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그리스도께

-유안진

숱한 남성을 짝사랑한 후에

가을숲이 되어버린 내 머리터럭

흙먼지만 날리는 사막 같은 가슴


그 어디쯤서

그대는 발견되었는가


내 미처

보아도 보지 못하던 눈

들어도 깨우치지 못하던 귀

그 누가 열어주어


아아 한스러운

이 몰골

이 형색


그대 어찌

이제사

내 앞에 뵈었는가


청년 그리스도

나의 사랑아.

[남해 보리암]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의 첨단 -윤삼하  (1) 2008.07.19
램프의 시 1 -유영  (1) 2008.07.19
너 없음으로, 오세영  (0) 2008.07.19
한 잎의 여자 외 -오규원  (0) 2008.07.18
겨울 숲을 바라보며 -오규원  (1) 2008.07.18

너 없음으로

-오세영

너 없음으로

나 있음이 아니어라


너로 하여 이 세상 밝아오듯

너로 하여 이 세상 차오르듯


홀로 있음은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이승의 강변 바람도 많고

풀꽃은 어우러져 피었더라만

흐르는 것 어이 바람과 꽃뿐이랴


흘러흘러 남는 것은 그리움

아, 살아 있음의 이 막막함이여,


홀로 있음으로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램프의 시 1 -유영  (1) 2008.07.19
청년 그리스도께 -유안진  (1) 2008.07.19
한 잎의 여자 외 -오규원  (0) 2008.07.18
겨울 숲을 바라보며 -오규원  (1) 2008.07.18
이윤학, 짝사랑  (0) 2008.07.18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 것도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야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같은 슬픈 여자.



-오규원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집 개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 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웃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수련 -고속도로 휴게소]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년 그리스도께 -유안진  (1) 2008.07.19
너 없음으로, 오세영  (0) 2008.07.19
겨울 숲을 바라보며 -오규원  (1) 2008.07.18
이윤학, 짝사랑  (0) 2008.07.18
터널 -이윤학  (1) 2008.07.18

겨울 숲을 바라보며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해무(海霧)에 덮히는경남 남해 보리암]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 없음으로, 오세영  (0) 2008.07.19
한 잎의 여자 외 -오규원  (0) 2008.07.18
이윤학, 짝사랑  (0) 2008.07.18
터널 -이윤학  (1) 2008.07.18
휘어진 길 -이윤학  (2) 2008.07.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