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翰林曰:“鴻娘高義 雖楊家執拂之妓 不敢跂也,

한림왈 홍낭고의 수양가집불지기 불감기야

我愧無李衛公將相之才而已. 欲相好 豈有量哉?”

아괴무이위공장상지재이이 욕상호 기유량재

한림이 말하기를,

“홍낭의 높은 의기는 비록 양가의 집불기생執拂妓生이라도 감히 따르지 못하겠거늘,

내 이위공李衛公과 같은 장수나 재상이 될 만한 재질이 없음을 부끄러워할 뿐이오.

서로 좋도록 지내고자 하니, 어찌 내 꺼리는 바가 있겠소.”

鴻娘亦謝之蟾月曰:“鴻娘旣代妾身以侍相公,

홍낭역사지섬월왈 홍낭기대첩신이시상공

妾亦當代鴻娘 而謝於相公矣.”

첩역당대홍낭 이사어상공의

홍낭이 또한 그 말에 감사를 표하니 섬월이 말하기를,

“홍낭이 이미 첩의 몸을 대신하여 상공을 모셨으니,

첩 또한 마땅히 홍낭을 대신하여 상공께 사례드립니다.”

仍起拜僕僕. 是日翰林與兩人經夜,

잉기배복복 시일한림여양인경야

明朝將行謂兩人曰:

명조장행위양인왈

이어 일어나서 꾸벅꾸벅 절하였다.

이날 한림이 두 미인과 더불어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아침에 장차 길을 떠나려 할 때, 두 낭자에게 이르기를,

“道路多煩不得同車, 將待立家 卽相迎矣.”

도로다번부득동거 장대립가 즉상영의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번거로워 동거同車는 못 하나,

장차 혼례를 치른 후에 곧 서로 만나도록 하겠소.”

至京師復命於闕下,

지경사복명어궐하

時燕藩表文 及貢獻金銀綵段 亦適至矣.

시연번표문 급공헌금은채단 역적지의

한림이 서울에 이르러 궐하闕下에서 복명하는데,

연나라 변방에서 표문表文과

공물로 바치는 금은채단金銀綵段이 때 마쳐 이르렀다.

上大悅 慰其勤勞褒其勳庸,

상대열 위기근로포기훈용

將議封侯以答其功,

장의봉후이답기공

천자는 크게 기뻐하며,

그 근로勤勞를 위로하고 그 공훈을 표창하여

그 공에 대한 보답으로 장차 후侯를 봉하려 의논하시거늘,

因翰林力辭寢其議, 擢拜禮部尙書 兼帶翰林學士,

인한림력사침기의 탁배례부상서 겸대한림학사

賞賚便蕃 寵遇隆至 人皆榮之.

상뢰변번 총우륭지 인개영지

한림이 힘써 사양하므로,

그 의논을 그치고 예부상서로 발탁하여 한림학사를 겸대하게 하시며

상을 곧 많이 내리고 총우寵遇가 융숭하시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부러워하였다.

翰林還家 司徒夫妻迎見於中堂, 賀其成功於危地,

한림환가 사도부처영견어중당 하기성공어위지

喜其超秩於卿月, 歡聲動一家矣.

희기초질어경월 환성동일가의

한림이 집에 돌아오니

사도 부처가 중당에서 맞아들여 만나 보며

그 위험한 곳에서 성공함을 하례하고,

그 벼슬이 경월卿月에 훌쩍 오른 것을 기뻐하니

환성이 온 집안을 들썩하였다.

尙書歸花園與春娘,

상서귀화원여춘낭

說離抱結新歡 鄭重之情可想矣.

설리포결신환 정중지정가상의

상서가 화원으로 돌아와 춘낭과 함께

이별의 회포를 풀며 새로운 즐거움을 맺으니,

그 정중한 정은 상상할 만 하였다.

上重楊少遊文學 頻召便殿,

상중양소유문학 빈소편전

討論經史 翰林之直宿最頻.

토론경사 한림지직숙최빈

천자가 양소유의 글재주를 소중히 여겨 자주 편전으로 불러들여

경서와 사기를 토론하시니, 한림이 숙직하는 날이 매우 잦아졌다.

一日罷夜對 歸直廬 禁苑月上,

일일파야대 귀직려 금원월상

翰林不堪豪興 獨上高樓, 憑欄而坐 對月吟詩.

한림불감호흥 독상고루 빙란이좌 대월음시

하루는 저녁 토론을 마치고

곧바로 숙직하는 처소에 돌아왔는데

궐 안의 동산에 달이 떠오른즉,

한림이 호걸의 흥취를 참을 수 없어

높은 누각에 올라 난간을 의지하고 앉아서

달을 바라보며 시를 읊조렸다.

忽因風便而聞之 則洞簫一曲,

홀인풍편이문지 즉통소일곡

自雲宵葱籠之間 漸漸而來矣.

자운소총롱지간점점이래의

문득 바람결에 들으니, 퉁소 노래 한곡조가

구름낀 밤 그 자욱한 데서

점점 들려왔다.

地密聲遠 雖不能卞其調響,

지밀성원 수불능변기조향

而俗耳所不聞者, 生招院吏而門曰:

이속이소불문자 생초원리이문왈

땅에는 어둠이 짙게 깔리고 소리가 멀어서

비록 그 조향調響은 분별할 수가 없었으나,

그 소리는 일반 사람의 귀로는 들어보지 못한 것이기에,

생이 원리院吏를 불러 묻기를,

“此聲出於宮墻之外耶?

차성출어궁장지외야

或宮中之人 有能吹此曲者乎?”

혹궁중지인 유능취차곡자호

“이 소리가 궁의 담 밖에서 나는 것인가?

혹은 궁중 사람 가운데 이 곡조를 불 수 있는 자가 있는가?”

院吏曰:“不知也.”

원리왈 부지야

원리가 대답하기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仍命晋酒 連飮數觥,

잉명진주 연음수굉

仍出所藏玉簫 自吹數曲,

잉출소장옥소 자취수곡

이에 생이 술을 내오라 명하여

잇따라 여러 잔을 들이킨 후

감춰둔 옥퉁소를 꺼내어 자신이 여러 곡을 부니,

其聲直上紫霄 彩雲四起,

기성직상자소 채운사기

聽之 若鸞鳳之和鳴也.

청지 약란봉지화명야

그 소리가 곧바로 자줏빛 하늘에 올라가

채색 구름을 사방에서 일으키는데,

그 소리를 들어보면

난봉이 서로 어울리어 우는 듯하였다.

靑鶴一雙 忽自禁中飛來, 應其節奏 翩翩自舞,

청학일쌍 홀자금중비래 응기절주 편편자무

院中諸吏大奇之, 已爲王子晋在吾翰院中矣.

원중제리대기지 이위왕자진재오한원중의

청학靑鶴 한 쌍이 홀연 대궐 안으로부터 날라 와

그 절주節奏에 맞춰 가볍게 훨훨 날면서 춤추거늘,

한림원 안의 모든 관리들이 무척 신기하게 여겨

왕자 진晋이 한림원 안에 있을 것이라 여기었다.

時皇太后有二男一女,

시황태후유이남일녀

皇上及越王, 蘭陽公主也.

황상급월왕 란양공주야

이때 황태후에게는 두 아들과 외동딸이 있었으니,

이들은 황상과 월왕越王 그리고 난양공주蘭陽公主였다.

蘭陽之誕生也,

란양지탄생야

太后夢見神女奉明珠 置懷中矣,

태후몽견신녀봉명주 치회중의

난양공주가 탄생할 적에

태후의 꿈에 선녀가 구슬을 받들어

태후의 품속에 넣어주는 게 보였는데,

公主旣長 蘭資蕙質,

공주기장 란자혜질

閨範壺則 超出於銀潢玉葉之中,

규범호칙 초출어은황옥엽지중

공주가 장성하매 난초와 같은 자태와 좋은 성질,

그리고 규범, 예의 법도가 황실 안에서 유독 빼어나고,

一動一靜 一語一默 皆有法度,

일동일정 일어일묵 개유법도

頓無俗態 文章女工 亦皆逼眞,

돈무속태 문장녀공 역개핍진

한 번 움직이는 것과 멈추는 것,

한 마디 하는 말과 입을 다무는 것이

모두 법도가 있어서

도무지 속된 것이 없고,

문장이나 침선 또한 모두가 출중하여

太后以此 鐘愛甚篤.

태후이차 종애심독

이로써 태후가 깊이 사랑하고 매우 든든히 여기셨다.

時西域太眞國 進白玉洞簫,

시서역태진국 진백옥통소

其制度極妙, 而使工人吹之 聲不出矣.

기제도극묘 이사공인취지 성불출의

이때 서역 태진국西域太眞國에서 백옥 퉁소를 바쳤는데,

그 꾸밈새가 극히 묘하여서

악공을 시켜 그것을 불어 보게 하였으나, 소리가 나지 아니하였다.

公主一夜 夢遇仙女,

공주일야 몽우선녀

敎以一曲 公主盡得其妙,

교이일곡 공주진득기묘

공주가 어느 날 밤 꿈에 선녀를 만나서

한 곡조를 배워 공주가 그 신묘함을 다 익혔는데,

及覺試吹太眞玉簫, 聲韻甚淸 律呂自叶,

급각시취태진옥소 성운심청 률여자협

太后及皇上, 皆異之 而外人莫之知矣.

태후급황상 개리지 이외인막지지의

꿈을 깨어 태진국의 옥퉁소를 시험삼아 불어 보니,

성운聲韻이 매우 맑으며 음률과 악률에 저절로 맞아서

태후와 천자께서 다 기이하게 여겼는데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公主每吹一曲,

공주매취일곡

群鶴自集於殿前 蹁躚對舞,

군학자집어전전 편선대무

공주가 매양 한 곡조를 불면,

학의 무리들이 저절로 전각 앞에 모여들어

빙빙 돌면서 마주 보고 춤을 추었다.

太后謂皇上曰:

태후위황상왈

태후가 황상에게 이르시기를,

“昔秦穆公女弄玉 善吹玉簫, 今蘭陽妙曲 不下於弄玉,

석진목공녀농옥 선취옥소 금란양묘곡 불하어롱옥

必有簫史者然後, 方使蘭陽嫁矣.”

필유소사자연후 방사란양가의

“옛날에 진목공秦穆公의 딸 농옥弄玉이 옥퉁소를 잘 불었다고 하는데,

이제 난양의 묘한 곡조가 농옥에게 뒤떨어지지 아니하니,

꼭 소사簫史같은 사람이 있은 뒤에야

장차 난양을 시집보내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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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翰林大悔曰:

한림대회왈

“昔楚莊王絶纓 以安其群臣矣,

석초장왕절영 이안기군신의

한림은 크게 후회하여 말하기를,

“옛적에 초장왕楚莊王은 갓끈을 끊어

그 모든 신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는데,

我則欲察晻昧之事, 仍失才美之士,

아즉욕찰엄매지사 잉실재미지사

今雖自責何可及也?”

금수자책하가급야

나는 곧 모호한 일을 살피고자 하다가

이로 인해 재주 있고 아름다운 선비를 잃었으니,

이제 비록 스스로 책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卽使從者遍訪於城之內外.

즉사종자편방어성지내외

곧 종자從者들을 시켜서 성 안팎을 두루 찾아보게 하였다.

是夜與蟾月 話舊論心, 對酒取樂至夜半,

시야여섬월 화구론심 대주취락지야반

滅燭而寢矣.

멸촉이침의

이날 밤에 한림이 섬월을 데리고

옛일을 말하며 마음을 밝히고

한 밤중이 되도록 술자리를 벌여 즐겁게 놀다가,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至微明始覺, 則蟾月方對粧鏡 調鉛紅矣,

지미명시각 즉섬월방대장경 조연홍의

瀉情留目 心忽驚悟 更見之.

사정류목 심홀경오 갱견지

날이 샐 무렵에 이르자 비로소 잠을 깨었는데,

섬월이 바야흐로 경대 앞에 앉아 단장을 새로 하기에,

정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그를 깜짝 놀라 다시 보았다.

則翠眉明眸 雲鬢花瞼 柳腰之勺約,

즉취미명모 운빈화검 류요지작약

雪膚之皎潔皆蟾月, 而細審之 則非也.

설부지교결개섬월 이세심지 즉비야

곧 푸른 눈썹과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며,

구름 같은 살쩍과 꽃 같은 뺨이며,

버들같이 가는 허리와

눈빛과 같이 깨끗한 살결이 섬월과 비교되어

자세히 살펴보니 섬월이 아니었다.

翰林驚愕疑惑而亦不敢詰焉.

한림경악의혹이역불감힐언

한림이 놀라서 충격을 받고 마음에 의혹이 가지만

또한 감히 힐문詰問하지 못하였다.

翰林細繹深推, 知非蟾月而後乃問曰:

한림세역심추 지비섬월이후내문왈

“美人何如人也?”

미인하여인야

한림이 미인을 자세히 헤아리고 깊이 생각하여

섬월이 아님을 안 후 에 묻기를,

“미인은 어떤 사람이오?”

對曰:“妾本播州人 姓名狄驚鴻也.

대왈 첩본파주인 성명적경홍야

미인이 대답하기를,

“첩은 본래 파주播州 사람이오며, 성명은 적경홍狄驚鴻입니다.

自幼時與蟾娘結爲兄弟, 昨夜蟾娘謂妾曰:

자유시여섬낭결위형제 작야섬낭위첩왈

어렸을 때부터 섬낭과 형제를 맺었었는데,

어젯밤에 섬낭이 첩에게 부탁하기,를

‘吾適有病 不得侍相公矣, 汝湏代我之身 俾免相公之責’,

오적유병 부득시상공의 여수대아지신 비면상공지책

以此妾敢替桂娘猥陪相公矣.”

이차첩감체계낭외배상공의

,‘내가 마침 병이 들어 상공을 모시지 못하니,

네가 반드시 내 몸을 대신하여 상공의 꾸짖음을 면케 해 달라.’하기에,

감히 첩이 계낭을 대신하여 외람되게 상공을 모셨습니다.”

言未畢 蟾月開戶而入曰:

언미필 섬월개호이입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섬월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말하기를,

“相公又得新人妾敢獻賀矣.

상공우득신인첩감헌하의

賤妾曾以河北狄驚鴻薦於相公, 賤妾之言 果何如?”

천첩증이하북적경홍천어상공 천첩지언 과하여

“상공께서 또 새 사람을 얻었으니 첩은 감히 축하드립니다.

천첩이 일찍이 하북의 적경홍을 상공께 천거 했사온데,

천첩의 말이 어떻습니까?”

翰林曰: “見面大勝於聞名.”

한림왈 견면대승어문명

한림이 말하기를,

“얼굴을 보니 이름을 듣던 것보다 훨씬 낫소.”

更察驚鴻儀形, 則與狄生無毫髮異矣,

갱찰경홍의형 즉여적생무호발이의

다시 경홍의 의용을 살펴보니

적생狄生과 털끝만치도 다르지 않았다.

乃言曰:“原來狄生是鴻娘之同氣也.

내언왈 원래적생시홍낭지동기야

男女雖異 容貌卽同,

남녀수이 용모즉동

이어서 말하기를,

“원래 적생이 홍낭鴻娘의 동기同氣인 듯하오.

남자와 여자는 비록 다른 점이 있긴 하나,

용모가 똑같으니

狄娘爲狄生之妹乎?

적낭위적생지매호

狄生爲狄娘之兄乎?

적생위적낭지형호

적낭이 적생의 누이가 되는가?

적낭이 적생의 형이 되는가?

我昨日得罪於狄兄矣,

아작일득죄어적형의

狄兄今何在乎?”

적형금하재호

내가 어제 적형狄兄에게 죄를 지었는데,

적형은 지금 어디에 있소?”

驚鴻曰:

경홍왈

“賤妾本無兄弟矣.”

천첩본무형제의

경홍이 대답하기를,

“천첩은 본래 형제가 없습니다.”

翰林又細見 大悟笑曰:

한림우세견 대오소왈

한림이 또 자세히 살펴보고

확연히 깨닫는 바가 있어 웃으며 말하기를,

“邯鄲道上 從我而來者 本狄娘也,

한단도상 종아이래자 본적낭야

昨日墻隅 與桂娘語者 亦鴻娘也,

작일장우 여계낭어자 역홍낭야

“한단邯鄲의 길 위에서 나를 따라 온 자 본래 적낭이고,

어제 담 옆에서 계낭과 얘기를 나눈 자 또한 홍낭일진대,

未知鴻娘以男服瞞我何也.”

미지홍낭이남복만아하야

홍낭이 남복을 하고

나를 무슨 까닭으로 속였는지 알지 못하겠소.”

驚鴻對曰:

경홍대왈

“賤妾何敢欺罔相公乎?

천첩하감기망상공호

경홍이 대답하기를,

“천첩이 어찌 감히 상공을 기망欺罔하겠습니까?

賤妾雖貌不逾人 才不如人,

천첩수모불유인 재불여인

平生願從君子人矣.

평생원종군자인의

천첩이 비록 얼굴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지도 못하고

재주도 다른 사람만 못하오나,

평생에 대인 군자된 자 따르기를 바랐습니다.

燕王過聞妾名 睹以明珠一斛,

연왕과문첩명 도이명주일곡

貯之宮中 雖口飫珍味, 身厭錦繡 非妾之願也.

저지궁중 수구어진미 신염금수 비첩지원야

연왕이 첩의 이름을 지나치게 듣고

명주 한 섬으로 첩을 사서

궁중에 두니, 비록 입으로는 진미를 싫도록 먹고,

몸에는 비단을 싫을 정도로 걸치나

이는 첩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頃日燕王邀相公開大宴也, 妾穴窓紗而見之,

경일연왕요상공개대연야 첩혈창사이견지

則是賤妾所願從者也.

즉시천첩소원종자야

지난날 연왕이 상공을 맞아들여 큰 잔치를 베풀제,

첩이 창틈으로 상공을 보았는데

이는 천첩이 따르길 바랐던 대상이었습니다.

然宮門九重 何以能越,

연궁문구중 하이능월

長程萬里 何以自致?

장정만리 하이자치

그러나 궁문이 아홉 겹이니 어찌 뛰어 넘을 수 있으며,

길이 만리이니 어찌 스스로 상공께 다다를 수 있었겠습니까?

百爾思度 僅得一計 而相公離燕之日,

백이사도 근득일계 이상공리연지일

妾若抽身而從之, 則燕王必使人追躡故,

첩약추신이종지 즉연왕필사인추섭고

이리저리 곰곰이 생각하여 가까스로 한 가지 계책을 얻었으나,

상공이 연나라를 떠나시는 날,

이 몸을 빼쳐 상공을 따른다면

연왕이 꼭 사람을 보내어 뒤쫓을 터이므로,

待相公啓程後十日, 偸騎燕王千里馬,

대상공계정후십일 투기연왕천리마

第二日追及於邯鄲, 及拜相公宜告實狀,

제이일추급어한단 급배상공의고실상

상공이 떠나는 길에 오른 지 열흘 뒤에

연왕의 천리마千里馬를 몰래 훔쳐 타고,

이틀 만에 한단 땅에 이르러,

상공을 뵈올 적에 마땅히 실상을 고할 것이로되,

恐煩耳目不敢開口,

공번이목불감개구

欺隱之責 實難逃也.

기은지책 실난도야

번잡한 이목이 두려워서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으며

상공을 속이고 사실을 숨긴 책임은 실로 면하기 어렵겠습니다.

前日之着男子巾服者, 欲避追者之物色,

전일지착남자건복자 욕피추자지물색

昨夜之效唐姬古事者, 盖循桂娘之情懇也,

작야지효당희고사자 개순계낭지정간야

전날에 남자의 건복巾服을 입은 것은

뒤 쫓는 자를 피하고자 한 사정이었고,

어젯밤에 당희唐姬의 옛 일을 본받은 것은

무릇 계낭의 정어린 간청에 따른 것이오니,

前後之罪雖有可恕,

전후지죄수유가서

而惶恐之心久益切矣.

이황공지심구익절의

전후의 죄를 비록 용서 하실지라도

황공한 마음은 오래도록 잊지 못하겠습니다.

相公若不錄其過, 不嫌其陋而假喬木之蔭,

상공약불록기과 불혐기루이가교목지음

借一枝之巢,

차일지지소

상공이 만일 그 허물을 따지지 않으시고,

그 비루함을 꺼려하지 않으시며,

교목喬木에 그늘을 빌려 주시어 한 가지에 깃들도록 허락하신다면,

則妾當與蟾娘 同其去就, 待相公有室之後,

즉첩당여섬낭 동기거취 대상공유실지후

與蟾娘進賀於門下矣.”

여섬낭진하어문하의

첩은 마땅히 섬낭과 그 거취를 함께 하여

상공이 부인을 맞이하신 후에

섬낭과 함께 문하에 나아가 하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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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見翰林下車進拜於前, 倍入帲幪接裾而坐,

견한림하거진배어전 배입병몽접거이좌

悲喜交切淚下言前. 乃傴身而賀曰:

비희교절루하언전 내구신이하왈

한림이 수레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올리고

장막 안으로 모시고 들어가 옷깃을 여미고 마주 앉으니,

슬픔과 기쁨이 함께 서려 올라 말보다 눈물이 앞서 흐르는지라,

이에 몸을 굽혀 하례하기를,

“驅馳原隰貴軆萬福, 足慰戀慕之賤悰也.

구치원습귀체만복 족위련모지천종야

仍歷陳別後事曰,

잉력진별후사왈

“언덕과 습한 땅을 지나 말을 빨리 달려 오셨는데

귀체가 만복萬福하시니,

연모하는 천한 이 마음에도 족히 위로가 되겠습니다.

인하여 이별한 후의 일을 세세히 말씀드리자면

自別相公 公子王孫之會, 太守縣令之宴,

자별상공 공자왕손지회 태수현령지연

左右招邀 東西侵逼, 遭逆境者 非一二而,

좌우초요 동서침핍 조역경자 비일이이

상공께서 떠나시고부터

공자 왕손公子王孫의 모임과 태수 현령太守縣令의 잔치에

좌우에서 부르고 동서에서 매우 핍박하여

역경을 만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自剪頭髮 稱有惡疾, 菫免脅迫之辱,

자전두발 칭유악질 근면협박지욕

盡謝華粧 換着山衣, 避城中之囂塵 棲谷裡之靜室,

진사화장 환착산의 피성중지효진 서곡리지정실

그래서 스스로 머리털을 자르고 나쁜 병이 생겼다고 소문을 내서

가까스로 협박을 받는 욕을 면하였으며,

곱게 치장하는 것을 거의 마다않고서 산山사람의 옷으로 바꿔 입고

성중城中의 시끄럽고도 번잡한 곳은 피하여

골짜기 사이의 고요한 곳을 찾아 들었는데,

每逢遊山之客, 訪道之人 或自城府而至,

매봉유산지객 방도지인 혹자성부이지

或從京師而來者, 輒問相公消息矣.

혹종경사이래자 첩문상공소식의

매양 산에 놀러 온 사람들과 도를 구하여 나선 사람들을 만났는데

혹은 성부城府에서 다다른 사람도 있고,

혹은 서울로부터 온 자도 있어서

언제나 상공의 소식을 여쭤 보았습니다.

今年孟春忽聞相公, 口含天綸 路經此地,

금년맹춘홀문상공 구함천륜 로경차지

車徒行色遠矣.

거도행색원의

금년 초봄에 상공께서 천륜天綸을 받들고,

이 땅을 지나셨다는 이야기를 홀연 듣고

수레를 달려 가보니 행색은 멀리 계셨습니다.

遙望燕雲 惟洒血淚, 縣令爲相公 至道觀,

요망연운 유쇄혈루 현령위상공 지도관

以相公舘壁所題一首詩, 示賤妾曰:

이상공관벽소제일수시 시천첩왈

멀리 연나라 땅의 구름만 바라보며

오직 피눈물만을 흘리고 있을 뿐인데,

현령이 상공을 위하여 도관道觀에 이르러

상공이 객관客館의 벽에 써 놓으신 한 수의 시를 가지고

천첩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向者楊翰林之奉命過此,

향자양한림지봉명과차

金橘滿車而以不見蟾娘爲恨,

금귤만거이이불견섬낭위한

‘지난번에 양한림께서 천자의 명을 받들어 이곳을 지나셨는데,

좋은 귤을 수레에 가득 실었으나 섬낭을 보지 못하신 것이 한이 되어

終日看花 不折一枝,

종일간화 부절일지

惟題此詩而歸,

유제차시이귀

종일토록 꽃을 보되, 한 가지도 꺾지 않으시고

이 시만을 짓고 돌아가셨는데도,

娘何獨栖山林 不念故人,

낭하독서산림 불념고인

使我接待之禮 太埋沒乎?’

사아접대지례 태매몰호

낭께서는 어찌 홀로 산림에 머물러 옛사람을 생각지 않으시며

나로 하여금 접대의 예를 갖추게 함은

매우 매몰찬 일이 아니신지요?’ 하고

仍以過致敬禮, 自謝前日之事,

잉이과치경례 자사전일지사

懇請還歸舊居 以待相公之廻, 賤妾始知女子之身亦尊重也.

간청환귀구거 이대상공지회 천첩시지녀자지신역존중야

분수에 넘치는 칭찬과 경례를 표하며

스스로 전날의 일을 사과하고,

내가 돌아가서 옛집에 머무르며

상공께서 돌아오시는 걸 기다리도록 간청을 하니,

천첩이 처음으로 여자의 몸 또한 중한 줄을 알았습니다.

當賤妾獨立於天津樓上, 望相公之行也,

당천첩독립어천진루상 망상공지행야

滿城羣妓 攔街行人, 孰不羨小妾之貴命, 欽小妾之榮光也哉?

만성군기 란가행인 숙불선소첩지귀명 흠소첩지영광야재

천첩이 천진루 위에 홀로 서서 상공의 행차를 바라보니,

성 안의 모든 기녀들과 난가攔街의 행인들은

그 누가 소첩이 귀명貴命을 받음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소첩의 광영光榮을 흠모하지 않았겠습니까?

相公之已占壯元, 方爲翰林之報 妾已聞之矣,

상공지이점장원 방위한림지보 첩이문지의

第未知已得主饋之夫人乎.”

제미지이득주궤지부인호

상공께서 이미 장원 급제를 하셔

한림학사의 직책을 받으신 줄은 첩도 이미 들었거니와

다만 주궤主饋할 부인을 얻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翰林曰: “曾已定婚於鄭司徒女子,

한림왈 증이정혼어정사도녀자

花燭之禮雖未及行之, 賢淑之行 已聞之熟矣,

화촉지례수미급행지 현숙지행 이문지숙의

한림이 말하기를,

“이미 정사도 집의 여자와 정혼하여

화촉의 예는 비록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그 규수의 현숙한 품행은 이미 소문이 자자하였으며,

桂卿之言小無逕庭, 良媒厚恩太山亦輕矣.”

계경지언소무경정 량매후은태산역경의

계경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아니하니,

좋은 중매의 후한 은혜가 태산보다 더하오.”

更展舊情 未忍卽離, 仍留一兩日,

갱전구정 미인즉리 잉류일양일

而以桂娘在寢 久不訪狄生矣.

이이계낭재침 구불방적생의

다시 옛정을 이으매, 차마 즉시 떠나지 못하고

잇따라 이틀을 머물러 계낭의 침실에 있으니

오랫동안 적생狄生을 찾지 못하였다.

書童忽來密告曰:

서동홀래밀고왈

“小僕見狄生秀才非善人也.

소복견적생수재비선인야

서동이 바삐 와서 조용히 아뢰기를,

“소복은 적생 수재秀才가 좋지 못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與蟾娘子相戱於衆稠之中, 蟾娘子旣從相公

여섬낭자상희어중조지중 섬낭자기종상공

則與前日大異矣, 何敢若是其無禮乎?”

즉여전일대이의 하감약시기무례호

섬낭자와 함께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서로 장난을 치는데

섬낭자께서는 이미 상공을 따르고 있어

전일과 무척 다르거늘,

제 어이 이처럼 무례할 수 있습니까?”

翰林曰: “狄生必無是理,

한림왈 적생필무시리

蟾娘尤無可疑 汝必誤見也.”

섬낭우무가의 여필오견야

한림이 이르기를,

“적생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며

섬낭은 더더욱 의심할 바 없으니,

네가 필연 잘못 본 듯하다.”

書童怏怏而退 俄而復進曰:

서동앙앙이퇴 아이부진왈

서동이 만족치 못한 마음으로 물러가더니,

이윽고 다시 와서 말하기를,

“相公以小僕爲誕妄矣, 兩人方相與歡戱,

상공이소복위탄망의 양인방상여환희

相公若親見之 則可知小僕之虛實矣.”

상공약친견지 즉가지소복지허실의

“상공은 소복의 말이 그릇되고 망령되다 하시나,

두 사람이 바야흐로 서로 노닥거리고 있사오니

상공께서 만일 친히 그 광경을 보시면

소복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翰林乍出西廊而望見, 則兩人隔小墻而立,

한림사출서랑이망견 즉양인격소장이립

或笑或語 携手而戱,

혹소혹어 휴수이희

한림이 문득 서편 행랑으로 나서서 그 광경을 바라본즉,

두 사람이 조그만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서서

혹은 웃기도 하고 혹은 얘기도 나누며 손을 잡고 장난을 치거늘,

欲聽其密語稍稍近往, 狄生聞曳履聲驚而走,

욕청기밀어초초근왕 적생문예이성경이주

蟾月顧見翰林 頗有羞澁之態.

섬월고견한림 파유수삽지태

한림은 그들이 나직이 속삭이는 말을 듣고자 하여 점차 가까이 가니,

적생은 신 끄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달아나고

섬월은 한림을 되돌아보며 자못 수삽羞澁한 모습을 보였다.

翰林問曰:

한림문왈

“桂娘曾與狄生相親乎?”

계낭증여적생상친호

한림이 묻기를,

“계낭이 일찍이 적생과 서로 친하였소?”

蟾月曰: “妾與狄生雖無宿昔之雅

섬월왈 첩여적생수무숙석지아

而與其妹子 有舊誼故 問其安否矣.

이여기매자 유구의고 문기안부의

섬월이 이에 대답하기를,

“첩과 적생은 비록 옛적에 별로 친한 적은 없으나,

그의 누이와 오랜 정분이 있는 까닭에 그 안부를 물었습니다.

妾本娼樓賤女, 自然濡染於耳目,

첩본창루천녀 자연유염어이목

不知遠嫌於男子, 執手娛戱 附耳密語,

부지원혐어남자 집수오희 부이밀어

첩은 본래 창루娼樓의 천한 여자로

자연 이목에 익숙해져서

남녀가 서로 멀리 꺼려할 줄도 모르고,

손을 잡고 희롱도 하며

귀를 대고 밀어도 속삭여

以招相公之疑,

이초상공지의

賤妾之罪 實合萬殞.”

천접지죄 실합만운

상공의 의심을 불러 일으켰으니,

천첩의 죄는 실로 만 번 죽어 마땅하겠습니다.”

翰林曰:“吾無疑汝之心,

한림왈 오무의여지심

汝湏舞介於中也.”

여수무개어중야

한림이 말하기를,

“나는 그대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으니

그대는 조금도 꺼려할 것이 없소.”

仍商量曰: “狄生少年也,

잉상량왈 적생소년야

必以見我爲嫌, 我當召而慰之.”

필이견아위혐 아당소이위지

거듭 헤아려 잘 생각하기를,

“적생은 소년이라

필연 나를 보고 꺼려할 것이니,

내가 마땅히 그를 불러 위로하리라.”

使書童請之 已去矣.

사서동청지 이거의

서동을 시켜 불러오라 했으나 이미 그는 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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翰林大笑曰: “大丈夫當國事受重任,

한림대소왈 대장부당국사수중임

死生此不可顧, 區區私情 安足論乎?

사생차불가고 구구사정 안족론호

한림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대장부가 나라 일을 당하여 중임重任을 맡았으니

생사를 또한 돌아보지 못하겠거늘,

구구한 사정私情을 어찌 마음대로 의논하겠는가?

春娘無作浪悲 以傷花色, 謹奉小姐穩度時日,

춘낭무작랑비 이상화색 근봉소저온도시일

待吾竣事成功 腰懸如斗大金印, 得意歸來也.”

대오준사성공 요현여두대금인 득의귀래야

춘낭은 부질없이 슬퍼하여 꽃 같은 얼굴을 상하지 말고,

삼가 소저를 받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얼마동안

나를 기다리면, 사업을 마쳐 성공한 후에

말[斗]과 같이 큰 금인金印을 허리에 차고

득의양양하게 돌아오리라.”

卽出門乘車而行.

즉출문승거이행

곧, 문을 나서 수레를 타고 떠나갔다.

至洛陽 舊日經過之跡 尙不改矣.

지락양 구일경과지적 상불개의

행차가 낙양洛陽에 다다렀는데,

지난날 지나갔던 자취들은 아직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當時以十六歲藐然一書生,

당시이십육세막연일서생

着布衣跨蹇驢 搰搰棲棲行色艱關,

착포의과건려 골골서서행색간관

당시에 십육 세의 막연한 한낱 서생으로서

베옷을 걸치고 다리를 저는 당나귀에 걸터앉아

골골서서搰搰棲棲 하며 행색이 구차하였었는데,

不啻如蘇秦十上之勞矣, 才過數年建玉節駈駟馬,

불시여소진십상지로의 재과수년건옥절구사마

洛陽縣令奔走除道, 河南府尹匍匐導行,

락양현령분주제도 하남부윤포복도행

소진蘇秦이 열 나라위에 군림한 공로와는 같지 않다 할지언정

겨우 몇 년이 지나 옥절玉節을 세우고 사마駟馬를 몰고 가며,

낙양 현령이 분주히 길을 고치고

하남 부윤河南府尹이 공손히 길을 인도하니,

光彩照耀於一路, 先聲震懾於諸州,

광채조요어일로 선성진섭어제주

閭里聳觀行路咨嗟 豈不誠偉哉?

려리용관행로자차 기불성위재

광채가 한길에 밝게 비치고,

미리 알려진 명성이 여러 주를 떨며 두렵게 한즉,

마을 사람들이 행로行路를 조용히 바라보며 부러워하는데,

어찌 정말 위관偉觀이 아니겠는가?

翰林先使書童, 往探桂蟾月消息,

한림선사서동 왕탐계섬월소식

書童往蟾月之家 重門深鎖,

서동왕섬월지가 중문심쇄

한림이 먼저 사동으로 하여금

계섬월의 소식을 알아보라 하여

서동이 섬월의 집을 찾았으나

중문重門은 굳게 잠기고

畫樓不開 惟有櫻桃花,

화루불개 유유앵도화

爛開於墻外而已 訪於隣人卽曰:

란개어장외이이 방어린인즉왈

화루畫樓도 열지 않은 채,

아직 앵두꽃만이

담 밖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뿐이어서

이웃 사람을 만나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蟾月去年春與遠方相公, 結一夜之緣,

섬월거년춘여원방상공 결일야지연

其後稱有疾病 謝絶遊客, 官府設宴 托故不進矣.

기후칭유질병 사절유객 관부설연 탁고부진의

“섬월이 지난 해 봄에 먼 고장의 상공相公과 더불어 하룻밤 인연을 맺은

후로는 병이 있다고 핑계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사절하며

관가에서 베푼 잔치에도 그 이유를 들어 나아가지 아니하더니,

未幾佯狂 盡去珠翠之飾, 改着道士之服 遍遊山水,

미기양광 진거주취지식 개착도사지복 편유산수

尙未還歸 不知其方在何山矣.”

상미환귀 부지기방재하산의

얼마 안 가서 거짓 미친 체하며

구슬과 비취 따위의 패물붙이들을 다 떼어 버리고,

도사道士의 의복으로 바꿔 입고는 두루 산수山水를 구경하는데,

아직 돌아오지 아니하였으니, 어느 산에 있는지 그 정처를 알지 못합니다.”

書童以此來報, 翰林歡意 遂沮若墜深坑,

서동이차래보 한림환의 수저약추심갱

過其門墻 撫迹潛辛, 夜入客館不能交睫.

과기문장 무적잠신 야입객관불능교첩

서동이 돌아와 이 연유를 아뢰니,

한림의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마침내 깊은 갱坑에 떨어지는 것과 같이 막혀

그 문門과 담을 지나면서, 남몰래 그 자취를 어루만지고

밤에 객관客館에 들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府尹進娼女十餘人而娛之, 皆一時名艶也.

부윤진창녀십여인이오지 개일시명렴야

明粧麗服三匝圍坐, 前者天津橋上諸妓 亦在其中矣.

명장려복삼잡위좌 전자천진교상제기 역재기중의

부윤이 기생 십여 명을 보내어 즐거이 해 주려는데,

모두가 한 때에 곱기로 이름난 자들이었다.

아름다운 단장과 화려한 의복을 차려입고 삼면으로 둘러 앉았는데,

전번에 천진루天津樓 위에 있던 여러 기생들도 또한 그 중에 있었다.

爭姸誇嬌欲睹一眄, 而翰林自無佳緖不近一人,

쟁연과교욕도일면 이한림자무가서불근일인

翌曉臨行 遂題一詩於壁上. 其詩曰:

익효임행 수제일시어벽상 기시왈

아름다움을 겨루고 교태를 자랑하며 한 번 눈여겨보기를 바랐지만,

한림은 자연 아무런 흥취가 없어 한 사람도 가까이함이 없이

이튿날 새벽 떠날 즈음에 마침내 한 수의 시를 벽 위에 지어 놓았다.

그 시에 읊기를,

雨過天津柳色新 우과천진류색신

風光宛似去年春 풍광완사거년춘

可憐玉節歸來地 가련옥절귀래지

不見當壚勸酒人 불견당로권주인

비 내린 천진 지나니 버들 빛 새로워

풍광은 완연히 지난 봄과 같건만

가련타, 옥절玉節은 다시 찾아 왔는데

술자리에 술 권하던 이 보이지 않네

寫吃投筆 乘軺取其前路而去,

사흘투필 승소취기전로이거

諸妓立望行塵只切慙赧而已.

제기립망행진지절참난이이

시 쓰기를 마치자 붓을 던지고 수레에 올라 앞길을 취하여 나아가니,

여러 창기娼妓들이 우두커니 서서 가는 길에 이는 먼지만을 바라보고

다만 무척 부끄러워 무안해할 뿐이었다.

爭謄其詩納於府尹, 府尹責衆娼曰:

쟁등기시납어부윤 부윤책중창왈

서로 다투어 그 글을 베껴서 부윤에게 바치니,

부윤이 여러 창기들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汝輩若得楊翰林之一顧, 則可增三倍之價 而一隊新粧,

여배약득양한림지일고 즉가증삼배지가 이일대신장

皆不入於翰林之眼, 洛陽自此無顔色矣.”

개불입어한림지안 락양자차무안색의

“너희들이 만일 양한림의 한 번 돌아봄을 얻었다면,

세배나 그 값을 더할 수 있었을 것인데,

한 무리나 새로 단장을 하고서도

모두 한림의 눈에 들지 못하였으니,

이로부터 낙양 땅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었다.”

問於衆妓知翰林屬意之人, 揭榜四門訪蟾月去處,

문어중기지한림속의지인 게방사문방섬월거처

以待翰林復路之日.

이대한림부로지일

여러 창기들에게 한림의 마음에 있는 사람을 알아내도록 묻고,

네 문에 섬월이 간 곳을 찾아내는 방문榜文을 붙이도록 하며,

한림이 다시 길을 지나는 날을 기다렸다.

翰林至燕國絶徼之人, 未曾賭皇華威儀 見翰林,

한림지연국절요지인 미증도황화위의 견한림

如地上祥麟 雲間瑞鳳,

여지상상린 운간서봉

한림이 연나라에 다다르니, 아득한 변방 사람들이

일찍이 황화皇華의 위의를 보지 못하였다가 한림을 보니,

상서로운 땅 위의 기린 같고 구름 속의 상서로운 봉황과 같기에,

到底擁車塞路, 無不以一覩爲快,

도저옹거색로 무불이일도위쾌

而翰林威如疾雷 恩如時雨,

이한림위여질뢰 은여시우

마침내는 다투어 수레를 둘러싸고 길을 메우면서

한 번 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림의 위엄이 빠른 우레와 같고

은혜는 때를 맞춰서 내리는 비와도 같아서

邊民亦皆欣欣, 鼓舞嘖舌相稱曰:

변민역개흔흔 고무책설상칭왈

“聖天子將活我矣.”

성천자장활아의

변방 백성들이 역시 기뻐하며,

북치고 춤을 추면서 서로 다투어 이르기를,

“성천자聖天子가 장차 우리를 살리실 것이로다.”

翰林與燕王相見, 翰林盛稱天子威德朝廷處分,

한림여연왕상견 한림성칭천자위덕조정처분

以向背之執順逆之機, 縱橫闢闔 言皆有理,

이향배지집순역지기 종횡벽합 언개유리

한림이 연왕과 서로 만나서는,

천자의 위덕威德과 조정의 처분을 자주 일컬으며,

향배向背의 세력과 순역順逆의 도리를 역설함에는

이치를 잘 알아듣도록 타이르는데,

滔滔如海波之瀉, 凜凜如霜颷之烈,

도도여해파지사 름름여상표지렬

燕王瞿然而驚 惕然而悟,

연왕구연이경 척연이오

도도함이 바다 물결을 뒤치는 듯하고,

늠름함이 추상같아서, 연왕이 놀라며 두려워하더니,

곧 사리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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