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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집 제4권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
1 총석정(叢石亭)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
2 좌소산인(左蘇山人)에게 주다
3 해오라비 한 마리 ‘도중에 잠시 개다〔道中乍晴〕’라고도 되어 있다.
4 농삿집
5 산해도를 열람한 노래〔搜山海圖歌〕
6 해인사(海印寺)
7 갓을 노래한 연구(聯句)
8 담원 팔영(澹園八詠) 구체적인 사실은 피서록(避暑錄)에 보인다.
9 설날 아침에 거울을 마주 보며
10 새벽길
11 극한(極寒)
12 산중에서 동짓날 이생(李生)에게 써 보이다
13 산행(山行) ‘산전갈이〔山耕〕’로 된 데도 있다.
14 이거(移居)
15 노군교(勞軍橋)
16 필운대(弼雲臺)의 꽃구경
17 강가에 살며
18 압록강을 건너 용만성(龍灣城)을 돌아보다
19 구련성(九連城)에서 노숙하며
20 통원보(通遠堡)에서 비에 막히다
21 요동(遼東) 벌판을 새벽에 지나며
22 동관(東關)에서 유숙하다
23- 원문 빠짐 -절구 한 수를 읊다
24- 원문 빠짐 - 말 위에서 구호(口號)하다 피서록(避暑錄)에 보인다.
25 필운대(弼雲臺)에서 살구꽃 구경하며
26 절구 네 수 제목 없음. 연경에 들어가는 사람을 송별한 때이거나 연경에 가면서 지은 잡영(雜咏)인 듯하다.
27 강가에 살며 멋대로 읊다
28 연암(燕岩)에서 선형(先兄)을 생각하다
29 홍태화(洪太和)의 비성아집(秘省雅集) 시에 차운하다
30 재실(齋室)에서 제릉 영(齊陵令)으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31 술을 조금 마시다
32 구일날 맹원(孟園)에 올라 두목(杜牧)의 시에 차운하다
총석정(叢石亭)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
길손들 한밤중에 서로 주고받는 말이 / 行旅夜半相呌譍
먼 닭이 울었는가 아직 울지 않을 텐데 / 遠鷄其鳴鳴未應
먼저 우는 먼 닭은 그게 바로 어드메냐 / 遠鷄先鳴是何處
의중에만 있는 거라 파리 소리처럼 희미하네 / 只在意中微如蠅
마을 속의 개 한 마리 짖다 도로 고요하니 / 邨裏一犬吠仍靜
고요 극해 찬기 일어 마음이 으시으시 / 靜極寒生心兢兢
이때 마침 소리 있어 두 귀가 울리는 듯 / 是時有聲若耳鳴
자세히 듣자니 집닭 울음 뒤따르네 / 纔欲審聽簷鷄仍
예서 가면 총석정이 십 리밖에 되잖으니 / 此去叢石只十里
동해에 곧바로 다다르면 해돋이를 보겠구먼 / 正臨滄溟觀日昇
하늘과 맞닿은 물만 넘실넘실 해 뜰 조짐 전혀 없고 / 天水澒洞無兆朕
거센 파도 언덕 치니 벼락이 일어나네 / 洪濤打岸霹靂興
노상 의심쩍은 건 폭풍이 바다를 뒤집어엎고 / 常疑黑風倒海來
뿌리째 산을 뽑아 뭇 바위 무너질까 / 連根拔山萬石崩
고래 곤어 다투다가 뭍으로 나올 법도 하이 / 無怪鯨鯤鬪出陸
뜻밖에 회오리 바람 일어 나래 치는 붕새를 만날지도 / 不虞海運値摶鵬
다만 걱정되는 건 이 밤이 오래도록 아니 새어 / 但愁此夜久未曙
이제부터 혼돈을 뉘 다시 징벌할지 / 從今混沌誰復徵
아마도 겨울 신이 제 힘을 과시하여 / 無乃玄冥劇用武
구유(九幽)를 일찍 닫고 우연(虞淵)을 얼게 하지 않았나 / 九幽早閉虞淵氷
아마도 하늘 축이 오래도록 돌고 돌다 / 恐是乾軸旋斡久
서북으로 기울어져 묶은 줄이 끊어진 게지 / 遂傾西北隳環絙
세 발 달린 까마귀 날기로는 천하제일인데 / 三足之烏太迅飛
누가 주술 부려 발 하나를 노끈으로 매어 놓았나 / 誰呪一足繫之繩
해야(海若)의 옷과 띠엔 물방울이 뚝뚝 듣고 / 海若衣帶玄滴滴
수비(水妃)의 쪽 찐 머린 추위 서려 싸늘하네 / 水妃鬢鬟寒凌凌
큰 고기 활개 치며 준마같이 내달리니 / 巨魚放蕩行如馬
붉고 푸른 지느러미 어찌 그리 터부룩한고 / 紅鬐翠鬣何鬅鬙
개벽 이전 어둔 누리 본 사람이 누구더냐 / 天造草昧誰參看
참다 못해 외쳐 대며 등이라도 켜려 드네 / 大呌發狂欲點燈
혜성이 꼬리를 끌고 화성(火星)이 광망(光芒)을 뻗치네 / 欃槍擁彗火垂角
낙엽 진 나무의 부엉이 울음 더욱더 밉상일레 / 禿樹啼鶹尤可憎
조금 뒤에 수면에 작은 부스럼 생긴 듯 / 斯須水面若小癤
용의 발톱 잘못 긁혀 독기로 벌겋더니 / 誤觸龍爪毒可
그 빛이 점점 커져 만리를 비추누나 / 其色漸大通萬里
물결 위에 번진 빛 꿩의 가슴 비슷하이 / 波上邃暈如雉膺
아득아득 이 천지에 한계 처음 생겼으니 / 天地茫茫始有界
붉은 붓 한 번 그어 두 층이 되었구려 / 以朱劃一爲二層
매삽이라 신성이라 염색집이 하도 커서 / 梅澁新惺大染局
몇 천 필 색을 들여 온갖 비단 으리으리 / 千純濕色縠與綾
산호나무 누가 베어 참숯을 만들었나 / 作炭誰伐珊瑚樹
부상나무 뒤이으니 더욱더 이글이글 / 繼以扶桑益熾蒸
염제는 불을 불어 입이 응당 비틀리고 / 炎帝呵噓口應喎
축융은 부채 휘둘러 바른팔이 지쳤구려 / 祝融揮扇疲右肱
새우 수염 가장 길어 그슬리기 제일 쉽고 / 鰕鬚最長最易爇
굴껍질은 굳을수록 더욱더 절로 익네 / 蠣房逾固逾自
한 치 구름 조각 안개 동으로 다 쓸려 가서 / 寸雲片霧盡東輳
온갖 상서 바치려고 제 힘을 다하누나 / 呈祥獻瑞各效能
자신궁(紫宸宮)엔 조회 전에 바야흐로 갖옷을 모셔놓고 / 紫宸未朝方委裘
병풍만 펼쳐 논 채 용상은 비어 있네 / 陳扆設黼仍虛凭
초승달은 샛별 앞에 오히려 밀려나서 / 纖月猶賓太白前
먼저 예를 행하겠다고 등설(滕薛)처럼 제법 맞서누나 / 頗能爭長薛與滕
붉은 기운 차츰 묽어 오색으로 나뉘더니 / 赤氣漸淡方五色
먼 물결 머리부터 절로 먼저 맑아지네 / 遠處波頭先自澄
바다 위 온갖 괴물 어디론지 숨어 버리고 / 海上百怪皆遁藏
희화만이 홀로 남아 수레 장차 타려 하네 / 獨留羲和將驂乘
육만이라 사천 년을 둥글둥글 내려왔으니 / 圓來六萬四千年
오늘 아침 동그라미 고쳐 어쩌면 네모가 될라 / 今朝改規或四楞
만길의 깊은 바다에서 어느 누가 길어 올렸을까 / 萬丈海深誰汲引
이제서야 믿겠노라 하늘도 오를 계단이 있음을 / 始信天有階可陞
등림에 가을 열매 한 덩이가 붉었고 / 鄧林秋實丹一顆
동공이 채색 공을 차서 반만 올렸구려 / 東公綵毬蹙半登
과보는 헐레벌떡 뒤따라오고 있고 / 夸父殿來喘不定
육룡은 앞서 끌며 교만스레 자랑하네 / 六龍前道頗誇矜
하늘가 어둑해져 갑자기 눈살 찌푸리듯 하늘가 어두워지다가 / 天際黯慘忽顰蹙
어영차 해 수레 미니 기운이 솟아난 듯 / 努力推轂氣欲增
바퀴처럼 둥글잖고 독처럼 길쭉한데 / 圓未如輪長如瓮
뜰락 말락 하니 철썩철썩 부딪치는 소리 들리는 듯 / 出沒若聞聲砯砯
만인이 어제처럼 모두 바라보는데 / 萬物咸覩如昨日
어느 뉘 두 손으로 받들어 단번에 올려놨노 / 有誰雙擎一躍騰
[주C-001]총석정(叢石亭)에서 해돋이를 구경하다 : 연암의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지은 《과정록(過庭錄)》에 의하면, 영조 41년(1765) 연암은 벗 유언호(兪彦鎬) · 신광온(申光蘊)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할 때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 시를 보고 판서 홍상한(洪象漢)이 칭찬해 마지않았다고 하며, 연암 스스로도 득의작으로 자부하여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월 20일 조에 수록해 놓았다. 윤광심(尹光心)의 《병세집(幷世集)》에는 총석관일(叢石觀日)이라는 제하에 수록되어 있는데, 자구의 차이가 있으며 12행 84자가 추가되어 있다. 《연암집》에 수록된 시의 초고로 짐작된다.
[주D-001]파리 소리처럼 희미하네 : 《시경(詩經)》 제풍(齊風) 계명(鷄鳴)에 “닭이 우는 것이 아니라, 파리 소리로다.〔匪鷄則鳴 蒼蠅之聲〕”라고 하였다. 현비(賢妃)가 임금이 조회(朝會)에 늦지 않게 깨우려고 조바심하다가 파리 소리를 닭 울음으로 잘못 들었다는 뜻이다.
[주D-002]두 귀가 울리는 듯 : 이명증(耳鳴症)으로 헛소리를 들은 듯하다는 뜻이다.
[주D-003]곤어(鯤魚) : 북해(北海)에 살며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물고기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온다. 원문의 ‘鯤’이 《병세집》에는 ‘鼉’로 되어 있다.
[주D-004]나래 치는 붕새 : 《제해(齊諧)》에 붕새가 남쪽 바다로 이동할 때 물보라가 삼천 리나 일어나며 “나래로 회오리바람을 쳐서 오르기 구만 리나 된다.〔摶扶搖而上者九萬里〕”고 하였다. 《장자》 소요유에 나온다.
[주D-005]이제부터 혼돈을 : 혼돈은 천지개벽 초에 만물이 아직 구별되지 않은 어두운 상태를 가리킨다. 이 혼돈은 중국 고대 문헌에서 주로 부정적인 존재로 의인화(擬人化)되었다. 《장자》 응제왕(應帝王)에서는 눈, 코, 입, 귓구멍, 콧구멍이 없는 중앙의 제왕으로 소개되어 있다. 삼황(三皇) 이전 천지의 시초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또한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제홍(帝鴻) 즉 황제(黃帝)의 못난 자식으로서 그 후손이 요순(堯舜) 시대 때 악명 높은 사흉(四凶)의 하나였다고 한다. 《신이경(神異經)》에는 곤륜산(崑崙山) 서쪽에 사는 악수(惡獸)라고도 하였다. 원문의 ‘從今’이 《병세집》에는 ‘從玆’로 되어 있다.
[주D-006]구유(九幽) : 땅속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킨다.
[주D-007]우연(虞淵) : 전설상 해가 지는 곳이다.
[주D-008]하늘 축 : 원문의 ‘軸’이 《병세집》 등 이본에는 ‘紐’로 되어 있다. ‘건뉴(乾紐)’는 천도(天道)란 뜻이다.
[주D-009]서북으로 기울어져 :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이 서북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列子 湯問》 《사기(史記)》 권127 일자열전(日者列傳)에도 “하늘은 서북쪽이 부족하니 별들이 서북으로 이동한다.〔天不足西北 星辰西北移〕”고 하였다.
[주D-010]묶은 …… 게지 : 원문의 ‘隳’가 《병세집》에는 ‘墮’로 되어 있다.
[주D-011]세 발 달린 까마귀 : 전설상 해 속에 산다는 새이다.
[주D-012]주술 : 원문의 ‘呪’가 《병세집》에는 ‘叱’로 되어 있다.
[주D-013]해야(海若) : 전설상의 해신(海神)이다.
[주D-014]수비(水妃) : 전설상 수중의 신녀(神女)이다.
[주D-015]쪽 찐 머린〔鬢鬟〕 : 양쪽 귀밑머리를 잡아당겨 만든 환상(環狀)의 쪽 찐 머리를 말한다.
[주D-016]혜성이 꼬리를 끌고 : 원문의 참창(欃槍)은 혜성의 이름이고, 혜성은 비를 들어 쓸어 버린 듯이 꼬리를 길게 끌기 때문에 소추성(掃帚星)이라고도 한다.
[주D-017]붉은 …… 그어 : 원문의 ‘以朱劃一’이 《병세집》에는 ‘殷紅深碧’으로 되어 있다.
[주D-018]매삽(梅澁)이라 신성(新惺)이라 : ‘매삽’과 ‘신성’은 그 의미가 불확실하나 염색집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원문의 ‘惺’이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월 20일 조에는 ‘醒’으로 되어 있다.
[주D-019]부상(扶桑)나무 : 전설상 해 뜨는 곳에 자란다는 나무이다.
[주D-020]염제(炎帝) : 전설상 불을 주관하는 신이다.
[주D-021]축융(祝融) : 이 또한 불을 주관하는 신이다.
[주D-022]온갖 …… 다하누나 : 원문의 ‘獻瑞各效能’이 《병세집》에는 ‘效瑞難具稱’으로 되어 있으며, 이어서 ‘成曇變霱爭來王 縓緣絳領金線縢’ 2행이 추가되어 있다.
[주D-023]자신궁(紫宸宮) : 당송(唐宋) 시대에 천자가 신하나 외국의 사신을 조회하던 정전(正殿)이다.
[주D-024]바야흐로 갖옷을 모셔놓고 : 임금이 죽고 새 임금이 아직 조정에 나와 앉기 전에는 선왕의 유의(遺衣)인 갖옷을 모셔놓고 조회한다.
[주D-025]등설(滕薛)처럼 제법 맞서누나 : 노(魯) 나라 은공(隱公) 11년 봄에 등후(滕侯)와 설후(薛侯)가 노 나라에 조현(朝見)을 왔다가 예를 행하는 데 있어 그 선후를 다투자 은공이 설후를 설득하여 등후가 먼저 예를 행하도록 한 데서 온 말이다. 《春秋左氏傳 隱公11年》
[주D-026]먼 물결 머리부터 : 원문의 ‘處’가 《병세집》에는 ‘海’로 되어 있다.
[주D-027]바다 위 : 원문은 ‘海上’인데, 《병세집》에는 ‘俄者’로 되어 있다.
[주D-028]희화(羲和) : 전설상 해를 태운 수레를 모는 신이다.
[주D-029]수레 …… 하네 : 《병세집》에는 이 다음에 ‘有物如盖來覆之 其下蜿蜒馳神螣’ 2행이 추가되어 있다.
[주D-030]육만이라 사천 년 :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의하면, 우주가 개시해서 소멸할 때까지를 1원(元)이라 하는데, 1원은 12회(會)로, 1회는 30운(運)으로, 1운은 12세(世)로, 1세는 30년(年)으로 나뉜다. 따라서 1원은 12만 9600년이 된다. 우주의 역사가 6회(會)가 되면 6만 4800년이 된다.
[주D-031]하늘도 …… 있음을 :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진자금(陳子禽)이 자공(子貢)에게 공자라도 그대만 못하겠다고 칭찬하자, 자공은 “선생님에게 미칠 수 없음은 하늘을 계단을 밟아 오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라고 반박하였다.
[주D-032]등림(鄧林) : 전설상의 숲 이름이다. 《산해경(山海經)》 해외북경(海外北經)에, 과보(夸父)가 해를 따라 달리다가 목이 말라 죽었는데 그때 버린 지팡이가 숲을 이뤄 등림이 되었다고 한다.
[주D-033]동공(東公) : 전설상의 해를 맡은 신이다.
[주D-034]육룡(六龍)은 앞서 끌며 : 전설에서 해의 신이 수레를 타면 여섯 용이 수레를 끌고 희화가 이를 몰고 다닌다고 한다. 원문의 ‘道’가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 7월 20일 조에는 ‘導’로 되어 있다.
[주D-035]바퀴처럼 둥글잖고 : 원문의 ‘圓’이 《병세집》 등 이본에는 ‘團’으로 되어 있다.
[주D-036]뜰락 …… 듯 : 《병세집》에는 이 구절 다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즉 “金銀震蕩色未定 欲掛冥靈枝不勝 慌惚直欲雙手擎 轉眄之間一躍騰 快如盡曉難解書 喜極新逢欲招朋 爽如翻惺作噩夢 喉中未聲聲忽能 離海一尺無不照 儘覺生平天宇弘”으로 되어 있다.
[주D-037]만인이 …… 바라보는데 :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오(九五)의 효사(爻辭)에 대한 공자의 풀이 중에 “성인이 나타나시니 만물이 바라본다.〔聖人作而萬物覩〕”는 말이 있다. 주자(朱子)의 본의(本義)에 의하면 이때 만물(萬物)은 만인(萬人)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해를 성인에 비겼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좌소산인(左蘇山人)에게 주다
이 세상 사람들을 내 살펴보니 / 我見世之人
남의 문장을 기리는 자는 / 譽人文章者
문(文)은 꼭 양한을 본떴다 하고 / 文必擬兩漢
시는 꼭 성당을 본떴다 하네 / 詩則盛唐也
비슷하다는 그 말 벌써 참이 아니라는 뜻 / 曰似已非眞
한당(漢唐)이 어찌 또 있을 리 있소 / 漢唐豈有且
우리나라 습속은 옛 투식 즐겨 / 東俗喜例套
당연하게 여기네 촌스러운 그 말을 / 無怪其言野
듣는 자는 도무지 깨닫지 못해 / 聽者都不覺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 없군 / 無人顔發赭
못난 놈은 기쁨이 뺨에 솟아서 / 騃骨喜湧頰
입을 벌려 웃어 대며 침을 흘리고 / 涎垂噱而哆
약은 놈은 갑자기 겸양을 발휘하고 / 黠皮乍撝謙
삼십 리나 피하여 달아나는 척 / 逡巡若避舍
허한 놈은 두 눈이 놀라 휘둥글 / 餒髥驚目瞠
더웁지 않은데도 땀 쏟아지고 / 不熱汗如瀉
약골은 굉장히도 부러워하여 / 懦肉健慕羨
이름만 들어도 향기 나는 듯 / 聞名若蘅若
심술꾼은 공공연히 노기를 띠어 / 忮肚公然怒
주먹 불끈 후려치길 생각한다오 / 輒思奮拳打
내 또한 이와 같은 기림을 듣고 / 我亦聞此譽
갓 들을 땐 낯가죽이 에이는 듯싶더니 / 初聞面欲剮
두 번째 듣고 나니 도리어 포복절도 / 再聞還絶倒
여러 날 허리 무릎 시큰하였다네 / 數日酸腰髁
이름이 널리 알려질수록 더욱 흥미 없어 / 盛傳益無味
밀조각을 씹은 듯이 도리어 맛이 없더군 / 還似蠟札飷
그대로 베껴서는 진정 안 될 말 / 因冒誠不可
오래 가면 마치도 실성하여 바보가 된 듯하지 / 久若病風傻
심술쟁이를 돌아보며 얘기하노니 / 回語忮克兒
잔재주 따윌랑 우선 버리게 / 伎倆且姑舍
조용히 내가 한 말 들어나 보면 / 靜聽我所言
네 마음 응당 너그러워질 터 / 爾腹應坦奲
흉내쯤이야 시새울 게 무엇이 있다고 / 摸擬安足妒
스스로 야료를 부리다니 무안스럽지 않나 / 不見羞自惹
걸음을 배우려다가 되려 기어서 오고 / 學步還匍匐
찌푸림을 본받으면 단지 추할 뿐 / 效嚬徒醜䰩
이제 알리라 그려 놓은 계수나무가 / 始知畵桂樹
생생한 오동만 못하다는 걸 / 不如生梧檟
손뼉 치며 초(楚) 나라를 놀라게 해도 / 抵掌驚楚國
마침내는 의관(衣冠)을 빌린 것이며 / 乃是衣冠假
푸르고 푸른 언덕의 보리를 노래한 것은 / 靑靑陵陂麥
입속의 구슬을 몰래 빼내기 위함이라 / 口珠暗批撦
제 속이 속된 줄은 생각 안 하고 / 不思膓肚俗
아름다운 붓 벼루만 애써 찾거든 / 强覓筆硯雅
육경의 글자로만 점철하는 건 / 點竄六經字
비하자면 사당에 의탁한 쥐와 꼭 같지 / 譬如鼠依社
훈고(訓詁)의 어휘를 주워 모으면 / 掇拾訓詁語
못난 선비들은 입이 다 벙어리 되네 / 陋儒口盡啞
태상이 제물을 벌여 놓으니 / 太常列飣餖
절인 생선과 젓갈 뒤섞여 썩은 냄새 진동하고 / 臭餒雜鮑鮓
여름철 농사꾼이 허술한 제 차림 잊고 / 夏畦忘疎略
창졸간에 갓끈과 띠쇠로 겉치장한 셈이지 / 倉卒飾緌銙
눈앞 일에 참된 흥취 들어 있는데 / 卽事有眞趣
하필이면 먼 옛것을 취해야 하나 / 何必遠古抯
한당은 지금 세상 아닐 뿐더러 / 漢唐非今世
우리 민요 중국과 다르고말고 / 風謠異諸夏
반고(班固)나 사마천(司馬遷)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 班馬若再起
반고나 사마천을 결단코 모방 아니 할걸 / 決不學班馬
새 글자는 창조하기 어렵더라도 / 新字雖難刱
내 생각은 마땅히 다 써야 할 텐데 / 我臆宜盡寫
어쩌길래 옛 법에만 구속이 되어 / 奈何拘古法
허겁지겁하기를 붙잡고 매달린 듯 하나 / 刦刦類係把
지금 때가 천근(淺近)하다 이르지 마소 / 莫謂今時近
천년 뒤에 비한다면 당연히 고귀하리 / 應高千載下
손자(孫子) 오자(吳子)의 병서 사람마다 읽긴 하지만 / 孫吳人皆讀
배수진을 아는 자는 극히 드물지 / 背水知者寡
남들이 사 두지 않는 물건을 서둘러 산 이는 / 趣人所不居
유독 저 여불위(呂不韋)란 큰 장사치뿐이었네 / 獨有陽翟賈
이 몸은 음(陰)이 허해 병이 깊어져 / 而我病陰虛
사 년째 다리가 쑤시고 아팠다오 / 四年疼跗踝
적막한 물가에서 그대를 만나니 / 逢君寂寞濱
가을철 쓸쓸한 규방의 미인마냥 얌전도 하이 / 靜若秋閨姹
웃음을 자아내는 광형(匡衡)이 방금 온 듯 / 解頤匡鼎來
몇 밤이나 등잔 심지 돋우었던가 / 幾夜剪燈灺
글 평론 약속한 듯 서로 꼭 들어맞으니 / 論文若執契
두 눈을 빛내며 술잔을 잡네 / 雙眸炯把斝
하루아침에 막힌 가슴 쑥 내려가니 / 一朝利膈壅
입에 가득 매운 생강 씹은 맛일레 / 滿口嚼薑葰
평생에 숨겨 둔 두어 줌 눈물 / 平生數掬淚
싸 두었다 뿌리노라 가을 하늘에 / 裹向秋天灑
목수장이 나무 깎길 맡았지마는 / 梓人雖司斲
대장장이를 배척한 일이 없었네 / 未曾斥鐵冶
미장이는 제 스스로 쇠흙손 잡고 / 圬者自操鏝
기와 이는 놈 제 스스로 기와 만드네 / 蓋匠自治瓦
그들이 방법은 비록 같지 않지만 / 彼雖不同道
목적은 큰 집을 짓자는 거야 / 所期成大厦
저만 옳다 하면 남이 붙지를 않고 / 悻悻人不附
지나치게 깔끔을 떨면 복 못 받느니 / 潔潔難受嘏
그대는 아무쪼록 현빈을 지키고 / 願君守玄牝
아무쪼록 기저를 장복(長服)하게나 / 願君服氣姐
부디 한창 젊을 적에 노력한다면 / 願君努壯年
전문이 동쪽으로 활짝 열리리 / 專門正東閜
[주C-001]좌소산인(左蘇山人) : 서유본(徐有本 : 1762~1822)의 호이다. 서유본은 그 아우 서유구(徐有榘)와 함께 연암을 종유(從遊)하고 문학적으로 큰 감화를 받았다.
[주D-001]문(文)은 …… 하네 : 명(明) 나라 왕세정(王世貞)이 “문은 반드시 서한을 본뜨고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떠야 한다.〔文必西漢 詩必盛唐〕”고 제창하여 의고주의(擬古主義) 문풍이 성행하게 되었다.
[주D-002]향기 나는 듯 : 원문의 형약(蘅若)은 향초(香草)인 두형(杜蘅)과 두약(杜若)을 말한다. 형약(蘅若)의 ‘약(若)’은 이때 상성(上聲) 마운(馬韻)으로 압운하였으므로 ‘人’과 ‘者’의 반절(反切)인 ‘야’로 읽어야 한다.
[주D-003]걸음을 …… 오고 : 수릉(壽陵) 지방의 젊은이가 당시 조(趙) 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에 가서 그곳 사람들의 세련된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이를 제대로 익히지도 못하고 예전의 걸음걸이마저 잃어버린 채 기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莊子 秋水》
[주D-004]찌푸림을 …… 뿐 : 중국 최고의 미인이라 불리는 서시(西施)가 가슴앓이로 인상을 찌푸리고 다녔는데 그 모습마저 아름답게 보이자 이웃의 추녀가 그 모습을 흉내 내었으나 도리어 더 추해 보였다고 한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莊子 天運》
[주D-005]손뼉 …… 것이며 : 초(楚) 나라 악공(樂工) 우맹(優孟)이 죽은 초 나라 재상 손숙오(孫叔敖)의 의관을 입고 장왕(莊王) 앞에 나타나 손뼉을 치면서 이야기하자 장왕이 깜짝 놀라면서 손숙오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으로 믿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주D-006]푸르고 …… 위함이라 : 장자(莊子)가 유자(儒者)를 도굴꾼에 비유해 풍자한 글에서, 유자가 시체의 입에 물고 있는 구슬을 보고 “푸르고 푸른 보리, 언덕 위에 자랐네. 살아 생전 베풀지 않더니만, 죽어서 구슬 문들 무엇하리오.〔靑靑之麥 生于陵陂 生不布施 死何含珠爲〕”라는 시를 읊조리며 입을 벌려 구슬을 끄집어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즉 시문(詩文)을 지을 때 남의 훌륭한 구절을 훔쳐 내어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말한 것이다. 《莊子 外物》
[주D-007]육경(六經)의 …… 같지 : 사람들이 범할 수 없는 사당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쥐처럼, 사람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성스러운 경전(經典)에 의탁하여 시문을 짓는 것을 말한다. 《晏子春秋 問上九》
[주D-008]태상(太常) : 제사와 예악을 담당하는 관리이다.
[주D-009]지금 …… 고귀하리 : 근대 이전 동양에서는 복고적인 역사관에 따라 문학에서도 옛것일수록 고귀하게 여기고 요즘 것일수록 천시하는 귀고천금(貴古賤今)의 경향이 심했다. 연암은, 지금 것도 천년이 지나면 옛것이 되어 고귀하게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하여 복고적인 사상을 비판한 것이다.
[주D-010]배수진(背水陣)을 …… 드물지 : 한(漢) 나라 장수 한신(韓信)은 “사지(死地)에 빠진 뒤에야 살 수 있고, 죽을 자리에 놓인 뒤라야 산다.”는 병법을 활용하여, 오합지졸들을 모아 배수진을 침으로써 조(趙) 나라 군대를 대파할 수 있었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주D-011]여불위(呂不韋) : 전국 시대 말기 양적현(陽翟縣)의 대상인이다. 조(趙) 나라에 볼모로 와 천대받고 있던 진(秦) 나라 공자 자초(子楚)를 만나자 이를 ‘사 둘 만한 기화〔奇貨可居〕’라 여기고는, 계책을 써서 진 나라의 왕이 되게 함으로써 그의 아들인 진 시황에 이르기까지 진 나라의 승상을 지낼 수 있었다. 《史記 卷85 呂不韋列傳》
[주D-012]이 몸은 …… 깊어져 : 한의학에서 음(陰)에 속하는 정액이나 진액(津液)이 부족해지는 병을 음허(陰虛)라고 한다. 음허가 되면 몸에 열이 나고 식은땀과 천식이 생긴다고 한다.
[주D-013]웃음을 …… 듯 : 한(漢) 나라 광형(匡衡)은 《시경》에 대한 풀이를 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두고 “시경에 대해 풀이할 사람이 없다 싶으면 광형이 바로 오고, 광형이 시경을 풀이하면 사람들이 저절로 웃음을 터뜨린다.〔無說詩 匡鼎來 匡說詩 解人頤〕” 하였다. 《漢書 卷81 匡張孔馬傳》
[주D-014]현빈(玄牝) : 《노자(老子)》 6장에 “곡신은 죽지 않으니 현빈이라 이른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뿌리이다.〔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天地之根〕”라고 하였다. 현빈은 현묘한 모체(母體)란 뜻으로, 양생(養生)의 도(道)를 가리킨다.
[주D-015]기저(氣姐) : 기저의 저(姐)는 모(母)와 같은 뜻으로 《說文 女部》, ‘玆’와 ‘野’의 반절인 ‘자’로 읽어야 한다. 기저는 기모(氣母), 즉 우주의 원기(元氣)를 말한다.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복희씨가 도를 얻어 기모를 배합했다고 한다. 복기(服氣)는 도가(道家)의 양생술인 호흡법을 말한다.
[주D-016]전문(專門)이 …… 열리리 : 이백(李白)의 고시(古詩) 59수 중 제 3 수에서 진 시황(秦始皇)이 천하를 제압한 사실을 노래하면서, “함곡관(函谷關)이 동쪽으로 활짝 열렸네.〔函谷正東開〕”라고 하였다. 진 시황이 육국(六國)을 병합하자 침략을 두려워할 일이 없어, 그동안 굳게 닫아걸었던 동쪽 관문(關門) 함곡관을 활짝 열어 두었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좌소산인 서유본이 문장 공부에 전념한다면 장차 천하를 제압하는 명가(名家)가 되리라는 격려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해오라비 한 마리 ‘도중에 잠시 개다〔道中乍晴〕’라고도 되어 있다.
한 마리 해오라비 버들 등걸 밟고 섰고 / 一鷺踏柳根
또 한 마리 물 가운데 우뚝 서 있네 / 一鷺立水中
산허리는 짙푸르고 하늘은 시커먼데 / 山腹深靑天黑色
무수한 해오라비 공중을 빙빙 돌며 나네 / 無數白鷺飛翻空
선머슴 소를 타고 시냇물 거슬러 건너는데 / 頑童騎牛亂溪水
시내 너머로 각시 무지개 날아오르네 / 隔溪飛上美人虹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농삿집
늙은 첨지 참새 쫓느라 남녘 둑에 앉았는데 / 翁老守雀坐南陂
개꼬리 같은 조 이삭에 노란 참새 매달렸네 / 粟拖狗尾黃雀垂
큰아들 작은아들 모두 다 들에 나가니 / 長男中男皆出田
농삿집 진종일 낮에도 문 닫겼네 / 田家盡日晝掩扉
솔개가 병아리를 채려다가 빗나가니 / 鳶蹴鷄兒攫不得
호박꽃 울타리에 뭇 닭이 꼬꼬댁거리네 / 群鷄亂啼匏花籬
젊은 아낙 바구니 이고 시내를 건너려다 주춤주춤 / 小婦戴棬疑渡溪
꾀복쟁이와 누렁이가 줄지어 뒤따르네 / 赤子黃犬相追隨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산해도를 열람한 노래〔搜山海圖歌〕
여름날에 백씨(伯氏) 및 종제(從弟) 이중(履仲), 덕보(德保), 무관(懋官)과 약속하여 현원(玄園)에 노니는데, 각기 하나씩 감상품을 내놓고 비교해 보기로 했다. 이 두루마리 그림은 길이가 거의 활 한 마당 지점에 달하게 되므로 원중(園中)에 벌여 놓고 그림을 따라 모두 걸음을 옮겨가면서 감상했다.
용(龍) 기르는 복부(服不) 소임 어느 뉘 맡았는고 / 豢龍服不誰其司
동서남북 넓은 세상 기괴한 것 하고하네 / 四荒之野多詭奇
북두성 빗기어라 늙은 여우 절을 하고 / 北斗星斜拜老狐
화표주 푯말 아랜 누런 살쾡이 울음 우네 / 華表柱下啼黃貍
남산의 큰 원숭이 고운 첩을 훔쳐 내어 / 南山大玃盜媚妾
바위틈에 함께 살며 억지로 사통하네 / 與處岩穴强之私
산도깨비 대낮에 산을 떠나 내려와서 / 山魈白日下山來
사람 사는 부엌 빌려 방게를 구워 먹네 / 借人竈突燒蟛蜞
울루를 야유하고 백익과 숨바꼭질 / 揶揄鬱累迷伯益
늪이라 수풀에서 제멋대로 실컷 노네 / 菹澤叢林恣飽嬉
관운장이 모습 바꿔 신병을 거느리니 / 關王變相領神兵
하얀 낯에 수염은 한 올도 돋지 않고 / 白面乃無一莖髭
검은 관 붉은 신에 누른 비단 도포 입고 / 玄冠赤舃黃羅袍
석 자 길이 교의에 호피 깔고 앉았구려 / 三尺胡床委皐比
왼손을 무릎까지 드리우고 바른편을 돌아보며 / 左手垂膝右顧視
성났어도 미소 지으며 그 눈썹 치켜세웠네 / 怒而微笑竪其眉
도검을 받든 자는 칼자루를 오른손으로 잡고 있고 / 奉刀劍者右其柄
동자놈은 탄환 갖고 찰싹 붙어 따라가네 / 小童執彈親身隨
녹의 입은 늙은 관리 백책을 손에 쥐고 / 綠衣老吏執白策
몸을 굽혀 붙따르며 힐끗힐끗 눈치를 먼저 보네 / 鞠躳將趨頻先窺
어떤 자는 동개 차고 어떤 자는 도끼 잡아 / 或佩櫜鞬或秉鉞
엄숙하고 경건하니 뉘 감히 딸꾹질하리 / 肅敬伊誰敢噦嘻
봉황 부채 학 일산(日傘) 빽빽이 늘어서고 / 鳳扇鶴傘立簇簇
붉은 깃발 반만 가려 바람에 펄렁펄렁 / 紅旂半遮風旖旎
땅에 엎뎌 영을 듣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떠나가니 / 伏地聽令挐雲去
모두 다 새까맣고 험상궂은 놈들일세 / 盡是黑漢與醜厮
푸른 놈은 그 얼굴이 쪽물을 들여논 듯 / 綠者其面如入藍
누런 놈은 그 다리 치자를 발라논 듯 / 黃者其脚如塗梔
부리가 뾰족뾰족 닭 같은 놈 있다면은 / 有如鷄者喙尖尖
뿔이 우뚝우뚝 외뿔소 같은 놈도 있다마다 / 有如兕者角觺觺
태어나서 한 번도 머리를 빗질 않아 긴 털이 더풀더풀 / 生不梳頭髮鬅鬙
귀신 밉단 사람 말을 내 이제 알았다오 / 人言鬼憎吾今知
겨드랑이 주변에 입이 달려 아! 괴이하도다 / 脇上有口吁可怪
그 입에 칼을 무니 수저를 머금은 듯 / 其口遇劍如含匙
귀 뚫어 구리 고리 달고 팔목에는 팔찌 찼네 / 耳穿銅環臂跳脫
다리에는 모직 행전을 치고 신에는 끈을 매지 않았네 / 脚繫毛偪不屨綦
어떤 놈은 칼 안 들고 돌만을 쥐고 / 或不執兵但執石
나무 뽑아 가지 쳐서 거꾸로 쥐었구나 / 拔木去枝仍倒持
만 발 길이 쇠줄에 흉악한 용 매달고서 / 萬丈鐵索係毒龍
한 마디 영차 소리 늪과 언덕 무너지네 / 一聲許邪拔澤陂
줄 끊기자 두 귀신 넘어져 엉치 다치니 / 索絶二鬼顚傷尻
한 귀신 팔을 펴며 한바탕 크게 웃네 / 一鬼張臂大笑之
용이란 놈 기세등등하며 떨어지질 아니하니 / 龍也搖頭不能落
그 비늘과 뺨의 털 가지런히 달려 있구나 / 纍纍縣其鱗之而
거센 물결 이처럼 시커멓다 이상할 것 없네 / 無怪驚濤黑如此
용의 침을 섞어서 귀신 다리 씻겼겠지 / 應洗鬼脚和龍漦
뱀 잡는 놈이 있어 뱀이 그놈 목 감아 대니 / 有捕蛇者蛇纏頸
눈이 솟고 낯이 벌건 채 턱을 덜덜 떨고 있네 / 目聳面赤簸其頤
칼 휘둘러 달려가니 다시 주춤 물러서서 / 揮劍直前復小卻
갈라진 혓바닥을 실로 불꽃처럼 날름거리네 / 實燀如炎舌有歧
헐떡거리며 달아나는 놈은 붉은 옷을 입었는데 / 喙且走者衣紫衣
꼬리 탐스러워 어슬렁대는 숫여우 같구나 / 尾豐似是雄綏綏
아내 하나 화살 맞아 두 팔을 쭉 뻗대고 / 一妻箭中兩臂伸
아내 하나 매에게 채여 오른 눈썹 비틀렸네 / 一妻鷹攫右眉攲
아내 하나 아이 안고 낭자 잡고 달아나는데 / 一妻抱兒奉髻走
아이가 여전히 젖을 빨자 그 아이를 나무라네 / 兒猶吮乳嗔其兒
왕 원숭이 타박 입어 뼈마디가 물러지고 / 猴王被打骨到軟
배꼽 아래로 고개 처져 사지는 비실비실 / 頭垂過臍委四肢
두 계집 부축 받아 절뚝절뚝 걸어가니 / 兩女扶腋踉蹡行
서두르는 손길에 부딪쳐 오사모(烏紗帽)가 떨어지네 / 手忙觸落烏接䍦
화상 입은 한 덩이 육신을 보전코자 / 欲全焦揚一塊肉
몸종은 울면서 비단보로 감싸 주누나 / 侍婢泣以錦襁詩
범의 네 발목을 얽어 작대기로 꿰어 드니 / 縛虎四蹄貫以木
축 늘어진 꼴이 홰에 걸린 갖옷과도 같구려 / 離披有如裘掛椸
땅 위에 철봉 꽂고 붉은 띠로 얽고 얽어 / 植棒地上纏赤帶
그 꼬리 손에 쥐고 당기기를 엿 늘이듯 / 手執其尾引如飴
물소를 잡아 와서 두 손가락으로 코 뚫고 / 兩指穿挽水牛鼻
코뚜레 못 얻으니 노끈으로 목을 얽었네 / 索絼不得項繫縻
날아오른 사슴의 이마 뿔이 꺾여 내려오니 / 飛上鹿定摧角下
너무 뾰족해서 갈면 송곳으로 합당하이 / 太尖只合磨爲觿
거북을 짊어지니 거북 발톱 다릿살을 후벼 파고 / 負龜龜以爪爬腿
고래를 껴안으니 고래 코는 수염 내를 씩씩 맡네 / 抱鯨鯨以鼻嗅髭
자라 끌고 두껍 들고 양옆으로 칼을 끼며 / 曳鼈提蟾挾擁劍
멧돼지 메고 이리를 내쫓으며 비유를 꿰찼네 / 肩豕揮狼佩肥遺
크고 작은 귀신 합쳐 아흔에 여덟인데 / 大小鬼凡九十八
또 하나 왕 귀신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진 않네 / 又一鬼王不在斯
털 짧은 추한 짐승들 스물하나라면 / 臝毛之醜二十一
어여쁜 선녀들 열여섯이 섞여 있네 / 一十有六之魔姬
용어와 자라에다 뱀마저 열에 여덟 / 龍魚鼈鼇蛇十八
개 하나 매 하나에 다시 또 거북 하나 / 犬一鷹一復一龜
묻노라 어느 사람 이 그림 그렸는고 / 借問何人作此畵
왕적(王迪)이라 기후(起侯)가 만든 걸로 되어 있네 / 王迪起侯之所爲
여러 손들 모여서 보고 다투어 찬탄하며 / 諸客聚觀爭讚歎
유과(油菓) 기름 묻을까 봐 서로를 경계하네 / 相戒勿汚寒具脂
나 역시 집에 오니 눈에 아직 삼삼하여 / 我亦歸家眼森森
밤에도 잠 못 이루고 생각이 여기에만 / 宵不成寐念在玆
애오라지 붓을 들고 수효대로 기록하여 / 聊復捻筆記其數
때때로 펼쳐 보며 스스로 즐긴다오 / 時時披閱以自怡
[주C-001]산해도를 열람한 노래〔搜山海圖歌〕 : 유득공(柳得恭)의 《영재집(泠齋集)》 권1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자구상 차이가 적지 않다. 제목 아래에 소주(小註)로 “이 아래에 형암(炯菴 : 유득공의 호)의 2수를 써야 한다.〔此下當書炯菴二首〕”고 적혀 있고, 작품이 끝나는 곳의 상단 여백에도 두주(頭註)로 “이 아래에 형암의 2수를 쓰시오.〔此下書炯菴二首〕”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이 수산해도가는 연암의 원작이 《영재집》에 잘못 수록된 것이며, 형암이 지었다는 수산해도가 2수가 따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해도(山海圖)는 고대 중국의 신화집(神話集)이자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의 내용을 소재로 삼은 그림이다. 《완씨칠략(阮氏七略)》에 의하면 남조(南朝) 양(梁) 나라의 화가 장승요(張僧繇)가 그렸다는 산해도가 기록으로 전하는 최초의 작품이다. 《六硏齋筆記 卷3》 동진(東晉) 때 곽박(郭璞)이 산해경도찬(山海經圖讚)을 지었고, 도연명(陶然明)이 독산해경(讀山海經) 시를 지은 이래, 이백(李白)과 맹호연(孟浩然) 등 저명한 시인들이 산해도를 본 시들을 남기고 있음을 보면, 산해도가 후대에 지속적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연암이 보았다는 산해도는 왕적(王迪)이 그린 작품이라 하는데, 왕적이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 참고로, 남송(南宋) 신종(神宗) 때 유명한 은자(隱者)로 먹을 잘 만들었다는 왕적(王迪)이란 인물이 있다. 《墨史 卷中》 《能改齋漫錄 卷18》
[주D-001]백씨(伯氏) …… 무관(懋官) : 연암의 백씨는 박희원(朴喜源)이다. 벼슬을 하지 못했으며, 연암의 장남 종의(宗儀)를 양자로 들였다. 이중(履仲)은 연암의 삼종제(三從弟)인 박수원(朴綏源)의 자이다. 그는 여호(黎湖) 박필주(朴弼周)의 손자로서, 진사 급제 후 선산 부사(善山府使)를 지냈다. 덕보(德保)는 홍대용(洪大容)의 자이고, 무관(懋官)은 이덕무(李德懋)의 자이다.
[주D-002]복부(服不) : 맹수를 키우거나 조련시키는 관직이다. 《周禮 夏官 司馬》 요순(堯舜) 시절 동보(董父)가 용을 잘 길렀으므로 순 임금이 그에게 환룡(豢龍)이란 성씨를 내렸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昭公29年》
[주D-003]북두성 빗기어라 : 원문의 ‘斜拜老’가 《영재집》에는 ‘高拜蒼’으로 되어 있다.
[주D-004]화표주 푯말 아랜 : 화표주는 교량이나 성곽, 능묘 따위의 앞에 세우는 거대한 기둥을 가리킨다. 원문의 ‘下’가 《영재집》에는 ‘老’로 되어 있으나, 잘못인 듯하다.
[주D-005]고운 첩 : 원문의 ‘媚妾’이 《영재집》에는 ‘媚婦’로 되어 있고, 김택영의 《중편연암집(重編燕巖集)》에는 ‘美妾’으로 되어 있다.
[주D-006]산도깨비 …… 내려와서 : 원문의 ‘白日下山來’가 《영재집》에는 ‘彳亍窺村竈’로 되어 있다.
[주D-007]사람 …… 빌려 : 원문은 ‘借人竈突’인데, 《영재집》에는 ‘束蘊乞火’로 되어 있다. ‘突’ 자가 ‘堗’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주D-008]울루(鬱累) : 악귀를 잘 다스린다는 신(神)의 이름이다. ‘鬱壘’라고도 한다. 세간에서 ‘대문의 신〔門神〕’으로 받들었다. 《論衡 訂鬼》
[주D-009]백익(伯益) : 순(舜) 임금의 신하로 우(禹)를 도와 치수(治水)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書經 舜典》 순 임금이 백익에게 불을 관장하게 하자 백익이 산과 못을 불질러 태웠더니 새와 짐승들이 달아나 숨었다고 한다. 《孟子 滕文公上》
[주D-010]관운장이 …… 거느리니 : 원문은 ‘關王變相領神兵’인데, 《영재집》에는 ‘帝聞之怒勅鬼伯’으로 되어 있다.
[주D-011]하얀 …… 않고 : 원문은 ‘白面乃無一莖髭’인데, 《영재집》에는 ‘部勒六丁兵一枝’로 되어 있다.
[주D-012]도포 : 원문은 ‘袍’인데, 《영재집》에는 ‘襖’로 되어 있다.
[주D-013]돌아보며 : 원문은 ‘顧視’인데, 《영재집》에는 ‘顧眄’으로 되어 있다.
[주D-014]성났어도 : 원문은 ‘怒’인데, 《영재집》에는 ‘咤’로 되어 있다.
[주D-015]녹의(綠衣) : 정색(正色)이 아닌 하등(下等) 복색(服色)으로, 당(唐) 나라 때 6, 7품의 하급 관리가 착용했다.
[주D-016]백책(白策) : 《영재집》에는 ‘白板’으로 되어 있다. 정식으로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사령장(辭令狀)을 뜻한다. 정식 발령을 받지 못한 관리도 ‘백판’이라 한다.
[주D-017]봉황 …… 일산(日傘) : 원문은 ‘鳳扇鶴傘’인데, 《영재집》에는 ‘頭稀脚衆’으로 되어 있다.
[주D-018]쪽물 : 원문은 ‘藍’인데, 《영재집》에는 ‘靛’으로 되어 있다.
[주D-019]부리가 뾰족뾰족 : 원문은 ‘喙尖尖’인데, 《영재집》에는 ‘嘴微曲’으로 되어 있다.
[주D-020]뿔이 …… 있다마다 : 원문은 ‘有如兕者角觺觺’인데, 《영재집》에는 ‘有如牛者角雙觺’로 되어 있다.
[주D-021]긴 털이 더풀더풀 : 원문은 ‘髮鬅鬙’인데, 《영재집》에는 ‘髮蓬葆’로 되어 있다.
[주D-022]내 이제 : 원문은 ‘吾今’인데, 《영재집》에는 ‘今乃’로 되어 있다.
[주D-023]영차 소리 : 원문은 ‘許邪’인데, 《영재집》에는 ‘邪許’로 되어 있다.
[주D-024]엉치 : 원문은 ‘尻’인데, 《영재집》에는 ‘腦’로 되어 있다.
[주D-025]그 비늘과 뺨의 털 : 원문은 ‘其鱗之而’인데,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 재인(梓人) 에 나오는 표현으로, 해석이 분분하다. 여기서는 청(淸) 나라 왕인지(王引之)의 설에 따라 해석하였다.
[주D-026]주춤 : 원문의 ‘小’가 이본에는 ‘少’로 되어 있는데, 같은 뜻이다.
[주D-027]붉은 옷을 입었는데 : 원문은 ‘衣紫衣’인데, 《영재집》에는 ‘其衣紫’로 되어 있다.
[주D-028]어슬렁대는 숫여우 : 《시경(詩經)》 위풍(衛風) 유호(有狐)에 “여우가 어슬렁댄다〔有狐綏綏〕”는 구절이 있다. ‘수수(綏綏)’에 대해 주자(朱子)는 ‘짝을 찾아서 혼자 다니는 모습’이라고 풀이했다.
[주D-029]쭉 뻗대고 : 원문은 ‘伸’인데, 《영재집》에는 ‘展’으로 되어 있다.
[주D-030]걸어가니 : 원문은 ‘行’인데, 《영재집》에는 ‘去’로 되어 있다.
[주D-031]목 : 원문의 ‘項’이 이본에는 ‘頂’으로 되어 있으나, 잘못이다.
[주D-032]비유(肥遺) : 《산해경》 서산경(西山經)에 “영산(英山)에 새가 있어 그 모습이 메추라기와 같고 노란 몸에 붉은 부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을 비유(肥遺)라 한다.” 하였다. 또 《산해경》 북산경(北山經)에는 “혼석산(渾夕山)에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인 뱀이 있는데, 그 이름을 비유라 한다.” 하였다.
[주D-033]왕 귀신 : 원문은 ‘鬼王’인데, 《영재집》에는 ‘鬼伯’으로 되어 있다.
[주D-034]용어(龍魚) : 《산해경》 해외서경(海外西經)에 용어는 잉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신성한 사람이 그것을 타고 구주(九州)를 다닌다고 하였다.
[주D-035]자라 : 원문은 ‘鼈鼇’인데, 《영재집》에는 ‘鼈蟹’로 되어 있다.
[주D-036]다시 …… 하나 : 원문은 ‘復一龜’인데, 《영재집》에는 ‘蟾與龜’라고 되어 있다.
[주D-037]나 …… 삼삼하여 : 원문은 ‘我亦歸家眼森森’인데, 《영재집》에는 ‘我歸森森長在眼’으로 되어 있다.
[주D-038]수효대로 기록하여 : 원문은 ‘記其數’인데, ‘其’가 《영재집》에는 ‘厥’로 되어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해인사(海印寺)
합천이라 해인사 절이 있으니 / 陜川海印寺
웅장 화려 팔도에 이름이 났네 / 壯麗稱八路
가마 타고 골짝에 막 들어서니 / 肩輿初入洞
그윽한 경치 차츰차츰 모여드누나 / 幽事漸相聚
못은 깊어 수은을 담아 놓은 듯 / 湫深若貯汞
온갖 형상 아리땁게 갖추었어라 / 窈窕萬象具
팔다리에 얼크러진 나무 그림자 / 樹影錯脛肘
폐부를 뚫고 드는 산빛이로세 / 山光寫肺腑
제 깃 사랑하여 비춰 보려고 새는 자주 물을 기웃거리고 / 愛羽鳥頻窺
제 터럭 믿고 수달은 능히 물을 거슬러 오르네 / 恃毛獺能泝
으슥진 곳 헤치고 지날 땐 악몽을 꾸는 듯 / 剔幽類夢噩
괴성을 지를 적엔 건주정 피우는 듯 / 呌奇競淸酗
다람쥐는 뺨에다 물어 밤을 저장하고 / 鼯廩頰藏栗
고슴돛은 등의 가시로 찔러 토란을 싣네 / 蝟載背刺芋
눈 깜짝하는 사이에 기괴하게 변하니 / 俄頃轉譎詭
너무도 생소하여 의구심마저 나네 / 生疎甚疑懼
갑자기 으리으리 깁옷 입은 것은 / 照爛忽衣錦
십리 길을 양옆에 낀 단풍나무 숲이어라 / 十里擁丹樹
천둥 같은 폭포 소리 높은 골짝 짜개고 / 飛霆疈高峽
온 샘이 용솟아 한데로 쏟네 / 百泉湧傾注
후려치고 물어뜯다가 놀라서 서로 합치고 / 搏嚙驚相合
부딪치고 싸우다가 물러섰다 도로 내닫네 / 觸鬪卻還赴
물의 성질 본래는 유순하지만 / 水性本柔順
수많은 험한 돌과 서로 만나면 / 犖确石與遇
한 치도 선선히 양보하지 않아 / 不肯一頭讓
마침내 수천 년을 성낸 채 내려오네 / 遂成千古怒
남은 여울물은 모래밭에 엎디어 울며 / 餘湍伏沙鳴
사람 향해 하소연 흐느껴 우네 / 幽咽向人訴
모를레라 저 물이랑 저 돌을 보면 / 不知水於石
서로 무슨 질투가 있다는 건지 / 有何相嫉妒
물이 돌에 부딪치지 않는다면 / 使水不相激
돌도 응당 원망하며 거스르지 않을 텐데 / 石應無怨忤
원하노니 돌이 조금 양보한다면 / 願言石小遜
물도 편평하게 퍼지며 흘러갈 것을 / 水亦流平鋪
어쩌자고 힘자랑 밀치고 다투어 / 奈何力排爭
밤낮으로 야단법석 일삼는 건고 / 日夜事喧嘑
가마 떠멘 중 덕분에 험지(險地)를 지나는데 / 歷險賴轝僧
두어 걸음 못 벗어나 번갈아 메네 / 替擔纔數步
어깨 붉어지고 오목한 홈이 패여 가엾고 / 肩騂憐凹筧
시뻘개진 까까머리 박처럼 깨져 버릴까 걱정 / 巓赭恐破瓠
허리 쥐고 숨을 한창 헐떡거리고 / 捧腰喘方短
등에 밴 땀방울 흐르다 말라 버리네 / 透背汗因沍
묻노라 너희는 무슨 낙(樂) 있어 / 問爾何所聊
갖은 고생 다 겪으며 깊은 산속에 사느냐 / 辛苦萬山住
잡역으로 관가에 종이 만들어 바치고 / 雜役供官紙
힘 남으면 사사로 신도 삼지요 / 餘力織私屨
오히려 무서운 건 지나는 나그네들 / 猶將畏過客
관의 부름에 나아가듯 빨리 달려간다오 / 犇趨似赴募
이를 보니 마음이 측은하여라 / 見此心悱惻
호소할 데 없는 신세 차마 못 볼레 / 不忍無控籲
미투리 바꿔 신고 지팡일 챙겨 / 換屨覓短笻
엎어지고 자빠지며 가는 비탈길 / 仄逕任顚仆
화공(畵工)이 가을 산에 들어가면은 / 畵史入秋山
해질녘의 먼 경치 그리려 하나니 / 意匠在遠暮
서리 숲은 단청으로 풍요로운데 / 霜林饒丹靑
찬 햇볕이 하얀 깁을 대신하누나 / 冷陽替絹素
골짝 입구 갑자기 넓게 벌어져 / 洞門忽廣坼
수레 백 대도 나란히 몰 수 있겠군 / 百車可並驅
숲은 첩첩 아스라이 어리비치고 / 疊樹遠掩映
누(樓)는 층층 반만이 얼굴 내미네 / 層閣半呈露
여라 넝쿨 무성한 길에 마중 나온 노승을 보니 / 老僧候蘿逕
장삼 굴갓 차림새가 괴이하구려 / 巾衲詭制度
은근히 먼 길을 위로하면서 / 慇懃勞遠途
합장으로 대신하며 예의를 갖추네 / 合掌成禮數
나를 끌어 절 문으로 발을 들이자 / 引我入寺門
눈이 놀라 몇 번이고 돌아보는 걸 / 眩轉勞眄顧
사천왕상 우뚝허니 앞을 막으니 / 巨靈屹當前
팔다리 느닷없이 벌벌 떨려라 / 手脚實危怖
벌린 입은 찢겨져 눈까지 닿았고 / 張口裂至目
불거진 두 눈깔엔 황금 발랐군 / 突睛黃金鍍
귓속에서 뽑아낸 두 마리 뱀은 / 耳中拔雙蛇
꿈틀꿈틀 독 안개 뿜어내는 듯 / 蜿蜒若射霧
제멋대로 비파를 끼고도 있고 / 汗漫擁琵琶
알록달록한 칼 끈을 쥐고도 있네 / 落莫執劍韄
힘을 써서 요귀의 배를 밟으니 / 努力蹋鬼腹
그 요귀 혀와 눈이 모두 튀어나왔네 / 鬼目舌並吐
단풍나무 귀신은 팔이 잘려 떨어지고 / 楓魖腕鑿落
대나무 귀신은 손톱이 갈큇발 같아 / 竹魈爪回互
벽라의 옷깃 어깨를 덮고 / 覆肩薜蘿襟
호피의 바지로 배를 가렸네 / 掩肚虎皮袴
괴룡이랑 가뭄 귀신은 / 乖龍及旱魃
꽁무니와 뿔이 서로 엉겨 붙었고 / 尻角相依附
우레 치는 귀신이랑 바람 귀신은 / 雷公與飛廉
부리나 이마가 유독 타고난 자질이라 / 嘴額獨天賦
엎치락뒤치락 갖신 밑에 숨어 / 顚倒竄鞾底
팔다리 돌려대며 허공에 허우적이네 / 爬空匝臂股
불전은 깊은 골짝이라 몹시 차가워 / 佛殿寒洞天
용마루 서까래만 햇볕 겨우 드네 / 甍桷纔容煦
황금빛과 푸른빛 번쩍번쩍 눈부실 지경 / 金碧閃相奪
해를 보니 저절로 눈이 침침해지네 / 視陽自昏瞀
창문을 아로새겨 연꽃 이루고 / 雕窓成菡萏
파닥파닥 가마우지는 멱을 감누나 / 翩翩浴鶿鷺
연리화(連理花)는 붉은 꽃받침 함께하고 / 連理幷紫蔕
비익조(比翼鳥)는 푸른 목이 하나로 되었네 / 比翼結翠嗉
예쁜 아이 검은 용의 구슬을 손에 놀리고 / 妖童弄驪珠
고운 계집 새장에다 봉새 기르네 / 豔女調鳳笯
칠성(七星)의 관원님들 시위(侍衛)를 거느리고 / 星官從羽衛
구름 타고 경포에 모여드누나 / 步雲集瓊圃
영롱 세계 두루두루 구경코 나니 / 玲瓏罷周覽
서글퍼서 마음이 무너지는걸 / 悵然使心斁
도리어 꿈속에서 경치를 보면 / 還如夢中景
어두침침해서 늘 비 내리는 날과 같고 / 沈沈常雨雨
시름 속에 밥을 먹으면 / 又似愁裏饍
눈앞에 성찬이 있어도 배불리 못 먹는 것과도 같네 / 滿眼不飽饇
비로소 알괘라 괴이한 구경은 / 始知詭異觀
즐거움 극에 달하면 되려 운치 없음을 / 樂極還無趣
내 진작 들었노라 석가여래는 / 我聞牟尼佛
코와 눈이 본래 추악했는데 / 鼻眼本醜惡
뒷세상 사람들이 더럽게 여겨 / 或恐後世人
애모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 嘔穢不愛慕
저 경박한 제(齊) · 양(梁)의 아이놈들이 / 輕儇齊梁兒
제멋대로 화상과 소상(塑像) 만드니 / 私意傅繪塑
어떤 건 아주 작아 팥알 같건만 / 幺麽或如豆
전생을 깨달은 것처럼 해 놓고 / 前生若可悟
우람하기 짝이 없는 장륙불상(丈六佛像)은 / 塊然丈六身
다리 하나가 수레를 다 차지할 만하네 / 一肢可專輅
감괘(坎卦)처럼 손가락들을 맞대었는데 / 箇箇指連坎
크고 작은 손가락들 모두 곱고 예쁘네 / 巨細悉媺嫮
부처에게 더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 於佛更何有
알고 보면 이런 꾀는 모두 잘못이지 / 此計儘錯誤
그렇게 해서 부처를 높이려는 수작이 / 所以尊之者
도리어 극심한 비방을 초래하였지 / 還自極訿䜑
이러쿵저러쿵 곱네 밉네 해도 / 紛紛姸蚩間
혜심은 응당 예전 그대로겠지 / 慧心應如故
빙 두른 팔십 칸 행랑을 보소 / 回廊八十間
넓고 넓도다 장경판고(藏經板庫)여 / 蕩蕩藏經庫
거울처럼 윤이 나는 옻칠한 판자 / 漆板明如鏡
좀이 못 들게 소금물에 삶아 냈다지 / 烹鹽備蟫蠹
차곡차곡 쌓아서 얼음 창고 같은데 / 委積若凌陰
실명한 듯 깜짝 놀라 제대로 보질 못하겠네 / 失目驚瞿瞿
비하자면 늘어선 비단 가게와 같아 / 譬如列錦肆
- 원문 빠짐 - / □□□□□
방패들이 늘어선 듯 짜임새 있게 놓였고 / 織織比盾干
댓가지 꽂아 논 듯 촘촘히 쌓였네 / 簀簀揷箘簵
서성대며 시험 삼아 뽑아다 보니 / 徘徊試抽看
주석조차 없어서 도무지 모르겠지만 / 茫然失箋註
괴이한 빛이 때로 터져 나오니 / 光怪時迸發
오금이 용광로에 녹아 있는 양 / 五金入鎔鑄
뉘 능히 승법을 풀이할 건고 / 誰能說乘法
갈대배 타고 바다 건넌 사람 없으니 / 無人□蘆渡
뜰에서 거닐 땐 침도 못 뱉어 / 步庭不敢唾
밥알이 떨어져도 주워 먹겠군 / 粒墜堪拾哺
섬돌 틈엔 개밋둑도 없고 / 除級無封螘
기와 이음매엔 새들도 깃들지 않네 / 瓦縫絶棲羽
쓸지 않아도 절로 먼지가 없어 / 不掃自無塵
조촐해라 봄비로 씻긴 듯하네 / 淨若沐新澍
찬바람이 으스스하니 / 寒風□瑟然
온갖 신이 남몰래 꾸짖으며 지켜주나 봐 / 百神陰呵護
묻노라 그 누가 이 절 지었노 / 問誰剏此寺
나라를 기울일 재물 축냈네 / 傾國致財賂
옛날 옛적에 천흉의 중이 / 宿昔穿胸僧
바다를 건너와 살았다는데 / 浮海常來寓
그 조각상은 새까매 까마귀 같고 / 厥像黑如烏
비쩍 말라서 할망구 같았네 / 崎嶇若老嫗
경(經) 새기던 처음 일을 남김없이 말하는데 / 緬言刻經初
황당하고 괴이하여 후려잡기 어려워라 / 荒怪難討□
이씨 성에 이름은 거인이란 자 / 李氏名居仁
부처에 아첨하여 복을 비는데 / 媚佛求嘏祚
그 집에는 눈 셋 박힌 개가 생겨나 / 家産三眼狗
어린애 기르듯이 곱게 길렀네 / 愛養如養孺
그 개가 달아나 뵈지 않으니 / 狗去不知處
갑자기 보살펴 준 은공을 잊어버린 듯했네 / 忽若忘濡呴
나중에 몸이 죽어 황천에 가서 / 及死到黃泉
어떤 한 신인(神人)을 만났었는데 / 乃與神人遌
그 신인 개마냥 눈이 셋이라 / 三目亦如狗
깜짝 놀라 반기며 몰래 부탁했더니 / 驚喜潛囑喩
주인님 은혜에 실로 감동해 / 實感主人恩
신령의 도움으로 깨어나게 할 터이니 / 冥祐行□寤
원컨대 팔만의 게(偈)를 새기어 / 願刻八萬偈
불사를 널리널리 전파해 달라 했네 / 佛事廣傳布
땀을 쭉 쏟으며 꿈 깨듯 일어나니 / 汗發若夢寐
시원스레 묵은 병이 달아났어라 / 洒然去沈痼
친척들이 입관(入棺) 소렴(小斂) 서두는 동안 / 親戚謀棺斂
고을과 이웃에선 부조 보냈네 / 鄕隣致賵賻
신인이 한 말에 감격이 되어 / 感激神所言
온갖 불경 판목에 새기었다니 / 全經剞劂付
이 일은 진실로 황당하여라 / 此事誠荒唐
아득한 옛날 일을 거슬러 오를 수 없으니 / 邃古非可遡
설령 진짜 이런 일이 있다 하여도 / 且令眞有是
유자(儒者)로선 마음에 둘 일이 아닐세 / 儒者所不措
십삼경을 생각하면 탄식이 절로 / 所歎十三經
머나먼 연경(燕京)의 시장까지 달려가 사 오질 않나 / 遠購燕市騖
저네들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 彼能一人力
천년토록 굳건하게 경판을 전하였구나 / 刻板千載固
아침나절 학사대에 올라 보니 / 朝上學士臺
문창후(文昌侯)를 만날 것도 같구만 그래 / 文昌如可晤
이분이 신선을 하 좋아하여 / 此子喜神仙
종신토록 장가 두 번 안 들었다네 / 終身不再娶
도를 얻어 갑자기 하늘 오르니 / 得道忽飛昇
신발 두 짝 숲 언덕에 버려두었네 / 雙履遺林步
황제(黃帝)가 비록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지만 / 軒轅雖騎龍
교산에는 상기도 무덤이 있네 / 喬山尙有墓
선탑(禪榻)에 기대어 밤을 묵으니 / 暝宿倚禪榻
초승달엔 이지러진 두꺼비와 옥토끼 / 初月缺蟾兎
금탑에선 풍경이 땡그랑 울고 / 金塔鳴風鐸
옥등잔엔 심지가 무지개 이루었네 / 玉燈貫虹炷
청아한 범패 소리 어고(魚鼓) 흔들고 / 淸梵搖魚□
바람 소리 일어나 고루 퍼지네 / 虛籟發鈞濩
[주C-001]해인사(海印寺) : 연암이 지리산 아래 경상도 안의현(安義縣)에서 사또로 지내던 1790년대 전반기의 창작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이 있는 글로 1795년(정조 19) 음력 9월에 지은 해인사창수시서(海印寺唱酬詩序)가 《연암집》 권1에 실려 있다.
[주D-001]찬 …… 대신하누나 : 찬 햇볕이 비치는 가운데 울긋불긋 단풍이 든 광경을 하얀 비단 위에 채색 그림을 그린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
[주D-002]제멋대로 …… 있고 : 사천왕(四天王) 중 북방(北方)을 수호하는 다문천(多聞天)은 비파를 들고 있다.
[주D-003]알록달록한 …… 있네 : 사천왕 중 동방(東方)을 수호하는 지국천(持國天)은 칼을 들고 있다.
[주D-004]벽라(薜蘿) : 넝쿨식물인 벽려(薜荔 : 줄사철나무)와 여라(女蘿 : 소나무겨우살이)를 가리킨다. 《초사(楚辭)》 구가(九歌) 중 산귀(山鬼)에, 산신(山神)을 뜻하는 산귀는 벽려로 옷을 삼아 입고 여라로 띠를 삼아 두른다고 하였다. 은자(隱者)의 의복을 ‘벽라’라고 하기도 한다.
[주D-005]괴룡(乖龍) : 전설에 나오는 나쁜 용으로, 비를 내려주기를 싫어해서 온갖 방법으로 숨지만 결국 뇌신(雷神)에게 붙잡히고 만다고 한다. 《茅亭客話 卷5》
[주D-006]연리화(連理花) : 한 꽃받침에 꽃이 두 개 달린 병체화(幷蔕花)를 말한다. 사랑하는 부부를 상징한다.
[주D-007]비익조(比翼鳥) : 날개 하나에 눈이 하나인 암수 새 둘이 한 몸이 되어 난다는 전설상의 새이다.
[주D-008]푸른 목〔翠嗉〕 : 《규장전운(奎章全韻)》에 ‘嗉’를 ‘새의 목〔鳥吭〕’이라 새겼다.
[주D-009]칠성(七星)의 관원님들 : 칠성각(七星閣)에 모신 북두칠성의 신을 가리킨다.
[주D-010]경포(瓊圃) : 신선이 산다는 동산을 말한다.
[주D-011]마음이 무너지는걸 : 원문의 ‘斁’은 거성(去聲) 우운(遇韻)으로 압운을 했으므로 ‘두’로 읽어야 한다. 《규장전운(奎章全韻)》에 ‘斁’를 ‘敗也’라 새겼다.
[주D-012]제(齊) · 양(梁)의 아이놈들이 : 제 나라와 양 나라는 남조(南朝)에 세워진 나라들로서 당시에 중국의 불교가 가장 극성하였으므로 그 나라 사람들을 경멸하여 부른 말이다.
[주D-013]제멋대로 …… 만드니 : 원문의 ‘傅’가 이본에는 ‘傳’ 자로 되어 있으나, 채색한다는 뜻의 ‘傅’를 취하여 새겼다.
[주D-014]우람하기 짝이 없는 : 원문은 ‘塊然’인데, 이본에 따라 ‘瑰然’으로도 되어 있지만 ‘높고 크다’는 그 뜻은 마찬가지이다.
[주D-015]감괘(坎卦)처럼 손가락들을 맞대었는데 : 감중련(坎中連)이라고 하여 음효(陰爻) 가운데 양효(陽爻)가 끼여 있는 감괘 모양으로 소지(小指)를 대지(大指)와 맞닿게 한 인상(印相)을 말한다.
[주D-016]크고 …… 예쁘네 : 부처는 전생에 베푼 선행의 결과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날 때 32가지 길상(吉相)을 갖추었는데, 그중의 하나로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 예뻤다고 한다. 《大智度論 卷4》
[주D-017]혜심(慧心) : 불교 용어로, 진리를 달관할 수 있는 밝은 마음을 말한다.
[주D-018]장경판고(藏經板庫) : 팔만대장경판을 모신 건물로, 남북으로 마주 보는 수다라장(修多羅藏)과 법보전(法寶殿)의 두 채로 되어 있다.
[주D-019]거울 : 원문은 ‘鏡’인데, 이본에는 ‘鑑’으로 되어 있다.
[주D-020]오금(五金) : 금 · 은 · 구리 · 철 · 주석 등 다섯 가지 금속을 말한다.
[주D-021]승법(乘法) : 행인을 실어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수레〔車乘〕에다 부처의 교법을 비유한 말이다.
[주D-022]갈대배 …… 없으니 : 보리달마(菩提達磨)가 남인도에서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포교하러 중국에 건너온 고사를 거론한 것이다. 보리달마와 같은 고승이 없다는 뜻이다. 시문에서 ‘折蘆渡江’ ‘折蘆渡水’ ‘折蘆渡海’ 등의 표현이 종종 보이므로, 빠진 글자는 ‘折’ 자가 아닌가 한다. 《河南通志 表》 《學言稿 卷2 送無悅上人歸高句麗》
[주D-023]천흉(穿胸) : 중국 남방의 이민족 중의 하나이다. 《이아(爾雅)》에서 ‘육만(六蠻)’에 대한 이순(李巡)의 주석에 “육만은 천축(天竺), 해수(咳首), 초요(僬僥), 기종(跂踵), 천흉(穿胸), 담이(儋耳), 구지(狗軹), 방척(旁脊)이다.”라고 하였다. 천흉족은 가슴에 구멍이 나 있어, 그중의 귀인들은 그 구멍에 긴 장대를 꿰어 가지고 두 사람이 떠메게 하여 다닌다고 한다.
[주D-024]옛날 …… 같았네 : 해인사의 조사당(祖師堂)에 모셔져 있던 희랑조사상(希郞祖師像)을 묘사한 것이다. 신라 말의 고승이었던 희랑(希郞)은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견훤과 싸울 때 큰 도움을 주어 그 보답으로 해인사를 크게 중건할 수 있었다. 세간에서는 그 유래를 모르고 조사상이 천흉국(穿胸國) 사람의 모습이라는 설이 있었다고 한다. 《雅亭遺稿 卷3 伽倻山記》
[주D-025]후려잡기 어려워라 : 원문의 빠진 글자는 문맥과 운자(韻字)로 보아, 토포(討捕)의 ‘捕’ 자가 아닌가 한다.
[주D-026]이씨 …… 자 : 이거인(李居仁)은 신라 문성왕(文聖王) 때 합천의 이서(里胥)로서, 왕을 설득하여 해인사의 사간장경판(寺刊藏經板)을 만들게 했다는 인물이다. 이하 시의 내용은 그와 관련한 영험담(靈驗談)을 전한 것이다.
[주D-027]갑자기 …… 듯했네 :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샘물이 말라 버리니 물고기들이 함께 뭍에 처하여, 서로 촉촉한 입김을 불어 주고 입의 거품으로 적셔 주었으나, 강호에서 피차 잊고 지내느니만 못하였다.〔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고 하였다. 그러므로 원문의 ‘忘濡呴’는 어려울 때 도와준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주D-028]십삼경 : 한(漢) 나라 때 학관(學官)에 세운 《역경(易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춘추(春秋)》의 5경에다, 당(唐) 나라 때 《주례(周禮)》, 《의례(儀禮)》,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을 합쳐 9경이 되었고, 여기에 다시 《효경(孝經)》, 《논어(論語)》, 《이아(爾雅)》를 보태 12경이라 했다. 송(宋) 나라 때 다시 《맹자(孟子)》를 보탰으며, 명(明) 나라 때 이들을 합쳐 13경이라 일컬었다.
[주D-029]문창후(文昌侯) : 최치원(崔致遠)은 고려 현종(顯宗) 때 문창후에 추시(追諡)되고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주D-030]교산(喬山)에는 …… 있네 : 교산은 황제(黃帝)를 장사 지냈다는 곳이다. 교산(橋山)이라고도 한다. 《열선전(列仙傳)》에, 황제를 교산에 장사 지냈더니 산언덕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묘에 시신이 사라지고 단지 칼과 신발만 남았다고 한다.
[주D-031]두꺼비와 옥토끼 : 달에 산다는 요정이다. 보름달이 아니면 그들의 모습이 온전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주D-032]어고(魚鼓) : 원문에는 ‘魚’ 자 다음에 한 글자가 빠졌으나, ‘鼓’ 자가 아닌가 한다. 어고는 곧 목어(木魚)로서, 나무를 깎아 잉어 모양을 만들고 속을 파낸 것으로 불사(佛事) 할 때 두들긴다.
[주D-033]바람 소리〔虛籟〕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천뢰(天籟), 지뢰(地籟), 인뢰(人籟)가 있다고 했다. 바람 소리는 천뢰로서, 허뢰(虛籟)라고도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갓을 노래한 연구(聯句)
봄날 밤에 연상각(烟湘閣)에 모여 갓을 두고 시를 지었는데, 미(未) 자를 운자로 얻었다. 나이 순서로 첫 번째 운자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나는 정사(丁巳)생이고, 청장(靑莊 이덕무)은 신유(辛酉)생이며, 영재(泠齋 유득공)는 무진(戊辰)생이다. 내가 마침내 먼저 시구를 불렀다.
포변이 주 나라 때 만든 거면 / 布弁周製歟
죽관은 한 나라 때 의식일까 - 연암 / 竹冠漢儀未
금화모는 우아한 멋 다하고 / 金華輸雅致
청약립은 시골 멋이 넘치네 - 이덕무 / 靑篛饒風味
백방립은 경아전(京衙前)의 근심거리요 / 白方畿吏愁
골소다는 고구려에서 귀하게 여겼지 - 유득공 / 骨多麗朝貴
둥근 갓양태는 부처의 광배(光背) 같고 / 旁圓佛放光
볼록한 갓모자 의서(醫書)에 그려진 위 같네 - 연암 / 中凸醫畵胃
갓을 두고 맹약한 것은 월 나라 사람부터이고 / 結盟越人自
갓을 씌워 싸움 금지한 건 기자국을 말함이라 - 이덕무 / 止鬪箕邦謂
그림쇠는 썼으되 곱자는 쓰지 않았고 / 以規不以矩
씨줄에다 또 날줄로 베처럼 짰네 - 유득공 / 有經復有緯
패랭이는 혹 이상하다 하겠지만 / 蔽陽或異件
절풍건은 점잖은 부류에 속하지 - 연암 / 折風是常彙
비 오면 쓰는 갈모는 도롱이 비슷하고 / 雨冒紙類萆
먼지 털면 휘양은 고슴도치 닮았네 - 이덕무 / 塵刷毛肖蝟
성한 갓과 찌부러진 갓은 실로 범군과 초왕 같고 / 成虧眞凡楚
좋은 갓과 거친 갓은 때로 경수와 위수 같네 - 유득공 / 精粗或涇渭
벼슬아친 뺨 왼쪽에 산호 매달았고 / 爵頰左綰瑚
선비는 턱 양쪽에 비단 끈 드리웠네 - 연암 / 儒頷雙緌緭
옻칠 말리는 건 비 오고 구름 낀 날 틈타고 / 燥髹乘雨霮
아교로 붙이는 건 불기운을 빌려야지 - 이덕무 / 緻膠藉火煟
제 혼자 단정히 쓰면 영락없는 일산이요 / 獨整儼華蓋
나란히 서게 되면 마주 대한 상위 같네 - 유득공 / 離立峙象魏
큰길에서 걸핏하면 서로 부딪치니 / 康莊動相觸
백성들 시비하느라 물 끓듯 하네 - 연암 / 黎黔鬧若沸
비스듬히 그림자 지면 막 피려는 연꽃 보는 듯 / 仄影看卷荷
성글게 그늘 드리우면 그늘 우거진 팥배나무 같네 - 이덕무 / 疏陰怳棠芾
함께 식사할 땐 거치적거려 싫지만 / 共食礙堪嫌
측간에 갈 땐 벗어도 누가 비난하랴 - 유득공 / 如厠免何誹
왕기는 그림을 몹시 그르쳤고 / 王圻畵殊失
왜놈은 나무로 새기느라 힘만 빠졌네 - 연암 / 倭奴刻浪費
세상에 전하기를, 교역하던 한 왜인이 갓을 보고 좋아하면서 나무로 새겨야겠다고 여겨, 그 나라의 솜씨 좋은 장인이 나무로 새겼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반과산의 두보에겐 씌울 수 있어도 / 可加飯顆甫
상투 쫒은 위타에겐 어찌 도움이 되랴 - 이덕무 / 寧資椎髻尉
모자가 떨어진 걸 벼슬아친 자랑할 만하지만 / 帽妥仕堪詫
비녀를 지탱할지 노인을 위로하긴 어렵구려 - 유득공 / 簪支老難慰
벽에 붙어 기대기에 불편하고 / 襯壁倚不便
문미(門楣)를 지날 땐 부딪칠까 두렵네 - 연암 / 過楣觸可畏
비구승이 쓴 건 엎어 논 사발처럼 둥글고 / 比邱圓覆盂
우바새(優婆塞)가 쓴 건 얽어 논 어망처럼 엉성하네 - 이덕무 / 優婆疎結罻
좌중에 참석하면 주위를 산처럼 에워싸고 / 參座圍岌嶪
구경거리에 끼어들면 대숲처럼 무성하네 - 유득공 / 觀場簇蓊蔚
반쯤 파손된 갓을 협객은 일부러 애호하고 / 半挫俠故喜
갓 쓰고 너무 가까이 가면 난쟁이가 꺼려하지 - 연암 / 太博矮所諱
고관은 붉은 명주실로 감아 근엄하고 / 達官儼朱線
새 사위는 노란 풀로 엮어 어여쁘네 - 이덕무 / 新壻姣黃卉
선비에겐 물총새 깃으로 만든 관이 어울리지 않는데 / 不稱士冠鷸
여자들도 비비 털로 된 다리를 달가워하랴 - 유득공 / 寧屑女髢狒
영달하면 종립(鬃笠)에다 갖신이 합당하고 / 達可鬃而鞾
궁색하면 전립(氈笠)에다 짚신이 합당하지 - 연암 / 窮可氈而屝
제주도 갓은 매미 날개보다 더 얇고 / 耽羅薄於蜩
고려 때 갓은 비취새처럼 파랗게 물들였지 - 이덕무 / 高麗染如翡
섬세한 빛깔은 아침 해처럼 눈에 가득하고 / 纖彩旭滿眶
둥근 갓 그림자 정오엔 다리까지 덮치네 - 유득공 / 圓影午壓腓
저물녘 처마 밑처럼 거미나 하루살이가 뒤덮고 / 夕簷蒙蝣蛛
타작마당처럼 껑충대는 메뚜기를 머리에 이네 - 연암 / 秋場戴跳蜚
평평한 갓 천장은 하늘 구멍 메운 듯하고 / 平頂天穿補
검은 갓양태는 개기월식 같구나 - 이덕무 / 玄規月蝕旣
금작은 우전에게 더해졌고 / 金雀加優旃
옥로는 악의(樂毅)에게 내려졌네 - 유득공 / 玉鷺賜樂毅
이마가 꽉 조이면 죽사(竹絲)를 몸에 맞게 구부리고 / 額穹竹彎體
상투가 갑갑하면 모시로 하여 더운 기를 제거하네 - 연암 / 髻鬱紵泄氣
얼굴에 덮으면 잠시 잠을 즐길 수 있지만 / 面覆睡暫悅
옆에 끼고 담 넘자니 어찌 탄식이 나오지 않으랴 - 이덕무 / 腋挾超詎欷
먹으로 칠한 건 담제인(禫制人)을 위로하기 위함이요 / 墨塗慰服禫
은으로 꾸민 건 녹미 받음을 축하해서라네 - 유득공 / 銀飾賀祿餼
빨리 달리면 가는 휘파람과 서늘한 바람 일고 / 迅馳細嘯颸
갓 너머로 엿보려면 흐릿한 무늬 번지네 - 연암 / 閃睨潤纈霼
습기 찰세라 노끈으로 팽팽히 당겨 두고 / 恐濕撑繩糾
더럽혀질세라 갓집에 싸서 두네 - 이덕무 / 惜汚套匣衣
머리 뒤로 젖혀 쓰면 방탕해 보이고 / 岸腦則近蕩
이마 쪽으로 눌러 쓰면 성난 듯하네 - 유득공 / 貼額者若愾
머리 크기 다르지만 않다면 / 頭顱苟不異
친구 사이엔 빌려 줄 수도 있지 - 유득공 / 朋友可相乞
[주C-001]갓을 노래한 연구(聯句) : 유득공의 《영재집》 권1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자구상 약간 차이가 있다. 이덕무의 《아정유고(雅正遺稿)》 권1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덕무가 지은 14구만 수록되어 있으며 역시 자구상 약간 차이가 있다. 연암이나 홍대용, 이덕무 등은 갓을 쓰던 당시 풍속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갓을 개량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연암집》 권15 열하일기 ‘동란섭필(銅蘭涉筆)’과 홍대용의 《연기(燕記)》 건복(巾服), 이덕무의 《앙엽기(盎葉記)》 8 입당개조(笠當改造), 입폐(笠弊), 논제립(論諸笠) 등 참조.
[주D-001]봄날 …… 불렀다. : 《영재집》에 수록된 ‘갓을 노래한 연구’의 서문은 이와 조금 다르다. 즉 “경인년(1770) 봄에 선귤당(蟬橘堂 : 이덕무의 서실)에 모여, 박연암, 이무관(李懋官 : 이덕무)과 함께 미운(未韻)을 다 써서 지었다.”고 하였다. 시구의 말미에 연암이 지은 것은 ‘燕’, 이덕무가 지은 것은 ‘懋’, 유득공이 지은 것은 ‘惠’로 표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번역에서 각 시구 말미에 ‘燕’은 ‘- 연암’으로, ‘懋’는 ‘- 이덕무’로, ‘惠’는 ‘- 유득공’으로 보충해 두었다.
[주D-002]포변(布弁) : 상례(喪禮) 때 착용하는 것으로, 작변(爵弁)과 제도가 같으나 15승(升)의 베를 사용하며, 그 위에 환질(環絰)을 얹는다. 《禮記集說 卷48 曾子問》
[주D-003]죽관(竹冠) : 대나무 껍질이나 댓잎으로 만드는데, 사서(士庶)나 석도(釋道)가 주로 썼다. 언월관(偃月冠)과 고사관(高士冠)의 두 가지 식이 있다. 《朱子語類 卷91》
[주D-004]금화모(金華帽) : 금으로 만든 꽃으로 장식한 모자이다. 이백(李白)의 고구려(高句麗) 시에 “금화로 장식한 절풍모 썼는데, 흰말이 조금 멈칫거리며 빙빙 도네.〔金花折風帽 白馬小遲回〕” 하였다.
[주D-005]청약립(靑篛笠) : 푸른 조릿대로 만든 삿갓이다.
[주D-006]백방립(白方笠) : 방립(方笠)은 원래 서울의 아전들이 쓰던 모자로 검은색이었으나, 조선 중엽 이후 흰색으로 바뀌면서 상을 당한 사람들이 쓰는 것으로 되었다.
[주D-007]골소다(骨蘇多)는 …… 여겼지 : 골소다는 고구려 때 귀인(貴人)들이 쓰던 고깔 모양의 모자로, 골소(骨蘇), 소골(蘇骨)이라고도 했다. 원문은 ‘骨多麗朝貴’인데, 《영재집》에는 ‘蘇骨麗朝貴’로 되어 있다.
[주D-008]갓을 …… 사람부터이고 : 《풍토기(風土記)》에 월 나라에서는 남과 처음 사귈 때의 예의로, 개와 닭을 잡아 제사 지내면서 “그대가 수레 타고 나는 갓 쓰고 있으면, 후일 만날 때 그대는 수레에서 내려 읍하라. 그대가 우산 쓰고 내가 말을 타고 있으면, 후일 만날 때 그대 위해 말에서 내릴 것이다.”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노래를 월요가(越謠歌)라고 한다. 《古詩紀 卷2》
[주D-009]갓을 …… 말함이라 : 우리나라 사람들이 싸움하기를 좋아하므로, 기자(箕子)가 우리나라에 와서 큰 갓과 긴 소매의 옷을 지어 입혀 백성들이 몸을 마음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했으니, 이는 싸움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盎葉記 8 笠爲雨具》
[주D-010]그림쇠는 …… 않았고 : 둥글기만 하고 모가 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병무(騈拇)에서 천하의 사물 중에 “둥근 것은 그림쇠를 쓰지 않고도 스스로 둥글고, 모난 것은 곱자를 쓰지 않고도 스스로 모났다.〔圓者不以規 方者不以矩〕”고 한 데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
[주D-011]그림쇠는 …… 짰네 : 원문은 ‘以規不以矩 有經復有緯’인데, 《영재집》에는 ‘怪彼倭帽兀 鄙哉滿冠緯’로 되어 있다.
[주D-012]절풍건(折風巾) : 고구려인들이 즐겨 썼던 것으로, 중국에 들어가 한위(漢魏) 시대에 유행했다. 《北史 卷94 高麗傳》
[주D-013]먼지 …… 닮았네 : 휘양은 방한용 털모자로, 연암의 양반전에 “옷소매로 휘양을 닦고, 먼지 털어 털 무늬를 일으킨다.〔袖刷毳冠 拂塵生波〕”고 하였다.
[주D-014]범군(凡君)과 초왕(楚王) : 약소국인 범국(凡國)의 임금과 강대국인 초 나라의 임금처럼 형세가 판이하다는 뜻이다. 《장자》 전자방(田子方)에 초왕과 범군의 대화가 나온다. 범국은 세 번이나 망할 뻔했지만 그래도 범군은 참된 자아를 보존했는데, 초왕은 나라를 보존했어도 참된 자아를 보존하지는 못했다고 비판했다.
[주D-015]경수(涇水)와 위수(渭水) : 중국의 강 이름으로, 경수는 흐리고 위수는 맑다.
[주D-016]성한 …… 같네 : 원문은 ‘成虧眞凡楚 精粗或涇渭’인데, 《영재집》에는 ‘風欹醉登峴 雪覆翁釣渭’로 되어 있다.
[주D-017]산호 : 원문은 ‘瑚’인데, 《영재집》에는 ‘珀’으로 되어 있다.
[주D-018]상위(象魏) : 고대 중국의 궁궐문 밖에 마주 보게 세운 한 쌍의 건물이다. 그곳에 교령(敎令)을 현시(懸示)했다고 한다. 《周禮 天官 太宰》
[주D-019]제 혼자…… 같네 : 원문은 ‘獨整儼華蓋 離立峙象魏’인데, 《영재집》에는 ‘何物人笑齊 小加史證魏’로 되어 있다.
[주D-020]비스듬히 …… 같네 : ‘그늘 우거진 팥배나무〔棠芾〕’는 《시경(詩經)》 소남(召南) 감당(甘棠)의 ‘蔽芾甘棠’이란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蔽芾’의 풀이는 주석가에 따라 구구하다. 여기서는 초목이 무성해서 그늘이 짙은 모양으로 새겼다. 원문은 ‘仄影看卷荷 疏陰怳棠芾’인데, 《아정유고》에는 ‘護髮峙娑婆 俯肩蔭蔽芾’로 되어 있다. 《영재집》에는 ‘卷荷’가 ‘荷卷’으로 되어 있다.
[주D-021]거치적거려 싫지만 : 원문의 ‘堪’이 《영재집》에는 ‘似’로 되어 있다.
[주D-022]왕기(王圻)는 …… 그르쳤고 : 명(明) 나라 때 왕기가 편찬한 《삼재도회(三才圖會)》에 갓이 잘못 그려져 있다는 뜻이다.
[주D-023]반과산(飯顆山)의 두보(杜甫) : 이백(李白)의 희증두보(戲贈杜甫) 시에 “반과산 정상에서 두보를 만났더니, 해가 정오라 머리에 삿갓 썼구려.〔飯顆山頭逢杜甫 頭戴笠子日正午〕” 하였다.
[주D-024]위타(尉陀) : 위타는 남월(南越)의 왕으로, 그 나라 습속에 따라 상투 머리를 하고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한(漢) 나라 사신 육가(陸賈)를 접견했다. 《說苑 奉使》
[주D-025]모자가 …… 만하지만 : 진(晉) 나라 때 맹가(孟嘉)가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환온(桓溫)이 베푼 용산(龍山)의 연회에서 바람에 모자를 떨어뜨렸다는 고사를 말한 것이다. 《晉書 卷98 孟嘉傳》 그 이후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모자를 떨어뜨리는 풍류가 생겨났다. 원문은 ‘帽妥仕堪詫’인데, 《영재집》에는 ‘巾妥仕頗矜’으로 되어 있다.
[주D-026]비녀를 …… 어렵구려 : 두보(杜甫)의 시 춘망(春望) 중에 “흰머리 긁적여 보니 더욱 짧아져, 전혀 비녀를 지탱하지 못하겠네.〔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라고 한 시구를 말한 것이다.
[주D-027]우바새(優婆塞)가 …… 엉성하네 : 우바새는 속세에 있으면서 부처를 믿는 남자를 가리키는데, 거사(居士)라고도 한다. 원문은 ‘優婆疎結罻’인데, 《아정유고》에는 ‘頭陀疏結罻’로 되어 있다.
[주D-028]참석 : 원문은 ‘參’인데, 《영재집》에는 ‘赴’로 되어 있다.
[주D-029]반쯤 …… 애호하고 : 《사기(史記)》 권77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에 등장하는 후영(侯嬴)의 고사를 가리키는 듯하다. 후영은 비천한 문지기로서 다 떨어진 의관(衣冠) 차림으로 위 나라 공자 무기(無忌)의 수레에 선뜻 올라타고는 대연회에 참석했다.
[주D-030]갓 …… 꺼려하지 : 관장왜인(觀場矮人)이란 말이 있다. 난쟁이가 키 큰 사람들 틈에 끼여 구경거리를 보려 하나 잘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대로 보지 못해 식견이 얕은 자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주D-031]고관은 …… 어여쁘네 : 첫째 구는 갓 중의 극상품(極上品)인 진사립(眞絲笠)을 가리키고, 둘째 구는 초립(草笠)을 말한다. 원문은 ‘達官儼朱線 新婿姣黃卉’인데, 《아정유고》에는 ‘取輕鋪玄鬃 憐細編黃卉’로 되어 있고, 《영재집》에는 ‘達官’이 ‘高官’으로 되어 있다.
[주D-032]선비에겐 …… 않는데 : 《춘추좌씨전》 희공(僖公) 24년 조에 정(鄭) 나라의 자장(子臧)이 송(宋) 나라로 달아나서 물총새의 깃을 모아 만든 관〔鷸冠〕을 쓰기를 좋아했으나, 이 소문을 들은 정백(鄭伯)이 법도에 어긋난 관을 쓴 것을 증오하여 도적을 시켜 그를 죽였다. 《춘추좌씨전》에서는 이 기사에 이어 논평을 가하면서, 《시경》 조풍(曹風) 후인(候人)의 “저와 같은 사람들은 그 옷이 어울리지 않도다.〔彼其之子 不稱其服〕”라는 구절을 인용하였다.
[주D-033]여자들도 …… 달가워하랴 : 비비(狒狒)는 원숭이의 일종으로, 머리털을 늘어뜨리고 빠르게 달린다고 한다. 《爾雅 釋獸》 다리는 여자들이 머리숱을 풍부하게 보이려고 덧넣었던 딴머리를 말한다. 또한 《시경》 용풍(鄘風) 군자해로(君子偕老)에 “검은 머리 구름 같으니, 다리를 달갑잖게 여기네.〔鬒髮如雲 不屑髢也〕”라고 하였다.
[주D-034]종립(鬃笠) : 말총으로 만든 갓이다.
[주D-035]전립(氈笠) : 짐승 털을 다져 넣어 만든 모자로, 벙거지라고도 한다.
[주D-036]섬세한 …… 덮치네 : 원문은 ‘纖彩旭滿眶 圓影午壓腓’인데, 《영재집》에는 ‘簪緇避漢溺 冠玉笑荊䠊’로 되어 있다.
[주D-037]거미나 하루살이 : 원문의 ‘蝣’가 《영재집》에는 ‘游’로 되어 있으나, 잘못이다.
[주D-038]금작(金雀)은 …… 더해졌고 : 금작은 갓 꼭대기의 장식물인 정자(頂子)의 일종인 듯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대군(大君)은 금정자(金頂子)를 사용한다. 우전(優旃)은 진(秦) 나라의 배우인데, 우전에게 금작이 상으로 더해진 고사는 출처를 알 수 없다. 《영재집》에는 ‘우전’이 초(楚) 나라의 악공인 ‘우맹(優孟)’으로 되어 있다.
[주D-039]옥로(玉鷺)는 …… 내려졌네 : 옥로 역시 정자(頂子)의 일종이다. 옥로로 장식한 갓을 옥로립(玉鷺笠)이라 하는데, 장신(將臣)이 착용했다. 악의(樂毅)는 중국 전국(戰國) 시대 연(燕) 나라의 명장(名將)이다.
[주D-040]은으로 …… 축하해서라네 : 정 3 품 이상이 되면 은정자(銀頂子)로 갓 꼭대기를 장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담원 팔영(澹園八詠) 구체적인 사실은 피서록(避暑錄)에 보인다.
붉은 파초 푸른 돌 동녘 담에 솟아 있고 / 紅蕉綠石出東墻
한 그루 벽오동은 그윽한 누각 앞에 / 一樹梧桐窈窕堂
꿋꿋한 한평생 손님 응대 게으르니 / 傲骨平生迎送嬾
저물녘 산 풍경에나 허리를 숙이신다네 / 丈人惟拜暮山光
이상은 내청각(來靑閣)이다.
남녘 둑의 못에 종일토록 그림자 한들한들 / 南陀竟日影婆娑
저 그림자 나를 부를 듯하고 나도 저를 부를 수 있을 듯한데 / 耐可呼吾亦喚他
갑자기 산들바람 그치고 오리 백로 지나가니 / 乍綴微風鳧鷺去
내 그림자 어지러이 백 갈래로 나눠지고 말았네 / 不禁撩亂百東坡
이상은 감영지(鑑影池)이다.
코끝을 따라서 어렴풋한 흰 기운을 바라본 뒤 / 已觀微白鼻端依
장신을 분별코자 두 눈꺼풀을 감았더니 / 欲辨臟神掩兩扉
그윽한 향기 호올로 쓸쓸한 꿈결에 스며들고 / 獨有暗香侵夢冷
나부산(羅浮山) 밝은 달이 환히 빛나네 / 羅浮明月弄輝輝
이상은 소심거(素心居)이다.
만(卍) 자 난간 깊고 깊어 솔 그늘 덮였는데 / 松覆深深卍字欄
늘어진 다래 기울어진 돌 서로 얽혀 푸르네 / 垂蘿攲石翠相攢
그림배 바람 따라 흘러가게 맡겨 두니 / 一任畵舫風吹去
밤새도록 차거운 솔바람 소리 여울처럼 쏟아지네 / 盡夜寒聲瀉作灘
이상은 송음정(松蔭亭)이다.
꽃잎에 살짝 뿜어 취한 넋을 깨워 주고 / 噀輕堪醒醉魂花
푸른 갈기 더풀더풀 허공 닫는 천마(天馬)인 양 / 天褭行空翠鬣髿
불사약을 캐고자 유신(劉晨) 완조(阮肇) 찾아가니 / 採藥將尋劉阮去
적성 노을 아른아른 길을 잃었네 / 路迷廉閃赤城霞
이상은 비하루(飛霞樓)이다.
꽃은 흡사 가려는 손 억지로 잡아 논 듯한데 / 花似將歸强挽賓
비바람에게 불지 말라 당부했다가 되려 꾸짖음만 당했다오 / 囑他風雨反逢嗔
두어라 골짝에서 병사(甁史)를 익힌 이래로 / 自從洞裏修甁史
삼백이라 예순 날이 모두 다 봄이로세 / 三百六旬都是春
이상은 유춘동(留春洞)이다.
옥주 쥐고 맑은 밤 홀로 누대에 오르니 / 玉麈淸宵獨上臺
구기자나무 시렁에 서리 지고 기러기 울음소리 애처롭네 / 杞棚霜落鴈流哀
한 가락 휘파람 소리 가을 구름을 다 흩날리니 / 一聲劃裂秋雲盡
창공이라 만리에 하얀 달이 솟아오르네 / 萬里瑤空皓月來
이상은 소월대(嘯月臺)이다.
화예부인 처음으로 궁중에 들어오니 / 花蘂夫人初入宮
부끄럼이 말을 앞서 볼 먼저 붉어지네 / 含羞將語臉先紅
앵가사리 본래로 묘한 게 아니라오 / 鸚哥舍利元非妙
도를 깨닫게 한 아난의 공덕 그 뉘라 알려는지 / 誰識阿難悟道功
이상은 어화헌(語花軒)이다.
[주C-001]담원 팔영(澹園八詠) : 중국인 곽집환(郭執桓 : 호 회성원〈繪聲園〉)은 홍대용이 1766년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분을 맺게 된 그의 친구 등사민(鄧師閔 : 호 문헌〈汶軒〉)을 통해, 자신의 시고(詩稿)인 《회성원집(繪聲園集)》에 대한 조선 명사들의 서문과 아울러, 부친 곽태봉(郭泰峯 : 호 금납〈錦納〉)의 거처인 담원(澹園)을 노래한 시를 지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燕記 鄧汶軒》 《湛軒書 內集 卷3 繪聲園詩跋》 담원 팔영은 이에 호응하여 지은 시로, 유득공과 박제가(朴齊家) 등도 같은 제목의 시를 지었다. 《泠齋集 卷1》 곽집환에게 보낸 박제가의 편지에 의하면, 이는 영조 49년(1773)의 일로 짐작된다. 《貞蕤閣文集 卷4 與郭澹園 附答書》 피서록(避暑錄)은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주D-001]백 갈래로 …… 말았네 : 백동파(百東坡)는 소동파의 시 범영(泛潁)에 나오는 표현이다. 거울 같은 영수(潁水)에 제 얼굴을 비추어 보던 중 홀연 물고기 떼가 나타나 물에 비친 얼굴을 교란시켜 놓는 바람에 “흩어져 수백 동파 되었다가 잠깐 새에 도로 여기에 있네.〔散爲百東坡 頃刻復在玆〕”라고 하였다.
[주D-002]코끝을 …… 뒤 : 불교에서 유래한 수양법을 말한다. 눈으로 코끝을 바라보면서 호흡을 조절하는데, 그렇게 하면 코로 숨쉴 때 연기처럼 흰 기운이 출입하는 것이 보인다고 한다. 주자(朱子)의 조식잠(調息箴)과 《능엄경(楞嚴經)》 등 참조.
[주D-003]장신(臟神) : 오장(五臟), 즉 심장, 신장, 간, 폐, 비장을 가리킨다. ‘장(臟)’은 ‘장(藏)’이란 뜻으로, 정(精)은 신장에 숨고, 신(神)은 심장에 숨고, 혼(魂)은 간에 숨고, 백(魄)은 폐에 숨고, 지(志)는 비장에 숨는다고 한다.
[주D-004]나부산(羅浮山) : 중국 광동성(廣東省)에 있는 산으로 도교(道敎)의 명산 중의 하나이며, 매화(梅花)의 고사로 유명한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수(隋) 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조사웅(趙師雄)이란 사람이 나부산에서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에게서 나는 향기가 너무나 향기롭고 목소리가 청아하여 함께 술을 마시고 대취하였다가 깨어나 보니 큰 매화나무 아래였다고 한다. 《龍城錄》 매화를 나부몽(羅浮夢)이라 한다.
[주D-005]유신(劉晨) 완조(阮肇) : 두 사람 모두 후한 때의 인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후한 명제(明帝) 영평(永平) 연간에 이 두 사람이 약을 캐러 천태산(天台山)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두 여인을 만났다. 그집에 들어가 하룻밤 유숙한 다음 부부의 연을 맺고 살게 되었다. 반년이 지난 후 세상에 나와 보니 아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 아무도 없고 이미 7대(代)가 지났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여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다시는 돌아갈 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太平廣記 神仙傳》
[주D-006]적성(赤城) : 중국 절강성(浙江省) 천태현(天台縣)에 있는 산이다. 천태산(天台山)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산을 거쳐 가야 한다고 한다. 또한 도교(道敎)의 전설에도 적성산이 나오는데, 그 산 아래 단동(丹洞)이 있어 단(丹)이 풍족하다고 한다. 《初學記 8 登眞隱訣》
[주D-007]병사(甁史) : 병중(甁中)의 화사(花史)란 뜻으로, 꽃병에다 이꽃 저꽃을 갈아 꽂는 것을 말한다. 또한 명(明) 나라 원굉도(袁宏道)가 지은 《병사》란 책이 있는데, 병화(甁花 : 병에 꽂은 생화〈生花〉)와 그 삽법(揷法)에 대해 논하였다.
[주D-008]옥주(玉麈) : 옥으로 만든 자루에다 고라니 털을 달아서 벌레를 쫓거나 먼지를 털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옛사람들이 한가롭게 담론을 할 때 늘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주D-009]화예부인(花蘂夫人) : 오대(五代) 때 촉주(蜀主) 맹창(孟昶)의 부인을 일컫는다. 재색(才色)으로 궁에 들어와 왕비가 되었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작품으로 당(唐) 나라 말기의 시인 왕건(王建)의 궁사(宮詞)를 본떠 지은 화예부인궁사(花蘂夫人宮詞)가 있다. 미인을 ‘말하는 꽃〔解語花〕’이라 한다.
[주D-010]앵가사리 : 지혜롭고 말 잘하는 앵무새를 가리켜 한 말인 듯하다. 앵가(鸚哥)는 앵무새란 뜻이다. 또한 부처의 10대 제자 중 지혜가 제일이라는 사리불(舍利佛)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사리(舍利)라는 여인의 아들이란 뜻이고, 사리(舍利)는 말 잘하는 새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D-011]도를 …… 알려는지 : 아난(阿難)은 부처의 10대 제자의 한 사람으로, 다문제일(多聞第一)이었다고 한다. 수달 장자(須達長者)에게 앵무새 두 마리가 있었는데, 아난이 그 새들을 위해 사제(四諦)의 법을 설하니 듣고 깨우쳤으며, 죽은 뒤 하늘에 태어났다고 한다. 《金藏經》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설날 아침에 거울을 마주 보며
두어 올 검은 수염 갑자기 돋았으나 / 忽然添得數莖鬚
육척의 몸은 전혀 커진 것이 아니네 / 全不加長六尺軀
거울 속의 얼굴은 해를 따라 달라져도 / 鏡裡容顔隨歲異
철모르는 생각은 지난해 나 그대로 / 穉心猶自去年吾
[주C-001]설날 …… 보며 : 《연암집》 권5 ‘성백에게 보냄〔與成伯〕’ 두 번째 편지에도 인용되어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새벽길
까치 하나 외로이 수숫대에 잠자는데 / 一鵲孤宿薥黍柄
달 밝고 이슬 희고 밭골 물은 졸졸 우네 / 月明露白田水鳴
나무 아래 오두막은 둥글어라 돌 같은데 / 樹下小屋圓如石
지붕 위 박꽃은 별처럼 반짝이네 / 屋頭匏花明如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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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極寒)
깎아지른 북악은 높기도 한데 / 北岳高戌削
남산이라 송림(松林)은 새까만 빛을 / 南山松黑色
송골매 지나가니 숲이 소슬하고 / 隼過林木肅
두루미 울음소리 하늘 파랗네 / 鶴鳴昊天碧
[주D-001]북악(北岳) : 한양의 경복궁 뒷산을 가리킨다. 다음에 나오는 남산은 한양의 목멱산(木覓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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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서 동짓날 이생(李生)에게 써 보이다
연암이라 그 아래 집을 지으니 / 築室燕岩下
바로 화장산(華藏山) 동쪽이로세 / 乃在華藏東
수석에 다다를 땐 지팡이 짚고 / 倚杖臨水石
물거리를 베느라 낫을 찬다오 / 携鎌剪灌叢
기이한 바위는 푸른빛 이슬진 병풍 같고 / 奇巖翠滴屛
그윽한 여울물 소리 궁음(宮音) 곡조로 울리네 / 幽湍響操宮
뜰 안에 심어 논 건 무어냐 하면 / 庭中何所植
복숭아와 대나무 소나무 단풍일세 / 桃竹與松楓
시냇가 푸른 사슴 물을 마시고 / 磵畔飮蒼鹿
섬돌에 꿩이 내려 곡식 쪼누나 / 階除啄華蟲
짚 처마 정교하게 달을 새기고 / 簷茅工鏤月
추녀 끝의 풍경은 바람에 절로 우네 / 楹磬自戞風
해 다 가도 사람은 아니 보이니 / 盡日不見人
적막에 사로잡힌 방지기 신세 / 寂寞守窓櫳
어찌 보면 선정(禪定)에 든 중과도 같고 / 還如僧入定
공곡(空谷)으로 도망간 부처도 같네 / 復似佛逃空
어느 뉘 겨울 해가 짧다고 했나 / 誰謂冬日短
이따금 낮잠 들어 정신이 몽롱하네 / 午睡時矇矓
나를 따르는 이생이 있어 / 相隨有李生
농에 가득 고서를 가지고 왔네 / 古書携滿籠
산전(山田)이라 가을 되어도 곡식이 여물지 않아 / 山田秋不熟
푸성귀나 풋콩으론 배 못 채워 괴롭네 / 蔬菽苦未充
그렇지만 부지런히 외우고 읽어 / 猶然勤誦讀
목이 메도록 웅얼거리네 / 伊吾嗌喉嚨
늙어서 게을러진 나를 깨우쳐 주어 고마운데 / 感君警衰惰
연마하는 너를 깔보다니 부끄럽구나 / 媿我蔑磨礱
양(陽)이 처음 자라나는 이날을 맞아 / 是日値陽至
《대학(大學)》 책 한 권을 끝마쳤다니 / 君讀曾傳終
묻노라 무엇을 네 얻었는고 / 問君何所得
이(理)는 본래 하나라서 서로 통하지 / 一理本相通
성하거나 쇠하는 건 각자 점차적으로 되나니 / 消長各有漸
쌓고 또 쌓아야만 다함 없느니 / 累積乃無窮
겨울 되면 비록 견고해지지만 / 及冬雖貞固
봄이 오면 누그러져 퍼지기 마련 / 至春得發融
빠르지 않은 반면 느리지도 않아 / 不疾亦不舒
총총히 오가는 게 아니고말고 / 來往非怱怱
한 가지 일 제아무리 독차지할 수 있어도 / 一事雖得專
사시(四時)는 제 혼자서 공(功) 못 이루네 / 四時不自功
비하자면 알을 품은 암탉과 같아 / 譬如鷄伏卵
아득한 그 가운데 말없이 되는 법 / 默化窅冥中
미약한 양(陽)은 겨우 실낱 같고 / 微陽僅如線
초승달은 영락없이 활 모양이네 / 初月又似弓
아무리 눈 밝은 이루가 있고 / 雖有離婁明
귀 밝은 사광이 온달지라도 / 復使師曠聰
그 기미를 듣고 보기 어려운 것은 / 其幾難聞覩
혼돈에서 비롯된 갈라짐이기 때문 / 判別肇鴻濛
사사로운 지력(智力) 따위 어찌 용납이 되리 / 寧容智力私
천지조화의 공평함을 예서 보는걸 / 乃見運化公
창의 해그림자 책력(冊曆)을 대신하는데 / 窓晷代曆日
물시계를 시험해서 무엇 하리오 / 何用驗漏筒
네 부디 밝은 덕을 숭상하여라 / 願君崇明德
일신의 효험을 차츰 보게 되리라 / 漸看日新工
[주C-001]이생(李生) : 이본들에는 ‘이현겸(李賢謙)’이라 밝혀져 있다. 정조 2년(1778) 황해도 금천(金川) 연암협(燕巖峽)으로 갓 이거(移居)한 연암은 그전에 잠시 개성(開城) 금학동(琴鶴洞)에 있던 양호맹(梁浩孟)의 별장에 머물면서 개성의 청년 문사들을 가르쳤는데, 그중 이현겸은 그 지역에서 문학으로 가장 명성이 높던 청년이었다. 연암이 금학동 별장으로부터 연암협으로 돌아오자, 이현겸 등도 따라와 글을 배웠는데, 이 시는 그때 지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過庭錄 卷1》
[주D-001]부처 : 원문은 ‘佛’인데, 김택영의 《중편연암집》에는 ‘仙’으로 되어 있다.
[주D-002]양(陽)이 처음 자라나는 : 동짓날은 일양시생(一陽始生)이라 하여, 음이 극에 달하여 양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하는 날이라고 한다.
[주D-003]《대학(大學)》 : 원문의 ‘증전(曾傳)’은 증자(曾子)가 공자의 가르침을 전한 것, 곧 《대학》을 가리킨다.
[주D-004]이루(離婁) : 고대 중국에서 눈이 몹시 밝았다는 사람이다.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온다. 아래의 사광(師曠)은 춘추 시대 진(晉) 나라의 유명한 맹인 악사(樂師)로, 역시 《맹자》의 같은 편에 나온다.
[주D-005]일신(日新) : 《대학》에 ‘명덕을 밝히라〔明明德〕’는 말씀에 이어 탕(湯) 임금의 반명(盤銘)을 인용하여 “진실로 날로 새롭게 되려면, 나날이 새로 하고, 또 날로 새로이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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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山行) ‘산전갈이〔山耕〕’로 된 데도 있다.
이랴저랴 소몰이 소리 구름 속에 들리고 / 叱牛聲出白雲邊
하늘 찌른 푸른 봉우리엔 비늘같이 밭골 즐비하네 / 危嶂鱗塍翠揷天
견우직녀 왜 구태여 까막까치 기다리나 / 牛女何須烏鵲渡
은하수 서쪽 나루 달이 걸려 배 같은데 / 銀河西畔月如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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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移居)
관도 주변으로 집을 옮기니 / 移家官道下
하루 내내 행인 구경 하누나 / 盡日看行人
가는 자가 오는 자를 맞는가 하면 / 去者逢來者
앞사람 발자취가 뒷사람 발자취를 잇대는구려 / 前塵接後塵
이 길을 말미암아 천리를 가노라고 / 由玆千里適
인생 백년의 몸이 늙어 버리는데 / 老彼百年身
- 원문 빠짐 - / □□□□□
딴 길을 따르는 사람을 도리어 가엾어하네 / 還嗟異所循
[주D-001]관도(官道) : 조선 정부에서 만든 간선도로로, 한양을 기점으로 전국에 10대 간선도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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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군교(勞軍橋)
어옹노래 초부타령 영웅이 몇이더뇨 / 漁歌樵唱幾英雄
날고 뛰는 싸움 공격 패기도 없어졌네 / 戰伐飛騰伯氣終
옛날이라 어구(御溝)에 흐르는 물 어디 가고 / 昔日御溝流水盡
보리밭 묵정 속에 노군교만 남아 있네 / 勞軍橋在麥田中
[주C-001]노군교(勞軍橋) : 개성 송악산 입암동(立岩洞)에 있던 다리 이름이다. 부근에 고려 왕궁 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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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운대(弼雲臺)의 꽃구경
나비의 꽃 희롱 하필 극성이라 나무라노 / 戲蝶何須罵劇顚
사람들 되려 나비 따라 꽃과 인연 맺으려 달려가네 / 人還隨蝶趁芳緣
아지랑이 뜬 저 너머에 한낮의 봄은 새파랗고 / 春靑晝白遊絲外
길엔 붉은 먼지 자욱하고 마실 풍경 드설레네 / 井哄烟喧紫陌前
새 울음 각각인 건 제 뜻대로라지만 / 各各禽啼容汝意
도처에 꽃이 핀 건 저 하늘 뜻대로지 / 頭頭花發任他天
명원(名園)에 앉아 둘러보니 소년들 하나 없고 / 名園坐閱無童髦
머리 허연 노인들만 작년과 달라진 게 서글프네 / 白髮堪憐異去年
[주C-001]필운대(弼雲臺) : 한양 경복궁 서쪽 인왕산의 필운동에 있던 명승지이다.
[주D-001]명원(名園)에 …… 서글프네 : 이 두 구절이 원문에는 ‘缺’이라고 되어 있으나, 국립중앙도서관 및 영남대 소장 필사본에 의거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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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살며
푸른 나무 그늘 짙고 짙어 산비둘기 까치 새끼 놀고 / 鳴鳩乳鵲綠陰垂
돛대 머리에 돛 날리네 조운선(漕運船) 올라올 때 / 亂颿檣頭漕上時
강가 누각에서 졸고 나니 하나도 일이 없어 / 江閣罷眠無一事
박태기나무 꽃 아래에서 당시(唐詩)를 베낀다오 / 紫荊花下錄唐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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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너 용만성(龍灣城)을 돌아보다
손바닥만 한 외론 성에 빗발이 어지럽고 / 孤城如掌雨紛紛
갈대 억새 아득아득 변방 해는 어둑어둑 / 蘆荻茫茫塞日曛
먼 길 나선 말 울음 쌍나팔에 어울리고 / 征馬嘶連雙吹角
고향 산은 점점 희미하게 만겹 구름에 감싸였네 / 鄕山渲入萬重雲
용만이라 군리들은 모래톱에서 돌아가고 / 龍灣軍吏沙頭返
압록강에서 새와 물고기도 물 사이에서 나눠지네 / 鴨綠禽魚水際分
고국 소식 담은 편지 예서부터 끊어지니 / 家國音書從此斷
가없는 저 벌판으로 고개 돌려 어이 들리 / 不堪回首入無垠
[주C-001]압록강을 …… 돌아보다 : 용만(龍灣)은 의주(義州)를 말한다. 《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 정조 4년(1780) 6월 24일 조에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넌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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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련성(九連城)에서 노숙하며
요양(遼陽) 가는 만리 길에 누워서 생각하니 / 臥念遼陽萬里中
예 이제 강과 산에 영웅이 몇이더뇨 / 山河今古幾英雄
이적이 도호부(都護府) 설치한 곳엔 나무들 잇대었고 / 樹連李勣曾開府
동명왕 살던 궁궐 구름에 뒤덮였네 / 雲壓東明舊住宮
날고 뛰는 싸움 공격 강물과 함께 흘러가버렸고 / 戰伐飛騰流水盡
어부와 나무꾼 태평세월 노래하니 석양만 쓸쓸하이 / 漁樵問答夕陽空
출새곡(出塞曲) 노래하다 취한 김에 웃어 대니 / 醉歌出塞歌還笑
머리 하얀 한낱 서생 바람으로 머리를 빗질하겠구나 / 頭白書生且櫛風
[주C-001]구련성(九連城)에서 노숙하며 : 《열하일기》 도강록 6월 24일 · 25일 조에 관련 기사가 있다. 구련성은 압록강 너머 30리 거리에 있었다.
[주D-001]이적(李勣)이 …… 곳엔 : 668년 당(唐) 나라 고종(高宗)은 장수 이적을 시켜 고구려를 정벌케 했다. 이적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했다.
[주D-002]동명왕(東明王) 살던 궁궐 :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國內城)을 가리킨다. 연암은 구련성이 곧 예전의 국내성일 것으로 보았다.
[주D-003]출새곡(出塞曲) : 국경의 요새를 거쳐 외국으로 나갈 때 불렀다는 악부(樂府) 횡취곡(橫吹曲)의 이름이다. 중국의 한(漢) 나라 초부터 불려졌다고 하며, 당 나라 때 두보(杜甫) 등 유명한 시인들이 가사를 지었다.
[주D-004]머리 …… 빗질하겠구나 : 바람으로 머리를 빗질하고 비로 머리를 감는다는 뜻의 ‘즐풍목우(櫛風沐雨)’는 갖은 고생을 하며 바삐 돌아다니는 경우에 쓰는 표현이다. ‘머리 하얀 한낱 서생’은 연암이 자신을 자조적(自嘲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통원보(通遠堡)에서 비에 막히다
변방에 비 주룩주룩 그칠 줄 모르니 / 塞雨淋淋未肯休
어명 받든 사신들 행차 길이 막혔구려 / 皇華使者滯行輈
예로부터 유세(遊說)하기를 소의 꼬리 되는 게 부끄럽다는데 / 遊談從古羞牛後
마두들만 믿고 있는 일행들이 가엾구려 / 眷屬還憐恃馬頭
취한 속에 바라보아도 내 나라가 아니로세 / 醉裏相看非故國
어느 시대 세상인지 초가을이 또 왔구려 / 人間何世又新秋
앞 강에 배 없다 기별이 전해 오니 / 前河報道闕舟楫
긴긴 날 지루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 長日無聊那可由
[주C-001]통원보(通遠堡)에서 비에 막히다 : 《열하일기》 도강록 7월 2일 조에 관련 기사가 있다. 6월 29일 통원보에 도착한 조선 사행(使行)은 7월 1일부터 큰비를 만나 그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7월 2일에도 앞 계곡에 물이 불어 건널 수 없다는 보고를 받고 계속 체류하게 되었다.
[주D-001]예로부터 …… 부끄럽다는데 : 중국 전국 시대의 유세가인 소진(蘇秦)이 한(韓) 나라 선혜왕(宣惠王)에게 진(秦) 나라에 신복(臣服)하지 말도록 설득하면서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寧爲鷄口 無爲牛後〕”는 속담을 인용한 것에서 나온 말이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앞장서지 못하고 낙후함이 부끄럽다는 뜻이다.
[주D-002]마두(馬頭) : 중국 사행길을 수행하는 하천배의 하나로 말을 모는 일을 담당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요동(遼東) 벌판을 새벽에 지나며
요동 벌판 어느 제나 끝이 날는지 / 遼野何時盡
열흘 내내 산이라곤 보지 못했네 / 一旬不見山
새벽 별은 말 머리 위로 솟아오르고 / 曉星飛馬首
아침 해가 논밭에서 솟아나누나 / 朝日出田間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동관(東關)에서 유숙하다
앞 계곡에 물이 불어 수레를 또 멈추니 / 前溪水漲又停車
난간에 기대어 어쩔거나 외칠밖에 / 只得憑欄喚奈何
어린 시절부터 중국 일을 글에서만 읽었더니 / 自幼讀書中國事
이로부터 대방가의 풍속을 보겠구려 / 從玆觀俗大方家
예나 지금이나 오가는 비와 구름 여름 겨우 지났는데 / 雨今雲古纔經夏
조삼모사(朝三暮四) 이 아니랴 강물을 몇 번이나 건넜던고 / 暮四朝三幾渡河
- 원문 빠짐 - / □□□□□□□
- 원문 빠짐 - / □□□□□□□
[주D-001]이로부터 …… 보겠구려 : 《장자(莊子)》 추수(秋水)에서 강의 신인 하백(河伯)은 가을에 비가 많이 내려 황하(黃河)가 불어난 것을 보고 크게 자부심을 느꼈다가, 황하가 흘러든 북해(北海)가 아득하게 넓은 것을 보고는 자신의 식견이 좁았던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바다의 신인 해야(海若)에게 “나는 길이 대방지가(大方之家)의 웃음거리가 되겠구려.”라고 말했다. 대방지가는 대도(大道)를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시에서는 대국(大國)인 중국에서는 조선과 달리 비가 한번 왔다 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난다는 뜻으로 그와 같은 표현을 쓴 듯하다.
[주D-002]원문 빠짐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에는 원문이 빠진 곳에 결구(缺句) 표시를 하고 그 아래에, “어떤 본에는 ‘절하느라 이마에 진흙 묻힌 꼴을 보고 웃었더니, 되려 날 보고 웃긴 왜 웃나〔我政笑君泥點額, 君還向我笑甚麽〕’로 되어 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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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빠짐 -절구 한 수를 읊다
머리 하얀 서생이 황경(皇京)을 들어가니 / 書生頭白入皇京
의복 차림 의연히 하나의 노병(老兵)일레 / 服着依然一老兵
말을 타고 또다시 열하를 향해 가니 / 又向熱河騎馬去
공명(功名)에 나아가는 가난한 선비 같네 / 眞如貧士就功名
[주C-001]절구 한 수를 읊다 : 어떤 이본들에는 이 시의 제목이 ‘熱河途中’으로 되어 있다. 《열하일기》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에 의하면 연암은 정조 4년 8월 5일 북경에서 열하로 출발하였다.
[주D-001]머리 하얀 : 원문은 ‘頭白’인데, 어떤 이본들에는 ‘白首’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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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빠짐 - 말 위에서 구호(口號)하다 피서록(避暑錄)에 보인다.
푸른 깃에 은정자(銀頂子) 모자 쓰니 이야말로 무부(武夫) 같네 / 翠翎銀頂武夫如
요양(遼陽)이라 천리 길 사신 수레 뒤따랐소 / 千里遼陽逐使車
중국에 한번 들어온 뒤 호칭 세 번 바뀌었으니 / 一入中州三變號
좀스러운 선비들은 예로부터 물고기 벌레 따위나 배우는 법 / 鯫生從古學蟲魚
[주C-001]구호(口號) : 입에서 나오는 대로 즉흥적으로 읊었다는 뜻이다. 또한 그렇게 지은 시를 ‘구호’라고 한다.
[주D-001]호칭 세 번 바뀌었으니 : 연암 자신처럼 아무런 직임을 띠지 않고 사행길을 따라가는 자를 국내에서는 밴댕이〔盤當〕와 음이 같은 반당(伴當), 중국에서는 새우〔蝦 : 무부〈武夫〉라는 뜻〕, 가오리(哥吾里 : 고려〈高麗〉라는 뜻)라고 부르는 것을 빗대어서 말한 것이다.
[주D-002]좀스러운 …… 법 : 추생(鯫生)은 식견이 얕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충어(蟲魚)를 배운다는 것은 유교 경전을 연구하면서 벌레나 물고기의 명칭과 같은 자질구레한 지식들을 추구하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이 시에서는 연암 자신이 사행 길에 밴댕이, 새우, 가오리 등으로 불린 것을 스스로 풍자한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필운대(弼雲臺)에서 살구꽃 구경하며
석양이 갑자기 넋을 거두어들이니 / 斜陽倏斂魂
위는 밝고 아래는 그윽하고 고요해 / 上明下幽靜
꽃 아래 노니는 하고한 사람 / 花下千萬人
옷과 수염 저마다 볼 만하네 / 衣鬚各自境
[주D-001]넋을 거두어들이니 : ‘斂魂’은 원래 죽은 이의 넋을 모은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석양이 지면서 어두워졌다는 뜻으로 쓰인 듯하다. 황혼을 염혼(斂昏)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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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 네 수 제목 없음. 연경에 들어가는 사람을 송별한 때이거나 연경에 가면서 지은 잡영(雜咏)인 듯하다.
먼 길 나선 옷차림 월 나라 비단 치마로 갈아입었으니 / 征裙換盡越羅裳
강서(江西)의 문란(文蘭)으로 여점(旅店) 가득 향기롭네 / 江右文蘭滿店香
오직 조선에만 그 슬픈 사랑 이야기 글로 엮어 전해졌나니 / 唯有東韓編艶史
쓸쓸한 진자점(榛子店) 성벽 석양을 띠었구려 / 城寒榛子帶斜陽
화려한 집의 닭 울음소리 늘어진 버들처럼 길어라 / 金屋鷄聲似柳長
배신이 응대한 말 이제껏 향기롭네 / 陪臣牙頰至今香
노구교 새벽달은 상기도 맑고 고운데 / 蘆溝曉月涓涓在
심양왕의 만권당을 어느 뉘 알리 / 誰識瀋王萬卷堂
육왕(六王)을 겨우 끝장내자 한 철퇴가 날아드니 / 六王纔畢一椎來
산신(山神)은 소리 없고 백옥만 애처롭네 / 尾蔗閒談推第一 / 山鬼無聲白璧哀
미자한담에서 그를 당세 제일의 재사(才士)라 추앙하니
원매(袁枚) 같은 사람 중국에 몇이더뇨 / 幾人中土似袁枚
난하(灤河)의 맑은 모래 외로운 저 섬 속에 / 灤水沙晴島嶼孤
신세 좋은 해오라기는 티끌 한 점 안 묻었네 / 鵁鶄身世一塵無
백이(伯夷) 숙제(叔齊) 사당 아래 서글피 섰노라니 / 夷齊祠下悄然立
서희(徐熙)처럼 몰골도를 그리고 싶어지네 / 欲寫徐熙沒骨圖
[주C-001]연경에 …… 듯하다 : 네 수 모두 연행 도중에 지은 시임이 분명하다.
[주D-001]먼 길 …… 갈아입었으니 : 청 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강서성(江西省) 출신으로 수재(秀才) 우상경(虞尙卿)의 젊은 아내였던 계문란(季文蘭)은 남편이 만주족에게 피살당하고 자신은 납치되어 심양(瀋陽)으로 팔려 가면서, 산해관(山海關) 밖 진자점(榛子店)의 벽에다 구원을 호소하는 칠언절구 1수를 남겼다. 《열하일기》 피서록에 그 시의 전문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 시구는 그 시의 둘째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2]오직 …… 전해졌나니 : 1683년 사신으로 갔던 김석주(金錫冑)가 처음 계문란의 시를 기록하여 돌아왔고, 《息菴集》 그 이듬해 남구만(南九萬)도 그 시를 보았다고 했으며, 1712년 김창업(金昌業)도 그 시를 보고 차운한 시를 남겼다. 《老稼齋燕行錄》 그 이후 연행(燕行)에 나선 조선 문사들은 진자점을 지날 적마다 계문란의 고사를 회상하면서 시를 짓곤 하였다.
[주D-003]화려한 …… 길어라 : 고려 때 충선왕(忠宣王)은 원(元) 나라 수도에서 만권당(萬卷堂)이란 서실을 짓고 기거하면서 조맹부(趙孟頫) 등 저명한 문사들과 교제했는데, 하루는 충선왕이 “닭 울음소리가 문 앞의 버드나무 같네.〔鷄聲恰似門前柳〕”라는 시구를 지었으나, 중국 문사들이 그 출처를 묻는데 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 왕을 측근에서 모시고 있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고려 사람의 시에 “해 돋는 지붕 위로 금계가 우는데, 늘어진 버들처럼 간들간들 길어라.〔屋頭初日金鷄唱 恰似垂柳裊裊長〕”라는 구절이 있다고 응대하여 온 좌중의 감탄을 샀다고 한다. 《淸脾錄 卷1 鷄聲似柳》 충선왕은 원 나라에 있을 때 심양왕(瀋陽王)에 봉해졌다.
[주D-004]배신(陪臣) : 이제현을 가리킨다. 제후(諸侯)의 신하는 천자에 대하여 신하의 신하가 된다는 뜻으로 배신이라 부른다.
[주D-005]노구교(蘆溝橋) : 연경(燕京)의 광안문(廣安門) 서쪽에 있는 다리 이름이다.
[주D-006]육왕(六王)을 …… 애처롭네 : 청 나라 건륭(乾隆) 때 시인 원매(袁枚 : 자 자재〈子才〉, 호 수원〈隨園〉)가 진 시황(秦始皇) 때의 역사를 노래한 회고시(懷古詩) 박랑성(博浪城)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육왕(六王)은 전국 시대의 6국인 제(齊) · 초(楚) · 연(燕) · 한(韓) · 위(魏) · 조(趙)의 왕을 가리킨다. ‘한 철퇴가 날아드니’는 장량(張良)이 박랑사(博浪沙)에서 진 시황을 철퇴로 저격하려다 실패한 사건을 말한다. ‘산신은 소리 없고 백옥만 애처롭네’라고 한 것은 진 시황 36년에 어떤 신령스러운 사람이 진 시황의 사자(使者) 앞에 나타나 벽(璧)을 주면서 진 시황의 죽음을 암시하는 예언을 하고 사라진 사건을 말한다. 이를 보고받은 진 시황은 ‘산신은 본래 한 해의 일을 아는 데 불과하다’고 짐짓 무시했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卷55 留侯世家》 원매의 박랑성 시는 《열하일기》 피서록에 전문이 소개되어 있다.
[주D-007]미자한담(尾蔗閒談)에서 …… 추앙하니 : 미자(尾蔗)는 사탕수수〔甘蔗〕를 맛이 쓴 뿌리부터 먹는다는 뜻으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을 말한다. 청 나라 건륭 때 시인 이조원(李調元 : 호 우촌〈雨村〉)은 원매를 당세 제일의 재사(才士)라고 칭송하면서 자신의 《미자헌한담(尾蔗軒閒談)》에서 그에 관한 일을 기록했노라고 하였다. 《淸脾錄 卷4 袁子才》 이조원이 편집한 《함해(函海)》에 《미자총담(尾蔗叢談)》 4권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8]육왕(六王)을 …… 몇이더뇨 : 김택영의 《중편연암집》에는 이 제 3 수만을 회증원수원(懷贈袁隨園)이란 제목을 붙여 수록해 놓았다. 그러나 연암과 원매 간에는 아무런 교분이 없으므로 적절한 제목이라 하기 어렵다.
[주D-009]난하(灤河)의 …… 묻었네 : 이덕무의 《청비록(淸脾錄)》 권3 연암조(燕巖條)에도 이 두 시구가 소개되어 있다. 단 첫 구 중의 ‘灤水沙淸’이 ‘水碧沙明’으로 되어 있다. 박종채의 《과정록(過庭錄)》 권4에도 이 시구를 소개한 대동소이한 기사가 있다.
[주D-010]몰골도(沒骨圖) : 묵필(墨筆)로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곧바로 채색한 그림을 말한다. 서희는 오대(五代) 말기에서 송(宋) 나라 초기의 저명한 화가로 몰골도의 기법을 개발하였다.
[주D-011]난하(灤河)의 …… 싶어지네 : 《열하일기》 일신수필 7월 26일 조에 영평부(永平府)에서 출발하여 난하를 건너 이제묘(夷齊廟)를 들렀다고 기록되어 있고, 따로 이제묘기(夷齊廟記)와 난하범주기(灤河泛舟記)가 수록되어 있다. 연암은 그림도 잘 그렸다고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강가에 살며 멋대로 읊다
우리 집 문밖은 바로 서호(西湖) 나루 근처 / 我家門外卽湖頭
쌀 사려 소금 사려 몇 곳의 배들이냐 / 米鬨鹽喧幾處舟
가을 기러기 한번 울자 일제히 닻을 올리고 / 霜鴈一聲齊擧矴
강에 가득 밝은 달 비추일 때 금주로 내려가네 / 滿江明月下金州
[주D-001]서호(西湖) : 한양의 서강(西江)을 말한다. 한강의 마포(麻浦) 나루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조운(漕運)의 한 중심지였다.
[주D-002]금주(金州) : 한강 입구의 김포(金浦)를 금주 또는 금릉(金陵)이라 불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연암(燕岩)에서 선형(先兄)을 생각하다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 我兄顔髮曾誰似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날 때마다 우리 형님 쳐다봤지 / 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 / 今日思兄何處見
두건 쓰고 도포 입고 가서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 / 自將巾袂映溪行
[주C-001]연암(燕岩)에서 …… 생각하다 : 정조 11년(1787) 연암의 형 박희원(朴喜源)이 향년 58세로 별세하여 연암협(燕巖峽)의 집 뒤에 있던 부인 이씨 묘에 합장하였다. 이덕무는 이 시를 읽고 감동하여 극찬한 바 있다. 《過庭錄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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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화(洪太和)의 비성아집(秘省雅集) 시에 차운하다
첫가을 맑은 잔치 난향(蘭香)이 상쾌한데 / 新秋淸讌洒蘭薰
밥상 받은 여러 님은 효반(皛飯)과 취반(毳飯)으로 나뉘었네 / 會飯群公皛毳分
영지(靈芝) 돋은 늙은 나무 옛 비를 간직했고 / 老樹蒸芝藏舊雨
어떤 본에는 ‘장맛비를 머금고〔含積雨〕’로 되어 있다. /
신기루 같은 먼 누각 무너지는 구름을 부축하고 있네 / 遙樓學蜃擁頹雲
시마(詩魔)에 홀렸다는 비웃음이 뒤따르고 / 詩魔邂逅從他笑
자주(自註) : 차수(次修 : 박제가〈朴齊家〉의 자)가 내 시를 보고 “시마에 홀린 것이 아닙니까?” 하니 좌중이 모두 크게 웃었다.
용의 뿔 우뚝하게 그렸노라
어떤 본에는 ‘허겁지겁 수묵화를 그렸노라〔墨畵蒼茫〕’로 되어 있다.
반쯤 술이 취한 김에 / 龍角崢嶸倚半醺
자주 : 태화가 종이를 펴고 나더러 용을 그려 달라고 떼를 쓰기에 내가 비늘과 뿔을 대충 그리고 먹을 뿌려 보았다.
귀밑털에 서리 내린 이래로 기사(耆社)에 들기 넉넉하니 / 霜鬢由來優入社
북산에서 이문(移文)을 보내오진 않겠구먼 / 北山應不便移文
[주C-001]홍태화(洪太和)의 …… 차운하다 : 태화(太和)는 홍원섭(洪元燮 : 1744~1807)의 자이다. 홍원섭은 충주 목사를 지냈으며 고문(古文)을 잘 지었다. 그의 문집 《태호집(太湖集)》에 비성아집첩전운(秘省雅集疊前韻)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시에 붙인 소주(小註)에 연암과 이덕무 · 박제가 · 유득공 · 성대중(成大中) 등과 함께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비성(秘省)은 비서성(秘書省) 즉 규장각(奎章閣)의 외각(外閣)인 교서관(校書館)을 가리킨다. 정조 15년(1791) 7월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가 왕명으로 교서관에서 병지(兵志)를 편찬할 때 성대중이 마침 교서관에 숙직하자 홍원섭과 박지원 등이 함께 모여 시를 지었다고 한다. 《貞蕤詩集 卷3 辛亥七月同靑莊泠菴奉命纂輯國朝兵事開局於秘省而靑城適就直太湖燕巖玉流諸公偶集》
[주D-001]효반(皛飯)과 취반(毳飯)으로 나뉘었네 : 소식(蘇軾)과 전협(錢勰) 간의 해학적인 일화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 전협이 소식에게 편지를 보내 효반을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가 보니 밥 한 사발, 무 한 접시, 백탕(白湯) 한 그릇뿐이었다. 세 가지가 모두 백색(白色)이라고 ‘효반’이라 한 것이었다. 며칠 뒤 소식은 전협에게 편지를 보내 취반을 대접하겠노라고 했는데, 가 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모(毛)는 ‘무(無)’와 통하므로, 밥 · 무 · 백탕 세 가지가 모두 없다는 뜻으로 ‘취반’이라 한 것이었다. 《高齋漫錄》 여기서는 차려진 음식이 변변치 않았음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D-002]차수(次修)가 …… 웃었다 : 평소 시를 즐겨 짓지 않던 연암이 모처럼 시를 지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농담을 한 것이다.
[주D-003]기사(耆社) : 기로소(耆老所)를 말한다. 70세 이상의 고관들을 예우하기 위한 경로(敬老) 기관이었다.
[주D-004]북산(北山)에서 …… 않겠구먼 : 북산은 중국의 종산(鍾山)을 가리키며 남경(南京)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산이라 한다. 이문(移文)은 관부 문서의 일종으로 격문(檄文)과 비슷하며 어떤 대상을 성토하는 글이다. 남조(南朝) 때에 주옹(周顒)이 북산에 은거하다가 나중에 불려 나가 해염 영(海鹽令)이 되었는데 임기가 만료되어 서울로 들어오다 다시 북산을 지나게 되었다. 이에 공치규(孔稚珪 : 447~501)가 북산의 산신(山神) 이름을 빌려 사이비 은사(隱士)인 그를 성토하였다. 《文選 北山移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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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齋室)에서 제릉 영(齊陵令)으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한두 잔 막걸리로 혼자서 맘 달래노라 / 淺酌村醪獨自寬
백발이 성글성글 탕건 하나 못 이기네 / 蕭蕭霜髮不勝冠
천년 묵은 나무 아래 황량한 집 / 千年樹下蒼涼屋
한 글자 직함 중에서도 쓸데없이 많은 능관(陵官)일레 / 一字啣中冗長官
맡은 일 시시하여 신경 쓸 일도 적지마는 / 都付鼠肝閒計小
그래도 닭 갈비처럼 버리기 아깝구려 / 猶將鷄肋快抛難
만나는 사람마다 지난겨울 괴로웠다 말하는데 / 逢人盡說前冬苦
나는 마침 재실에서 되려 추운 줄 몰랐다네 / 最是齋居却忘寒
[주C-001]제릉 영(齊陵令)으로 …… 것이다 : 1790년(정조14) 연암은 경기도 개풍군(開豐郡)에 있는 태조비(太祖妃) 신의왕후(神懿王后)의 능을 관리하는 제릉 영으로 임명되어 그 이듬해까지 재직하였다. 작품 중에 겨울 추위를 겪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시는 1791년(정조15)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주D-001]한 …… 능관(陵官)일레 : 영(令)은 사온서 · 평시서 · 사직서 · 종묘서 · 소격서 · 의영고 · 장흥고 등과 각 전(殿) 및 능(陵)의 우두머리 벼슬로 종 5 품이었다. 그중에서도 능을 지키는 능관(陵官)이 가장 많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술을 조금 마시다
새소리는 여리고 느리게 문 앞에서 들리고 / 禽聲當戶緩
꽃 그림자 천천히 섬돌을 올라오네 / 花影上階遲
손자를 본 날이라 술 맛이 더욱 진하고 / 酒重添丁日
관직을 벗은 때라 몸이 가볍네 / 身輕解紱時
묵은 취반(毳飯)은 넉넉하고 / 三毛贏舊飯
양쪽 귀밑털에 새 흰머리 빛나누나 / 雙鬢耀新絲
고요한 속에 도로 일거리 찾노니 / 靜裡還尋事
남을 위해 만시(輓詩)를 쓰는 거로세 / 爲人寫輓詩
[주C-001]술을 조금 마시다 : 국립중앙도서관 및 영남대 필사본에는 “때는 병진년(1796) 봄으로, 안의 현감(安義縣監)에서 해임되어 돌아왔는데, 어린 손자가 태어난 지 겨우 수일이었다. 또한 어떤 사람이 만시(輓詩)를 청하였다.〔時丙辰春 解安義宰歸 小孫生才數日 又有人請輓〕”는 소주(小註)가 있다.
[주D-001]손자를 본 날이라 : ‘첨정(添丁)’은 아들이나 손자가 태어난 것을 뜻한다. 아들이나 손자를 낳음으로써 나라를 위해 역역(力役)에 복무할 장정(壯丁)을 추가했다는 뜻이다.
[주D-002]관직을 벗은 때라 : ‘해불(解紱)’은 수령이 차는 도장의 끈을 풀었다는 뜻으로, 관직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주D-003]취반(毳飯) : 취(毳)의 ‘삼모(三毛)’는 삼무(三無)와 같은 뜻으로 극히 보잘것없는 음식을 말한다. 소식(蘇軾)과 전협(錢勰) 간의 해학적인 일화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 전협이 소식에게 편지를 보내 효반을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가 보니 밥 한 사발, 무 한 접시, 백탕(白湯) 한 그릇뿐이었다. 세 가지가 모두 백색(白色)이라고 ‘효반’이라 한 것이었다. 며칠 뒤 소식은 전협에게 편지를 보내 취반을 대접하겠노라고 했는데, 가 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모(毛)는 ‘무(無)’와 통하므로, 밥 · 무 · 백탕 세 가지가 모두 없다는 뜻으로 ‘취반’이라 한 것이었다. 《高齋漫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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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일날 맹원(孟園)에 올라 두목(杜牧)의 시에 차운하다
백발노인이 어찌 걸음 날래다 뽐낼쏜가 / 霜鬢爭誇步屧飛
삼청동(三淸洞) 구름 낀 숲은 바라봐도 아득하이 / 三淸雲木望中微
얼큰히 취한 내 얼굴은 단풍잎과 어떠한지 묻노라 / 半酣爲問楓何似
늘그막엔 두말 말고 국화와 절조를 함께해야지 / 晩節眞堪菊與歸
송동에서 화전(花煎) 부치며 옛일을 읊조리고 / 宋洞花餻吟古事
맹원에서 풍모 쓰고 가을 햇빛을 사랑하노라 / 孟園風帽媚秋暉
늙어 쇠했으나 금년에도 건재하니 / 婆娑又得今年健
천길 산꼭대기에서 한번 옷자락을 털어 보세 / 千仞岡頭試振衣
자주 : 이에 앞서 송동(宋洞)에 모여 화전을 부쳐 먹고 높은 곳에 오르자 약조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유몽득(劉夢得)이 구일시(九日詩)를 지으면서 ‘고(餻)’ 자를 쓰려고 했으나 오경(五經) 중에 없는 글자라 하여 걷어치우고 더 이상 짓지 않았다. 그리하여 송자경(宋子京)의 시에 “유랑(劉郞)도 과감하게 ‘고’ 자 운을 못 썼으니, 한세상 시호(詩豪)란 말 속절없이 저버렸네.〔劉郞未敢題餻字 空負詩中一世豪〕”라고 하였다.
시는 고체(古體)와 금체(今體) 도합 42수이다. 아버님이 본시 시인으로 자처하지 아니하여 남과 더불어 창수(唱酬)한 것이 극히 드물었으며, 보통 요구에 응해 지은 작품들도 상자에 남겨 두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 제목이 몹시 적다. 게다가 사람들이 전송(傳誦)하는 것을 수집한 시가 많으므로 중간에 빠지고 확정하지 못한 곳이 꽤 있으나, 삼가 평소의 뜻을 좇아 문편(文編)의 끝에 붙여 둔다. 구고(舊稿)에 ‘영대잡영(映帶雜咏)’이라는 편제(編題)가 있으므로 지금 그대로 답습한다.
아들 종간(宗侃 박종채의 초명(初名))이 삼가 쓰다.
[주C-001]구일날 …… 차운하다 : 구일날은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을 가리킨다. 진(晉) 나라 때 맹가(孟嘉)가 용산(龍山)에 올라 바람에 모자를 떨어뜨렸다는 고사로 인해 중양절에는 높은 곳에 올라 모자를 떨어뜨리는 풍류가 생겼다. 맹원(孟園)은 한양 가회방(嘉會坊 : 지금의 가회동) 북쪽에 있던 높은 고개인 맹현(孟峴)을 가리킨다. 연암이 차운했다는 두목(杜牧)의 시는 구일제산등고(九日齊山登高)이다.
[주D-001]풍모(風帽) : 추위와 바람을 막는 방한모를 말한다.
[주D-002]한번 옷자락을 털어 보세 : 맑은 바람에 옷의 먼지를 털어 보자는 뜻이다. 《초사(楚辭)》 어부(漁父)에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모자의 먼지를 털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먼지를 터는 법이다.〔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하였다.
[주D-003]유몽득(劉夢得) : 몽득(夢得)은 당 나라 유우석(劉禹錫 : 772~842)의 자이다.
[주D-004]송자경(宋子京) : 자경(子京)은 송 나라 송기(宋祁 : 998~1061)의 자이다. 인용된 시구는 송기의 구일식고(九日食餻)의 후반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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