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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虎叱)
(호랑이의 질책, 범의 꾸중)
-박지원(朴趾源, )
虎睿聖文武慈孝智仁雄勇壯猛
(호예성문무자효지인웅용장맹) : 범은 모든 일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착하고 성스러우며, 문채롭고 무인다우며, 인자롭고 효성이 지극하며, 슬기롭고 어질며, 기운차고 날래며, 용맹스럽고 사나워
天下無敵
(천하무적) :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다.
然狒胃食虎
(연비위식호) : 그러나 비위는 호랑이를 먹고,
竹牛食虎
(죽우식호) : 죽우도 호랑이를 먹고,
駮食虎
(박식호) : 박도 호랑이를 먹고,
五色獅子食虎於巨木之岫
(오색사자식호어거목지수) : 오색사자도 호랑이를 먹고,
玆白食虎
(자백식호) : 자백도 호랑이를 먹고,
䶂犬飛食虎豹
(표견비식호표) : 표견도 날아서 호랑이를 잡아 먹고
黃要取虎豹心而食之
(황요취호표심이식지) : 황요 등은 호랑이의 심장을 취하여 먹는다.
猾無骨爲虎豹所呑
(활무골위호표소탄) : 활이란 동물은 뼈가 없는 관계로 호랑이가 꿀떡 삼켜 버리면
內食虎豹之肝
(내식호표지간) : 뱃속에 들어가서 그 간을 먹으며,
酋耳遇虎
(추이우호) : 추이(酋耳)란 짐승은 호랑이를 만나면
則裂而啖之
(칙렬이담지) :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먹는 습성이 있다.
虎遇猛㺎
(호우맹용) : 그리고 호랑이가 맹용을 만나면
則閉目而不敢視
(칙폐목이불감시) : 무서워서 눈을 감고 보지도 못한다.
人不畏猛㺎而畏虎
(인불외맹용이외호) : 그러나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호랑이를 무서워한다.
虎之威其嚴乎
(호지위기엄호) : 어쨌든 호랑이의 위세란 대단한 것인저.
虎食狗則醉
(호식구칙취) : 범이 개를 잡아먹으면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하고
食人則神
(식인칙신) : 범이 사람을 한번 잡아먹으면 신들린 듯 하다
虎一食人
(호일식인) : 호랑이가 한번 사람을 먹으면
其倀爲屈閣
(기창위굴각) : 그 창귀가 굴각이 되어
在虎之腋
(재호지액) :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살면서
導虎入廚
(도호입주) : 범을 남의 집 부엌에 인도하여서
舐其鼎耳
(지기정이) : 솥전을 핥으면
主人思饑(주인사기) : 그 집 주인이 갑자기 시장끼를 느껴
命妻夜炊
(명처야취) : 한밤중이라도 아내더러 밥을 지으라고 하게 된다
虎再食人
(호재식인) : 두번째로 그 사람을 잡아 먹는다.
其倀爲彛兀(기창위이올) : 그러면 창귀는 이올이란 귀신이 되어서
在虎之輔(재호지보) : 호랑이의 볼에 붙어 다니며
升高視虞(승고시우) : 높은 곳에 올라 우를 살핀다.
若谷穽弩(약곡정노) : 만약 산골짜기에 이르러서 함정이 있으면
先行釋機(선행석기) : 먼저 가서 위험이 없도록 차귀를 풀어 놓는다.
虎三食人(호삼식인) : 호랑이가 세번째로 사람을 잡아 먹으면
其倀爲鬻渾(기창위죽혼) : 그 창귀는 육혼이란 귀신이 되어서
在虎之頤(재호지이) : 호랑이 턱에 붙어서
多贊其所識朋友之名(다찬기소식붕우지명) : 그가 평소에 잘 알던 친구의 이름을 불러댄다.
虎詔倀曰(호조창왈) : 어느 날 범이 창귀를 불러 놓고 하는 말이,
日之將夕(일지장석) : "오늘도 곧 날이 저무는데
于何取食(우하취식) :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한단 말이냐." 하니
屈閣曰(굴각왈) : 굴각이 대답하기를,
我昔占之(아석점지) : "제가 전에 점쳐 보았더니
匪角匪羽(비각비우) : 뿔을 가진 짐승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黔首之物(검수지물) : 검은 머리를 가진 것이
雪中有跡(설중유적) : 눈 위에 발자국이
彳亍踈武(척촉소무) : 비틀비틀 성긴 걸음,
瞻尾在腦(첨미재뇌) : 뒤통수에 꼬리가 붙어
莫掩其尻(막엄기고) : 꽁무니를 감추지 못하는 그런 놈입니다." 하니
彛兀曰(이올왈) : 다음에 이올이 말하기를,
東門有食(동문유식) : "동문에 먹을 것이 하나 있는데,
其名曰醫(기명왈의) : 그 놈의 이름은 의원(醫員)이라고 합니다.
口含百草(구함백초) : 의원(醫員)은 약초를 다루고 먹으니
肌肉馨香(기육형향) : 그 고기도 별미(別味)인 줄로 아옵니다.
西門有食(서문유식) : 그리고 서문에도 먹을 것이 있는데
其名曰巫(기명왈무) : 그것은 무당입니다.
求媚百神(구미백신) : 그 계집은 천지 신명께 온갖 미태(媚態)를 부리고
日沐齊潔(일목제결) : 매일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여
請爲擇肉於此二者(청위택육어차이자) : 깨끗하고 맛있는 계집이오니 이 둘 중에서 골라서 잡수시길 바라옵니다." 하니,
虎奮髯作色曰(호분염작색왈) : 범이 화를 내며 하는 말이,
醫者疑也(의자의야) : "의(醫)란 의(疑)인데
以其所疑而試諸人(이기소의이시제인) : 저 자신도 의심스러운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시험하여,
歲所殺常數萬(세소살상수만) : 해마다 죽이는 것이 항상 몇 만이 넘는다.
巫者誣也(무자무야) : '무(巫)란 무(誣)인데
誣神以惑民(무신이혹민) : 결국 무당이란 귀신을 속이고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니
歲所殺常數萬(세소살상수만) : 해마다 목숨 잃는 것이 수만이나 된다
衆怒入骨(중노입골) : 그래서 여러 사람의 노여움은 그들의 뼈 속에까지 스며들어
化爲金蚕(화위금잠) : 금잠이란 벌레가 되어서
毒不可食(독불가식) : 독기가 있어 먹을 수 없다."
鬻渾曰(죽혼왈) : 이에 육혼이 또 말한다.
有肉在林(유육재림) : "어떤 고기가 저 숲속에 있는데
仁肝義膽(인간의담) : 인자한 염통과 의기로운 쓸개며
抱忠懷潔(포충회결) : 충성스런 마음을 지니고 순결한 지조를 품었으며,
戴樂履禮(대악리례) : 악은 머리 위에 이고 예는 신처럼 신고 다닌답니다.
口誦百家之言(구송백가지언) : 뿐만 아니라 그는 입으로 제자(諸子)백가(百家)의 말들을 외며,
心通萬物之理(심통만물지리) :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했으니
名曰碩德之儒(명왈석덕지유) : 그의 이름은 석덕지유라 하옵니다.
背盎軆胖(배앙체반) :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五味俱存(오미구존) : 오미(五味)를 갖추고 있답니다." 하였다.
虎軒眉垂涎(호헌미수연) : 범이 그제야 눈썹을 치켜세우고 침을 내리 흘리며
仰天而笑曰(앙천이소왈) : 하늘을 쳐다보고 씽긋 웃으면서 말한다.
朕聞如何(짐문여하) : "짐(朕)이 이를 좀더 상세히 듣고자 하니 자세히 말하라." 했다.
倀交薦虎曰(창교천호왈) : 그러자 창귀들이 서로 범에게 추천하기를,
一陰一陽之謂道(일음일양지위도) : "일 음· 일 양을 도(道)라 하옵는데,
儒貫之(유관지) : 저 유가 이를 꿰뚫으며
五行相生(오행상생) : 오행(五行)이 서로 낳고
六氣相宣(륙기상선) : 육기(六氣)가 서로 이끌어 주는데,
儒導之(유도지) : 저 유가 이를 조화시킨다고 합니다.
食之美者無大於此
(식지미자무대어차) : 그러니 먹어서 맛이 있는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리라."
虎愀然變色易容而不悅曰
(호초연변색역용이불열왈) : 범이 이 말을 듣고 문득 추연히 낯빛을 붉히며 기쁘지 않은 어조로 말한다.
陰陽者
(음양자) : "아니야, 저 음·양이란 것은
一氣之消息也而兩之
(일기지소식야이량지) : 한 기운의 생성과 소멸에 불과하다거늘 그들이 두 가지를 겸했으니
其肉雜也
(기육잡야) : 그 고기가 잡될 것이며,
五行定位
(오행정위) : 오행이 각기 제 자리에 있어서
未始相生
(미시상생) :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거늘
乃今强爲子母
(내금강위자모) : 이제 그들이 억지로 자·모로 갈라서
分配醎酸
(분배함산) : 짜고 신맛을 분배시켰으니
其味未純也
(기미미순야) : 그 맛이 순하지 못할 것이며,
六氣自行
(륙기자행) : 육기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어서
不待宣導
(불대선도) : 남이 이끌어줌을 기다릴 것이 없거늘
乃今妄稱財相
(내금망칭재상) : 이제 그들이 망녕되어 재성·보상이라 일컬어서
私顯己功
(사현기공) : 사사로이 자기 공을 세우려 하니,
其爲食也
(기위식야) : 그것을 먹는다면
無其硬强滯逆而不順化乎
(무기경강체역이불순화호) : 어찌 딱딱하여 가슴에 체하거나 목구멍에 구역질이 나서 순하게 소화가 되지 못할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鄭之邑
(정지읍) : 정나라 어느 고을에
有不屑宦之士曰
(유불설환지사왈) : 벼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학자가 살았으니
北郭先生
(북곽선생) : '북곽 선생(北郭先生)'이었다.
行年四十
(행년사십) : 그는 나이 마흔에
手自校書者萬卷
(수자교서자만권) : 손수 교정(校訂)해 낸 책이 만 권이었고,
敷衍九經之義
(부연구경지의) : 또 육경(六經)의 뜻을 부연해서
更著書一萬五千卷
(경저서일만오천권) : 다시 저술한 책이 일만 오천 권이었다.
天子嘉其義
(천자가기의) : 천자(天子)가 그의 행의(行義)를 가상히 여기고
諸侯慕其名
(제후모기명) : 제후(諸侯)가 그 명망을 존경하고 있었다.
邑之東
(읍지동) : 그 고장 동쪽에는
有美而早寡者
(유미이조과자) : 미모의 과부가 있었는데,
曰東里子
(왈동리자) : 동리자(東里子)라는고 불렀다
天子嘉其節(천자가기절) : 천자가 그 절개를 가상히 여기고
諸侯慕其賢(제후모기현) :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여,
環其邑數里而封之曰東里寡婦之閭
(환기읍수리이봉지왈동리과부지려) : 그 마을의 둘레를 봉(封)해서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고 정표(旌表)해 주기도 했다.
東里子善守寡
(동리자선수과) : 이처럼 동리자가 수절을 잘 하는 부인이라 했는데,
然有子五人
(연유자오인) : 실은 슬하의 다섯 아들이
各有其姓
(각유기성) : 저마다 성을 달리하고 있었다.
五子相謂曰
(오자상위왈) : 어느 날 밤, 다섯 놈의 아들들이 서로 이르기를,
水北鷄鳴
(수북계명) : "강 건너 마을에서 닭이 울고
水南明星
(수남명성) :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室中有聲
(실중유성) :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何其甚似北郭先生也
(하기심사북곽선생야) : 어찌도 그리 북곽 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하고
兄弟五人
(형제오인) : 다섯 놈이
迭窺戶隙
(질규호극) : 차례로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東里子請於北郭先生曰
(동리자청어북곽선생왈) :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이르기를
久慕先生之德
(구모선생지덕) :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는데,
今夜願聞先生讀書之聲
(금야원문선생독서지성) :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하고 간청하매,
北郭先生
(북곽선생) : 북곽 선생은
整襟危坐而爲詩曰
(정금위좌이위시왈) :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었다.
䲶鴦在屛
(䲶앙재병) :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耿耿流螢
경경류형) : 반딧불 흘러 잠 못 이룬다
維鬵維錡
(유심유기) :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云誰之型
(운수지형) :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한다.
興也(흥야) : 흥야랴
五子相謂曰
(오자상위왈) : 다섯 놈이 서로 소곤대기를,
禮不入寡婦之門
(례불입과부지문) : "예의 상으로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 없다
北郭先生賢者也
(북곽선생현자야) : 북곽 선생은 현자이니까
吾聞鄭之城門壞而狐穴焉
(오문정지성문괴이호혈언) :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져서 여우 구멍이 생겼대.
吾聞狐老千年
(오문호로천년) : 여우란 놈은 천 년을 묵으면
能幻而像人
(능환이상인) :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단다. 틀림없이 그 여우란 놈이
是其像北郭先生乎
(시기상북곽선생호) : 저건 바로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하고
相與謀曰
(상여모왈) : 함께 의논했다.
吾聞得狐之冠者
(오문득호지관자) : "들으니 여우의 갓을 얻으면
家致千金之富
(가치천금지부) :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得狐之履者
(득호지리자) : 여우의 신발을 얻으면
能匿影於白日
(능닉영어백일) :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得狐之尾者
(득호지미자) : 여우의 꼬리를 얻으면
善媚而人悅之
(선미이인열지) : 애교를 잘 부려서 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더라.
何不殺是狐而分之
(하불살시호이분지) : 어찌 저 놈의 여우를 때려잡아서 나눠 갖지 않으랴."
於是五子共圍而擊之
(어시오자공위이격지) : 다섯 놈들이 방을 둘러싸고 우루루 쳐들어 갔다.
北郭先生大驚遁逃
(북곽선생대경둔도) : 북곽 선생은 크게 당황하여 도망쳤다.
恐人之識己也
(공인지식기야) :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겁이 나서
以股加頸
(이고가경) : 두 다리 사이에 목을 들이박고
鬼舞鬼笑
(귀무귀소) : 귀신처럼 춤추고 낄낄거리며
出門而跑
출문이포) : 문을 나가서 내닫다가
乃陷野窖
(내함야교) : 그만 들판의 구덩이 속에 빠져 버렸다.
穢滿其中
(예만기중) : 그 구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攀援出首而望
(반원출수이망) : 간신히 기어올라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有虎當徑
(유호당경) : 뜻밖에 범이 길목에 앉아 있었다.
虎顰蹙嘔哇
(호빈축구왜) : 범은 북곽 선생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며
掩鼻左首而噫曰
(엄비좌수이희왈) : 코를 싸쥐고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고 이르기를,
儒句臭矣
(유구취의) : "유자여! 더럽다."
北郭先生頓首匍匐而前
(북곽선생돈수포복이전) :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범 앞으로 기어 가서
三拜以跪
(삼배이궤) :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仰首而言曰
(앙수이언왈) : 머리를 쳐들고 우러러 아뢴다.
虎之德其至矣乎
(호지덕기지의호) : "호랑님의 덕은 지극하시지요.
大人效其變
(대인효기변) :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
帝王學其步
(제왕학기보) : 제왕(帝王)은 그 걸음을 배우며,
人子法其孝
(인자법기효) : 자식된 자는 그 효성을 본받고,
將帥取其威
(장수취기위) :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
名並神龍
(명병신룡) :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런 용(龍)의 짝이 되는지라,
一風一雲
(일풍일운) : 풍운이 조화를 부리시매
下土賤臣
(하토천신) : 하토(下土)의 천신(賤臣)은
敢在下風
(감재하풍) :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나이다."
虎叱曰
(호질왈) : 범은 북곽 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毋近前
(무근전) :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曩也吾聞之
(낭야오문지) : 접때 내가 들으니
儒者諛也
(유자유야) : 내 듣건대 유(儒)는 유(諛)라 하더니
果然
(과연) : 과연 그렇구나.
汝平居集天下之惡名
(여평거집천하지악명) :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명을
妄加諸我
(망가제아) : 망령되이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今也急而面諛
(금야급이면유) : 이제 사정이 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떠니
將誰信之耶
(장수신지야) : 장차 누가 이를 믿겠느냐?
夫天下之理一也
(부천하지리일야) : 천하의 원리는 하나뿐이다.
虎誠惡也
(호성악야) : 범의 본성(本性)이 악한 것이라면
人性亦惡也
(인성역악야) : 인간의 본성도 악할 것이요,
人性善則虎之性亦善也
(인성선칙호지성역선야) : 인간의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면 범의 본성도 선할 것이다.
汝千語萬言
(여천어만언) : 너희들의 떠드는 천 소리 만 소리는
不離五常
(불리오상) : 오륜(五倫)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戒之勸之
(계지권지) : 경계하고 권면하는 말은
恒在四綱
(항재사강) : 항상 사강(四綱)에 머물러 있다.
然都邑之間
(연도읍지간) : 그런데 도회지에
無鼻無趾
(무비무지) : 코 베이고, 발꿈치 짤리고,
文面而行者
(문면이행자) : 얼굴에다 자자(刺字)질하고 다니는 것들은
皆不遜五品之人也
(개불손오품지인야) : 다 오륜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然而徽墨斧鉅
(연이휘묵부거) : 포승줄과 먹실, 도끼, 톱 같은 형구(刑具)를
日不暇給
(일불가급) : 매일 쓰기에 바빠 겨를이 나지 않는데도
莫能止其惡焉
(막능지기악언) : 죄악을 중지시키지 못하는구나.
而虎之家自無是刑
(이호지가자무시형) : 범의 세계에서는 원래 그런 형벌이 없으니
由是觀之
(유시관지) : 이로 보면
虎之性不亦賢於人乎
(호지성불역현어인호) : 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지 않느냐?
虎不食草木(호불식초목) : 범은 초목을 먹지 않고,
不食虫魚(불식충어) :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고,
不嗜麴蘖悖亂之物
(불기국얼패란지물) : 술 같은 좋지 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不忍字伏細瑣之物
(불인자복세쇄지물) : 순종 굴복하는 하찮은 것들을 차마 잡아먹지 않는다.
入山獵麕鹿
(입산렵균록) : 산에 들어가면 노루나 사슴 따위를 사냥하고,
在野畋馬牛
(재야전마우) : 들로 나가면 말이나 소를 잡아먹되
未甞爲口腹之累飮食之訟
(미상위구복지루음식지송) : 먹기 위해 비굴해진다거나 음식 따위로 다투는 일이 없다.
虎之道
(호지도) : 범의 도리가
豈不光明正大矣乎
(기불광명정대의호) : 어찌 광명 정대(光明正大)하지 않은가.
虎之食麕鹿
(호지식균록) : 범이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을 때는
而汝不疾虎
(이여불질호) :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다가,
虎之食馬牛
(호지식마우) : 말이나 소를 잡아먹을 때는
而人謂之讐焉
(이인위지수언) : 사람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豈非麕鹿之無恩於人
(기비균록지무은어인) : 어찌 노루나 사슴은 사람들에게 은공이 없고
而馬牛之有功於汝乎
(이마우지유공어여호) : 소나 말은 유공(有功)하기 때문이 아니냐?
然而不有其乘服之勞戀效之誠
(연이불유기승복지로련효지성) : 그런데 너희들은 소나 말들이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와 따르고 충성하는 정성을 갖지 않고
日充庖廚
(일충포주) : 날마다 푸줏간을 채워
角鬣不遺
(각렵불유) : 뿔과 갈기도 남기지 않고,
而乃復侵我之麕鹿
(이내부침아지균록) : 다시 우리의 노루와 사슴을 침노하여
使我乏食於山
(사아핍식어산) :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도 들에도
缺餉於野
(결향어야) : 먹을 것이 없게 만든단 말이냐?
使天而平其政
(사천이평기정) : 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한다면
汝在所食乎所捨乎
(여재소식호소사호) : 너희가 나의 먹을 것이 되어야 하겠느냐,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이겠느냐?
夫非其有而取之
(부비기유이취지) : 대체 제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謂之盜
(위지도) : 도(盜)라 하고,
殘生而害物者
(잔생이해물자) : 생(生)을 빼앗고 물(物)을 해치는 것을
謂之賊
(위지적) : 적(賊)이라 하나니,
汝之所以日夜遑遑
(여지소이일야황황) : 너희가 밤낮으로 쏘다니며
揚臂努目
(양비노목) :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挐攫而不恥
(나확이불치) : 노략질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甚者
(심자) : 심한 놈은
呼錢爲兄
(호전위형) : 돈을 불러 형님이라 부르고,
求將殺妻
(구장살처) : 장수가 되기 위해서 제 아내를 살해하였다면
則不可復論於倫常之道矣
(칙불가부론어륜상지도의) : 다시 윤리 도덕을 논할 수도 없다.
乃復攘食於蝗
(내부양식어황) : 뿐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먹고,
奪衣於蚕
(탈의어천) : 누에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고,
禦蜂而剽甘
(어봉이표감) : 벌을 막고 꿀을 따며,
甚者
(심자) : 심한 놈은
醢蟻之子
(해의지자) : 개미 새끼를 젖담아서
以羞其祖考
(이수기조고) : 조상에게 바치니
其殘忍薄行
(기잔인박행) : 잔인하고 박행함이
孰甚於汝乎
(숙심어여호) : 무엇이 너희보다 더 하겠느냐?
汝談理論性
(여담리론성) : 너희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動輒稱天
(동첩칭천) :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自天所命而視之
(자천소명이시지) : 하늘의 소명(所命)으로 보자면
則虎與人
(칙호여인) : 범이나 사람이나
乃物之一也
(내물지일야) : 다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
自天地生物之仁而論之
(자천지생물지인이론지) :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으로 논하자면
則虎與蝗蚕蜂蟻與人並畜
(즉호여황천봉의여인병축) : 범과 메뚜기․누에․벌․개미 및 사람이 다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而不可相悖也
(이불가상패야) :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自其善惡而辨之
(자기선악이변지) :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則公行剽刦於蠭蟻之室者
(칙공행표겁어蠭의지실자) :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노략질하는 것은
獨不爲天地之巨盜乎
(독불위천지지거도호) : 홀로 천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肆然攘竊於蝗蚕之資者
(사연양절어황천지자자) :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獨不爲仁義之大賊乎
(독불위인의지대적호) : 홀로 인의(仁義)의 대적(大賊)이 아니겠는가?
虎未甞食豹者
(호미상식표자) : 범이 일찍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誠爲不忍於其類也
(성위불인어기류야) :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이다.
然而計虎之食麕鹿
(연이계호지식균록) :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麕鹿之多也
(불약인지식균록지다야) :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計虎之食馬牛
(계호지식마우) : 범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馬牛之多也
(불약인지식마우지다야) : 사람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計虎之食人
(계호지식인) :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相食之多也
(불약인지상식지다야) : 사람이 서로를 잡아 먹는 것만큼 많지 않다.
去年關中大旱
(거년관중대한) :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자
民之相食者數萬
(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고,
往歲山東大水
(왕세산동대수) : 전해에는 산동(山東)에 홍수가 나자
民之相食者數萬
(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雖然
(수연) : 비록 그러하나
其相食之多
(기상식지다) : 사람들이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야
又何如春秋之世也
(우하여춘추지세야) : 춘추(春秋) 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春秋之世
(춘추지세) : 춘추 시대에
樹德之兵十七
(수덕지병십칠) :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이었고,
報仇之兵十三
(보구지병십삼) :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셋이었는데,
流血千里
(류혈천리) : 흘린 피가 천 리에 물들었고,
伏屍百萬
(복시백만) : 거꾸러져 죽은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더니라.
而虎之家水旱不識
(이호지가수한불식) : 범의 세계는 큰물과 가뭄의 걱정을 모르기 때문에
故無怨乎天
(고무원호천) :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讐德兩忘
(수덕량망) : 원수도 공덕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故無忤於物
(고무오어물) :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知命而處順
(지명이처순) :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故不惑於巫醫之姦
(고불혹어무의지간) : 무(巫)와 의(醫)의 간사에 속지 않고,
踐形而盡性
(천형이진성) :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故不疚乎世俗之利
(고불구호세속지리) :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此虎之所以睿聖也
(차호지소이예성야) : 이것이 곧 범이 예성(睿聖)한 것이다.
窺其一班
(규기일반) : 우리 몸의 얼룩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足以示文於天下也
(족이시문어천하야) : 족히 문채(文彩)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不藉尺寸之兵
(불자척촌지병) :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리지 않고
而獨任爪牙之利
(이독임조아지리) :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所以耀武於天下也
(소이요무어천하야) : 무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彛卣蜼尊
(이유유존) : 종이(宗彛)와 유준(蜼尊)은
所以廣孝於天下也
(소이광효어천하야) : 효(孝)를 천하에 넓힌 것이며,
一日一擧而烏鳶螻螘
(일일일거이오연루의) : 하루 한 번 사냥을 해서 까마귀나 솔개․청마구리․개미 따위에게까지
共分其餕
(공분기준) : 대궁을 함께 나누어 주니
仁不可勝用也
(인불가승용야) : 그 인(仁)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고,
讒人不食
(참인불식) : 굶주린 자를 잡아먹지 않고,
廢疾者不食
(폐질자불식) : 병든 자를 잡아먹지 않고,
衰服者不食
(쇠복자불식) : 상복(喪服) 입은 자를 잡아먹지 않으니
義不可勝用也
(의불가승용야) : 그 의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다.
不仁哉
(불인재) :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
汝之爲食也
(여지위식야) : 너희들의 먹이를 얻는 것이여!
機穽之不足
(기정지불족) :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而爲罿也罞也罛也罾也罦也罭也
(이위동야모야고야증야부야역야) : 새 그물․ 노루 망(網)․ 큰 그물․ 고기 그물․ 수레 그물․ 삼태 그물 따위의 온갖 그물을 만들어 냈으니,
始結網罟者
(시결망고자) : 처음 그것을 만들어 낸 놈이야말로
裒然首禍於天下矣
(부연수화어천하의) :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有鈹者戣者殳者斨者叴者矟者鍜者鈼者者
(유피자규자수자장자구자삭자하자작자자) : 그 위에 또 가지각색의 창이며 칼 등속에다
有礮發焉
(유포발언) :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聲隤華嶽
(성퇴화악) :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火洩陰陽
(화설음양) : 천지에 불꽃을 쏟아
暴於震霆
(폭어진정) :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是猶不足以逞其虐焉
(시유불족이령기학언) : 그래도 아직 잔학(殘虐)을 부린 것이 부족하여,
則乃吮柔毫
(칙내연유호) : 이에 부드러운 털을 쪽 빨아서
合膠爲鋒
(합교위봉) : 아교에 붙여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 냈으니,
體如棗心
(체여조심) : 그 몸은 대추씨 같고
長不盈寸
(장불영촌) : 그 길이는 한 치도 못 되는 것이다.
淬以烏賊之沫
(쉬이오적지말) :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縱橫擊刺
(종횡격자) : 종횡으로 치고 찔러 대는데,
曲者如矛
(곡자여모) :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銛者如刀
(섬자여도) :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銳者如釖
(예자여도) : 예리한 것은 낫같고,
歧者如戟
(기자여극) : 두 갈래 길이 진 것은 가시창 같고,
直者如矢
(직자여시) : 곧은 것은 화살 같고,
彀者如弓
(구자여궁) :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此兵一動
(차병일동) : 이 병기(兵器)를 한번 휘두르면
百鬼夜哭
(백귀야곡) : 온갖 귀신이 밤에 곡(哭)을 한다.
其相食之酷
(기상식지혹) :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孰甚於汝乎
(숙심어여호) :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北郭先生離席俯伏
(북곽선생리석부복) : 북곽 선생은 자리를 옮겨 부복(俯伏)해서
逡巡再拜
(준순재배) : 머리를 새삼 조아리고 아뢰었다.
頓首頓首曰
(돈수돈수왈) :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아리었다.
傳有之
(전유지) : “맹자(孟子)에 일렀으되
雖有惡人
(수유악인) : ‘비록 악인(惡人)이라도
齋戒沐浴
(재계목욕) : 목욕 재계(齋戒)하면
則可以事上帝
(즉가이사상제) :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下土賤臣
(하토천신) : 하토의 천한 신하는
敢在下風
(감재하풍) : 감히 아래 처지에 서옵니다.”
屛息潛聽
(병식잠청) : 북곽 선생이 숨을 죽이고 명령을 기다렸으나
久無所命
(구무소명) : 오랫동안 아무 명령이 없기에
誠惶誠恐
(성황성공) : 참으로 황공해서
拜手稽首
(배수계수) : 절하고 조아리다가
仰而視之
(앙이시지) :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東方明矣
(동방명의) : 이미 먼동이 터 주위가 밝아오는데
虎則已去
(호칙이거) : 범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農夫有朝菑者
(농부유조치자) : 그 때 새벽 일찍 밭 갈러 나온 농부가 있었다.
問先生何早敬於野
(문선생하조경어야) : “선생님, 이른 새벽에 들판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北郭先生曰
(북곽선생왈) : 북곽 선생은 엄숙히 말했다.
吾聞之
(오문지) : “내가 들으니
謂天蓋高
(위천개고) : ‘하늘이 높다 해도
不敢不局
(불감불국) :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謂地蓋厚
(위지개후) : 땅이 두텁다 해도
不敢不蹐
(불감불척) :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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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兩班傳>의 성공 비결
1)충격적 소재:양반신분 매매, 중세의 가치관과 질서의식 파괴-양반과 천부의 전도(顚倒) 신분 맞바뀜.
2)수사법:반어법(신분과 부의 불일치, 士族의 존칭에서 멀어진 양반론), 열거법(두 문권)
3)허상과 실상의 대비: 제일문권에서는 양반 행동양식의 허위의식을, 제이문권에서는 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를 고발함.
[은자주] 고전번역원의 주석을 첨가하였다. 주석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번거로움을 피해왔는데, 민추의 해박한 주석이 있어 여기에 옮긴다. 어구가 맞지 않더라도 바로 위의 주석임을 감안하고 보면 된다.
1]권위의 상징인 양반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지다
兩班者 士族之尊稱也.
양반자 사족지존칭야.
'양반'이란 사족(士族)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旌善之郡 有一兩班 賢而好讀書.
정선지군 유일양반 현이호독서.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현명하고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每郡守新至 必親造其廬而禮之.
매군수신지 필친조기려이례지.
그래서 군수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반드시 그 집에 몸소 나아가서 예의를 갖추었다.
然家貧 歲食郡糶 積歲至千石.
연가빈 세식군조 적세지천석.
그러나 그는 살림이 가난해서, 해마다 관가에서 환자를 빌어먹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보니, 환곡(還穀)은 천 석이나 되었다.
觀察使巡行郡邑 閱糶糴 大怒曰,
관찰사순행군읍 열조적 대로왈,
관찰사가 여러 고들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환곡의 출납을 검열하고는 매우 노하였다.
“何物兩班 乃乏軍興?”
“하물양반 내핍군흥?”
"어떤 놈의 양반이 군량미를 이렇게 축냈단 말이냐?"
命囚其兩班
명수기양반
그 양반을 가두도록 명령하였다.
郡守意哀 其兩班貧 無以爲償.
군수의애 기양반빈 무이위상.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길이 없는 것을 없으니
不忍囚之 亦無可奈何.
불인인지 역무가내하
차마 가두고 싶지 않았지만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兩班日夜泣 計不知所出.
양반일야읍 계불지소출.
그 양반은 밤낮으로 울음을 삼켰지만 대책은 세우지 못했다.
其妻罵曰,
기처매왈
그의 아내는 불평을 털어 놓았다.
“生平 子好讀書 無益縣官糴. 咄 兩班. 兩班不直一錢.”
“생평 자호독서 무익현관적. 돌 양반. 양반불직일전.”
"한평생 당신은 글읽기를 좋아했지만, 관가의 환곡을 갚는데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군요.
쯧쯧, 양반! 양반은한 푼짜리도 못 되는 구려.” 001)
양반(兩班)을 양반(兩半)으로 풀어 한 냥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풍자한 것이다.
2]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사서 양반이 되다.
其里之富人 私相議曰,
기리지부인 사상의왈,
그 마을의 부자가 가족들과 서로 의논하였다.
“兩班雖貧 常尊榮 我雖富 常卑賤 不敢騎馬.
“양반수빈 상존영 아수부 상비천 불감기마.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언제나 높고 영광스럽지만, 우리들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언제나 낮고 천하여 감히 말을 탈수도 없다.
見兩班 則跼蹜屛營 匍匐拜庭
양반만 보면 저절로 기가 죽어서 굽실거리며 엉금엉금 기어가서 뜰 밑에서 절해야 한다.
曳鼻膝行 我常如此 其僇辱也.
예비슬행 아상여차 기륙욕야.
코가 땅에 닿도록 무릎으로 기다시피 하면서, 우리네는 줄창 이렇게 창피를 당해야 한다.
今兩班貧 不能償糴 方大窘.
금양반빈 불능상적 방대군.
지금 저 양반이 가난해서 환자를 갚지 못해 몹시 곤란해질 모양이야.
其勢誠不能保其兩班 我且買而有之.”
기세성불능보기양반 아차매이유지.”
참으로 그의 가세가 양반 신븐을 보전할 수 없으니 내가 그것을 사서 가지려 한다."
遂踵門 而請償其糴.
수종문 이청상기적.
부자는 곧 양반의 집을 찾아가서 그 환자를 대신 갚겠다고 청하였다.
兩班大喜許諾.
양반대희허락.
양반은 크게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於是 富人立輸其糴於官.
어시 부인립수기적어관.
그래서 부자가 곧 그 환곡을 관가로 수송했다.
郡守大驚異之 自往勞其兩班 且問償糴狀.
군수대경이지 자왕로기양반 차문상적장.
군수는 매우 놀라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직접 양반에게 찾아가 위로하면서, 환자를 갚은 사정을 물으려 하였다.
兩班氈笠衣短衣 伏塗謁稱小人 不敢仰視.
양반전립의단의 복도알칭소인 불감앙시.
그러자 양반은 벙거지를 쓰고 베잠방이를 입은 채로 길바닥에 엎드려, '쇤네'라고 칭하면서 감히 올려다보지를 못하였다.
[주D-002]벙거지 : 하인들이 쓰던 털모자.
郡守大驚 下扶曰,
군수대경 하부왈,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그를 부축하며,
“足下 何自貶辱若是?”
“족하 하자폄욕약시?”
"선생께서 어찌 이다지도 스스로를 욕되게 하시는지요." 하였다.
兩班益恐懼 頓首俯伏曰,
양반익공구 돈수부복왈,
양반은 더욱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惶悚 小人非敢自辱 已自鬻其兩班 以償糴 里之富人 乃兩班也.
“황송 소인비감자욕 이자죽기양반 이상적 리지부인 내양반야.
"황송하옵니다. 쇤네가 감히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쇤네는 벌써 스스로 양반을 팔아 환자를 갚았으니, 마을의 부자가 바로 양반이옵니다.
小人安敢冒其舊號 而自尊乎?”
소인안감모기구호 이자존호?”
쇤네가 어찌 다시금 뻔뻔스럽게 옛날처럼 양반 행세를 하면서 스스로 높이겠습니까?"
郡守歎曰,
군수탄왈,
군수가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君子哉 富人也 兩班哉 富人也.
“군자재 부인야 양반재 부인야.
"군자답구려 부자시여. 양반답구려 부자시여.
富而不吝 義也 急人之難 仁也 惡卑而慕尊 智也 此眞兩班.
부이불인 의야 급인지난 인야 오비이모존 지야 차진양반.
부유하면서도 아끼지 않음은 의(義)요, 남의 어려움을 돌봐 줌은 인(仁)이요, 낮은 신분을 싫어하고 높은 자리를 그리워함은 지(智)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양반이로다.
雖然私自交易 而不立券 訟之端也.
수연사자교역 이불립권 송지단야.
비록 그러하더라도 사사로이 신분을 바꾸고 문권(文券)을 작성하지 않으면 소송의 단서가 된다.
我與汝約 郡人而證之 立券而信之 郡守當自署之.”
아여여약 군인이증지 립권이신지 군수당자서지.”
내가 그대와 약조하노니, 고을 사람들을 모아 증인을 세우고, 문권을 작성하여 증거하리라.
군수인 내가 마땅히 서명해야 하네."
於是 郡守歸俯 悉召郡中之士族 及農工商賈 悉至于庭.
어시 군수귀부 실소군중지사족 급농공상가 실지우정.
군수가 곧 동헌으로 돌아와서 온 고들 사족과, 농민, 공장(工匠), 장사치까지 모두들 불러 뜰에 모았다.
富人坐鄕所之右 兩班立於公兄之下.
부인좌향소지우 양반립어공형지하.
부자는 향소(鄕所)003)의 오른쪽에 앉히고 양반은 공형(公兄) 004)의 아래에 세웠다.
[주D-003]향소(鄕所) : 향청(鄕廳)의 좌수(座首).
호장(戶長)과 이방(吏房) 및 수형리(首刑吏)를 삼공형(三公兄)이라 한다.
3]문권 작성
1)제1문권 -양반의 행동규범[허위의식]
乃爲立券曰,
내위립권왈
바로 증서를 작성하였다.
“乾隆十年九月日 右明文段
“건륭십년구월일 우명문단
"건륭(乾隆) 10년 9월 모일에 아래와 같이 문권을 밝힌다.
[주D-005]명문(明文) : 증명서란 뜻으로, ‘적발’이라고도 한다.
국(厂下屮2)賣兩班 爲償官穀 其直千斛. *厂下屮2(국):持也
국 매양반 위상관곡 기직천곡.
양반을 팔아서 관가의 곡식을 갚은 일이 생겼는데, 그 곡식은 천 섬이나 된다.
維厥兩班 名謂多端
유궐양반 명위다단
이 양반의 이름은 여러 가지다.
讀書曰士 從政爲大夫 有德謂君子
독서왈사 종정위대부 유덕위군자
글만 읽으면 '선비'라 하고,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大夫)'라 하며, 착한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라고 한다.
武階列西 文秩敍東 是謂兩班.
무계렬서 문질서동 시위양반.
무관의 계급은 서쪽에 벌여 있고, 문관의 차례는 동쪽에 자리 잡았으며, 이들을 '양반'006)이라고 한다.
[주D-006]무관 …… 동쪽이라 : 궁궐에서 무관과 문관이 각각 서쪽과 동쪽에 나누어 서는 것을 가리킨다.
任爾所從 絶棄鄙事 希古尙志
임이소종 절기비사 희고상지
이 여러 가지 양반 가운데서 그대 마음대로 골라잡되, 오늘부터는 지금까지 하던 야비한 일들을 깨끗이 끊어 버리고, 옛 사람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가져야 한다.
五更常起 點硫燃脂
오갱상기 점류연지
오경(五更)이 되면 언제나 일어나서 성냥을 그어 등불을 켜고,
目視鼻端 會踵支尻
목시비단 회종지고
눈으로 코끝을 내려다보며, 두 발굽을 한데다가 모아 볼기를 괴고 앉아서 007)
[주D-007]눈은 …… 보며 : 호흡법의 일종이다. 주자(朱子)의 조식잠(調息箴)에 보인다. 《연암집》 권4 담원팔영(澹園八詠) 중 소심거(素心居)를 노래한 제 3 수에도 나온다.
東萊博議 訟如氷瓢.
동래박의 송여빙표.
"동래박의"008)처럼 어려운 글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외워야 한다.
[주D-008]《동래박의(東萊博議)》 : 남송(南宋) 때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를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주제를 취해 평론한 것인데, 과거(科擧)에서 논설을 짓는 데 도움 되는 책으로 중국과 조선에서 널리 읽혔다.
叩齒彈腦 細嗽嚥津 *嗽(수):기침.
고치탄뇌 세수연진
아래 윗니를 맞부딪쳐 똑똑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튕긴다.
가는 기침이 나면 가래침을 씹어 넘기고, 009)
[주D-009]이빨을 …… 삼키며 : 도가(道家)에서 유래한 양생법(養生法)이다. 가볍게 윗니와 아랫니를 36번 부딪치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뒷골을 24번 퉁긴다. 입 안에 고이게 한 침을 가볍게 양치질하듯이 부걱부걱하기를 36번 하면 이를 수진(漱津)이라 하여 맑은 물이 되는데, 이것을 3번에 나누어 꾸르륵 소리를 내며 삼켜서 단전(丹田)에 이르게 한다. 퇴계(退溪) 선생의 유묵(遺墨)으로 전하는 명(明) 나라 현주도인(玄洲道人) 함허자(涵虛子)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 자세하다. 《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 7월 6일 조를 보면 연암이 고치탄뇌(叩齒彈腦)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袖刷毳冠 拂塵生派.
수쇄취관 불진생파.
털 감투를 쓸 때에는 소맷자락으로 털어서 티끌 물결을 일으킨다.
盥無擦拳 潄口無過. *潄(수):양치질하다.
관무찰권 수구무과.
세수 할 때에는 주먹의 때를 비비지 말 것이며, 양치질할 때에는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010)
[주D-010]냄새 …… 닦고 : 원문은 ‘漱口無過’인데, 입냄새를 구과(口過)라 한다. 당(唐)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송지문(宋之問)이 재주 있는 시인임을 알았으나 그의 입냄새가 심한 것을 싫어하여 기용하지 않았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수록되어 있는 송지문의 걸작 명하편(明河編)은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라고 한다.
長聲喚婢 緩步曳履
장성환비 완보예리
긴 목소리로 '아무개야' 계집종을 부르고, 느리게 걸으면서 신뒤축을 끌어야 한다.
古文眞寶 唐詩品彙 鈔寫如荏 一行百字.
고문진보 당시품휘 초사여임 일행백자.
『고문진보』나 『당시품휘』 011)같은 책들을 깨알처럼 가늘게 배껴 쓰되, 한 줄에 백 자씩 써야 한다.
[주D-011]《당시품휘(唐詩品彙)》 : 명(明) 나라 때 고병(高棅)이 편찬한 당시집(唐詩集)이다. 모두 90권으로 시인 620인의 작품 5700여 수를 형식별로 수록하였다. 따로 습유(拾遺) 10권이 있다.
手毋執錢 不問米價
수무집전 불문미가
손에 돈을 지니지 말 것이며, 쌀값을 묻지도 말아야 한다.
暑毋跣襪 飯毋徒髻
서무선말 반무도계
날씨가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도 맨상투 꼴로 앉지 말아야 한다.
食毋先羹 歠毋流聲*歠 *歠(철):마시다.
식무선갱 철무류성철
식사하면서 국물부터 먼저 마셔 버리지 말며, 마시더라도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下箸毋舂 毋餌生葱
하저무용 무이생총
젓가락을 내리면서 밥상을 찧어 소리 내지 말며, 생파를 씹지 말아야 한다.
飮醪毋嘬鬚 吸煙毋輔窳.*嘬(최):물다. *窳(유):비뚤다.
음료무최수 흡연무보유.
막걸리를 마신 뒤에 수염을 빨지 말며, 담배를 태울 때에도 볼이 오목 파이도록 빨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忿毋搏妻 怒毋踢器
분무박처 로무척기
아무리 분하더라도 아내를 치지 말며, 화가 나더라도 그릇을 차지 말아야 한다.
毋拳毆兒女 毋罵死奴僕. *毆(구):때리다.
무권구아녀 무매사노복.
맨주먹으로 아녀자들을 때리지 말며, 죽일놈의 종놈이라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 012)
[주D-012]뒈져라고 …… 말고 : 《연암집》 권3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에도 “뒈져라고 악담하다〔惡言詈死〕”와 같은 표현이 있다.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 권1 사전(士典) 1 언어조(言語條)에, 종에게 ‘뒈질 놈〔可殺〕’ ‘왜 안 뒈지냐〔胡不死〕’와 같은 욕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叱牛馬 毋辱鬻主.
질우마 무욕죽주.
말이나 소를 꾸짖으면서 팔아먹은 주인을 들추지 말아야 한다.
病毋招巫 祭不齋僧
병무초무 제불재승
병이 들어도 무당을 불러오지 말고, 제사에 중을 불러다 재(齋)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
爐不煮手 語不齒唾
로불자수 어불치타
화롯가에 손을 쬐지 말며, 말할 때에 침이 튀지 말아야 한다.
毋屠牛 毋賭錢.
무도우 무도전.
소백정 노릇을 하지 말며, 도박도 하지 말아야 한다.
凡此百行 有違兩班 持此文記 卞正于官.
범차백행 유위양반 지차문기 변정우관.
이러한 여러 가지 행위 가운데 양반의 규범에 한 가지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양반은 이 증서를 가지고, 관청에 와서 송사하여 바로잡을 수 있다.
城主 旌善郡守 押. 座首別監 證署.”
성주 정선군수 압. 좌수별감 증서.”
성주(城主) 정선 군수 화압(花押)
좌수(座首) 별감(別監) 증서(證署)
於是 通引搨印 *搨(탑):박다, 베끼다.
어시 통인탑인
증서를 다 쓰고는 통인(通引)이 인(印)을 받아서 찍었다.
錯落聲中嚴鼓 斗縱參橫.
착락성중엄고 두종참횡.
뚜욱뚜욱하는 그 소리는 마치 엄고(嚴鼓)013) 치는 소리 같았고, 그 찍어 놓은 모습은 마치 북두칠성이 세로 놓인 듯, 삼성(參星)이 가로놓인 듯 벌렸다.
[주D-013]엄고(嚴鼓) : 임금이 행차할 때 치던 큰북이다.
戶長讀旣畢.
호장독기필.
호장(戶長)이 읽기를 마쳤다.
“兩班只此而已耶? 吾聞兩班如神仙 審如是 太乾沒. 願改爲可利.”
“양반지차이이야? 오문양반여신선 심여시 태건몰. 원개위가리.”
"양반이 겨우 이것뿐입니가? 나는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들었지요. 정말 이와 같다면, 너무 지나치게 재산을 몰수합입니다. 아무쪼록 좀 더 이롭게 고쳐 주시오." 014)
[주D-014]너무도 …… 셈이니 : 원문은 ‘太乾沒’인데, ‘乾沒’은 물을 말려 없애듯이 남의 재산을 마구 횡령하거나 몰수하는 것을 말한다. 부자가 양반을 대신해서 환곡 천 석을 갚아 주었으나 그 대가가 너무도 보잘것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2)제2문권-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
於是 乃更作券曰,
어시 내갱작권왈,
그래서 다시 증서를 만들었다.
“維天生民 其民維四
“유천생민 기민유사
"하늘이 백성을 낳으실 때에, 그 갈래를 넷으로 나누셨다.
四民之中 最貴者士 稱以兩班 利莫大焉.
사민지중 최귀자사 칭이양반 리막대언.
이 네 갈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이가 선비이고, 이 선비를 양반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양반보다 더 큰 이문은 없다.
不耕不商 粗涉文史 大決文科 小成進士.
불경불상 조섭문사 대결문과 소성진사.
그들은 농사 짓지도 않고, 장사하지도 않는다. 옛글이나 역사를 대략만 알면 과거를 치르는데, 크게 되면 문과(文科)요, 작게 이르더라도 진사(進士)다.
文科紅牌 不過二尺 百物備具 維錢之橐. *橐(탁):전대
문과홍패 불과이척 백물비구 유전지탁.
문과의 홍패(紅牌)는 두 자도 채 못 되지만, 온갖 물건이 이것으로 갖추어지니 돈 자루나 다름없다.
進士三十 乃筮初任 猶爲名蔭
진사삼십 내서초임 유위명음
진사는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이름난 음관(蔭官)이 될 수 있다.
*[은자주] 연암도 쉰 살에 음관으로 처음 출사하였다.
善事雄南 耳白傘風 腹皤鈴諾
선사웅남 이백산풍 복파령락
지체 높은 음관을 잘 섬기면 015), [수령 노릇을 하느라고] 귓바퀴는 일산(日傘) 바람에 희어지고,016) 배는 동헌(東軒) 사령(使令)들의 '예이'하는 소리에 살찌게 됩니다.
[주D-015]웅남행(雄南行) : 음관을 남행(南行)이라 한다. 웅남행은 위품(位品)이 높은 음관을 가리킨다.
[주D-016]일산 …… 처지며 : 수령은 행차할 때 일산을 받쳐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므로 햇빛을 쏘이지 않아 귀가 희어지고, 일을 시킬 때 설렁줄을 당겨 사람을 부르면 되므로 편해서 배에 살만 찐다는 뜻이다.
室珥治妓 庭穀鳴鶴.
실이치기 정곡명학.
방안의 귀고리로 기생이나 놀리고 017), 뜰 앞에 곡식으로 학을 기른다.
[주D-017]방 안에 …… 것이요 : 기생이 놀다 간 뒤라 귀걸이가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기》 골계열전에서 순우곤(淳于髡)이 제(齊) 나라 위왕(威王)에게 자신의 주량(酒量)을 설명하며 한 말 중에, 주려(州閭)의 모임에 남녀가 뒤섞여 앉아 술을 즐겁게 마시고 나면 “앞에는 귀걸이가 떨어져 있고 뒤에는 비녀가 남겨져 있다.〔前有墮珥 後有遺簪〕”고 하였다.
窮士居鄕 猶能武斷.
궁사거향 유능무단.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더라도, 무력을 마음대로 단행할 수 있다.
先耕隣牛 借耘里氓 孰敢慢我?
선경린우 차운리맹 숙감만아?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내어 내 밭을 김 매게 하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나를 괄시하랴.
灰灌汝鼻 暈髻汰鬢 無敢怨咨.”*暈(훈):무리. *咨(자):묻다.
회관여비 운계태빈 무감원자.”
네 놈의 코에 잿물을 따르고 상투를 범벅이며 수염을 뽑더라도 원망조차 못하리라."
4]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포기하다
富人中其券 而吐舌曰,
부인중기권 이토설왈,
부자가 그 증서 만들기를 중지시키고, 혀를 빼면서 말하였다.
“已之已之 孟浪哉. 將使我爲盜耶?”
“이지이지 맹랑재. 장사아위도야?”
"그만 두시오. 제발 그만 두시오. 참으로 맹랑합니다. 나를 도둑놈이 되게 하시렵니까?"
掉頭而去
도두이거
농부는 머리를 내두르며 달아났다.
終身不復言兩班之事.
종신불복언양반지사.
그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양반'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7%B4%ED%95%98%EC%9D%BC%EA%B8%B0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인 박지원이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萬壽節, 칠순 잔치) 축하 사절로 중국의 북경(당시의 연경)에 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견문기이다. 박지원은 자신의 삼종형(8촌 형)이자 사절단의 수장인 금성위 박명원의 자제 군관 자격으로 일행에 합류할 수 있었고 러허강(열하강)까지 다녀온 감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기록물이 《열하일기》(熱河日記)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 및 서화가들이 남긴 서적, 서화, 골동품 등 문화재급 유품 3만여 점과 함께 연민 이가원이 소장하여 오다가 1986년 12월 22일 기증하였고 단국대학교 연민문고에 친필본이 소장되어 있다.[1][2]
구성
열하는(熱河) 중국어로 러허(중국어 정체자: 熱河, 병음: Rèhé)라고 하는 청나라의 지역 이름으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 청더(承德, 승덕)이며, 최종 목적지는 열하행궁 또는 피서산장으로 불리는 건륭제의 여름 별궁이었는데 박지원(朴趾源)이 조선 정조 때에 청나라를 다녀온 연행일기(燕行日記)이다.[1]
《열하일기》는 26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정본 없이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이 처음 간행하였는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친필본이 단국대학교 〈연민문고〉에서 발견되었다.[2]
도강록[편집]
압록강으로부터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으로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잡지[편집]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간에 겪은 일을 필담(筆談) 중심으로 엮고 있다.
일신수필[편집]
신광녕(新廣寧)으로부터 산해관海關)에 이르는 병참지(兵站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관내정사[편집]
산하이관에서 연경(燕京)에 이르는 기록이다. 특히 백이(伯夷)·숙제(叔齊)에 대한 이야기와 「호질 虎叱」이 실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막북행정록[편집]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간의 기록.
태학유관록[편집]
열하의 태학(太學)에서 머무르며 중국학자들과 지전설(地轉說)에 관하여 토론한 내용이 들어 있다.
구외이문[편집]
고북구(古北口) 밖에서 들은 60여 종의 이야기를 적은 것.
환연도중록[편집]
열하에서 연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6일간의 기록으로 교통제도에 대하여 서술.
금료소초[편집]
의술(醫術)에 관한 이야기.
옥갑야화[편집]
역관들의 신용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허생(許生)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뒷날에 이 이야기를 고전소설 「허생전」이라 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거론하였다.
황도기략[편집]
황성(皇城)의 문물·제도 약 38종을 기록한 것이다.
알성퇴술[편집]
순천부학(順天府學)에서 조선관(朝鮮館)에 이르는 동안의 견문이다.
앙엽기[편집]
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주요명소 20군데를 기술한 것이다.
경개록[편집]
열하의 태학에서 6일간 있으면서 중국학자와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황교문답[편집]
당시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하여 소견을 밝혀놓은 기록이다.
행재잡록[편집]
당시 청나라 고종의 행재소(行在所)에서 견문한 바를 적은 것이다. 그 중 청나라가 조선에 대하여 취한 정책을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반선시말[편집]
청나라 고종이 반선(班禪)에게 취한 정책을 논한 글이다.
희본명목[편집]
다른 본에서는 「산장잡기」 끝부분에 있는 것으로 청나라 고종의 만수절(萬壽節)에 행하는 연극놀이의 대본과 종류를 기록한 것이다.
찰십륜포[편집]
열하에서 본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망양록과 심세편[편집]
각각 중국학자와의 음악에 대한 토론내용과 조선의 오망(五妄), 중국의 삼난(三難)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곡정필담[편집]
천문에 대한 기록이다.
동란섭필[편집]
가악(歌樂)에 대한 잡록이다.
산장잡기[편집]
열하산장에서의 견문을 적은 것이다.
환희기와 피서록[편집]
각각 중국 요술과 열하산장에서 주로 시문비평을 가한 것이 주요내용이다.그렇고 그렇다는 이야기다라고 말할수 없지 않고 그렇다.
https://kydong77.tistory.com/8093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B%B6%81%ED%95%99(%EC%82%AC%EC%83%81)
명을 여전히 조선의 군부(君父)로 여기고 명의 문물을 주(周)·한(漢)·당(唐)·송(宋)의 적통을 잇는 중화로 굳게 믿은 조선의 양반 지식인들은 청이 중원의 새 패자(覇者)로 군림한 후에도 여전히 한족(漢族)의 중화 문물을 흠모하며 청을 오랑캐로 멸시했다. 이는 조선후기를 지배한 존주의리(尊周義理)나 대명의리(對明義理), 그리고 조선중화(朝鮮中華) 등의 이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청의 국력이 날로 강성해지고 명이 망한 지도 100년이 지나면서 조선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청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했다. 이런 주장은 대개 연행사의 일원으로 청의 북경을 방문해 조선을 훨씬 능가하는 선진 문물을 직접 목도하고 충격을 받은 일부 지식인이 귀국 후에 제기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에 호응하는 지식인들이 서서히 증가했다.
이들이 오랑캐의 나라로 여기던 청으로부터 배우자는 주장을 펼 수 있었던 명분은 청은 비록 이적의 국가이지만 그들이 보유한 문물은 이전의 명이 간직했던 중화의 문물이므로 조선이 그것을 수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였다. 또 청은 학문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조선 사회보다 훨씬 진보한 고도의 선진 문물을 갖추고 있으니, 조선의 국력을 신장하고 민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그 문물을 배워서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도 아울러 제시했다. 특히 이전의 실학 움직임이 대개 토지 분배와 같은 전통적인 개혁에 중점을 둔 데 비해, 북학을 주장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술 향상을 통한 생산력의 증대와 상공업 장려를 통한 국부의 창출 등과 같이 새로운 프레임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들의 성향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대개 한양과 경기 지역에 거주하던 낙론(洛論)계 노론(老論) 출신이 많았고, 철학적으로 보면 대개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지지하고 주기론(主氣論)에 경도된 이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존주의리론(尊周義理論)을 여전이 강조하고 서학(西學)을 배척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런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청의 문물을 새롭게 중화 문물로 인식하는가 하면 서양의 과학기술을 적극 수용하자는 자세를 취했다.
이런 성향을 보인 인물군을 후대의 역사가들이 대개 북학파(北學派)라는 이름으로 묶었는데, 학자에 따라 차이가 나며, 후대로 올수록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북학파라는 학파가 당시에 실존했다기보다는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분류된 것임을 잘 보여준다. 현재 거론되는 북학파 인물로는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서명응(徐命膺)·홍양호(洪良浩)·성해응(成海應)·김정희(金正喜)·정약용(丁若鏞) 등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상기한 북학의 특성을 가장 잘 대표하는 학자는 홍대용·박지원·박제가 등 세 명이다.
이들 세 학자는 모두 존주의리 의식이 너무 지나쳐 경제와 민생을 도외시한 기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라의 부강과 민생에 정치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홍대용은 의리(義理)를 고양하고 문장을 공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생각할 때 경제(經濟)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은 의리와 윤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당시의 명분주의 사조를 비판하고 국가에 실제로 필요한 이용후생(利用厚生)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제가도 현실정치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고상한 담론보다는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통상의 확대를 통해 국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임을 설파했다.
또한 그 방법으로 세 학자 모두 북학을 강조했다. 이들은 청의 문물을 이적시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청에 대해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이런 주장을 펼 수 있었다.
홍대용은 북경 방문을 통해 청나라 학자뿐만 아니라 청에 거주하는 서양인 학자들과 만나며 다양한 학문을 접했는데, 특히 서양의 과학기술과 천문학을 수용해 귀국 후에는 지전설(地轉說)을 거론하고 중화를 상대화함으로써 조선인의 세계관과 중화관이 바뀔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의산문답』은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저술이다.
박지원은 『과농소초』를 지어 농업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며, 『열하일기』를 통해 자신의 북학 인식을 잘 드러냈다.
박제가는 국왕 정조에게 바친 『북학의』를 통해 농법 개발을 통한 농업 생산력의 증대, 해외 통상의 장려를 통한 국부의 증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의 도입 등을 강조함으로써 조선후기 북학 사조의 절정을 이루었다.
* 북학파 인물들은 원각사 탑이 현존하는 탑골공원 부근에 살았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
현재 탑골공원은 종묘 정문 정비사업 이후 거처를 잃은 무의탁 어른들의 놀이공간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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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銘은 다음과 같다.
銘曰:
宜笑舞歌呼,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
서호西湖1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입에 반함飯含2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儒者3를 미워해서지.
이 명銘은 짧지만 대단히 문제적이다. 연암의 문집 전체가 간행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에 와서 였다. 당시 박영철이라는 사람이 돈을 대고 출판을 주관하였다. 이 본本을 보통 박영철본 『연암집』이라 부른다. 그런데 박영철본 『연암집』에는 이 명이 빠져 있다. 하지만 『과정록』에는 다음과 같이 이 명을 특별히 소개해 놓고 있다.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면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 입에 반함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를 미워해서지. |
한편, 연암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열하일기』에도 이 명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魂去不冥招 相逢西子湖 | 넋이 떠난다고 초혼할 것 없네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
口裏不含珠 怊悵詠麥儒 | 입에 반함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에 분개해서지 |
https://ko.wikipedia.org/wiki/%EB%B6%81%ED%95%99%EC%9D%98
《북학의》는 서명응과 박지원(朴趾源), 그리고 저자인 박제가 자신이 쓴 서문과 함께 내(內)ㆍ외(外) 2편으로 나뉜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o300200&code=kc_age_30
박제가가 농업 생산력의 증진만큼이나 중요시한 것은 상업과 유통 및 외국과의 통상이었다. 그는 당시 많은 학자들에 의해 말단의 일이라고 천시되어 왔던 상업에 주목하여, 상업을 발전시키고 유통을 촉진하기 위해 수레・선박・도로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유용한 물건을 유통시키고 거래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쓸모 있는 물건이라도 대부분 한 곳에 묶여 있거나 홀로 떠돌다가 쉽게 고갈될 것이며, 상인들이 교역을 하지 않고 놀고먹기만 한다면 이는 사람이 할 일을 잃게 될 것이었다. 박제가가 상행위를 통한 물자의 유통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업이 발달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국가의 지속적인 지원과 장기적인 계획이었다. 유통과 거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기반시설이 확보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교량이나 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은 개인의 힘으로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국가가 주도하는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인데, 자원의 소유 및 이동의 권한이 국가에 귀속되어 있었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박제가는 상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유통 수단을 정비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가 보기에 중국은 수레나 선박과 같은 유통 수단이 잘 운용되고 있었으므로, 이를 모범으로 삼아 조선에도 도입하고자 하였다. 수레와 선박의 운용을 위해서는 도로와 교량을 늘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였다.
https://kydong77.tistory.com/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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