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라깐타 신화와의 연계성 속에 [성관자재 찬가] 가운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쉬바 찬가의 부분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13)오소서, 오소서, 세자재(世自在:Loke vara)시여! 탐욕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瞋애)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癡暗: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 (16.a)정이 깊은 청경(N laka ha)이시여! (17)성자(siddha)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mahasiddha)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 요가의 주(yoge vara)께 영광이 있기를! (18)청경께 영광이 있기를! 이 가운데 천수다라니의 (13) 항목, "탐욕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어리석음)의 독을 파괴하소서"라는 구절은 위 닐라깐타 신화 가운데서 '우유의 대양, 끄시로다(k roda)로부터 생겨난
그림.3. N r ya aAnanta. 우주의 대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비슈누의 權化로서의 나라야나(N r ya a).
우주의 대양에서 뱀 위에 누워 Yuga 사이의 휴식을 취하는 비슈누, N r ya a는 창조주로서의 의지가 자극되어 자신의 배꼽에서 Padman bha를 형성해 내자, 그의 부탁으로 4개의 머리를 지닌 창조주 브라흐마가 그 위에 올라 창조의 시기를 계획하고 있다. 비슈누의 부인 락쉬미가 발을 주무르고 있다. 이렇듯 쉬바 찬가 부분과 비슈누 찬가 부분에 해당하는 위 내용을 분석해 보는 가운데, 천수다라니 [성관자재 찬가]의 상당 부분이 - 16구의 [성관자재 찬가] 가운데 7구에 해당하는 부분이 - 『마하바라타』 및 『라마야나』 등에 나타나고 있는 닐라깐타(N laka ha)에 관한 신화의 원형(k roda, 즉 우유의 대양과 관련된 기사)을 내용상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인도의 로케쉬 챤드라(Lokesh Chandra)는, '닐라깐타 다라니(N laka ha dh ra ) 즉 천수다라니에 등장하고 있는 청경세자재(靑頸世自在:N laka ha Loke vara)는 샤이비즘( aivism)적 측면에서 비슈누(Vi u)와 쉬바( iva)가 결합된 채 하리-하라(Hari-Hara)로서 신격화 되어지고 있다'는 전제를 설정함으로서, 천수다라니의 주요 (신앙적) 핵심이 N laka ha에 있으며, N laka ha는 쉬바( iva)의 신격화로서 Hari-Hara라 불리울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었다. 이에 필자는 "청경(N laka ha)의 명호(n ma)인 성관자재 찬가를( ry valokite vara stava ) 기억하면서(k tv ) 성관자재 보살 마하살께 귀의한다"는 구절이 천수다라니의 주된 항목으로서 그 안에 천수다라니의 신앙 기저가 담겨져 있음을 전제로, 닐라깐타(N laka ha)야 말로 천수다라니의 핵심 인물로서 성관자재(聖觀自在: ry valokite vara)라 표현되고 있음을 천수다라니에 대한 구조 분석을 통해 추보(追補)할 수 있었다. 한편 위의 내용을 전제로 필자는 『마하바라타』 등에 나타나 있는 닐라깐타(N laka ha) 신화, 즉 끄시로다(k roda)와 관련된 신화적 맥락을 천수다라니 어구와의 연관선상에서 고찰하였는 바, 27구로 나뉘어질 수 있는 전체 천수다라니 가운데 무려 7구에 해당하는 부분이 『마하바라타』 등에 보이고 있는 닐라깐타(N laka ha) 신화, 끄시로다(k roda)의 원형을 내용상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으며, 그것은 천수다라니와 인도 신화와의 관련성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에 필자는 닐라깐타 신화의 신화적 원형과 직접 관련을 맺고 있지 않는 천수다라니의 기타 부분에 대한 인도 신화적 단편들과의 비교 고찰을 통해, 천수다라니의 상당 부분이 비슈누(Vi u)의 화신 내지 그의 지물(持物)들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 바, 천수다라니 가운데 쉬바( iva)의 형상에 대한 언급이며, 인드라(Indra)에 대한 찬탄과 기원이 동시에 표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수다라니는 그 내용에 있어 비슈누적 특성을 좀더 많이 함유하고 있음을 말할 수 있었다. 천수다라니에는 무려 20개에 달하는 신들의 명칭이 소개되어 있다. 그 가운데 비슈누가 11번, 쉬바가 8번, 그리고 인드라가 1번 언급되어 있음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천수다라니의 핵심적 내용에 해당하는 '닐라깐타(N laka ha)의 명호(n ma)인 성관자재 찬가( ry valokite vara stava)' 가운데 비슈누의 명칭이 10번, 쉬바가 5번, 인드라가 1번 언급되어 있음을 볼 때, 전체 천수다라니는 각각 신들의 위업을 청경(靑頸) 즉 닐라깐타(N laka ha)의 위업에 가탁(假託)하여 전체 내용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안에 담겨진 비슈누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으며, 비슈누적 신앙의 요소는 천수다라니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는 이론(異論)이 없음을 알게 된다. 결국 '청경세자재(靑頸世自在:N laka ha Loke vara)는 샤이비즘( aivism)적 측면에서 비슈누와 쉬바가 결합된 채 쉬바의 화신인 하리-하라(Hari-Hara)로서 신격화 되고 있다'는 로케쉬 챤드라(Lokesh Chandra)의 전제에는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필자는 천수다라니에 대한 신앙적 기저로서 바이슈나비즘(Vai avism)적 고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바, 이는 '벵갈 지방을 중심으로 한 비슈누파 불교도(Vai avite Buddhist)들의 예 등을 통한 북인도 중심의 비슈누 신앙 확산'이란 또다른 논지(論旨)를 통해 이를 증거해 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천수다라니에 나타난 인드라에 대한 표현의 예를 통해 볼 때, (브라흐마 Brahm 가 아닌) 인드라 비슈누 쉬바의 삼현(三顯:Trimurti) 원리에로 천수다라니의 신앙적 원리가 전개되고 있음에 대한, 밀교적(密敎的) 삼신(三身)의 전개라는 측면에서의 관련성을 재고해야 할 필요를 갖게도 된다. 한편 천수다라니에 대한 내용적 상징의 기저로서 우리는 "sarasara sirisiri suru-suru buddhy -buddhy bodhaya-bodhaya"라는 구절을 제시할 수 있다. 여기서 'sarasara sirisiri suru-suru' 등의 표현은 "(탐 진 치의 독을) 소멸하소서"라는 일종의 기원구로서 해석할 수 있는데, 뒤이어 "비추어 식별함으로서 깨닫게 하소서(buddhy -buddhy bodhaya-bodhaya)"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음을 미루어 천수다라니의 내용적 상징의 기저는 '탐 진 치 삼독에 대한 소멸'과 함께 '비추어 식별하는' 지혜로서 '깨달음을 성취'코자 함에 그 목표가 주어져 있음을 말할 수 있다. 또한 천수다라니의 내용 핵심으로서 '일체지(一切智)의 획득' 내지 '불사(不死)의 추구'를 말할 수 있기도 할 것인데, 이는 앞서 닐라깐타(N laka ha) 신화 가운데 등장하는 '불사의 물 암리따(am ta)'와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생 노 병 사의 고(苦) 가운데 가장 가증스러운 고통인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란 것에 대한 그 대안으로서 천수다라니는 '불사의 물'로서의 암리따(am ta)의 상징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사의 물, 암리따(am ta)를 얻어 가질 수 있음은 탐 진 치 삼독의 소멸로부터 생겨난 일체지의 획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이에 탐 진 치 삼독이란 - 닐라깐타(N laka ha) 신화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 '불사의 물 암리따(am ta)'를 획득코자 하는 과정 속에 산출되는 독(毒) 깔라꾸따(k lak a)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독은 신들 중의 신, 요가의 주(yoge vara)로서의 청경(靑頸) 닐라깐타(N laka ha)만이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 그의 구원력에 호소하는 가운데 탐 진 치 삼독의 소멸을 통한 일체지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체지란 열반을 말한다. 이는 불교 수행의 궁극적 단계로서 '삶의 길의 청정'과 비유할 수 있으며, 이 열반(또는 청정)이란 대보살,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 보살 마하살께 대한 우리의 귀의로서 성취되어질 수 있음을 다라니는 말하고 있다. 결국 천수다라니는 그 구조에 있어 상당히 도식적 측면을 보이고 있다. 즉 불사의 물, 암리따(am ta)로서 상징되는 일체지는 불지(佛智)로서, 궁극적 깨달음으로서의 열반을 지칭하기도 하는 바, 그 열반을 얻어 증득키 위해서는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생겨나는 탐 진 치 삼독의 제거가 전제되며, 그 탐 진 치 삼독의 제거란 닐라깐타(N laka ha)로서 비유되는 성관자재( ry valokite vara)의 크나큰 자비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라니 안에서 우리는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 보살 마하살께 귀의"하며,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를 행하게 되는 즉, 전체 천수다라니 어구 안에는 유신적(有神的) 입장에 근거한 타력적(他力的) 측면이 전제되어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논문은 다음 논문집에 실려 있다.
『미래불교의 향방』(목정배박사 회갑기념 논문집), 도서출판 장경각, 1997, pp. 411∼441. * 또한 동시에 본인의 저서 『천수경 연구』 증보판에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관음신앙의 대상인 관음보살을 설하는 경전 중 『법화경』「보문품」에서 고통과 고난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은 때와 장소, 까닭을 막론하고 보문시현(普門示現)하고 있으며 중생의 근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몸을 바꾸어 나타난다고 설명된다(應身). 응신의 수는 경전에 따라 32신, 33신으로 설명되어져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법화경』「보문품」에서는 관음보살의 응신이 33신으로 설명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 『법화경』「보문품」에서는 관음보살의 응신이 32신으로 설명된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에 간행되어 유포된 『법화경』「보문품」 때문이다. 『법화경』은 한역(漢譯)된 이후 140여 종에 해당하는 많은 주석서가 편찬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판본은 중국송(宋) 온릉(溫陵) 개원련사(開元蓮寺)의 비구(比丘) 계환(戒環)이 찬술(撰述)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7권본이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그다지 성행하지 않은 이 경전에서는 관음보살의 응신을 32신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간행된『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관음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몸을 바꾸어 나타난다고 하는 응신(應身) 장면이 설명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관음보살은
그림.3. N r ya aAnanta. 우주의 대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비슈누의 權化로서의 나라야나(N r ya a).
우주의 대양에서 뱀 위에 누워 Yuga 사이의 휴식을 취하는 비슈누, N r ya a는 창조주로서의 의지가 자극되어 자신의 배꼽에서 Padman bha를 형성해 내자, 그의 부탁으로 4개의 머리를 지닌 창조주 브라흐마가 그 위에 올라 창조의 시기를 계획하고 있다. 비슈누의 부인 락쉬미가 발을 주무르고 있다.
이렇듯 쉬바 찬가 부분과 비슈누 찬가 부분에 해당하는 위 내용을 분석해 보는 가운데, 천수다라니 [성관자재 찬가]의 상당 부분이 - 16구의 [성관자재 찬가] 가운데 7구에 해당하는 부분이 - 『마하바라타』 및 『라마야나』 등에 나타나고 있는 닐라깐타(N laka ha)에 관한 신화의 원형(k roda, 즉 우유의 대양과 관련된 기사)을 내용상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발원문 I(전제부) 이상 귀의문 구절 가운데 제(4)구의 "k tv imam ry valokite vara-stava N laka ha-n ma(이것을 <즉>, 「청경(N laka ha)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를 기억하면서)"라는 문장을 놓고 생각할 때, 이후 다라니의 내용은 '[성관자재 찬가], 즉 「청경(N laka ha)의 명호」에 대한 기억'이 주(主)를 이루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이에 앞서 천수다라니는 다음과 같은 '독송자의 발원' 부분을 첨가시키고 있다.
이어 위 발원문 I에 대한 구체적인 원(願)이 제시되고 있는 바, 앞의 발원문을 총원(總願)이라 할 수 있다면 이 부분은 앞의 총원에 대한 각각의 개별적인 원, 즉 별원(別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별원 부분이 앞의 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행하고 있음은 다음에 이어지는 tadyath (다시 말하건대)라는 어구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위의 발원문에 이어 [성관자재 찬가]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앞의 귀의문 가운데 "'이것을 (즉), 「청경(N laka ha)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를 기억하면서(k tv imam ry valokite vara-stava N laka ha-n ma)'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 보살 마하살께 귀의한다"는 내용과의 연관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이어 다라니는 다음과 같이 16 항목에 달하는 [성관자재 찬가]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는 「청경(N laka ha)의 명호」에 대한 나열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7) 일반적으로 다라니는 'namo ratna tray ya‥‥'에 해당하는 「서문」 및 tadyath 로 연결되는 「본문」, 그리고 sv h 로서 마감되는 「결문」 등의 3중구조를 갖고 있음이 이야기되고 있다. 田久保周譽, 『眞言陀羅尼藏の 解說』, 東京, 鹿野苑, 昭和 42. p. 35.
8) 正覺(문상련), 『千手經 硏究』, 서울, 운주사, 1996. p. 199ff.
9) 千手陀羅尼의 각각 梵文에 대한 romanize 표기 및 번역은 본인의 책 『千手經 硏究』 (서울, 운주사, 1996)의 것을 인용하였다. (1)Namo ratna-tray ya / (2)nama ry valokite var ya bodhisattv ya mah sattv ya mah k ru ik ya, / (3)O sarva-bhaye u tr a-kar ya tasmai namas / (4)k tv imam ry valokite vara-stava N laka ha-n ma //
10) (5)h daya vartayi y mi sarv rtha-s dhana ubha ajeya sarva-bh t n bhava-m rga-vi odhakam //
11) (6)tadyath / (7)o loka e, lokamati lok tikr nta ehy-ehi Hare / (8)mah bodhisattva smara-smara h dayam / (9)kuru-kuru karma s dhaya-s dhaya //
12) (10)dhuru-dhuru vijayanta e mah vijayanta e / (11)dhara-dhara dhara i dhare vara / (12)cala-cala malla vimal mala-m rtte / (13)ehy-ehi Loke vara r ga-vi a vin aya dve a-vi a vin aya moha-j la-vi a vin aya / (14)huluhulu malla hulu Hare Padman bha / (15)sarasara sirisiri suru-suru buddhy -buddhy bodhaya-bodhaya / (16)maitriya N laka ha k masya dar anena prahl d ya mana sv h / (17)siddh ya sv h mah siddh ya sv h siddhayoge var ya sv h / (18)N laka h ya sv h / (19)var hamukha-si hamukh ya sv h / (20)padma-hast ya sv h / (21)cakr yudh ya sv h / (22) a kha- abda-nibodhan ya sv h / (23)mah laku adhar ya sv h / (24)v ma-skanda-de a-sthita-k jin ya sv h / (25)vy ghra-carma-nivasan ya sv h //
13) (26)namo ratna-tray ya / (27)nama ry valokite var ya sv h //
“준제공덕(准提功德)(을 찬탄한 수많은 게송이) 모여[聚] (전해지는 바) (그 내용에 의할 것 같으면):
고요한 마음으로 (준제진언을) 항상 외우면 일체의 모든 대 재난이
능히 그 사람을 침범치 못하리라… 천상의 신이거나 인간들
그 받을 바 복이 부처님과 같을 것인 즉, 이 여의주(준제진언을 말함)를 만났으니
마땅히 비할 바 없는 깨달음 얻게 되리라.” 준제주<准提呪>’의 공덕을 설하는
淨法界眞言 정법계진언
옴 남(3번)
(唵灠) “oṁ, raṃ”
‘raṃ’은 ‘정지.안락.적정의 상태로 만든다’는 뜻의 동사로서,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 등 우주 구성의 5대 요소 중 ‘화대(火大) 불[火]은 모든 더러움을 태워 청정케 한다 “아! 청정케 되어지이다!”
護身眞言 호신진언
옴 치림(3번)
(唵齒嚂). “oṁ, cilim”
‘cilim’은 ‘심히 깊다’는 ‘길상(吉祥)’ 문수보살을 나타내는 ‘일자진언(一字眞言)’ “아! (부처님 마음은) 심히 깊습니다”라는. 즉 그렇듯 깊은 부처님 마음에 우리가 의지하는 바,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침범할 수 있겠는가.
觀世音菩薩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반메 훔(3번)
(唵 麽抳 鉢訥銘 吽) “oṁ maṇi padme huṁ”
‘maṇi’는 ‘마니주’, 즉 ‘여의주’를 뜻한다.
‘padme’는 ‘연화(蓮華:연꽃)’를 뜻하는 명사 ‘padma’에 접미어가 붙어 ‘연꽃의’
인도의 신 브라흐마 또는 비슈누의 화신이나 불교에서의 ‘연화수(蓮華手: padmapāṇi)보살’
‘huṁ’은 복합어. ‘원인(原因)’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hetu’라는 명사의 ‘h’와 ‘감소시키다’ 는 뜻을 갖는 과거분사의 ‘u’를 취한 채, 음편(음의 조각) ‘ṃ(아누스와라 anusvāra라고 말하며, 字母에 찍는 점(‧)을 의미한다)’, ‘원인을 감(減)한다’ 또는 ‘원인이 되는 업을 없앤다’는 뜻
내 (준제진언의) 크나큰 복으로 (세상을) 두루 장엄하오니 원컨대 모든 중생, 깨달음 얻어지이다.”
如來十大發願文
여래십대발원문
願我永離三惡道 願我速斷貪瞋癡 願我常聞佛法僧 願我勤修戒定慧
원아영리삼악도 원아속단탐진치 원아상문불법승 원아근수계정혜
願我恒修諸佛學 願我不退菩提心 願我決定生安養 願我速見阿彌陀
원아항수제불학 원아불퇴보리심 원아결정생안양 원아속견아미타
願我分身遍塵刹 願我廣度諸衆生
원아분신변진찰 원아광도제중생
“원컨대 길이 삼악도(지옥.아귀.축생) 여의기 바라오며 탐.진.치 (삼독의 번뇌) 끊고자 하나이다.
(그리하여) 항상 불.법.승 (삼보) 가까이 하며 계.정.혜 삼학(三學)을 부지런히 닦아
모든 부처님 가르침을 항상 따라서 깨달음의 마음 물러서지 않게 하여지이다.
(그러한 즉) 결정코 안양(安養:極樂世界)에 태어나 아미타 부처님을 뵈오리니
나의 몸 티끌 세상에 두루하여 원컨대 널리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게 하소서.”
發四弘誓願
발사홍서원
衆生無遍誓願度 煩惱無盡誓願斷 法門無量誓願學 佛度無上誓願成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
自性衆生誓願度 自性煩惱誓願斷 自性法門誓願學 自性佛道誓願成
자성중생서원도 자성번뇌서원단 자성법문서원학 자성불도서원성
“한없이 많은 중생들, 제도코자 원하나이다. 다함이 없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자 원하나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의 진리, 배우고자 원하나이다. 더없이 높은 부처님의 깨달음, 이루고자 원하나이다.
나의 성품 속의 중생심, 제도코자 원하나이다. 나의 마음 속의 번뇌를, 끊어 버리고자 원하나이다.
나의 성품 속에 깃든 법의 진리, 배우고자 원하나이다. 나의 성품 속에 내재한 깨달음의 법, 이루고자 원하나
發願已 歸命禮三寶
발원이 귀명례삼보
南無常住十方佛 南無常住十方法 南無常住十方僧(3번)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온누리에 항상 머무시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온누리에 항상 존재해 있는 진리에 귀의합니다.
온누리에 항상 계시는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부처님이란 무엇인가? 이에 육조대사법보단경은 말하기를,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말할 때, 그 부처님은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그래서 부처님을 뵐 수 없다면 어떻게 귀의를 행할 수 있단 말인가!..<중략>…경문(經文)에 분명히 ‘스스로의 부처[自佛]에 귀의하랬지 또다른 부처[他佛]에 귀의하라고 하지 않았지 않는가!’…<후략>…”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
Ⅰ. 귀의문(歸依文)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Namo ratna-trayāya
삼보(三寶)께 귀의(歸依)합니다
여기서 Namo는 중성명사 namas의 변격동사로서 ‘귀의(歸依)‧귀명(歸命)’의 뜻을 갖는다. ratna는 ‘보물’을 말하며, traya는 ‘3종의’라는 형용사로 ratna를 수식하며, ya는 여격(與格)어미가 된다. 이를 종합하면, 3종의 보물 즉 “삼보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namaḥ는 중성명사 namas의 변격동사로서 ‘귀의‧귀명’의 뜻을 갖는다. 한편 āryāvalokiteśvarāya에서 ārya는 ‘성(聖)’을 의미하며, Avalokiteśvarāya는 ‘관(觀)하여 보는[見]’이란 뜻의 과거수동분사 Avalokita에 ‘신(神)’을 뜻하는 īśvara가 붙어 ‘관견(觀見)하는 신(神)’ Avalokiteśvara, 즉 불교적 의미로서의 ‘관자재(觀自在)’에 여격(與格)어미 ya가 붙은 것으로 ‘관자재께’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bodhisattvāya는 bodhisattva 즉 ‘보살’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보살께’를, mahāsattvāya는 mahāsattva 즉 ‘마하살’에 여격 ya가 붙어 ‘마하살께’란 뜻을 갖는다. 그리고 mahākāruṇika는 maha 즉 ‘큰’에 ‘자비’의 뜻을 갖는 kāruṇika, 그리고 거기에 여격 ya가 붙어 ‘큰 자비에’란 뜻을 갖는다. 이상의 것을 종합하면,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 tasmai namas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
이어 다음의 문장 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에서 Oṁ은 ‘아!’라는 감탄사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며, sarva는 ‘모든‧일체의’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이다. bhayeṣu는 ‘두려움’의 뜻을 갖는 명사 bhaya에 ‘중(中)의’라는 뜻을 갖는 처격(處格)어미 eṣu가 합해져 ‘두려움 가운데의’라는 의미를 갖는다. trāṇa는 ‘피난처’의 뜻을 갖는 명사이며, 거기에 ‘되어지다’는 뜻을 갖는 형용사 kara와 여격 ya가 붙어, 이를 앞의 것과 합해 번역하면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이)에게”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이어 다음 어구로서 tasmai namas가 등장하는 바, 여기서 tasmai는 ‘그’를 뜻하는 tad의 단수 여격형으로 ‘그에게’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namas는 ‘귀의합니다’는 뜻을 갖는다. 이를 앞의 문장과 연결시켜 보면,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번역을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다음 구절은 이렇듯 귀의를 행함에 대한 선행적 전제가 제시되고 있다.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nāma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kṛtvā는 ‘기억하다’는 뜻의 kṛ에 절대분사 tvā가 붙어 ‘기억하면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imam은 ‘이것’을 뜻하는 지시대명사 idam의 대격으로서 ‘이것을’이라 표기할 수 있는 즉, ‘이것을 기억하면서’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것을’이란 āryāvaloki- -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nāma를 말하고 있다.
여기 āryāvalokiteśvara-stavaṁ에서 stavaṁ은 ‘찬가’의 뜻을 갖는 명사에 대격(對格)어미 ṁ이 붙어진 것으로 ‘찬가를’이라 해석될 수 있는 바, 이 구절은 ‘성관자재 찬가를’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이를 수식하는 말로서 Nīlakaṇṭha-nāma가 붙는데, 닐라깐타(Nīlakaṇṭha)에서 Nīla는 ‘푸른[靑]’을 뜻하는 형용사이며, kaṇṭha는 ‘목[頸]’을 뜻하는 명사이다. 곧 ‘푸른 목’ ‘청경(靑頸)’을 뜻하는 Nīlakaṇṭha는 원래 힌두의 신 쉬바(Śiva: 또는 비슈누)의 명칭이었는데, 후대에 불교화되어 ‘청경관음’으로 불리워진 채 관세음보살의 화신 가운데 하나가 되어진 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nāma는 ‘이름‧명호’를 뜻하는 명사 nāman의 주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앞의 구절과 합해 Nīlakaṇṭha-nāma, 즉 ‘청경의 명호’라 해석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위의 구절을 우리는 “이것을 (즉), 청경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를 기억하면서”라 번역할 수 있게 되는 바, 이렇듯 기억을 행하면서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라는 말로서 귀의문은 종결된다.
Ⅱ. 발원문(發願文)‧I
(전제부前提部)
이상 귀의문 구절을 놓고 생각할 때 이후 다라니의 내용은 성관자재 찬가, 즉 ‘청경의 명호’에 대한 기억이 대종(大宗)을 이루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이에 앞서 다라니는 다음과 같은 ‘독송자의 발원’, 즉 발원문 부분을 첨가시키고 있다.
저는 마음을 닦겠읍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복과‧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란 마음)을‧‧‧‧‧‧
여기서 hṛdayaṁ은 ‘마음’을 뜻하는 단어 hṛdaya의 대격으로 ‘마음을’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vartayiṣyāmi는 ‘일으키다’, ‘수행하다’는 뜻의 동사 vṛt의 사역 미래형 1인칭으로, “저는 마음을 닦겠습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들이 뒤에 붙어 있는데, sarvārtha-sādhanaṁ śubhaṁ ajeyaṁ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akam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서 sarvārtha는 ‘일체의’란 뜻의 형용사 sarva와 ‘이익’을 뜻하는 명사 artha가 합해진 말이며, sādhanaṁ은 ‘성취’를 뜻하는 sādhana에 대격어미 ṁ이 첨가되어 ‘성취를’이라 번역할 수 있다. 또한 śubhaṁ이란 ‘안녕(安寧)’이나 ‘복(福)’을 뜻하는 śubha에 대격어미 ṁ이 첨가되어 ‘복을’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ajeyaṁ은 ‘필승(必勝)’이란 뜻의 ajeya에 대격어미 ṁ이 첨가되어 ‘필승을’이라 해석된다.
그리고 sarva-bhūtānāṁ은 sarva 즉 ‘일체의 bhūtānāṁ’으로, 여기서 bhūtānāṁ은 ‘유정‧중생’을 뜻하는 명사 bhūta에 복수 소유격 어미 nāṁ이 붙어 이를 ‘일체 중생들의’라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bhava-mārga-viśodhakam에서 bhava는 ‘삶’이나 ‘존재’를 뜻하는 명사이다. mārga는 ‘길’을 뜻하는 명사이며, viśodhakam은 ‘청정(淸淨)’을 뜻하는 viśodhaka에 대격어미 m이 붙어 ‘청정을’이라 번역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위 전체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저는 마음을 닦겠습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복과‧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는 <열반>이란 뜻을 갖는다)’이란 (마음)을‧‧‧‧‧.” 이를 풀어보면, “저는 ‘복과 필승 등 일체의 이익 성취와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에 있어서의 청정(열반)’을 바라는 (저의) 마음을 닦아나가겠습니다”라 말할 수 있기도 할 것인 바, 이는 다라니 독송자가 가져야 할 발원의 총체적 귀결점을 제시하고 있는 동시에 발원을 행함에 앞선 다라니 독송자의 기본적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Ⅲ. 발원문‧II
(서술부敍述部)
이어 위 발원문에 대한 구체적인 원(願)이 제시되고 있는 바, 앞의 발원문을 총원(總願)이라 할 수 있다면 이 부분은 앞의 총원에 대한 각각의 개별적인 원, 즉 별원(別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별원 부분이 앞의 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어구 tadyathā를 통해 알 수 있다.
다냐타
tadyathā
앞의 예(例)는 다음과 같다(다시 말하건대)
이어 tadyathā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서 tadyathā는 ‘이것은 그것과 같다’, ‘앞의 예는 다음과 같다’는 의미이다. 즉 앞의 내용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서술을 행하게 됨을 명시한다고 할 수 있다. 문법적으로 tadyathā는 ‘이것’을 의미하는 tad와 ‘‧‧‧이다’는 뜻의 yathā가 합해진 말로 ‘이것은 ‧‧‧이다’라는 서술구의 의미를 갖는다. 이를 굳이 표현한다면 “다시 말하건대” 쯤으로 해석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 서술부는 발원의 대상, 즉 성관자재께 대한 다음과 같은 귀의의 내용을 또다시 등장시키고 있다. oṁ āloka e, ālokamati lokātikrānta ehy-ehi Hare.
여기서 “‘āloka e’는 ‘Avalok[ita]’ 표기에 대한 중앙아시아의 형식으로서,” ‘관하여 보는’을 뜻하는 ‘Avalokita’의 호격에 해당되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oṁ āloka e를 “아! 관하여 보는 자시여!“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ālokamati에서 āloka는 ‘출세간(出世間)’을, mati는 ‘마음’을 뜻한다. 또한 lokātikrānta에서 loka는 ‘세속(世俗)’을, atikrānta는 과거수동분사 ‘초월한’의 명사형 호격으로 이해된다. 이에 이 부분을 번역해 보면 ‘출세간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라는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뒤의 ehy-ehi Hare에서 ehy-ehi는 ehi가 반복되어 쓰인 것이다. 그럼에도 산스크리트어의 연성법(連聲法)에서 i와 모음이 만날 경우 i가 y로 바뀌는 까닭에 앞의 것이 ehy로 표기된 것이다. 여하튼 여기서 ehi는 ‘오다’는 뜻의 명령형으로 ‘오소서, 오소서’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뒤의 Hare는 ‘비슈누(Viṣṇu) 신’을 지칭하는 명사 hari의 호격으로, 여기서는 문장 내용상 앞서 말한 청경이나 앞 구절의 āloka e로서의 ‘관하여 보는 자’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인 바, 관자재를 지칭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에 앞의 전체 문장을 “아! 관하여 보는 자시여! 출세간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 오소서, 오소서 관자재시여!”라 번역할 수 있다.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mahābodhisattva smara-smara hṛd--ayam
(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大菩薩)이시여!
여기서 mahābodhisattva는 ‘대보살’의 호격에 해당한다. 그리고 smara-smara에서 smara는 ‘‧‧‧‧을 기억하다, 상기하다’는 동사 smaratī의 명령형이며, hṛdayaṁ은 hṛdaya 즉 ‘마음’에 대격어미 ṁ이 붙어 ‘마음을’이 된다. 한편 불공(1113B) 역본에 의할 것 같으면 이 뒤에 마마(摩摩:mana)라는 표현이 추가되어 있기도 하는 바, 여기서 mana는 인칭대명사 mad의 속격(屬格)으로서 ‘나의’라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나의’라는 표현까지를 삽입하여 이를 번역하면 “(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이시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kuru-kuru karma sādhaya-sādhaya
의식(儀式)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
kuru-kuru에서 kuru는 ‘행하다’는 뜻을 가진 Kṛ의 2인칭 단수 명령형으로 ‘행하소서’라 번역할 수 있다. 또한 karma는 ‘의식’을 뜻하는 명사 karman의 대격(對格)으로, ‘의식을’이라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을 행하소서, 행하소서”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한편 sādhaya는 ‘목적을 달성하다’는 뜻의 단어 Sādh에 사역활용 어미인 aya가 붙은 채 사역분사로 쓰여지고 있는 바,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위의 내용과 함께 이를 번역해 보면, “의식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이라는 뜻이 된다.
이로서 [발원문]은 끝나게 된다.
Ⅳ. 성관자재 찬가
(聖觀自在讚歌:청경의 명호)
위 [발원문]에 이어 [성관자재 찬가]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앞의 [귀의문] 가운데 “성관자재 찬가인 청경의 명호를 기억하면서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보살마하살께 귀의한다”는 내용과의 연관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어 다라니는 다음과 같이 16항목에 달하는 [성관자재 찬가]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는 ‘청경의 명호’에 대한 나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 이후 16개에 이르는 ‘청경의 명호’가 동시에 소개되기도 한다.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미연제
dhuru-dhuruvijayanta e mahāvijayanta e
수호(守護)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 승리자>시여!
dhuru-dhuru에서 dhuru는 ‘지니다‧수호하다’는 뜻을 갖는 동사 Dhṛ의 명령형으로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vijayanta e에서 “vijayanta는 인드라(Indra)신의 별칭이 되기도 하는데, ‘승리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에 다라니에서는 [성관자재 찬가]의 한 부분으로서 이 내용을 말하는 가운데 ‘승리자’라는 명칭 자체를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위 문장을 해석해 본다면,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 승리자>시여!”라 할 수 있다.
다라다라 다린나례 새바라
dhara-dharadharaṇiṁdhareśvara
지지(支持)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이시여!
dhara-dhara에서 dhara는 ‘지지‧보존‧보지(保持)하는’의 뜻을 갖는 동사 dharatī의 명령형이다. 또한 인도의 신 비슈누나 쉬바의 명칭을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지지(支持)하소서’의 뜻으로 이해함이 좋을 것 같다. 또한 dharaṇiṁdhareśvara는 dharaṇiṁdhara와 īśvara로 나뉘는 바, dharaṇiṁdhara는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이란 형용사이며, īśvara는 ‘신’을 뜻하는 말의 호격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에 위 문장을 “지지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이시여!”라 해석할 수 있다.
cala-cala의 cala는 ‘움직이는‧요동하는’의 뜻을 갖는 동사 calatī의 명령형이다. 그리고 이어 malla vimalāmala가 등장하는데, 이 구절을 해석하는데 있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글 음역 다라니에서는 이 부분을 ‘마라 미마라 아마라’라 표기하여 그 음에 따라 이를 mala vimala amala의 도식적 관계로서 이해하게끔 하고 있는 바, 이 표기에 따른다면 우리는 이 부분을 굳이 “부정이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이라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mala는 ‘부정’을 뜻하는 명사의 호격이며, vimala는 ‘부정을 여읜’이란 형용사, 그리고 amala는 ‘청정한’의 형용사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의 공관도표를 통해 볼 때 불공(1064, 1113B) 및 가범달마(1060) 역본 등은 이 가운데 한글 음역의 ‘마라’에 해당하는 부분을 ‘마마(摩摩)’로서 한역 표기를 행하고 있는 즉, 이에 따른다면 우리는 ‘mama vimal-āmala’로서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mama는 ‘나’를 뜻하는 인칭대명사 mad의 속격으로, ‘나의’라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vimala는 ‘부정을 여읜’, amala는 ‘청정한’이란 뜻을 갖는 즉, “나의 부정을 여읜 청정한”이란 해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L. Chandra는 한글 음역 다라니를 표기하는데 있어 ‘malla vimala-amala’를 채택하고 있는 바, 여기서 malla는 나라야나(Nārāyaṇa)를 말하며 인도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 가운데 비슈누신에 대한 명칭으로서 쓰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다라니의 구성상 [성관자재 찬가]에 해당하는 이 부분에서는 위의 신적(神的) 인물을 ‘청경의 명호’의 하나로서 이해하고 있는 즉, 앞의 cala-cala를 첨가한 채 우리는 위 구절을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이라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뒤의 mūrtte re는 신의 명칭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 amala 즉 비슈누의 처(妻) 락쉬미(Lakṣmī)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금강지(no.1061) 역본에서는 mūrtte re 대신 ‘aryāvalokiteśvara Jina’ 즉 ‘성관자재 성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도 하는 바, 여기서 mūrtte re 역시 ‘청경의 명호’의 하나로서 이해함이 좋을 듯 하다.
이에 이상의 관점에서 위 문장을 해석해 본다면, “(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 <무르떼(神)>시여!”라는 해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말라>나 <무르떼>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ehy-ehi에서 ehi는 ‘오다’는 말의 명령형이며, Lokeśvara는 통상적으로 ‘세자재’를 뜻하는 바,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 되어질 수 있다. 이에 이 문장은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시여!”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rāga-viṣaṁ vināśaya에서 rāga는 ‘탐욕’을 뜻하는 명사이며, viṣaṁ은 ‘독’을 뜻하는 명사 viṣa에 ‘을’을 뜻하는 대격어미 ṁ이 첨가된 것으로 ‘탐욕의 독을’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vināśaya는 ‘파괴하다’는 뜻을 갖는 동사 vināśayatī의 명령형으로 ‘파괴하소서’라 해석되는 바, 앞의 내용을 종합하면 “탐욕의 독을 파괴하소서!”라 이를 옮길 수 있게 된다.
dveṣa-viṣaṁ vināśaya에서 dveṣa는 ‘진에(瞋恚)’를 뜻하는 명사이다. 여기에 ‘독을’이란 viṣaṁ이 붙고 ‘파괴하소서’란 뜻의 vināśaya가 붙어 이를 “진에의 독을 파괴하소서!”라 번역할 수 있게 된다.
moha-jāla-viṣaṁ vināśaya에서 moha는 ‘치암(癡暗:어리석음)’을 뜻하는 명사이며, jāla는 ‘그물 망(網)’을 뜻하는 명사이다. 즉 ‘치암(어리석음)이 얽혀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viṣaṁ과 vināśaya가 연결되어, 이는 “치암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라 번역될 수 있다.
이에 앞의 전체 문장을 우리말로 옮겨 보면,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시여! 탐욕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라는 기원(祈願)의 뜻으로 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바나마나바
huluhulu malla hulu HarePadmanābha
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관자재>시여, <파드마나바>시여!
huluhulu mala에서 huluhulu는 기쁨의 탄성, ‘기쁘도다!’라는 의미의 불변화사(不變化詞)가 된다(‘기뻐하다’는 동사 hulutī의 명령형으로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malla는 앞서 살펴본 바 비슈누의 화신 나라야나를 의미하는 즉,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말라(神)>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hulu Hare Padmanābha에서 Hare는 비슈누신을 뜻하는 명사 hari의 호격으로, 관자재(觀自在)를 뜻하고 있음은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리고 Padmanābha는 ‘연꽃’을 의미하는 Padma와 ‘허공’을 뜻하는 nābha가 결합된 말로, 비슈누신의 명칭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한편 관세음보살의 화신적 성격을 띄기도 하는 바,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상 문장을 옮겨 보면, “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관자재>시여, <파드마나바>시여!”가 된다. 이는 앞의 구절에서 설명된 바, ‘탐욕‧진에‧치암’ 등 삼독이 파괴될 것에 대해 ‘성관자재’께 기쁨의 탄성을 올리는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sara-sara siri-siri suru-suru에서 sarasara는 ‘이리 저리 움직이는’의 뜻을, sirisiri는 ‘좌우로 움직이는’이란 뜻을 갖는데, 모두 명령형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suru-suru에서 suru는 ‘흐르다‧흐르게 하다’는 동사 sru의 명령형으로서, ‘흐르소서!’라 번역할 수 있다. 이에 앞의 어구 전체를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라 해석할 수 있다.
그 다음 구절인 buddhyā-buddhyā에서 buddhyā는 ‘신념(信念)’ 또는 ‘식별(識別)’ 등의 뜻을 갖는 명사 buddhi의 구격(具格)으로서 ‘(반조하는) 신념으로서, 식별로서’라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bodhaya-bodhaya는 ‘깨닫다’ 또는 ‘이룩하다’는 뜻의 동사 bodhayatī의 명령형으로(또는 bodh에 사역형 어미 aya가 붙어) ‘깨달으소서(이룩하소서)’ 또는 ‘깨닫게 하소서(이룩하게 하소서)’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상의 해석을 통해 볼 때, 이 문장에는 주어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 행위의 주체자는 누구인가? 이에 금강지(1061) 역본에서는 suru-suru 다음에 muru-muru라는 표현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는데, 이는 아수라의 명칭으로 통칭 ‘신’이라 간략할 수 있는 말이다. 곧 “신이시여!”라 말할 수 있는 바, 전체 다라니의 내용과 굳이 연관을 시킨다면 이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함이 좋을 듯 하다.
이에 번역상의 편리를 위해 금강지 역본의 내용을 삽입시킨 채 위 전체 문장을 의역해 보면, “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 (<무루무루<神>>시여!) 비추어 식별함으로서 깨닫게(이룩하게) 하소서!”라는 뜻을 얻을 수 있다.
정(情)이 깊은 <청경(靑頸)>이시여! 즐거움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神)께 영광이 있기를!
maitriya Nīlakaṇṭha에서 maitriya는 ‘정이 있는’의 뜻을 갖는 명칭동사이며, Nīlakaṇṭha는 <청경>을 뜻한다. 이에 ‘정이 깊은 <청경>이시여!’라고 번역할 수 있다.
kāmasya darśanena prahlādāya manaḥ svāhā에서 kāmasya는 ‘즐거움’을 뜻하는 남성명사 kāma에 속격어미 sya가 붙어진 말로, ‘즐거움의(혹은 kāmā의)’라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darśanena는 ‘바람(원함, 희구), 관찰, 봄’이란 뜻의 darśana에 구격어미 na가 붙어(어간 끝의 a가 e로 변하고 na 붙음) ‘성찰함으로서’라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뒤의 prahlādāya는 비슈누 숭배자로서의 쁘라흐라다(prahlāda) 에 여격 ya가 붙은 것으로 ‘쁘라흐라다(神)께’라 번역할 수 있다. 여기에 ‘마음’을 뜻하는 manas의 대격 manaḥ ‘마음을’, 또한 svāhā가 붙어, 우리는 위 문장 전체를 “정이 깊은 <청경>이시여! 즐거움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神)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해석할 수 있다.
siddhāya svāhā에서 siddhāya는 ‘성자’를 뜻하는 명사 siddha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성자께’라 할 수 있으며, svāhā는 ‘영광이 있기를!’이란 축복어가 되니,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다.
mahāsiddhāya svāhā는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할 수 있다.
siddhayogeśvarāya svāhā에서 siddhayogeśvarāya는 siddha와 yoga와 ‘신’을 뜻하는 īśvara가 합해진 꼴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성자, <요가의 주>께’라 할 수 있으며, 뒤에 svāhā가 붙어 “성자, <요가의 주>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yogeśvara <요가의 주>는 쉬바의 호칭이 되어지기도 하는 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이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이에 위 전체 문장을 번역해 본다면,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 <요가의 주>께 영광이 있기를!”이란 뜻을 얻을 수 있다.
니라간타야 사바하
Nīlakaṇṭhāya svāhā
<청경(靑頸)>께 영광이 있기를!
Nīlakaṇṭhāya svāhā는 Nīlakaṇṭha, 즉 ‘청경’에 여격 ya가 붙어 “<청경>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이를 번역할 수 있다.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varāhamukha-siṁhamukhāyasvāhā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께 영광이 있기를!
varāhamukha-siṁhamukhāya에서 varāha는 ‘멧돼지’를 말하는데, ‘비슈누(Viṣṇu)의 화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mukha란 ‘얼굴’ 내지 ‘용모’를 뜻하는 명사로서, varāhamukha라 함은 ‘멧돼지의 용모로 변한 Viṣṇu의 화신’을 뜻한다고 하겠다. 한편 siṁhamukhāya에서 siṁha란 ‘사자(獅子)’를 말하는 바, 여타 역본에서 표기되고 있는 narasiṁha는 ‘Viṣṇu의 화신’으로서의 ‘인사자(人獅子)’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용모’라는 뜻의 mukha가 붙어진 바, 이를 ‘사자의 용모로 변한 Viṣṇu의 화신’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전체 내용을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 또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할 수 있다.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padma-hastāya svāhā
<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padma-hastāya svāhā에서 padma는 ‘연꽃’이란 뜻의 명사이다. 그리고 hasta는 ‘손’, ‘손에 쥔’을 뜻하는 명사로서 둘을 합하면 ‘연꽃을 손에 쥔 자’가 된다.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연꽃을 손에 쥔 자께’라는 뜻이 되는데, 여기서 ‘연꽃’이란 비슈누의 지물(持物)이 되어지는 까닭에 ‘연꽃을 손에 쥔 자’라 함은 곧 비슈누를 말한다고 할 것이다. 이에 이 구절을 “<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번역할 수 있다. 한편 ‘연꽃을 손에 쥔 자’는 불교 관음보살의 화신인 연화수(蓮華手)보살로 이해되기도 한 채, 여기서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쓰이고 있다.
자가라욕다야 사바하
cakrāyudhāya svāhā
<챠크라(원반 모양의 무기)를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cakrāyudhāya svāhā에서 cakrāyudha는 비슈누(Viṣṇu)나 끄리슈나(Kṛṣṇa)의 명칭이 된다.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신(Viṣṇu 혹은 Kṛṣṇa)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이 부분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공 역본(1113B)이거나 불공(1064) 및 가범달마(1060) 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cakra hastāya svāhā라 표기하고 있는 바, 여기서 cakra는 ‘원반 모양의 무기로서 Viṣṇu의 지물(持物)’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hasta는 ‘손에 쥔’을 뜻하며 여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챠크라>를 손에 쥔 (자)>에게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챠크라를 손에 쥔 자>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상카섭나네 모다나야 사바하
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에서 śaṅkha란 ‘소라고둥[螺貝]’이란 명사로서, Viṣṇu의 지물(持物)로 쓰이기도 하고 Viṣṇu의 상징 자체가 되어지기도 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śabda는 ‘음(音)’을 뜻하는 명사로서, 이 둘을 합하면 ‘소라고둥 소리’가 된다. 한편 nibodhanāya는 ‘소리를 듣다’는 뜻을 갖는 nibudh의 현재분사 nibodhana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소리를 듣는 자에게’라 번역될 수 있다. 이에 전체 문장을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할 수 있는 바,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는 Viṣṇu를 말할 것이나 여기서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여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mahālakuṭadharāya svāhā
<큰 방망이(를) 보지(保持)하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mahālakuṭadharāya svāhā에서 maha는 ‘큰’이란 뜻이며, lakuṭa는 ‘방망이’라는 뜻의 명사로, 방망이(lakuṭa) 역시 비슈누의 지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리고 dhara는 ‘보지하는’이란 뜻의 형용사이며, 여기에 여격 ya가 붙어 있으니, 이 문장은 “큰 방망이(를) 보지하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큰 방망이(를) 보지하는 (자)> 역시 비슈누를 지칭하는 표현이나, 여기서는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여지고 있다.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이나야 사바하
vāma-skanda-deśa-sthita-kṛṣṇājināya svāhā
왼쪽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vāma-skanda-deśa-sthita-kṛṣṇājināya svāhā에서 vāma는 ‘왼쪽의’라는 뜻을 갖는 형용사이다. 그리고 skanda는 ‘공격자’거나 ‘Śiva신 또는 Agni신의 아들’을 의미하는 명사이다. 또한 deśa는 ‘쪽’ 또는 ‘장소’를 뜻하는 명사이며, sthita는 ‘서 있는’, ‘있는’의 뜻을 가지는 과거 수동분사, 그리고 kṛṣṇājina는 ‘흑색 야크(羚羊)의 가죽’ 내지 ‘비슈누 화신으로서 끄리슈나(kṛṣṇa)’의 별칭 ‘흑색 성자’를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여격어미 ya가 붙어 있는 바, 이를 해석해 보면, “왼쪽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 된다.
여기서 <흑색 성자>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서 쓰여지고 있다.
먀가라 잘마이바 사나야 사바하
vyāghra-carma-nivasanāya svāhā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영광이 있기를!
vyāghra-carma-nivasanāya svāhā에서 vyāghra는 ‘호랑이’를 뜻하고, carma(n)는 ‘가죽’을 뜻하는 명사이다. 그리고 nivasana는 ‘(의복의) 착용’을 뜻하는 명사이며, 그 뒤에 여격어미 ya가 붙어지는 즉, 우리는 위의 문장을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영광이 있기를(svāhā)!”이라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 역시 ‘청경의 명호’ 가운데 하나로 쓰여지고 있다.
Ⅴ. 귀의문(歸依文)
이상 16항목에 걸친 [성관자재 찬가]를 통해 무려 16개에 이르는 ‘청경의 명호’가 동시에 소개되고 있는 바, 위 내용을 통해 볼 때 힌두 신앙의 많은 요소들이 불교 다라니와 접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다라니에 담긴 내재적 의미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천수다라니’에 대한 인도 신화학적(神話學的) 고찰」의 필요성을 느끼게도 되는 바, 현재 필자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이 연구의 성과는 이후 또다른 논문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여하튼 이상의 [성관자재 찬가]에 이어, 다라니는 또다시 다음과 같은 [귀의문]을 등장시켜 전체 내용을 마무리짓고 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3번)
namo ratna-trayāya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svāhā
삼보에 귀의합니다. 성관자재께 귀의합니다. 영광이 있으소서!
namo ratna-trayāya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삼보에 귀의합니다”는 뜻을 갖으며, 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는 “성관자재께 귀의합니다”라 번역될 수 있다. 그리고 svāhā는 “영광이 있기를······”이라 번역될 수 있음은 앞서 말한 바 있다.
③ 현행 다라니의 해석
삼보께 귀의합니다.
크나큰 자비의 聖觀自在 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
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이것을, (즉) 靑頸의 名號인 聖觀自在 讚歌를 기억하면서, 귀의합니다.
저는 마음을 닦겠읍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복과‧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란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