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동안
-이승훈


당신은 그동안
너무 무겁게 살았지
이젠 가볍게 살아야 해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사람을 사랑하는 건
순진하게 되는 것
아름답게 되는 것
향기롭게 되는 것
고통보다 환희
분노보다 용서
절망보다 희망
복잡한 건 단순하게
당신은 쉰이 넘었지만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실수도 많았지만
머리도 세었지만
당신 머리엔 새가 날아와
놀아야 해
봄이 한창일 때
꽃이 한창일 때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낸
당신은 그때를 잊어야 해
오늘은 화창한 날
오늘은 여름이 오는 날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여름이 오는 날
어린아이처럼 살아야 해
시간은 많지 않아
공부할 시간도
술 마실 시간도
좋은 사람과 만날 시간도
그러니까 순진하게
아름답게
아름답게
무엇보다 아름답게
살아야 해


-『너라는 햇빛』(세계사) 중에서

[한택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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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승훈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라

엎드려 있고만 싶어라

고운 피 흘리는 마음

복사꽃 복사꽃은 지는데


어디로 가고만 싶어라

이 어두운 마음

밝아오는 해이고 싶어라

아무리 채찍이 갈겨도


그리움은 끝나지 않어라

당신 얼굴에 입맞추고 싶어라

하아란 돌이고 싶어라

파아란 구름이고 싶어라


모조리 버리고 오늘

바쁘게 명동을 걸어가면

바람부는 왕십리를 걸어가면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라

언제나 다른 나라에 계신

당신 고개 한번 끄덕이면

복사꽃 복사꽃은 지는데

[순천 향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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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이승훈

지난날을 어떻게 잊으랴

새벽닭 울 때마다

삶은 노엽고 원통했다


해질 무렵 귀머거리로

바다에 귀 기울여도

바다는 언제나 말이 없던


지난날을 어떻게 잊으랴

한사코 불빛 식어가던 방에서

그대 고운 손

차마 잡을 수 없었던


지난날을 어떻게 잊으랴

그대 눈물 고인 눈을

어떻게 잊으랴 통곡 뒤의 산들을

산 아래 마을들을 밤마다

그대 손이 켜던 램프를


어떻게 잊으랴 이른 새벽

눈길 밟고 도망치던 삶

도망치던 맨발의 날들을

소리도 없는 날들을

이렇게 또 다가오는 날들을

[김해시 가락국 수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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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포석정, 계림 대릉원, 오봉산 여근곡] *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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