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의 한 가지 즐거움(老人一快事)'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년)의 시집 '송파수작(松坡酬酢)’에 수록되어 있다. 그의 나이 71세 때(75세에 서거)에 쓴 것으로서, 늙음에 따른 신체의 변화를 겸허하고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달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요 내용은..
1수에서 머리카락이 없어지니 감고 빗질하는 수고도 없고 백발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하며 민둥머리를 예찬하고,
2수에서는 치아가 다 빠져도 음식을 씹고 삼키는 데 지장이 없고 무엇보다 치통이 없어졌음을 즐거워 하고,
3수에서는 눈이 어두어지니 책 읽어야 할 부담이 없어지고 좋은 경치를 보고 즐기게 되며,
4수에서는 귀가 들리지 않아 세상의 시비 다툼을 듣지 않게 됨을 노래하고
5수에서는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마구 써도 퇴고할 필요도 없고 남의 비평에 신경 쓰지 않아서 좋고,
6수에서는 손님과 바둑을 두는 일을 꼽으며, 만만한 상대만을 골라 두며 편안히 즐김을 읊고 있다.
명물학의 유행은 조선 후기 문화계의 특기할 만한 현상의 하나이다. 명물학은 명물도수학 혹은 명물고증학 등으로 불리며 18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간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외부 사물의 정보를 수집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취합한 정보를 정리한 저술이 나타났다. 명물학 자체가 反성리학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명물학은 성리학적인 토대를 흔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명물학의 그러한 위험성을 간파하였던 정조는 학술 정책을 통해 명물학의 성격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세도가들이 경세와는 거리가 먼 명물고증학에 심취한 가운데 일부 지식인들은 정조의 정책을 계승하여 명물고증학의 확산에 대응하였다. 명물학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는 움직임과 그것을 견제하려는 시도가 교차하면서 명물학은 전개되었다. 명물학의 유행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와 관련한 연구는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명물학은 조선 후기의 사상사 내지 문화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검토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금야원문선생독서지성) :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하고 간청하매,
北郭先生
(북곽선생) : 북곽 선생은
整襟危坐而爲詩曰
(정금위좌이위시왈) :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었다.
䲶鴦在屛
(䲶앙재병) :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耿耿流螢
(경경류형) : 반딧불 흘러 잠 못 이룬다
維鬵維錡
(유심유기) :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云誰之型
(운수지형) :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한다.
興也(흥야):흥야라 (興-연상법)
[주D-014]가마솥과……만들었나 : 발 없는 가마솥과 세발솥은 그 모형이 다 다르다. 이로써 성 다른 다섯 아들에게 비하였다. 대체 다섯 아이들이 성도 다르고 얼굴도 같지 않으니, 이는 어떤 잡놈들과 관계해서 이런 것들을 낳았다는 의미. [주D-015]흥이라[興也] : 육의(六義)의 하나. 먼저 어떤 다른 물건을 읊어서 그 목적하고 있는 것을 끄집어 일으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원앙새를 먼저 이끌어서 남녀의 사건을 전개하는 것이다.육의는 [風雅頌/比賦興]
(즉호여황천봉의여인병축) : 범과 메뚜기․누에․벌․개미 및 사람이 다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而不可相悖也(이불가상패야) :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自其善惡而辨之(자기선악이변지) :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則公行剽刦於蠭蟻之室者(칙공행표겁어蠭의지실자) :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노략질하는 것은 獨不爲天地之巨盜乎(독불위천지지거도호) : 홀로 천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肆然攘竊於蝗蚕之資者(사연양절어황천지자자) :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獨不爲仁義之大賊乎(독불위인의지대적호) : 홀로 인의(仁義)의 대적(大賊)이 아니겠는가?
7)동류끼리 잡아먹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虎未甞食豹者
(호미상식표자) : 범이 일찍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誠爲不忍於其類也
(성위불인어기류야) :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이다.
然而計虎之食麕鹿
(연이계호지식균록) :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麕鹿之多也
(불약인지식균록지다야) :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計虎之食馬牛
(계호지식마우) : 범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馬牛之多也
(불약인지식마우지다야) : 사람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計虎之食人
(계호지식인) :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相食之多也
(불약인지상식지다야) : 사람이 서로를 잡아 먹는 것만큼 많지 않다.
去年關中大旱
(거년관중대한) :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자
民之相食者數萬
(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고,
往歲山東大水
(왕세산동대수) : 전해에는 산동(山東)에 홍수가 나자
民之相食者數萬
(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雖然
(수연) : 비록 그러하나
其相食之多
(기상식지다) : 사람들이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야
又何如春秋之世也
(우하여춘추지세야) : 춘추(春秋) 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春秋之世
(춘추지세) : 춘추 시대에
樹德之兵十七(수덕지병십칠) :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이었고, 報仇之兵十三(보구지병십삼) :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셋이었는데, 流血千里(류혈천리) : 흘린 피가 천 리에 물들었고, 伏屍百萬(복시백만) : 거꾸러져 죽은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더니라.
8)범의 예성(睿聖)과 무용(武勇) & 인의(仁義)
而虎之家水旱不識
(이호지가수한불식) : 범의 세계는 큰물과 가뭄의 걱정을 모르기 때문에
故無怨乎天
(고무원호천) :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讐德兩忘
(수덕량망) : 원수도 공덕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故無忤於物
(고무오어물) :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知命而處順
(지명이처순) :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故不惑於巫醫之姦
(고불혹어무의지간) : 무(巫)와 의(醫)의 간사에 속지 않고,
踐形而盡性
(천형이진성) :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故不疚乎世俗之利
(고불구호세속지리) :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此虎之所以睿聖也
(차호지소이예성야) : 이것이 곧 범이 예성(睿聖)한 것이다.
窺其一班
(규기일반) : 우리 몸의 얼룩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足以示文於天下也
(족이시문어천하야) : 족히 문채(文彩)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不藉尺寸之兵
(불자척촌지병) :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리지 않고
而獨任爪牙之利
(이독임조아지리) :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所以耀武於天下也
(소이요무어천하야) : 무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彛卣蜼尊
(이유유존) : 종이(宗彛)와 유준(蜼尊)은
所以廣孝於天下也
(소이광효어천하야) : 효(孝)를 천하에 넓힌 것이며,
一日一擧而烏鳶螻螘
(일일일거이오연루의) : 하루 한 번 사냥을 해서 까마귀나 솔개․청마구리․개미 따위에게까지
: 저 새 그물과 작은 노루 그물[網] , 물고기 그물과 큰 물고기 그물, 수레 그물과 삼태 그물 따위들을 만들었으니,
始結網罟者
(시결망고자) : 처음 그것을 만들어 낸 놈이야말로
裒然首禍於天下矣
(부연수화어천하의) :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有鈹者 戣者 殳者 斨者 叴者 矟者 鍜者 鈼者者
(유피자 규자 수자 장자 구자 삭자 하자 작자자)
: 게다가 큰바늘과 쥘창, 날 없는 창과 도끼, 세모창과 한길 여덟 자 창, 뾰죽 창과 작은 칼, 긴 창까지 만들었지.
注] 鈹(피):종기. 째는 데 쓰이는 양날이 있는 파종침. 창. 戣(규):양지창. 殳(수):창, 모둥이. 斨(장):도끼. 厹(구):세모창. 矟(삭):삼지창. 鍜(하):목투구. 鈼(작):釜也, 鉹(창칼치)也. 礮(포):돌쇠뇌. 逞(령):굳세다, 쾌하다, 즐겁다.
有礮發焉
(유포발언) :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聲隤華嶽
(성퇴화악) :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火洩陰陽
(화설음양) : 천지에 불꽃을 쏟아
暴於震霆(폭어진정) :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是猶不足以逞其虐焉
(시유불족이령기학언) : 그래도 아직 잔학(殘虐)을 부린 것이 부족하여,
則乃吮柔毫
(즉내연유호) : 이에 부드러운 털을 쪽 빨아서
合膠爲鋒
(합교위봉) : 아교에 붙여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 냈으니,
體如棗心
(체여조심) : 그 몸은 대추씨 같고
長不盈寸
(장불영촌) : 그 길이는 한 치도 못 되는 것이다.
淬以烏賊之沫
(쉬이오적지말) :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縱橫擊刺
(종횡격자) : 종횡으로 치고 찔러 대는데,
曲者如矛
(곡자여모) :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銛者如刀
(섬자여도) :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銳者如釖
(예자여도) : 예리한 것은 낫같고,
歧者如戟
(기자여극) : 두 갈래 길이 진 것은 가지창 같고,
直者如矢
(직자여시) : 곧은 것은 화살 같고,
彀者如弓
(구자여궁) :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此兵一動
(차병일동) : 이 병기(兵器)를 한번 휘두르면
百鬼夜哭
(백귀야곡) : 온갖 귀신이 밤에 곡(哭)을 한다.
[주D-028]보드라운……지경이라니 : 붓으로 문자를 써서 온갖 못된 짓을 다한다는 비유. 옛날 창힐(倉頡)이 한자(漢子)를 처음 짓자, 귀신이 밤에 울었다 하였다.
其相食之酷
(기상식지혹) :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孰甚於汝乎
(숙심어여호) :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5]북곽선생의 권위회복
1)북곽은 범의 구중을 듣고도 경전을 들먹이며 범의 풍교를 배우겠노라 아첨한다
北郭先生離席俯伏
(북곽선생리석부복) : 북곽 선생은 자리를 옮겨 부복(俯伏)해서
逡巡再拜
(준순재배) : 머리를 새삼 조아리고 아뢰었다.
頓首頓首曰
(돈수돈수왈) :
傳有之
(전유지) : “맹자(孟子) 이루편(離婁篇)에 일렀으되
雖有惡人
(수유악인) : ‘비록 악인(惡人)이라도
齋戒沐浴
(재계목욕) : 목욕 재계(齋戒)하면
則可以事上帝
(즉가이사상제) :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下土賤臣
(하토천신) : 하토의 천한 신하는
敢在下風
(감재하풍) : 감히 아래 처지에 서옵니다.”
屛息潛聽
(병식잠청) : 북곽 선생이 숨을 죽이고 명령을 기다렸으나
久無所命
(구무소명) : 오랫동안 아무 명령이 없기에
誠惶誠恐
(성황성공) : 참으로 황공해서
拜手稽首
(배수계수) : 절하고 조아리다가
仰而視之
(앙이시지) :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東方明矣
(동방명의) : 이미 먼동이 터 훤히 밝았는데
虎則已去
(호즉이거) : 범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2)들에 나온 농부 만나 권위를 온전히회복하다
農夫有朝菑者
(농부유조치자) : 그 때 새벽 일찍 밭 갈러 나온 농부가 있었다.
問先生何早敬於野
(문선생하조경어야) : “선생님, 이른 새벽에 들판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北郭先生曰
(북곽선생왈) : 북곽 선생은 엄숙히 말했다.
吾聞之
(오문지) : “내가 들으니 시경시에
謂天蓋高
(위천개고) : ‘하늘이 높다 해도
不敢不局
(불감불국) :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謂地蓋厚
위지개후) : 땅이 두텁다 해도
不敢不蹐
(불감불척) :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 하셨느니라.”
호질후지(虎叱後識)
연암씨(燕巖氏) 가로되,
“이 편(篇)이 비록 지은이의 성명은 없으나 대체로 근세 중국 사람이 비분(悲憤)함을 참지 못해서 지은 글일 것이다. 요즘 와서 세운(世運)이 긴 밤처럼 어두워짐에 따라 오랑캐의 화(禍)가 사나운 짐승보다도 더 심하며, 선비들 중에 염치를 모르는 자는 하찮은 글귀나 주워 모아서 시세에 호미(狐媚)하니, 이는 바로 남의 묘혈(墓穴)을 파는 유학자(儒學者)로서 시랑 같은 짐승으로도 오히려 먹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것이 아닐는가 싶다. 이제 이 글을 읽어 본즉, 말이 많이들 이치에 어긋나서 저거협(胠篋)ㆍ도척(盜跖)1)과 뜻이 같다. 그러나 온 천하의 뜻있는 선비가 어찌 하룬들 중국을 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청(淸)이 천하의 주인이 된 지 겨우 네 대째건마는 그들은 모두 문무가 겸전하고 수고(壽考)를 길이 누렸으며, 승평을 노래한 지 백 년 동안에 온 누리가 고요하니, 이는 한(漢)ㆍ당(唐) 때에도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처럼 편안히 터를 닦고 모든 건설하는 뜻을 볼 때에 이 또한 하느님의 배치(配置)한 명리(命吏 제왕을 일컬음)가 아닐 수 없겠다.옛날 어느 학자가 일찍이 하늘이 순순(諄諄)히 명령하신다는 말씀을 의심하여 성인(맹자)에게 질문했더니, 그 성인은 똑똑히 하느님의 뜻을 받아서,
‘하느님은 말씀으로 하진 않으시고 모든 실천과 사실로서 표시하는 거야.’2)
하셨으니,소자(小子)3)일찍이 이 글을 읽다가 이곳에 이르러선 퍽 의심스러웠다. 이제 나는 감히 묻노니,
“하느님께선 모든 실천과 사실로써 그의 의사를 표시하실진대, 저 오랑캐의 제도로써 중국의 것을 뜯어 고친다는 것은 천하의 커다란 모욕인만큼 저 인민들의 원통함이 그 어떠하며, 향기로운 제물과 비린내 나는 제물은 각기 그들의 닦은 덕(德)에 따라 다른 것이니, 백신(百神)은 그 어떤 냄새를 응감할 것인가.”
요컨대, 사람으로서 보면 중화(中華)와 이적의 구별이 뚜렷하겠지마는 하늘로서 본다면 은(殷)의 우관(冔冠)이나 주(周)의 면류(冕旒)도 제각기 때를 따라 변하였거니, 어찌 반드시 청인(淸人)들의 홍모(紅帽)만을 의심하리오. 이에천정(天定)ㆍ인중(人衆)의 설(說)4)이 그 사이에 유행되고는, 사람과 하늘의 서로 조화되는 이(理)는 도리어 한 걸음 물러서서 기(氣)에게 명령을 받게 되며, 또 이런 문제로써 옛 성인의 말씀에 체험하여도 맞지 않으면 문득 이르기를,
‘이건, 천지의 기수(氣數)가 이런 것이야.’
한다. 아아, 슬프다. 이것이 어찌 참으로 기수의 소치라 이르고 말 것인가. 아아, 슬프다. 명(明)의 왕택(王澤)이 끊인 지 벌써 오래여서 중원의 선비들이 그 머리를 고친(치발(薙髮)) 지도 백 년의 요원한 세월이 흘렀으되, 자나 깨나 가슴을 치며 명실(明室)을 생각함은 무슨 까닭인고. 이는 차마 중국을 잊지 못함이다. 그러나 청이 저를 위한 계책도 역시 허술하다 하리로다. 그는 전대(前代) 오랑캐 출신의 말주(末主)들이 항상 중화의 풍속과 제도를 본받다가 쇠망했음을 징계하여 철비(鐵碑)를 새겨서 전정(箭亭 파수 보는 곳)에 묻었으나, 그들 평소에 하고 버리는 말 가운데에는 언제나 스스로 그의 옷과 벙거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오히려 다시 강약의 형세에만 마음을 두니 그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저 문왕(文王)처럼 깊은 꾀와 무왕(武王) 같은 높은 공렬로도 오히려 말주(은의 주왕(紂王))의 쇠퇴함을 구해 내지 못했거늘, 하물며 구구(區區)하게 저 의관 제도의 하찮은 것을 고집해선 무엇할 것인가. 그들의 옷과 벙거지가 진정 싸움에 경편하다면 저 북적(北狄)이나 서융(西戎)의 그것인들 아니될 이유는 없을 것인즉, 그들은 의당 힘껏 저 서북쪽의 오랑캐들로 하여금 도리어 중국의 옛 습속을 따르게 한 연후에야 비로소 천하에 홀로 강한 체할 것이어늘, 이제 온 천하의 인민들을 모두 욕된 구렁에 몰아넣고는 홀로 호령하되,
‘잠깐 너희들의 수치를 참으면 우리를 따라 강하게 될지어다.’
하나, 나는 그 ‘강하다’는 것이야말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의관 제도만으로 강함이 된다면, 저신시(新市)ㆍ녹림(綠林)5)사이에 그눈썹을 붉게 물들이거나6)또는 그머리 수건을 노란 빛깔로 고쳐서7)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했던도적놈8)이라야 되는 것은 아니리라. 가령 어리석은 인민들로 하여금 한번 일어나서 그들이 씌워 주었던 벙거지를 벗어서 땅에 팽개친다면, 청 황제(淸皇帝)는 벌써 천하를 앉은 자리에서 잃어버리게 될지니, 지난날 이를 믿고서 스스로 강하다고 뽐내던 것이 도리어 망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된다면 그 빗돌을 새겨 묻어서 후세에 경계한 일이야말로 어찌 부질없는 짓이 아니리오. 이 편은 애초엔 제목(題目)이 없으므로 이제 그 글 중에 ‘호질(虎叱)’이란 두 글자를 따서 제목을 삼아 두어 저 중원의 혼란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하였다.
燕岩氏曰。
연암씨(燕巖氏) 가로되,
篇雖無作者姓名。而盖近世華人悲憤之作也。
“이 편(篇)이 비록 지은이의 성명은 없으나 대체로 근세 중국 사람이 비분(悲憤)함을 참지 못해서 지은 글일 것이다.
요즘 와서 세운(世運)이 긴 밤처럼 어두워짐에 따라 오랑캐의 화(禍)가 사나운 짐승보다도 더 심하며, 선비들 중에 염치를 모르는 자는 하찮은 글귀나 주워 모아서 시세에 호미(狐媚)하니, 이는 바로 남의 묘혈(墓穴)을 파는 유학자(儒學者)로서 시랑 같은 짐승으로도 오히려 먹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것이 아닐는가 싶다.
今讀其文。言多悖理。與胠篋盜跖同旨。
이제 이 글을 읽어 본즉, 말이 많이들 이치에 어긋나서 저거협(胠篋)ㆍ도척(盜跖)1)과 뜻이 같다.
然天下有志之士。豈可一日而忘中國哉。
그러나 온 천하의 뜻있는 선비가 어찌 하룬들 중국을 잊을 수 있겠는가.
今淸之御宇纔四世。而莫不文武壽考。昇平百年。四海寧謐。此漢唐之所無也。
이제 청(淸)이 천하의 주인이 된 지 겨우 네 대째건마는 그들은 모두 문무가 겸전하고 수고(壽考)를 길이 누렸으며, 승평을 노래한 지 백 년 동안에 온 누리가 고요하니, 이는 한(漢)ㆍ당(唐) 때에도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觀其全安扶植之意。殆亦上天所置之命吏也。
이처럼 편안히 터를 닦고 모든 건설하는 뜻을 볼 때에 이 또한 하느님의 배치(配置)한 명리(命吏 제왕을 일컬음)가 아닐 수 없겠다.
“하느님께선 모든 실천과 사실로써 그의 의사를 표시하실진대, 저 오랑캐의 제도로써 중국의 것을 뜯어 고친다는 것은 천하의 커다란 모욕인만큼 저 인민들의 원통함이 그 어떠하며, 향기로운 제물과 비린내 나는 제물은 각기 그들의 닦은 덕(德)에 따라 다른 것이니, 백신(百神)은 그 어떤 냄새를 응감할 것인가.”
요컨대, 사람으로서 보면 중화(中華)와 이적의 구별이 뚜렷하겠지마는 하늘로서 본다면 은(殷)의 우관(冔冠)이나 주(周)의 면류(冕旒)도 제각기 때를 따라 변하였거니, 어찌 반드시 청인(淸人)들의 홍모(紅帽)만을 의심하리오.
아아, 슬프다. 이것이 어찌 참으로 기수의 소치라 이르고 말 것인가. 아아, 슬프다. 명(明)의 왕택(王澤)이 끊인 지 벌써 오래여서 중원의 선비들이 그 머리를 고친(치발(薙髮)) 지도 백 년의 요원한 세월이 흘렀으되, 자나 깨나 가슴을 치며 명실(明室)을 생각함은 무슨 까닭인고. 이는 차마 중국을 잊지 못함이다. 그러나 청이 저를 위한 계책도 역시 허술하다 하리로다.
懲前代胡主之末效華而衰者。勒鐵碑埋之箭亭。其言未甞不自恥其衣帽。而猶復眷眷於强弱之勢。何其愚也。
그는 전대(前代) 오랑캐 출신의 말주(末主)들이 항상 중화의 풍속과 제도를 본받다가 쇠망했음을 징계하여 철비(鐵碑)를 새겨서 전정(箭亭 파수 보는 곳)에 묻었으나, 그들 평소에 하고 버리는 말 가운데에는 언제나 스스로 그의 옷과 벙거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오히려 다시 강약의 형세에만 마음을 두니 그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저 문왕(文王)처럼 깊은 꾀와 무왕(武王) 같은 높은 공렬로도 오히려 말주(은의 주왕(紂王))의 쇠퇴함을 구해 내지 못했거늘, 하물며 구구(區區)하게 저 의관 제도의 하찮은 것을 고집해선 무엇할 것인가. 그들의 옷과 벙거지가 진정 싸움에 경편하다면 저 북적(北狄)이나 서융(西戎)의 그것인들 아니될 이유는 없을 것인즉, 그들은 의당 힘껏 저 서북쪽의 오랑캐들로 하여금 도리어 중국의 옛 습속을 따르게 한 연후에야 비로소 천하에 홀로 강한 체할 것이어늘, 이제 온 천하의 인민들을 모두 욕된 구렁에 몰아넣고는 홀로 호령하되,
굳이 의관 제도만으로 강함이 된다면, 저신시(新市)ㆍ녹림(綠林)5) 사이에 그 눈썹을 붉게 물들이거나6) 또는 그 머리 수건을 노란 빛깔로 고쳐서7)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했던 도적놈8)이라야 되는 것은 아니리라. 가령 어리석은 인민들로 하여금 한번 일어나서 그들이 씌워 주었던 벙거지를 벗어서 땅에 팽개친다면, 청 황제(淸皇帝)는 벌써 천하를 앉은 자리에서 잃어버리게 될지니, 지난날 이를 믿고서 스스로 강하다고 뽐내던 것이 도리어 망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된다면 그 빗돌을 새겨 묻어서 후세에 경계한 일이야말로 어찌 부질없는 짓이 아니리오.
今取篇中有虎叱二字爲目。以竢中州之淸焉。
이 편은 애초엔 제목(題目)이 없으므로 이제 그 글 중에 ‘호질(虎叱)’이란 두 글자를 따서 제목을 삼아 두어 저 중원의 혼란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하였다.
註)
[주1]거협(胠篋)ㆍ도척(盜跖) : 모두 《장자》의 편명. 《남화경(南華經)》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
[주2]옛날 …… 거야 : 《맹자》 만장편에 나오는 구절. 여기서 ‘어느 학자’란 맹자의 제자인 만장(萬章)을 말함.
[주3]소자(小子) : 연암이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서 한 말.
[주4]천정(天定) …… 설(說) : 《귀잠지(歸潛志)》에,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하늘도 막아 낼 수 없고, 하늘이 정해 놓은 것은 사람이 어쩔 수 없다.” 하였다.
[주5]신시(新市)ㆍ녹림(綠林) : 이 둘은 모두 당시의 소위 유적(流賊)이 출몰하는 근거지.
[주6]눈썹을 …… 물들이거나 : 적미적(赤眉賊). 서한(西漢) 말년의 유적.
[주7]머리 …… 고쳐서 : 동한(東漢) 말기의 황건적(黃巾賊).
[주8]도적놈 : 옛날 지배 계급의 역사에서는, 정의를 들고 일어서서 항쟁하는 농민들은 모두 도적이라 일컬었다.
나는 전에 고금의 기괴한 일을 편집하여 『전등록(剪燈錄)』 40권을 엮은 바 있다. 호사가(好事家)들은 각자 최근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오래 되었다 해도 100년을 넘지 않고 근래의 것은 불과 수년 내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점점 쌓여 나날이 늘어나자 끝내는 습관이 되어 버려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결국은 붓을 들어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연들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놀랍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한 것들인데 안타깝게도 글재주가 형편없고 글의 깊이도 천박하여 이를 펼쳐내더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문장력을 발휘하는 작품이 없었다. 게다가 완성해놓고 보니 그 말이 기괴하고 또 음란하기까지 해서 책 상자 속에 감추어둔 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소식을 듣고 찾아와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그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를 변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경』ㆍ『서경』ㆍ『주역』ㆍ『춘추』와 같은 책은 모두 성현이 서술한 바를 적은 것으로 만세에 전해지는 대경(大經)이자 대법(大法)이 되었다. 그런데도 『주역』에는 용이 들판에서 싸운 사건이 나와 있고 『서경』에는 꿩이 솥귀에 올라 앉아 운 사건을 기재하고 있으며 『국풍』에는 남녀가 사통하는 음분(淫奔)의 시를 뽑아놓았으며 『춘추』에는 난적(亂賊)의 일을 기재하고 있는 등 이런 것을 하나하나 예로 들기가 힘들다. 내가 지금 『전등신화』를 편찬한 것이 비록 세교(世敎)에 폐를 끼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혹 그렇지 않다면 권선징악과 가난하고 억울한 자를 애도하게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되니 이 역시 말하는 자는 죄가 없고 듣는 자는 족히 경계할 만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객이 나의 이 말을 듣고 모두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이에 책의 서두에 적어두는 바이다. 홍무 11년(1378), 무오년 유월 초하루, 산양(山陽)의 구우(瞿佑)가 오산(吳山) 대은당(大隱堂)에서 쓰다.
1. 광명(廣明) 2년(881년, 신라 헌강왕 7년) 7월 8일,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아무개(某: 고변(高騈)을 일컬음)는 황소(黃巢)에게 알리는 바이다.
廣明二年七月八日。諸道都統檢校太尉某。告黃巢。
광명 2년 7월 8일에,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아무는 황소(黃巢)에게 알린다.
2
대범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는 것이요,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지혜 있는 이는 시기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르는 데서 패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백 년(百年)의 생명에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나, 만사(萬事)는 마음이 주장된 것이매, 옳고 그른 것은 가히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3
이제 내가 왕사(王師)를 거느리고 정벌(征伐)은 있으나 싸움은 없는 것이요, 군정(軍政)은 은덕을 앞세우고 베어 죽이는 것을 뒤에 하는 것이다. 앞으로 상경(上京)을 회복하고 큰 신의(信義)를 펴려 함에 공경하게 임금의 명을 받들어서 간사한 꾀를 부수려 한다. 또 네가 본시 먼 시골의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문득 감히 강상(綱常)을 어지럽게 하였다. 드디어 불측한 마음을 가지고 높은 자리를 노려보며 도성을 침노하고 궁궐을 더럽혔으니, 이미 죄는 하늘에 닿을 만큼 극도로 되었으니, 반드시 크게 패하여 망할 것이다.
4
아, 요순(堯舜) 때로부터 내려오면서 묘(苗)나 호(扈) 따위가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양심 없는 무리와 불의불충(不義不忠)한 너 같은 무리의 하는 짓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나. 먼 옛적에 유요(劉曜)와 왕돈(王敦)이가 진(晉)나라를 엿보았고, 가까운 시대에는 녹산(祿山)과 주자(朱泚)가 황가(皇家, 당나라)를 향하여 개가 짖는 듯하였다. 그것들은 모두 손에 강성한 병권도 잡았고, 또는 몸이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 호령만 떨어지면 우레와 번개가 달리듯 하고, 시끄럽게 떠들면 안개나 연기처럼 깜깜하게 막히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잠깐 동안 못된 짓을 하다가 필경에는 더러운 종자들이 섬멸되었다. 햇빛이 활짝 펴니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으며, 하늘의 그물이 높이 베풀어져서 반드시 흉한 족속들은 없애고 마는 것이다.
5
하물며 너는 평민의 천한 것으로 태어났고, 농민으로 일어나서 불을 지르고 겁탈하는 것을 좋은 꾀라 하며, 살상(殺傷)하는 것을 급한 임무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만 있고, 속죄될 조그마한 착함은 없었으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땅 가운데 귀신까지 가만히 베어 죽이려고 의론하리라.
6
비록 잠깐 동안 숨이 붙어 있으나, 벌써 정신이 죽었고, 넋이 빠졌으리라. 대범 사람의 일이란 것은 제가 저를 아는 것이 제일이다. 내가 헛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모름지기 살펴 들으라.
7
요즈음 우리 국가에서 덕이 깊어 더러운 것도 참아주고 은혜가 중하여 결점을 따지지 아니하여 너에게 장령(將領)으로 임명하고 너에게 지방 병권(兵權)을 주었거늘 너는 오히려 짐새[鴆]와 같은 독심만을 품고 올빼미의 소리를 거두지 아니하여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고 하는 짓이 개[犬]가 주인에게 짖는 듯하여 필경에는 몸이 임금의 덕화를 등지고 군사가 궁궐에까지 몰려들어 공후(公侯)들은 위태로운 길로 달아나고 임금의 행차는 먼 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8
너는 일찍 덕의(德義)에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완악하고 흉악한 짓만 늘어간다. 이에 임금께서는 너에게 죄를 용서하는 은혜가 있었는데, 너는 국가에 은혜를 저버린 죄가 있다. 반드시 얼마 아니면 죽고 망하게 될 것이니, 어찌 하늘을 무서워하지 아니하는가. 하물며 주(周)나라 솥[鼎]은 물어볼 것이 아니요, 한(漢)나라 궁궐이 어찌 너 같은 자가 머물 곳이랴. 너의 생각은 마침내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9
도덕경(道德經)》에 이르기를,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낙비는 하루 동안을 채우지 못한다.” 하였으니 천지도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10
또 듣지 못하였느냐.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잠깐 나쁜 자를 도와주는 것은 복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흉악함을 쌓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하였다.
11
이제 너는 간사한 것도 감추고 사나운 것을 숨겨서 악이 쌓이고 앙화[禍]가 가득하였는데도 위험한 것으로 스스로 편케 여기고 미혹하여 뉘우칠 줄 모르니, 옛말에 이른바 제비가 막(幕) 위에다 집을 지어 놓고 불이 막을 태우는데도 방자히 날아드는 거나 물고기가 솥[鼎] 속에서 너울거린들 바로 삶아 데인 꼴을 보는 격이다.
12
나는 웅장한 군략(軍略)을 가지고 여러 군대를 모았으니, 날랜 장수는 구름 같이 날아들고 용맹스런 군사들은 비 쏟아지듯 모여 들어 높고 큰 깃발은 초새(楚塞)의 바람을 에워싸고 군함은 오강(吳江)의 물결을 막아 끊었다.
13
진(晉)나라 도태위(陶太尉)는 적을 부수는데 날래었고, 수(隋)나라 양소(楊素)는 엄숙함이 신(神)이라 일컬었다. 널리 팔방을 돌아보고 거침없이 만 리(萬里)에 횡행(橫行)하였다. 맹렬한 불이 기러기 털을 태우는 것과 같고 태산(泰山)을 높이 들어 참새알을 눌러 깨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14
서늘바람 나는 가을에 강에 물귀신이 우리 군사를 맞이한다. 서풍이 불어 숙살(肅殺)하는 위엄을 도와주고 새벽이슬은 답답한 기운을 상쾌하게 하여 준다. 파도도 일지 않고 도로도 통하였으니, 석두성(石頭城)에서 뱃줄을 푸니 손권(孫權)이 뒤에서 호위하고 현산(峴山)에 돛을 내리니 두예(杜預)가 앞장선다. 경도(京都)를 수복하는 것이 열흘이나 한 달 동안이면 기필할 수 있을 것이다.
15
다만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임을 싫어하는 것은 상제(上帝)의 깊으신 인자(仁慈)함이요, 법을 굴하여 은혜를 펴려는 것은 큰 조정의 어진 제도다. 나라의 도적을 정복하는 이는 사사로운 분(忿)을 생각지 않는 것이요, 어둔 길에 헤매는 자를 일깨우는 데는 진실로 바른 말을 하여 주어야 한다.
16
나의 한 장 편지로써 너의 거꾸로 매달린 듯한 다급한 것을 풀어주려는 것이니, 고집을 하지 말고 일의 기회를 잘 알아서 스스로 계책을 잘하여 허물을 짓다가도 고치라.
17
만일 땅을 떼어 봉해 줌을 원한다면, 나라를 세우고 집을 계승하여 몸과 머리가 두 동강으로 되는 것을 면하며, 공명(功名)의 높음을 얻을 것이다. 겉으로 한 도당(徒黨)의 말을 믿지 말고 영화로움을 후손에까지 전할 것이다. 이는 아녀자(兒女子)의 알 바가 아니라, 실로 대장부의 일인 것이다. 일찍이 회보(回報)하여 의심 둘 것 없느니라. 나의 명령은 천자를 머리에 이고 있고, 믿음은 강물에 맹세하여 반드시 말이 떨어지면 그대로 하는 것이요, 원망만 깊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18
만일 미쳐 덤비는 도당에 견제(牽制)되어 취한 잠이 깨지 못하고 여전히 당랑(螳螂)이 수레바퀴를 항거하기를 고집한다면, 그때는 곰을 잡고 표범을 잡는 군사로 한 번 휘둘러 없애버릴 것이니, 까마귀처럼 모여 소리개 같이 덤비던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갈 것이다. 몸은 도끼에 기름 바르게 될 것이요, 뼈는 융거(戎車, 군용차(軍用車)) 밑에 가루가 되며, 처자도 잡혀 죽으려니와 종족들도 베임을 당할 것이다.
19
생각하건대, 동탁(董卓)의 배를 불로 태울 때에 반드시 후회하여도 때는 늦으리라. 너는 모름지기 진퇴(進退)를 참작하고 잘된 일인가 못된 일인가 분별하라. 배반하여 멸망되기보다 어찌 귀순하여 영화롭게 됨과 같으랴.
20
다만 바라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하라. 장사(壯士)의 하는 짓을 택하여 갑자기 변할 것을 결정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으로 여우처럼 의심만 하지 말라.
이 글의 서문에 해당하는 첫 부분은,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에 대한 구분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먼저 첫 번째 부분인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守正修常曰道。臨危制變曰權。)’이란 대목은 북제(北齊)시대 유주(劉晝)의 <신론(新論).명권(明權)>에 나오는 “이치를 쫒아 떳떳함을 지키는 것을 도(道)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循理守常曰道,臨危制變曰權。)”는 구절을 약간 고쳐 인용한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나오는 ‘권(權)’이란 개념은 <맹자(孟子). 이루장(離婁章)>에서 나오는 것으로,제(齊)나라 변설가인 순우곤(淳于髡)이 “남녀가 유별한 데, 제수나 형수가 물에 빠지면 어찌해야 합니까?”란 질문에 맹자가 “남자와 여자가 손을 닿지 않는 것은 예이고,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끌어내는 것은 권(權)입니다.”라고 한 데서 유래됩니다.
이때 맹자가 대답한 권(權)은 ‘저울추’를 의미하는 것으로, 저울추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위치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므로 ‘상황에 따라 달리 대처해야 하는 행동원리’를 가리킵니다.즉 이 세상에 절대의 원칙은 없는 것이며, 그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최선의 행동원리를 취하는 것 또한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문장인 ‘슬기로운 자는 시기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게 되고,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르는 데서 패하게 되는 것이다(智者成之於順時。愚者敗之於逆理。)’는 <후한서(後漢書)‧주부전(朱浮傳)>에 나오는 ‘슬기로운 자는 세력에 순응하여 일을 도모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슬러 행동한다(智者順勢而謀, 愚者逆理而動)’는 구절을 또한 변형하여 표현 한 구절입니다.
이어서, 최치원은 ‘살고 죽는 것은 비록 알 수 없으나,옳고 그른 것은 알 수 있는 법, (그대는 어찌 옳고 그름을 판별치 못하는 가?)’라고 일침을 가하며 서문을 마치고 있습니다.황소격문(討黃巢檄文)>의 서문에 이어,이어지는 본문 내용입니다.
2. 지금 나는 황제가 내려 준 군대를 거느리고 역적을 정벌(征伐)하려는 것이지,너와 같은 역적을 상대로 싸우려는(戰爭) 것이 아니다. 군정(軍政)은 은덕을 앞세우고 베어 죽이는 것을 뒤에 하는 것인즉,(토벌을 하기에 앞서 한 번 더 은혜로써 회유하여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앞으로 장안(長安)을 회복하여 큰 신의(信義)를 펴려 하는 것이며, 공경하게 황제의 명을 받들어서 백성을 편안케 하고 간사한 꾀를 막으려 하는 것이지, (너희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今我以王師則有征無戰。軍政則先惠後誅。將期剋復上京。固且敷陳大信。敬承嘉諭。用戢奸謀。
본문 문장의 첫머리를 최치원은 전쟁의 명분을 내세우며 시작하고 있습니다.먼저, 그는 ‘정벌(征伐)’과 ‘전쟁(戰爭)’의 개념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서경(書經). 윤정(允征)>편에, ‘정벌(征伐)이란, 황제의 말씀을 받들어 죄인을 징벌하는 것이다(奉辭伐罪曰征)’라고 풀이하였다.
3. 또 네가 본시 먼 시골의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문득 감히 상규(常規)를 어지럽히더니, 드디어 불측한 마음을 품고, 황제의 자리를 넘보면서, 도성을 침노하고, 궁궐을 더럽혔으니, 이미 죄는 하늘에 닿았고, 반드시 크게 패하여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문장에서 최치원은 황소(黃巢)의 출신을 거론하며 이미 지은 죄가 지극히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첫 번째 단어는 ‘하맹(遐甿)’인데, ‘멀다’는 뜻의 ‘하(遐)’와 ‘무지한 백성’이란 훈의 ‘맹(甿)’을 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즉, ‘먼 시골의 무지랭이 백성’이란 뜻인데,당(唐)나라 어소(於邵: AD 713~793)란 문인이 <唐檢校右散騎常侍容州刺史李公去思頌序>란 공덕을 기리는 글에서 ‘백성에게 베푼 이익의 혜택이 먼 땅(裔土)까지 미치고, 도(道)에 의한 교화가 시골의 무지렁이 백성(遐甿)들까지 미쳤다(利澤施於裔土,美化被乎遐甿。)’라는 글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다음 눈여겨 볼 단어는 ‘경적(勍敵)’입니다.‘강적(強敵)’이란 뜻의 단어인데, <좌전(左傳)>의 희공22년에 나오는 단어로, ‘宋襄之仁(송양지인)’으로 유명한 고사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송(宋)나라 양공(襄公)은 초(楚)나라와 싸움이 일어났을 때 아들 목이(目夷)가 초나라의 허점을 공격하자고 하였습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를 타서 공격을 가하면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건 정정당당한 싸움이 될 수 없다.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참다운 패자(覇者)가 될 수 있겠는가?”
초나라 군사가 진을 벌리고 있을 때 또 목이가 말하길, “적이 진을 미처 다 벌이기 전에 이를 치면 적을 혼란에 빠뜨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공이 대답하길, “군자는 사람이 어려운 때 괴롭히지 않는다” 하고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송나라는 크게 패합니다.
이후 스스로를 변명하길, “과인이 비록 망국의 후손이나 대열을 정비하지 못한 적군에게 진격의 북을 칠수가 없었노라”라고 하자, 신하인 자어(子魚)가 대답하길, “임금께서는 전쟁을 모르십니다.강한 적(勍敵)이 험한 곳에서 대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니 이렇게 막혔을 때 북을 쳐서 진격하는 것이 어찌 가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君未知戰,勍敵之人隘而不列,天贊我也。阻而鼓之,不亦可乎?)”라고 하는데,여기에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경적(勍敵)’입니다.
그 다음은 ‘난상(亂常)’이란 단어입니다.‘상규(常規)를 어지럽히다’란 뜻인데, <사기(史記) 원앙조조열전(袁盎晁錯列傳論)>에 나오는 단어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을 없애고 세상의 변치 않는 상규(常規)를 어지럽히면, 죽지 않으면 망하는 법입니다(變古亂常,不死則亡)’라고 진언한 내용 중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 다음은 ‘하늘에 닿는다’란 의미의 ‘도천(滔天)’이란 단어인데,<서경(書經).요전(堯典)>에 ‘말은 잘하나 행동은 위배되고, 외양은 공손하나 마음은 오만하기가 하늘에 닿는다(靜言庸違,象恭滔天)’라고 요(堯)임금이 공공(共工)이란 사람을 평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단어는 ‘패심도지(敗深塗地)’입니다.이 단어는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記)〉에 나오는 ‘일패도지(一敗塗地)’, 즉 ‘항우와의 싸움은 워낙 중요해서 한 번이라도 싸움에 패하면 땅에 떨어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의미의 단어인데,이것을 최치원이 살짝 바꾸어 표현한 것입니다.
비록 한 구절의 표현인데도, 사용되는 단어 하나하나가 장중하고도 적절한 전고(典故)를 가지고 있는 명문입니다.
4.
噫。唐虞已降。苗扈弗賓。無良無賴之徒。不義不忠之輩。爾曹所作。何代而無。
아! 요순(堯舜)시대 이래로 묘족(苗族: 동정호 주변 남방에서 활동한 고대민족)이나 호족(扈族: 협서성(陝西省) 호현(戶縣) 북쪽에 위치했던 고대국가) 따위가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양심 없는 무리와 불의불충(不義不忠)한 너희 같은 무리의 하는 짓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나.
遠則有劉曜,王敦覬覦晉室。近則有祿山,朱泚吠噪皇家。
먼 옛적에 유요(劉曜: 오호십육국시대 전조(前趙)의 5대 황제)와 왕돈(王敦: 동진(東晉)의 건국공신. 이후 난을 일으킴)이가 진(晉)나라를 엿보았고, 가까운 시대에는 안녹산(安祿山: 당 현종시대 안녹산의 난을 일으킴)과 주자(朱泚: 당나라 덕종시대 난을 일으킴)가 황가(皇家, 당나라)를 향하여 개가 짖는 듯하였다.
彼皆或手握強兵。或身居重任。叱吒則雷奔電走。喧呼則霧塞煙橫。然猶暫逞奸圖。終殲醜類。
그들은 모두 손에 막강한 병권(兵權)을 쥐었고 또한 몸이 중요한 지위에 있어서, 호령만 떨어지면 우레와 번개가 치닫듯 요란하였고,시끄럽게 떠들면 안개와 연기가 자욱하듯 하였지만, 잠깐 동안 못된 짓을 하다가 필경(畢竟)에는 더러운 씨조차 섬멸(殲滅)을 당하였다.
日輪闊輾。豈縱妖氛。天網高懸。必除兇族。
햇빛이 활짝 펴니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으며,하늘의 그물이 높이 베풀어져서 반드시 흉한 족속들은 없애고 마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는 요순(堯舜)시대 이래 이런 저런 여러 반란들이 있어왔지만 종국에는 비참한 결말을 면치 못하였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먼저, ‘당우(唐虞)’란 단어는 요순(堯舜)을 의미합니다.요(堯)임금께서 당(唐)이라는 곳에서 봉(封)함을 받은 데서 ‘당요(唐堯)’라 불리고, 순(舜)임금께서는 조상이 우(虞, 산서 우향)땅에 살았기 때문에 ‘우순(虞舜)’이라 불리므로, 요순(堯舜)이란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휘(諱)하여 일반적으로 중국문헌상 ‘당우(唐虞)’라 자주 표현됩니다.
다음 이어지는 문장은 최치원의 문필력이 돋보이는 구절입니다.‘唐虞已降(당우이강) 苗扈弗賓(묘호불빈)’, 이 문장을 우리가 쉽게 알수 있게 바꾼다면 ‘唐虞已來(당우이래) 苗扈不服(묘호불복)’, 즉 ‘요순시대 이래로, 묘족및 호족등 따위가 복종하지 않았다’는 뜻인데,‘已來(이래)’를 ‘已降(이강)’으로 바꾸고 ‘不服(불복)’을 ‘弗賓(불빈)’으로 바꾸므로서 문장의 격을 한차원 높여 놓았습니다.
‘빈(賓)’은 보통 ‘객(客)’을 나타내지만,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의하면 ‘복종한다’는 ‘복(服)’의 의미가 있습니다. <신서(新序)>란 글에, ‘선왕께서 예를 갖추어 지휘하니, 사해(四海)가 복종하는 까닭은 성덕(誠德)의 지극함이 밖으로 드러남입니다(先王所以拱揖指揮,而四海賓者,誠德之至已形于外)’등이 그 용례인데, 최치원은 이러한 드문 용법을 사용하여 문장의 격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목할 단어는 ‘이조소작(爾曹所作) 하이무대(何代而無)’,즉 ‘너희 같은 무리의 하는 짓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나?’라는 문장 중 나타나는 ‘이조(爾曹: 너희 무리들)’이란 단어입니다.<후한서(後漢書).조희전(趙憙傳)>에 ‘너희 무리들이 만약 건강하다면, 먼곳으로 피해야 할 것이다(爾曹若健,遠相避也)’라고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데, 이후 이 단어는 최치원의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에 이어,아래와 같이 두보(杜甫)의 <戲爲六絕句>의 두 번째 시등에서 나타납니다.
王楊盧駱當時體
(왕양노락당시체) 초당사걸(왕발, 양형, 노조린, 낙빈왕) 시인들이 쓰던 시체를,
輕薄爲文哂未休
(경박위문신미휴) 경박한 글이라 비웃기를 그치지 않네.
爾曹身與名俱滅
(이조신여명구멸) (비웃는) 너희들은 몸과 이름 다 없어지나,
不廢江河萬古流
(불폐강하만고류) (그들의 이름과 문장은) 강물이 그치지 않듯 만고에 흐름을 그치지 않으리.
그 다음, ‘기유(覬覦)’란 단어는 ‘분수에 넘치는 야심으로 기회를 노리고 엿봄’이란 뜻으로,<좌전(左傳)>및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단어를 전고(典故)하였으며, ‘폐조(吠噪)’란 단어는 최치원이 만든 조어(造語)로서, ‘개가 짓는다’는 뜻의 ‘폐(吠)’와 ‘벌레가 시끄럽게 한다’는 뜻의 ‘조(噪)’를 붙여서 만든 단어입니다.
마지막으로, ‘천망(天網)’은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크고 커서, 엉성하게 보여도 놓치는 게 없다)’이라는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73장의 단어입니다.
이 유명한 문장은 이후, 삼국지의 <위서(魏書).임성왕전(任城王傳)>에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疏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크고 커서, 엉성하게 보여도 새는 게 없다)’라고도 바꾸어 표현되는데,최치원은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하여 ‘천망고현 필제흉족(天網高懸 必除兇族: 하늘의 그물이 높이 베풀어지니, 흉한 족속들은 반드시 없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표현하여 그 필연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물며 너는 평민의 천한 것으로 태어났고, 농민으로 일어나서 불을 지르고 겁탈하는 것을 좋은 계책이라 여기며,
살상(殺傷)하는 것을 급한 임무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만 있고, 속죄될 조그마한 착함도 없었으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땅 가운데 귀신까지 이미 너를 베어 죽이려고 의론하리라!
縱饒假氣遊魂。早合亡神奪魄。
凡爲人事。莫若自知。吾不妄言。汝須審聽。
설령 숨이 붙어있다 해도 혼(魂)은 이미 나갔고, 벌써 정신이 죽고 넋이 빠졌으리라.
대저 사람의 일이란 제 스스로 아는 것 만한 것이 없다. 내가 헛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모름지기 살펴 들으라.
이어지는 문장은, 황소(黃巢)가 침상에 누워 읽다가 놀라서 굴러 떨어졌다는 다소 미신적인 설화(說話)의 대상이 되는 바로 그 대목입니다.
먼저 최치원은 황소(黃巢)의 신분이 ‘여염지말(閭閻之末)’, 즉 소금장사를 하였으므로 평민 가운데서도 가장 천하고, ‘농묘지간(隴畝之間)’, 즉 논두렁(隴)과 밭이랑(畝)사이에서 농사를 짓던 신분임을 다시 환기시킵니다. 여기서, ‘여염(閭閻)’이란 단어는 오늘날에도 쓰이는 단어로서,본래의 의미는 ‘여(閭)’는 ‘마을의 문(里門)’이고, ‘염(閻)’은 ‘마을의 중문(里中門)’을 나타내어서, 평민이 살던 곳, 즉 ‘평민’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한 신분출신이, ‘분겁(焚劫: 집을 불태우고 재산을 빼앗는 일)’을 좋은 계책이라 여기며(以焚劫爲良謀), 함부로 ‘살상(殺傷)’하는 일을 최우선 임무로 생각하고(以殺傷爲急務), ‘대연(大愆: 큰 죄)’이 ‘탁발(擢髮: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뽑는다는 말로 지극히 많음을 의미)’처럼 많으며(有大愆可以擢髮), ‘속신(贖身)’, 즉 속죄할 조그만 착함도 없었다(無小善可以贖身)라고 황소(黃巢)의 그간의 행적을 논죄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속신(贖身)’이란 단어중 ‘속(贖)’의 의미는 ‘몸값을 받고 노비의 신분을 풀어 주어서 양민이 되게 하던 일’을 뜻하는데, 오늘날까지 ‘속량(贖良)’, ‘대속(代贖)’등 기독교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단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한 신분에 온갖 나쁜 짓만 일삼으니,‘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不唯天下之人皆思顯戮)’, ‘아마도 땅 가운데 귀신까지 이미 너를 베어 죽이려고 의론하리라!(抑亦地中之鬼已議陰誅)’라고 질타합니다.황소(黃巢)가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이 문장중 ‘불유(不唯)’는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란 의미의 부사이며, ‘억역(抑亦)’이란 단어 또한 추측을 나타내는 부사어로서, ‘혹시, 아마도, 혹은’등으로 해석합니다. ‘현륙(顯戮)’이란 단어는 ‘죄인을 죽여서 그 시체를 여러 사람에게 보이던 일’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縱饒假氣遊魂(종요가기유혼)’입니다.먼저, ‘종요(縱饒)’란 단어는 ‘설령~할지라도’란 뜻의 부사어인데, ‘종령(縱令)’,또는 ‘가령(假令)’, ‘가사(假使)’등과 같이 쓰이는 단어입니다.그 다음 ‘가기유혼(假氣遊魂)’이란 표현인데, 문장은 위(魏) 명제(明帝) 조예(曹叡: 위나라(魏)의 초대 황제인 세조(世祖) 조비(曹丕)의 장남이며, 위나라의 제2대 황제)의 <선재행(善哉行)>이란 시에서 처음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
備則亡虜。(아무리 전쟁을) 준비하여도 도망다니는 포로의 신세가 되니, 假氣遊魂。숨이 붙어있다 해도 혼(魂)은 이미 나갔고, 魚鳥為伍。물고기와 새만이 뒤를 따르며, 虎臣列將。산짐승만이 호위하는 신세가 된즉, 怫鬱充怒。분노가 가득하여 가슴이 터질 것 같다네.
따라서, ‘황소(黃巢), 너는 설령 숨이 붙어있다 해도 혼(魂)은 이미 나갔고(縱饒假氣遊魂)’,또한 ‘벌써 정신이 죽고 넋이 빠진 것과 같다(合) (早合亡神奪魄)’, 즉 이미 죽은 목숨과 진배없다는 무시무시한 표현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문장, ‘범위인사(凡爲人事) 막약자지(莫若自知)’,즉 ‘대저 사람의 일이란 제 스스로 아는 것 만한 것이 없다.’란 표현은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59장, ‘치인사천(治人事天) 막약색(莫若嗇)’,즉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는 아끼는 것 만한 것이 없다’란 구절을 원용한 표현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최치원은 ‘내가 헛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너는 모름지기 살펴 들으라(吾不妄言 汝須審聽)’라고 이 문단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국가에서 덕이 깊어 더러운 것도 참아주고, 은혜가 중하여 결점을 따지지 아니하여, 너에게 벼슬을 주고, 또한 너에게 지방 병권(兵權)을 주었거늘 너는 오히려 짐새[鴆]와 같은 독심만을 품고, 올빼미의 소리를 거두지 아니하여,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고, 하는 짓이 개(犬)가 주인에게 짖는 듯하여, 필경에는 몸이 임금의 덕화를 등지고, 군사가 궁궐에까지 몰려들어, 공후(公侯)들은 달아나거나 숨어서 위험한 여정을 겪게 되고, 황제의 행차는 먼 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 문장에서는, 당나라 조정이 황소(黃巢)의 세력이 강해짐에 따라 그에게 벼슬을 주어 회유하려 했다는 사실이 나타납니다.
첫문장은 ‘근자(近者)’란 의미와 같은 ‘비자(比者)’란 단어로 시작합니다.이 ‘비(比)’란 글자가 ‘근래’란 의미로 사용되는 용례는 <진서(陳書)>나 <여씨춘추(吕氏春秋)>에 나타나고 있는데,사소한 단어 하나하나도 주의깊게 골라 사용하므로서 문장의 격을 높이려는 최치원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이어서, ‘당나라 조정이 덕이 깊어(德深), 더러운 것도 참아주고(含垢),은혜가 중하여(恩重), 결점을 따지지 않아서(棄瑕), 벼슬을 주고(授爾節旄), 지방의 병권을 맡겼다(寄爾方鎭)’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사용된, ‘함구(含垢)’란 단어는 요즘도 흔히 쓰이는 ‘함구(緘口)’란 단어와 우리말 발음은 같으나 의미는 다른 단어인데, ‘더러운 때(垢) 같은 허물도 참고 포용한다’란 의미의 단어로,<좌전(左傳). 선공15년(宣公十五年)>에 나오는 단어를 용전(用典)한 것이며, 또 ‘기하(棄瑕)’란 단어는 ‘허물(瑕)을 물리치다’란 의미의 <구당서(舊唐書).문원집(文苑傳)>상의 표현을 전고(典故)한 것입니다.
‘절모(節旄)’란, 천자가 임명의 표적으로서 출정하는 장군이나 사절(使節)에게 주던 기(旗)를 의미하며, ‘방진(方鎭)’은 당나라때 주(州)의 상급기관으로 군사상 중요지역에 설치한 행정구역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러한 당나라 왕실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황소(黃巢),너는 ‘짐독(鴆毒)’같은 독심을 품고, ‘올빼미 소리(梟聲)’를 거두지 않아,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고(動則齧人),하는 짓이 개(犬)가 주인에게 짖는 듯하다(行唯吠主)”라고 하여, 황소(黃巢)를 견자(犬子)에 비유하는 최대의 모욕적 언사를 구사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짐독(鴆毒)’의 ‘짐(鴆)’은 중국에 살고 있는 독조(毒鳥)를 말하는데,그 깃으로 술을 담그면 독주(毒酒)가 되어 마시면 죽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지는 ‘올빼미의 소리를 거두지 아니한다(不斂梟聲)’란 표현은, ‘왜 하필 올빼미 소리인가?’라는 의문이 들수 있는데,바로 다음의 고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의하면,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노침대(露寢臺)란 궁궐을 짓고도 출입하지 않았다 합니다
최치원(崔致遠)[856~?]은 경주 사량부(沙梁部)에서 태어나 12살 때인 경문왕 8년(868) 당나라에 유학하여 국자감(國子監)에서 공부하였다. 18세 때인 874년 외국인 대상의 과거 시험인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여 선주(宣州) 율수현(溧水縣)[지금의 강소성 율수현]의 현위(縣尉)가 되었다. 황소(黃巢)의 난[875~884]이 일어나자 회남 절도사 고병(高騈)의 종사관으로 나가 「격황소서(檄黃巢書)」[토황소 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29세 때인 헌강왕 11년(885)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 감사(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侍郎知瑞書監事) 벼슬을 받았다. 하지만 왕실 귀족들의 경계와 질시로 중앙 관직에서 물러나 대산군(大山郡)[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천령군(天嶺郡)[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부성군(富城郡)[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태수 등 외직을 전전하다가 하정사(賀正使)로서 당나라에 한 차례 다녀왔다. 진성 여왕 8년(894) 어지러운 정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임금에게 「시무 10조(時務十條)」를 올려 채택되고, 아찬 관직을 받았으나 나라 안팎의 사정으로 개혁이 무산되었다.
최치원은 당에서 익힌 학술과 식견을 바탕으로 큰 뜻을 펼치려 했으나 번번이 좌절되자,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전국의 산천을 노닐며 책 읽고 시 짓는 일로 소일하였다. 최치원이 전국을 방랑할 때 부산의 바닷가에 잠시 머물렀는데, 이때 동백섬 인근 바위에 자신의 자(字)를 따서 ‘海雲臺’라는 글씨를 새겼다. 해운대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당나라 국자감에서 공부하여 유학과 사장학(詞章學)에 뛰어났고, 불교와 도교, 풍수지리설에도 이해가 깊었다. 최치원이 지은 책은 『계원필경(桂苑筆耕)』, 『중산 복궤집(中山覆簣集)』, 『금체시(今體詩)』, 『오언 칠언 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 『잡시부(雜詩賦)』, 『사륙집(四六集)』, 『제왕 연대력(帝王年代曆)』, 『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 『법장 화상전(法藏和尙傳)』, 『석이정전(釋利貞傳)』, 『석순응전(釋順應傳)』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일명 사산비명(四山碑銘)으로 불리는 「성주사 낭혜 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 「쌍계사 진감 선사 대공영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초월산 대숭복사비(有唐新羅國初月山大崇福寺碑)」, 「봉암사 지증 대사 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 등의 글씨도 최치원이 썼다. 이 가운데 『계원필경』과 『법장 화상전』, 사산비명의 내용만이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