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제문(弔義帝文)

(의제를 조문하는 글)

ㅡ김종직(金宗直)

丁丑十月日

정축십월일 : 정축 10월 어떤 날

余自密城道京山

여자밀성도경산  : 나는 밀성으로부터 경산으로 향하여

宿踏溪驛

숙답계역 : 답계역에서 숙박하는데

夢有神披七章之服

몽유신피칠장지복 : 꿈에 신(神)이 칠장의 의복을 입고

頎然而來

기연이래 : 헌칠한 모습으로 와서

自言

자언 : 스스로 말하기를,

楚懷王孫心爲

초회왕손심위 : “나는 초나라 회왕인 손심(孫心)인데

西楚霸王所弑

서초패왕소시 : 서초패왕에게 살해 되어

沈之郴江

침지침강 : 빈강(郴江)에 잠겼다.”

因忽不見

인홀불견 : 그래서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余覺之

여각지 : 나는 꿈을 깨어

愕然曰

악연왈 : 놀라며 이르기를

懷王南楚之人也

회왕남초지인야 : “회왕은 남초 사람이요,

余則東夷之人也

여칙동이지인야 : 나는 동이 사람으로

地之相距

지지상거 : 지역의 서로 떨어진 거리가

不啻萬有餘里

불시만유여리 : 만여 리가 될 뿐이 아니며

而世之先後

이세지선후 : 세대의 선후도

亦千有餘載

역천유여재 : 또한 천 년이 넘는데

來感于夢寐

래감우몽매 :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玆何祥也

자하상야 : 이것이 무슨 상서로움일까

且考之史

차고지사 :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無沈江之語

무침강지어 :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豈羽使人密擊

기우사인밀격 : 어찌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而投其屍于水歟

이투기시우수여 :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是未可知也

시미가지야 : 이것을 알 수 없으니

遂爲文以弔之

수위문이조지 : 마침내 문을 지어 조문한다.

惟天賦物則以予人兮

유천부물칙이여인혜 : 하늘이 사물의 법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孰不知尊四大與五常

숙불지존사대여오상 : 어느 누가 사대와 오상을 높일 줄 모르리오.

匪華豐而夷嗇

비화풍이이색 : 중화라서 풍부하고 오랑캐라서 인색한 바 아니니

曷古有而今亡

갈고유이금망 :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겠는가

故吾夷人

고오이인 : 그러기에 나는 오랑캐요

又後千載兮

우후천재혜 : 또 천 년을 뒤졌건만 : 또 천 년을 뒤졌건만

恭弔楚之懷王 :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한다

공조초지회왕 : 또 천 년을 뒤졌건만

昔祖龍之弄牙角兮

석조룡지롱아각혜 : 옛날 조룡이 아각을 가지고 노니

四海之波

사해지파 : 사해(四海)의 물결이

殷爲衁

은위황 : 붉어 피가 되었어라

雖鱣鮪鰍鯢

수전유추예 : 비록 전유와 추애일지라도

曷自保兮

갈자보혜 : 어찌 보전하겠는가

思網漏而營營

사망루이영영 : 그물 벗을 생각에 급급했으니

時六國之遺祚兮

시륙국지유조혜 : 당시 육국의 후손들은

沈淪播越

침륜파월 : 숨고 도망가서

僅媲夫編氓

근비부편맹 : 겨우 편맹과 짝이 되었다오.

梁也南國之將種兮

량야남국지장종혜 : 항량(項梁)은 남쪽 나라의 장군의 자손으로

踵魚狐而起事

종어호이기사 : 어호(魚狐)를좇아 일을 일으켰네.

求得王而從民望兮

구득왕이종민망혜 :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랐어라

存熊繹於不祀

존웅역어불사 : 끊어졌던 웅역(熊繹)의 제사를 보존하였도다.

握乾符而面陽兮

악건부이면양혜 : 건부(乾符)를 쥐고 임금이 됨이여

天下固無大於芉氏

천하고무대어간씨 : 천하에는 진실로 미씨보다 큰 것이 없었다.

遣長者而入關兮

견장자이입관혜 :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에 들어가게 함이여

亦有足覩其仁義

역유족도기인의 : 역시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았도다.

羊狠狼貪

양한랑탐 : 양흔낭탐이

擅夷冠軍兮

천이관군혜 : 관군(冠軍)을 마음대로 평정하였구나

胡不收而膏齊斧

호불수이고제부 :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嗚呼

오호 : 아아,

勢有大不然者兮

세유대불연자혜 :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이여

吾於王而益懼

오어왕이익구 : 나는 왕에게 더욱 두렵게 여겼어라

爲醢腊於反噬兮

위해석어반서혜 : 반서(反噬)를 당하여 해석(醢腊)이 됨이여

果天運之蹠盭

과천운지척려 :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나

郴之山磝以觸天兮

침지산오이촉천혜 : 빈의 산이 우뚝하여 하늘에 닿음에야

景晻愛以向晏

경엄애이향안 :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을 향하고

郴之水流以日夜兮

침지수류이일야혜 :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흘러가는구나

波淫泆而不返

파음일이불반 :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른다.

天長地久

천장지구 : 천지가 장구한들

恨其可旣兮

한기가기혜 : 한이 어찌 다할까

魂至今猶飄蕩

혼지금유표탕 : 넋은 지금도 표탕하다.

余之心貫于金石兮

여지심관우금석혜 : 내 마음이 금석을 꿰뚫음이여

王忽臨乎夢想

왕홀림호몽상 :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구나

循紫陽之老筆兮

순자양지로필혜 : 자양의 노필을 따라감이여

思螴蜳以欽欽

사진윤이흠흠 : 생각이 초조하여 흠흠하다

擧雲罍以酹地兮

거운뢰이뢰지혜 :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여

冀英靈之來歆

기영령지래흠 : 바라기는 영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조선 전기의 학자 김종직(金宗直)이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纂奪)을 비난한 글.

김종직은 항우(項羽)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懷王), 즉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을 지었는데,

이것은 세조에게 죽음을 당한 단종(端宗)을 의제에 비유한 것으로 세조의 찬탈을 은근히 비난한 글이다.

정축년(丁丑年) 10월 밀양에서 경산으로 가다가 답계역(踏溪驛)에서 잠을 잤다.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서

"나는 초나라 회왕(懷王: 의제) 손심인데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에게 살해되어 빈강(彬江)에 버려졌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회왕은 중국 초나라 사람이고,

나는 동이 사람으로 거리가 만리(萬里)나 떨어져 있는데

꿈에 나타난 징조는 무엇일까?

역사를 살펴보면 시신을 강물에 버렸다는 기록이 없으니

아마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회왕을 죽이고 시체를 강물에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야 글을 지어 의제를 조문한다. - (연산군 일기 4년 7월 17일)

이 글을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金馹孫)이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사초(史草)에 적어 넣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편찬책임자는 이극돈(李克墩)으로 이른바 훈구파(勳舊派)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일손의 사초 중에 이극돈의 비행(非行)이 기록되어 있어 김일손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던 중,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 중에서 발견한 이극돈은 김일손이 김종직의 제자임을 기화(奇貨)로 하여

김종직과 그 제자들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士林派)를 숙청할 목적으로,

‘조의제문’을 쓴 김종직 일파를 세조에 대한 불충(不忠)의 무리로 몰아 선비를 싫어하는 연산군을 움직여,

큰 옥사(獄事)를 일으켰다. 이것이 무오사화(戊午史禍)인데,

그 결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고,

김일손·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허반(許盤) 등이 참수(斬首)되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939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kydong77.tistory.com/7915

 

김종직의 조의제문에 대한 왕의 전교와 신하들의 논의

김종직의 조의제문에 대한 왕의 전교와 신하들의 논의 [은자주]영남사림의 선두주자는 그렇게 부관참시당하였다. 지하의 귀신들까지 들고 일어나 그를 두 번 죽일 판이었다. 죄목은 충분(忠憤)

kydong77.tistory.com

 

 

 

 

 

http://www.heritage.go.kr/heri/html/HtmlPage.do?pg=/palaces/palacesArchitecture.jsp 

 

국가문화유산포탈 |

궁궐건축의 특징은 뒤로는 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 궁궐을 바라보며 왼쪽에는 사직단, 오른쪽에는 종묘가 있는 좌묘우사를 지켰으며, 왕실의 존엄성과 권위를 상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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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명사진설명전(殿)당(堂)합(閤)/각(閣)재(齋)/헌(軒)누(樓)정(亭)

  가장 경식이 높고 규모도 큰 여러 건물들 중 으뜸인 건물이다. 왕, 왕비 또는 상왕 대비, 왕대비등 궐 안의 웃어른이 사용하는 건물에 붙는다. 예)근정전/강령전/교태전/자경전 등
◁ 경복궁 근정전
  전(殿)에 비해 규모는 비슷하나 격은 한단계 낮은 건물이다. 전은 공식적 성격을 띈다면 당은 좀더 사적인 건물에 쓰이며 전데 딸린 부속건물이거나 부속공간의 중심건물을 부르는 말이다. 예)양화당/희정당/명륜당 등
◁ 창덕궁 희정당
  모두 그러는 것은 아니나 전(殿)과 당(堂)의 부속건물이나 혹 은 그것을 보위하는 건물이다. 양정합/일신합/덕성합/규장각/동십자각/곤령합 등
◁ 창덕궁 규장각
  모두 왕실의 주요인물보다는 왕실가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에 붙여지는데 재(齋)는 주로 일상적 주거용으로, 헌(軒)은 공무적 기능을 가진경우가 많다. 예)낙선재/집옥재/영춘헌/정관헌 등
◁ 창덕궁 낙선재
  원두막처럼 마루를 지면으로부터 높이 띄워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원활하도록 만든 건물로 휴식과 유희를 주목적으로 하는 건물이다. 예)경회루, 광한루, 용무루 등
◁ 경복궁 경회루
  흔히 정자이며, 휴식이나 연회공간으로 활용된다. 누(樓)와 사용의 목적은 비슷하나 정(亭)은 규모가 작고 개인적인데 비해 누(樓)는 건물이 크고 공공성을 가지며 사적인 행사보다는 공적인 행사를 위한 시설이다. 예)향원정/청의정/상양정 등
◁ 경복궁 향원정

 

교태전 뒤 아미산정원의 멋진 굴뚝들

https://kydong77.tistory.com/15209?category=487412 

 

아미산정원2/경복궁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VZviq_hu7RQ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B%8F%84%EC%A0%84

 

정도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도전(鄭道傳, 1342년[2] ~ 1398년 10월 6일(음력 8월 26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유학자, 혁명가이다. 본관은 봉화이다.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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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자 최고 권력자였던 그는 조선의 이념적 바탕을 마련하고 모든 체제를 정비하여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으며, 한양 시내의 전각과 거리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제1차 요동 정벌(1388년 음력 6월)과 제2차 요동 정벌(1392년)에 반대하였으나 요동을 정벌할 계획을 세워 명나라와 외교 마찰을 빚었고, 공신과 왕자들이 사적으로 보유한 사병을 혁파하려다가 갈등한다. 그 뒤 요동 정벌을 계획하여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갈등하던 중, 이방원이 정변을 일으킨 뒤 1398년 8월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군사들에게 피살되었다. 성리학 이념을 보급하였으며, 그는 안향-백이정-이제현의 학통을 계승한 목은 이색의 문하생이자 정몽주권근의 동문이다.

조선사회에 성리학을 정착, 국교화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정도전은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조정에서 배격되었다. 태종은 그를 역적으로 만든 뒤 정몽주를 추상하였으며, 이후 그는 포은 정몽주와 달리 역적으로 매도되어 오다가 고종 때 복권되었다.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2&cp_code=cp0528&index_id=cp05280176&content_id=cp052801760001&search_left_menu=5 

 

무학대사 - 문화콘텐츠닷컴

무학대사 무학(無學)은 고려 말엽에 태어나 나옹(懶翁)의 법맥을 이어 조선 불교의 터전을 닦은 고승(高僧). 스님의 법명은 자초(自超), 법호는 무학이며 속성은 박(朴)씨로서 삼기군(三岐郡)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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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03700&code=kc_age_30 

 

우리역사넷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는 고려 말~조선 초에 활동한 불교 승려이다. 지공(指空)에서 나옹혜근(懶翁慧勤)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전해 받아 저들과 함께 고려 말 삼화상(三和尙)으로 일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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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는 생전에 영아행(嬰兒行)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보살의 다섯 가지 행 중 하나로 어린 아이 같은 지혜와 행동을 비유한 것이다. 원래 보살의 지혜는 수승하나 지혜가 얕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그들과 같이 작은 선행을 하는 것이다. 무학의 영아행은 지공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무학대사의 행적을 보면 스승인 지공과 혜근, 특히 혜근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 임제선풍을 견지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일단 그의 출가가 이미 송광사여서 수선사 계통의 임제종(臨濟宗) 간화선(看話禪)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스승 혜근이 조주(趙州)의 돌다리 쌓는 화두를 꺼내어 선문답을 던졌을 때 조주의 수좌도 답하지 못했던 것을 무학이 받아 답했다는 것은 그 깨달음의 경지가 높았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혜근에게 임제선풍을 사사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무학대사는 수선사 계통의 임제종 간화선풍 위에 지공의 선사상을 수용하여 조선 초 불교계의 선풍을 진작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무학대사의 대표적 문도로 기화(己和)가 있으며, 저서로는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 외에 『인공음(印空吟)』 이 있어 목은 이색(李穡)이 그 서문과 발문을 썼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왕십리(往十里)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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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초. 송도 도창관에서 등극한 이성계는 조정 대신들과 천도를 결정하고 무학대사에게 도읍지를 찾아달라고 청했다.
무학대사는 옛 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와 지세를 살폈으나 아무래도 도읍지로는 적당치 않았다.
발길을 북으로 옮겨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지세를 자세히 살핀 스님은 그곳이 바로 새 도읍지라고 생각했다.
「음, 땅이 넓고 강이 흐르니 과연 새 왕조가 뜻을 펼만한 길상지로구나.」
무학대사는 흐뭇한 마음으로 걸어오는데 한 노인이 소를 몰면서 소리쳤다.
「꼭 무학 같구나. 왜 바른 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
순간 무학대사의 귀가 번적 뜨였다.
고개를 들고 돌아보니 길 저쪽으로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이 채찍으로 소를 때리며 꾸짖고 있었다.
스님은 얼른 노인 앞으로 달려갔다.
「노인어른, 지금 소더러 뭐라고 하셨는지요?」
「미련하기가 무학 같다고 했소.」
「그건 무슨 뜻의 말씀이신지요? 」
「아마 요즘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공손히 합장하고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제가 바로 그 미련한 무학이옵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곳이 좋은 도읍지라고 보았는데 노인장께서 일깨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좋은 도읍지가 있으면 이 나라 천년대계를 위하여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은 채찍을 들어 서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10리를 더 들어가서 주변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노인어른, 참으로 감사합니다.」
무학대사가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순간, 노인과 소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스님은 가벼운 걸음으로 서북쪽을 향해 10리쯤 걸었다.
그때 스님이 당도한 곳이 바로 지금의 경복궁 자리 근처였다.
「과연 명당이로구나.」
삼각산, 인왕산, 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땅을 보는 순간 무학대사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만면에 미소를 띠운 스님은 그 길로 태조와 만나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여 도성을 쌓고 중궐을 짓기로 했다.
「스님, 성은 어디쯤을 경계로 하면 좋겠습니까?」
태조는 속히 대역사를 시작하고 싶었다.
「북쪽으로는 삼각산 중바위 밖으로 도성을 축성하십시오. 삼각산 중바위(인수봉)는 노승이 5백 나한에게 예배하는 형국이므로 성을 바위 밖으로 쌓으면 나라간 평안하고 흥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학대사의 뜻과는 달리 조정의 일파는 이를 반대, 인수봉안으로 성을 쌓아야한다고 강경히 주장했다.
태조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존경하는 스님의 뜻을 따르고 싶었으나 1등 개국공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학대사와 대신들의 도성 축성에 관한논쟁은 날이 갈수록 심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학대사는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으면 중바위가 성만을 넘겨다보는 형국이므로 불교가 결코 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도전 일파 역시 인수봉안으로 성을 쌓아야 유교가 흥할 수 있다는 지론이었으므로 무학대사 의견에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입장이 난처해진 태조는 천재를 지내 결정키로 했다.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낸 이튿날이었다.
밤새 내린 눈이 봄볕에 다 녹아내리는데 축성의 시비가 되고 있는 인수봉 인근에 마치 선을 그어 놓은 듯 눈이 녹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정도전 등 대신들은 이 이야기를 태조에게 즉시 고하고 이는 하늘의 뜻이므로 도성을 인수봉 안으로 쌓아야 한다고 거듭 주청했다.
「거참 신기한 일이로구나. 그 선대로 성을 쌓도록 하시오.」
이 소식을 들은 무학대사는 홀로 탄식했다.
「억불의 기운이 감도니 이제 불교도 그 기운이 다해가는구나.」
성이 완성되자 눈이 울타리를 만들었다 하여 눈「설」자와 삥둘러 쌓는다는 울타리「원」자를 써서. 「설울」이란 말이 생겼고 점차 발음이 변하여「서울」로 불리어졌다는 설도있다.
그리고 노인이 무학대사에게 10리를 더들어가라고 일러준 곳은 갈왕자와 십리를 써서 왕십리라고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소를 몰고 가다 무학대사의 길을 안내한 노인은 바로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국사의 후신이라 한다. 이런 이유로 왕십리에 속했던 일부지역이 도선동으로 분할됐다.
도선동은 1959년부터 행정동으로 불리다가 1963년 법정동이 됐다.
왕십리 청련사 부근에는 무학대사가 수도하던 바위터가 있었고 주위에는 송림이 울창했다고 하나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청련사 밑에는 무학과 발음이 같고 글씨는 다른 청련봉에서 도선국사가 수도했다는 전설도 있어 왕십리는 도선·무학 두 스님의 인연지인 것이 같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B%B3%B5%EA%B6%81

 

경복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경복궁(景福宮)은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에 있는 대조선국 왕조의 법궁(法宮, 정궁)이다. 근정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하였다. ‘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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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는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1394년(태조 3년) 한양에 천도하자 먼저 종묘 및 사직의 건설에 착수한 다음, 청성백 심덕부에게 명하여 궁궐을 짓게 했다.[1][2] 처음 새 궁궐을 지으려고 잡은 터는 고려 때의 남경 이궁(南京 離宮) 자리였으나 너무 협소하여, 거기서 남쪽으로 조금 옮겨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건물을 배치하고 전각을 세웠다.태조실록 6권 3년 9월 9일[3] 새 궁궐 경복궁은 태조 4년(1395년) 8월 경기좌도의 인부 4,500명, 경기우도 인부 5,000명, 충청도 인부 5,500명을 징용하면서 시작되어, 같은 해 9월 29일에 1차로 완성되었다.[4] 그러나 이 때는 궁궐 내부 중심부만 이루어졌고, 궁궐을 감싸는 궁성이나 궁궐 앞에 세워지는 의정부나 육조 등의 관청은 몇 해 뒤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5]

그 해인 1395년 음력 10월 태조는 입궐하면서 정도전에게 새 궁궐과 주요 전각의 명칭을 지어 올리게 하였는데, 이때 경복궁의 명칭을 비롯하여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근정문, 정문(현재 광화문) 등 주요 건물의 명칭이 지어졌다. 정도전은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나오는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에서 2자를 따서 “景福宮”(경복궁)이라고 지었다.[2][6] 

 

旣醉以酒(기취이주)-임금이 내리신 술 나 이미 취했네

旣飽以德(기포이덕)-임금의 큰 덕에 배가 이미 부르다네

君子萬年(군자만년)-원컨대 우리 임 천년만년 사시고

介爾景福(개이경복)-큰 복 누리사와 만수무강하옵소서

[출처: 중앙일보] <한자여행>景福-임금의 덕과 만수무강을 기원

 

253 詩經-大雅-生民之什기취(旣醉)-이미 취하여

[대아(大雅) / 생민지십(生民之什) 제3편 기취8장(旣醉八章)]

(1장)

旣醉以酒ㅣ오 旣飽以德호니 (기취이주ㅣ오 기포이덕호니

君子萬年에 介爾景福이로다군자만년에 개이경복이로다 賦也ㅣ라)

이미 술에 취했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가 만년토록 네 큰 복을 크게 하리로다.

○賦也ㅣ라 德은 恩惠也ㅣ라 君子는 謂王也ㅣ라 爾는 亦指王也ㅣ라

○此는 父兄所以答行葦之詩라 言享其飮食恩意之厚하고 而願其受福이 如此也ㅣ라

○부라. 덕은 은혜라. 군자는 왕을 이름이라. 이는 또한 왕을 가리킴이라.

○이는 부형들이 행위의 시에 답한 것이라. 그 음식과 은의의 두터움을 누리고, 그 복을 받음이 이와 같도록 원함이라.

(2장)

旣醉以酒ㅣ오 爾殽旣將하니 (기취이주ㅣ오 이효기장하니

君子萬年에 介爾昭明이로다 군자만년에 개이소명이로다 賦也ㅣ라)


이미 술에 취했고, 네 안주를 이미 올리니

군자가 만년토록 네 밝음을 크게 하리로다.

○賦也ㅣ라 殽는 俎實也ㅣ라 將은 行也ㅣ니 亦奉持而進之意라 昭明은 猶光大也ㅣ라

○부라. 효는 제기에 담아놓은 것이라. 장은 행함이니 또한 받들어 올리는 뜻이라. 소명은 광대함과 같으니라.

俎 : 도마 조, 제기 조

(3장)

昭明有融하니 高朗令終이로다 (소명유융하니 고랑영종이로다

令終有俶하니 公尸嘉告이로다 영종유숙하니 공시가곡이로다 賦也ㅣ라)


밝음이 더욱 성하니 높고 밝아서 마침을 잘하리로다.

마침을 잘함은 시작이 있으니 공의 시동이 좋은 말로 고하도다.

○賦也ㅣ라 融은 明之盛也ㅣ니 春秋傳曰明而未融이라 朗은 虛明也ㅣ라 令終은 善終也ㅣ니 洪範에 所謂考終命이오 古器物銘에 所謂令終令命이 是也ㅣ라 俶은 始也ㅣ라 公尸는 君尸也ㅣ라 周稱王而尸에 但曰公尸는 蓋因其舊니 如秦已稱皇帝而其男女猶稱公子公主也ㅣ라 嘉告는 以善言告之니 謂嘏辭也ㅣ라 蓋欲善其終者는 必善其始하나니 今固未終也ㅣ나 而旣有其始矣니 於是에 公尸ㅣ 以此告之라

○부라. 융은 밝음의 성함이니 『춘추전』에 가로대 밝되 환하지는 않음이라. 랑은 허명이라. 영종은 선종이니 (『서경』) 「홍범」에 이른바 고종명이라. 『고기물명』에 이른바 영종영명이 이것이라. 숙은 비로소라. 공시는 임금의 시동이라. 주나라가 왕이라고 일컫는데 시에 다만 공시라고 이른 것은 대개 그 옛날로 인함이니 마치 진나라가 이미 황제라고 일컬으면서 그 남녀를(아들딸을) 공자와 공주라고 일컫는 것과 같으니라. 가고는 좋은 말로써 고한다는 것이니 복된 말을 이름이라. 대개 그 마침을 잘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그 시작을 잘하니 지금 진실로 마침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이미 그 시작이 있으니 이에 왕의 시동이 이로써 고했느니라.

(4장)

其告維何오 籩豆靜嘉ㅣ어늘 (기곡유하오 변두정가ㅣ어늘

朋友攸攝이 攝以威儀로다붕우유섭이 섭이위의(아)로다 賦也ㅣ라)


그 고함이 무엇인고. 제기가 정결하고 아름답거늘

붕우가 돕는 바가 위의로써 하도다.

○賦也ㅣ라 靜嘉는 淸潔而美也ㅣ라 朋友는 指賓客助祭者ㅣ니 說見楚茨篇하니라 攝은 檢也ㅣ라

○公尸ㅣ 告以汝之祭祀籩豆之薦하니 旣靜嘉矣요 而朋友相攝佐者는 又皆有威儀하야 當神意也ㅣ라 自此至終篇은 皆述尸告之辭니라

○부라. 정가는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움이라. 붕우는 빈객으로 제사를 돕는 자를 가리킴이니, 설명이 초자편에 나타나니라. 섭은 살핌이라.

○공의 시동이 네 제사와 변두에 올린 것으로써 고하니 이미 정결하고 아름답고, 붕우가 서로 잡고 돕는 것은 또한 다 위의가 있어서 신의에 합당하니라. 이로부터 끝 편에 이르기까지는 모두가 시동이 고한 말을 기술한 것이니라.

(5장)

威儀孔時어늘 君子有孝子ㅣ로다 (위의공시어늘 군자유효자(지)ㅣ로다

孝子不匱하니 永錫爾類ㅣ로다효자불궤하니 영석이류ㅣ로다 賦也ㅣ라)

위의가 심히 때에 맞거늘 군자가 효자를 두었도다.

효자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길이 너에게 선함을 주리로다.

○賦也ㅣ라 孝子는 主人之嗣子也ㅣ라 儀禮에 祭祀之終에 有嗣擧奠이라 匱는 竭이오 類는 善也ㅣ라

○言汝之威儀ㅣ 旣得其宜요 又有孝子以擧奠하니 孝子之孝ㅣ 誠而不竭이면 則宜永錫爾以善矣라 東萊呂氏曰君子旣孝而嗣子又孝하니 其孝可謂源源不竭矣로다

○부라. 효자는 주인을 잇는 (큰) 아들이라. 『의례』에 제사를 마침에 유사가 술을 들고 올리니라. 궤는 다함이고, 류는 선함이라.

○너의 위의가 이미 그 마땅함을 얻고, 또 효자가 있어서 술잔을 들어올리니, 효자의 효도가 정성스럽고 끊어지지 아니하면 마땅이 길이 너에게 선으로써 주리라. 동래여씨 가로대 군자가 이미 효도하고 뒤를 이은 아들이 또 효도하니 그 효가 가히 근원하고 근원하여 다하지 않음을 이르도다.

(6장)

其類維何오 室家之壼에 (기류유하오 실가지곤에

君子萬年을 永錫祚胤이로다군자만년을 영석조윤이로다 賦也ㅣ라)

그 선함은 무엇인고. 궁안이 심원하고 엄숙함에

군자가 만년토록 길이 복과 자손을 주리로다.

○賦也ㅣ라 壼은 宮中之巷也ㅣ니 言深遠而嚴肅也ㅣ라 祚는 福祿也ㅣ라 胤은 子孫也ㅣ라 錫之以善이 莫大於此니라

○부라. 곤은 궁중의 후미진 곳이니 심원하고 엄숙함을 말함이라. 조는 복록이라. 윤은 자손이라. 선으로써 줌이 이보다 큼이 없느니라.

(7장)

其胤維何오 天被爾祿하야 (기윤유하오 천피이록하야

君子萬年을 景命有僕이로다 군자만년을 경명유복이로다 賦也ㅣ라)

그 자손은 무엇인고. 하늘이 네게 복을 입혀

군자가 만년토록 큰 명이 따라붙음이 있으리로다.

○賦也ㅣ라 僕은 附也ㅣ라

○言將使爾有子孫者는 先當使爾被天祿하야 而爲天命之所附屬하고 下章은 乃言子孫之事하니라


○부라. 복은 따라붙음이라.

○장차 너로 하여금 자손을 두게 하는 것은 먼저 마땅히 너로 하여금 천록을 입혀서 천명이 따라 붙게 되도록 함을 말하고, 아래 장은 이에 자손의 일을 말함이라.

(8장)

其僕維何오 釐爾女士ㅣ로다 (기복유하오 이이여사ㅣ로다

釐爾女士ㅣ오 從以孫子ㅣ로다 이이여사ㅣ오 從以孫子ㅣ로다 賦也ㅣ라)

그 따라붙음은 무엇인고. 너에게 여사를 주리로다.

너에게 여사를 주고 자손으로써 따르게 하리로다.

○賦也ㅣ라 釐는 予也ㅣ라 女士는 女之有士行者ㅣ니 謂生淑媛하야 使爲之妃(배)也ㅣ라 從은 隨也ㅣ니 謂又生賢子孫也ㅣ라 (旣醉八章이라)

○부라. 이는 줌이라. 여사는 여자가 선비다운 행동이 있는 자이니, 현숙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낳게 하여 배필이 되게 함이라. 종은 따름이니 또 어진 자손을 낳음을 이름이라. (기취8장이라)

旣醉八章 章四句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502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qVm-IgUp0nY 

 

https://www.youtube.com/watch?v=d-f0-b8vj8U 

 

 

https://www.youtube.com/watch?v=XlNd6vO1KtI 

 

 

https://www.youtube.com/watch?v=QalpUsHBnQg 

 

 

https://www.youtube.com/watch?v=vBSXA6AdI1g 

 

 

 

 

 

 

 

https://www.youtube.com/watch?v=Q_WuGWK-XlI

 

 

https://www.youtube.com/watch?v=yWZOTE_6U74 

 

https://www.youtube.com/watch?v=VuPZ6UoM9Dw 

 

 

https://www.youtube.com/watch?v=t75nSrs_4mo&t=269s 

 

 

https://www.youtube.com/watch?v=5TuUWfqwOD0&t=85s 

 

https://www.youtube.com/watch?v=gG0JgUyObRc 

 

https://www.youtube.com/watch?v=5gW0IkTuUxA 

 

https://www.youtube.com/watch?v=Z9s3yIDJz-U 

 

https://www.youtube.com/watch?v=iNyplH5GrJc&t=92s 

 

https://www.youtube.com/watch?v=FJJeFfpi7Ag 

 

 

https://www.youtube.com/watch?v=r5rCpCcLTiA 

 

 

https://www.youtube.com/watch?v=Sd8ZL1pEADc 

 

 

 

https://www.youtube.com/watch?v=8sKA9nGKN9o 

 

https://www.youtube.com/watch?v=dUuF6-0_jYE 

 

https://www.youtube.com/watch?v=XVuX28oe4to 

 

 

https://ko.wikipedia.org/wiki/%EC%9C%A1%EC%98%81%EC%88%98

 

육영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육영수(陸英修, 1925년 11월 29일 ~ 1974년 8월 15일)는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의 배우자이다. 본관은 옥천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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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배화고등여학교에 입학하였다. 배화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후, 1945년 21세 때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에 부임, 가사 과목 교사로 1년 3개월간 재직했다.[3]

1969년 4월 어린이 복지재단인 육영재단을 설립하였으며 어린이날에 맞춰 어린이대공원어린이회관의 건립을 주도하였다.[6] 1972년에는 부산 어린이회관을 기공하였다. 육영수는 직접 소년소녀 잡지 ‘어깨동무’를 발간하여 농어촌 어린이에게까지 배포하고, 1973년 불우 청소년과 빈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 기관 정수직업훈련원을 설치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fIqGOtwF6wM 

 

 

https://www.youtube.com/watch?v=mcRLTOiYJdA 

 

https://www.youtube.com/watch?v=n4hgw42P2eY

 

 

 

https://www.youtube.com/watch?v=1Wcy94RUxqc 

 

 

https://ko.wikipedia.org/wiki/%EC%98%A5%EC%B2%9C_%EC%9C%A1%EC%98%81%EC%88%98_%EC%83%9D%EA%B0%80

 

옥천 육영수 생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옥천 육영수 생가(沃川 陸英修 生家)는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2002년 4월 26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ko.wikipedia.org

 

 

https://www.youtube.com/watch?v=Zb60X237YOk 

 

https://www.youtube.com/watch?v=sz6ilz8Uy_U&t=247s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1915~2000)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https://www.youtube.com/watch?v=LH7bkqLF5kE&t=48s 

 

내가 가끔 참여하는 여행사의 금주 옥천여행 코스에 육영수여사의 생가와 짚앞 연꽃 풍경 탑재한 글이 있어 여기 소개합니다.

 

https://cafe.daum.net/sixsungwon/aeDd/4492

 

Daum 카페

 

cafe.daum.net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20/2014082003649.html?csmain

 

⑧나환자촌 가가호호 방문해 환자 손 일일이 잡아준 육 여사

⑧나환자촌 가가호호 방문해 환자 손 일일이 잡아준 육 여사

premium.chosun.com

 

한하운 시인은 그날의 소감을 ‘육여사님 수행기’라는 글로 남겼다.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그해 8월 29일, 전국 87개 나환자정착촌 대표들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여성회관에 모여 고인의 나환자들에 대한 사랑과 구라사업(救癩事業·나환자구제사업)을 기리는 ‘육영수 여사 추모회’를 가졌다. 한하운 시인은 그 자리에서 추모시를 낭송했는데 그 시의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한하운(韓何雲, 1920년 3월 20일 ~ 1975년 2월 28일)시인

육영수 여사 추모시

한하운(韓何雲, 1920 - 1975)

가시는 걸음 걸음
외로운 사람을
가난한 사람을
슬픈 사람을
병든 사람을
문둥이 촌을 언제나 찾아 삶을 주신
이 지고하고 지순한 대자비심은

한국인으로서 아니 세계의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하신 분이 있었던가
오직 님만이 하셨던 일이 아니겠습니까


18대 大選 朴의 '소록도 대첩' 비밀

湖南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긴 단 한곳… 소록도는 왜?

1 vs 1838
투표 주민 431명 중 62%
270명이 朴대통령 찍어
영남 출신 주민 많다지만
민주 아성서 이례적 승리

“울엄마 딸 찍는 게 당연하지”
“故 육영수 여사는 우리
한센병 환자들의 어머니”
“굶주릴 때 돼지 사주고
배고픔서 해방시켜준 분”

육 여사, 생전 각별한 애정
소록도에 양로원 건립 지원
준공식 참석 못하고 서거…
주민들이 공적비 세워 기려

朴대통령, 2007년 방문
그해 경선에서 패했을 땐
일부 주민들 울기도…
“임기중 꼭 다시 찾아주세요”

 

[참고] 솔록도는 현재 고흥군 천사대교 끝에 위치함

https://www.youtube.com/watch?v=bUpTvkxYkug 

 

 

https://www.youtube.com/watch?v=iEBhxwqYmts&list=RDCMUCkWJBYc2KuB8JMmsb379K9A&start_radio=1&rv=iEBhxwqYmts&t=105 

 

 

 

https://www.youtube.com/watch?v=Sd8ZL1pEADc 

 

 

https://www.youtube.com/watch?v=SnLLqBMpykU&t=32s 

 

 

▲ 지난 1961년 시청앞에서 열린 육사생들의 5.16 군사쿠데타를 지지하는 퍼레이드를 박정희 소장, 박준규, 차지철 등 혁명군들이 지켜보는 모습

 

 

https://www.youtube.com/watch?v=2Y_mnS7KrfI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의 역사를 살펴보고, 기념관을 통해 조국근대화를 향한 그분의 투혼과 지존의 내외분이 총탄에 의해 삶을 마감한 영욕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동영상을 통해 경호대장 차지철과 중정부장 김재규의 갈등이  10.26 사건의 빌미가 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육사 생도들을  거리 행진에 동원하여 두터운 신뢰감을 준 것도.

 

 

https://kydong77.tistory.com/10225?category=486747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묘소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0) http://kydong77.tistory.com/9223 5~9대 박정희 재임 1963~1979 1961년 중1때 함창 점촌 경계 삼거리에서 쉬다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육군중장 장도영, 육군소장 박정희 이름이 박힌,

kydong77.tistory.com

 

 

https://ko.wikisource.org/wiki/5%C2%B716_%ED%98%81%EB%AA%85_%EA%B3%B5%EC%95%BD

 

5·16 혁명 공약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반공(反共)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유엔헌장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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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혁명공약
저자국가재건최고회의

  1. 반공(反共)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력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5. 민족의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국가재건최고회의

 

https://www.youtube.com/watch?v=XSFgb1mUAVI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A0%95%ED%9D%AC

 

박정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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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朴正熙,[4] 1917년 11월 14일 ~ 1979년 10월 26일) 본관은 고령. 호는 중수(中樹)이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국가변란 성격의 5·16 군사 정변을 주도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어 "군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깨면서 군복을 벗고 직선제로 치루어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등 1963년 12월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되어 제5·6·7·8·9대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다. 국가재건사업을 추진하여 1968년부터 경부고속도로 기공 및 개통, 서울 지하철 기공 및 개통, 농촌의 현대화 운동이었던 새마을 운동, 대규모 중화학 공업 건설 및 육성, 민둥산의 기적인 산림녹화 사업, 식량 자급자족 실현 등 국가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여 국가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3선 개헌 및 유신헌법 등의 장기 집권을 반대하던 여야 및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1979년 10월 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으로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중정부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 당하였다.

 

https://namu.wiki/w/%EB%B0%95%EC%A0%95%ED%9D%AC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

5.16 군사정변으로 장면 내각을 전복한 후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3선 개헌과 10월 유신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해 독재자의 길을 걸었으며, 임기와 생을 측근의 암살로 마감하였다.

경상북도 구미시 출신, 본관은 고령 박씨이며, 호는 중수(中樹)이다. 제18대 대통령인 박근혜의 부친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8ZL1pEADc 

 

 

2012년 개관한 박정희도서관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169780/1

 

천덕꾸러기 박정희도서관

2015년 가을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사한 워킹맘 박지혜(33) 씨는 주말을 맞아 남편과 네 살배기 딸을 데리고 집 근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박정희도서관)을 찾았다. 출퇴…

weekly.donga.com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재개관....전시공간 전면 리모델링/2019.3.1.

기념관과 도서관으로 명칭-기능 분리/ 어깨동무(어린이도서관)

http://m.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6328&Newsnumb=2019036328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재개관....전시공간 전면 리모델링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재개관....전시공간 전면 리모델링

m.monthly.chosun.com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이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으로 인식되면서, 반(反)박정희세력 및 마포구 지역 정치인들이 기념관 기능을 없애고 마포구 주민들을 위한 공공도서관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해 온 데 대한 응답이다.

박정희도서관은 박정희 대통령 및 한국현대사 관련 연구자료들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도서관 및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어린이박물관인 어깨동무스토리움, 어린이용 도서관인 어깨동무도서관 등도 새로 마련되었다.

 

https://www.google.com/maps/place/%EB%B0%95%EC%A0%95%ED%9D%AC%EB%8C%80%ED%86%B5%EB%A0%B9%EA%B8%B0%EB%85%90%EA%B4%80/@37.5766239,126.8763015,13.1z/data=!4m5!3m4!1s0x0:0x91a99f9f4fd632db!8m2!3d37.5748895!4d126.88636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로 386

★★★★☆ · 박물관

www.google.com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로 386

02-716-9345

 

https://www.youtube.com/watch?v=iNyplH5GrJc 

 

 

https://www.youtube.com/watch?v=gG0JgUyObRc&feature=emb_title

 

https://www.youtube.com/watch?v=yvPmViOiN9c 

 

조국 번영의 터전을 닦은 이들은 이제 이땅의 젊은이들로부터 '꼰대'라 불리우며 외면당하니 이 일을 유야믄 좋노?

서독 노동자 파견이후 목숨을 건 월남파병 등을 통한 외화벌이로 조국근대화의 터전을 마련하여, OECD 기준 명목GDP순위는 세계 10위권까지 이르렀건만.

 

https://www.youtube.com/watch?v=5TuUWfqwOD0 

 

 

 

https://www.youtube.com/watch?v=eBBd425-zHw 

 

 

 

https://www.youtube.com/watch?v=V_xYeDoXP_s 

 

박정희 대통령이 타던 전용차

 

백영훈(중아대교수, 독일 경제학 박사 출신) 통역사 - 독일 차관 1등 공신

독일광산 - 광부 5천명, 간호사 2천명 파견 조건

광부 -  47,000명지원(고졸 위장 포함), 간호사- 25,000명 지원

https://www.youtube.com/watch?v=uj7DBSRM2SE

 

 

 

 

https://www.youtube.com/watch?v=R5WS7oQSyLw 

 

 

https://www.youtube.com/watch?v=9bFrESIzLBg&list=RDCMUCjPqSbyqm5IZEoXu7I-KPag&index=2 

 

 

갈등의 폭발, 김재규 vs 차지철 

https://www.youtube.com/watch?v=zaw03sPeHCA&list=RDCMUCjPqSbyqm5IZEoXu7I-KPag&index=3 

 

https://www.youtube.com/watch?v=out7tIZWe5I 

 

https://www.youtube.com/watch?v=tH7e-jnBWCo 

 

https://ko.wikipedia.org/wiki/10%C2%B726_%EC%82%AC%EA%B1%B4

 

10·26 사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0·26 사건날짜1979년 10월 26일시간오후 7시 41분위치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안가(현 청운효자동 무궁화동산)가해자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중앙정보부 의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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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7시 41분, 신재순이 심수봉의 반주에 맞춰 '사랑해'라는 노래를 부르던 중 김재규가 발터 PPK를 꺼내 쏘자 차지철의 오른쪽 손목을 맞혔고, 차지철은 실내 화장실로 달아났다. 이어 박정희의 가슴을 향해 쏘았다. 박정희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 총소리가 들리는 순간,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는 대기실에서 대통령 경호부처장 안재송과 대통령 경호처장 정인형을 차례로 쏘아 죽였고,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 박흥주 역시 경비원과 같이 주방에 있던 경호원을 죽였다.

김재규가 총구를 차지철에게 조준했고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계속 저항하는 가운데 김재규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이 격발불량을 일으켜 고장났다. 그때 정전되었으며 김재규는 연회장을 빠져나가 1층 로비로 갔다.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박선호가 나타났고 김재규는 고장난 발터를 박선호의 스미스 앤 웨슨 M36 치프 스페셜 리볼버와 맞바꾸었다.

박선호는 탐색하러 갔고 김재규는 연회장으로 다시 들어갔는데 심수봉과 신재순이 총에 맞아 쓰러진 박정희를 부축하고 있었다. 차지철은 화장실에 숨었다 다시 나와 경호원을 찾으러 나가려는 순간 다시 김재규가 들어왔다. 차지철은 김재규에게 장을 던져 총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김재규는 이를 피한 후 차지철의 폐와 복부를 향해 총을 쏘아 차지철이 맞고 그대로 엎어졌다. 김재규는 박정희 앞으로 다가와 총을 겨누었고 심수봉과 신재순은 도망쳐 숨었다. 김재규는 쓰러진 박정희의 후두부에 총을 쏘았다. 오른쪽 귀 윗부분에서 들어간 총알은 지주막을 꿰뚫고서 박정희의 왼쪽 콧잔등 밑에 박혔다. 머리 총상은 치명상이었다.

 

[심수봉 목격담]

"신재순이 '사랑해'를 부르는데 김재규가 총을 쏘았다."

그 노래는 연속극 ost로 들어 본다.

 

 Loving you - Chae Rim (MBC 1999)

https://www.youtube.com/watch?v=d422BHo2Ni4 

 

https://www.youtube.com/watch?v=0vRlFY6zSBc 

 

https://www.yna.co.kr/view/AKR20110512224800001

 

<5.16 쿠데타 50년..주역들 역사 뒤안길로>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한국 현대정치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던 `5ㆍ16 쿠데타'가 오는 16일로 50주년을 맞는다.

www.yna.co.kr

 

https://www.youtube.com/watch?v=5TuUWfqwOD0

 

 

https://www.youtube.com/watch?v=fRS8QhfsiRQ 

 

 

 

https://www.youtube.com/watch?v=rEREXwJ2P9Q 

 

 

https://www.google.com/maps/place/%EB%B0%95%EC%A0%95%ED%9D%AC%EB%8C%80%ED%86%B5%EB%A0%B9%EA%B8%B0%EB%85%90%EA%B4%80/@37.5766239,126.8763015,13.1z/data=!4m5!3m4!1s0x0:0x91a99f9f4fd632db!8m2!3d37.5748895!4d126.886369

 

박정희대통령기념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로 386

★★★★☆ · 박물관

www.google.com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로 386

02-716-9345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801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1948~현재〉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B%8C%80%ED%86%B5%EB%A0%B9_%EB%AA%A9%EB%A1%9D

 

대한민국의 대통령 목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대한민국의 대통령 목록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명단이다. 역대 대통령 목록   민주당계 정당   보수정당 대 대통령 임기 득표율 정당 사진 이름 취임일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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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목록

  민주당계 정당

  보수정당

대대통령임기득표율정당사진이름취임일퇴임일

1   이승만
(1875 ~ 1965)
  1948년 7월 24일 1952년 8월 14일 1948년 대선
  — 91.8% (국회 간선, 180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1948 ~ 1951)
자유당 (1951 ~ 1960)
2 1952년 8월 15일 1956년 8월 14일 1952년 대선
  — 74.6% (직선, 5,238,769표)
3 1956년 8월 15일 1960년 4월 27일 1956년 대선
  — 70.0% (직선, 5,046,437표)
허정 외무부 장관이 권한대행 (1960년 4월 27일 ~ 1960년 6월 15일)
곽상훈 민의원 의장이 권한대행 (1960년 6월 16일 ~ 1960년 6월 23일)
허정 국무총리가 권한대행 (1960년 6월 23일 ~ 1960년 8월 7일)
백낙준 참의원 의장이 권한대행 (1960년 8월 8일 ~ 1960년 8월 12일)
4   윤보선
(1897 ~ 1990)
  1960년 8월 12일 1962년 3월 22일 1960년 대선
  — 79.1% (국회 간선, 208표)
민주당 (1960)
무소속 (1960 ~ 1962)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권한대행 (1962년 3월 22일 ~ 1963년 12월 16일)
5   박정희
(1917 ~ 1979)
  1963년 12월 17일 1967년 6월 30일 1963년 대선
  — 46.6% (직선, 4,702,640표)
민주공화당
6 1967년 7월 1일 1971년 6월 30일 1967년 대선
  — 51.4% (직선, 5,688,666표)
7 1971년 7월 1일 1972년 12월 26일 1971년 대선
  — 53.2% (직선, 6,342,828표)
8 1972년 12월 27일 1978년 12월 26일 1972년 대선
  — 99.9% (대의원 간선, 2,357표)
9 1978년 12월 27일 1979년 10월 26일 1978년 대선
  — 99.8% (대의원 간선, 2,577표)
최규하 국무총리가 권한대행 (1979년 10월 26일 ~ 1979년 12월 6일)
10   최규하
(1919 ~ 2006)
  1979년 12월 6일 1980년 8월 16일 1979년 대선
  — 96.3% (대의원 간선, 2,465표)
무소속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가 권한대행 (1980년 8월 16일 ~ 1980년 8월 27일)
11   전두환
(1931 ~ )
  1980년 8월 27일 1981년 2월 24일 1980년 대선
  — 99.4% (대의원 간선, 2,524표)
무소속 (1980 ~ 1981)
민주정의당 (1981 ~ 1988)
12 1981년 2월 25일 1988년 2월 24일 1981년 대선
  — 90.1% (선거인단 간선, 4,755표)
13   노태우
(1932 ~ )
  1988년 2월 25일 1993년 2월 24일 1987년 대선
  — 36.6% (직선, 8,282,738표)
민주정의당 (1988 ~ 1990)
민주자유당 (1990 ~ 1992)
무소속 (1992 ~ 1993)
14   김영삼
(1929 ~ 2015)
  1993년 2월 25일 1998년 2월 24일 1992년 대선
  — 42.0% (직선, 9,977,332표)
민주자유당 (1993 ~ 1995)
신한국당 (1995 ~ 1997)
무소속 (1997 ~ 1998)
15   김대중
(1924 ~ 2009)
  1998년 2월 25일 2003년 2월 24일 1997년 대선
  — 40.3% (직선, 10,326,275표)
새정치국민회의 (1998 ~ 2000)
새천년민주당 (2000 ~ 2002)
무소속 (2002 ~ 2003)
16   노무현
(1946 ~ 2009)
  2003년 2월 25일 2004년 3월 12일 2002년 대선
  — 48.9% (직선, 12,014,277표)
새천년민주당 (2003)
무소속 (2003 ~ 2004)
고건 국무총리가 권한대행 (2004년 3월 12일 ~ 2004년 5월 14일)
2004년 5월 14일 2008년 2월 24일 탄핵 소추 기각 무소속 (2004)
열린우리당 (2004 ~ 2007)
무소속 (2007 ~ 2008)
17   이명박
(1941 ~)
  2008년 2월 25일 2013년 2월 24일 2007년 대선
  — 48.7% (직선, 11,492,389표)
한나라당 (2008 ~ 2012)
새누리당 (2012 ~ 2013)
18   박근혜
(1952 ~ )
  2013년 2월 25일 2017년 3월 10일 2012년 대선
  — 51.6% (직선, 15,773,128표)
새누리당 (2013 ~ 2017)
자유한국당 (2017)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 (2016년 12월 9일 ~ 2017년 3월 10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 (2017년 3월 10일 ~ 2017년 5월 10일)
19   문재인
(1953 ~ )
  2017년 5월 10일   2017년 대선
  — 41.1% (직선, 13,423,800표)
더불어민주당

 

https://www.youtube.com/watch?v=yW4d4MWZUAY 

 

[의견] 벌받는 기분으로 비좁아 터진 전시관 내부를 돌아야 하는 협소한 박정희대통령기념관도 하단의 노벨평화상기념관을 참고하여 제대로 된 기념관 전용의 전시공간을 마련할 날을 기다려 본다. 그분의 부정적 평가에 침을 뱉더라도 한국 경제를 세계 10위권에 진입시키는 원동력을 마련한 그분의 근대화 치적 역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필요충분조건에 부합한다.

따라서 건물 아래의 표지판도 '기념관' 하나면 족하다. 부대시설은 안내판을 마련하면 된다. 도로에서 보면 유독 '어깨동무'만 돋보이게 여러 가지 색채의 글씨로 크게 썼다. 내게만 행정 당국의 편가르기 심뽀가 보이는건가? 그 건물이 그렇게 못마땅하면 침을 뱉을 지나가시라.

뭣보다도 도로에 기념관의 진입로 안내표지판부터 설치하고, 서울 관광코스에 넣는 일도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되겠다. 나는 첨엔 거눌 유지 운영비를 충당하려 '어개동무' 출판사를 세들인 것쯤으로 짐작했다.

 

[목포]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

 

[국립묘지에 잠든 친구들]

삼가 문경 영순 손종욱님과 대전 권태석님의 명복을 빕니다.

https://kydong77.tistory.com/10218?category=486747 

 

손종욱의 묘/현충원

고 손종욱님은 고등학교 동기이고 대학은 같은 학과 한 해 선배이다. 수석입학에 재학시절 도서관을 지켰고 학교신문에 다른 학생과 문학에 대한 비평 논쟁도 여러 차레 벌렸다. 재학중 입대하

kydong77.tistory.com

 

https://kydong77.tistory.com/10219?category=486747 

 

권태석의 묘/현충원

고 권태석님은 대학동기로 학교신문 기자 활동을 했고 재학중 입대하여 대방동에서 부대장 아들 과외지도를 했는데 방성자 사건으로 귀대하여 순직했다. 얼굴에는 언제나 순수와 재기와 웃음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ew0G09K1Ix4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06/01/RP5OY3JQRNGRHOKVMZX5IXB7WE/

 

윤석열, 이르면 7월 국민의힘 입당

 

www.chosun.com

 

https://www.youtube.com/watch?v=o62muPbmfR4&t=60s 

 

https://www.youtube.com/watch?v=t6vTd2mGhb0 

 

 

백영훈(중아대교수, 독일 경제학 박사 출신) 통역사 - 독일 차관 1등 공신

독일광산 - 광부 5천명, 간호사 2천명 파견 조건

광부 -  47,000명지원, 간호사- 25,000명 지원

https://www.youtube.com/watch?v=uj7DBSRM2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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