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太監謂秦氏曰:

태감위진씨왈

“皇上欲復見楊尙書詩故, 小宦承命來收矣.”

황상욕부견양상서시고 소환승명래수의

태감이 진씨에게 말하기를,

“황상이 부채에 쓴 양상서의 시를 다시 보고 싶어 하시니

소환小宦이 명을 받들어 가지러 왔소이다.”

秦氏泣謂曰:“薄命之人死期已迫,

진씨읍위왈 박명지인사기이박

偶和其詩題於其尾, 自犯必死之罪.

우화기시제어기미 자범필사지죄

진씨가 울면서 말하기를,

“박명한 사람이 죽을 때가 이미 다되어,

우연히 그 시의 끝부분에 그 시제詩題에 화답하는 글을 써서

스스로 꼭 죽을죄를 범하였나이다.

皇上若見之 則必不免誅戮之禍,

황상약견지 즉필불면주륙지화

與其伏法而死, 毋寧自決之爲快也,

여기복법이사 무령자결지위쾌야

황상이 만일 그것을 보시면

필시 주륙誅戮의 화를 면치 못할 것인 즉,

법에 걸려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결하여 유쾌한 것이 낫습니다.

方將以此殘命, 付於三尺之下 而身死後,

방장이차잔명 부어삼척지하 이신사후

揜土一事 專恃於太監,

암토일사 전시어태감

바야흐로 이 쇠잔한 목숨이

장차 삼척三尺(형구刑具의 이름) 아래에서 끝나면 이 몸이 죽은 후에

암토揜土(흙이나 덮어서 겨우 지내는 장사葬事) 일은 오직 태감만을 믿겠으니,

伏乞太監哀之憐之 收瘞殘骸,

복걸태감애지련지 수예잔해

無令爲烏鳶之食 幸甚幸甚.

무령위오연지식 행심행심

바라건대 태감은 나를 불쌍하고도 가련히 여기시어

나의 잔해를 거두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지 않게 해 주면

이만 다행한 일이 없을 듯하나이다.”

太監曰:“女中書何爲此言也?

태감왈 녀중서하위차언야

聖上仁慈寬厚逈出百王,

성상인자관후형출백왕

태감이 대답하기를,

“여중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는고?

성상께서는 인자 관후仁慈寬厚하심이

여러 왕 가운데서도 유독 뛰어나시니

或者終不可罪, 設有震疊之威,

혹자종불가죄 설유진첩지위

我當出力救之, 中書隨我而來.”

아당출력구지 중서수아이래

간혹 끝내는 죄를 아니 주실 듯하고,

설령 진노震怒하는 위엄을 보이신다 해도

내 마땅히 나서서 힘껏 구할 것이니

중서는 나를 쫓아오라.”

秦氏且哭且行 隨太監而去,

진씨차곡차행 수태감이거

太監使秦氏立於殿門之外, 入以諸詩 進於上.

태감사진씨립어전문지외 입이제시 진어상

진씨가 울며 나서서 태감을 좇아가니

태감이 진씨를 전문殿門 밖에 세워 두고

모든 시들을 가지고 들어가 황상께 드렸다.

上留眼披閱 至秦氏之扇, 尙書所題之下 又有它詩,

상류안피열 지진씨지선 상서소제지하 우유타시

訝之問於太監 太監告曰:

아지문어태감 태감고왈

황상이 찬찬히 펼쳐보시다가 진씨의 부채에 이르러서는

상서의 글 아래에 또 다른 사람의 시가 있는지라,

황상께서 그것을 의아히 여겨 태감에게 물으시니

태감이 고하기를,

“秦氏謂臣云 不知皇爺有裒取之命,

진씨위신운 부지황야유부취지명

猥以荒蕪之語續題於其下, 此死罪必不貸也,

외이황무지어속제어기하 차사죄필불대야

“진씨가 신에게 이르되

황상께서 그것을 거두어들이라는 명을 내리실 줄도 모르고

외람되이 어지러운 말들을 그 아래에 계속해서 써 놓았으니,

이 죽을 죄는 필연 용서받기가 어렵도다 하고,

仍欲自死 臣開諭而止,

잉욕자사 신개유이지

領率而來矣.

령솔이래의

이에 스로로 죽으려 하거늘,

신이 알아듣도록 잘 타일러 행동을 멈추게 하고

그녀를 거느리고 왔나이다,”

上又詠其詩詩曰:

상우영기시시왈

황상이 또 그 시를 읊조리니,

시에 이르기를,

紈扇團如秋月團 환선단여추월단

憶曾樓上對羞顔 억증루상대수안

初知咫尺不相識 초지지척부상식

却悔敎君仔細看 각회교군자세간

깁부채 둥근 것이 가을 달처럼 둥근데

지난번 누각위에서 수줍은 얼굴 마주한 것 기억하노라

처음에 지척에서 서로 알아보지 못할 줄 알았더라면

오히려 후회하노라 그대 자세히 보라 할 것을

上見畢曰: “秦氏必有私情也.

상견필왈 진씨필유사정야

황상이 다 보시고 말씀하기를,

“진씨가 사사로운 정情이 있음이 틀림없도다.

不知何處與何人相見, 而其詩意如此耶?

부지하처여하인상견 이기시의여차야

然其才足惜 而亦可獎也.”

연기재족석 이역가장야

어느 곳에서 누구를 서로 보았기에

그 시의 뜻이 이와 같은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지만 그 재주는 훌륭하고 또한 권장할 만하도다.”

使太監召之 秦氏伏於階下,

사태감소지 진씨복어계하

叩頭請死

고두청사

태감으로 하여금 그녀를 부르게 하니

진씨가 계단아래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죽음을 청하매,

上下交曰:

상하교왈

“直告則當赦死罪. 汝與何人 有私情乎?”

직고즉당사사죄 여여하인 유사정호

황상께서 하교하기를,

“곧바로 고하면 마땅히 죽을죄를 용서해 주리라.

네 어떤 사람과 사정私情이 있느뇨?”

秦氏又叩頭曰: “臣妾何敢抵諱於嚴問之下乎?

진씨우고두왈 첩신하감저휘어엄문지하호

진씨가 또 머리를 조아리고 여쭙기를,

“신첩이 어찌 감히 엄문嚴問하신 사실을 숨기겠나이까?

臣妾家敗亡之前, 楊尙書赴擧之路,

신첩가패망지전 양상서부거지로

適過妾家樓前,

,

적과첩가루전

신첩의 집안이 패망하기 전에,

양상서가 과거 보러 가는 길에

때마침 첩의 집 누각 앞을 지나다가,

臣妾偶與相見和其楊柳詞

신첩우여상견화기양류사

送人通意與結婚媾之約矣.

송인통의여결혼구지약의

신첩과 우연히 서로 보고서

그 양류사楊柳詞를 화답하고

사람을 보내어 뜻을 통하여

함께 혼인 약속을 맺었나이다.

頃當蓬萊引見之日, 妾能解舊面 而楊尙書獨不知故,

경당봉래인견지일 첩능해구면 이양상서독부지고

지난번 황상께서 그를 봉래전으로 불러 보시는 날

첩은 옛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으나,

양상서만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妾戀舊興感撫躬自悼, 偶題胡亂之說,

첩연구흥감무궁자도 우제호란지설

첩이 옛 생각과 느낌이 절실하여 몸소 옛 일을 회상하고 슬퍼하다가

우연히 난삽한 글을 지었는데,

終至於上累聖鑒, 臣妾之罪萬死猶輕.”

종지어상루성감 신첩지죄만사유경

끝내 황상께 폐를 드리게 되었으니,

신첩의 죄 만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겠나이다.”

上悲憐其意乃曰:

상비련기의내왈

“汝云以楊柳詞結婚媾之約, 汝能記得否?”

여운이양류사결혼구지약 여능기득부

황상은 그 뜻을 불쌍히 여기어 이에 이르시기를,

“네가 양류사楊柳詞로써 혼인 언약을 맺었다고 말하는데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겠느뇨?”

秦氏卽繕寫 以上上曰:

진씨즉선사 이상상왈

“汝罪雖重汝才可惜, 且御妹愛汝殊甚故,

여죄수중여재가석 차어매애여수심고

진씨가 바로 그것을 베껴 써서 황상께 드리니 황상이 말씀하기를,

“너의 죄가 비록 중하나 너의 재주가 아깝기도 하고,

또한 어매御妹가 너를 유독 심히 사랑하는 까닭에

朕特用寬典赦汝重罪,

짐특용관전사여중죄

汝其感篆國恩 殫渴心誠, 以事御妹宜矣.”

여기감전국은 탄갈심성 이사어매의의

짐이 특별히 관용을 베풀어 너의 중한 죄를 사하니,

너는 나라의 은혜에 감읍하고

또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어매를 섬기라.”

卽下其紈扇,

즉하기환선

秦氏拜受 惶恐頓謝而退.

진씨배수 황공돈사이퇴

곧 깁부채를 내려 주시니

진씨가 절하여 받고,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드리고 물러갔다.

是日上陪太后而坐, 越王自楊尙書家來入朝,

시일상배태후이좌 월왕자양상서가래입조

以楊尙書曾已納聘之意奏,

이양상서증이납빙지의주

이날 황상이 태후를 모시고 앉아 있는데,

월왕이 양상서의 집으로부터 돌아와서 입조入朝하여

양상서가 일찍이 약혼 예물을 받은 사실을 아뢰니,

皇太后不悅曰:

황태후불열왈

“楊少游爵至尙書,양소유작지상서

宜知朝廷事軆 而何其固滯若是耶?”

의지조정사체 이하기고체약시야

황태후 즐겁지 않게 말씀하기를,

“양소유 벼슬이 상서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조정의 사체事軆를 알 것이거늘

그 편벽과 고집이 어찌 이 같을꼬?"

上曰: “少游雖已納聘 與成親有異,

상왈 소유수이납빙 여성친유이

황상이 대답하시기를,

“소유가 이미 혼약을 하였다 하나

이는 결혼례를 치른 것과는 다르니,

朕面諭 則似不可不從也.”

짐면유 즉사불가부종야

짐이 만나 타이르면

짐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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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卽辭歸 尙書入見司徒, 以越王之言告之,

왕즉사귀 상서입견사도 이월왕지언고지

왕이 곧 작별하고 돌아가자 상서가 들어가 정사도를 보고,

월왕의 말한 바를 아뢰고,

春雲已告於閤下矣, 擧家遑遑莫知所爲,

춘운이고어합하의 거가황황막지소위

司徒慘沮不能出一言,

사도참저불능출일언

춘운은 이미 부인에게 그 사실을 고하였기에

온 집안이 황황遑遑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사도는 비참하고 마음이 상하여 한 마디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尙書曰: 岳丈勿慮 天子聖明,

상서왈 악장물려 천자성명

守法度重禮儀,

수법도중례의

상서가 아뢰기를,

“악장岳丈은 염려치 마옵소서.

천자께서 덕망이 높고 밝으셔

법도를 지키고 예의를 중히 여기시니,

必不壞了臣子之倫紀, 小婿雖不肖,

필불괴료신자지륜기 소서수불초

誓不作宋弘之罪人矣.”

서부작송홍지죄인의

반드시 신하의 윤기倫紀를 어지럽게 아니하실 것이오매,

소서小婿가 비록 불초하오나

맹세코 송홍宋弘의 죄인은 되지 아니하오리다.”

先時 太后出臨蓬萊殿,

선시 태후출림봉래전

窺見楊少游 心甚喜悅,

규견양소유 심심희열

지난번에 태후께서 봉래전에 나오셔서

양소유를 몰래 보고, 마음에 몹시 흡족히 여겨

謂皇上曰: “此眞蘭陽之匹也,

위황상왈 차진란양지필야

吾旣親見 更何議乎?”

오기친견 갱하의호

황상께 이르시기를,

“이 자는 진실로 난양의 배필이 될 자로,

내가 이미 몸소 보았는데

어찌 다시 의논할 게 있겠는고?”

卽使越王先諭於楊少游.

즉사월왕선유어양소유

天子方欲命召 而面諭矣,

천자방욕명소 이면유의

바로 월왕을 시켜 먼저 양소유에게 알려 주었다.

천자께서는 장차 양소유를 부르도록 명을 내려서

직접 그 사실을 알리려고 하셨는데,

上在別殿, 忽思昨日少游詩才筆法,

상재별전 홀사작일소유시재필법

俱極精妙 更欲親覽, 구극정묘 갱욕친람

황상은 별전에 머물던 중

문득 어제 양소유가 지은 시재와 필법

모두가 극히 정묘精妙한 것이 생각나

다시 친히 보시고 싶어서

使太監盡收女中書等所受詩牋.

사태감진수녀중서등소수시전

태감太監을 시켜 여중서女中書등이 받아 가진

시전詩牋을 모두 걷어 들이도록 하였다.

諸宮人皆深藏於篋笥 而惟一宮人,

제궁인개심장어협사 이유일궁인

모든 궁녀들이 다 상자에 깊이 넣어 두었는데,

오직 한 궁녀만이

持題詩畵扇 獨歸寢所,

지제시화선 독귀침소

置之懷中 終夕悲啼, 忘寢廢食

치지회중 종석비제 망침폐식

시를 쓴 그림 부채를 가지고 홀로 침소에 돌아가

품속에 간직하고 밤새도록 슬피 울며 침식을 전폐하였으니,

此宮女非他人也,

차궁녀비타인야

姓秦名彩鳳 華州秦御史女子.

성진명채봉 화주진어사녀자

이 궁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채봉彩鳳인

화주 땅 진어사秦御史의 딸이었다.

御史死於非命 沒入於宮掖, 宮人皆稱秦女之美,

어사사어비명 몰입어궁액 궁인개칭진녀지미

어사가 비명에 죽자 대궐 안 계집종으로 들어왔는데,

궁인들이 모두 진녀의 아름다움을 일컬어 주거늘,

上召見之 欲封婕妤, 時皇后有寵 嫌秦女之太美,

상소견지 욕봉첩여 시황후유총 혐진녀지태미

황상께서 그를 불러 보시고 궁녀로 봉하고자 하자,

그때 황후께서는 그녀를 아끼지만

진녀가 심히 아름다움을 꺼리시어,

白於上曰: “秦家女可合昵侍至尊,

백어상왈 진가녀가합닐시지존

而陛下殺其父而近其女,

이폐하살기부이근기녀

황상께 간하기를,

“진가의 딸은 폐하를 가까이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폐하께서 그 아비를 죽이고 그 딸을 가까이 하심은,

恐非古先哲王 立刑遠色之道也.”

공비고선철왕 립형원색지도야

옛날에 밝은 임금이 형벌을 세우고

색을 멀리 하던 도리에 어긋날까 염려되나이다.”

上從之 問於秦氏曰: “汝知文字乎?”

상종지 문어진씨왈 여지문자호

황상께서는 그 말을 따르시고,

진녀를 불러 물으시기를,

“네가 글을 아느냐?”

秦女曰: “菫卞魚魯矣.”

진녀왈 근변어로의

진녀가 대답하기를,

“가까스로 어魚와 노魯를 구별할 정도입니다.”

上命爲女中書 使掌宮中文書,

상명위녀중서 사장궁중문서

仍令進往皇太后宮中, 陪蘭陽公主 讀書習字,

잉령진왕황태후궁중 배란양공주 독서습자

황상이 명하여 여중서女中書를 삼아 궁중 문서를 맡게 하시고,

거듭 황태후 궁으로 나아가

난양공주를 모시고 글도 읽고 글씨도 익히게 하시니,

公主大愛秦氏妙色奇才, 視如宗戚 跬步相隨,

공주대애진씨묘색기재 시여종척 규보상수

不忍一時分離.불인일시분리

공주가 진녀의 묘색기재妙色奇才를 지극히 사랑하여

종친과 왕실의 외척같이 여기고,

약간 움직일 때도 항상 같이 다니며

차마 잠시도 서로 나뉘어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秦氏是日侍太后往蓬萊殿,

진씨시일시태후왕봉래전

仍承上命與女中書等, 乞詩於楊尙書,

잉승상명여녀중서등 걸시어양상서

진녀가 이 날 태후를 모시고 봉래전에 나아가

이에 황상의 명을 받들어 여중서들과 더불어

양상서의 시를 받을 때,

尙書之七竅百骸 曾已銘鏤於秦氏之心肝矣,

상서지칠규백해 증이명루어진씨지심간의

豈有不知之理哉?기유부지지리재

상서의 몸의 모든 부분이

일찍이 이미 진씨의 마음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었으니,

어찌 알아보지 못할 리가 있었겠는가?

秦女生存 尙書旣不能知之,

진녀생존 상서기불능지지

况天威咫尺 亦不敢擧目.

황천위지척 역불감거목

진녀가 생존해 있으리라곤 상서는 일찍이 알 수도 없었거니와

하물며 천위天威가 지척에 있으니

또한 감히 눈을 들 수도 없었으리라.

秦女一見 尙書心如火熾,

진녀일견 상서심여화치

莊悲匿哀

장비익애

진녀는 상서를 한 번 보고는,

마음이 불타는 듯 슬픔이 솟구치나, 쓰라림을 숨기고,

恐被人知,

공피인지

痛情義之不通,

통정의지불통

다른 사람이 수상히 여길까 두려워하며,

인정과 의리가 통하지 못함을 마음 아프게 여기고,

悲鸞緣之難續, 手把團扇 口詠淸詩,

비란연지난속 수파단선 구영청시

옛 인연을 잇기가 어렵게 되었음을 못내 탄식하며,

손에 둥근 부채를 들고 맑은 시를 읊조리며,

一展一吟 不忍暫釋 其詩曰:

일전일음 불인잠석 기시왈

한 번 펼 적마다 그 시를 읊조리고 차마 잠시도 놓지 못하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紈扇團團似明月 환선단단사명월

佳人玉手爭皎潔 가인옥수쟁교결

五絃琴裏薰風多 오현금리훈풍다

出入懷裏無時歇 출입회리무시헐

깁부채가 둥글둥글 밝은 달 같은데

가인의 옥수로 희고 맑음 겨루더라

오현금 속에 훈풍 많으니

마음속으로 드나들어 쉴 때 없구나

紈扇團團月一團 환선단단월일단

佳人玉手正相隨 가인옥수정상수

無路遮却如花面 무로차각여화면

春色人間摠不知 춘색인간총부지

깁부채가 둥글둥글 달 한 바퀴 돌아

가인 옥수가 정히 서로 따르네

꽃같은 얼굴 가리는 길 없는데

봄 빛 사람 내내 알지 못하네

秦氏詠前一首而歎曰:“楊郞不知我心矣.

진시영전일수이탄왈 양랑부지아심의

我雖在宮中, 豈有承恩之念哉?”

아수재궁중 기유승은지념재

진씨가 앞의 한 수를 읊조리며 탄식하기를,

“양랑은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구나.

내 비록 궁중에 있으나,

어찌 임금의 은혜를 받을 생각을 하겠는가?”

又詠後一首而歎曰:“我之容貌 他人雖不得見之,

우영후일수이탄왈 아지용모 타인수부득견지

또 뒤의 한 수를 읊조리며 탄식하기를,

“내 얼굴을 자기가 비록 볼 수는 없지만,

楊郞必不忘於心 而詩意若斯, 咫尺誠如千里矣.”

양랑필불망어심 이시의약사 지척성여천리의

양랑은 필연 마음으로는 잊지 아니하였을 터인데,

글 뜻이 이와 같으니 지척이 실로 천리 같구나.”

仍憶在家之時與楊郞, 唱和楊柳詞之事,

잉억재가지시여양랑 창화양류사지사

거듭 예전에 집에 있을 때 양랑과

양류사楊柳詞를 화창和唱하던 일을 생각하니

悲不自抑 和淚濡筆, 續題一詩於扇頭 方吟哢矣,

비불자억 화루유필 속제일시어선두 방음롱의

,

슬픔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여 눈물이 돌아 붓을 적시거늘,

부채머리에 시 한 수를 이어 쓰고

바야흐로 읊으며 자조하고 있는데,

忽聞太監以上命來索畵扇,

홀문태감이상명래색화선

秦氏骨驚膽落 肥肉自顫,

진씨골경담락 비육자전

홀연 태감太監이 황상의 명령으로

그림 부채를 와서 찾는다는 소리를 들으니

진씨는 뼈가 으스러지며 간이 떨어지는 듯하고

살이 찢어지는 듯하여 저절로 사지를 떨며,

叫苦之聲 自出於口曰: “我其死矣 我其死矣.”

규고지성 자출어구왈 아기사의 아기사의

입에서는 괴로운 탄성이 저절로 나와 부르짖기를,

“나는 죽었구나. 나는 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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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以此蘭陽已長成 而尙未許聘矣.

이차란양이장성 이상미허빙의

이리하여 난양공주는 이미 장성하였지만,

아직까지 배필을 가리지 못하였다.

是夜 蘭陽適吹簫於月下 以調鶴舞矣,

시야 란양적취소어월하 이조학무의

曲罷靑鶴飛向玉堂 而去舞於翰苑,

곡파청학비향옥당이거무어한원

이날 밤 난양공주는 마침 달 아래에서

퉁소를 불어 학의 춤을 끝냈는데,

곡조를 마치자 청학이 옥당을 향해 날아가 그 한림원에서 춤을 추었다.

是後宮人盛傳,

시후궁인성전

楊尙書吹玉簫舞鶴仙,

양상서취옥소무학선

이후에 궁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양상서가 옥퉁소를 불어 춤을 춘다’고 했다.

其言從入宮中 天子聞而奇之,

기언종입궁중 천자문이기지

以爲公主之緣必屬於少游,

이위공주지연필속어소유

그 말이 궁중으로 흘러들어가

천자가 이를 들으시고 신기하게 여기며,

‘공주의 인연이 필연 양소유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入朝於太后 以此告之曰:

입조어태후 이차고지왈

태후께 입조入朝하여 이 사실을 고하기를,

“楊少游年歲與御妹相當, 其標致才學 於群臣中無二,

양소유년세여어매상당 기표치재학 어군신중무이

雖求之天下 不可得也.”

수구지천하 불가득야

“양소유楊少游의 나이가 어매御妹와 서로 상당하옵고,

그 풍채와 재주, 학식은 뭇 신하들 중에서 둘도 없사오니,

비록 천하에 구하여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太后大笑曰:

태후대소왈

태후께서 크게 웃으시며 이르시기를,

“簫和婚事訖無定處, 我心常自糾結矣,

소화혼사흘무정처 아심상자규결의

“소화簫和의 혼사를 아직 정한 곳이 없어,

내 마음 한 구석에 항상 꼬이고 맺힌 게 있었는데,

今聞是語 楊少游 卽蘭陽天定之配也.

금문시어 양소유 즉란양천정지배야

但欲見其爲人 而定之矣.”

단욕견기위인 이정지의

이제 그 말씀을 들으니

양소유는 난양공주의 하늘이 정해 준 배필이군요.

그러나 이 몸이 친히 그 사람됨을 보고 정하도록 하고 싶소.”

上曰: “此不難矣.

상왈 차불난의

황상이 대답하시기를,

“이는 어렵지 않습니다.

後日當召見楊少游於別殿,

후일당소견양소유어별전

講論文章 娘從簾內, 一窺則可知矣.”

강론문장 낭종렴내 일규즉가지의

후일에 마땅히 양소유를 별전으로 불러 보고

문장을 강론할 것이니, 어머님께서 주렴珠簾 안에서

한 번 보시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太后益喜與皇上定計.

태후익희여황상정계

태후께서 더욱더 즐거워하시며 황상과 함께 계책을 마련하였다.

蘭陽公主名簫和,

란양공주명소화

其玉簫刻簫和二字故, 以此名之.

기옥소각소화이자고 이차명지

난양공주의 이름이 소화簫和인데,

그 옥퉁소에 소화라는 두 글자를 새겼으므로,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一日天子燕坐於蓬萊殿, 使小黃門召楊少游,

일일천자연좌어봉래전 사소황문소양소유

黃門往翰林院則院吏曰, 翰林才已出去矣,

황문왕한림원즉원리왈 한림재이출거의

하루는 천자가 봉래전蓬萊殿에서 편안히 앉아

어린 내시로 하여금 양소유를 불러오게 하셨는데

그 내시가 한림원에 간즉 원리院吏가 이르기를,

‘한림께서는 방금 나가셨다’고 했다.

往問鄭司徒家則曰, 翰林不還矣,

왕문정사도가즉왈 한림불환의

黃門奔馳慌忙 莫知去向矣.

황문분치황망 막지거향의

정사도의 집에 가서 물어 본즉, 이르기를,

‘한림께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황망하게 여기저기 찾았으나

한림이 간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時楊尙書與鄭十三, 大醉於長安酒樓,

시양상서여정십삼 대취어장안주루

使名娼朱娘玉露唱歌, 軒軒笑傲 意氣自若,

사명창주낭옥로창가 헌헌소오 의기자약

이때 양상서는 정십삼과 더불어

장안의 주루에서 크게 취하여

명기名妓 주낭朱娘과 옥로玉露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고

오만스레 껄껄 웃으며 의기가 태연하였는데,

黃門飛韁而來 以命牌召之, 鄭十三大驚跳出,

황문비강이래 이명패소지 정십삼대경도출

翰林醉目朦朧, 不省黃門之已在樓上矣.

한림취목몽롱 불성황문지이재루상의

내시가 급히 달려와 명패命牌를 가지고 그를 부르니,

정십삼은 크게 놀라 뛰어나가고

한림은 취하고 눈이 몽롱하여

내시가 이미 누각위에 오른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黃門立促之, 翰林使二娼扶而起 着朝袍,

황문립촉지 한림사이창부이기 착조포

隨中使入朝

수중사입조

내시가 서서 그를 재촉하니

한림은 두 창기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 조복을 입고

내시를 따라 대궐에 들어갔는데,

天子賜座, 仍論歷代帝王治亂興亡,

천자사좌 잉론력대제왕치란흥망

尙書出入古今 敷奏明愷,

상서출입고금 부주명개

천자께서 자리를 내 주시고

뒤이어 역대 제왕의 치란 흥망治亂興亡을 의논하시더니,

상서가 고금의 일을 들추어내어 명확하고도 밝게 아뢰었다.

天顔動色 又問曰:

천안동색 우문왈

천안天顔이 밝아지면서 다시 묻기를,

“組繪詩句 雖非帝王之要務, 惟我祖宗 亦嘗留心於此,

조회시구 수비제왕지요무 유아조종 역상유심어차

詩文或傳播於天下 至今稱誦,

시문혹전파어천하 지금칭송

“시구를 짜서 읊어 내기가 비록 제왕의 긴요한 일은 아니라 하나,

오직 우리의 조종祖宗이 또한 언제나 이 일에 유의하여

시문詩文이 간혹 천하에 전파되어 지금까지 칭송되니,

卿試爲我 論聖帝明王之文章,

경시위아 론성제명왕지문장

評文人墨客之詩篇, 勿憚勿諱定其優劣.

평문인묵객지시편 물탄물휘정기우열

경이 나를 위해 시험 삼아 성제 명왕聖帝明王의 문장을 논하고,

문인 묵객文人墨客의 시편詩篇을 평하되,

꺼리거나 숨김없이 그 우열을 정하도록 하라.

上而帝王之作 誰爲雄也,

상이제왕지작 수위웅야

下而臣隣之詩 誰爲最也?”

하이신린지시 수위최야

위로는 제왕의 작품 가운데서 누가 으뜸이며,

아래로는 신하들의 시 가운데 누가 최고가 되느냐?”

尙書伏而對曰:“君臣唱和 自大堯帝舜而始,

상서복이대왈 군신창화 자대요제순이시

不可尙已無容議爲,

불가상이무용의위

상서가 엎드려 대답하기를,

“군신이 글로서 서로 부르고 화답함은

대요大堯와 제순帝舜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아직 이를 논할 계제는 아니지만,

漢高祖大風之歌, 魏太祖月明星稀之句,

한고조대풍지가 위태조월명성희지구

爲帝王詩詞之宗,

위제왕시사지종

한 고조의 대풍가大風歌와

위 태조魏太祖의 월명성희月明星稀는

제왕의 시사詩詞 중 으뜸이고,

西京之李陵 鄴都之曺子建,

서경지이릉 업도지조자건

南朝之陶淵明 謝靈運二人, 最其表著者也.

남조지도연명 사령운이인 최기표저자야

서경의 이릉李陵, 업도鄴都의 조자건曺子建,

그리고 남조의 도연명陶淵明, 사영운謝靈運의 두 사람이

가장 현저히 드러난 작품을 지은 자들입니다.

自古文章之盛 毋如國朝者,

자고문장지성 무여국조자

國朝人才之蔚興, 無過於開元天寶之間,

국조인재지울흥 무과어개원천보지간

예로부터 문장의 성함은 당나라 시대만한 것이 없었는데,

국조國朝와 인재가 울흥蔚興함이

개원開元, 천보天寶사이보다 더 두루 미친 때도 없었으니,

帝王文章 玄宗皇帝爲千古之首,

제왕문장 현종황제위천고지수

詩人之才才李太白, 無敵於天下矣.

시인지재재이태백 무적어천하의

제왕의 문장으로는 현종 황제가 천고의 으뜸이 되시고,

시인의 재주로는 천하에서 이태백에 대적할 이가 없었습니다."

上曰:“卿言實合朕意矣.

상왈 경언실합짐의의

황상께서 일컫기를,

“경의 말이 실로 짐의 생각과 같도다.

朕每見太白學士淸平詞行樂詞,

짐매견태백학사청평사행락사

則恨不與同時也, 朕今得卿何羨太白乎?

즉한불여동시야 짐금득경하선태백호

짐이 매양 태백학사의 청평사淸平詞와 행락사行樂詞를 보면,

그와 한때에 있지 못한 것을 한했는데,

이제 짐이 경을 얻었으니, 어찌 이태백을 부러워하겠는가?

朕遵國制使宮女十餘人, 掌翰墨 所謂女中書也.

짐준국제사궁녀십여인 장한묵 소위녀중서야

짐이 나라의 제도를 좇아 궁녀 십여 인으로써

한묵翰墨을 맡게 하니, 이른바 여중서女中書로다.

頗有彫篆之手, 能摸月露之形,

파유조전지수 능모월로지형

其中無有可觀者矣.

기중무유가관자의

전자篆字를 새길 수 있는 재주도 있고

달 아래에 생겨난 이슬을 모방할 수 있어서

그 가운데 볼만한 자가 있도다.

卿效李白倚醉題詩之舊事,

경효이백의취제시지구사

試揮彩毫 一吐珠玉,

시휘채호 일토주옥

경은 이백이 취중에 시를 짓던 옛 일을 본받아서

시험 삼아 채호彩毫를 사용하여

한 번 주옥같은 글을 토해 내어,

毋負宮娥景仰之誠,

무부궁아경앙지성

朕亦欲觀卿倚馬之作吐鳳之才.”

짐역욕관경의마지작토봉지재

궁녀들의 바라는 정성을 저버리지 말 것이며,

짐 또한 경의 의마지작倚馬之作과 토봉지재吐鳳之才를 보고 싶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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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卽使宮女以御前琉璃硯甲,

즉사궁녀이어전류리연갑

白玉筆床 玉蟾蜍硯滴,

백옥필상 옥섬서연적

곧 궁녀들을 시켜 어전에 유리 벼룻집과

백옥 필상筆床과 옥섬서연적을

移置於尙書席前,

이치어상서석전

상서의 자리 앞으로 옮겨 놓게 하셨고,

諸宮人已承乞詩之命矣, 各以華牋羅巾畵扇,

제궁인이승걸시지명의 각이화전라건화선

擎進於尙書前,

경진어상서전

모든 궁인들이 이미 상서의 글을 받으라는 어명을 들었으므로

각각 예쁜 종이, 비단 수건과 그림 부채를

상서 앞에 공경히 바치니,

尙書醉興方高詩思自湧,

상서취흥방고시사자용

遂拈彤管 次第揮洒, 風雲焂起雲煙爭吐,

수접동관 차제휘세 풍운숙기운연쟁토

상서가 바야흐로 취흥이 돌아 시상詩想이 저절로 용솟음쳐서

드디어 채색 붓을 들어 차례로 시를 쓰는데,

풍운이 별안간 일고 운연雲煙이 다투어 일어나는지라

或製絶句 或作四韻,

혹제절구 혹작사운

或一首而止 或兩首而罷,

혹일수이지 혹양수이파

혹은 절구를 짓기도 하고, 혹은 사운四韻도 지으며,

한 수를 쓰다가 그치기도 하고, 두 수를 다 쓰기도 하였는데

日影未移 牋帛已盡.

일영미이 전백이진

해 그림자가 아직 옮기지 아니하여

종이와 비단이 이미 소진되었다.

宮女以次跪進於上,

궁녀이차궤진어상

上一一鑑別 箇箇稱揚,

상일일감별 개개칭양

궁녀들이 차례로 무릎을 꿇어 상감께 바친즉,

상감께서 하나하나 감별하시고

개개의 것들에 칭찬하시며

謂宮娥等曰:

위궁아등왈

“學士亦旣勞矣 特宣御醞.”

학사역기로의 특선어온

궁녀들에게 이르시기를,

“학사가 또한 이미 수고하였으니,

궁중에서 빚은 술로 특별히 대접할 것이로다.”

諸宮女或擎黃金盤,

제궁녀혹경황금반

或把琉璃鍾 或執鸚鵡杯, 或擎白玉床

혹파류리종 혹집앵무배 혹경백옥상

모든 궁녀가 혹은 황금 쟁반에 받들어 올리기도 하고

혹은 유리로 만든 술병으로 올리기도 하며,

혹은 앵무 술잔을 잡고

혹은 백옥상白玉床을 내오는데,

滿酌淸醴 備列佳肴,

만작청례 비열가효

乍跪乍立 迭勸迭進,

사궤사립 질권질진

그 위에는 좋은 술이 가득하고,

맛좋은 안주가 차려져 있었으며,

잠깐 꿇어앉았다 잠깐 서면서

다투어 바치고 다투어 권하므로,

翰林左受右接 至十餘觥.

한림좌수우접 지십여굉

한림은 좌우 두 손으로 받은 것이 십여 잔에 이르렀다.

韶顔已酡 玉山欲頹,

소안이타 옥산욕퇴

예쁘고 잘생긴 얼굴이 벌써 붉어지고

아름다운 자태가 무너지고자 하거늘,

上命止之 又敎曰:

상명지지 우교왈

황상께서 그만두도록 명하시고

또 하교下敎하기를,

“學士詩句可直千金,

학사시구가직천금

眞所謂無價寶也.

진소위무가보야

“학사의 시 한 구절은 천금과 맞먹을 만하니,

이는 진실로 이른바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보석이로다.

詩曰 投之木果 報以瓊琚,

시왈 투지목과 보이경거

모시毛詩에 이르기를,

‘모과[木果]를 던지니 경거瓊琚로 갚는다’하였으니

爾輩以何物 爲潤筆之資乎?”

이배이하물 위윤필지자호

너희들이 무슨 물건으로 윤필지자潤筆之資를 하려느뇨?”

群娥 或抽金釵 或解玉珮,

군아 혹추금채 혹해옥패

或卸指環 或脫金釧,

혹사지환 혹탈금천

궁녀들 중에는 혹은 금비녀를 빼거나 혹은 옥패도 떼어 내고

또는 가락지를 빼고 금팔찌를 빼기도 하여,

爭鬪亂擲 頃刻成堆.

쟁투란척 경각성퇴

다투듯이 어지러이 던지니,

눈 깜짝할 사이에 더미를 이루었다.

上召謂黃門曰:

상소위황문왈

“爾收取尙書所用筆硯及硯滴,

이수취상서소용필연급연적

황상께서 내시를 불러 이르기를,

“너는 상서가 쓰던 필연筆硯과 연적硯滴

宮娥潤筆之物,

궁아윤필지물

隨尙書而去 傳給於其家.”

수상서이거 전급어기가

그리고 궁녀들이 내 놓은 물건들을 거두어

상서를 따라가서 그 집에 전하여 주도록 하라.”

尙書叩頓謝恩 欲起還仆,

상서고돈사은 욕기환부

上命黃門扶掖而出,

상명황문부액이출

상서가 머리를 조아려 사은謝恩하고

일어나다가 다시 자리에 쓰러지는지라

황상께서 내시에게 부축하여 데리고 나가도록 명하니

至宮門 騶從齊擁上馬.

지궁문 추종제옹상마

궁문에 이르러

추종騶從들이 일제히 옹위하여 말에 태웠다.

歸到花園 春雲扶上高軒,

귀도화원 춘운부상고헌

解其朝服而問曰:

해기조복이문왈

양상서가 돌아와 화원에 이르니

춘운이 붙들어 높은 난간으로 올리고

그의 조복을 벗기며 묻기를,

“相公過醉 誰家酒乎?”

상공과취 수가주호

“상공께서 지나치리만큼 취하셨는데,

뉘 집에서 술을 드셨습니까?”

翰林醉甚 不能答已而,

한림취심 불능답이이

한림이 몹시 취하여 대답할 수가 없을 뿐인데,

蒼頭奉賞賜筆硯

창두봉상사필연

及釵釧首飾等物, 積置於軒上,

급채천수식등물 적치어헌상

하인이 황상께서 상으로 주신 필연筆硯과

비녀, 팔찌와 머리 장식품 등의 물건을 받들어

험함위에 쌓아 놓으니,

尙書戱謂春雲曰:

상서희위춘운왈

상서가 희롱삼아 춘운에게 말하기를,

“此物皆天子賞賜春娘者也,

차물개천자상사춘낭자야

我之所得 與東方朔誰優?”

아지소득 여동방삭수우

“이 물건 모두 천자께서 춘낭에게 상으로 내리신 것이니,

나의 소득이 동방삭東方朔과 견주어 누가 더 낫소?”

春雲更欲問之,

춘운갱욕문지

翰林已昏倒 鼻息如雷.

한림이혼도 비식여뢰

춘운이 다시 묻고자 하나,

한림은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코 고는 소리가 마치 천둥과도 같았다.

翌日高舂 尙書始起盥洗矣,

익일고용 상서시기관세의

이튿날에 무척 늦게서야

상서가 비로소 일어나 손과 낯을 씻는데,

閽者走告曰:“越王殿下來矣.”

혼자주고왈 월왕전하래의

문지키는 자가 달려와서 고하기를,

“월왕越王 전하께서 오십니다.”

尙書驚曰: “越王之來 必有也.”

상서경왈 월왕지래 필유이야

상서가 깜짝 놀라 말하기를,

“월왕이 왕가枉駕하시니 필연 일이 있도다.”

顚踣出迎王 上座施禮,

전부출영왕 상좌시례

엎어지고 넘어질 듯 급히 나아가 왕을 맞이하여

상좌에 앉히고 예를 베푸니,

年可二十餘歲,

년가이십여세

眉宇炯然 眞天人也.

미우형연 진천인야

나이는 대략 이십여 세인데,

얼굴이 형연炯然하여 정말 천인天人과 같았다.

尙書跪問曰:

상서궤문왈

“大王枉屈於陋地 抑有何敎?”

대왕왕굴어루지 억유하교

상서가 꿇어앉아 묻기를,

“대왕께서 누추한 곳에까지 왕림하시니,

무슨 가르치심이 있나이까?”

王曰:“寡人竊慕盛德雅矣,

왕왈 과인절모성덕아의

玆奉上命來 宣聖旨矣.

자봉상명래 선성지의

왕이 대답하기를,

“과인은 은근히 경의 성덕盛德을 사모하여 왔는데,

이제 황상의 명을 받들고 와서 성지聖旨를 전하오이다.

蘭陽公主正當芳年, 朝家方揀駙馬矣,

란양공주정당방년 조가방간부마의

난양공주가 정말로 꽃다운 나이가 되어

조가朝家에서 바야흐로 부마駙馬를 간택하려고 하는데,

皇上愛尙書才德, 已定釐降之儀,

황상애상서재덕 이정리강지의

황상께서 상서의 재주와 덕을 매우 사랑하시어

공주 혼사의 의논을 정하시고,

先使寡人諭之,

선사과인유지

詔命將繼下矣.”

조명장계하의

과인으로 하여금 먼저 이 일을 알리라 하신 것이니,

장차 계하繼下는 황상의 명을 받게 되리이다.”

尙書大駭曰:

상서대해왈

“皇恩至此 臣首至地,

황은지차 신수지지

상서가 깜짝 놀라며 아뢰기를,

“황상의 은혜가 이 정도까지 이르니 신은 머리를 들 수 없나이다.

過福之災 有不暇論,

과복지재 유불가론

복이 지나치면 재앙이 생긴다 함은 말할 나위없는 것이오며,

而臣與鄭司徒女子,

이신여정사도녀자

約婚納聘已經歲矣.

약혼납빙이경세의

신은 정사도의 딸과

약혼하여 예물까지 받은 지 여러 해가 지났사오니,

伏望大王以此意 奏達於皇上.

복망대왕이차의 주달어황상

대왕께서는 이 뜻을 황상께 아뢰어 주시기를 엎드려 바라나이다.”

王曰:“吾當歸奏於天階而惜乎!

왕왈 오당귀주어천계이석호

皇上愛才之意已歸虛矣.”

황상애재지의이귀허의

왕이 대답하기를,

“내가 돌아가서 마땅히 황상께 아뢰려니와, 아깝도다!

황상께서 인재를 사랑하시는 뜻이 이미 허사로 돌아갔도다.”

尙書曰:“此關係人倫之大事 不可忽也.

상서왈 차관계인륜지대사 불가홀야

臣當請罪於闕下矣.”

신당청죄어궐하의

상서가 여쭙기를,

“이 관계는 인륜 대사이오니 소홀히 할 수 없나이다.

신이 마땅히 궐 아래에서 죄를 청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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