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十月)

ㅡ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울리던 목탁소리 목탁소리 목탁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이 불고오늘은 안개 속에 찬 비가 뿌렸다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석등 곁에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하나달이 지는데밀물지는 고물에서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석등 곁에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내려다 보면 낙엽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커지기시작하는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 가고주위는 자꾸만 어두워 갔다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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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홍윤숙

이제는 너 아닌 누구라도

함께 떠나야 할 마지막 시간인데

나는 아직 물풀같이 떠도는

기녀의 마음일까


그리움에 맴도는 나뭇잎 하나

붉은 색지처럼 손끝에 돌리며

멋없이 멋없이 배회하는 날


외로움이 진하면 거울을 보고

거울 속 눈물에 번져나는

희미한 얼굴


붉은 연지꽃처럼 진하게 칠하며

웃어도 보는

뉘라서 알까만 배율의 양심


보랏빛 새옷이랑 갈아 입고

검은 머리 꽃이랑 꽂고

나비 같은 마음으로 나서 보건만

짐짓 갈 곳이 없는...


너 없는 이 거리 어디로도

갈 곳이 없는

내 마음은 부칠 데 없는

가랑잎 엽서 한 장

바람에 돌고 도는 장난감 풍차


이제는 너 아닌 누구라도

함께 떠나야 할 마지막 시간인데

나는 아직 물풀같이 떠도는

기녀의 마음일까


붉은 양관 긴 층계를 내리면서

문득 내 나이 이미 젊지 않음을

생각하는 날

[양평 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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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론

-홍윤숙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씻은 무우” 같다든가

“뛰는 생선” 같다든가

“진부한 말이지만”

그렇게 젊은 날은

젊음 하나 만도

빛나는 장식이 아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

쇼우윈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들을

잃고 왔을까

이 피에로 같은 생활의 의상들은

무엇일까


안개같은 피곤으로

문을 연다

피하듯 숨어 보는

거리의 꽃집


젊음은 거기에도

만발하여 있고

꽃은 그대로가

눈부신 장식이었다.


꽃을 더듬는

내 흰 손이 물기 없이 마른

한장의 낙엽처럼 쓸쓸해져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자수정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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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섬

-홍신선

대교를 건넜다. 피난민 몇이 과거 버린 채 살고 있다

마을 밖에는

동체뿐인 새우젖 배들

빈 돛대 몇이 겨울 한기에 가까스로

등받치고 기다리고


물빠진 갯고랑, 삭은 시간들 삭은 물에 이어져 잠겨 있다.

일직선,버려진 마음들로 쌓아올린 방파제까지

나문재나무들 줄지어 나가 있다.

뻘에 두발 내리고 붙어 있는 목에 힘준 저들.

쓸리지 않으면

개흙으로 삭는 일

더러 쓸리면

닻으로 일생 내리는 저들의 일.


힘 힘 풀어놓고

공판장 매표소 회집들로 선착장에 힘 풀어놓고

두어걸음 비켜서서

말채나무 오그라든 두 손에

저보다 큰 겨울하늘 든 채 있다.

사는 일이 사는 일로 투명하게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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