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광기(太平廣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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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제집
  • 자부(子部)
  • 태평광기(太平廣記)

1. 개요《태평광기(太平廣記)》는 북송(北宋) 때 이방(李昉) 등 12인이 태종(太宗)의 칙명을 받아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977)부터 다음 해 3년(978)에 걸쳐 편찬한 유서(類書)이다. 모두 500권이고 목록 10권이며, 내용의 전체는 92부(部)로 나뉘어 있다.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이를 소설가(小說家)에 편입시켰다. 《문원영화(文苑英華)》·《태평어람(太平御覧)》·《책부원구(冊府元龜)》와 함께 송사대서(宋四大書)로 일컬어진다. 소설의 유서로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2. 편자

(1)성명:이방(李昉)(925~996) 등 12인
(2)자(字)·별호(別號):이방의 자(字)는 명원(明遠).
(3)출생지역:심주(深州) 요양(饒陽)(현 하북성(河北省))
(4)주요활동 및 생애
이방은 오대(五代) 후한(後漢) 건우(乾祐) 연간에 진사(進士)가 되고, 후주(後周)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으며, 송(宋)나라에 귀의하여 중서사인(中書舍人) 벼슬을 하였다. 세 번이나 한림(翰林)에 들어갔다. 송 태종(宋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8년(983),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배수되었다. 단공(端拱) 원년(988) 파직되어 우복야(右僕射)가 되었다가, 순화(淳化) 2년(991)에 다시 평장사(平章事)에 배수되었다. 《구오대사(舊五代史)》 편찬에 참여하고, 《태평어람(太平御覽)》 1,000권, 《태평광기(太平廣記)》 500권, 《문원영화(文苑英華)》 1,000권 등 3부 유서(類書)의 편찬을 주재하였다. 이 가운데 《문원영화》는 이방이 호몽(扈蒙)·서현(徐鉉)·송백(宋白) 등 17명과 함께 태종의 칙명을 받들어 태평흥국 7년(982)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였다. 지도(至道) 2년(996)에 졸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뒤에 송나라 인종(仁宗)의 어휘(御諱)인 조정(趙禎)을 피하여 문정(文正)으로 개시(改諡)되었다. 《송사(宋史)》 권265에 입전(立傳)되어 있다.
(5)주요저작:《개보통의(開寶通義)》, 《태평어람(太平御覽)》, 《문원영화(文苑英華)》, 《구오대사(舊五代史)》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태평광기》는 북송 태종(太宗)의 칙명을 받은 이방 등 12명이 태평흥국 2년(977) 3월부터 다음 해(978) 8월까지 편찬하였으며, 인판(印板)을 새긴 것은 태평흥국 6년(981) 정월이라고 한다. 981년의 판각 이후 증쇄되지 않았다. 이 《태평광기》는 전한(前漢)부터 북송 초까지의 기담(奇談) 7,000편을 모아 신선(神仙)·방사(方士)·명현(名賢) 등 92류로 정리하였다. 권수(巻首)에는 인용서목(引用書目)으로서 《사기(史記)》 등 343종의 서적 이름을 열거하였으나, 채록은 하였으면서 인용서목에 빠진 것을 추가하면 근 500종의 문헌을 인용한 듯하다. 그 가운데 235종은 현존하지만 나머지는 산일(散逸)하였다.
명나라에 들어와 가정(嘉靖) 45년(1566)에 허개(談愷)(호(號) 십산(十山))가 필사본을 저본으로 삼아 판각하여 융경(隆慶) 원년(1567)에 수정본을 출판하였다. 이것을 담각본(談刻本)이라고 한다. 만력 연간(1573~1619)에는 허자창(許自昌)이 수정한 허각본(許刻本)이 나왔다. 청나라 건륭(乾隆) 연간(1736~1795) 황성(黄晟)이 교정한 소형본(小型本)은 황씨건상본(黄氏巾箱本)이라고 한다. 그 외 청나라 진중어(陳仲魚)가 발견한 송본(宋本)을 근거로 허각본을 교정하고 그 사실을 기입한 진씨수교본(陳氏手校本), 손잠(孫潜)이 담각본에 송본과의 차이를 주기(注記)한 손교본(孫校本), 담각본과는 다른 계통의 명나라 사본인 야죽재초본(野竹齋鈔本)(명초본(明鈔本)) 등이 있다. 또 소엽산본(掃葉山本)과 필기소설대관(筆記小說大觀), 석인본(石印本)이 있다. 가장 완비된 판본은 왕소영(汪紹楹) 점교본(點校本)이다. 1959년에 왕소영이 담각본을 저본으로 교감한 것을 인민문학출판사(人民文學出版社)가 출판하고, 1961년에 다시 오식(誤植) 정정본을 중화서국(中華書局)이 출판하였다. 그리고 《태평광기》는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되어, 현재 문연각사고전서본(文淵閣四庫全書本)이 영인되어 있다.

4. 내용

《태평광기》는 전부 500권이며 목록 10권이 별도로 있다. 전한부터 북송 초까지의 奇談 7,000여 편을 모아 신선(神仙)·방사(方士)·이승(異僧)·보응(報應)·명현(名賢)·공거(貢擧)·호협(豪俠)·유행(儒行)·회해(詼諧)·부인(婦人)·정감(情感)·몽(夢)·환술(幻術)·신(神)·귀(鬼)·요괴(妖怪)·재생(再生)·용(龍)·곤충(昆蟲)·초목(草木)·잡전기현(雜傳記賢) 등 92목 1,500류로 분류한 것으로, 소설(小說) 유서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태평광기》의 92목만을 보면 다음과 같다(괄호의 숫자는 권(卷)을 나타냄).

신선(神仙)(1~55)·여선(女仙)(56~70)·도술(道術)(71~75)·방사(方士)(76~80)·이인(異人)(81~86)·이승(異僧)(87~98)·석증(釋証)(99~101)·보응(報應)(102~134)·정응(征應)(135~145)·정수(定數)(146~160)·감응(感應)(161~162)·참응(讖應)(163)·명현(名賢)(164)·염검(廉儉)(165)·기의(氣義)(166~168)·지인(知人)(169~170)·정찰(精察)(171~172)·준변(俊弁)(173~174)·유민(幼敏)(175)·기량(器量)(176~177)·공거(貢擧)(178~184)·전선(銓選)(185~186)·직관(職官)(187)·권사(權挱)(188)·장수(將帥)(189~190)·효용(驍勇)(191~192)·호협(豪俠)(193~196)·박물(博物)(197)·문장(文章)(198~200)·재명(才名)(201)·유행(儒行)(202)·악(樂)(203~205)·서(書)(206~209)·화(畵)(210~214)·산술(算術)(215)·복서(卜筮)(216~217)·의(醫)(218~220)·상(相)(221~224)·기교(伎巧)(225~227)·박희(博戯)(228)·기완(器玩)(229~232)·주(酒)(233)·식(食)(234)·교우(交友)(235)·사치(奢侈)(236~237)·궤사(詭詐)(238)·함녕(諂佞)(239~241)·유오(謬誤)(242)·치생(治生)(243)·편급(褊急)(244)·회해(詼諧)(245~252)·조초(嘲誚)(253~257)·치비(嗤鄙)(258~262)·무뢰(無賴)(263~264)·경박(輕薄)(265~266)·혹폭(酷暴)(267~269)·부인(婦人)(270~273)·정감(情感)(274)·동부(童仆)(275)·몽(夢)(276~282)·무(巫)(283)·환술(幻術)(284~287)·요망(妖妄)(288~290)·신(神)(291~315)·귀(鬼)(316~355)·야차(夜叉)(356~357)·신혼(神魂)(358)·요괴(妖怪)(359~367)·정괴(精怪)(368~373)·영이(靈異)(374)·재생(再生)(375~386)·오전생(悟前生)(387~388)·총묘(冢墓)(389~390)·명기(銘記)(391~392)·뇌(雷)(393~395)·우(雨)(396)·산(山)(397)·석(石)(398)·수(水)(399)·보(寶)(400~405)·초목(草木)(406~417)·용(龍)(418~425)·호(虎)(426~431)·축수(畜獸)(432~446)·호(狐)(447~455)·사(蛇)(456~459)·금조(禽鳥)(460~463)·수족(水族)(463~472)·곤충(昆虫)(473~479)·만이(蠻夷)(480~483)·잡전기(雜傳記)(484~492)·잡록(雜錄)(493~500).

5. 가치와 영향

《태평광기》는 남송과 원나라 이후 널리 읽혀서 남송·원나라 화본(話本)·잡극(雜劇), 명·청 소설·희곡에는 이 책에서 제재를 취한 것이 많다. 또한 이 유서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읽히고 활용되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김현감호(金現感虎)’에 보면, 호랑이와 관련된 고사를 언급하면서 《태평광기》로부터 신도징(申屠澄) 고사를 인용하였다. 또 〈한림별곡(翰林別曲)〉 2장에는 독서인이 《태평광기》를 열람하는 광경이 언급되어 있다. 〈한림별곡〉이 1216년(고종 3)에 창작되었다고 본다면, 1216년 이전에 《태평광기》가 들어왔으리라 추측된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문헌에 산재하는 고려시대 문헌을 집일하기 위하여 중국 역사서와 정서(政書)는 물론, 《책부원구(冊府元龜)》·《태평광기(太平廣記)》·《옥해(玉海)》·《산당고색(山堂考索)》·《사림광기(事林廣記)》·《기찬연해(記纂淵海)》·《고금합벽사류비요(古今合璧事類備要)》·《한원신서(翰苑新書)》·《해록쇄사(海錄碎事)》·《사물기원(事物紀原)》·《유설(類說)》·《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등의 유서를 활용한 사례가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괴담전서(怪談全書)》로 번안되었다.
조선시대에 《태평광기》는 사례집으로도 활용되었다. 이를테면 1441년(세종 23) 5월 18일(계축), 의관(醫官)이 경중과 외방에서 뇌부(雷斧)·뇌설(雷楔)을 물색하라고 청원할 때 《대전본초(大全本草)》·《필담(筆談)》, 주희의 설과 함께 《태평광기》를 거론하였다. 1462년(세조 8) 성현(成俔)의 백씨 성임(成任)이 《태평광기》 500권을 요약해서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 50권을 만든 후, 다른 여러 서적에서 모은 30권을 합쳐 《태평통재(太平通載)》 80권을 이루었다. 《태평광기상절》은 143항목 843편 고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승소(李承召)(1422~1484)는 〈약태평광기서(略太平廣記序)〉에서, 《태평광기》가 유가 성리학에서 벗어나지만 유학자의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만하다고 그 가치를 인정하였다. 1463년(세조 8) 1월 1일(병신), 세조는 중궁과 함께 인정전(仁政殿)에서 풍정(豊呈)을 받고는 양성지(梁誠之)에게 “경(卿)이 《태평광기》를 아는가?”라 묻고, 《태평광기》 중의 말을 이야기하였다. 양성지는 그 일을 기회로 세조를 권계(勸戒)하였다. 성종 때인 1492년(성종 23), 이극돈(李克墩)은 《태평통재》를 중간하였다. 1569년(선조 2) 6월 20일(임진)의 석강(夕講)에서 기대승(奇大升)이 그 책을 ‘사람의 심지(心志)를 오도하는 책’이라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지식인들은 《태평광기》에 대해 고증적 고찰을 가하면서도 그 책을 실상은 애독하였다. 이를테면 장유(張維)는 《태평광기》를 통해서 〈규수객전(虯鬚客傳)〉을 읽고 《계곡만필(谿谷漫筆)》에 논평을 남겼다.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西浦漫筆)》 하권 49칙에서, 명나라 건문제(建文帝) 부자(父子)가 난을 피해 숨었다는 명나라 패관소설의 전설에 대해, 당나라 측천무후 때 서경업(徐敬業)과 낙빈왕(駱賓王)이 망명하였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제왕이 난을 피해 몸을 숨겨 천수를 다한 일은 예로부터 없었던 일’이라고 대비 논법을 구사하였다.
조선에서는 17세기 이후 《태평광기언해》가 이루어졌다. 현재로서 고(故) 김일근(金一根)님 소장의 멱남본(覓南本)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낙선재본(樂善齋本) 두 본이 완정하다. 한편 멱남본(전 5권 중 제2권 낙질)과 연세대 귀중본(제2권)은 권지일 26편(120면), 권지이 21편(99면), 권지삼 21편(118면), 권지사 26편(125면), 권지오 33편(107면)이니, 제2권의 낙질분을 제외한 5권에 모두 127편의 이야기를 실었다. 한편 낙선재본은 9권 완질이 현존하며, 총 268편의 이야기를 실었다. 후자는 전자를 저본으로 하면서 《전등신화(剪燈新話)》·《전등여화(剪燈餘話)》 속의 이야기를 일부 언해하고 우리나라 고소설 ‘매화전 전반부(뉴방삼의뎐)’도 수록하였다. 《태평광기언해》는 《태평광기》 가운데 조선의 사정에 맞지 않거나 외설스런 내용, 이단(異端)을 받드는 내용은 생략하였다. 후일담(後日譚)이 붙어 있을 때는 그것을 생략하였으며, 표현이나 어구도 상당히 많이 바꾸었다. 단 삽입시(揷入詩)의 경우는 거의 그대로 번역하였다. 또한 제4책(화(火)) 제12화 〈왕환지[지환]뎐(王之渙傳)〉은 《집이기(集異記)》에 들어 있던 기정화벽(旗亭畫壁) 고사로, 통용본 《태평광기》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유설(類說)》, 《설부(說郛)》, 《산당사고(山堂肆考)》 등 유서(類書)에 널리 전하는 고사이다. 《태평광기언해》는 《설부》 수록 ‘왕환지(王煥之)’의 원문을 저본으로 한 듯하다.

6. 참고사항

(1)명언
• “방주(坊州) 의군현(宜君縣)의 왕로(王老)가 온몸에 부스럼이 난 도사를 위해 도사의 말대로 술을 만들어 항아리에 가득 채워 주자, 도사가 항아리 속에 들어가 앉아 있은 지 3일 만에 머리털이 다시 새까맣게 되고 살결도 하얗게 되었으며, 왕로도 그 도사의 말대로 남은 술을 마시자 일시에 공중으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선(神仙)〉
• “신라 출신으로 당나라 빈공 진사가 되었으나 복기련형(服氣鍊形)을 하였던 김가기(金可記)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본래 《속선전(續仙傳)》에 수록되어 있던 이야기를 전재한 것이다. 권143 〈징응(徵應)〉에는 흑치상지(黑齒常之) 이야기가 《조야첨재(朝野僉載)》로부터 전재되어 있다.” 〈신선(神仙)〉
•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변(高騈)이 신선술을 광적으로 좋아하자 부장(部將) 여용지(呂用之)가 후토부인(后土夫人)이 영이(靈異)하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고변을 유혹한 기록이 나온다.” 〈요망(祅妄)〉
• “당(唐)나라 이하(李賀)가 27세로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늘에서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붉은 용을 타고 내려와 ‘옥황상제가 지금 그대를 불러와 새로 지은 백옥루(白玉樓)의 기문을 짓게 하라 하였소.’ 하고서 천상으로 데리고 갔다는 고사가 나온다.” 〈귀(鬼)〉
(2)색인어:태평광기(太平廣記), 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 이방(李昉), 유서(類書), 신선(神仙), 도술(道術), 방사(方士), 이인(異人), 보응(報應), 감응(感應).
(3)참고문헌
• 太平廣記(李昉 等編, 中華書局)
• 교역 태평광기언해(김동욱, 보고사)
• 연세대소장 태평광기언해본(김장환·박재연, 학고방)
• 한국한문기초학사(심경호, 태학사)
• 白話太平廣記(陸昕·郭力弓·任德山 主編, 北京燕山出版社)
• 白話太平廣記(周振甫 主編, 中州古籍出版社)
• 文白對照全譯太平廣記(高光·王小克·汪洋主編, 全5冊, 天津古籍出版社)
• 白話太平廣記(丁玉琤 等 主編, 全5冊, 河北敎育出版社)
• 譯注太平廣記鬼部(堤保仁 編, 星雲社)
• 新釋太平廣記 〈鬼部〉 (西本芳男 新釋·編集)
• 譯注 太平廣記婦人部(鹽卓悟·河村晃太郎編 汲古書院)
• 太平廣記夢部譯注稿(今場正美·尾崎裕 著, 中國藝文研究會)
【심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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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상절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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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太平廣記詳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성임(成任, 1421-1484)이 세조의 명을 받아 세조 8년(1462)에 중국의 ≪태평광기≫를 국내 최초로 발간한 책. 총 50권이었으나 26권만 현존한다. 국립중앙박물관옥산서원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이 소장 중이다.

2. 내용


태평광기는 한나라 때부터 북송 때까지 중국에서 떠돌던 설화 및 야사들을 모아 978년에 총 500권으로 완성한 중국의 대표 설화집이다.## 중국 고대 문학의 금자탑이자 집성체로 간주된다.

한국에서는 고려 문종 때부터 반드시 완독해야 할 대표 설화집으로 지식인들에게 애호받았다. 그러나 조선 세조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직접 판목을 만들어 인쇄하지 못하였고, 중국으로부터 비싼 가격을 지불하여 수입해와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자체적인 판목을 만들고 한국의 사정에 맞게 내용을 손본 것은 조선 세조 8년(1462)에 왕의 명을 받아 성임이 태평광기상절을 만들면서부터이다. 당대의 유명한 학자 서거정[1]이 서문을 쓰고 태평광기의 내용을 총 50권으로 축약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이후 우리나라에 필기(筆記) 저술 문화가 유행하였고, 야담이라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국식 전설이나 민담, 야사나 설화 등을 모은 단편 모음집이 나타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지식인들이 태평광기라 지칭한 책은 중국의 원본 태평광기가 아니라, ≪태평광기상절≫이나 역시 성임이 지은 ≪태평통재(太平通載)≫ 둘 중 하나였다.

원래는 총 50권이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26권이다. 총 26권에 143개 편목, 839편 고사를 모았다.

태평광기상절은 중국 학계에서 매우 유명한 서적이다. 이는 태평광기상절이 현재 중국이 자랑하는 고전 중국문학의 금자탑, 태평광기의 현존하는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이고, 특히 중국 내에서는 완전히 멸실된 고전 6종이 온전히 남아 전하기 때문이다. 북송 때 이방(李昉) 외 12명이 만들어 태청루(太淸樓)에 보관했던 송판(宋板) 원본은 소실되었다. 이후 명나라의 담개(談愷), 허자창(許自昌)이 1566년에 교각(校刻) 출판한 것이 현 중국의 태평광기 중 가장 오래된 판본이고, 이후 간행된 중국의 태평광기들도 전부 1566년본을 저본으로 한다. 조선에서 세조의 명으로 처음 발간한 태평광기상절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판본인 1566년본보다 100여 년 정도 이전에 만들어진 판본으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태평광기이다.연합뉴스

이 때문에 중국 학계에서 태평광기에 대한 논문이나 칼럼이 나올 때마다 한국의 태평광기상절이 반드시 언급된다고 한다.

오직 한국에만 남아 있는 태평광기 6문은 다음과 같다. 蕃中六畜[2], 耶孤兒[3], 胡王[4], 王陟[5], 侯泳[6], 陳延美[7]

또한 중국의 태평광기와 한국의 태평광기상절은 수록된 이야기의 출전이 다르게 표기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張嘉貞은 중국 판본에서는 定命錄을 출전이라, 태평광기상절에서는 明皇雜錄을 출전이라 적었다. 현재 중국학계와 한국학계 모두 태평광기상절에 표기된 출전이 맞다고 본다.
 
 
 
 
 

(중국사 사료) 태평광기 원문

태평광기 : 이 글에 대한 참조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2. 링크가 걸린 원문 사료입니다. 이 자료는 역사

xn--2n1bk9rtmh26jp7fdva.com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9068

 

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사본. 『태평광기』는 중국 북송(北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에 중국 각지에 퍼져 있던 당나라 이전까지의 설화·소설·전기·야사 등을 모두 채집하라는 칙명(勅命)에 의해 엮어진 전 500권의

encykorea.aks.ac.kr

송나라 초에 이방 등 12명이 왕명을 받아 엮은『태평광기』를 한글로 번역한 설화집.

필사본.

『태평광기』는 중국 북송(北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에 중국 각지에 퍼져 있던 당나라 이전까지의 설화·소설·전기·야사 등을 모두 채집하라는 칙명(勅命)에 의해 엮어진 전 500권의 방대한 전집으로, 중국 설화·소설의 보고라 불린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 고종 때, 제유(諸儒)의 작이라는 「한림별곡(翰林別曲)」에 이것이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수입되어 널리 읽혔음을 알 수 있고, 이후의 우리 나라 설화·고소설 등의 소재로도 『태평광기』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1462년(세조 8)에 성임(成任)이 『태평광기』의 이야기를 순서에 따라 가려 뽑아 50권으로 간추려 엮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이 간행되었다. 이것은 뒤에 다른 이야기들과 합쳐 편찬한 『태평통재(太平通載)』 80권 속에 실려 널리 유포되었다.
『태평광기』는 전집이기 때문에 6,900여 종의 이야기가 유별로 실려 있는데, 이 속에서 순서에 관계없이 자유로 가려 뽑아 언해한 것이 『태평광기언해』이다. 이 언해가 언제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현재 두 종류의 필사본이 있다.
그 하나는 전 5권으로 되어 있는 김일근(金一根) 소장본인데, 그 중 제2권이 낙질이다. 이 언해본은 제1권만 1957년통문관(通文館)에서 영인 출간한 바 있고 1990년에 다시 김일근 교수에 의해 두 종류의 『태평광기언해』가 영인 출간되었다.
이 언해본은 『태평광기』에서 유별이나 순서에 관계없이 각 분야에서 가려 뽑아 언해하여 분권하였으므로 원전의 편제와는 전혀 다르다. 제2권의 낙질분을 제외한 네 권에는 모두 106편의 이야기를 싣고 있으며, 제2권의 양을 다른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면 전체는 130여 이야기를 수록한 셈이 된다.
또 다른 언해본은 전 9권의 낙선재본(樂善齋本)이다. 이것은 완질이 현존하며, 9권까지에 총 268편의 이야기가 역시 유별이나 편차에 관계없이 양에 따라 분권, 수록되었다.
그런데 이 언해본은 앞의 전 5권본을 보충하여 추가한 것이다. 여기에는 5권본의 제4권 끝부분과 제5권 전체가 실려 있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이어 추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 5권본이 전해오는 동안에 낙장되고 산일된 것을 수습하여 싣고, 다시 원전에서 이야기를 뽑아 언해하여 추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언해본에 서로 겹친 설화를 제하면 전체 310여 종의 이야기가 언해된 셈인데, 이는 원전 『태평광기』의 약 20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언해에 사용된 어휘와 표기에서 두 본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결레ᄃᆞᆯ→겨레ᄃᆞᆯ이’, ‘동뎡→동졍’, ‘ᄠᅢ예→ᄯᅢ예’, ‘ᄠᅥ나노라→ᄯᅥ나노라’, ‘겨집ᄃᆞᆯ과→겨집들과’ 등으로 낙선재본이 후대에 변경, 표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용된 어휘로 보아 최초의 언해는 17세기경, 즉 조선 선조 이후 숙종 때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국어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이 언해는 원문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직역한 것이 아니라, 앞이나 뒷부분을 줄여 놓은 것도 있고 제목을 바꾼 것도 있으며, 인명만으로 된 원제목에 ‘뎐(傳)’을 붙여 놓은 것도 있는 등 국문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낙선재본에는 『태평광기』 속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10여 종이나 언해하여 함께 실어 놓았다. 여기에는 『전등신화(剪燈新話)』·『전등여화(剪燈餘話)』 속의 이야기를 언해한 것도 있고, 우리 나라 필사본 고소설 「매화전」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도 ‘뉴방삼의뎐’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하고 있다.
어떤 설화는 시대배경을 ‘홍무초(洪武初)’, ‘대명초(大明初)’, ‘원나라 지정간(至正間)’ 등으로 명기한 것도 있어, 창작설화에 가까운 작품을 함께 싣고 있다.
이러한 것은 『태평광기언해』라 하여 언해하는 책의 제목이 분명한 책 속에 다른 작품을 혼입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언해문학 연구의 한 자료가 된다.
저본은 『태평광기』의 초판본인 송판(宋板)이 아니고 명나라 가정 연간에 출간된 명판(明板)으로 확인된다. 저본 『태평광기언해』의 첫 부분은 신선(女仙 포함)관계 설화로 시작하며, 신선 관련 설화가 전체의 20%에 달한다.
그러나 『태평광기언해』는 처음에 ‘뎡덕닌뎐·니공뎐·ᄇᆡ셔뎐·매분아뎐·니탄녀뎐·두목디뎐·신번현령뎐·풍운뎐·최셔ᄉᆡᆼ뎐·최시뎐’ 등으로 시작되는데, 이 10편 속에 신선관련 이야기는 단 한 편도 없다. 처음 3편은 운수(運數)관련 설화이고, 다음 3편은 부인과 애정 관계 이야기이며, 나머지 4편은 귀신설화이다.
전 5권본 『태평광기언해』 제1권에 실린 26편 설화 중 마지막 4편만이 신선관련 설화이고, 절반인 13편이 귀신·요괴 관련 설화로 엮어져 있어, 조선시대 사람들의 설화 내용에 대한 관심도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참고문헌
  • 『태평광기언해』(김일근 편,박이정,1990)
  • 『한중소설설화비교연구』(김현룡,일지사,1976)
  • 『영인태평광기언해』(김일근 교설,통문관,1957)
  • 「태평광기언해본고」(김현룡,『문호』 6·7,197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참고문헌
  • 『태평광기언해』(김일근 편,박이정,1990)
  • 『한중소설설화비교연구』(김현룡,일지사,1976)
  • 『영인태평광기언해』(김일근 교설,통문관,1957)
  • 「태평광기언해본고」(김현룡,『문호』 6·7,197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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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태평광기』- 고대 소설의 집대성

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9068 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사본. 『태평광기』는 중국 북송(北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에 중국 각지에 퍼져 있던 당나라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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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백거이(중국어: 白居易, 772년 ~ 846년) 자(字)는 낙천(樂天)이고,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 등으로 불리었다. 당나라 때 뤄양(洛陽) 부근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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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중국어: 白居易, 772년 ~ 846년) 자(字)는 낙천(樂天)이고,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 등으로 불리었다. 당나라 때 뤄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에서 태어났다.

작품

백거이는 다작(多作)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존하는 문집은 71권, 작품은 총 3,800여 수로 당대(唐代) 시인 가운데 최고 분량을 자랑할 뿐 아니라 시의 내용도 다양하다. 젊은 나이에「신악부 운동」을 전개하여 사회, 정치의 실상을 비판하는 이른바 「풍유시(諷喩詩, 風諭詩)」를 많이 지었으나, 강주사마로 좌천되고 나서는 일상의 작은 기쁨을 주제로 한 「한적시(閑適詩)」의 제작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밖에도 평소 둘도 없는 친구였던 원진(元稹), 유우석(劉禹錫)과 지은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등의 감상시도 유명하다.

백거이가 45세 때 지은 「비파행」은 그를 당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꼽히게 하였으며, 또, 현종(玄宗)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시 「장한가」도 유명하다.

풍유시를 주로 했던 시기, 한적시를 주로 지었던 시기 전체를 통틀어, '짧은 문장으로 누구든지 쉽게 읽을 수 있는(平易暢達)' 것을 중시하는 시풍(詩風)은 변함이 없었다. 북송(北宋)의 석혜홍(釋惠洪)이 지은 《냉재시화(冷齎詩話)》 등에 보면, 백거이는 시를 지을 때마다 글을 모르는 노인에게 자신이 지은 시를 읽어주면서, 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평이한 표현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렇게 지어진 그의 시는 사대부(士大夫) 계층뿐 아니라 기녀(妓女), 목동 같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애창되는 시가 되었다.

이 밖에 <백시 장경집> 50권에 그의 시 2,200수가 정리되었으며, 그의 시문집인 <백씨 문집>은 그의 모든 시를 정리한 시집이다.

장편서사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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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恨歌 1 -백낙천

[주]작품의 주석번호는 순서대로 1), 2), 3)....으로 볼 것. 長恨歌 -백거이 [白居易, 772~846]字 낙천(樂天). 장한가는 120구 840자. 구섭우편저, 한역당시삼백수, 안병렬역, 계명대출판부, 1991. 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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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恨歌 2 -백낙천

제3단:전란 후 양귀비를 잊지 못하는 현종의 슬픔과 아픔. 天旋地轉廻龍馭 천지가 돌고돌아 천자는 서울 장안으로 돌아오는데38) 到此躊躇不能去 마외역에 이르자 머뭇거리며 차마 가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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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창부의 노래, 비파에 붙여 -백낙천

琵琶行 幷序 元和十年, 予左遷九江郡司馬. 明年秋, 送客湓浦口.聞舟中夜彈琵琶者, 聽其音錚錚然有京都聲.問其人, 本長安倡女.嘗學琵琶於穆曹二善才, 年長色衰, 委身爲賈人婦. 遂命酒, 使快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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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平廣記 : 神仙四十八 : 白樂天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白樂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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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樂天》

唐會昌元年,李師稷中丞為浙東觀察使。有商客遭風飄蕩,不知所止。月餘。至一大山。瑞雲奇花,白鶴異樹。盡非人間所覩。山側有人迎問曰:「安得至此。具言之。令維舟上岸。云:「須謁天師。」遂引至一處,若大寺觀。通一道明鈔本「道」下有「士」字。入。道士鬚眉悉白。侍衛數十。坐大殿上,與語曰:「汝中國人,茲地有緣方得一到,此蓬萊山也。既至,莫要看否。遣左右引於宮內遊觀。玉臺翠樹,光彩奪目,院宇數十,皆有名號。至一院。扃鏁甚嚴。因窺之。衆花滿庭。堂有裀褥,焚香階下。客問之。答曰:「此是白樂天院,樂天在中國未來耳。」乃潛記之,遂別之歸。旬日至越,具白廉使。李公盡錄以報白公。先是,白公平生唯修上坐業,及覽李公所報,乃自為詩二首,以記其事。及答李浙東云:「近有人從海上回,海山深處見樓臺。中有仙籠明鈔本「籠」作「龕」。開一室,皆言此待樂天來。」又曰:「吾學空門不學仙,恐君此語是虛傳。海山不是吾歸處,歸即應歸兠率天。」然白公脫屣煙埃,投棄軒冕,與夫昧昧者固不同也,安知非謫仙哉。出《逸史》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074270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나타난 신선고(神仙攷)-한국(韓國) 고소설(古小說)과의 상관성(相關性) 고찰(考察)-

 

blog.daum.net/thddudgh7/16560706?category=1425284

 

태평광기(667) 제48권 신선(神仙)(3-1) 백락천(白樂天)

                                    태평광기(太平廣記)(667)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된 500권의 설화집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3 년(978)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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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668) 제48권 신선(神仙)(3-2) 백락천(白樂天)

                                    태평광기(太平廣記)(668)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된 500권의 설화집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3 년(978)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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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669) 제48권 신선(神仙)(3-3) 백락천(白樂天)

                                    태평광기(太平廣記)(669)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된 500권의 설화집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3 년(978)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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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천/ 아내에게

http://blog.paran.com/sphh/41330252 增內(아내에게) - 백낙천(白樂天) 生爲同室親 [생위동실친] 死爲同穴塵 [사위동혈진] 他人尙想勉 [타인상상면] 而況我與君 [이황아여군] 살아서는 한 방에서 사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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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낙천(白樂天)의 시 51수 감삼.

◈ 백낙천(白樂天)의 시 51수 감삼.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3,800 여수의 시문을 읊어서 시(詩)문학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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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사본. 『태평광기』는 중국 북송(北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에 중국 각지에 퍼져 있던 당나라 이전까지의 설화·소설·전기·야사 등을 모두 채집하라는 칙명(勅命)에 의해 엮어진 전 500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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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송나라 초에 이방 등 12명이 왕명을 받아 엮은『태평광기』를 한글로 번역한 설화집.

내용

필사본.

『태평광기』는 중국 북송(北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에 중국 각지에 퍼져 있던 당나라 이전까지의 설화·소설·전기·야사 등을 모두 채집하라는 칙명(勅命)에 의해 엮어진 전 500권의 방대한 전집으로, 중국 설화·소설의 보고라 불린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 고종 때, 제유(諸儒)의 작이라는 「한림별곡(翰林別曲)」에 이것이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수입되어 널리 읽혔음을 알 수 있고, 이후의 우리 나라 설화·고소설 등의 소재로도 『태평광기』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1462년(세조 8)에 성임(成任)이 『태평광기』의 이야기를 순서에 따라 가려 뽑아 50권으로 간추려 엮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이 간행되었다. 이것은 뒤에 다른 이야기들과 합쳐 편찬한 『태평통재(太平通載)』 80권 속에 실려 널리 유포되었다.

『태평광기』는 전집이기 때문에 6,900여 종의 이야기가 유별로 실려 있는데, 이 속에서 순서에 관계없이 자유로 가려 뽑아 언해한 것이 『태평광기언해』이다. 이 언해가 언제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현재 두 종류의 필사본이 있다.

그 하나는 전 5권으로 되어 있는 김일근(金一根) 소장본인데, 그 중 제2권이 낙질이다. 이 언해본은 제1권만 1957년통문관(通文館)에서 영인 출간한 바 있고 1990년에 다시 김일근 교수에 의해 두 종류의 『태평광기언해』가 영인 출간되었다.

이 언해본은 『태평광기』에서 유별이나 순서에 관계없이 각 분야에서 가려 뽑아 언해하여 분권하였으므로 원전의 편제와는 전혀 다르다. 제2권의 낙질분을 제외한 네 권에는 모두 106편의 이야기를 싣고 있으며, 제2권의 양을 다른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면 전체는 130여 이야기를 수록한 셈이 된다.

또 다른 언해본은 전 9권의 낙선재본(樂善齋本)이다. 이것은 완질이 현존하며, 9권까지에 총 268편의 이야기가 역시 유별이나 편차에 관계없이 양에 따라 분권, 수록되었다.

그런데 이 언해본은 앞의 전 5권본을 보충하여 추가한 것이다. 여기에는 5권본의 제4권 끝부분과 제5권 전체가 실려 있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이어 추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 5권본이 전해오는 동안에 낙장되고 산일된 것을 수습하여 싣고, 다시 원전에서 이야기를 뽑아 언해하여 추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언해본에 서로 겹친 설화를 제하면 전체 310여 종의 이야기가 언해된 셈인데, 이는 원전 『태평광기』의 약 20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언해에 사용된 어휘와 표기에서 두 본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결레ᄃᆞᆯ→겨레ᄃᆞᆯ이’, ‘동뎡→동졍’, ‘ᄠᅢ예→ᄯᅢ예’, ‘ᄠᅥ나노라→ᄯᅥ나노라’, ‘겨집ᄃᆞᆯ과→겨집들과’ 등으로 낙선재본이 후대에 변경, 표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용된 어휘로 보아 최초의 언해는 17세기경, 즉 조선 선조 이후 숙종 때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국어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이 언해는 원문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직역한 것이 아니라, 앞이나 뒷부분을 줄여 놓은 것도 있고 제목을 바꾼 것도 있으며, 인명만으로 된 원제목에 ‘뎐(傳)’을 붙여 놓은 것도 있는 등 국문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낙선재본에는 『태평광기』 속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10여 종이나 언해하여 함께 실어 놓았다. 여기에는 『전등신화(剪燈新話)』·『전등여화(剪燈餘話)』 속의 이야기를 언해한 것도 있고, 우리 나라 필사본 고소설 「매화전」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도 ‘뉴방삼의뎐’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하고 있다.

어떤 설화는 시대배경을 ‘홍무초(洪武初)’, ‘대명초(大明初)’, ‘원나라 지정간(至正間)’ 등으로 명기한 것도 있어, 창작설화에 가까운 작품을 함께 싣고 있다.

이러한 것은 『태평광기언해』라 하여 언해하는 책의 제목이 분명한 책 속에 다른 작품을 혼입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언해문학 연구의 한 자료가 된다.

저본은 『태평광기』의 초판본인 송판(宋板)이 아니고 명나라 가정 연간에 출간된 명판(明板)으로 확인된다. 저본 『태평광기언해』의 첫 부분은 신선(女仙 포함)관계 설화로 시작하며, 신선 관련 설화가 전체의 20%에 달한다.

그러나 『태평광기언해』는 처음에 ‘뎡덕닌뎐·니공뎐·ᄇᆡ셔뎐·매분아뎐·니탄녀뎐·두목디뎐·신번현령뎐·풍운뎐·최셔ᄉᆡᆼ뎐·최시뎐’ 등으로 시작되는데, 이 10편 속에 신선관련 이야기는 단 한 편도 없다. 처음 3편은 운수(運數)관련 설화이고, 다음 3편은 부인과 애정 관계 이야기이며, 나머지 4편은 귀신설화이다.

전 5권본 『태평광기언해』 제1권에 실린 26편 설화 중 마지막 4편만이 신선관련 설화이고, 절반인 13편이 귀신·요괴 관련 설화로 엮어져 있어, 조선시대 사람들의 설화 내용에 대한 관심도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참고문헌

  • 『태평광기언해』(김일근 편,박이정,1990)
  • 『한중소설설화비교연구』(김현룡,일지사,1976)
  • 『영인태평광기언해』(김일근 교설,통문관,1957)
  • 「태평광기언해본고」(김현룡,『문호』 6·7,197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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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667) 제48권 신선(神仙)(3-1) 백락천(白樂天)

                                    태평광기(太平廣記)(667)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된 500권의 설화집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3 년(978)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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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668) 제48권 신선(神仙)(3-2) 백락천(白樂天)

                                    태평광기(太平廣記)(668)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된 500권의 설화집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3 년(978)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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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669) 제48권 신선(神仙)(3-3) 백락천(白樂天)

                                    태평광기(太平廣記)(669)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된 500권의 설화집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3 년(978)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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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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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太平廣記)는 칙명(勅命)에 따라 편집된 총 500권의 중국의 소설집이다.

목차

소개[편집]

≪태평광기≫는 한대(漢代)부터 북송 초에 이르는 소설·필기·야사 등의 전적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채록해, 7000여 조에 달하는 이야기를 수록한 책이다. 각 고사의 끝에는 채록 출처를 밝혀놓았는데, 인용된 책은 거의 500종에 가까웠으며, 그중에서 절반가량은 이미 망실된 것이었으나 ≪태평광기≫에 의거해서 적지 않은 내용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또한 현존하는 절반가량의 인용서도 ≪태평광기≫에 인용된 해당 고사에 근거해 잘못된 부분을 고증하거나 교감할 수 있다. 따라서 고소설의 일문(佚文)을 보존하고 있는 측면과 고소설의 변화, 발전을 연구하는 측면에서 볼 때 ≪태평광기≫의 중요성은 지대하다고 하겠다.

내용[편집]

내용은 거리의 소문, 개인의 에피소드, 진기하고도 색다른 이야기 등이 대부분으로서 신선·선녀… 잡전기(雜傳記)·잡록(雜錄) 등으로 모두 92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태평광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신선귀괴(神仙鬼怪)와 인과응보(因果應報)에 관한 것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한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여러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그중에서 <신선(神仙)>·<여선(女仙)>·<보응(報應)>·<신(神)>·<귀(鬼)>·<요괴(妖怪)> 등의 부류가 다른 부류의 권수보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고대 민간풍속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이래 지괴(志怪)소설의 흥성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잡전기(雜傳記)>류는 모두 당대(唐代)의 전기(傳奇) 작품을 수록했는데, 이를 통하여 당대 전기에 주로 어떤 종류의 내용이 기록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류별로 고사를 배열하는 이러한 체제는 독자들이 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에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송대 이전 고소설의 변천과 발전 상황을 알고 싶으면 이 책에 근거해서 탐색해 나갈 수 있다.

편자[편집]

편자는 이방(李昉) 외 12명으로 모두가 송대(宋代) 초기의 일류학자이다. 태평흥국(太平興國) 3년(978)에 원고를 완성하여 3년 후에 판을 새겼는데, 후학(後學)에는 그다지 필요한 서적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어서 판본(板本)은 궁중 서고인 태청루(太淸樓)에 보관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송판(宋板)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광기>가 세상에 유포되고 있는 것은 명(明)의 담개(談愷)가 초본을 입수하여 1566년에 교각(校刻) 출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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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이방『태평광기』- 고대 소설의 집대성

김장환(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태평광기』는 어떤 책인가? 고래의 숨은 이야기와 자질구레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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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는 어떤 책인가?

고래의 숨은 이야기와 자질구레한 일, 보기 드문 책과 없어진 문장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그 권질(卷帙)이 적은 것은 종종 전부 수록해 놓았으니, 대개 소설가의 깊은 바다이다. ··· 이 책은 비록 신괴(神怪)를 많이 얘기하고 있지만 채록한 고사가 매우 풍부하고 명물(名物)과 전고(典故)가 그 사이에 섞여 있기에, 문장가들이 늘 인용하는 바이고 고증가들 역시 자료로 삼는 바가 많다. 또한 당(唐) 이전의 책 가운데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잔결(殘缺)된 서적이 10분의 1이나 여전히 보존되어 있으므로 더욱 귀중하다.

-청(淸) 기윤(紀昀)의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태평광기(太平廣記)』는 중국 북송(北宋) 태종(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3년(978)에 편찬되어 태평흥국 6년(981년)에 판각되었다. 이 책은 한(漢)나라 시대부터 북송(北宋) 초기에 이르는 소설, 필기, 야사 등의 전적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채록하여 총 500권에 7,000여 조에 달하는 이야기를 수록했다.

 

92개의 각 부류1)에 실려 있는 고사는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대부분 인물명을 제목으로 삼았으며, 고사의 끝에는 채록의 출처를 밝혀 놓았다. 인용된 책은 거의 500종에 가까운데, 그중에서 절반가량은 이미 망실된 것으로 『태평광기』에 의거해서 적지 않은 내용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또한 현존하는 절반가량의 인용서도 『태평광기』에 인용된 해당 고사에 근거하여 잘못된 부분을 고증하거나 교감할 수 있다. 따라서 고소설의 일문(佚文)을 보존하고 있는 측면과 고소설의 변화 발전을 연구하는 측면에서 볼 때 『태평광기』의 중요성은 지대하다고 하겠다.

 

『태평광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신선귀괴(神仙鬼怪)와 인과응보(因果應報)에 관한 것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한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여러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그중에서 신선(神仙), 여선(女仙), 보응(報應), 신(神), 귀(鬼), 요괴(妖怪) 등의 부류가 다른 부류의 권수보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다. 신의 부류는 조상신, 사당신, 산천신 등에 관한 내용이고, 귀의 부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귀신(도깨비)' 이야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향은 고대 민간풍속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이래 지괴(志怪)소설의 흥성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잡전기(雜傳記)」는 모두 당(唐)나라 시대의 전기(傳奇)를 수록했는데, 이를 통하여 당시 어떤 종류의 내용이 주로 기록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류별로 고사를 배열하는 이러한 체제는 독자들이 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에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송(宋)나라 시대 이전 고소설의 변천과 발전 상황을 알고 싶으면 이 책에 근거해서 탐색해 나갈 수 있다.

 

『태평광기』는 각종의 고소설을 많이 모아놓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종교, 민속, 명물, 전고, 문장, 고증 등의 면에서 풍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다방면의 연구와 참고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위진남북조와 당나라 때의 사회 상황을 연구할 때에도 이 책에서 많은 유용한 자료를 찾아 낼 수 있다.

 

유서로서의 『태평광기』

『태평광기』의 성격을 규명하는 다양한 논의 가운데 하나는 유서(類書)로 간주하는 것이다. 유서는 각종 자료를 찾아보기 쉽게 주제별로 나누어 편집한 책으로서, 오늘날의 백과사전처럼 필요한 자료나 구절을 찾아보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서는 주로 도구적인 책으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유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학문체계인 유가 경전이나 역사서, 철학사상서, 작가들의 문집 안에 적절히 포괄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별로 주목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단순히 자료를 모아놓은 도구서로서 유서를 이해하는 것에서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 본다면, 유서는 '도구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유서가 표방하고 있는 세계의 여러 가지 현상과 사물, 사건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식과 구조 속에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들을 나름대로 분류화, 체계화, 개념화한 세계 해석의 방식을 감지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서가 지어졌을 당시의 배경과 목적, 체제 등의 앞뒤 흐름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유서는 중국의 전통 문화구도를 설명하는 중요한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

『태평광기』는 중국 소설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고대 소설의 보고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고대 소설의 망실된 자료를 집록하고 교감하는 일차적인 자료를 제공해주는 도구서로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단순히 자료적 차원에서 이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태평광기』라는 유서 그 자체에 주목하면 또 다른 새로운 측면을 볼 수 있다. 괴이한 이야기만을 잔뜩 모아놓은 『태평광기』가 어떻게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편찬이 추진될 수 있었는가? 그것이 다른 유서와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그것의 편찬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는 당시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태평광기』가 편찬될 수 있었던 흐름과 함께 『태평광기』라는 유서가 완성된 이후에 파생되었던 흐름을 아울러 살펴보아야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이러한 논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특히 중국 '소설(小說)'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유서로서의 『태평광기』는 특히 다른 유서와는 달리 '이야기(故事)'만을 분류 수록함으로써, 반대로 '서사(narrative)'관념을 확정짓고 개념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전에는 사부(史部)나 자부(子部)에 아무렇게나 섞여있었던 '서사'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태평광기』의 서사는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세계 인식과 결부되어 사부에 속할 수 있는 서사와는 다른 종류의 서사, 곧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세계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종류의 '기이한(奇) 이야기'였다. 결국 '이야기'만을 모아 수록한 『태평광기』라는 거대한 유서의 편찬은 '소설'의 인식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는 『태평광기』 편찬 전에 기록되었던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와 『구당서(舊唐書)』 「경적지」의 목록 및 그 이후에 편찬되었던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의 목록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태평광기』에 인용되었던 '기이한 이야기'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사부에 섞여있지 못하고 모두 '소설가류(小說家類)'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소설가'는 이미 『태평광기』이전의 소설가의 관념과는 달라진 것이다. 곧 『태평광기』라는 유서의 편찬은 기이한 이야기를 소설의 범주에 편입시킴으로써 전체 소설의 인식 변화를 유발하는 중대한 전환점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태평광기』의 국내 전래와 유행

『태평광기』가 처음 우리나라에 전래된 분명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남송(南宋) 때의 문인 왕벽지(王闢之)가 지은 『승수연담록(澠水燕談錄)』을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송 신종(神宗) 원풍(元豊) 3년(1080)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박인량(朴寅亮) 이 『태평광기』에 실려 있는 고사를 능숙하게 활용하여 글을 지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원풍 3년은 고려 문종(文宗) 34년에 해당하며, 『태평광기』가 간행된 때(981년)로부터 100년이 되기 직전이다. 따라서 그 이전에 『태평광기』가 국내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승수연담록』의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일화의 주인공이 박인량이란 점이다. 그는 고려 초기의 문신(文臣)으로 『수이전(殊異傳)』의 편찬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수이전』은 신라 시대 말에서 고려 시대 초에 간행된 설화집으로, 지금은 망실되어 전체적인 체제와 특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 일문(佚文)이 집록된 상태이다. 현재 『수이전』은 한국 고소설의 성립 시기를, 종래 조선 초의 『금오신화(金鰲新話)』에서 나말여초(羅末麗初)로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에는 『수이전』의 성립 문제를 중국의 지괴소설이나 당 전기 등의 영향 관계에서 추정해 보았는데, 이 기록을 통해 『태평광기』와 나말여초의 고소설 성립 문제를 보다 구체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고려 문신 윤포(尹誧)의「태평광기촬요시(太平廣記撮要詩)」(1146), 『한림별곡(翰林別曲)』(1216),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등에 『태평광기』의 서명이나 내용이 계속 나타난다.

조선 시대 초기에는 중국 판본이 재차 수입되어 당시 식자층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러나 원서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고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구해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세조(世祖) 8년(1462)에 성임(成任)이 원서를 50권으로 축약한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을 간행했으며, 그 후 다른 여러 책에서 채록한 30권 분량의 고사를 합쳐 80권으로 된 『태평통재(太平通載)』를 다시 간행했다. 이를 통해 당시 『태평광기』의 수요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태평광기상절』은 일찍이 망실되었지만 최근까지 50권 중 26권이 발굴되었으며, 『태평통재』도 현재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태평광기상절』과 『태평통재』는 여러 차례의 간행을 통해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지만, 어디까지나 한문을 이해할 수 있는 식자층에 국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한문을 해독할 수 없는 일반 서민이나 여성 독자들을 위해서는 우리말로 된 번역본이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명종(明宗: 1545~1567 재위) 때를 전후해서 나온 것이 바로 『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이다. 현존하는 언해본으로는 멱남본(覓南本)과 낙선재본(樂善齋本) 두 종류가 있다.

이처럼 『태평광기』는 그 자체로 혹은 『태평광기상절』, 『태평통재』, 『태평광기언해』의 다양한 형태로 조선 시대문인들에게 애독되었고, 그에 따른 영향 또한 상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축약본과 언해본에 어떠한 고사들이 선별 수록되었는지를 분석해본다면, 중국소설에 대한 당시 독자들의 독서경향을 알아낼 수 있으며, 이는 곧 국내 고소설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태평광기』의 현대적 수용

고전의 매력은 시대를 초월하여 새롭게 이해되고 해석되는 데에 있다. 약 천여 년 전에 편찬된 『태평광기』도 지금까지 다양한 독자층을 형성하며 애독되고 있다.

『태평광기』는 작심하고 벼려서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하는 책이 아니다. 불로장생하는 신선 이야기에서부터 기이한 동식물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92개의 큰 부류와 150여 개의 작은 부류에 체계적으로 분류된 7,000여 편의 이야기 중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만 골라 읽으면 된다. 예를 들어 여우 이야기에 관심 있는 독자는 「호(狐)」부류에 실려 있는 80여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 된다. 선진(先秦) 시대부터 송대 초까지의 다양한 여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약 2천 년 동안 변화 발전해온 여우 이야기의 전개과정과 구성 및 묘사기법 등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중국 여우 이야기의 작은 역사'인 셈이다. 특히 사회문화론적 시각에서 문학 작품에 나타난 동물 이미지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요즈음 그 주요 테마 가운데 하나인 여우 이미지의 형성과정을 파악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자료가 된다.

『태평광기』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이야기는 후대 작품의 창작 소재와 제재로 활용될 수 있다. '신혼(神魂)'의 부류에 실려 있는 「왕주(王宙)」- 일명 「이혼기(離魂記)」- 이야기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왕주와 천낭(倩娘)의 사랑을 천낭의 혼을 통하여 이룬다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당대 전기소설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훗날 많은 속작과 개작들을 만들어냈는데, 원ㆍ명ㆍ청나라와 근대를 거치면서 문언소설, 백화소설, 희곡 등으로 새롭게 지어졌으며, 현대에는 『천녀유혼(倩女遊魂)』이라는 영화로 등장했다. 이처럼 『태평광기』에는 현재까지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많이 실려있다. 『태평광기』는 더 이상 옛날에 기록된 박제된 이야기가 아니라 천의 얼굴을 한 이야기꾼으로서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태평광기』 가운데 100편의 이야기가 문화 콘텐츠로 개발된 바 있는데, 비교적 완전한 이야기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 중에서 내용이 환상적이고 낭만적이며 주인공의 성격 특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이야기가 선정되었다. 따라서 신선이나 귀신, 환술과 꿈에 관한 판타지 성향의 이야기가 주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인간의 대담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늘 현재성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지어지고 새롭게 변주될 것이다. 선정된 각 작품에는 개요, 원문, 번역문, 캐릭터 그림, 내용 그래픽 등이 첨부되어 있으며, 원작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시놉시스가 제공된다. 이 사업은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문화예술창작자들에게 창작 소재와 제재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태평광기』가 오늘날의 멀티미디어 환경에 수용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2)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태평광기』의 편찬 목적은 무엇인가?

현재 『태평광기』의 편찬 목적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일치되어 있지 않지만 대체로 두 가지 설이 유력하다. 그 하나는 오대(五代)에서 귀항(歸降)한 여러 제왕과 지식인들을 국가 주도의 대형 편찬사업에 참여시켜 새로운 왕조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무력으로 오대를 정벌하고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송 태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태종이 정치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문교(文敎)와 학술을 장려한다는 정부의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기 위하여 편찬했다는 설이다. 아무튼 국가 차원에서 그동안 축적된 지식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2. 『태평광기』 부류 배열의 특징은 무엇인가?

『태평광기』의 부류는 순서대로 도교 관계 이야기, 불교 관계 이야기, 숙명(宿命)에 관한 이야기, 인간사(人間事)에 관한 이야기, 꿈과 환상에 관한 이야기, 귀신과 요괴에 관한 이야기, 죽음과 재생에 관한 이야기, 자연현상에 관한 이야기, 조수초목(鳥獸草木)과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 기타 등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중에서 도교 관계 이야기에 해당하는 '신선(神仙)', '여선(女仙)', '도술(道術)', '방사(方士)', '이인(異人)'의 부류와 불교 관련 이야기에 해당하는 '이승(異僧)', '석증(釋證)', '보응(報應)'의 부류가 앞에 배열되어 있고 그 분량 또한 134권으로 전체의 27%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나라와 당나라, 오대를 이어 송나라 시대 초기까지 크게 유행했던 도교와 불교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 『태평광기』가 우리문학에 미친 구체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태평광기』는 고려 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후로 소설문학에 새로운 소재와 기법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나라 고소설의 생성과 발달을 촉진시켰다. 특히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翁稗說)』 등과 같은 잡록식 패관(稗官) 문학과, 임춘(林椿)의 「국순전(麴醇傳)」ㆍ「공방전(孔方傳)」, 이규보의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등과 같은 가전체(假傳體)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추천할 만한 텍스트

『태평광기』(전21권), 이방 외 지음, 김장환 외 옮김, 도서출판 학고방, 2000~2005.

 

각주

1) 각 부류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1.신선(神仙) 2.여선(女仙) 3.도술(道術) 4.방사(方士) 5.이인(異人)

6.이승(異僧) 7.석증(釋證) 8.보응(報應) 9.징응(徵應) 10.정수(定數)

11.감응(感應) 12.참응(讖應) 13.명현(明賢) 14.염검(廉儉) 15.기의(氣義)

16.지인(知人) 17.정찰(精察) 18.준변(俊辯) 19.유민(幼敏) 20.기량(器量)

21.공거(貢擧) 22.전선(銓選) 23.직관(職官) 24.권행(權倖) 25.장수(將帥)

26.효용(驍勇) 27.호협(豪俠) 28.박물(博物) 29.문장(文章) 30.재명(才名)

31.유행(儒行) 32.악(樂) 33.서(書) 34.화(畵) 35.산술(算術)

36.복서(卜筮) 37.의(醫) 38.상(相) 39.기교(伎巧) 40.박희(博戲)

41.기완(器玩) 42.주(酒) 43.식(食) 44.교우(交友) 45.사치(奢侈)

46.궤사(詭詐) 47.첨녕(諂佞) 48.유오(謬誤) 49.치생(治生) 50.편급(楄急)

51.회해(詼諧) 52.조초(嘲誚) 53.치비(嗤鄙) 54.무뢰(無賴) 55.경박(輕薄)

56.혹포(酷暴) 57.부인(婦人) 58.정감(情感) 59.동복(童僕) 60.몽(夢)

61.무(巫) 62.환술(幻術) 63.요망(妖妄) 64.신(神) 65.귀(鬼)

66.야차(夜叉) 67.신혼(神魂) 68.요괴(妖怪) 69.정괴(精怪) 70.영이(靈異)

71.재생(再生) 72.오전생(悟前生) 73.총묘(塚墓) 74.명기(銘記) 75.뇌(雷)

76.우(雨) 77.산(山) 78.석(石) 79.수(水) 80.보(寶)

81.초목(草木) 82.용(龍) 83.호(虎) 84.축수(畜獸) 85.호(狐)

86.사(蛇) 87.금조(禽鳥) 88.수족(水族) 89.곤충(昆蟲) 90.만이(蠻夷)

91.잡전기(雜傳記) 92.잡록(雜錄)

2) 이 사업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지원으로 개발되어 그 결과물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chinastory.culturecontent.com"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kG_Ki70XI 

 

 


www.youtube.com/watch?v=e_R3VkPn0sg

 

 

www.youtube.com/watch?v=vkM68L1KUyg

 

 

www.youtube.com/watch?v=tqxQv8fUv1o

 

 

www.youtube.com/watch?v=ijsEqPW8Bc4

 

 

 

ko.wikipedia.org/wiki/%EC%84%9C%EC%9C%A0%EA%B8%B0

 

서유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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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 (중국 신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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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446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www.youtube.com/watch?v=-lkG_Ki70XI

 

 

www.youtube.com/watch?v=Ipz1wGUzAno

 

 

 

www.youtube.com/watch?v=bmoAR5kKH1I

 

 

www.youtube.com/watch?v=w4kU5FJSDm4

 

 

www.youtube.com/watch?v=5hV7u7xXYHo

 

 

www.youtube.com/watch?v=zqEKvoncgQM

 

 

www.youtube.com/watch?v=aXt937L2Q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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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사오정(沙悟淨, Sha Wujing)은 중국의 4대 기서 가운데 하나인 《서유기》의 등장인물로, 그 외모가 하천의 괴수 형태를 지니고 있었는데 손오공조차 사오정을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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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팔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저팔계(猪八戒, Zhu Bajie)는 중국의 4대 기서 가운데 하나인 《서유기》의 등장인물로, 본명은 저강렵(猪剛鬣), 법명은 저오능(猪悟能)이다. 팔계라는 이름은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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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손오공(孫悟空, Sun Wukong)은 중국의 4대 기서 가운데 하나인 《서유기》의 주인공인 원숭이로, 오공, 제천대성(齊天大聖, 하늘(제왕)과 같이 높은 성자(신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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