해서 소멸할 때까지를 1()이라 하는데, 1원은 12(), 1회는 30()으로, 1운은 12(), 1세는 30()으로 나뉜다. 따라서 1원은 12 9600년이 된다. 우주의 역사가 6()가 되면 6 4800년이 된다.을 둥글둥글 내려왔으니
今朝改規或四楞
금조개규혹사릉
오늘 아침 동그라미 고쳐 어쩌면 네모가 될라
萬丈海深誰汲引
만장해심수급인
만길의 깊은 바다에서 어느 누가 길어 올렸을까
始信天有階可陞
시신천유계가승
이제서야 믿겠노라 하늘도 오를 계단이 있음을【『논어(論語) 자장(子張), 진자금(陳子禽)이 자공(子貢)에게 공자라도 그대만 못하겠다고 칭찬하자, 자공은 선생님에게 미칠 수 없음은 하늘을 계단을 밟아 오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라고 반박하였다.
鄧林秋實丹一顆
등림추실단일과
등림등림(鄧林): 전설상의 숲 이름이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북경(海外北經), 과보(夸父)가 해를 따라 달리다가 목이 말라 죽었는데 그때 버린 지팡이가 숲을 이뤄 등림이 되었다고 한다.에 가을 열매 한 덩이가 붉었고
東公綵毬蹙半登
동공채구축반등
동공동공(東公): 전설상의 해를 맡은 신이다.이 채색 공을 차서 반만 올렸구려
夸父殿來喘不定
과부전래천부정
과보는 헐레벌떡 뒤따라오고 있고
六龍前道頗誇矜
육룡전도파과긍
육룡은 앞서 끌며전설에서 해의 신이 수레를 타면 여섯 용이 수레를 끌고 희화가 이를 몰고 다닌다고 한다. 원문의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 20일 조에는 로 되어 있다. 교만스레 자랑하네
天際黯慘忽顰蹙
천제암참홀빈축
하늘가 어둑해져 갑자기 눈살 찌푸리듯 하늘가 어두워지다가
努力推轂氣欲增
노력추곡기욕증
어영차 해 수레 미니 기운이 솟아난 듯
圓未如輪長如瓮
원미여륜장여옹
바퀴처럼 둥글잖고 독처럼 길쭉한데
出沒若聞聲砯砯
출몰약문성빙빙
뜰락 말락 하니 철썩철썩 부딪치는 소리 들리는 듯【『병세집에는 이 구절 다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金銀震蕩色未定 欲掛冥靈枝不勝 慌惚直欲雙手擎 轉眄之間一躍騰 快如盡曉難解書 喜極新逢欲招朋 爽如翻惺作噩夢 喉中未聲聲忽能 離海一尺無不照 儘覺生平天宇弘으로 되어 있다.
萬物咸覩如昨日
만물함도여작일
만인이 어제처럼 모두 바라보는데【『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오(九五)의 효사(爻辭)에 대한 공자의 풀이 중에 성인이 나타나시니 만물이 바라본다.聖人作而萬物覩는 말이 있다. 주자(朱子)의 본의(本義)에 의하면 이때 만물(萬物)은 만인(萬人)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해를 성인에 비겼다.
有誰雙擎一躍騰
유수쌍경일약등
어느 뉘 두 손으로 받들어 단번에 올려놨노 燕巖集 卷之四

 

 

해설

연암의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지은 과정록(過庭錄) 1 16에 의하면, 영조 41(1765) 연암은 벗 유언호(兪彦鎬)ㆍ신광온(申光蘊)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할 때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 시를 보고 판서 홍상한(洪象漢)이 칭찬해 마지않았다고 하며, 연암 스스로도 득의작으로 자부하여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 20일 조에 수록해 놓았다. 윤광심(尹光心) 병세집(幷世集)에는 총석관일(叢石觀日)이라는 제하에 수록되어 있는데, 자구의 차이가 있으며 12 84자가 추가되어 있다. 연암집에 수록된 시의 초고로 짐작된다.

 

 

 

북학파 후사가박지원을 따르며 배운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이서구(李書九) 이 네 사람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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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 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

기린협으로 떠나는 강직한 무사 백영숙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 박제가(朴齊家) 天下之至友曰窮交, 友道之至言曰論貧. 嗚呼! 靑雲之士, 或枉駕於蓬蓽; 韋布之流, 或曳裾于朱門, 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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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

기린협으로 떠나는 강직한 무사 백영숙

ㅡ 박제가(朴齊家)

 

天下之至友曰窮交, 友道之至言曰論貧.

嗚呼! 靑雲之士, 或枉駕於蓬蓽; 韋布之流, 或曳裾于朱門, 何其相求之深而相合之難也? 夫所謂友者, 非必含杯酒, 接殷勤, 握手促膝而已也. 所欲言而不言, 與不欲言而自言, 斯二者, 其交之深淺, 可知已.

夫人莫不有恡, 故所私莫過於財; 亦莫不有求, 故所嫌莫甚於財, 論其私而不嫌, 而况於他乎! 『詩』云: “終窶且貧莫知我艱.” 夫我之所艱, 人未必動其毫髮. 故天下之恩怨, 從此而起矣.

彼諱貧而不言者, 豈盡無求於人哉? 然而出門强笑語, 寧能數擧今日之飯與粥乎?

歷陳平生, 而猶不敢問其咫尺之扃鐍, 則幾微之際, 而至難言者, 存焉耳. 必不得已而略試之, 善導而中其彀, 漠然不應於眉睫之間, 則向之所謂欲言而不言者, 今雖言之, 而其實與不言同. 故多財者, 患人之求, 則先稱其所無, 斷人之望, 則故有所不發. 則其所謂含杯酒, 接殷勤, 握手促膝者, 擧不勝其悲凉躑躅, 而不悵然失意而歸者, 幾稀矣.

吾於是乎知論貧之爲不可易得, 而向者之言, 蓋有激而云然也. 夫窮交之所謂至友者, 豈其𤨏細鄙屑而然乎? 亦豈必僥倖可得而言哉?

所處同, 故無形迹之顧; 所患同, 故識艱難之狀而已. 握手勞苦, 必先其飢飽寒煖, 問訊其家人生産, 不欲言而自言者, 眞情之惻怛而感激之使然也. 何昔之至難言者, 今之信口直出而沛然, 莫之能禦也? 有時乎入門長揖, 竟日無言, 索枕一睡而去, 不猶愈於他人十年之言乎? 此無他. 交之不合, 則言之而與不言同, 其交之無間, 則雖黙然兩相忘言, 可也. 云 : “白頭而新, 傾蓋而故.” 其是之謂乎!

 

吾友白君永叔, 負才氣, 遊於世三十年, 卒困無所遇. 今將携其二親, 就食深峽.

嗟乎! 其交也以窮, 其言也以貧, 余甚悲之. 雖然, 夫吾之於永叔, 豈特窮時之交而已哉? 其家未必有並日之煙, 而相逢猶能脫珮刀典酒而飮, 酒酣, 嗚嗚然歌呼, 嫚罵而嬉笑, 天地之悲歡, 世態之炎凉, 契濶之甘酸, 未嘗不在於中也.

嗟乎! 永叔豈窮交之人歟? 何其數從我而不辭也?

 

永叔早知名於時, 結交遍國中. 上之爲卿相牧伯, 次之爲顯人名士, 亦往往相推許. 其親戚鄕黨婚姻之誼, 又不一而足. 而與夫馳馬習射擊劒拳勇之流, 書畵印章博奕琴瑟醫師地理方技之倫, 以至市井皁輿耕漁屠販之賤夫, 莫不日逢於路而致款焉. 又踵門而至者, 相接也. 永叔又能隨其人, 而顔色之, 各得其歡心. 又善言山川謠俗名物古蹟及吏治民隱軍政水利, 皆其所長. 以此而遊於諸所交之人之多, 則亦豈無追呼得意, 淋漓跌蕩之一人?

而獨時時叩余門, 問之則無他往. 永叔長余七歲, 憶與余同閈而居也, 余尙童子, 而今焉已鬚矣. 屈指十年之間, 容貌之盛衰若斯, 而吾二人者, 猶一日也. 卽其交可知已.

嗟乎! 永叔平生重意氣. 嘗手散千金者數矣, 而卒困無所遇, 使不得糊其口於四方. 雖善射而登第, 其志又不肯碌碌浮沈取功名.

今又絜家屬, 入基麟峽中, 吾聞基麟古𧴖國, 險阻甲東海. 其地數百里, 皆大嶺深谷, 攀木杪以度, 其民火粟而板屋, 士大夫不居之. 消息歲僅得一至于京. 晝出則惟禿指之樵夫, 鬅髮之炭戶, 相與圍爐而坐耳. 夜則松風謖謖繞屋而磨軋, 窮禽哀獸, 鳴號而響應. 披衣起立, 彷徨四顧, 其有不泣下沾襟, 悽然而念其京色者乎!

嗟乎! 永叔又胡爲乎此哉! 歲暮而霰雪零, 山深而狐兎肥, 彎弓躍馬, 一發而獲之, 據鞍而笑, 亦足以快齷齪之志, 而忘寂寞之濱也歟! 又何必屑屑於去就之分, 而戚戚於離別之際也! 又何必覓殘飯於京裏, 逢他人之冷眼, 從使人不言之地, 而作欲言不言之狀也!

永叔行矣! 吾向者窮而得友道矣. 雖然, 夫吾之於永叔, 豈特窮時之交而已哉. 

『貞蕤閣文集』 卷之一

 

[해석]

天下之至友曰窮交,

천하의 지극한 우정이란 ‘곤궁할 때의 사귐’이라 말하고

 

友道之至言曰論貧.

우정의 도에 대한 지극한 말은 ‘가난을 논의하는 것’이라 말한다.

 

嗚呼! 靑雲之士, 或枉駕於蓬蓽;

아! 청운의 뜻을 지닌 선비는 간혹 굽혀 가난한 집【蓬蓽: 쑥이나 가시덤불로 지붕을 이었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의 집을 이르는 말】에 수레 타고 오기도 하고

 

韋布之流, 或曳裾于朱門,

포의【韋布: 누추한 옷차림이라는 뜻으로, 벼슬하기 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를 입은 부류는 간혹 권세가의 집에서 옷깃을 끌기도 하니

 

何其相求之深而相合之難也?

어째서 서로 구하는 것이 극심한데도 서로 합치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夫所謂友者, 非必含杯酒,

대저 소위 벗이란 반드시 술잔을 머금고

 

接殷勤, 握手促膝而已也.

은근하게 통해 손을 맞잡고 무릎을 대고 마주 앉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所欲言而不言, 與不欲言而自言,

말하고자 하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하려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말하는 것,

 

斯二者, 其交之深淺, 可知已.

이 두 가지는 사귐의 깊고 옅음을 알 수 있다.

 

夫人莫不有恡, 故所私莫過於財;

무릇 사람은 인색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사사로운 것은 재물보다 지나치는 게 없고

 

亦莫不有求, 故所嫌莫甚於財,

또한 추구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은 재물보다 심한 게 없으니

 

論其私而不嫌, 而况於他乎!

사사롭지만 미워하지 않음만을 논의하니 하물며 다른 건 오죽할까.

 

『詩』云 : “終窶且貧莫知我艱.

『시경』에서 “종일토록 가난하고도 또 가난한데 나의 어려움 알아주질 않네.”라고 말했다.

 

夫我之所艱, 人未必動其毫髮.

대체로 내가 어렵게 여기는 것을 사람들은 반드시 터럭만큼도 움직여주지 않는다.

 

故天下之恩怨, 從此而起矣.

그러므로 천하의 은혜와 원한이 이로부터 일어난다.

 

彼諱貧而不言者, 豈盡無求於人哉?

자신의 가난을 꺼려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찌 다 남에게 추구할 게 없겠는가?

 

然而出門强笑語,

그러나 문에 나가 억지로 웃으며 말하더라도

 

寧能數擧今日之飯與粥乎?

어찌 오늘 밥을 먹을지 죽을 먹을지 일일이 열거할 수 있겠는가?

 

歷陳平生, 而猶不敢問其咫尺之扃鐍,

평생의 일을 일일이 진술하면서도 오히려 감히 가까운 곳의 빗장 자물쇠에 대해 묻질 않는 것은

 

則幾微之際, 而至難言者, 存焉耳.

기미가 있는 즈음에 지극히 어려운 말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必不得已而略試之,

반드시 부득이하게 대략 그걸 시험해보려

 

善導而中其彀, 漠然不應於眉睫之間,

잘 이끌어 과녁에 적중했더라도 막연히 눈썹 사이에서 반응이 없으면

 

則向之所謂欲言而不言者,

앞에서 말했던 ‘말하고자 하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이니

 

今雖言之, 而其實與不言同.

이제 비록 말했다하더라도 실제로는 말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故多財者, 患人之求,

그러므로 많은 재물을 지닌 사람이 남이 요구할까 걱정하여

 

則先稱其所無, 斷人之望,

먼저 없는 것을 말하며 남의 바람을 잘라버린다면

 

則故有所不發.

발설하지 못하는 게 있게 된다.

 

則其所謂含杯酒, 接殷勤,

그리하면 앞에서 말했던 ‘술잔을 머금고 은근하게 통해

 

握手促膝者, 擧不勝其悲凉躑躅,

무릎을 대고 마주 앉았던 사람’도 대거 슬픔과 처량함과 머뭇거림을 이기지 못해

 

而不悵然失意而歸者, 幾稀矣.

슬퍼하며 실의한 채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거의 드물리라.

 

吾於是乎知論貧之爲不可易得, 而向者之言,

나는 이에 가난함을 논의함이 쉽게 얻을 수 없으며 앞서 말했던 것이

 

蓋有激而云然也.

대체로 격동함이 있어 말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夫窮交之所謂至友者,

대저 ‘곤궁할 때의 사귐이 지극한 우정’이라 말한 것이

 

豈其𤨏細鄙屑而然乎?

어찌 자질구레하고 비루하여 그런 것이겠는가.

 

亦豈必僥倖可得而言哉?

또한 어찌 반드시 요행으로 얻을 수 있기에 말한 것이겠는가.

 

所處同, 故無形迹之顧;

처한 게 같기 때문에 돌아볼 자취가 없고

 

所患同, 故識艱難之狀而已.

걱정하는 게 같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알 뿐이다.

 

握手勞苦, 必先其飢飽寒煖,

손을 맞잡고 수고할 때엔 반드시 굶주림과 배부름, 차가움과 따스함을 먼저 하고서

 

問訊其家人生産,

그 집사람의 살림을 물어야 하니

 

不欲言而自言者, 眞情之惻怛而感激之使然也.

‘말하려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말하는 것’이라는 건 진정 슬퍼하고 감격하여 그리하게 된 것이다.

 

何昔之至難言者, 今之信口直出而沛然,

어째서 예전에 지극히 어렵던 말이 지금은 입을 따라 곧이곧대로 쏟아져 나와

 

莫之能禦也?

막을 수가 없는 것인가?

 

有時乎入門長揖, 竟日無言,

이따금 문에 들어가 길게 읍하고 날이 마치도록 말 없이

 

索枕一睡而去, 不猶愈於他人十年之言乎?

베개를 찾아 한숨 자고 떠나도 타인과 10년 동안 말한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

 

此無他.

이것은 다른 게 없다.

 

交之不合, 則言之而與不言同,

사귐에 합치되지 않으면 말했더라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고

 

其交之無間, 則雖黙然兩相忘言, 可也.

사귐에 동떨어지지 않으면 비록 묵묵히 둘이 서로 말을 잊었더라도 괜찮다.

 

云 : “白頭而新, 傾蓋而故.”

『설원(說苑)』에서 “흰 머리가 되도록 오래 만났는데도 낯설지만 잠깐 만난 사이인데도 친근하다.”라고 한 것이,

 

其是之謂乎!

이것을 말한 것이로구나.

 

吾友白君永叔, 負才氣,

나의 벗 백영숙은 재기를 자부하고

 

遊於世三十年, 卒困無所遇.

세상에 30년 동안 유람하였는데 마침내 곤궁하여 불우했다.

 

今將携其二親, 就食深峽.

이제 장차 두 친구를 데리고 깊은 기린협으로 나아가 먹으려 한다.

 

嗟乎! 其交也以窮,

아! 사귐은 곤궁함으로 하였고

 

其言也以貧, 余甚悲之.

말함은 가난함으로 하였으니 나는 매우 슬프다.

 

雖然, 夫吾之於永叔,

비록 그러나 내가 영숙에 대해

 

豈特窮時之交而已哉?

어찌 다만 곤궁할 때의 사귄 사람이기만 하겠는가.

 

其家未必有並日之煙,

집에 반드시 이틀 간의 땔감이 없었는데도

 

而相逢猶能脫珮刀典酒而飮,

서로 만나면 오히려 차던 칼을 풀어 전당잡히고 술을 마셨고

 

酒酣, 嗚嗚然歌呼, 嫚罵而嬉笑,

술이 취하면 목청껏 노래를 불렀으며 욕지꺼리하고 웃어재꼈으니

 

天地之悲歡, 世態之炎凉, 契濶之甘酸,

천지의 슬픔과 기쁨, 세태의 따스함과 서늘함, 만나고 헤어짐의 달콤함과 시큼함이

 

未嘗不在於中也.

일찍이 그 속에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嗟乎! 永叔豈窮交之人歟?

아! 영숙은 어찌 곤궁할 때 사귄 사람이겠는가?

 

何其數從我而不辭也?

어째서 자주 나를 따르면서도 사양하지 않았는가?

 

永叔早知名於時, 結交遍國中.

영숙은 일찍 이름이 세상에 알려져 두루 나라에서 사람을 사귀었다.

 

上之爲卿相牧伯,

위로는 도승지ㆍ재상ㆍ목사ㆍ관찰사가 된 사람과

 

次之爲顯人名士,

다음으론 현달한 사람과 이름난 선비가 된 사람이

 

亦往往相推許.

또한 이따금 서로 추천하여 허락하였다.

 

其親戚鄕黨婚姻之誼, 又不一而足.

친척과 마을에 혼인으로 우의를 다진 사람이 또한 한 둘이 아니었다.

 

而與夫馳馬習射擊劒拳勇之流,

말을 달리고 화살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주먹질 하는 부류들과

 

書畵印章博奕琴瑟醫師地理方技之倫,

화가나 조각가, 국수, 연주가, 의사, 풍수지리가, 점성술 등의 부류들과

 

以至市井皁輿耕漁屠販之賤夫,

저자거리의 수레꾼과 농부, 어부, 상인의 천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莫不日逢於路而致款焉.

날마다 길에서 만나면 정성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又踵門而至者, 相接也.

또한 문을 밟고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접대하였다.

 

永叔又能隨其人, 而顔色之,

영숙은 또한 그 사람에 따라 안색을 바꿔

 

各得其歡心.

각각 환심을 얻을 수 있었다.

 

又善言山川謠俗名物古蹟及吏治民隱軍政水利,

또한 산천의 민요나 명물, 오랜 유적 및 관리의 다스림, 백성의 깊은 속, 군정【軍政: 전쟁이나 사변 중에 점령 지역의 군사령관이 임시로 행하는 통치 행위】과 수리【水利: 물을 식수, 관개용, 공업용 등으로 이용함】들을 잘 말했는데

 

皆其所長.

모두 장점인 것이었다.

 

以此而遊於諸所交之人之多,

이것으로 뭇 교유한 많은 사람들과 논다면

 

則亦豈無追呼得意, 淋漓跌蕩之一人?

또한 어찌 뜻을 얻어 땀 흥건하고 질탕하게 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겠는가.

 

而獨時時叩余門, 問之則無他往.

그러나 홀로 이따금 우리집 문을 두드리니 물으면 다른 데 갈 데가 없다고 한다.

 

永叔長余七歲, 憶與余同閈而居也,

영숙은 나보다 7살 위로 나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것을 기억해보면

 

余尙童子, 而今焉已鬚矣.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는데 지금은 이미 수염이 났다.

 

屈指十年之間, 容貌之盛衰若斯,

10년을 손꼽는 사이에 용모의 성쇠가 이와 같지만

 

而吾二人者, 猶一日也.

우리 두 사람은 오히려 어제 만난 것 같다.

 

卽其交可知已.

곧 그 사귐을 알 만할 뿐이다.

 

嗟乎! 永叔平生重意氣.

아! 영숙은 평생 의기를 중하게 여겼다.

 

嘗手散千金者數矣, 而卒困無所遇,

일찍이 손수 천금을 흩은 게 여러 번으로 마침내 곤궁하여 불우하였고

 

使不得糊其口於四方.

그 입에 사방에서 풀칠할 수가 없었다.

 

雖善射而登第,

비록 활을 잘 쏘고 급제했지만

 

其志又不肯碌碌浮沈取功名.

그 뜻은 또한 만만하게 남을 따라 뜨고 가라앉으며 공명을 취하길 즐거워하지 않았다.

 

今又絜家屬, 入基麟峽中,

이제 또한 집사람들을 이끌고 기린협으로 들어가니

 

吾聞基麟古𧴖國, 險阻甲東海.

내가 듣기로 기린협은 예전 예맥국의 땅으로 험하고 좁기가 동해에서 갑이란다.

 

其地數百里, 皆大嶺深谷,

그 땅 수백 리는 모두 큰 고개와 깊은 골짜기로

 

攀木杪以度, 其民火粟而板屋,

나뭇가지를 잡고서 건너며 그 백성들은 화전을 일구고 초가를 엮으니

 

士大夫不居之.

사대부는 살지 않는다.

 

消息歲僅得一至于京.

소식은 한 해에 겨우 한 번 서울에 이를 수 있다.

 

晝出則惟禿指之樵夫,

낮에 나가면 오직 거칠어진 손가락의 나무꾼과

 

鬅髮之炭戶, 相與圍爐而坐耳.

머리 헝클어진 숯쟁이와 서로 화로에 둘러 앉아 있을 뿐이리라.

 

夜則松風謖謖繞屋而磨軋,

밤이 되면 솔바람이 집을 에워싸서 불어 흔들고

 

窮禽哀獸, 鳴號而響應.

배고픈 새들과 슬픈 짐승이 울어대니 그 소리에 모두 응답할 것이다.

 

披衣起立, 彷徨四顧,

옷을 떨치고 일어나 방황하며 사방을 둘러보면

 

其有不泣下沾襟, 悽然而念其京色者乎!

눈물 흘러 옷을 적셔 서글피 서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嗟乎! 永叔又胡爲乎此哉!

아! 영숙은 또한 어찌 이것을 하는 것인가?

 

歲暮而霰雪零, 山深而狐兎肥,

한 해 말에 싸리눈이 내리면 산이 깊어 여우와 토끼가 살찌리니

 

彎弓躍馬, 一發而獲之,

활을 당기고 말을 타 한 번 발사하여 잡고

 

據鞍而笑, 亦足以快齷齪之志,

안장에 앉아 웃으니 또한 악착스런 뜻을 풀어내기에 충분해

 

而忘寂寞之濱也歟!

적막한 바닷가임을 잊을 수 있으리라.

 

又何必屑屑於去就之分, 而戚戚於離別之際也!

또한 하필 거취의 나누어짐에 신경 쓰며 이별의 경계에서 근심하겠는가.

 

又何必覓殘飯於京裏, 逢他人之冷眼,

또한 하필 서울 속에서 남은 밥을 찾느라 다른 사람의 냉대를 만나고

 

從使人不言之地, 而作欲言不言之狀也!

사람에게 말하지 못할 처지에 있으면서 말하려 해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겠는가.

 

永叔行矣! 吾向者窮而得友道矣.

영숙의 떠남이여! 나는 예전에 곤궁함에도 벗의 도리를 얻었다.

 

雖然, 夫吾之於永叔,

비록 그러나 대저 나는 영숙에 대해

 

豈特窮時之交而已哉. 

어찌 다만 곤궁한 때에 사귄 이일 뿐이겠는가.

貞蕤閣文集 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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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증백영숙입기린협서(贈白永叔入麒麟峽序)

영숙 백동수가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걸 전송하며 쓰다 증백영숙입기린협서(贈白永叔入麒麟峽序) 박지원(朴趾源) 무사 백동수의 근실했던 삶 永叔將家子. 其先有以忠死國者, 至今士大夫悲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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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백동수의 근실했던 삶

永叔將家子. 其先有以忠死國者, 至今士大夫悲之.

永叔工篆隸嫺掌故, 年少善騎射, 中武擧. 雖爵祿拘於時命, 其忠君死國之志, 有足以繼其祖烈, 而不媿其士大夫也.

 

내가 연암협에 들어갈 때 걱정해주던 영숙의 모습

嗟呼! 永叔胡爲乎盡室穢貊之鄕?

永叔嘗爲我相居於金川之燕巖峽. 山深路阻, 終日行, 不逢一人. 相與立馬於蘆葦之中, 以鞭區其高阜, : “彼可籬而桑也, 火葦而田, 歲可粟千石.” 試敲鐵, 因風縱火, 雉格格驚飛, 小麞逸於前. 奮臂追之, 隔溪而還.

仍相視而笑曰: “人生不百年, 安能鬱鬱木石居食粟雉兎者爲哉?”

 

너 떠나는 게 맘 아프지만 나 자신의 상홍이 더 맘 아프기에 슬퍼하진 않네

永叔將居麒麟, 負犢而入, 長而耕之, 食無鹽豉, 沈樝梨而爲醬, 其險阻僻, 遠於燕巖, 豈可比而同之哉.

顧余徊徨岐路間, 未能決去就, 況敢止永叔之去乎?

吾壯其志, 而不悲其窮. 其人行之, 可悲如此, 而却不爲之悲, 其不能去者之尤有可悲可知. 音節豪壯, 如聞擊筑. 

燕巖集 卷之一

 

무사 백동수의 근실했던 삶

永叔將家子.

영숙은 장수 집안의 자식【장가자(將家子): 증조부 백시구(白時耈, 1649~1722)가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ㆍ함경도ㆍ평안도의 병마절도사를 지낸 일을 가리킨다. 하지만 백영숙의 조부인 백상화가 백시구의 서자였으므로 백영숙은 서얼 신분이었다. -『연암을 읽는다』, 223쪽】이다.

 

其先有以忠死國者, 至今士大夫悲之.

그 선조 중에 충성으로 나라에 목숨 바친 사람【증조부 백시구(白時耈)가 경종(景宗) 때 벌어진 노론과 소론 간의 권력 투쟁인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루되어 죽은 일을 가리킨다. 경종은 장희빈의 아들인데, 병약한 데다 후사가 없었다. 이 때문에 노론측은 경종의 이복동생인 연잉군(뒤의 영조)을 후계자로 세울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연잉군이 우여곡절 끝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노론측은 다시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경종을 비호하며 노론과 대립하고 있던 소론은 노론이 역모를 꾀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에 영의정을 비롯한 노론 대신(大臣) 넷이 역모죄로 사사되고, 그 외 노론측 인사 수백 명이 사형당하거나 유배되었다. 이 일이 신축년(辛丑年, 1721)과 임인년(壬寅年, 1722) 사이에 일어났으므로 간지의 첫 글자를 각각 따서 신임사화라고 이른다. 신임사화 당시 백시구는 노론의 거두였던 영의정 김창집(金昌集)과 연루되었다는 자백을 강요받다가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이에 노론측 인사들은 백시구가 노론의 의리를 지키다 순절했다고 평가하여 충절을 지킨 무장이라고 기렸다. -『연암을 읽는다』, 223~224쪽】이 있기에 지금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그를 슬퍼한다.

 

永叔工篆隸嫺掌故,

영숙은 전서(篆書)와 예서(隷書)에 기술이 좋고 전고(典故)를 익혔으며【백동수는 무인이지만 문학에도 밝았다. 당시 서얼 출신은 비록 무과에 급제하더라도 벼슬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1772년 영조는 서얼을 중용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그러나 병조(兵曹)에서 실제 서얼을 기용한 경우는 영조가 직접 거명한 한 사람뿐이었다. 이듬해 영조는 이 일이 임금의 명령을 가볍게 여긴 것이라 하여 훈련도감의 수석 선전관이던 백동준 및 그 밖의 선전관들을 유배 보냈다. 그리고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에 추천된 후보자 중에서 그 자리를 채우게 하였다. 이때 백동수도 후보 명단에 올랐으나 유배 간 백동준이 재종형이었으므로 그를 대신하여 벼슬할 수는 없었다. 또 조정의 논의도 재종형제 사이의 교체는 안 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런 일을 겪은 후 백동수는 기린협으로 들어가게 된다. -『연암을 읽는다』, 224쪽】

 

年少善騎射, 中武擧.

나이가 젊어 말 타며 활쏘기를 잘해 무과에 급제했다.

 

雖爵祿拘於時命,

비록 벼슬과 녹봉이 시대의 운명에 구애되었지만

 

其忠君死國之志, 有足以繼其祖烈,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나라에 목숨을 바친 뜻은 넉넉히 선조의 공열을 계승할 만하니

 

而不媿其士大夫也.

사대부들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연암협에 들어갈 때 걱정해주던 영숙의 모습

 

嗟呼! 永叔胡爲乎盡室穢貊之鄕?

아! 영숙은 어째서 집안 식구를 다 데리고 강원도의 고을로 가는 것인가?

 

永叔嘗爲我相居於金川之燕巖峽.

영숙은 일찍이 나를 위해 금천의 연암협에서 머물 곳의 지리를 봐줬었다.

 

山深路阻, 終日行, 不逢一人.

산은 깊고 길은 좁아 종일토록 걷더라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다.

 

相與立馬於蘆葦之中, 以鞭區其高阜, 曰:

서로 갈대숲에 말을 세우고 채찍으로 높은 언덕을 구획지으며 말했다.

 

“彼可籬而桑也,

“저기는 뽕나무로 울타리 세울 만하고

 

火葦而田, 歲可粟千石.”

갈대를 태워 밭으로 만들면 한 해에 곡식이 천섬이 될 만하겠구려.”

 

試敲鐵, 因風縱火,

시험삼아 철을 쳐서 바람에 따라 불을 놓으니

 

雉格格驚飛, 小麞逸於前.

꿩들이 제각각 놀라 달아갔고 작은 노루는 앞으로 달아났다.

 

奮臂追之, 隔溪而還.

팔을 휘두르며 쫓아갔다가 시내에 막혀서 돌아왔다.

 

仍相視而笑曰: “人生不百年,

이에 서로 보고 웃으며 말했다. “사람의 삶이란 100년도 채 못 사는데

 

安能鬱鬱木石居食粟雉兎者爲哉?”

어째서 답답하게 나무와 돌 사이에 살면서 꿩과 토끼를 먹는 짓을 하리오?”

 

 

 

너 떠나는 게 맘 아프지만 나 자신의 상홍이 더 맘 아프기에 슬퍼하진 않네

 

永叔將居麒麟也,

이제 영숙은 장차 기린협에 거처하려

 

負犢而入, 長而耕之,

송아지를 짊어지고 들어가

【이 말은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길이 워낙 험하여 송아지를 몰고 갈 수 없어 등에 업고서야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유곤전(劉昆傳)」에 보면, 유곤이 혼란한 정국을 피해 하남(河南)의 부독산(負犢山)으로 들어갔다는 말이 보인다. 연암은 이러한 어구를 사용하여 뜻있는 사람이 때를 만나지 못해 깊은 곳에 은거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연암을 읽는다』, 229쪽】 

키우며 농사지으려 하고

 

食無鹽豉, 沈樝梨而爲醬,

먹을 메주도 없어 아가위를 담가 장을 만든다고 한다.

 

其險阻僻, 遠於燕巖,

그곳의 험하고 좁고 궁벽함이 연암협보다도 심하니

 

豈可比而同之哉.

어찌 비교하여 같다할 수 있겠는가.

 

顧余徊徨岐路間, 未能決去就,

돌아보건대 나는 갈림길에서 배회하며 거취를 결정할 수 없는 지경인데

 

況敢止永叔之去乎?

하물며 감히 영숙의 떠남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는가.

 

吾壯其志, 而不悲其窮.

나는 영숙의 뜻을 씩씩하다 여기기에 그 곤궁함을 슬퍼하지 않겠다.

 

其人行之, 可悲如此, 而却不爲之悲,

그 사람이 떠남에 슬퍼할 만한 것이 이와 같은데도 도리어 슬퍼하지 않았으니

 

其不能去者之尤有可悲可知.

떠날 수 없는 사람은 더욱 슬퍼할 만한 일이 있다는 알 수 있으리라.

 

音節豪壯, 如聞擊筑. 『燕巖集』 卷之一

음절이 호탕하고 웅장하여 고점리(高漸離)가 축을 치는 소릴 듣는 것【전국 시대 말기 진(秦) 나라에 의해 위(衛) 나라가 멸망당하자 위 나라 출신의 자객인 형가(荊軻)가 연(燕) 나라로 망명을 갔다가 축(筑) 연주를 잘하는 고점리를 만나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형가가 연 나라 태자의 간청을 받고 진 나라 왕을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되자 역수(易水)를 건너기 전에 전송객을 향해 고점리의 축 반주에 맞추어 강개한 곡조로 노래를 불렀더니, 사람들이 그에 감동하여 모두 두 눈을 부릅떴으며 머리카락이 곤두서 관(冠)을 찌를 듯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86 「刺客列傳」】만 같았다.

[해설]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기린면(麒麟面)의 산골짜기로 이주하고자 떠나는 벗 백동수(白東修, 1743~1816)를 위해 지은 증서(贈序)이다. 백동수는 자(字)가 영숙(永叔)이고, 호는 인재(靭齋), 야뇌(野餒) 등이다. 그는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백시구(白時耈, 1649~1722)의 서자(庶子)인 백상화(白尙華)의 손자였다. 따라서 신분상 서얼에 속하여, 일찍 무과에 급제해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나 관직 진출에 제한을 받았다. 오랜 낙백(落魄) 시절을 거쳐, 1789년(정조 13) 장용영 초관(壯勇營哨官)이 되어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齊家)와 함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그 후 비인 현감(庇仁縣監)과 박천 군수(博川郡守) 등을 지냈다. 백동수는 이덕무의 처남이기도 하다. 『硏經齋全集』 本集 卷1 「書白永叔事」 박제가도 기린협으로 이주하는 백동수를 위해 장문의 송서(送序)를 지어 주었다.

 『貞蕤閣文集』 卷1 「送白永叔基麟峽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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