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자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장끼


죽은 나무도 생피붙을 듯

죄스런 봄날


피여, 피여


파아랗게 얼어 붙은

물고기의 피,


새로 한 번만

몸을 풀어라


새로 한 번만

미쳐라 달쳐라

긴 봄날

- 허영자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

눈물겹기야
어찌
새 잎뿐이랴

창궐하는 역벙(疫病)
罪에서 조차
푸른
미나리 내음난다
긴 봄날엔─

숨어 사는
섧은 정부(情婦)
난쟁이 오랑캐꽃
외눈 뜨고 쳐다본다
긴 봄날엔─

[돌곶이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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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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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조상기

오늘도 내 어린 동심은

눈꽃 핀 가지 위에서 떤다.


어둑한 종소리에

귀 밝은 내 사랑은

측백나무 그늘에 앉아 있더니


가랑잎 밟고 오던 기억이 아파

바람의 깃을 접어

등피를 닦는다.


얼마나 큰 무지개를 잡으면

바람의 뒷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여름내 무성했던

우리들 꽃밭에 가서

동그라미 음계를 그리고 오는

내 새끼 비둘기들이여.


오늘도 내 어린 동심은

눈꽃 핀 가지 위에서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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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익

하필이면 길가에

태어난 죄

질경이의

하얀 뿌리가 밉다.


하늘에 닿지 못하는

어여차, 미치고 싶은 사랑

코리어에 태어난

나의 죄...


태평양 끝

높이높이 오른

우리들의 죄.


질경이야,

짓밟힌 질경이야

어여차, 미치고 싶은

밟히며 자란 사랑이야.

[돌곶이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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