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7146

 

상서장(上書莊)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상북도 기념물 제46호. 신라 말엽의 뛰어난 문필가 최치원(崔致遠)이 머무르면서 공부하던 곳이라 전한다. 그는 사양길에 접어든 신라의 국운을 쇄신하는 경륜을 담은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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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2357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재 전하지 않으므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최치원의 이같은 시무책은 통일신라의 집권체제가 극도로 해이해지고 골품제사회(骨品制社會)의 누적된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야기된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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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王建)이 개국할 것을 짐작하고 상서하기를,

“계림황엽곡령청송(鷄林黃葉鵠嶺靑松)”이라 하였다.

신라가 망하고 송도(松都)가 흥한다는 이 글을 보고 왕은 크게 노하였고,

최치원은 이후 해인사와 경주 남산 등에 숨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www.youtube.com/watch?v=icSLjfo0LIs

 

adipo.tistory.com/entry/%EC%B5%9C%EC%B9%98%EC%9B%90-%EC%8B%9C%EB%AC%B410%EC%A1%B0-%ED%9B%88%EC%9A%9410%EC%A1%B0-%EC%B5%9C%EC%8A%B9%EB%A1%9C-%EC%8B%9C%EB%AC%B428%EC%A1%B0-%EC%B5%9C%EC%B6%A9%ED%97%8C-%EB%B4%89%EC%82%AC10%EC%A1%B0

 

최치원 시무10조, 훈요10조, 최승로 시무28조, 최충헌 봉사10조

● 최치원 시무 10조 - 신라 하대 - 당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6두품 최치원, 진성여왕 - ​원문이 정확히 전하지는 않지만, 당시 신라의 폐쇄적 골품제를 비판하고,    과거제 실시와 유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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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7711

 

최치원(崔致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라 골품제에서 6두품(六頭品)으로 신라의 유교를 대표할 만한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최씨 가문출신이다. 특히, 최씨 가문 중에서도 이른바 ‘신라 말기 3최(崔)’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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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사산비명(四山碑銘)/ 격황소서(檄黃巢書) · 雙女墳傳記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search/지리산쌍계사진감선사대공령탑비명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kydong77.tistory.com/12021 205.凡人所生者神也(범인소생자신야), 무릇 사람이 살아 있음은 정신이 있기 때문이요 206.所托者形也(소탁자형야). 정신이 의탁하는 것은 그 육체다. ........ 214.神者生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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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685

 

사산비명(四山碑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라 불교사에서 우뚝한 위치를 차지하는 세 선사(禪師)의 일생 행적과 화엄종 계열의 왕실 원찰(願刹)인 대숭복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문으로서, 사비명(寺碑銘)의 찬술은 『문선(文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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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 터에 있는

숭엄산성주사대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崇嚴山聖住寺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銘)주 01),

 

kydong77.tistory.com/8796

 

보령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명 및 서문/사산비명

랑혜화상탑비 http://blog.daum.net/yspum6022/15689161 번역문 http://blog.daum.net/yspum6022/15689161 藍浦 聖住寺 朗慧和尙 白月葆光塔碑銘 無染和尙碑銘 竝序奉敎撰下同 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銘 (낭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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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경내에 있는

지리산쌍계사진감선사대공령탑비명(智異山雙溪寺眞鑑禪師大空靈碑銘)주 02),

 

kydong77.tistory.com/3576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영탑비명/ 사산비명

http://blog.naver.com/gamrae007/100087501517 유당 신라국 고 강주 지리산 쌍계사 교시 진감선사 대공영탑비명 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大空靈塔碑 전서국 도통순관 시어사 내봉공 사 자금어대 신 최치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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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면 말방리 대숭복사에 있었던 초월산대숭복사비명(初月山大崇福寺碑銘),

 

kydong77.tistory.com/3550

 

경주 초월산 숭복사 비명 /사산비명

숭복사비 받침석 쌍귀부[경주박물관] [숭복사지 사진] http://blog.daum.net/chgon/7717725 http://blog.daum.net/vmffktlqh/15855050 [소재지]숭복사비 崇福寺碑: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경주초월산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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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na.co.kr/view/AKR20150430188300053

 

최치원 지은 사산비명(四山碑銘) 경주 숭복사비 복원 | 연합뉴스

최치원 지은 사산비명(四山碑銘) 경주 숭복사비 복원, 임상현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15-04-30 17:40)

www.yna.co.kr

 

 

④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면 원북리 봉암사 경내에 있는

희양산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명(曦陽山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銘)주 03)

 

kydong77.tistory.com/3597

 

문경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명/ 사산비명

[주]최치원 선생의 문장이 명문이라 하나 한문은 읽을 수 없고. 한글 번역을 보아도 많은 불교 용어에다 작가의 문장 핵심이 드러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에 본인은 문이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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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daum.net/revelation2/784

 

[스크랩]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을 가다-1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을 가다-1                     ①문경 봉암사(鳳巖寺) 지증대사 적조탑비(智證大師 寂照塔碑) 사산비명(四山碑銘)이란 '네 군데 산(山)에 남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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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ong77.tistory.com/search/%EC%A7%80%EB%A6%AC%EC%82%B0%EC%8C%8D%EA%B3%84%EC%82%AC%EC%A7%84%EA%B0%90%EC%84%A0%EC%82%AC%EB%8C%80%EA%B3%B5%EB%A0%B9%ED%83%91%EB%B9%84%EB%AA%85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kydong77.tistory.com/12021 205.凡人所生者神也(범인소생자신야), 무릇 사람이 살아 있음은 정신이 있기 때문이요 206.所托者形也(소탁자형야). 정신이 의탁하는 것은 그 육체다. ........ 214.神者生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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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61103.010220756420001

 

[선비들의 사랑이야기 .10] 외로운 영혼 세상 사람이 두렵네요- 최치원과 두 소녀(上)

당나라 현위로 재직하던 최치원정혼 거부하다 죽은 두 소녀 무덤안타까운 마음에 찾아가 애도난징에 전하는 ‘쌍녀분’ 이야기무덤 발견돼 전설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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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무덤 앞에 있는 석문(石門)에다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어느 집 두 아가씨 이 버려진 무덤에 깃들어/

적막한 지하에서 몇 해나 봄을 원망했나/

그 모습 허공을 맴돌고 시냇가는 달빛뿐이며/

성도 이름도 묻기 어려운 무덤에는 먼지뿐이네/

고운 그대들 그윽한 꿈에서 만날 수 있다면/

나그네의 긴긴 밤 위로가 될 텐데/

외로운 관사에서 비와 구름이 만난 듯/

그대들과 더불어 낙신부(洛神賦)를 읊고 싶네’

 

쓰기를 마치고 초현관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달은 밝고 바람이 맑아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거니는데 홀연히 한 여인이 나타났다. 작약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그 여인은 손에 붉은 주머니를 쥐고 앞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팔낭자와 구낭자가 선생님께 말을 전하라면서 ‘아침에 특별히 어려운 걸음 하시고 거기다 좋은 글까지 주시어서 감사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낭자께서 각각 화답하신 글을 써 주시기에 이렇게 명령을 받들어 올립니다."

최치원이 그녀를 돌아보고 놀라며 어떤 낭자인지, 사는 곳이 어딘지 물었다. 여자가 말했다.

“아침에 덤불을 헤치고 돌을 쓸어내어 시를 쓰신 곳이 바로 두 낭자가 사는 곳입니다."

최치원이 그제야 깨닫고 첫째 주머니를 보니, 팔낭자가 최치원에게 화답한 시였다. 그 시다.

‘한을 품고 외로운 무덤에 기댄 영혼/

붉은 뺨 버들눈썹 봄을 맞은 듯/

학을 타고 삼신산을 어렵게 헤매다가/

이 몸 헛되이 떨어져서 구천의 티끌 되었네요/

살아서는 외간남자 부끄러워했지만/

오늘은 낯모르는 이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답니다/

시로 하신 말씀이 부끄럽게도 저의 마음 알아주시니/

고개 늘여 기다리며 마음 아파합니다’

이어서 둘째 주머니를 보니 바로 구낭자의 것이었다. 그 시다.

‘오가는 이 누가 길가 무덤 돌아보겠습니까/

난새 거울과 원앙 이불엔 먼지만 일어나네요/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고/

꽃이 피고 지니 세상은 봄이랍니다/

매양 진녀처럼 속세 떠나기를 원했고/

임희(任姬)의 사랑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모셔서 양왕이 누렸던 운우의 꿈을 드리고자 하나/

이 생각 저 생각에 마음만 상합니다’



또 뒤쪽에도 글이 쓰여 있었다.



‘성명을 감춘다고 이상하게 생각 마세요/

외로운 영혼 세상 사람이 두렵네요/

마음속을 다 말하고 싶으니/

잠시 서로 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지요’

 

 

blog.daum.net/yoji88/685

 

양저우(揚州), 최치원기념관을 둘러보다(2~2) 33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데는 입장료를 받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는 오른 쪽으로 최치원기념관을 먼저 보러 갑니다 연화각(蓮花閣)의 전경을 한 장 담으면서 걸어갑니다 2007년 10월에 만든 한중수

blog.daum.net

 

xn--vg1b002a5sdzqo.kr/read.php3?no=6300&read_temp=20070603&section=6

 

파인뉴스

중국 양주에는 최치원 기념관이 있다.최치원 (崔致遠 ; 857~?)그는 누구인가? 당나라 시대에 황소의 난을 글로 평정 입력시간 : 2007. 06.03. 00:00중국 양주시 고은선생의 기념관최치원 선생은 신라시

xn--vg1b002a5sdzqo.kr

 

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3609ksk&logNo=130025898667&categoryNo=9&proxyReferer=&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최치원(崔致遠)과 쌍녀분(雙女墳)

최치원(崔致遠)과 쌍녀분(雙女墳) 2007년 10월 중국은 양저우항에 있는 장쑤현에 <최치원 기념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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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윤석열 총장 징계

www.chosun.com/national/2020/12/06/ZIJJNYM7LRDRVDOPQQAEV4PVGA/

 

서울대 자랑스러운 동문 1위 윤석열 89.5%, 조국은 1.9%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대 동문들이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2020 하반기 자랑스러운 동문상'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서울대 동문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 진행 중인 이 투표에

www.chosun.com

 

imnews.imbc.com/replay/2020/nw1700/article/6016661_32510.html

 

"윤석열 징계위, 10일 오전 10시 30분 개최"

법무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오는 10일로 두 차례 연기한 가운데, 징계위 시작을 오전 10시 반부터 진행키로 했습니다. 윤 총장 측 법률대리인인 이완규 변호사는 ...

imnews.imbc.com

 

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0/12/06/KQNHIGHYEBCKDKYRY4GL4XO2RQ/

 

與 문제제기로 한달뒤 폐기될 법... 그 법으로 윤석열 징계 추진

오는 10일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징계를 논의하는 법무부 검사징계위를 앞두고 그 절차를 규정한 검사징계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수 법조인은 “법무장관이

www.chosun.com

 

 

 

 

www.youtube.com/watch?v=WQR7KiG_J3U

 

 

www.youtube.com/watch?v=8tXliV26ebw&t=1092s

 

 

ko.wikipedia.org/wiki/%EC%87%BC%ED%86%A0%EC%BF%A0_%ED%83%9C%EC%9E%90

 

쇼토쿠 태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쇼토쿠 태자와 동생(왼쪽: 에구리 황자)과 장남(오른쪽: 야마시로 황손),8세기 목판 복제 쇼토쿠 태자(일본어: 聖徳太子, 574년 2월 7일 ~ 622년 4월 8일(일본서기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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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watch?v=AyeaImmjJpU

 

시텐노지(四天王寺)

 

시텐노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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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가 있는 사원

 

호류지 몽전(夢殿).

쇼토쿠 태자가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세웠다는 사원은 현재 일본 각지에 많이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에는 후세에 쇼토쿠 태자의 이름만 빌렸을 뿐 실제로는 태자와 아무 연관도 없는 사원도 적지 않다. 쇼와 시대의 불교사학자이자 불교운동가였던 사카이노 고요(境野黄洋, 1871년~1933년)는 분명하게 쇼토쿠 태자가 건립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원은 호류지와 시텐노지, 단 두 곳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있기까지 하다.

 

www.youtube.com/watch?v=NhfoddgwyZ4

 

시텐노지(四天王寺)

오사카시 소재. 《일본서기》에 보면 소가 씨와 모노노베 씨의 전투에서 소가 씨에 가담했던 쇼토쿠 태자가 전승을 기원하며 "승리하게 해주시면 사천왕을 안치할 사원을 짓겠다"는 서원을 세웠고, 실제로 전투에서 이긴 뒤에 셋쓰의 나니와에 이 절을 지었다고 한다. 창건 시기는 《일본서기》에는 스이코 천황 원년인 593년으로 되어 있다. 이 절에는 쇼토쿠 태자가 차고 다녔다는 패도(佩刀) 칠성검(七星剣)과 병자숙림검(丙子椒林剣)이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다.

 

www.youtube.com/watch?v=AyeaImmjJpU

 

호류지(法隆寺, 이카루가데라斑鳩寺)

나라현 이코마 군(生駒郡) 이카루가마치(斑鳩町) 소재. 금당(金堂)에 모셔진 약사여래상(薬師如来像)의 광배(光背) 명문에 보면, 요메이 천황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하고자 건립을 발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고, 그 유지를 이어받은 스이코 천황과 쇼토쿠 태자가 스이코 천황 15년(607년)에 이 절과 약사상을 지었다고 한다. 《일본서기》 덴지 천황 9년(670년)조에 호류지가 전소되었다는 기사가 있는데, 이 기사를 놓고 현존하는 호류지(서원가람西院伽藍)는 과연 쇼토쿠 태자 시대의 것인지 아니면 덴지 천황 이후의 재건인지를 놓고 논쟁이 있었고(호류지 재건 비재건 논쟁) 와카쿠사 가람(若草伽藍)의 발굴 조사를 통해 쇼토쿠 태자 시대의 가람은 한 번 소실되고 현존하는 것은 7세기 말엽에 재건되었음이 정설이 되었다. 호류지 안에서 '몽전(夢殿)'을 중심으로 한 동원가람(東院伽藍)은 태자가 살았던 이카루가노미야 옛 터에 지어진 것이다.

www.youtube.com/watch?v=6nFm_sDmg_0

 

이카루가데라(斑鳩寺, 하리마播磨 소재)

효고현 이보군 다이시마치(太子町) 소재. 쇼토쿠 태자가 스이코 천황으로부터 받은 하리마 국(播磨國) 이보 군의 땅을 '조장(鵤荘)'이라 이름짓고 이 절을 세워 호류지에 기진한 것이 이카루가데라의 시작으로 전하고 있으며, 창건 뒤 한동안 호류지의 별원(別院, 지원支院)으로 기능했으나 소실되고, 재건된 뒤에는 천태종으로 종파를 바꾸었다. 오늘날까지 이카루가데라는 '태자님(お太子さん)'이라 불리는 신앙의 대상으로, 흔히 '쇼토쿠 태자의 지구의(地球儀)'라 불리는 '지슈세키(地中石)'가 절에 전해지고 있다.

 

www.youtube.com/watch?v=BKtFfYLfhpw

 

 

태자건립 칠대사(太子建立七大寺)

시텐노지와 호류지 외에도 주구지(中宮寺, 주구니지中宮尼寺), 다치바나데라(橘寺), 호코지(蜂岡寺, 고류지広隆寺), 지후사(池後寺, 법기사法起寺), 가쓰라기지(葛木寺, 가쓰라기니지葛城尼寺)는 《상궁성덕법왕제설(上宮聖德法王帝設)》이나 《호류지가람연기병류기자재장(法隆寺伽藍縁起并流記資材帳)』에 보면 쇼토쿠 태자가 지은 칠대사(七大寺)로 불리고 있다.

 

가와치 삼태자(河内三太子)

쇼토쿠 태자와 연고가 있는 사원으로 여겨지는 예복사(叡福寺), 노중사(野中寺), 대성승군사(大聖勝軍寺)는 각기 가미노타이시(上之太子), 나카노타이시(中之太子), 시모노타이시(下之太子)라 불리며 총칭 '가와치 3태자(河内三太子)'로 불린다.

 

www.youtube.com/watch?v=o_tM_3_eFVA

 

 

namu.wiki/w/%EC%87%BC%ED%86%A0%EC%BF%A0%20%ED%83%9C%EC%9E%90

 

쇼토쿠 태자 - 나무위키

쇼토쿠 태자의 아명 우마야도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출생담에서 연유한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예수 설화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으나 우마야도노미코라는 표기는 일본서기에서만 등장하며

namu.wiki

 

 

namu.wiki/w/%EC%9C%A0%ED%99%8D%EC%A4%80

 

유홍준 - 나무위키

1995년 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전후할 때 그는 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침묵을 지켜 비판을 받은 바 있었다. 그가 침묵을 지킨 게 당시 철거론자였던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과의 학연을

namu.wiki

 

www.youtube.com/watch?v=36ZGKuGxJQc

 

 

www.youtube.com/watch?v=nzsozRdLLGQ&t=86s

 

Who am I?

HOW to LIVE?

 

 

 

 

 

www.youtube.com/watch?v=hXBkyaOVgck

 

 

진중근, 산업화의 원동력은 군사문화/ 정보화시대에는 창조경제 지향

www.youtube.com/watch?v=Ht_tj8etLlo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묘소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묘소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0) http://kydong77.tistory.com/9223 5~9대 박정희 재임 1963~1979 1961년 중1때 함창 점촌 경계 삼거리에서 쉬다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육군중장 장도영, 육군소장 박정희 이름이 박힌,

kydong77.tistory.com

 

아, 박정희 대통령!/ 초대-19대 한국 역대대통령 

 

아, 박정희 대통령!/ 초대-19대 한국 역대대통령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A0%95%ED%9D%AC 박정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박정희(朴正熙[2], 1917년 11월 14일 ~..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gG0JgUyObRc

 

 

https://www.youtube.com/watch?v=rlE_bGD6GtQ

 

 

www.youtube.com/watch?v=vNup2ttlB4M

 

 

www.youtube.com/watch?v=2IwFqLYC0qE

 

 

 

[나는 누구인가?]

www.youtube.com/watch?v=QCnnQVIbejs&t=1599s

 

 

www.youtube.com/watch?v=8tXliV26ebw  

 

 

[삶, HOW to LIVE?] 위기 극복의 해_한명기 교수

www.youtube.com/watch?v=3PRhjty_yR4

 

 

www.youtube.com/watch?v=p1LRDaco81E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9644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45435.html

 

히로시마에 묻힌 나가사키

원폭 투하 7만여명 숨져 히로시마 사망자의 절반

www.hani.co.kr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9496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kydong77.tistory.com/19496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45435.html 히로시마에 묻힌 나가사키 원폭 투하 7만여명 숨져 히로시마 사망자의 절반 www.hani.co.kr www.youtube.com/watch?v=3ws8_hsHjMA ko.wikipedia.org/wiki/..

kydong77.tistory.com

 

 

ko.wikipedia.org/wiki/%ED%9E%88%EB%A1%9C%EC%8B%9C%EB%A7%88%C2%B7%EB%82%98%EA%B0%80%EC%82%AC%ED%82%A4_%EC%9B%90%EC%9E%90%ED%8F%AD%ED%83%84_%ED%88%AC%ED%95%98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태평양 전쟁, 일본 본토 공습의 일부히로시마-왼쪽/나가사키-오른쪽 원폭 투하로 형성된 버섯 구름교전국 미국 지원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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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広島・長崎原子爆彈投下, 영어: Atomic bombings of Hiroshima and Nagasaki)는 제2차 세계대전이 다 끝나갈 무렵 1945년 미국은 일본에 두 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는데, 8월 6일 히로시마시에 한 개의 원자폭탄을 떨어뜨렸고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나머지 한 개의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원자폭탄 두 개를 떨어트리기 전까지 6개월간 미국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도시 67개에 전락상 집중하여 폭격하였다. 영국중화민국과 함께 미국은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하라고 강요하였으나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1945년 8월 6일 월요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명령하여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히로시마에,[1][2] 3일 후 8월 9일 "팻 맨"(Fat man)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이 원자폭탄 두 개는 인류사 최초로 전쟁에서 일반 시민 학살에 쓰인 원자폭탄이었다.[3] 원자폭탄 투하가 결정된 히로시마는 당시 일본군 제2사령부이면서 통신 센터이자 병참 기지였으므로, 일본의 군사상으로 중요한 근거지였다.[4]

 

일본의 항복

미 전시 내각은 8월 9일까지 일본에게 네 가지 조건을 수용하여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8월 8일 소련이 얄타 협정에 근거를 두고 소-일 불가침 조약을 파기,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히로히토는 기도 고이치에게 “소련이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했으니 즉시 상황을 수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도 1945년 9월에 일본을 공격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기도는 즉시 제국 회의를 열어 외무 대신 도고 시게노리에게 연합군의 항복 요청을 기존의 네 가지 조건에서 한 가지 조건으로 축소시켜 수락하라고 이야기했으며 동시에 “천황의 지위에 흠이 갈 수 있는 요구에는 타협하지 말 것”이라고 전했다.[75] 8월 12일 히로히토가 황가에 항복의사를 밝혔으며 연합군 측에서 천황제를 방치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이틀 후 14일 히로히토는 연합군 측에 항복을 선언하는 내용을 일본 전역에 방송했다. 이에 다음날 군부 측에서는 항복 선언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났으나 곧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이후 4만여 명의 미군이 히로시마를 점령했고, 2만 7천 명이 나가사키를 점령했다. 또한 9월에 연합국(영국, 미국, 중화민국, 소련)이 일본을 분할 점령할 목적이 있었는데 이 역시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항복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다음은 최고책임자였던 히로히토의 조건없는 항복 방송 중 원자폭탄에 관한 부분이다.

"(중략)…뿐만 아니라, 적은 새로이 잔인한 폭탄으로 죄없는 백성들을 끊임없이 죽이니, 그 참혹함은 참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리하여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는 일은,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 또한 부수어버릴 것이다. 이리 되면 짐은 어찌 수많은 백성들을 지키고, 황실과 조상의 신령께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이것이, 짐이 제국 정부에게 하여금 공동 선언에 응하도록 명한 연유이다. 짐은, 제국과 함께 끝까지 동아시아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모든 맹우(盟友)들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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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경과,결과 [해설]

최후 본토 결전에서 승리를 외치던 일본 정부와 군부의 숨통을 누른 히로시마 원폭 투하. 1945년 8월 6일에는 히로시마, 이어 9일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경과,결과 http://ti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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