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지하도 입구에 서서

-정희성

저녁무렵, 박수갈채로 날아오르는

저 비둘기떼의 깃치는 소리

광목폭 찢어 펄럭이며

피묻은 팔뚝 함께 일어서

만세 부르던 이 광장

길을 걸으며 나는 늘

역사를 머리 속에 떠올린다

종합청사 너머로 해가 기울면

조선총독부 그늘에 잠긴

옛 궁성의 우울한 담 밑에는

워키토키로 주고 받는 몇 마디 암호와

군가와 호루루기와 발자국소리

나는 듣는다, 이상하게 오늘은

술도 안 취한다던 친구의 말을

신문사를 가리키며 껄껄대던 그 웃음을

팔엔듯 심장엔듯 피가 솟구치고

솟구쳐 부셔지는 분수 물소리

저녁무렵, 박수 갈채로 날아오르는

저 비둘기떼 깃치는 소리 들으며

나는 침침한 지하도 입구에 서서

어디론가 끝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을 본다

건너편 호텔 앞에는 몇 대의 자동차

길에는 굶주린 사람 하나 쓰러져

화단의 진달래가 더욱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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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양평 들꽃수목원]











갠지스강 사진 [펌] http://blog.paran.com/cnsgml/2685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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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ㅡ이형기

 

어길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와 같이 눈을 뜨고 밤을 세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가는 바람에도
불고가는 바람같이 떨던것이

이렇게 고요해 질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호수와 같은것을
또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2273

[양평 들꽃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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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哀歌)

-이창대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아플지라도

숨 막히는 이별은 말하지 않으리.

여기로 불어오는 바람

서러웁고

저기서 울리는 종소리

외로와도

가만히 견디며 들으리라

커다란 즐거움은 아픔 뒤에 오는 것.

흐르는 강가에 가슴은 설레어도

말하지 않으리라 이별의 뜻을.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아플지라도

나에게 잠들게 하라

너의 그림자를.

[돌곶이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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