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7146
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2357
왕건(王建)이 개국할 것을 짐작하고 상서하기를,
“계림황엽곡령청송(鷄林黃葉鵠嶺靑松)”이라 하였다.
신라가 망하고 송도(松都)가 흥한다는 이 글을 보고 왕은 크게 노하였고,
최치원은 이후 해인사와 경주 남산 등에 숨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www.youtube.com/watch?v=icSLjfo0LIs
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7711
최치원, 사산비명(四山碑銘)/ 격황소서(檄黃巢書) · 雙女墳傳記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search/지리산쌍계사진감선사대공령탑비명
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685
①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 터에 있는
숭엄산성주사대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崇嚴山聖住寺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銘)주 01),
②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경내에 있는
지리산쌍계사진감선사대공령탑비명(智異山雙溪寺眞鑑禪師大空靈碑銘)주 02),
③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면 말방리 대숭복사에 있었던 초월산대숭복사비명(初月山大崇福寺碑銘),
www.yna.co.kr/view/AKR20150430188300053
④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면 원북리 봉암사 경내에 있는
희양산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명(曦陽山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銘)주 03)
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61103.010220756420001
최치원이 무덤 앞에 있는 석문(石門)에다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어느 집 두 아가씨 이 버려진 무덤에 깃들어/
적막한 지하에서 몇 해나 봄을 원망했나/
그 모습 허공을 맴돌고 시냇가는 달빛뿐이며/
성도 이름도 묻기 어려운 무덤에는 먼지뿐이네/
고운 그대들 그윽한 꿈에서 만날 수 있다면/
나그네의 긴긴 밤 위로가 될 텐데/
외로운 관사에서 비와 구름이 만난 듯/
그대들과 더불어 낙신부(洛神賦)를 읊고 싶네’
쓰기를 마치고 초현관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달은 밝고 바람이 맑아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거니는데 홀연히 한 여인이 나타났다. 작약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그 여인은 손에 붉은 주머니를 쥐고 앞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팔낭자와 구낭자가 선생님께 말을 전하라면서 ‘아침에 특별히 어려운 걸음 하시고 거기다 좋은 글까지 주시어서 감사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낭자께서 각각 화답하신 글을 써 주시기에 이렇게 명령을 받들어 올립니다."
최치원이 그녀를 돌아보고 놀라며 어떤 낭자인지, 사는 곳이 어딘지 물었다. 여자가 말했다.
“아침에 덤불을 헤치고 돌을 쓸어내어 시를 쓰신 곳이 바로 두 낭자가 사는 곳입니다."
최치원이 그제야 깨닫고 첫째 주머니를 보니, 팔낭자가 최치원에게 화답한 시였다. 그 시다.
‘한을 품고 외로운 무덤에 기댄 영혼/
붉은 뺨 버들눈썹 봄을 맞은 듯/
학을 타고 삼신산을 어렵게 헤매다가/
이 몸 헛되이 떨어져서 구천의 티끌 되었네요/
살아서는 외간남자 부끄러워했지만/
오늘은 낯모르는 이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답니다/
시로 하신 말씀이 부끄럽게도 저의 마음 알아주시니/
고개 늘여 기다리며 마음 아파합니다’
이어서 둘째 주머니를 보니 바로 구낭자의 것이었다. 그 시다.
‘오가는 이 누가 길가 무덤 돌아보겠습니까/
난새 거울과 원앙 이불엔 먼지만 일어나네요/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고/
꽃이 피고 지니 세상은 봄이랍니다/
매양 진녀처럼 속세 떠나기를 원했고/
임희(任姬)의 사랑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모셔서 양왕이 누렸던 운우의 꿈을 드리고자 하나/
이 생각 저 생각에 마음만 상합니다’
또 뒤쪽에도 글이 쓰여 있었다.
‘성명을 감춘다고 이상하게 생각 마세요/
외로운 영혼 세상 사람이 두렵네요/
마음속을 다 말하고 싶으니/
잠시 서로 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지요’
xn--vg1b002a5sdzqo.kr/read.php3?no=6300&read_temp=20070603§ion=6
[뉴스] 윤석열 총장 징계
www.chosun.com/national/2020/12/06/ZIJJNYM7LRDRVDOPQQAEV4PVGA/
imnews.imbc.com/replay/2020/nw1700/article/6016661_32510.html
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0/12/06/KQNHIGHYEBCKDKYRY4GL4XO2RQ/
'문화예술 역사 > 역사 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십리 공원에서 만나는 위인들, 고산자 · 김소월 · 무학대사 (0) | 2021.03.13 |
---|---|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 (0) | 2020.12.17 |
유홍준, 한반도 보트피플의 후예 쇼토쿠태자의 등장과 불교문화 흥기 (0) | 2020.11.25 |
진중근, 산업화의 원동력은 군사문화/ 정보화시대의 창조경제 外 (0) | 2020.11.24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0) | 2020.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