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참새떼 왁자히 내려앉는 대숲마을의 노오란 초가을의 초가지붕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토란 잎에 후두둑 빗방울 스치고 가는 여름날의 고요 적막한 뒤란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추수 끝난 빈 들판을 쿵쿵 울리며 가는 서늘한 뜨거운 기적 소리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빈 들길을 걸어 걸어 흰옷자락 날리며 서울로 가는 순이 누나의 파르라한 옷고름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아늑한 상큼한 짚벼늘에 파묻혀 나를 부르는 소리도 잊어버린 채 까닭 모를 굵은 눈물 흘리던 그 어린 저녁 무렵에도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마음의 고향은 싸락눈 홀로 이마에 받으며 내가 그 어둑한 신작로 길로 나섰을 때 끝났다 눈 위로 막 얼어붙기 시작한 작디작은 수레바퀴 자국을 뒤에 남기며
마음의 고향2 ㅡ언덕
ㅡ이시영
왜 그곳이 자꾸 안 잊히는지 몰라 가름젱이 사래 긴 우리 밭 그 건너의 논실 이센 밭 가장자리에 키 작은 탱자 울타리가 쳐진. 훗날 나 중학생이 되어 아침마다 콩밭 이슬을 무릎으로 적시며 그곳을 지나다녔지 수수알이 꽝꽝 여무는 가을이었을까 깨꽃이 하얗게 부서지는 햇빛 밝은 여름날이었을까 아랫냇가 굽이치던 물길이 옆구리를 들이받아 벌건 황토가 드러난 그곳 허리 굵은 논실댁과 그의 딸 영자 영숙이 순임이가 밭 사이로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커다란 웃음들을 웃고 나 그 아래 냇가에 소고삐를 풀어놓고 어항을 놓고 있었던가 가재를 쫓고 있었던가 나를 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솨르르 솨르르 무엇이 물살을 헤짓는 소리 같기도 하여 고개를 들면 아, 청청히 푸르던 하늘 갑자기 무섬증이 들어 언덕 위로 달려 오르면 들꽃 싸아한 향기 속에 두런두런 논실댁의 목소리와 까르르 까르르 밭 가장자리로 울려 퍼지던 영자 영숙이 순임이의 청랑한 웃음소리 나 그곳에 오래 앉아 푸른 하늘 아래 가을 들이 또랑또랑 익는 냄새며 잔돌에 호미 달그락거리는 소리 들었다 왜 그곳이 자꾸 안 잊히는지 몰라 소를 몰고 돌아오다가 혹은 객지로 나가다가 들어오다가 무엇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나 오래 그곳에 서 있곤 했다
“집 앞 공터엔 다행히도 몇 그루 감나무와 대추나무 그리고 잡다한 풀숲이 있다. 깊은 밤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저 여름의 무성한 수풀을 지내온 벌레들이 다시는 울지 못할 것처럼, 마지막인 것처럼 요란스레 울어 젖히는 소리를 듣는다.
생명 가진 것들의 그 찬란한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을은 혹 종언의 계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곧 수풀은 베어지리라. 그리고 거기엔 견고한 인간의 집이 들어서리라.” ― 산문 《기쁨의 마음으로》에서
이시영 시인의 세계를 보는 눈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주는 내용의 산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집을 짓는다. 측량을 하고 경계말뚝을 박고 이윽고 나무를 베어내고 바위를 치워내고 풀을 걷어내고 터를 닦는다. 그런 과정 중에 아무도 나무의 목숨을, 바위 밑의 귀뚜라미, 지렁이 등의 곤충을, 풀숲의 여치 방아깨비를 생각하지 않는다. 신(우주)의 안목으로 본다면 그 땅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결코 소유권 등기가 되어 있는 그 인간만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자연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 부단히 세계를 감시 관리 수정하여 평화를 구축하려는 사람,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이시영 시인이었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馬山面) 사도리(沙圖里) 하사(下沙). 이시영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 그곳에는 섬진강이 있었다. 마을 앞을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발원하여 화엄사 골짜기를 지나 흘러 내려온 맑고 고운 시내를 등에 업고, 아픈 세월도 업고, 한 시절 대처로, 대처로 떠나던 우리네 누님들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시인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도처에서 강물소리 들린다. 또한 괴괴한 달밤 바람에 사운대는 갈대 소리도 들리고 한겨울 쩡쩡 얼음 갈라지는 소리도 들린다. 간간 수면을 박차고 힘차게 비상하는 물새들의 날개소리도 들린다. 삶 속에 그대로 강이 흐르는 것이다. 그 강은 하류가 아니고 상류도 아니고, 상류를 막 벗어난 중류였다.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은 사시사철 기름졌다. 여름이면 더욱 그러했다. 강에는 ‘섬뜸’이라고 불리는 삼각주가 있었는데 풀이 자라 그곳은 대초원 같았다. 소를 몰고 나온 소년들은 이곳에 소를 풀어놓고 첨벙 강물 속에 뛰어들어 미역을 감으며 은어를 잡곤 했다. 은어는 더운 강물의 중심을 피해 강가의 찬물을 찾아왔으므로 소년들의 손에 쉽게 잡히곤 했다. 해질 무렵 소년들은 그렇게 잡은 은어들을 뀀에 꿰어 마을로 돌아간다. 마을 어귀에는 주막이 있었고, 그 주막에서는 어른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으므로 으레 소년들의 은어는 이 어른들의 손에 넘어갔다. 대신 커다란 눈깔사탕이 소년들의 손에 쥐어졌다.
그 소년들 틈에 이시영 소년이 있었다. 이시영 소년은 특히 여름 논일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좋아했다. 안들, 통새미, 사구배미, 우묵쟁이 등의 이름이 붙은 마을 앞 논에 엎드려 초벌 두벌 만벌 김을 메는 어른들의 모습은 소년의 생각을 온통 초록빛으로 채색하곤 했다. 아마도 소년은 그런 모습에서 노동의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배웠을 것이다. 그때의 벌판 가득 울려 펴지던 민요, 소리 가락들을 이시영 소년은 먼 훗날에도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렇게 여름이 남자들의 계절이었다면 겨울은 여자들의 계절. 겨울밤 소년은 미영(목화) 잣는 소리에 살풋 잠을 깨곤 했다. 그리고는 아름답게 그려지는 농촌 겨울밤의 삽화를 듣게 되는 것이다. 물레 돌아가는 소리, 모여 물레를 잣고 실을 감으며 찬 겨울밤을 훈훈하게 데우는 여자들의 웃음소리, 헐벗은 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 사랑방 머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쇠죽불 가에서 참새 구워먹는 소리, 오줌통에 오줌 누는 소리, 아버지의 놋재떨이에 담뱃대 부딪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은 이시영 소년의 마음에 그대로 스며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이른바 농촌 정서의 구체적 모습을 형성해 간다. 유년의 자연 환경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지대한 것이어서 그러한 소년 이시영은 자라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아름다운 시편들로 그대로 거듭나서 춥고 시린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털옷이 되고 목도리가 된 것이다.
이시영 시인의 유년은 나름대로 풍요로웠다. 머슴을 부릴 정도의 넉넉한 집안의 내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곳엔 강(섬진강)이 있었고 산(지리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강과 산은 상처의 원인으로 시인에게 남기도 하는데 그것은 산업사회의 태동으로 붕괴되기 시작한 농촌과, 6.25가 남기고 간 후유증의 하나인, 시인의 말을 빌자면, 산사람에 관한 일련의 사건들이 될 것이다.
시인이 중학생이 되던 무렵에 농촌에서는 빈농 계층에서부터 부분 이농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무렵 시인이 겪은 다음과 같은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명수라는 학생이 어느 날 시인의 집 깔머슴(꼴머슴)으로 들어온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20명중에 중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고작 7~8명이었으니 당시의 농촌은 그야말로 빈곤했던 것이다.) 그날 아침 시인은 장독대 뒤에 숨었다. (그때 이미 시인에게는 민중에 대한 연민의 무늬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로 나설라치면 벌써 일어나 한 짐 꼴을 베어 지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명수, 명수는 어느 날 마당에 대추나무 한 그루를 정성껏 심어두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명수와 같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정님이, 두례 누나의 사연은 몰락해 죽어가던 농촌 사회의 단면과 6.25가 남기고 간 상처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님이, 두례는 자매로서 불타 사라진 지리산의 한 마을에서 내려와 시인의 집 부엌살이를 했던 처녀들이었다. 시인은 이들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대로 아름다운 시편으로 옮겨 놓았다.
“용산 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이마의 흉터를 가린 긴 머리, 날랜 발
학교도 못 다녔으면서
운동회 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라 좋아라
머슴 만득이 지게에서 점심을 빼앗아 이고 달려오던 누나
수수밭을 매다가도 새를 보다가도 나만 보면
흙 묻은 손으로 달려와 청색 책보를
단단히 동여매주던 소녀
콩깍지를 털어주며 맛있니 맛있니
하늘보고 웃던 하이얀 목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지만
슬프지 않다고 잡았던 메뚜기를 날리며 말했다
어느 해 봄엔 높은 산으로 나물 캐러 갔다가
산뱀에 허벅지를 물려 이웃 처녀들에게 업혀와서도
머리맡으로 내 손을 찾아 산다래를 쥐어주더니
왜 가버렸는지 몰라
목화를 따고 물레를 잣고
여름밤이 오면 하얀 무릎 위에
정성껏 삼을 삼더니
동지섣달 긴긴밤 베틀에 고개 숙여
달그랑잘그랑 무명을 잘도 짜더니
왜 바람처럼 가버렸는지 몰라
빈 정지 문 열면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이내 달려나올 것만 같더니
한번 가 왜 다시 오지 않았는지 몰라
식모 산다는 소문도 들렸고
방직공장에 취직했다는 말도 들렸고
영등포 색싯집에서 누나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
어머니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용산역전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던 내 팔 붙잡다
날랜 발, 밤거리로 사라진 여인“
― <정님이> 전문
시인의 고등학교 시절은 주로 농촌의 붕괴로 야기된 여러 내용들로 얼룩져 있다. 그것은 시인이 다녔던 고등학교가 있는 전주에 이르는 철길을 따라 점점이 나타나다가 기차역에서 하나의 집약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전라선을 오르내리며 분해 되어져 가는 농촌의 여러 단면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특히 구례구역에서 대처로 어린 딸을 보내는 한 어머니의 애절한 모습은 시인의 가슴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디 구례구역 뿐이었겠는가. 그 시절에는 어느 역에서건 어린 자식을 서울로 보내며 눈물 흘리는 어머니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의 전송을 받는 것은 행복한 축이었다. 부모 형제 몰래 가출을 하는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이 퍽 많았던 것이다. 그런 형태는 나중에는 지방 소도시로 이어져서 작은 도시의 빈민층에서도 무작정 상경이 무슨 유행처럼 번지곤 했었다. 어쨌건 그러한 상황 속에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의 시인에게는 남달리 마음에 각인 된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경우의 하나로 작은집의 형자 누나가 있다. 처음엔 아는 집의 식모로, 다음엔 영등포의 어느 공장으로, 다음엔 술집으로, 이렇게 당시의 처녀들의 일부가 서울 생활을 했듯이 형자 누나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러다 결국 서울의 한 유곽에 목을 매고 말았다.
“부엌살이 형자 누나는 서울로 간 뒤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가벼운 혼백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마당엔 관솔불이 일렁이고 어른들의 목소리가 두세두세 깊었습니다
그러나 하룻밤도 다 들지 못한 채 누나의 혼백은 흰 광목에 싸여 강으로 갔습니다
새벽 강이 시린 등을 내밀어 이 세상 혼자뿐인 누나의 슬픈 영혼을 실어 갔습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이듬해 가을
우리집 정지 뒤란엔 키 작은 코스모스가 가득 피었습니다“
― <형자 누나> 전문
다들 서울행 열차를 탔다. 마을의 동급생들 중에 서울행 열차를 타지 않은 사람은 단 셋 뿐이었다. 모두들 서울로 몰렸다. 콩나물 공장엘 다니고 자장면 배달을 하고 조리사의 시다, 상점의 점원, 막 노동꾼, 시장 행상… 그렇게, 오토바이 배달꾼 용준이는 차에 치여 죽었다. 썰물처럼 모두들 서울로 떠나고 마을은 점점 활기를 잃고 빛을 잃어갔다. 시인의 집도 어려워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농촌 사정은 남의 손을 빌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태로 인력이 귀했다. 손수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이미 시인의 집 노동력은 노쇠한 상태였다. 자가 노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시인의 집은 한 해 두 해 급속도로 쇠퇴해 갔다.
시인은 생생하게 목격했던 것이다. 우리의 농촌이 와해 분해 되어지는 과정을, 자본주의의 산업구조 아래 논밭을 일구어야 할 손들이 하나 둘 도시로 빠져나가 묵힌 논밭이 늘어나고 수로가 막히고 빈집이 늘어나 을씨년스러워지는 마을, 예전의 그 생기 넘치고 활기차던 마을 모습을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서울행>
(1967년 겨울)
“여수발 서울행 밤 열한시 반 비둘기호
말이 좋아 비둘기호 삼등열차
아수라장 같은 통로 바닥에서 고개를 들며
젊은 여인이 내게 물었다
명일동이 워디다요?
등에는 갓난아기 잠들어 있고
바닥에 깐 담요엔
예닐곱 살짜리 사내아이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야들 아부지 찾아가는 길이어요
일년 전 실농하고 집을 나갔는디
명일동 워디서 보았다는 사람이 있어.
나는 안다 명일동
대낮에도 광산촌같이 컴컴하던 동네
스피커가 칵칵 악을 쓰고
술 취한 사내들이 큰댓자로 눕고
저녁이 오면 낮은 처마마다
젊은 아낙들의 짧은 비명이 새어나오는 곳
햇볕에 검게 탄, 향기로운 밭이슬이 흐르는
저 여인의 목에도 곧 핏발이 서리라
집 앞 똘물에 빨아 신긴
아이의 새하얀 고무신에도
곧 검은 석탄가루가 묻으리라
그러나 나는 또 안다
그녀가 모든 희망을 걸고 찾아가는 명일동은
이제 서울에 없다는 것을.
엿장수 고물장수 막일꾼들의 거리는 치워지고
바라크 대신 들어선 크린맨션 단지에선
깨끗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푸른 잔디 위를 질주하고 있음을.
여수발 서울행 밤 열한시 반 비둘기호
보따리를 풀어 삶은 계란을 내게 권하며
젊은 여인이 불안스레 거듭 물었다
명일동이 워디다요?“
― <서울행> 전문
1967년 겨울 시인은 그 한 많은 전라선을 타고 정훈희의 <안개>가 울려 퍼지는 서울역 광장에 이불보따리를 메고 내렸다. 모두가 그랬듯이 시인도 서울행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에 서라벌 예술대학에 입학을 하게 된다. 당시의 서라벌예대는 서정주 김동리 시대의 문단 축소판 같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시인은 모더니즘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이 죄 많고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표현할까에 주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인에게 있어서 모순의 연속이었다. 시인에게는 이 세상이 너무도 낯익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시인은 훌쩍 전라선에 올랐다. 서울발 여수행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것이다. 당시 완행열차로는 11시간, 급행열차로는 7시간 반정도 가면 구례구역에 닿았다. 시인은 주로 밤 열한시 반에 서울역을 출발하는 진주행 순환열차를 탔는데, 이 열차를 타면 새벽 어스름에 도착할 수 있어서 강이 뒤척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디서 닭 우는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들 가운데에 서 있는 고향 마을의 둥구나무가 보이면 마음이 안온했다. 나는 그 들길을 개구리 잠깨는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아니 개구리들도 내 발자국소리를 알아주는 것만 같았다. 왕시리봉의 높은 이마가 발그레하게 빛날 무렵 대숲의 왁자한 참새들을 젖히고 마당에 들어선다. 늙으신 어머니가 반색을 하며 달려나온다. 그러나 집안 꼴은 말이 아니다. 여기 저기 쇠락의 기운이 창연하다. 머슴들도 없고 이제는 자신이 손수 쇠죽가마 앞에 앉은 늙으신 아버지에게 가 절을 한다. 아버지는 예전처럼 말이 없으시지만 속으로는 지나가 버린 당신의 세월을, 아니 다시 올 수 없는 당신의 세상을 우시고 있는 걸 나는 안다.
떠나올 때 늙으신 어머니가 하얀 머리를 날리며 동구 앞까지 따라 나오신다. 방아다리를 지나 아랫냇가로 내려서서 내 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어머니는 오래 거기 서 계실 것이다. 다시 전라선 기차를 탄다. 나는 열차 난간을 붙들고 서서 다짐을 해본다. 고향을 그려보자. 내 숨결로 나의 고향을 재현해 보자. ― 산문, <문학적 자전> 중에서 -
이시영 시인은 이렇듯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고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인에게는 어머니가 두 분이셨다. 생모이신 작은어머니와 길러주신 큰어머니 이렇게 두 분이셨다.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아버지께서 후처를 보신 것이다. 시인은 시인의 아버지께서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 낳은 외아들이다. 독자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시인의 큰어머니에게서 아들 둘 딸 하나를 그리고 작은어머니에게서 아들 넷 딸 셋을 낳았으나 모두 잃고 시인의 위로 누님 한 분과 아래로 두 여동생만 남았다. 흔히 있을 법한 두 어머니 사이의 문제로 인한 갈등은 시인의 삶 어디에서도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시인이 스스로에게 다짐한 그 고향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학창시절이 다 끝나갈 무렵인 1971년경부터였다. 사실 시인의 작품들 중에는 고향을 사실적으로 옮겨놓은 작품들이 많다. 시만 봐도 시인의 고향과 시인의 유년의 모습들과, 한 시대의 시대적 진실들이 잘 그려진 수채화처럼 선명하게 와 닿는다.
서라벌예술대학 생활을 시작으로 시인의 서울 생활은 막을 올린다. 이곳에서 시인은 서정주 선생을 만난다. 당시 서라벌예술대학에는 자칭 악동 중에서도 상악동들이라고 자부하는 패거리들이 있었는데 그 패거리들 중의 한 사람이 이시영 시인이었다. 이 악동들은 서정주 선생을 모시고 이른바 ‘색싯집’ 이라는 곳에서 야외수업(?)을 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진한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사이사이에 끼어 앉으면 강의가 시작되는, 문창과보다 한 단계 위인 주창과가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선생님 우선 목을 축이셔야지요” “아하! 그럼 시작해 볼까”로 시작되는 서정주 선생의 이런 강의에는 결코 결강이 없었을 것이다. 향학열이 대단했을 것이다. 물론 학점은 모두 올 에이. 이런 강의는 주로 금요일에 열렸다. 강의실은 북청집. 그렇게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을 나오면 모두들 까닭도 없이 외로워져서 문득 휘파람을 불어대는 것이다. 서정주 선생께서는 악동들이 외롭다는 것을 알아채시고, 시장 통에서 중국반점으로, 중국반점에서 공덕동 선생 댁으로, 그곳에서 다시 중국반점으로 악동들을 끌고 다니셨다 한다. 순진함과 순수함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그런 강의이며 수강이었다.
1968년 늦은 가을 시인은 한 친구와 함께 도봉산 자락의 한 하숙집에 칩거한다. 한 2개월 남짓 신춘문예 준비를 위한 것이었다. 12월 24일 오후 시인은 우체부에게서 한 통의 전보를 받는다.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繡(수)>가 당선된 것이다.
서라벌예대에서 시인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송기원 박종철 감태준 신현정 오정희 이동하 김형영… 등등. 그리고 연인이었던 H가 있다. H는 전라도 출신으로 시인보다 한 살이 많았고 1년 선배였으며 친구의 친구 누나였다. 같은 학과에 다녔으며 역시 똑같이 학보사의 기자였었다. 처음엔 좋은 선후배 사이였으나 이들의 사이는 어느덧 연인의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미완으로 끝나고 만다. 물론 슬픔과 아쉬움을 남긴 채… 졸업을 하고 교사가 되어 바다가 있는 고장의 한 학교로 가 있는 H를 시인이 신열(身熱)로 찾아간 것이 이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서라벌예대를 졸업하고 시인은 서라벌고등학교에서 2년여 동안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1998년 제8회 정지용 문학상 발표지면이었던 《시와시학》에 나와 있는 시인의 연보에는 군데군데 연행, 조사 받음, 구속 등의 단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시인은 일찍이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개헌청원지지문인 61인 선언’에 서명하여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으며 송기원과 70년대가 끝날 무렵까지 ‘자유실천문인 협의회’의 가방총무(가방 안에 일체의 살림살이가 들어 있었음)를 역임했고, 염무웅 선생의 권유로 1980년 2월 창작과비평사에 입사한 이래,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의 간행으로 안기부에 연행되어 조사 받은 일, 그 일로 국세청으로부터 추징금 일천만원을 부과 받은 일, 역시 김지하의 《大說 南》 1권의 판금, 황석영의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의 게재로 인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된 일, 《창작과비평》의 폐간 복간, 등등 오늘날까지 근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겪어 왔다.
<시 평>
이시영이 조선미의 본질인 침묵의 미학, 여백의 미학,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획득하려는 어떤 분명한 각성을 가졌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갖는 의미는 두 가지일 것이다. 언어로 환치될 수 없는 것, 표현해서는 안 될 것들을 표현해버림으로써 실체가 훼손되어왔던 무엇을 복원하려는 어떤 것, 이것이 바로 《사이》와 《무늬》의 정신이다. 또 하나는 이 시대에 온통 발기된 (개발과 과학에 대한 절대적 신봉이 빚어낸) 예술형식에 대한 저항형식이요 비판 형식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내용과 형식에서 ‘동양적 회기’를 갈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이영진 《창작과비평》 98년 겨울호 -
이시영의 시는 대개의 경우 객관적인 사건, 사실일 때나 이야기(설화)를 담고 있을 때는 길어지는 반면, 시인 자신의 주관을 토로하거나 자기반성적일 때는 짧아지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서사적인 것과 서정적인 것이 길이에 따라 구별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이 서정 양식의 본령에 일층 다가갈 때 그의 시가 압축된 단형으로 씌어짐을 알 수 있다.
― 김윤택 《한길문학》 91년 가을호 -
이시영은 단순한 자연 예찬론자가 아니다. 그가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시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 시인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 속에 매우 흥미로운 한 가지 사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자연은 어떤 형식으로든 거의 ‘반드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이시영이 자연이 인간과 관계를 맞고 있기 때문에만 자연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인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시인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찬탄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인간 쪽으로 끌어들인다.
― 김정란 《창작과비평》 94년 가을호 -
좋은 시는 그 자체가 생명과 같아서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며 빛을 뿜고 수런대고 교감하고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존재하는 시, 시인의 별다른 의미부여 없이도 거기 그대로 그냥 피어 찬연히 자기활동을 전개하는 시, … 온갖 의미를 이루려는 충동 혹은 욕망을 탈각한 채 참된 무의미의 경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의 소용돌이가 피워낸 한 송이 꽃, 혹은 그런 세계.
― 염무웅 《시와시학》 96년 봄호 -
이시영의 시는 선시(禪詩)가 아니다. 이 시는 한편으로 이시영의 시가 선시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시영의 시는 선시같이 짤막하고 간단한 구조로 짜여져 있다. 그러나 선시는 아니다. 선시는 대체로 오래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될 애매모호한 화두를 던진다. 그러나 이시영의 시는 애매모호한 화두를 던지지도 않으며 보통 사람이 이해 못할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드물게 화두를 던지더라도 그것은 시인이 던진다기보다는 읽는 사람이 그 시를 통해 느끼게 되는 의문점일 뿐이다.
― 차창룡 《현대시》 96년 11월호 -
이시영의 시는 어떤 계시의 순간에 열리는 마음의 풍경을 담아낸다. 그것은 마음에 묻어있는 흔적과 무늬를 한순간 포착하여 화폭에 옮겨놓는 방식이다. 그의 시는 의미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삶과 자연과 하늘이 그의 마음에 남기고 간 무늬를 하나의 장면으로 그려놓는다. 따라서 이시영 시의 주체는 시인 자신이 아니라 삶과 자연과 하늘이다.
― 오형엽 《현대시학》 96년 7월호 -
<연 보>
1949년 음력 8월 6일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하사에서 출생. 1962년 구례중학교 입학. 1965년 전주 영생고등학교 입학. 시를 쓰기 시작한 때는 고등학생 시절이며 1968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 서정주, 김동리 박목월 선생에게서 수학했으며, 송기원, 김종철, 감태준, 김민숙, 이병희, 신현정, 박양호, 윤정모, 오정희, 김형영, 이동하 등을 만남. 이듬해 1969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수<繡>가 당선, 월간문예 제3회 신인 작품 모집에 ‘채탄’외 1편이 당선됨.
1970년 임보 김춘석, 이건청, 오세영, 조정권, 신대철 등과 《六時》 동인 결성. (《六時》는 2집까지 나오다가 이건청 오세영이 《現代詩》로 옮겨감으로써 해체됨) 1971년 염무웅 선생을 알게됨. 1971년 1월 부친 별세, 서라벌예대 졸업. 1974년 1월 “개헌청원지지문인 61인 선언”에 서명하여 중앙정보부에 연행, 3월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입학, 11월 18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01인 선언” 발표에 참여 연행되어 조사 받음. 1975년 1~2월 “문인. 자유수호격려광고” 운동에 참여, 3월 서라벌고등학교 국어교사 취직.
1976년 12월 첫 시집 《滿月》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 1978년 6월 서라벌고등학교 사직, 10월 고은 선생의 주례로 이경희(李景喜)씨와 결혼. 1979년 7월 3일 워커힐의 제4차 세계시인대회장에서 <세계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 시위하다 14일간 구금유치를 받음. 1980년 2월 《창작과비평》 편집장으로 입사, 1982년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의 간행으로 안기부에 연행, 국세청으로부터 추징금 일천만원을 부과 받음, 신동엽 유족과 함께 ‘신동엽 창작 기금’을 제정.
1984년 2월 《창작과비평》 주간으로 승진. 1986년 8월 두 번째 시집 《바람 속으로》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 1988년 3월 세 번째 시집 《길은 멀다 친구여》 실천문학사에서 간행, 가을 학기부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강사로 출강. 1989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황석영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게재, 이 일로 11월 23일 안기부로 연행 집은 압수 수색 당함. 11월 2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 발부, 12월 9일 서울구치소에 수감 때까지 안기부 지하실에서 수사관들과 함께 먹고 자며 집중조사를 받음. 1990년 2월 3일 보석으로 출감. (이 사건은 공민권의 제한을 심하게 받았으며 1심(92년) 2심(93년) 3심(95년)에서 징역8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형 확정 됨. 95년 8월 15일 대통령에 의하여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됨.)
1991년 5월 네 번째 시집 《이슬 맺힌 노래》 들꽃세상에서 간행. 1993년 8월 중국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초청으로 <중국조선족 문학예술 국제학술연구회> 참석. 1994년 1월 《창작과비평사》 상무이사 겸 주간이 됨, 5월 다섯 번째 시집 《무늬》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 제4회 서라벌문학상(시부문) 수상. 1995년 2월 (주)창작과비평사 대표이사 부사장에 취임, 5월 첫 산문집 《곧 수풀은 베어지리라》 한양출판에서 간행, 추계예술학교 문예창작과 한 학기 출강. 1996년 3월 여섯 번째 시집 《사이》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 7년간 시간강사로 나가던 중앙대 문예창작과 강의를 그만두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객원 교수로 출강, 제8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1997년 10월 일곱 번째 시집 《조용한 푸른 하늘》솔 출판사 간행. 동서문학상 수상.
너의 자유로운 혼이 가고 싶은 대로 너의 자유로운 길을 가라. 너의 소중한 생각의 열매들을 실현하라. 그리고 너의 고귀한 행동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말아라. 보상은 바로 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네 자신이 너의 최고 심판관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너는 제 자신의 작품을 심판할 수 있다. 너는 네 작품에 만족하는가? 의욕 많은 예술가여! 네가 황제다. 고독하게 살아라
시인에게
ㅡ 푸쉬킨-
시인이여! 사람들의 사랑에 연연해하지 말라 열광의 칭찬은 잠시 지나가는 소음일 뿐 어리석은 비평과 냉담한 비웃음을 들어도 그대는 강하고 평정하고 진지하게 남으라
그대는 황제, 홀로 살으라. 자유의 길을 가라, 자유로운 지혜가 그대를 이끄는 곳으로 사랑스런 사색의 열매들을 완성시켜 가면서 고귀한 그대 행위의 보상을 요구하지 마라
보상은 그대 속에, 그대는 자신의 가장 높은 판관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그대 노고를 평가할 수 있는. 그대는 자신의 작업에 만족했느냐, 준엄한 예술가여? 만족했다고? 그러면 대중이 그것을 힐난하며 그대의 불꽃이 타오르는 제단에 침 뱉고 어린애처럼 소란하게 그대의 제단을 흔들지라도 그냥 그렇게 두라.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 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 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强者)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 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도 한 번도 장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寅煥)네 처갓집[1]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커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시키지 않은 일이 서둘러 하고 싶기에 난로에 싱싱한 물푸레 같어 지피고 燈皮등피 호 호 닦어 끼우어 심지 튀기니 불꽃이 새록 돋다 미리 떼고 걸고 보니 칼렌다 이튿날 날짜가 미리 붉다 이제 차츰 밟고 넘을 다람쥐 등솔기같이 구부레 벋어나갈 連峯연봉 산맥길 위에 아슬한 가을 하늘이여 초침 소리 유달리 뚝닥거리는 낙엽 벗은 산장 밤 창유리까지에 구름이 드뉘니 후 두 두 두 낙수 짓는 소리 크기 손바닥만한 어인 나비가 따악 붙어 들여다 본다 가엾어라 열리지 않는 창 주먹쥐어 징징 치니 날을 氣息기식도 없이 네 벽이 도로혀 날개와 떤다 해발 오천척 우에 떠도는 한조각 비맞은 환상 호흡하노라 서툴리 붙어 있는 이 自在畵자재화 한폭은 활 활 불피여 담기여 있는 이상스런 계절이 몹시 부러웁다 날개가 찢여진 채 검은 눈을 잔나비처럼 뜨지나 않을가 무섭어라 구름이 다시 유리에 바위처럼 부서지며 별도 휩쓸려 내려가 산 아래 어늰 마을 우에 총총 하뇨 白樺백화 숲의 부옇게 어정거리는 절덩 부유스름하기 황혼 같은 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1927년>
장수산(長壽山) 1
伐木丁丁벌목정정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깊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兀然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 ─
*위와 같이 본디 行의 구분이 없는 산문시이나 의미 전달을 위하여 行을 구분해 보았다. 시인에게는 면목없는 일이지만.
이 시는 한겨울 장수산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산속 정경과 산승의 거동을 묘사하고 있다. 줄글로 이어진 행 사이사이에 뚜렷하게 구분되는 휴지부를 두어 호흡과 여운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더니”라는 첫 구절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벌목(伐木)’ 편에 등장하는 구절로 산속에서 나무를 벨 때 쩡 하며 울리는 소리를 나타낸다. 아름드리 소나무게 베어지면 골짜기가 울리며 메아리 소리가 돌아올 것 같다며 장수산의 깊이를 표현한 것이다. 『시경』에서는 나무 베는 소리가 쩡쩡 울리니 새들이 날아 자기 벗을 찾는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에 비해 이 시에서는 “다람쥐도 좇지 않고/멧새도 울지 않아/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 적막한 정경을 강조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산중에는 눈과 달이 종이보다도 흰 밤이 펼쳐진다. 흰 종이처럼 펼쳐진 산속 풍경 속에서 산중들의 고요한 움직임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환한 달빛 아래 걸음을 하여 이웃 산사를 찾은 ‘웃절 중’은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 간”다. 내기에 초연하여 모든 판을 지고도 웃으며 돌아가는 ‘웃절 중’은 “조찰히 늙은 사나히”로서 오랜 수양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처럼 장수산과 그 안의 동식물과 사람이 모두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익숙해져 있는 것에 비해 이 시의 화자는 시름이 일어 견디기 힘들어 한다.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라는 다짐은 마음속 번뇌를 다스려 장수산의 정경처럼 고요와 평정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일제 말기에 쓴 이 시에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깊은 산을 찾은 시인의 번민이 깃들어 있다. 어지럽기 그지없는 현실에 비해 적막할 정도로 고요한 장수산에서 시인은 탈속과 극기의 이상향을 만난다.
絶頂절정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消耗소모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花紋화문처럼 版판박힌다. 바람이 차기도 咸鏡道함경도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八月팔월한철엔 흩어진 星辰성진처럼 爛漫난만하다. 山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3.2. 2
巖古蘭암고란, 丸藥환약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3. 3
白樺백화옆에서 백화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것이 숭없지 않다.
3.4. 4
鬼神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3.5. 5
바야흐로 海拔六千呎해발육천척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녀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여진다.
3.6.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山산길 百里백리를 돌아 西歸浦서귀포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힌 송아지는 움매 ─ 움매 ─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여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毛色모색이 다른 어미한틔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3.7. 7
風蘭풍란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濟州제주회파람새 회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굴으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때 솨 ─ 솨 ─ 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측넌출 긔여간 흰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조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3.8.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삭갓나물 대풀 石茸석용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高山植物고산식물을 색이며 醉취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여 산맥우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壯嚴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익여 붙인채로 살이 붓는다.
3.9. 9
가재도 긔지 않는 白鹿潭백록담푸른 물에 하눌이 돈다. 不具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좇겨온 실구름 一抹일말에도 白鹿潭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골에 한나잘 포긴 白鹿潭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祈禱기도조차 잊었더니라.
작별
소녀의 기도
엄숙한 시간
석상의 노래
봄을 그대에게
고독
자신이 직접 쓴 릴케의 묘비명
사랑은 어떻게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고독한 사람
고아의 노래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존재의 이유
흰장미
사랑의 노래
장미의 내부
삶의 평범한 가치
가을의 종말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가을날(Herbsttag)
순례의 서
가을
그리움이란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피에타
서시(序詩)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받는다는 것
고독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만년의 밤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부/ 3편)
과수원
두이노의 비가-제 4 비가 (1-18)
*두이노의 비가
소녀의 기도
그 언젠가 그대가 나를 보았을 때엔
나는 너무도 어렸습니다.
그래서 보리수의 옆가지처럼 그저 잠잠히
그대에게 꽃피어 들어갔지요.
너무도 어리어 나에겐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나에게 말하기까지
나는 그리움에 살았었지요.
온갖 이름을 붙이기에는 내가 너무나 큰 것이라고.
이에 나는 느낍니다.
내가 전설과 오월과 그리고 바다와 하나인 것을,
그리고 포도주 향기처럼
그대의 영혼 속에선 내가 풍성한 것을...
내가 이렇게 소리친들, 천사의 계열 중 대체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줄까?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 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나 이러한 심정으로 어두운 흐느낌의 유혹의 소리를 집어삼키는데, 아, 대체 우리는 그 누구를 필요로 하는가? 천사들도 아니고 인간들도 아니다. 영리한 짐승들은 해석된 세계2) 속에 사는 우리가 마음 편치 않음을 벌써 느끼고 있다. 우리에게 산등성이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어 날마다 볼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어제의 거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습관의 두틀린 맹종, 그것은 남아 떠나지 않았다. 오 그리고 밤, 밤, 우주로 가득 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어 들어가면, 누구에겐들 밤만이 남지 않으랴, 그토록 그리워하던 밤, 쓸쓸한 이의 가슴 앞에 힘겹게 서 있는, 약간의 환멸을 느끼는 밤. 밤은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 쉬울까? 아, 그들은 그저 몸을 합쳐 그들의 운명을 가리고 있구나. 너는 아직 그것을 모르는가? 우리가 숨쉬는 공간을 향해 한 아름 네 공허를 던져라. 그러면 새들은 더욱 당차게 날갯짓하며 넓어진 대기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봄들은 너를 필요로 할지 모르지. 많은 별들은 네가 저희들을 느끼기를 바랐다. 과거 속에서 파도 하나 일어나고, 또는 열려진 창문 옆을 지나갈 때 너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겠지. 그 모든 건 사명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완수했는가? 모든 것이 네게 애인을 점지해주는 듯한 기대감에 너는 언제나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는가? (네가 그녀를 어디에 숨겨도, 크고 낯선 생각들은 네 가슴속을 들락거리며 자주 밤마다 네게 머무르는데.) 꼭 하고 싶거든, 위대한 사랑의 여인들3)을 노래하라, 하지만 그들의 유명한 감정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리. 네가 시기할 지경인 사람들, 너는 그들이 사랑에 만족한 이들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움을 알았으리라. 결코 다함이 없는 칭송을 언제나 새로이 시작하라, 생각하라, 영웅이란 영속하는 법, 몰락까지도 그에겐 존재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그의 궁극적 탄생이었음을. 그러나 지친 자연은 사랑의 여인들을, 두 번 다시는 그 일을 할 기력이 없는 듯, 제 몸 속으로 거두어들인다. 너는 가스파라 스탐파4)를 깊이 생각해보았는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한 처녀가 사랑에 빠진 그 여인의 드높은 모범에서 자기도 그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을? 언젠가 이처럼 가장 오래된 고통들이 우리에게 열매로 맺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며 연인에게서 벗어나, 벗어남을 떨며 견딜 때가 아닌가? 발사의 순간에 온 힘을 모아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화살이 시위를 견디듯이. 머무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목소리, 목소리들, 들어라, 내 가슴아, 지난날 성자들만이 들었던 소리를, 엄청난 외침이 그들을 땅에서 들어올렸지만,5) 그들, 불가사의한 자들은 무릎 꿇은 자세 흐트리지 않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바로 그렇게 그들은 귀기울이고 있었다. 신의 목소리야 더 견디기 어려우리. 그러나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를 들어라. 정적 속에서 만들어지는 끊임없는 메시지를. 이제 그 어려서 죽은 자들이 너를 향해 소곤댄다. 네가 어디로 발을 옮기든, 로마와 나폴리의 교회에서 그들의 운명은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네지 않았던가? 아니면 얼마 전의 산타 마리아 포르모자6)의 비문처럼 비문 하나가 네게 엄숙히 그것을 명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내 그들 영혼의 순수한 움직임에 때때로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옳지 못한 감정을 조용히 버려야 하리라.
이 세상에 더 이상 살지 못함은 참으로 이상하다, 겨우 익힌 관습을 버려랴 함과, 장미와 그 밖의 무언가 하나씩 약속하는 사물들에게 인간의 미래의 의미를 선사할 수 없음과, 한없이 걱정스런 두 손 안에 들어 있는 존재가 더 이상 아닌 것, 그리고 자기 이름까지도 마치 망가진 장난감처럼 버리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서로 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이 그처럼 허공에 흩어져 날리는 것을 보는 것은 이상하다. 그리고 죽어 있다는 것은 점차 조금의 영원을 맛보기 위해 힘겹게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는 것 ㅡ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은 모두 너무나 뚜렷하게 구별하는 실수를 범한다. 천사들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를 가는지 죽은 자들 사이를 가는지 때때로 모른다(이렇게 사람들은 말한다). 영원한 흐름은 두 영역 사이로 모든 세대를 끌어가니, 두 영역 모두를 압도한다.
끝내 그들, 일찍 떠난 자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어느덧 자라나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나듯 조용히 대지의 품을 떠난다, 우리는. 그러나 그토록 큰 비밀을 필요로 하는 우리는, 슬픔에서 그토록 자주 복된 진보를 우려내는 우리는, 그들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언젠가 리노스7)를 잃은 비탄 속에서 튀어나온 첫 음악이 매마른 침묵을 꿰뚫었다는 전설은 헛된 것인가, 거의 신에 가까운 한 젊은이가 갑작스레 영원히 떠나버려 놀란 공간 속에 비로소 공허함이 우리를 매혹시키고 위로하며 돕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제2비가(悲歌)
무섭지 않은 천사는 없다. 하지만 슬프게도, 너희들, 영혼의 거의 치명적인 새들을, 알면서도, 나 노래로 찬양했다. 토비아8)의 시절은 어디로 갔는가, 찬란한 천사들 중의 하나 길을 떠나려 약간 변장하고 수수한 사립문 옆에 서 있던, 조금도 두렵지 않던 그 시절은.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그 청년의 눈에도 청년으로 보이던). 이제는 위험스런 천사, 그 대천사가 별들 뒤에 있다가 우리를 향해 한 걸음만 내디뎌도, 하늘 높이 고동치며 우리 심장의 고동은 우리를 쳐죽일 텐데.9) 너희들은 누군가?
일찍 성취된 것들, 너희들 창조의 응석꾸러기들, 모든 창조의 산맥들, 아침 노을 드리운 산마루, 꽃피는 신성(神性)의 꽃가루,10) 빛의 뼈마디, 복도들, 계단들, 왕좌들, 본질의 공간들, 환희의 방패들, 폭풍처럼 날뛰는 감정의 붐빔, 그리고 갑자기 하나씩 나타나는 거울들 : 제 몸 속에서 흘러나간 아름다움을 다시 제 얼굴에 퍼담는.
우리가 느낄 때마다 우리는 증발하는 까닭이다. 아, 우리는 숨을 내쉬면서 사라진다. 하나씩 타들어가며 우리는 갈수록 약한 냄새를 낼 뿐. 그때 누군가 말하리 : 그래, 너 내 핏줄 속으로, 이 방으로 들어오라, 봄은 너로 가득 찼으니…. 무슨 소용인가, 봄은 우리를 잡을 수 없어, 우리느 그 속, 그 언저리에서 사라진다. 아름다운 자들, 오, 그 누가 그들을 잡아둘까? 그들의 얼굴에는 끊임없이 겉모습이 씌어졌다 사라진다. 새벽 풀에 매달린 이슬처럼 우리의 겉모습도 우리에게서 뜬다. 마치 뜨거운 요리에서 열기가 떠나는 것처럼. 오 미소여, 어디로 갔는가? 오, 우러러봄이여 : 심장의 새롭고, 뜨겁고, 사라지는 물결 ㅡ : 슬프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들, 우리가 녹아들어간 우주 공간도 우리 몸의 맛이 날까? 천사들은 정말로 저희들 것만, 제 몸에서 흘러나간 것만 붙잡나, 아니면, 가끔 실수로라도 우리의 본질도 약간 거기에 묻혀 들어갈까? 우리는 그들의 표정 속으로 마치 임신한 여인들의 얼굴에 모호한 것이 떠오르듯 묻혀 들어갈까? 그들은 제 속으로의 귀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어떻게 그걸 알리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밤 공기 속에서 놀랍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에겐 모든 것이 숨겨진 듯 여겨지는 까닭이다. 보라, 나무들은 존재하고, 우리 사는 집들은 여전히 서 있다. 우리는 다만 들며 나는 바람처럼 모든 것 곁을 지나칠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되어 우리에게 침묵하는구나. 한편으로 수치스럽다고 여겨서인지,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는 희망에서 그런지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들, 너희 서로에게 만족한 자들아, 너희에게 나는 우리를 물어본다. 너희들은 서로 붙잡고 있다, 증거가 있는가? 보라, 나의 두 손은 서로를 의식하게 되었고, 또는 나의 닳고닳은 얼굴은 나의 두 손 안에서 몸을 사림을. 그것이 내게 약간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누가 감히 존재한다 할 수 있으랴? 그러나 상대방이 압도되어 이제 그만이라고 간청할 때까지 상대방의 황홀 속에서 성장하는 너희들, 포도송이의 세월처럼 손길 아래서 더욱 풍요로워지는 너희들, 상대방이 우위를 점하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가끔 쇠락하는 너희들. 너희들에게 나는 우리에 대해 묻는다. 나는 안다, 그처럼 행복하게 서로를 어루만지는 까닭은 애무하며, 너희들 사랑스런 자들이 덮는 곳이 사라지지 않고, 너희들이 거기서 순수한 영속을 느끼기 때문임을. 그리하여 너희들은 포옹으로부터 영원을 약속한다. 하지만 너희들이 첫 눈길의 놀람과 창가의 그리움을 이겨내고, 단 한 번 정원 사이로 걸었던 너희들의 함꼐한 첫 산보를 이겨낸다면, 그래도 너희들은 그대로인가? 너희들이 서로 상대방의 입에 입맞추고 음료를 불어넣으면, 오, 거기서 몸을 빼는 것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 아티카의 묘석11)위에 그려진 인간의 몸짓의 조심스러움에 너희들은 놀라지 않았는가? 사랑과 이별이, 마치 우리와는 다른 소재로 만들어진 듯, 그토록 가볍게 어깨 위에 걸쳐 있지 않았던가? 몸통 속에는 힘이 들어 있지만 그토록 누르지 않고 쉬고 있는 그 손들을 생각해보라. 스스로를 억제하는 것, 그 정도가 우리의 몫일 뿐,
이것이 우리의 것, 그렇게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 허나 신들은 그보다 세차게 우리를 압박하니, 그건 신의 몫이다.
우리도 순수하고 절제되고 좁다란 인간적인 것을, 그래 강물과 바위 사이에서 한 줄기 우리의 밭이랑을 찾을 수 있다면.12) 우리 자신의 마음은 신들을 넘어섰듯 우리까지도 넘어서기에.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그림들에서나, 아니면 더욱 위대하게 우리 마음이 억제된 신의 몸에서도 우리를 볼 수 없다.13)
제3비가(悲歌)
사랑하는 여인을 노래하는 것과, 슬프다, 저 숨겨진 죄 많은 피의 하신(河神)을 노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14) 그녀가 멀리서도 알아보는 그녀의 젊은 애인은 욕망의 신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욕망의 신은 빈번히 이 쓸쓸한 젊은이로부터 ㅡ 처녀가 젊은이를 달래기도 전에, 거의 매번 그녀가 눈앞에 없는 것처럼 ㅡ 신의 머리15)를 들어올렸다, 아, 알 수 없는 것을 뚝뚝 떨구며, 밤을 끝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가며. 오 피의 넵투누스16)이여, 오 그의 무시무시한 삼지창이여. 오 나선형 소라17)를 통해 그의 가슴에서 들려오는 어두운 바람이여! 스스로를 퍼내며 비워대는 밤의 소리에 귀기울여라. 너희 별들이여,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 애인의 용모에서 느끼는 기쁨은 너희들에게서 온 것이 아닌가? 그녀의 순수한 얼굴에 대한 그의 은밀한 통찰은 순수한 별자리에서 온 것이 아닌가?
그것은 그대도 아니었고, 오 괴롭구나, 그대의 어머니도 아니었다, 그의 눈썹을 이렇게 기다림의 아치 모양으로 구부려놓은 것은. 그대의 입 때문이 아니다, 그를 느끼는 처녀야, 그대와의 접촉 때문에 그의 입술이 이렇게 풍요로운 표현을 위해 구부러진 것은 아니다. 그대는 정말로 그대의 부드러운 접근이 그를 그렇게도 뒤흔들어놓았다고 생각하는가, 새벽 바람18)처럼 거니는 그대여? 그래 그대는 그의 가슴을 놀라게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그대 손길의 충격에 그의 가슴속에서는 꽤 오래된 공포들19)이 무너져내렸다. 그를 불러보아라…… 그대는 그를 그 어두운 교제에서 완전히 해방시킬 수는 없다. 물론 그는 도망치고 싶어하고 실제로 도망친다 ; 안심하며 그는 그대의 은밀한 가슴에 길이 들어서 뿌리를 내리고 그 자신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그 자신이 되기 시작한 적이 있는가? 어머니, 당신이 그를 작게 만들었다,20) 그를 시작시킨 것은 당신이었다. 당신에게 그는 새로웠고, 당신은 그의 새로운 눈 위로 친근한 세계를 아치처럼 드리워놓고 낯선 세계가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를 위하여 당신의 그 호리호리한 몸만으로도 밀려오는 혼란의 파도를 막아내기에 충분하던 그 시절은 어디로 갔는가? 이렇게 해서 당신은 그에게 많은 것을 숨겼다 ; 밤이 되면 미심쩍어지는방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었고, 당신 가슴의 가득 찬 은신처에서 더욱 인간적인 공간을 꺼내서 그의 밤 공간에다 섞어 넣었다. 당신은 어둠 속이 아니라, 그래 어둠 속이 아니라, 언제나 가까운 곳에있는 당신 곁에다 야간등을 놓았고, 등불은 다정하게 빛을 던졌다 .당신이 미소지으면서 설명하지 않은 바스락 소리란 없었다, 당신은 마루가 언제쯤 소리를 낼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귀를 기울였고 마음을 놓았다. 당신의 사랑스런 보살핌은 이렇게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다 ; 외투를 걸친, 키 큰 그의 운명은옷장 뒤로 걸어갔고, 그리고 그의 불안스런 미래는 금방 구겨지는 커튼의 주름에 순응했다. 그리고 이제 안심하면서 그곳에 누워 졸린 눈꺼풀 밑으로 당신의 가벼운 모습이 주는 달콤함을 녹이면서 서서히 잠들 때면, 그는 자신이 보호를 받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는 : 그 누가 그의 혈통의 홍수를 막거나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까? 아, 잠든 사람에게는 경계심이란 없었다 ; 자면서, 그러나 꿈꾸면서, 그러나 열병에 걸려서 : 그는 얼마나 빨려 들어갔던가. 새로 온 자, 부끄러워하는 자인 그는 그 얼마나 내면의 사건의 계속 뻗어가는 덩굴손에 얽혀 있었던가, 문양을 이루며, 숨막힐 듯이 성장하며, 동물처럼 치달리는 모양으로. 그는 얼마나 몰두했던가 ㅡ. 그는 사랑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것을 사랑했다, 내면의 황야를, 그의 내면에 있는 원시림을 사랑했다,21) 그곳에 그의 마음은 말없이 쓰러진 거대한 나무들 틈에 푸른 싹처럼 서 있었다.22) 사랑했다, 그는 그곳을 떠나 자기 자신의 뿌리들을 지나서 그 거대한 근원을 향해 갔다, 그곳에서 그의 작은 출생이 오래 전에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는 더욱 오래된 피를 향해, 깊은 계곡을 향해 내려갔다, 그곳엔 공포스러운 것이 아버지들을 먹어치우고 배불러 누워 있었다. 그리고 끔찍한 모든 것들이 그를 알아보고, 눈짓을 보내며, 서로 통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경악스러운 것23)이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당신은 그렇게 다정스레 미소지은 적이 없다. 그 경악스러운 것이 그에게 미소를 보내는데, 어찌 그것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당신을 사랑하기에 앞서 그는 그것을 사랑했다. 당신이 그를 가졌을 때 이미 그것은 태아를 뜨게 하는 양수 속에 녹아 있었으니까.
당신이 보다시피, 우리는 꽃처럼 단 한 해만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날 태곳적 수액이 우리의 양팔을 타고 오를 것이다. 오 소녀여, 이것이다, 우리의 내면 속의 단 하나의 존재, 미래의 존재가 아니라, 산맥의 잔해처럼 우리의 가슴 깊은 밑바닥에서 쉬고 있는 아버지들을 사랑하는 것. 지난날의 어머니들의 메마른 강바닥을 사랑하는 것. 구름이라도 끼거나, 아니면 숙명의 구름 낀 또는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소리 없는 모든 자연 풍경을 사랑하는 것이다 : 이것이, 소녀여, 그대에 앞서 왔다. 그리고 그대, 그대 자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의 애인 속의 선사시대를 마구 휘저어놓았다. 오랫동안 죽어 있던 존재들24)로부터 어떤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는가. 어떤 여인들이 그곳에서 그대를 미워했는가. 젊은이의 핏줄 속에서 그대는 어둠 속에 묻힌 어떤 남자들을 깨워놓았는가? 죽은 아이들은 그대를 만지려고 했다…… 오 부드럽게, 부드럽게 그를 위해 사랑의 하루를 시작해라, 믿을 만한 하루를, ㅡ 그를 정원으로 인도하여 그에게 넘치는 밤들을 베풀어라…… 그를 자제시켜라…
제4비가(悲歌)
오 생명의 나무들이여, 너희들의 겨울은 언제인가? 우리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철새떼처럼 서로 통하지 못한다. 너무 앞서거나, 뒤처져 가다가 우리는 갑자기 바람 속으로 밀치고 들어가 느닷없이 무심한 연못으로 곤두박질친다. 피어남과 시듦을 우리는 한꺼번에 알고 있다. 그리고 어딘가 사자들이 어슬렁거리며 가리라, 그들의 위엄이 살아 있는 한, 노쇠 따위는 모르는 채.
그러나 우리가 전적으로 한 가지를 말하는 순간, 우리는 벌써 다른 것의 당김을 느낄 수 있다. 적대감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 안에서 절벽 쪽으로 다가가고 있지 않은가, 널찍한 공간과 사냥과 고향25)을 서로 약속한 그들이? 한순간에 그리는 스케치에도 공들여 반대 바탕26)이 마련될 때, 우리는 그 그림을 볼 수 있다 ; 인간들은 분명함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의 윤곽을 알지 못한다 : 다만 바깥에서 그 윤곽을 만드는 그 무엇을 알 뿐이다. 자신의 마음의 장막 앞에 불안감 없이 앉아본 자 누구인가? 장막이 올라갔다 : 그곳엔 이별27)의 장면이 있었다. 금방 알 수 있었다. 눈에 익은 정원이었다,28) 정원이 조금 흔들렸다29) : 이어서 먼저 남자 무용수가 등장했다. 그 남자는 아니다. 됐다! 그의 몸짓이 아무리 날렵해도, 그는 변장한 것일 뿐, 앞으로 한 사람의 시민이 되어 부엌을 지나 거실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반쯤 채워진 이 가면들을 원치 않는다, 차라리 인형이 좋다. 인형은 가득 차 있다. 나는 속을 채운 몸통과 철사줄 그리고 외관뿐인 그 얼굴30)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여기. 나는 기다리고 있다. 조명이 나간다 해도, 누가 내게 '이젠 끝났어요'라고 말한다 해도, 휘익 불어오는 잿빛 바람에 실려 무대로부터 공허함이 내게 밀려온다 해도, 말없는 나의 선조들 중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내 옆에 앉아 있지 않다 해도, 어떤 여자도, 심지어 갈색의 사팔뜨기 눈을 한 소년31)마저 없어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리라. 구경거리는 아직도 있다.
제가 옳지 않나요?32) 당신, 내 인생을 맛본 뒤로 나 때문에 인생이 온통 쓴맛이 되어버린 아버지, 내가 자라나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만들어낸 텁텁한 첫 국물 맛을 계속해서 맛보면서, 알 수 없는 장래의 뒷맛 생각에 골치를 썩히면서 당신은 나의 흐릿한 눈빛33)을 살펴보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당신은 돌아가신 뒤로도 내 마음속에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늘 걱정하셨고, 사자(死者)들이 누리는 평온함을, 평온함의 왕국을 보잘것없는 저의 운명을 위해 포기하셨습니다, 제가 옳지 않나요? 그리고 당신들, 내가 옳지 않은가, 당신들에 대한 나의 사랑의 조그만 시작의 대가로 나를 사랑했던 당신들, 나는 그것을 자꾸만 잊었다, 내가 비록 사랑하기는 했지만 당신들 얼굴에 어린 공간이 내게 우주 공간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 인형극 무대 앞에서 연극을 기다리고 싶은 생각이 들면, 아니, 차라리 무대를 뚫어지라고 응시하여 결국엔 내 응시에 보상을 해주기 위해 그곳에 천사 하나가 배우로 등장하여 인형들의 몸통을 위로 치켜들 때면. 천사와 인형34) : 그러면 마침내 연극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우리가 언제나 둘로 나누었던 것이 합쳐진다. 그러면 비로소 변화의 전체 원이 우리 인생의 계절들 속에서 그 첫 기원을 찾게 되리라. 이윽고 우리 머리 바로 위에서는 천사가 연기를 한다. 보라, 죽어가는 자들, 그들은 분명히 짐작하리라, 우리가 이곳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구실로 가득 차 있는지를. 이 세상 어느 것도 그 자체인 것은 없다. 오 어린 시절의 시간들이여, 그땐 형상들 뒤편에는 과거 이상의 것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땐 우리들 앞에 놓인 것이 미래가 아니었던 그 시절이여. 우리는 물론 자라났고, 그리고 우리는 더 빨리 자라나려고 가끔 서두르기도 했다, 그 이유의 반쯤은, 다 컸다는 것밖에 내세울 것이 없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독한 연극에서 영원한 것에 만족하며, 세계와 장난감 사이의 틈새에 서 있었다, 처음부터 순수한 사건을 위해 마련되어 있던 어느 한 자리에.
누가 어린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가? 누가 그를 별들 사이에 두고 거리를 재는 자35)를 손에 들려주는가? 누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잿빛 빵으로36) 어린아이의 죽음을 만드는가, 아니면 누가 그 죽음을 그의 둥근 입 속에 버려두는가, 예쁜 사과의 속처럼? 살인자들은 식별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것 : 죽음을, 완전한 죽음을, 삶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그렇게 부드럽게 품고서 화를 내지 않는 것, 이것은 형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말해다오, 이들이 누구인지, 우리들보다 조금 더 덧없는 존재들,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어떤 의지가 누군가, 누군가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꽉꽉 쥐어짜고 있는 이들은? 만족은 커녕 이 의지는 이들을 쥐어짜고 구부리고 휘감고 흔들어대고 던져 올리고 다시 받는다 ; 그들은 기름칠을 해 반질반질한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 그들의 끊임없는 도약과 착지로 닳고닳아 더욱 얇아진 양탄자 위로, 우주 속에서 길을 잃은 양탄자 위로. 교외의 하늘이 그곳의 땅에 상처를 입힌 듯, 반창고처럼 그곳에 붙어 있는.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간신히, 똑바로 서서, 현존재의 첫 글자 모양38)을 보여주는가 했더니, 어느새 손길이 자꾸 다가와,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이, 그들 가장 탄탄한 남자들을 계속해서 굴려댄다, 강력한 아우구스트 대왕39)이 식탁에 앉아 주석 접시를 던져올려 돌렸듯이.
아, 그리고 이 가운데를 둘러싼 구경의 장미꽃 : 활짝 피었다가 와르르 진다. 이 절굿공이40) 주위로, 이 암술 주위로, 제 꽃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이 암술 주위로, 내키지 않음의 가짜 열매를 또다시 맺게 하는 이 암술 주위로,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이 암술 주위로ㅡ가장 얇은 표면으로 내키지 않음의 가벼운 거짓 미소를 반짝이는.
저기 서 있는 시들어 주름진 장사(壯士), 이제 늙어 겨우 북이나 두드릴 뿐이니 자신의 힘찬 살갗 속으로 오그라든 모습, 마치 그 살갗 속에 예전에는 두 사내가 들어 있다가, 한 명은 죽어 이미 무덤 속에 누워 있고, 다른 한 명만 살아남은 듯하다, 이제 귀도 먹고 때때로 조금은 먹먹하다, 짝 잃은 살갗 속에서.
그러나 그 젊은이, 그 사나이는 마치 한 목덜미와 수녀의 아들이기라도 한 듯, 온몸이 팽팽하고 옹골차게 근육과 순박함으로 가득 차 있다.
오 그대들, 그대들은 아직 어리던 어떤 고통을 위해 그 언젠가 장난감으로 주어졌다, 그 고통의 오랜 회복기 중간에……
그대여, 그대는 날마다 수백 번씩, 설익은 채로, 여럿이 함께 쌓아올린 동작의 나무에서 열매들만이 알 수 있는 부딪침과 함께 떨어진다(물보다도 더 빠르게 몇 분 동안에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겪어내는 나무에서), 떨어지며 무덤에 부딪쳐 쿵 소리를 낸다 : 가끔, 잠깐 쉬는 동안에, 다정한 적이 거의 없는 그대의 어머니를 향해 사랑스런 표정이 그대의 얼굴에 떠오르기도 한다 ; 하지만 수줍어하며 어렵사리 지어본 그 표정은 그대의 몸뚱어리에 이르러 사라지고 만다, 그대 몸의 표면이 그것을 몽땅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다시 그 남자41)는 그대에게 어서 뛰어오르라고 박수를 친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동치는 그대 심장의 언저리에서 고통이 언젠가 더욱 뚜렷해지기 전에, 그대 발바닥에 화끈거림이 찾아온다, 그 원인을 앞지르면서, 몸에서 나온 몇 방울의 눈물을 재빨리 눈 속으로 감추면서. 그렇지만 맹목적으로, 짓고 있는 저 미소……
천사여! 오 잡아라, 어서 꺾어라, 작은 꽃이 핀 그 약초를. 꽃병을 구해서 꽂아두어라! 그것을 우리에게 아직 열리지 않은 기쁨들 사이에 놓아라 ; 아담한 단지에다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글씨를 새겨 찬미하라 : “곡예사의 미소”라고. 그리고 너 사랑스런 소녀여, 너, 더없이 달콤한 기쁨들이 머리 위로 말없이 뛰어넘은 소녀여. 너의 술 장식들은 너 때문에 행복한지도 모른다 ㅡ, 또는 너의 젊고 탄력 있는 젖가슴 위에서 금속성의 초록빛 비단은 한없이 호강을 하며 부족함을 모른다. 너, 그때마다 항상 다른 모습으로, 균형을 찾아 흔들리는 모든 저울들 위에 올려진 무심한 장터 과일이여, 어깨 밑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42)
어디, 오 그곳은 어디 있는가 ㅡ 그곳은 내 가슴속에 있다―, 그들이 한동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서로에게서 떨어지기만 하던 곳, 날뛰기만 하지 제대로 짝을 짓지 못하는 동물들처럼 ; ㅡ 무게가 아직도 무거운 곳 ; 그들의 서툰 작대기 놀림에 아직도 접시들이 비틀대는 곳……
그러다가 갑자기 이 힘겹고 존재하지 않는 장소 안에서, 순수한 모자람이 놀랍게 모습을 바꾸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이 갑자기 저 텅 빈 넘침을 향해 뛰어든다. 자릿수가 많은 계산이 숫자 없이 똑 떨어지는 곳.
광장들, 오 파리의 광장이여, 끝없는 구경거리를 주는 곳이여, 그곳에선 잡화상인 마담 라 모르43)가 이 세상의 쉬지 못하는 길들, 끝없는 리본들을 말기도 하고 감기도 하면서 새로운 나비매듭, 주름 장식, 꽃, 모자 장식, 모조 과일들을 고안해낸다 ㅡ, 하지만 모두가 거짓되게 물감을 들였으니, ㅡ 운명의 값싼 겨울 모자44)에나 어울리는 것들일 뿐이다. ‥‥‥‥‥‥‥‥‥‥‥‥‥‥‥‥‥‥‥‥‥
천사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광장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곳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양탄자 위에서 연인들이 이곳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심장의 약동의 대담하고 드높은 모습들을, 그들의 황홀경의 탑들을, 바닥 없는 곳에서 오래 전부터 떨면서 서로 기대어 있는 사다리들을 보여주리라, 그들은 해낼 수 있으리, 둘러선 구경꾼들, 입을 다문 무수한 망자들 앞에서 : 그러면 그들은 그들 품속에 언제나 아껴두고 숨겨두었던,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영원히 통용되는 그들의 마지막 행복의 동전을 이제는 진정된 양탄자45) 위에서 마침내 진정으로 미소짓고 있는 연인들의 발치에 던져주지 않을까?
제6비가(悲歌)
무화과나무여, 너는 벌써 오래 전부터 내게 많은 의미를 주었다, 너는 개화의 단계를 거의 완전히 건너뛰고, 내세움 없이 너의 순수한 비밀을 때맞추어 결심한 열매 안으로 밀어넣는다. 너의 굽은 나뭇가지는 분수의 수관처럼 위아래로 수액을 나른다 : 그러면 수액은 잠에서 벌떡 일어나, 거의 깨지 않은 채, 가장 달콤한 성취의 행복 속으로 뛰어든다. 보라 : 신이 백조의 몸 속으로 뛰어들었듯이.46) ……그러나 우리는 머뭇거린다, 슬 프다, 우리가 내세울 것은 우리의 꽃피어남이니, 우리는 우리의 궁 극적인 열매의 뒤늦은 핵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탄로나버린다. 몇몇 사람에게만 행동에의 충동이 강력하게 솟구치니, 이들은 벌써 그들 마음의 충만함 속에 머물면서 작렬한다, 꽃피움의 유혹이, 위안을 주는 밤공기처럼 그들의 젊은 입과 눈꺼풀을 스칠 때면 : 이들은 영웅들이거나 일찍 세상을 뜰 운명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의 혈관을 정원사 죽음의 신은 각각 다르게 비틀어 놓았다. 이들은 돌진해간다 : 자신들의 미소보다 앞서간다, 마치 카르나크47) 신전에 부드럽게 새겨진 움푹한 부조48)에서 마차를 끄는 말들이 승리에 취한 왕을 앞서가듯이.
영웅은 놀랍게도 어려서 죽은 자들과 아주 가까이 있다. 영웅은 영속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에겐 상승이 현존재이다 ;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덜어내면서 계속되는 위험의 바뀐 별자리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를 발견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해줄 말이 없는 검은 운명은 갑작스레 열광하면서 그를 향해 그의 떠들썩한 세계의 폭풍 속으로 들어가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와 같은 소리는 듣지 못한다. 느닷없이, 밀려오는 공기에 실려 어두운 그의 음성이 나를 뚫고 지나간다.
그러면, 나는 이 큰 그리움으로부터 숨고 싶구나 : 오 내가 만일, 내가 만일 소년이라면, 내가 아직 소년이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미래의 팔을 괴고 앉아 삼손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그의 어머니가 처음엔 아무것도 낳지 못하다가 나중엔 모든 걸 낳게 되었는지.49)
그는 이미 당신의 몸 속에서부터 영웅이 아니었던가, 어머니, 그의 영웅다운 선택은 이미 그곳, 당신 안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무수한 것들이 자궁 속에서 들끓으면서 그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보라 : 붙잡고 분별하고 선택하고 성취한 것은 그였다. 그리고 그는 기둥들을 부쉈다, 그것은 그가 당신 몸의 세계로부터 더욱 비좁은 세계로 갑자기 빠져나왔을 때였다, 이곳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선택하고 성취했다. 오 영웅들의 어머니들이여, 처녀들은 벌써 너희들을 향해 마음의 높은 벼랑에서 울면서 뛰어내렸다, 그들은 앞으로 태어날 아들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영웅이 사랑의 정거장을 폭풍처럼 헤치며 지나갈 때마다, 그를 위해 뛰는 모든 심장이 그를 높이 들어올리는가 했더니, 어느새 몸을 돌려, 그는 미소의 끝에 서 있었다, 다른 모습으로.
제7비가(悲歌)
더 이상 구애하지 마라,50) 저절로 터져나온 목소리여, 네 외침이 구애의 외침이 되지 않게 하라 ; 너 비록 새처럼 순수하게 외칠지 모르지만, 계절이, 상승하는 계절이 새를 들어올릴 때면, 이것은 거의 잊고 하는 일, 새 역시 한 마리 근심하는 짐승에 지나지 않으며, 맑은 행복을 향해, 친근한 하늘을 향해 계절이 던져 올리는 유일한 마음이 아님을. 새처럼 바로 그렇게 너도 구애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아직은 보이지 않는, 조용한 여자친구에게 구애를 하여, 네 목소리를 듣고서 그녀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대답이 서서히 눈을 뜨고 몸이 뜨거워지게 하고 싶은 것이다, 너의 대담한 감정에 어울리는 불타오르는 감정의 짝이 되도록.
오, 봄은 이해하리라 ㅡ, 어느 조그만 틈새 하나라도 예고의 음조를 울리지 않는 곳이 없으니. 제일 먼저, 높아져가는 고요와 말없는 순수한 긍정의 날로 둘러싸여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저 첫 작은, 묻는 듯한 피리 소리를, 그 다음엔 계단들을, 꿈속에서 본 미래의 사원을 향한 외침의 계간들을, 그 다음엔 종달새의 지저귐을, 약속된 놀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치솟는 물줄기로 잡아 올리는 분수들을 이해하리라…… 그러면 봄 앞엔 여름이 서 있으리라.
그 모든 여름 아침들뿐만 아니라, 이 아침들이 낮으로 바뀌어가며 해돋이로 빛을 뿌리는 모습뿐만 아니라, 꽃들 사이에선 점잖지만, 위쪽, 나무들 모습 사이에선 힘차고 거대한 날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펼쳐진 힘들의 경건함뿐만 아니라, 길들뿐만 아니라, 저녁 무렵의 초원뿐만 아니라, 늦은 뇌우가 지나간 뒤에 느끼는 예감뿐만 아니라, 그 밤들! 드높은, 여름날의 밤들, 그리고 별들, 대지의 별들. 오 언젠가는 죽는 것, 그들의 무한함을 아는 것, 그 모든 별들을 : 그들을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잊겠는가!
보라, 그때 나는 애인을 향해 외쳤다. 그러나 그녀만이 오는 것이 아니니라…. 무른 무덤들을 헤치고 나와 소녀들도 내 곁에 서리라…. 내 어찌 한번의 외침을 제한할 수 있겠는다, 어떻게? 땅에 묻힌 소녀들은 언제나 이 세상을 찾고 있다.51) ㅡ 너희 어린아이들아, 이곳에서 제대로 한 번 손에 잡은 것은 많은 이들에게도 소용되리라. 운명이 어린 시절의 밀도보다 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 얼마나 자주 너희들은 사랑받는 남자를 추월했던가, 무를 향한 열린 세계를 향한 그 놀라운 달리기 끝에 숨을 내쉬며, 내쉬며.
이승에 있다는 것은 멋진 일.52) 너희들은 그것을 알았다, 소녀들이여, 너희들도. 너희들은 그것을 빼앗긴 것 같다, 너희들은 도회지의 가장 비참한 골목과 곪아터진 상처 속으로, 또는 쓰레기 구덩이 속으로 빠졌다. 모두 한 시간만을 가졌으니, 아니, 온전히 한 시간도 아닌, 시간의 척도로 거의 잴 수 없는 두 순간 사이의 시간을 ㅡ, 모두 이 세상에 존재했을 때. 모두 모든 것을 가졌을 때. 현존재로 가득 찬 혈관들을.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다정한 이웃이 인정해주거나 시기하지 않는 것은 너무 쉽게 잊는다는 것. 우리는 남에게 행복을 눈에 띄게 보여주려 한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복은 우리가 그것을 마음속에서 변용시켰을 때 드러나는 법인데.
세계는, 사랑하는 이여, 우리의 마음속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인생은 변용 속에 흘러간다. 그리고 외부 세계는 점점 더 적게 사라진다.53) 한때 옹골찬 집이 서 있던 곳에 가공의 이미지가 끼여든다, 비스듬히, 상상의 세계에 완전히 예속되어, 그 모든 게 아직도 머릿속에 들어 있는 듯. 시대정신은 힘의 거대한 창고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모든 것에서 취해온 긴장된 충동처럼 형체도 없다.54) 시대정신은 사원을 더 이상 모른다. 우리는 이 같은 마음의 낭비를 은밀하게 아끼려 한다. 그렇다, 아직 하나의 사물이, 지난날 숭배하던 것, 무릎 꿇고 모시던 것이 아직 남아 있어도, 그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벌써 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것을 마음속에 다시 지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 기둥과 조각상으로 더 위대하게!
이 세상이 묵직하게 방향을 틀 때마다 폐적자들이 생기는 법, 이들은 과거의 것도 그리고 미래의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미래의 것 역시 사람들에겐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 이것은 아직은 우리가 인식하는 형상을 보존하는 것을 강화시켜주리라. 이것은 한때 사람들 속에 있었고, 운명 속에, 파괴적인 운명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름 속에 서 있었다,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것은 확정된 하늘에서 별들을 제 쪽으로 휘어놓았다. 천사여, 나는 그것을 그대에게 보여준다, 자 여기! 그대의 눈길 속에 그것이 구원을 받게 해다오, 마침내 똑바로 서도록. 기둥들, 탑문들, 스핑크스,55) 사라져가는 또는 낯선 도시 위로 우뚝 솟아 버티는 대성당의 잿빛 지주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던가? 오 천사여, 경탄하라, 바로 우리다, 우리다, 오 그대 위대한 존재여, 우리가 그 일을 해냈다고 말해다오, 나의 호흡은 그렇게 찬미하기에도 벅차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공간들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풍요로운 몫을, 이들 우리의 공간들을. (우리들의 느낌의 수천 년으로도 이들이 넘쳐나지 않았으니, 이들은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광대한 것일까.) 그러나 탑은 거대했다, 그렇지 않은가? 오 천사여, 탑은 거대했다, 그대 옆에 놓아도 거대했다. 샤르트르 성당은 거대했다, 그리고 음악은 훨씬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 우리를 넘어섰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여인도, 오, 밤의 창가에서 혼자서……
그녀도 그대의 무릎까지 다다르지 않았던가? 내가 실제 그대에게 구애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천사여, 내가 구애를 한다고 해도! 그대는 오지 않는다. 나의 부름은 언제나 사라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강렬한 흐름을 거슬러서는 그대는 올 수 없다. 나의 외침은 쭉 뻗은 팔과 같다. 그리고 무언가 잡으려고 하늘을 향해 내민 나의 빈손은 그대 앞에 공허하다. 방어하고 경고하는, 잡을 수 없는 그대, 까마득히.
생물들은 온 눈으로 열린 세계57)를 바라본다. 우리들의 눈만이 거꾸로 된 듯하며 생물들 주변에 빙 둘러 덫처럼 놓여 생물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막는다. 외부에 존재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동물의 표정에서 알 뿐이다 ; 우리는 갓난아이조차도 이미 등을 돌려놓고 사물들의 모습을 뒤로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얼굴에 그토록 깊이 새겨져 있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하게. 죽음에서 해방되어.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뿐이다 ; 자유로운 동물은 몰락을 언제나 뒤로하고 앞에는 신을 두고 있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동물은 영원히 앞으로 걷는다, 마치 샘물의 흘러가듯이. 우리는 결코 단 하루도 꽃들이 끊임없이 들어갈 수 있는 순수한 공간을 앞에 두지 못한다. 항상 세계만 있을 뿐, '아니오'가 없는 '아무 데도 아닌 곳'은 결코 없다 : 순수한 것, 돌봄을 받지 않는 것. 우리가 숨쉬고 무한히 알지만 탐내지 않는 것. 어릴 적에 때때로 골몰하는 것, 조용히 키우다가 털어버려야 하는 것. 또는 죽어서 도달할 수 있는 것. 죽음과 가까이 있으면 죽음을 보지 못하니까, 그러면 바깥을 응시하게 된다, 어쩌면 짐승의 커다란 눈길로. 시선을 가로막는 상대가 없다면, 사랑에 빠진 자들은 여기레 가까워져 놀라움을 금치 못하리라…… 마치 실수에 의한 것처럼 그들은 서로 상댜방의 뒤쪽으로 열려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지나칠 수 없으니, 그들에겐 다시 세계가 돌아온다. 언제나 피조물을 마주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거기에 비친 바깥세상의 영상만을 볼 뿐이다, 우리가 침침하게 만든 영상을. 또는 어느 짐승이, 묵묵한 짐승이 머리를 들어 태연히 우리를 꿰뚫어볼지도 모른다. 이것이 운명이다 : 마주 서 있는 것 그리고 오직 이뿐이다, 언제나 마주 서 있는 것.
만약에 다른 방향에서 우리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는 짐승이 우리와 같은 의식을 갖고 있다면, 우리를 그의 걸음걸이 속으로 잡아끌고 다닐 텐데. 하지만 그의 존재는 그에게 무한하고 이해되지 않고 그의 상태를 살핌도 없이, 순수하다, 밖을 보는 그의 눈길처럼.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보는 곳에서 그는 모든 것에서 모든 것과 자신을 보며 영원히 치유된 상태에 있다.
하지만 따뜻하고 경계심 많은 짐승의 내면에도 커다란 슬픔의 무게와 근심이 들어 있다. 자주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 그에게도 들러붙어 있가 때문이다. 바로 회상이다, 우리가 지금 잡으려 하는 것이 옛날엔 훨씬 가깝고, 진실했고, 그것과의 관계도 한없이 다정했다는 회상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거리이지만,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호흡이었다. 첫 고향 뒤로 두 번째 고향은 잡종에다 바람만 드세다. 오 작은 생물들의 행복함이여, 저희를 잉태했던 자궁 속에 언제나 머물러 있으니58) ; 오 모기의 행복이여, 안에서 아직도 뛰어노는구나, 교미를 할 때조차도 : 그들에겐 자궁이 모든 것이니까. 그런데 보라, 새의 불완전한 안전을, 새는 태어날 때부터 이 두 상태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에트루리아인59)의 영혼이라도 되는 것처럼, 뚜껑에 그 자신의 쉬는 모습을 새긴 관 속에 집어넣어진 주검에서 빠져나온. 그리고 자궁에서 태어난 것으로 날아야만 할 때 그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마치 저 자신한테 놀란 듯, 새는 번개처럼 허공을 가른다, 마치 찻잔에 쩌억 금이 가듯이. 그렇게 박쥐의 자취가 저녁의 도자기를 가르며 지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 구경꾼들, 언제 어디서나 그 모든 것을 보며 결코 그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것들로 우리는 넘쳐난다. 아무리 정리해도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그것들을 다시 정리하다가 따라서 무너진다.
누가 우리의 방향을 이렇게 돌려놓았기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언제나 떠나는 사람의 자세인가? 자기가 살던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언덕에 이르러 다시 한번 몸을 돌려 서서 서성이는 그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언제나 이별을 하는 것이다.
제9비가(悲歌)
왜, 우리 현존재의 짧은 순간을 월계수처럼 다른 모든 초록빛보다 좀더 짙은 빛깔로, 나뭇잎 가장자리마다 (바람의 미소처럼) 작은 물결들을 지니고서 보낼 수 있다면,60) 왜 아직도 인간이기를 고집하는가, 운명을 피하면서 또다시 운명을 그리워하면서?……
오, 행복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행복이란 다가오는 상실에 한 발 앞선 한시적인 누림일 뿐. 호기심 때문도 아니고, 또한 마음을 쓰기 위함 때문도 아니다, 월계수에도 그런 마음이 있다면 좋으련만….
사실은 이곳에 있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것, 사라지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나름대로 우리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더 덧없는 존재인 우리를. 모든 존재는 한 번뿐. 단 한 번뿐. 한 번뿐, 더 이상은 없다. 우리도 한 번뿐. 다시는 없다. 그러나 이 한 번 있었다는 사실, 비록 단 한 번뿐이지만 : 지상에 있었다는 사실은 취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달려들어 그것을 수행하려 하며, 그것을 우리의 두 손 안에, 넘치는 눈길 속에, 말문이 막힌 가슴속에 간직하려 한다. 그것이 되고자 한다. ㅡ 누구에게 주려고? 아니다, 그 모든 걸 영원히 간직하고만 싶다…… 아, 슬프다, 우리는 다른 관계 쪽으로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우리가 여기서 더디게 익힌 바라보기도, 여기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아무것도. 우리는 고통을 가져간다. 무엇보다 존재의 무거움을 가져간다, 사랑의 긴 경험을 가져간다, ㅡ 그래,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가져간다. 그러나 훗날, 별들 아래서, 왜 근심할까 : 이들이 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결국 방랑자 역시 산비탈에서 계곡으로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누구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 줌의 흙이 아니라, 어렵게 익힌 말, 순수한 말, 노랗고 파란 용담꽃이 아니던가. 어쩌면 우리는 말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 집, 다리, 우물, 성문, 항아리, 과일나무, 창문 그리고 잘해야 : 기둥, 탑이라고…… 그러나, 그대는 알겠는가, 이것들을
말하기 위해, 사물들 스스로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재촉하여 서로 감정을 나누는 가운데 모든 것이 황홀해지도록 한다면, 이것은 말없는 대지의 은밀한 책략이 아닌가? 문턱 : 사랑하는 두 사람에겐 무엇을 뜻할까, 오래된 그들의 문턱을 조금 더 닳게 만든다는 것은, 그들보다 앞서간 많은 사람들 뒤에 그리고 앞으로 올 많은 사람들에 앞서서…… 가볍게.
여기는 말할 수 있는 것을 위한 시간, 여기는 그것의 고향이다. 말하고 고백하라. 예전보다 더 많이 사물들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사물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져간다, 모습이 없는 행동이 그것들을 밀어내며 대체하기 때문이다. 껍데기들로 덮여 있는 행동이다, 안쪽에서 행동이 너무 커져 다른 경계를 요하게 되면 금방 깨져버리고 마는 껍데기들로. 우리의 마음은 두 개의 망치질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의 혀가 이[爾]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찬양을 그치지 않듯이.
천사를 향해 이 세상을 찬미하라, 말로 할 수 없는 세상은 말고, 호화로운 감정으로는 너는 천사를 감동시킬 수 없다 ; 천사가 모든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우주공간에서 너는 초심자일 뿐이다. 그러니 천사에게 소박한 것을 보여주어라, 켳 세대에 걸쳐 만들어져 우리 것이 되어 우리 손 옆에 그리고 눈길 속에 살아 있는 것을. 그에게 사물들에 대해 말하라. 그는 놀라워하며 서 있으리라 ; 네가 로마의 밧줄 제조공 옆에, 나일 강의 도공61) 옆에 서 있었듯이. 사물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얼마나 순수한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 편인지, 구슬픈 고통조차 어떻게 순수하게 제 모습을 갖추어, 사물로서 봉사하거나 죽어서 사물 속으로 들어가는지, 바이올린조차 다시 불러들일 수 없는 공간으로 넘어가는지 천사에게 보여주어라. ㅡ 그리고 이들 무상함을 먹고 사는 사물들은 알고 있다, 네가 그들을 칭송한다는 것을 ; 죽어가면서, 이들은 가장 덧없는 존재인 우리에게서 구원을 기대한다. 이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우리의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ㅡ 오 끊임없이 ㅡ 완전히 우리 자신으로 변용시켜주기를 바란다! 우리들이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대지여, 그대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닌가? 우리의 마음에서 보이지 않게 다시 한 번 살아나는 것. ㅡ 언젠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그것이 그대의 꿈이 아니던가? ㅡ 대지여! 보이지 않음이여! 변용이 아니라면, 무엇이 너의 절박한 사명이랴? 대지여, 내 사랑이여, 나는 그것을 해낼 것이다. 오 내 말을 믿어라, 나를 얻기 위하여 더 이상의 그대의 봄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한 번의 봄, 단 한 번의 봄도 나의 피에게는 너무 많은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는 그대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항상 그대의 말이 옳았다, 그대 자신이 해낸 성스러운 생각이란 친근한 죽음이다.
보라, 나는 살고 있다. 무엇으로? 나의 어린 시절도 나의 미래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넘치는 현존재가 내 마음속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제10비가(悲歌)
언젠가 나 이 무서운 인식의 끝마당에 서서 화답하는 천사들을 향해 환호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리라. 내 심장의 망치들 중 어느 것 하나 부드러운 현이나, 의심하거나 격하게 물어뜯는 현에 닿는다 해도 맑은 소리 그치는 법 없으리라. 넘쳐흐르는 나의 얼굴이 나를 더욱 빛나게 하리라 ; 이 수수한 울음도 꽃 피어나리라. 오 너희 밤들이여, 나, 비탄에 젖어들던 밤들이여, 그러면 너희는 내게 얼마나 소중하랴. 너희 슬픔의 자매들이여, 왜 나는 너희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더욱 세차게 무릎 꿇고 너희들의 풀어헤친 머리카락 속에 나를 풀어 바치지 않았던가? 우리는 고통의 낭비자. 우리가 어떻게 슬픔을 넘어 응시할 수 있을까, 슬픔의 지속을, 언젠가 이것이 끝나지 않을까 바라면서. 그러나 고통은 우리의 겨울 나뭇잎,62) 우리의 짙은 상록수, 우리의 은밀한 한 해의 계절 중의 한 계절, 그런 시간일 뿐 아니라, 고통은 장소요 주거지요 잠자리요 흙이요 집이다.
정말로 괴롭다, 고통의 도시의 뒷골목은 낯설기만 하구나, 그곳엔 넘쳐나는 소음으로 만들어진 거짓 고요 속을 공허의 거푸집63)에서 나온 주물들이 마구 활보하며 걷는다 : 금으로 도금한 소음, 파열하는 기념비. 오, 천사가 있다면 얼마나 흔적도 없이 짓밟아버리겠는가, 그들이 완제품으로 사들인 교회가 경계를 긋고 있는 위안의 시장을 : 깨끗하게, 문을 닫아버릴까, 실망이 크도록, 일요일의 우체국처럼, 그러나 밖에는 언제나 대목장의 변두리들이 넘실대고 있다. 자유의 그네여! 열정의 잠수부여, 곡예사들이여! 그리고 여러 모양들로 예쁘게 꾸민 행운의 사격장64)에서는 양철 과녁이 넘어지며 덜커덩 소리를 낸다, 어느 솜씨 좋은 사람이 명중시킬 때마다. 그 사람은 갈채에서 우연으로 비틀대며 간다 ; 온갖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게들이 외치며 북을 치고 물건을 사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을 위한 특별한 볼거리도 있다. 돈이 어떻게 새끼를 치는가, 해부학적으로도 타당한 것. 재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 돈의 생식기, 남기없이 행하는 것, 행위 그 자체. 교육적이고 성적 능력 향상에도 좋은 것…… ……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자 곧, 마지막 판자 뒤편에 “영생불사”라는 광고문이 붙어 있다, 저 쓴 맥주 광고, 마시는 사람들은 달콤하게 느낄 것 같다, 서기다가 늘 신선한 심심풀이를 곁들여서 씹는다면…… 바로 그 판자 뒤쪽을 보니, 그 뒤쪽은 현실적이다. 아이들은 놀고 있고, 연인들은 서로 끌어안는다, ― 한쪽에서, 진지하게, 듬성듬성한 풀밭에서. 그리고 개는 마냥 개다. 젊은이는 자기도 모르게 좀더 걸어간다. 그는 어느 젊은 비탄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65)의 뒤를 따라 초원으로 들어선다, 그녀가 말한다 : ― 좀 멀어요, 우리는 저기 바깥쪽에 살고 있어요…… 어디요? 그러면서 젊은이는 따라간다. 그녀의 자태에 그의 마음이 끌렸다. 어깨와 목덜미 ―, 그녀는 귀한 가문 출신인가봐. 그러나 그는 그녀를 그냥 두고서 돌아가다가 돌아서서 손짓을 한다…… 부질없는 짓. 그녀는 비탄인걸.
다만 어려서 죽은 자들만이 처음으로 맞는, 시간을 넘어선 평온함의 상태에서, 모든 습관을 버린 상태에서 사랑으로 그녀의 뒤를 따른다. 그녀는 소녀들을 기다렸다가 그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에게 살며시 몸에 지는 것을 보여준다. 고통의 진주알들과 인내의 고운 면사포. ― 그녀는 소년들과 함께 걸어간다, 말 없이.
그러나 그들이 사는 계곡에 이르자, 어느 노파가, 비탄의 노파 하나가 소년66)의 물음에 대답한다 : 우리는 위대한 종족이었지. 그녀가 말한다. 옛날에, 우리 비탄들은. 우리 조상들은 저기 큰 산에서 광산일을 했어. 사람들에게서 가끔 매끄럽게 연마된 태곳적 고통 덩어리나, 오래된 화산에서 캐낸, 화석이 된 분노 찌꺼기를 볼 거야. 그래, 그게 다 저기서 나온 거지. 옛날에 우린 부자였어. ― 그리고 그를 드넓은 비탄의 풍경 속으로 가볍게 이끌어, 그에게 사원들의 기둥이나 허물어진 성들을 보여준다, 그곳에선 한때 비탄의 영주들이 백성들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 그녀는 그에게 우람한 눈물의 나무들과 꽃 피어나는 슬픔의 밭들을 보여준다, (산 자들은 이것을 부드러운 나뭇잎으로만 알고 있다) 그녀는 그에게 풀을 뜯고 있는 슬픔의 짐승들을 보여준다, 그때 가끔 새 한마리가 놀라서 그들의 시야 안으로 낮게 날아가면서 곳곳에 제 고독한 울음의 그림을 그려놓는다. 저녁이 되자 그녀는 그를 비탄 가문의 노인들의 무덤으로 안내한다, 그들은 여자 무당들과 예언자들이다. 그러나 밤이 다가오자, 그들은 더 천천히 거닌다. 이윽고 달이 떠오르고, 달빛 속에서 모든 것을 감시하는 묘비. 나일 강변에 있는 것과 쌍둥이 같다 : 엄숙한 모습의 스핑크스, 말 없는 묘혈의 얼굴. 그리고 그들은 왕관을 쓴 머리를 보고 놀란다, 그 머리는 무게를 재려고 사람의 얼굴을 별들의 저울에 올려놓고 있었다,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
그의 시선은 그의 이른 죽음으로 아직 어지러워 그 광경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왕관의 테두리 뒤에서 나와, 부엉이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러자 부엉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숙하게 둥근 뺨을 따라 아래로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죽음에 이어 생긴 새로운 청각 위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윤곽을 부드럽게 그려넣는다, 양쪽으로 펼쳐진 책67)속에다 써넣듯이. 그리고 더 높은 곳에는 별들. 새로운 별들. 고통의 나라의 별들. 비탄은 별들의 이름을 천천히 불러본다 : ― 이쪽을 봐, 기수, 지팡이가 있지. 그리고 아주 밀집해 있는 저 별자리를 이곳에서는 열매의 화환이라고 불러. 다음엔, 계속, 극 쪽을 봐 : 요람 ; 길 ; 타오르는 책 ; 인형 ; 창문이 있지. 그렇지만 남쪽 하을에는 성스러운 손바닥의 안쪽처럼 순수하게 밝게 빛나는 'M”이 있어, 이건 어머니들을 뜻하지……
그러나 죽은 젊은이는 떠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이 든 비탄은 말 없이 그를 깊은 골짜기로 데리고 간다, 거기 달빛 속에 은은히 빛나는 것, 기쁨의 샘물이다. 비탄은 깊은 경외심에서 그 이름을 부르면서, 이렇게 말한다. ㅡ 인간 세계에서는 이것은 생명을 잉태하는 물결이지. ㅡ
그들은 산 발치에 이른다. 그때 비탄은 그를 포옹한다, 울면서.
홀로 그는 올라간다, 태곳적 소통의 산을. 그의 발걸음에서는 소리 럾는 운명의 소리 한 번 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영원히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하나의 비유를 일깨워주었다면, 보라, 그들은 손가락으로 텅 빈 개암나무애 매달린 겨울 눈을 가리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비를 생각했을까, 봄날 어두운 대지 위로 떨아지는. ㅡ
그리고 솟아오르는 행복만을 생각하는 우리는 행복이 떨어질 때면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느끼리라.
릴케가 1911년에서 1912년 사이의 겨울에 체류했던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안의 두이노 성의 성주였다. 릴케는 이곳에서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날 산책길에서 들려오는 첫 몇 마디를 환청처럼 듣고서 《두이노의 비가》의 작업을 시작했다. 1922년 2월에 10년에 걸친 고뇌와 방황 끝에 《두이노의 비가》가 완성되었을 때에도 릴케는 가장 먼저 그녀에게 소식을 전했으며, 이 작품을 그녀에게 헌정했다.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Marie von Thurn und Taxis-Hohenlohe(1855~1934) 후작부인은 원래 오스트리아의 명문 가문 출신으로 많은 예술가들을 자신의 성에 초대하고 그들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가스파라 스탐파 Gaspara Stampa(1523~54). 이탈리의 여류시인으로, 베네치아의 콜라토 백작과의 불행한 사랑을 나중에 시로 형상화했다. 마리안나 알코포라도, 베티나 폰 아르님, 우리스 라베 등과 함께 《말테의 수기》에 등장하는 위대한 사랑의 여인들의 대표적 인물이다.
베네치아에 있는 교회 이름. 릴케는 1911년 4월 3일에 탁시스 후작 부인과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이곳에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룬 비문이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는 살았다, 내 인생은 그렇게 오래 계속되었다. / 하지만 마침내 내가 죽은 뒤에도, / 나는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차가운 / 대리석 속에서 나를 위해 살고 있다. / 아드리아는 나를 그리워하며 탄식한다. / 그리고 가난은 나를 부른다. / 그는 1593년 9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한창 꽃피던 나이에 죽음의 세계로 떨어진 운명을 대변한다. 신화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과 이 시에 등장하는 리노스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릴케는 그를 음악의 목동으로서 어려서 죽은 자들의 총체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텅 빔에서 가득 참으로, 경악과 비탄엥서 위안과 도움으로의 급변을 이끌어내는 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과제이며 이것을 수행하는 존재로서 리노스를 설정하고 있다.
경외 성서인 《토비트서》에는 인간과 신의 사도 사이의 절친한 교우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토비아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위해 길을 떠나기 위해 믿을 만한 길동무를 찾고 있었다. 그때 이미 옷을 차려입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친 한 젊은이를 발견했는데, 토비아는 그가 하느님이 보낸 천사인 줄 모르고 그에게 인사를 하고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멋진 친구?”(5 : 5~6) 따라서 모든 것의 경계가 지워진 '해석된 세계'인 현재와 달리 세계상이 아직 분열되지 않았던 신화의 시대에는 약간만 변장을 해도, 우리 인간에게 낯설고 이질적인 것이 금방 친숙하고 다정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릴케는 1912년 11월 2일 《말테의 수기》에 대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말테)의 내면에 있는 힘들이 바깥으로 나온다 해도 그것은 그렇게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힘들이 가끔 파괴를 불러일으키기는 하지요. 이것은 모든 위대한 힘이 갖는 이면입니다. 구약성서에서도 천사로 인해 죽지 않고는 천사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식으로 표현하잖아요.”
흘러 사라짐과 굳어버림 사이의 이러한 이상적인 중간 상태의 이미지는 릴케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물려져 내려온 자연풍경의 놀라움입니다. 그곳에는 강물의 신과 계속되는 황야 옆으로 빽뺵하게 뭉쳐진 단호한 삶의 한 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1911년 6월 27일 릴케의 편지). 또한 카타리나 키펜베르크는 “릴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강물과 황야 사이로 좁다랗게 이어진 소중한 초록빛과 노란 밀밭의 띠에 대해서 말했다”고 회상하고 있다.
1911년 1월부터 3월 11일까지 릴케는 이집에 체류했다. 그곳에서 그는 멤피스에 있는 람세스 2세의 화강암 석상뿐만 아니라 카르나크의 신전 세계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아문 사원의 회랑에 있는 전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릴케가 이 시를 쓸 때 많이 작용한 것 같다.
독일어로는 'das Offene.' 이 개념은 잠시 게오르게George 일파에 속해 있던 알프레트 슐러Alfred Schuler의 표상세계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삶은 열려 있어야 한다'는 모토로 무엇보다 서민적인 생활방식에 비판을 가했다. 릴케는 그를 개인적으로 알았다. 릴케의 관점은 슐러의 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슐러가 말하는 '열린 삶'에서는 개인이 내면의 물결로 넘쳐흐르기 때문에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취감이나 순간의 영원화, 절대적 존재의 감정도 여기에 포함된다.
에트루리아인들의 석관 뚜껑에는 죽은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해서 죽은 사람은 반은 안쪽, 반은 바깥쪽에 있게 된다. 릴케는 이 이미지를 알프레트 슐러에게서 빌려온 것 같다. 슐러는 이렇게 말한다. “에트루리아인들의 모든 관 속에는 죽은 사람이나 그의 부인이 누워 있는데, 포도주 잔을 함께 넣어주었다. 그것은 이들이 식사를 하면서 누워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은 산 사람처럼 먹고 마신다고 생각했다.”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말테의 수기>로 유명한 프라하 출신의 오스트리아 문학가. 독일어권 문학가 중에서 으뜸으로 평가받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우리나라의 시인 백석, 김춘수와 윤동주가 릴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와 이를 차용한 윤동주의 시인 별 헤는 밤에도 릴케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외에도 한국 서정시에서 릴케의 비중은 상당히 크며 해외 시인 중에서도 인기가 좋다.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 뿐.
- 인생(Du musst das Leben nicht verstehen)
누구냐, 나 울부짖은들, 천사의 대열에서 그 누가 내 울음에 귀 기울여준단 말이냐? 심지어 그중 한 천사가 순간 나를 가슴에 품더라도, 보다 강한 존재로 인하여 나 사라질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뎌내는 저 끔찍한 것의 시작일 따름이기에. 놀라운 점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파괴하는 데 있어 냉담하다는 것이다. 모든 천사는 끔찍하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고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