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http://blog.daum.net/mahatop7/5485

 

공 가운데(空中)에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없어서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입니다.

반야심경의 문맥을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덮어놓고 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인데 그런 게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거죠.

공 그 자체에, 즉 공 가운데에 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이 없다는 뜻입니다.

空에는 그 어떤 실체라고 여길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空입니다.

어떤 실체라고 여길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空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12처(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합쳐서 12처(處)라고 부릅니다.

안 = 감각기관 = 眼耳鼻舌身意

밖 = 감각대상 = 色聲香味觸法

안과 밖을 설명한 것 입니다.

나 자체와 내가 바라보는 것들의 총 결합체가 바로 12처(處)입니다.

처(處)는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6내처(六內處) + 6외처(六外處) =12처(處)

6내처(六內處) : 안처(眼處) · 이처(耳處) · 비처(鼻處) · 설처(舌處) · 신처(身處) · 의처(意處)

6외처(六外處) : 색처(色處) · 성처(聲處) · 향처(香處) · 미처(味處) · 촉처(觸處) · 법처(法處)

 

眼 : 色 = 눈은 빛깔/형체를 대하고,

耳 : 聲 = 귀는 소리를 대하고,

鼻 : 香 = 코는 냄새를 대하고,

舌 : 味 = 혀는 맛을 대하고,

身 : 觸 = 몸은 감촉을 대하고,

意 : 法 = 뜻은 생각꺼리를 대한다.

 

색성향미촉법에서 法은 정신적인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마음(뜻)의 대상이란 뜻이니까요.

그래서 생각거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오온에서의 色은 물질이고,

육경에서의 色은 빛깔/형체라고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오온은 나 자체를 분석한 것이고,

육경은 바깥 대상들을 분석한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물론 바깥에 있는 色들도 물질이지만, 그게 눈에 보여질 때는 빛깔/형체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육경의 色을 빛깔/형체라고 표현한 것이죠.

 

바깥 대상들인 육경(色聲香味觸法)도 역시 그 본질은 실체가 없어 空한 것입니다.

 

무상/고/무아를 먼저 적용시켜 보겠습니다.

色 : 모든 형체는 매 순간순간 변하여 무상하고, 그러므로 고이며, 실체가 없어 무아입니다.

聲 : 모든 소리는 생겼다라 바로 사라지니 무상하며, 고이며, 무아입니다.

香 : 모든 냄새도 곧 사라지니 무상하며, 고이며, 무아입니다.

味 : 맛도 영원할 수 없으니 무상하며, 고이며, 무아입니다.

觸 : 감촉도 영원할 수 없어 무상하며, 고이며, 무아입니다.

法 : 생각들도 항상 변하고 또 변하니, 무상하며, 고이며, 무아입니다.

 

이제 空을 적용시켜보겠습니다.

色 : 빛깔은 인연화합, 즉 연기(상호의존)으로 생겼으므로 거기엔 실체가 없어 공합니다.

聲 : 소리도 인과 연이 화합돼서 생겼으므로 실체가 없어 공합니다.(양쪽 손바닥이 부딛쳐야 소리가 나죠)

香 : 냄새도 인과 연이 화합돼서 생겼으므로 실체가 없어 공합니다.

味 : 맛도 저절로 스스로 생긴게 아니라 상호의존적으로 발생한 것이라서 공합니다.

觸 : 감촉은 저절로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합니다.

法 : 생각꺼리들도 인연이 있어야만 생기므로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서 공합니다.

 

정말로 스스로의 성품이 있다면, 영원히 변화가 없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화가 없는 것이 있을까요?

色聲香味觸法이 항상 변화할까요? 아니면 고정돼 있을까요?

항상 변합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게 변화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서 空하기 때문입니다.

色聲香味觸法은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色聲香味觸法에 스스로의 성품은 없습니다. 왜냐면 인연화합에 의해 생겼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色聲香味觸法은 모두 空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色聲香味觸法은 진실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실이 없는 色聲香味觸法에 집착하면 고통이 생기게 됩니다.

특히 화가 나는 것은

내 귀가 소리...즉 내 욕을 하는 소리나, 나를 비방하는 그런 소리를 듣고 화를 내는 겁니다.

소리엔 실체가 없습니다.

근데 그 소리에 실체가 있다고 여기고, 그게 나에게 어떤 피해를 준다고 여겨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은 인체 기관 특히 아랫배에서부터 목, 입속까지 일곱군데를 부딛침으로 인해 소리가 생성된다는 내용이 대지도론에 나옵니다.

마치 메아리가 생긴 것과 같이 인연화합으로 소리가 생성됩니다.

산에서 어떤 사람이 크게 야호~~~하고 외치면 그 소리가 다른 산에 부딪쳐서

계속 야호~야호~ 소리(메아리)가 여러 번 들립니다.

처음에 야호~ 이 소리만 진짜고 나머지 메아리들의 야호~소리는 사실 거짓인 겁니다.

그렇지만 들리죠. 실체가 없어 거짓이지만 메아리는 분명하게 들립니다.

모든 소리도 이 메아리와 같습니다.

왜냐면 인연화합으로 생성된 것이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양쪽 손바닥이 딱 부딪쳐야 짝 소리가 나고,

타이어 바퀴가 땅바닥에 강하게 미끄러져야 끽 소리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소리라는 것은 인과 연이 화합해서 생긴 것이므로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서 空한 것입니다.

나를 욕하는 소리도 나에게 그 어떤 피해를 주는 것도 없고,

나를 칭찬하고 찬양하는 소리도 나에게 그 어떠한 이득을 주는 것도 역시 없습니다.

소리에도 실체가 없으며, 나 자체에도 그 어떠한 실체도 없습니다.

둘 다 공한 것이죠.

공한 것이 공한 것에게 피해를 줄 수도 없으며,

공한 것이 공한 것에게 이득을 줄 수도 없습니다.

그저 모두 다 자신의 착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세속팔풍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이란 뜻은

空 그 자체에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도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죠.

 

• 24.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http://blog.daum.net/mahatop7/5484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본래는 공중 무안이비설신의(空中 無眼耳鼻舌身意)인데,

짧게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고 표현한 것 입니다.

왜냐면 앞에 空中이라는 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공 그 자체에는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입/몸/뜻도 역시 없습니다.

당연히 없죠.

불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외치는게 바로, 반야심경은 육근조차 없다고 주장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처럼 어리석은 주장은 없죠.

그들은 반야심경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가 덮어놓고 없다는 게 아니라,

空 그 자체에 안이비설신의가 없다라는 뜻을 그들은 전혀 이해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空을 깨닫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이 반야심경의 심오한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반야심경의 이곳에서부터는 계속 없다..없다...없다.....라고 나오는데 그것은 부정이 아닙니다.

부정이면 無를 안쓰고 不를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 자체에는 그 무엇도 없는 것이 그저 당연한 사실일 뿐 입니다.

그건 부정이 아닙니다.

<오온>과 <육근/육경/육식>의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오온이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게 바로 다섯 가지이며, 색수상행식입니다.

그러므로 오온이란 나 자체를 분석한 것입니다.

육근/육경/육식이란 나와 바깥 대상을 동시에 분석한 것입니다.

나와 내가 접촉하는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나와 세상을 말합니다.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바깥 대상과 접촉하는 것은 바로 나의 감각기관입니다.

그 감각기관이 바로 육근이며,

그게 바로 眼耳鼻舌身意이며,

한글로 표현하면 눈/귀/코/입/몸/뜻입니다.

이 감각기관을 육입(六入)이라고 부릅니다.

왜 入인가하면 감각대상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죠.

육입을 육근(六根)이라고도 부릅니다. 根이란 감각기관이란 의미죠.

감각기관(육근)의 대상이 바로 육경(감각대상)을 뜻합니다.

그게 바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며,

한글로 표현하면 빛깔/소리/냄새/맡/접촉/생각꺼리입니다.

왜 육경(六境)인가하면 대상 경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온에도 색이 있고, 육경에도 색이 있습니다.)

(오온에서의 색은 물질이란 뜻이고, 육경에서의 색은 빛깔/형체라는 의미로 보면 됩니다.)

이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을 합쳐서 12처(處)라고 부릅니다.

열두 장소라는 의미죠.

안의 육근과 바깥의 육경이 서로 인연화합되어야만 대상경계가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

눈은 빛깔을 상대하고,,

귀는 소리를 상대하고,

코는 냄새를 상대하고,,

혀는 맛을 상대하고,

몸은 감촉을 상대하고,

뜻은 생각꺼리를 상대합니다.

육근 + 육경 = 12처(處)

이때 우리에겐 계속 이어져 오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나면 육식이 생깁니다.

그걸 통털어 18계라고 합니다.

눈으로 빛깔을 보면 안식이 생기고,

귀가 소리를 들으면 이식이 생기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 비식이 생기고,

혀로 맛을 보면 설식이 생기고,

몸으로 감촉을 접촉하면 신식이 생기고,

뜻으로 생각꺼리(법)을 인식하면 의식이 생깁니다.

바같 대상 경계를 통털어서 보면 총 18가지 이므로 18界입니다.

界란 요소라는 뜻도 있고, 경계라고도 풀이하죠.

육근 + 육경 + 육식 = 18계(界)

왜 界라는 용어를 썼을까요?

모조리 다 바깥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18가지 모두에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어서 "나"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측면에서 보면 18계는 모조리 다 윤회의 <요소>이며, 바깥 <경계>인 것 입니다.

오온도 공하며,

육근도 공하며,

육경도 공하며,

육식도 역시나 공한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실체가 있는 것은 없습니다.

실체가 없다라는 것은 사실 모조리 다 거짓이란 얘기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일체유위법이 여몽환포영이란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으므로 사실상 딱 까놓고 보면 거짓이란 얘기입니다.

그러나 중생은 그런 연기법의 실체를 몰라서 모든 걸 진짜로 여기는 것 입니다.

여몽환포영이라는 말은 거짓이란 얘기입니다.

그러니 유위법에 속지 말라는 것이죠.

유위법이란 인과 연의 화합으로 생겨난 모든 것을 말 합니다. 욕계/색계/무색계를 뜻 합니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보여지는 대로 진실한 게 아닙니다.

만약 진실하다면, 고통이 당연히 없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합니다. 온갖 고통이 휘몰아치고 있죠.

왜냐면, 진실한게 아닌데도 그걸 몰라서 진실이라고 여기고 집착하는데

결국은 진실하지 못하니 그 모든 것이 사라져서 잃게 되므로 그렇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공하다라는 또 하나의 의미는 모조리 다 거짓이라는 얘기입니다.

실체가 없으니 거짓이죠.

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이 그 자체로써 열반이라는 얘기도 합니다.

왜냐면 모든 것에 실체가 없으니 공하여 청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거짓이라고 얘기한 것은 속제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고,

청정하여 열반이라고 말한 것은 진제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 입니다.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공 그 자체엔 감각기관인 육경도 없다는 뜻 입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23.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http://blog.daum.net/mahatop7/5483

이전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나"라고 여기는게 바로 오온인데, 그 오온의 자성이 없어 실체가 공함을 조견했고,

그러므로써 색은 공을 여의지 않으며, 색은 공과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의 실상입니다.

색의 실상이 곧 공이다라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 입니다.

오온은 있되, 그 오온에 자성이 없어서 空입니다.

그리고나서 설명되어진 것이 그 空의 모습인데,

그것이 바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입니다.

그 후부터는 그 空 자체에 뭐가 있는지 설명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위에서 공중(空中)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이 뜻은 空 가운데...쉽게 말하면 空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온의 실체가 공한데, 그 공의 모습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며,

이젠 그 공 자체에 뭐가 있냐.....이걸 설명하는 것 입니다.

딱 공 그것만을 분석하는 내용인거죠.

비유하자면, 도자기의 재료가 흙인데...그 흙만을 분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어떤 실체가 없이 텅 빈 것이 空입니다.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空이 아닌 것 입니다.

그러므로 空 그 자체엔 실체라고 여길 만한 것이 그 무엇도 없습니다. 또한 그 어떤 모습/형상도 없습니다.

是故 : 그래서

空中 : 공 가운데에는.......즉 공 그 자체에는

無色 : 색이 없고,

無受想行識 : 수상행식도 없다.

空 그 자체에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바로 전에는 <공즉시색>이란 문구가 나오는데,

그것의 뜻은 이전 편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공이 곧 색의 실상이다라는 뜻입니다.

공이 곧 색이다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면 완전히 도로묵이 됩니다.

색은 모습/형체가 있고, 공은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똑같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물론 따로 따로 살펴볼 때 색도 실체가 없어 공하고, 공도 역시 실체가 없어 공하기에 같다라고 한다면 그건 맞는 말 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색과 공의 불가분의 관계를 설명한 것 입니다.)

(색과 공은 따로 분리될 수 없으므로 色不離空 空不離色이며)

(그러므로써 색과 공이 다르지 않아 色不異空 空不異色이니)

(색의 본질이 곧 공이며, 공이 곧 색의 본질이라 色卽是空 空卽是色 입니다.)

색즉시공이라고 해서 단순히 색과 공이 똑같다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색즉시공에서의 卽은 똑같다라는 게 뜻이 아니고, 분리될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공중무색>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공과 색을 단순히 같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공즉시색>의 뜻은 위에 설명한대로 공이 곧 색의 실상..즉 본래 모습이다..라는 뜻 입니다.

반야심경에 설해진 순서를 대단히 잘 이해해야 합니다.

위에 몇번을 반복해서 써놨듯이..

오온의 자성이 없어 공하며, 그 공의 모습이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이며,

이제부터는 그 공 자체에 뭐가 있냐를 따지는 것 입니다.

왜 이걸 따지냐 하면, 공에도 뭐가 있는 줄 착각하는 경향이 대단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고정관념을 박살내기 위해서 공 가운데는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줄줄이 길게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이 空을 비유할 때, 가장 많이 비유하는 게 바로 허공입니다.

허공이란 텅비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바로 허공인거죠.

空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실체라고 여길만한 것이 그 무엇도 없기 때문에 空인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오온 및 만물의 실상이 空임을 깨닫고, 그 空에 집착해버립니다.

다른 걸 버리고, 또 다른 것에 집착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空을 깨닫고 나서, 그 空조차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다>입니다.

이걸 설명하는 것이 바로 반야심경입니다.

그래서 空 그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을 설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계속 없다. 없다..없다....무지 역무득까지 계속 없다...없다....그렇게 나갑니다.

공 그 자체엔 실체라고 여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자기의 비유를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흙으로 빚은 도자기는 굉장히 여러 종류입니다.

그러나 도자기의 성품은 흙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게 도자기입니다.

이제부터는 흙 그 자체의 성품을 알아보겠습니다.

흙 그 자체에 둥근 도자기가 있을까요? 아니면 네모난 도자기가 있을까요?

흙속에 기다란 도자기가 있습니까?

흙 그 자체엔 그 어떠한 형태의 도자기도 없습니다.

주전자도 없고, 밥그릇도 없고, 컵도 없고, 항아리도 없고, 수저도 없습니다.

흙은 그냥 흙일 뿐 입니다.

그러므로 空에는 무상/고/무아가 먹히질 않습니다.

空 그 자체엔 그 무상/고/무아가 먹힐만한 실체가 단 하나도 없는 것 입니다.

그래서....

空은 항상(영원)한 것도 아니요,

空은 즐거움도 아니며,

空은 나가 있다고 따질만한 것도 없습니다.

空은 무상한 것도 아니요,

空은 고통도 아니며,

空은 무아라고 따질만한 것도 없습니다.

이런게 바로 중도(中道)입니다.

무상/고/무아가 먹히는 것은 속제입니다.

오온에서나 먹히는 것이지, 진제인 空 그 자체에서는 그 무엇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空이 곧 해탈의 문인데,

空이 무상하다면 그게 해탈입니까?

空이 고통이라면 그게 해탈문일까요?

空은 내가 있다고 따지거나 내가 없다고 따질만한 것 자체가 없으므로 무아라고 할 수 조차 없습니다.

반야심경에 무상/고/무아라는 용어는 전혀 안 나옵니다만, 그 내용이 없는 게 아닙니다.

색이 곧 무상한 것이며, 무상해서 고이며, 그러므로 무아입니다.

수상행식도 실체가 없어 무상한 것이며, 그러므로 고이며, 무아입니다.

다만 대승에서는 곧바로 空에 대해서 설명이 시작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소승이 맞는 자들을 위해서 주로 무상/고/무아를 주로 설하셨지만,

지혜가 큰 대승 보살들에게는 곧바로 열반의 본체인 空을 설하셨습니다.

왜냐면, 그만큼 보살들은 지혜가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반야심경은 대단한 경전입니다.

짧지만 부처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반야바라밀다>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그 <반야바라밀다>가 완성된 것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며,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바로 <일체종지>이며 그걸 성취한 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이 반야심경은 비방해서도 안되고, 흠을 잡아서도 안됩니다.

반야바라밀을 비방하는 것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죄는 오역죄보다 수천억 배 더 큰 죄입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소승불자들이 반야심경에 대해서 비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모르면 아무말없이 그냥 지내는게 상책입니다.

그렇다고 대승도 또한 소승을 얕잡아보고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도 큰 죄입니다.

소승이나 대승이나 모두 다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반야심경은 많이 읽고 외워야 합니다.

그 공덕이란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대반야바라밀다경에 그러한 내용이 아주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물론 공을 깨닫고 이해하면서 읽는 게 가장 좋습니다만,

몰라도 그냥 읽으면 그 인연으로 모든 고액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반야심경 해설 22. 부증불감(不增不減)

http://blog.daum.net/mahatop7/5482

 

이전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나"라고 여기는게 바로 오온인데, 그 오온의 자성이 없어 실체가 공함을 조견했고,

그러므로써 색은 공을 여의지 않으며, 색은 공과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의 실상입니다.

색의 실상이 곧 공이다라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오온은 있되, 그 오온에 자성이 없어서 空입니다.

그리고나서 설명되어진 것이 그 空의 모습인데,

그것이 바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입니다.

그 후부터는 그 空 자체에 뭐가 있는지 설명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위에서 공중(空中)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이 뜻은 空 가운데...쉽게 말하면 空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온의 실체가 공한데, 그 공의 모습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며,

이젠 그 공 자체에 뭐가 있냐.....이걸 설명하는 것입니다.

딱 空 그것만을 분석하는 내용인거죠.

비유하자면, 도자기의 재료가 흙인데...그 흙만을 분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어떤 실체가 없이 텅 빈 것이 空입니다.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空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空 그 자체엔 실체라고 여길 만한 것이 그 무엇도 없습니다. 또한 그 어떤 모습/형상도 없습니다.

是故 : 그래서

空中 : 공 가운데에는.......즉 공 그 자체에는

無色 : 색이 없고,

無受想行識 : 수상행식도 없다.

空 그 자체에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바로 전에는 <공즉시색>이란 문구가 나오는데,

그것의 뜻은 이전 편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공이 곧 색의 실상이다라는 뜻입니다.

공이 곧 색이다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면 완전히 도로묵이 됩니다.

색은 모습/형체가 있고, 공은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똑같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물론 따로 따로 살펴볼 때 색도 실체가 없어 공하고, 공도 역시 실체가 없어 공하기에 같다라고 한다면 그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색과 공의 불가분의 관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색과 공은 따로 분리될 수 없으므로 色不離空 空不離色이며)

(그러므로써 색과 공이 다르지 않아 色不異空 空不異色이니)

(색의 본질이 곧 공이며, 공이 곧 색의 본질이라 色卽是空 空卽是色 입니다.)

색즉시공이라고 해서 단순히 색과 공이 똑같다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색즉시공에서의 卽은 똑같다라는 게 뜻이 아니고, 분리될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공중무색>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공과 색을 단순히 같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공즉시색>의 뜻은 위에 설명한대로 공이 곧 색의 실상..즉 본래 모습이다..라는 뜻 니다.

반야심경에 설해진 순서를 대단히 잘 이해해야 합니다.

위에 몇 번을 반복해서 써놨듯이..

오온의 자성이 없어 공하며, 그 공의 모습이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이며,

이제부터는 그 공 자체에 뭐가 있냐를 따지는 것 입니다.

왜 이걸 따지냐하면, 공에도 뭐가 있는 줄 착각하는 경향이 대단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고정관념을 박살내기 위해서 공 가운데는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줄줄이 길게 설명하시는 것 니다.

이 空을 비유할 때, 가장 많이 비유하는 게 바로 허공입니다.

허공이란 텅비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바로 허공인거죠.

空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실체라고 여길만한 것이 그 무엇도 없기 때문에 空인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오온 및 만물의 실상이 空임을 깨닫고, 그 空에 집착해버립니다.

다른 걸 버리고, 또 다른 것에 집착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空을 깨닫고나서, 그 空조차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다>입니다.

이걸 설명하는 것이 바로 반야심경입니다.

그래서 空 그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을 설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계속 없다. 없다..없다....무지 역무득까지 계속 없다...없다....그렇게 나갑니다.

공 그 자체엔 실체라고 여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자기의 비유를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흙으로 빚은 도자기는 굉장히 여러 종류입니다.

그러나 도자기의 성품은 흙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게 도자기입니다.

이제부터는 흙 그 자체의 성품을 알아보겠습니다.

흙 그 자체에 둥근 도자기가 있을까요? 아니면 네모난 도자기가 있을까요?

흙속에 기다란 도자기가 있습니까?

흙 그 자체엔 그 어떠한 형태의 도자기도 없습니다.

주전자도 없고, 밥그릇도 없고, 컵도 없고, 항아리도 없고, 수저도 없습니다.

흙은 그냥 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空에는 무상/고/무아가 먹히질 않습니다.

空 그 자체엔 그 무상/고/무아가 먹힐 만한 실체가 단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空은 항상(영원)한 것도 아니요,

空은 즐거움도 아니며,

空은 나가 있다고 따질만한 것도 없습니다.

空은 무상한 것도 아니요,

空은 고통도 아니며,

空은 무아라고 따질 만한 것도 없습니다.

이런게 바로 중도(中道)입니다.

무상/고/무아가 먹히는 것은 속제입니다.

오온에서나 먹히는 것이지, 진제인 空 그 자체에서는 그 무엇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空이 곧 해탈의 문인데,

空이 무상하다면 그게 해탈입니까?

空이 고통이라면 그게 해탈문일까요?

空은 내가 있다고 따지거나 내가 없다고 따질 만한 것 자체가 없으므로 무아라고 할 수조차 없습니다.

반야심경에 무상/고/무아라는 용어는 전혀 안 나옵니다만, 그 내용이 없는 게 아닙니다.

색이 곧 무상한 것이며, 무상해서 고이며, 그러므로 무아입니다.

수상행식도 실체가 없어 무상한 것이며, 그러므로 고이며, 무아입니다.

다만 대승에서는 곧바로 空에 대해서 설명이 시작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소승이 맞는 자들을 위해서 주로 무상/고/무아를 주로 설하셨지만,

지혜가 큰 대승 보살들에게는 곧바로 열반의 본체인 空을 설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보살들은 지혜가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반야심경은 대단한 경전입니다.

짧지만 부처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반야바라밀다>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그 <반야바라밀다>가 완성된 것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며,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바로 <일체종지>이며 그걸 성취한 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이 반야심경은 비방해서도 안 되고, 흠을 잡아서도 안 됩니다.

반야바라밀을 비방하는 것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죄는 오역죄보다 수천억 배 더 큰 죄입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소승불자들이 반야심경에 대해서 비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모르면 아무말없이 그냥 지내는 게 상책입니다.

그렇다고 대승도 또한 소승을 얕잡아보고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그것도 큰 죄입니다.

소승이나 대승이나 모두 다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반야심경은 많이 읽고 외워야 합니다.

그 공덕이란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대반야바라밀다경에 그러한 내용이 아주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물론 공을 깨닫고 이해하면서 읽는 게 가장 좋습니다만,

몰라도 그냥 읽으면 그 인연으로 모든 고액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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