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마갈국(摩竭國)에서 여러 외도(外道)들을 교화하시어 모두 한맛의 법을 따르게 하시니 마치 해가 뭇 별을 비추는 것 같았네.
佛於摩竭國, 化種種異道, 悉從一味法, 如日映衆星。
저 다섯 산성(山城)을 나와 1천 제자와 함께 앞뒤로 권속들을 거느리시고 이금산(尼金山)으로 나아가셨네.
出彼五山城, 與千弟子俱, 前後眷屬從, 往詣尼金山。
가유라위성(迦維羅衛城)에 가까워지자 은혜에 보답할 마음이 생겨 “마땅히 법공양 닦아 부왕에게 받들어 올리리라” 하였네.
近迦維羅衛, 而生報恩心, 當修法供養, 以奉於父王。
왕의 스승과 또 대신들 먼저 정탐할 사람을 보내 언제나 부처님 곁을 따라다니며 그의 거둥[進止]을 살피게 하였었네.
王師及大臣, 先遣伺候人, 常尋從左右, 瞻察其進止。
부처님께서 돌아오시려 하는 생각 알고 먼저 달려와 왕에게 아뢰었다. “태자께서는 멀리 떠나 공부하시다가 소원을 성취하고 지금 돌아오십니다.”
知佛欲還國, 驅馳而先白, 太子遠遊學, 願滿今來還。
왕은 그 말 듣고 매우 기뻐해 수레를 타고 나가 맞이할 때 온 나라의 모든 사서(士庶)들 모두 왕을 따라 나아갔네.
王聞大歡喜, 嚴駕卽出迎, 擧國諸士庶, 悉皆從王行。
점점 가까이 가서 부처 뵈오니 빛나는 모습 이전보다 배나 더하여 많은 대중들 가운데 있는 모습이 마치 저 범천왕과 같았네.
漸近遙見佛, 光相倍昔容, 處於大衆中, 猶如梵天王。
수레에서 내려 천천히 나아갈 때 법 위해 머물기 어려울까 걱정했으나 그 얼굴 우러르자 마음이 하도 기뻐 입으로 뭐라 말할 바를 몰랐네.
下車而徐進, 恐爲法留難, 瞻顏內欣踊, 口莫知所言。
자기는 탐욕으로 세속에 얽혀 있고 아들은 초연하여 신선된 것 돌아보니 비록 아들이라 해도 높은 도(道)에 올라 있어 어떤 명칭으로 불러야 할지 알지 못했네.
顧貪居俗累, 子超然登仙, 雖子居道尊, 未知稱何名。
스스로 생각하되 ‘그처럼 그리워했건만 오늘날엔 마땅히 말할 길 없네. 아들은 이제 잠자코 앉아 안온하여 얼굴빛 변하지 않았네.
自惟久思渴, 今日無由宣, 子今默然坐, 安隱不改容。
오랫동안 이별했었건만 아무 감정 없으니 내 마음 유독 외롭고 슬프게 하는구나. 마치 오랫동안 목마른 사람 길에서 맑고 시원한 우물을 만났네.
久別無感情, 令我心獨悲, 如人久虛渴, 路逢淸冷泉。
달려가 그것을 마시려 할 때 갑자기 그 우물 말라버리는 것처럼 내 이제 내 아들을 보니 빛나던 얼굴 본래 그대로건만
奔馳而欲飮, 臨泉忽枯竭, 今我見其子, 猶是本光顏。
마음 서먹서먹한 기운은 너무도 높아 도무지 따라 붙을 마음 없구나. 정을 억제하고 헛된 희망 단절되니 목마른 이 마른 우물 대한 듯하네.
心疏氣高絕, 都無蔭流心, 抑情虛望斷, 如渴對枯泉。
보지 못할 때는 생각만 치달렸건만 눈앞에 마주 보자 기쁨 없어져 마치 사람이 이별한 부모 그리다가 갑자기 그림의 형상만 본 듯하구나.
未見繁想馳, 對目則無歡, 如人念離親, 忽見畫形像。
장차 사천하(四天下)의 왕 되기는 마치 만타왕(曼陀王)과 같겠거늘 너는 지금 밥을 빌고 다니니 이 길이 뭐 그리 영화롭단 말인가.
應王四天下, 猶若曼陁王, 汝今行乞食, 斯道何足榮。
편안하고 고요하기 수미산(須彌山) 같고 빛나는 모습 밝은 해와 같으며 안정된 걸음걸이 소 왕의 걸음 같고 두려움 없기는 사자 외침 같거늘
安靜如須彌, 光相如日明, 庠行牛王步, 無畏師子吼。
사천하(四天下)의 물려줌을 누리지 않고 구걸하여 그 몸을 기르는구나.’ 부처님께서는 부왕(父王)의 마음에 그래도 아들이란 생각 남아 있음 아셨네.
不受四天封, 乞求而養身, 佛知父王心, 猶存於子想。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한 까닭과 아울러 일체 중생 가엾게 여기시기에 신족(神足)으로 허공에 올라 두 손으로 해와 달을 받들고
爲開其心故, 幷哀一切衆, 神足昇虛空, 兩手捧日月。
공중에서 두루 돌아 다니며 갖가지 이변을 나타내셨네. 혹은 한량없이 몸을 나누었다가 다시 합하여 하나가 되며
遊行於空中, 種種作異變, 或分身無量, 還復合爲一。
혹은 물 밟기를 땅 밟듯 하고 땅에 들어가기를 물에 들어가듯 하며 석벽도 그 몸을 막지 못하고 몸 왼쪽과 오른쪽에서 물과 불을 내었네.
或入水如地, 或入地如水, 石壁不礙身, 左右出水火。
부왕은 그것 보고 매우 기뻐해 부자의 정 모두 다 없어졌다네. 부처님께서는 공중의 연꽃 자리에 앉아 그 왕을 위하여 설법하셨네.
父王大歡喜, 父子情悉除, 空中蓮花座, 而爲王說法。
“왕께선 자비스런 마음으로써 아들을 위해 근심과 슬픔 더하며 끊임없이 아들을 사랑하는 줄 알지만 그러나 그것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知王心慈念, 爲子增憂悲, 纏緜愛念子, 宜應速除滅。
애정을 끊고 그 마음 고요히 하여 아들이 수양하는 법 받으소서. 미처 아들로서 받들지 못한 것을 나 이제 부왕께 바칩니다.
息愛靜其心, 受我子養法, 人子所未奉, 今以奉父王。
아비로서 아들에게 얻지 못한 것 이제 아들에게 그것 얻으니 사람의 왕으로도 기특한 일이요 하늘의 왕으로도 드문 일입니다.
父未從子得, 今從子得之, 人王之奇特, 天王亦希有。
훌륭하고 묘한 감로의 도(道) 이제 그것을 대왕께 바칩니다. 스스로 지은 업(業)은 이전의 업 받아 나고 그 업은 또 전업의 과보에 의하나니
勝妙甘露道, 今以奉大王, 自業業受生, 業依業果報。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업의 인과(因果)는 한량없는 세상의 업을 짓나니 그러므로 이 세상 자세히 관찰하면 오직 업만이 착한 벗 됩니다.
當知業因果, 勤習度世業, 諦觀於世閒, 唯業爲良朋。통합뷰어 여러 친척들이나 또 그 몸을 못내 사랑하고 서로 그리워해도 목숨 마치고 신(神)이 홀로 갈 때는 오직 업만이 착실한 벗 되어 따릅니다.親戚及與身, 深愛相戀慕, 命終神獨往, 唯業良朋隨。
다섯 갈래 세계를 윤회하면서 세 가지 업이 세 가지로 생겨날 때 애욕(愛欲)이 그 원인이 되어 갖가지 무리의 차별 생깁니다.
輪迴於五趣, 三業三種生, 愛欲爲其因, 種種類差別。
이제 마땅히 그 힘을 다하여 몸과 입으로 짓는 업 깨끗이 다스리되 밤낮으로 부지런히 닦아 익혀 어지러운 마음 쉬고 고요하게 하시오.
今當竭其力, 淨治身口業, 晝夜勤脩習, 息亂心寂然。
오직 이것만이 자기 이익 되나니 이것을 버리고는 모두 나[我]가 아닐세. 마땅히 알아야 하네. 삼계(三界)의 모든 존재[有]는 마치 큰 바다의 물결 같아서
唯此爲己利, 離此悉非我, 當知三界有, 猶若海濤波。
즐거워하기도 어렵고 가까이 하기도 어렵나니 마땅히 네 번째의 업 닦아야 하네. 나고 죽는 다섯 길을 윤회함은 마치 뭇 성좌(星座)가 도는 것 같다오.
難樂難習近, 當修第四業, 生死五道輪, 猶衆星旋轉。
모든 하늘도 옮겨가고 변하거늘 인간 세상이 어찌 항상할 수 있으리. 열반을 가장 안락한 것이라 하나니 즐거움 중에는 선정의 고요함이 제일이라네.
諸天亦遷變, 人中豈得常, 涅槃爲最安, 禪寂樂中勝。
인간 왕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위험하고 또 두려움 많아 마치 독사와 함께 사는 것 같나니 어떻게 잠시라도 기뻐할 수 있으리.
人王五欲樂, 危險多恐怖, 猶毒蛇同居, 何有須臾歡。
현명한 사람은 이 세간을 볼 때 왕성한 불길에 둘러싸인 것 같아서 두려움에 잠시도 편안할 수 없기에 나고 늙고 죽는 것 여의기를 구하나니
明人見世閒, 如盛火圍遶, 恐怖無蹔安, 求離生老死。
그러므로 끝없이 고요하고 고요한 곳 슬기로운 사람이 사는 곳이네. 날카로운 무기나 코끼리나 말이나 군사나 수레를 구태여 쓰지 않고
無盡寂靜處, 慧者之所居, 不須利器仗, 象馬以兵車。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항복 받으면 천하의 어떤 적(敵)도 당하지 못하리. 괴로움 알아 괴로움의 인(因)을 끊고 멸(滅)을 증득하고 방편을 닦아
調伏貪恚癡, 天下敵無勝, 知苦斷苦因, 證滅修方便。
네 가지 참된 이치 바르게 깨달으면 나쁜 세계의 두려움은 없어지리.” 그리고 먼저 묘한 신통 나타내어 왕의 마음 기쁘게 해 드리자
正覺四眞諦, 惡趣恐怖除, 先現妙神通, 令王心歡喜。
믿고 즐거워하는 정 이미 깊어져 바른 법 그릇이 될 만하였네. 왕은 합장하고 찬탄하였네. “기특하여라, 서원(誓願)의 결과 이루었구나.
信樂情已深, 堪爲正法器, 合掌而讚嘆, 奇哉誓果成。
기특하여라, 큰 괴로움 여의었구나. 기특하여라, 나를 요익(饒益)하게 하였구나. 비록 먼저는 슬픔ㆍ근심 더하였으나 그 슬픔 인연하여 이익 얻었네.
奇哉大苦離, 奇哉饒益我, 雖先增憂悲, 緣悲故獲利。
기특하여라, 나는 오늘에야 아들을 낳은 과보(果報) 이루었네. 훌륭하고 묘한 즐거움 버리고 열심히 힘써 고행 익히며
奇哉我今日, 生子果報成, 宜捨勝妙樂, 宜精勤習苦。
마땅히 친족의 영화 버리고 은혜와 애정의 정 끊어야 하리. 옛날의 모든 선왕들은 부질없이 괴로워할 뿐 공이 없었지만
宜離親族榮, 宜割恩愛情, 古昔諸仙王, 唐苦而無功。
맑고 시원하고 안온한 곳을 너는 이제 모두 이미 얻어 자신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케 하며 크게 가엾게 여겨 중생을 제도하니
淸涼安隱處, 汝今悉已獲, 自安而安彼, 大悲濟衆生。
처음부터 이 세상에 머물면서 만일 전륜왕(轉輪王)이 되었더라면 그 자재로운 신통 없었으리니 내 마음 열어 주지 못했으리라.
昔本住世閒, 爲轉輪王者, 無自在神通, 令我心開解。
또한 이러한 묘한 법도 없었으리니 나를 지금처럼 기쁘게 하지 못했으리라. 비록 전륜왕이 되었더라도 나고 죽는 실마리 끊지 못했으리라.
亦無此妙法, 使我今日歡, 設爲轉輪王, 生死緖不絕。
너는 이제 능히 남[生]과 죽음[死] 끊어져 윤회하는 큰 괴로움 멸하였으니 능히 중생의 무리를 위해 감로법을 널리 설하는구나.
今已絕生死, 輪迴大苦滅, 能爲衆生類, 廣說甘露法。
이와 같은 묘한 신통이 있고 지혜는 매우 깊고 넓어서 나고 죽는 괴로움 아주 멸하여 하늘과 사람 중에 제일이 되었으니
如此妙神通, 智慧甚深廣, 永滅生死苦, 爲天人之上。
비록 거룩한 왕의 자리에 있었더라도 마침내 이런 이익 얻지 못했으리라.” 이렇게 찬탄하여 마친 뒤에는 법을 사랑하여 공경 더했나니
雖居聖王位, 終不獲斯利, 如是讚歎已, 法愛增恭敬。
왕이요 아버지인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겸손하고 낮추어 머리 조아려 예배하였네. 온 나라의 모든 백성들 부처님의 그러한 신통력 보았네.
居王父尊位, 謙卑稽首禮, 國中諸人民, 睹佛神通力。
깊고 묘한 설법 듣고서 또한 왕이 공경하고 존중하는 것 보자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절하면서 모두 기특하다는 생각을 내었네.
聞說深妙法, 兼見王敬重, 合掌頭面禮, 悉生奇特想。
세속의 얽매임에 있기 싫어하여 모두 다 집을 떠날 마음 내었네. 석가 종족의 여러 왕자들 마음으로 깨치고 도과(道果) 이루어졌네.
厭患居俗累, 咸生出家心, 擇種諸王子, 心悟道果成。
모든 세속 영화와 즐거움을 싫어해 친족들을 버리고 출가하였네. 아난다(阿難陀)와 난타(難陀)와 금비라(金毘羅)와 아나율(阿那律)
悉厭世榮樂, 捨親愛出家, 阿難陁難陁, 金毘阿那律。
난도(難圖)와 발난타(跋難陀)와 그리고 군다타나(軍茶陀那) 이러한 모든 우두머리와 그 밖의 석가족의 아들들
難圖跋難陁, 及軍荼陁那, 如是等上首, 及餘釋種子。
모두 다 부처의 가르침 따라 그 법을 받고 제자 되었네. 나라를 다스리는 대신의 아들 우타이(優陀夷)가 우두머리 되어
悉從於佛教, 受法爲弟子, 匡國大臣子, 優陁夷爲首。
여러 왕자들과 함께 차례차례 출가하였네. 또 우파리(優波離)라 이름하는 아저리(阿低梨)의 아들이
與諸王子俱, 隨次而出家, 又阿低梨子, 名曰優波離。
저 모든 왕자들과 대신의 아들들 출가하는 것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깨친 바 있어 또한 출가하여 법을 받았네.
見彼諸王子, 大臣子出家, 心感情開解, 亦受出家法。
부왕도 그 아들의 신통한 힘과 모든 공덕을 보고 스스로도 또한 맑은 흐름인 감로의 바른 법문에 들어갔네.
父王見其子, 神力諸功德, 自亦入淸流, 甘露正法門。
왕의 자리와 저 나라까지 버리고 선정의 감로밥을 먹으며 한가롭게 있으며 고요함 닦고 궁중에 있으면서 신선의 도[王仙] 익혔네.
捨王位國土, 禪一甘露飯, 閑居修靜默, 處宮習王仙。
여래는 그 종족의 친구들을 모두 성질에 따라 거두어 받은 뒤에 온화하고 기쁘게 도(道)를 펴자 친척들도 기뻐하며 그를 따랐네.
如來悉隨攝, 本族知識已, 道中顏和悅, 親戚歡喜隨。
때가 이르러 걸식하기 위해 가유라위성(迦維羅衛城)으로 들어가시자 성안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 놀라고 기뻐하며 큰 소리로 외쳤네.時至應乞食, 入迦維羅衛, 城中諸士女, 驚喜擧聲唱。
“실달아라타(悉達阿羅陀)께서 도(道)를 배워 이루고 돌아오셨다.” 이렇게 안팎에서 서로서로 전해 알려 어른이나 아이들 달려와 뵈었네.
悉達阿羅陁, 學道成而歸, 內外轉相告, 巨細馳出看。
사립을 열고 창문을 열고 어깨를 맞대고 눈을 치뜨며 부처님 몸의 상호(相好)를 보았을 때 그 광명 빛나도 눈부셨다네.門戶窗牖中, 比肩而側目, 見佛身相好, 光明甚暉曜。
겉에는 가사(袈裟)옷 입고 몸의 광명 안을 철저하게 비추어 마치 태양의 둥근 바퀴가 안팎을 서로 비추어 발하네.
外著袈裟衣, 身光內徹照, 猶如日圓輪, 內外相映發。
보는 사람 마음이 슬프고 기뻐 모두 합장하고 눈물 흘렸네. 부처님의 고요하고 바른 걸음걸이와 침묵한 얼굴에 모든 감관을 거두고
觀者心悲喜, 合掌涕淚流, 見佛庠序步, 歛形攝諸根。
묘한 몸에 법다운 위의 나타냄 보고 공경하고 아껴 더욱 슬퍼하였네. “머리를 깎아 그 좋은 모습 헐고 몸에는 물들인 옷 입었으며
妙身顯法儀, 敬惜增悲嘆, 剃髮毀形好, 身被染色衣。
의젓한 거동과 단아한 얼굴 몸을 단속하고 땅을 응시하며 걸어가네. 마땅히 깃을 붙인 보배 일산 받치고 손에는 나는 용(龍) 고삐 잡아야 할 것을
堂堂儀雅容, 束身視地行, 應戴羽寶蓋, 手攬飛龍轡。
어찌하여 먼지를 뒤집어쓰며 발우 들고 걸식하러 다닌단 말인가. 그 재주는 원수를 항복받기 충분하고 얼굴은 채녀(婇女)들을 기쁘게 할 만하네.
如何冒游塵, 執鉢而行乞, 藝足伏怨敵, 貌足婇女歡。
화려한 옷에 하늘관[天冠] 쓸 때 만 백성 모두 우러러 뵈올 텐데. 어찌하여 싱그러운 모습 굽히고 마음을 억누르고 몸을 억제하며
華服冠天冠, 黎民咸首陽, 如何屈茂容, 拘心制其形。
미묘하고 만족스런 빛나는 옷 버리고 맨몸에 물들인 옷 입었는가. 어떤 모양을 보고 무엇을 구하기에 이 세상의 5욕(欲)을 원수라 하네.
捨妙欲光服, 素身著染衣, 見何相何求, 與世五欲怨。
어진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 두고 혼자 즐거워하며 외로이 노니는가. 어려워라. 저 어진 아내 긴긴 밤 근심스러운 생각 품었네.
捨賢妻愛子, 樂獨而孤遊, 難哉彼賢妃, 長夜抱憂思。
이제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서 성명(性命)은 그나마 보전하였네. 알 수 없구나. 저 정반왕(淨飯王) 마침내 이 아들을 보았는가.
而今聞出家, 性命猶能全, 不審淨飯王, 竟見此子不。
그 묘한 상(相)을 가진 몸 보았다가 형상 무너뜨리고 집 출가하였으니 원수라도 오히려 마음 아파하겠거늘 아비로서 그것 보고 어떻게 편안하리.
見其妙相身, 毀形而出家, 怨家猶痛惜, 父見豈能安。
사랑하는 그 아들 라후라(羅睺羅)는 늘 울며 슬퍼하고 그리워하였네. 그러나 그것 보고 위로할 마음 없었나니 이 도(道)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네.
愛子羅睺羅, 泣涕常悲戀, 見無撫慰心, 用學此道爲。
관상 보는 법에 밝은 여러 사람들 태자는 나면서부터 대인(大人)의 상(相)을 두루 갖추었으니 마땅히 온 천하의 공양 받으리라고 말하였네.
諸明相法者, 咸言太子生, 具足大人相, 應享食四海。
그러나 이제 저 하는 모양 보니 그것은 모두 다 거짓말이었구나.” 이와 같이 그 많은 사람들 서로 시끄럽게 지껄였으나觀今之所爲, 斯則皆虛談, 如是比衆多, 紛紜而亂說。통합뷰어 여래는 마음에 집착이 없어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다만 중생들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 가난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네.
如來心無著, 無欣亦無慼, 慈悲愍衆生, 欲令脫貧苦。
저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고 아울러 미래의 세상을 위해 탐욕이 적은 자취 나타내고 세속의 잡된 비방 없애려 하였네.
增長彼善根, 幷爲當來世, 顯其少欲迹, 兼除俗塵謗。
가난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맛나고 나쁜 것 얻는 대로 맡기고 부잣집 가난한 집 가리지 않고 발우가 채워지면 숲으로 돌아왔다네.
그때 어떤 큰 장자(長者) 있었으니 이름을 급고독(給孤獨)이라 하였다. 큰 부자로서 재물은 한량없이 많았는데 널리 보시하여 가난한 이 구제했다네.
時有大長者, 名曰給孤獨, 巨富財無量, 廣施濟貧乏。
그는 멀리 북쪽에 있는 교살라국(憍薩羅國)에서 오다가 어떤 친구 집에서 묵었었는데 그 주인 이름은 수라(首羅)라 했네.
遠從於北方, 憍薩羅國來, 止一知識舍, 主人名首羅。
그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와 죽원(竹園)에 계신단 말 듣고 그 이름 받들고 그 덕을 존경하여 그 밤으로 곧 그 숲에 나아갔네.
聞佛興於世, 近住於竹園, 承名重其德, 卽夜詣彼林。
여래께서는 이미 그의 근기가 성숙했고 깨끗한 믿음이 생긴 줄 아시고 그에 맞게 그 사실 칭찬하며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셨네.
如來已知彼, 根熟淨信生, 隨宜稱其實, 而爲說法言。
“그대는 이미 바른 법을 좋아해 청정하게 믿는 마음 간절하기에 능히 잠을 줄이고 나에게 와 예를 올리니 내 오늘은 그대를 위하여 첫 손님에 대한 예의 두루 갖추리.
汝已樂正法, 淨信心虛渴, 能減於睡眠, 而來敬禮我, 今日當爲汝, 具設初賓儀。
그대는 전생에 덕의 종자[本] 심었고 그 희망 견고하고 깨끗해 부처란 이름 듣자 기뻐했으니 바른 법의 그릇이 될 만하여라.
汝宿殖德本, 堅固淨其望, 聞佛名歡喜, 堪爲正法器。
빈 마음으로 널리 은혜 베풀어 가난하고 궁핍한 이에게 두루 베푸니 그 이름과 덕 두루 흘러 퍼져 그 결실 이룸은 전생 인연 때문이라네.
虛懷廣行惠, 周給於貧窮, 名德普流聞, 果成由宿因。
이제는 마땅히 법보시를 행하되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껏 베풀고 때로는 고요함의 보시 베풀며 아울러 깨끗한 계(戒) 받아 지니면
今當行法施, 至心精誠施, 時施寂靜施, 兼受持淨戒。
계(戒)는 장엄하는 도구가 되고 또 능히 나쁜 갈래[趣] 변화시켜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 오르게 하여 하늘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보답하리라.
戒爲莊嚴具, 能轉於惡趣, 令人上昇天, 報以天五樂。
구(求)하는 모든 것 큰 괴로움이요 애욕은 모든 허물 모으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악을 멀리 여의고 욕심 떠나 고요한 즐거움 닦으라.
諸求爲大苦, 愛欲集諸過, 當脩遠離惡, 離欲寂靜樂。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 세상의 큰 근심인 줄 알아 세상을 바르게 관찰함으로써 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 여의어야 하리.
知老病死苦, 世閒之大患, 正觀察世閒, 離生老病死。
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이 이미 이 인간에게 있음을 보았네. 하늘에 나더라도 또한 그러하나니 항상 존재함 없기 때문이라네.
旣見於人閒, 有老病死苦, 生天亦復然, 無有常存者。
항상함이 없으면 그게 바로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없음이며 무상함과 괴로움은 내가 아니니 어떻게 거기에 나와 내 것 있으랴.
無常則是苦, 苦則無有我, 無常苦非我, 何有我我所。
괴로움은 곧 괴로움인 줄 알고 모임[集]은 곧 모임인 줄 알아 괴로움이 멸하면 곧 고요함이요 그 길[道]은 곧 안온한 곳이니라.
知苦卽是苦, 集者則爲集, 苦滅卽寂靜, 道卽安隱處。
온갖 생겨남엔 유동(流動)하는 성질 있으니 그것이 곧 괴로움의 근본인 줄을 알라. 그 끝을 싫어해 근원을 막고자 할 뿐 있음과 없음을 원하는 것 아니네.
群生流動性, 當知是苦本, 厭末塞其源, 不願有非有。
남ㆍ늙음ㆍ죽음은 성대한 불길로서 온 세간을 두루 태우네. 남과 죽음에 동요됨을 깨달아 마땅히 생각 없음[無想] 익혀야 하네.
生老死盛火, 世閒普熾然, 見生死動搖, 當習於無想。
삼마제(三摩提)는 최후의 경지로서 감로(甘露)의 고요한 곳이라네. 모든 것 공(空)하여 나와 내 것이 없고 이 세간은 모두 다 꼭두각시 같나니
三摩提究竟, 甘露寂靜處, 空無我我所, 世閒悉如幻。
마땅히 이 몸을 관찰해 보라. 4대(大)와 5온(蘊)의 덩어리라네.” 그때 장자는 이 설법 듣고 그 자리에서 초과(初果)를 얻었네.
當觀於此身, 諸大衆行聚, 長者聞說法, 卽得於初果。
“나고 죽음의 바다는 소멸했으나 오직 한 방울 남은 것 있으니 비고 한가한 데서 욕심 여읨 닦았어도 제일 유(有)와 무(無)에 대한 몸의 견해는 남아 지금 세속 사람이 진리 보아 참으로 해탈함만 못했네.
生死海消滅, 唯有一滴餘, 空閑修離欲, 第一有無身, 不如今俗人, 見諦眞解脫。
“모든 고행을 여의지 못하고 갖가지 다른 견해의 그물 있으면 제일의 유(有)에까지 이르렀다 해도 그것은 참된 이치 보지 못한 것이니 삿된 생각으로 하늘 복에 집착하면 유(有)에 대한 애욕의 결박 더욱 깊어지리.
”不離諸苦行, 種種異見網, 雖至第一有, 不見眞實義, 邪想著天福, 有愛縛轉深。
그때 장자는 이 설법 듣고 음개(陰蓋)가 곧 환히 열려 이내 바른 견해를 얻게 되었고 모든 그릇된 견해 영원히 사라짐이 마치 사나운 가을 바람이 두터운 구름을 흩는 것 같네.
長者聞說法, 陰蓋煥然開, 逮得於正見, 諸邪見永除, 猶如秋厲風, 飄散於重雲。
“자재천(自在天)의 인(因)이라 헤아리지 말고 그릇된 인(因)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또한 아무런 인 없이 이 세간이 생긴 것도 아니라네.
不計自在因, 亦非邪因生, 亦復非無因, 而生於世閒。
만일 자재천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어른과 아이, 먼저와 뒤가 없어야 할 것이요 또한 다섯 갈래의 윤회도 없어야 할 것이며 생긴 것은 당연히 멸하지 않아야 할 것이네.
若自在天生, 無長幼先後, 亦無五道輪, 生者不應滅。
또한 재환(災患)도 없어야 할 것이며 악을 지어도 허물되지 않아야 하리니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못한 업(業)은 다 자재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네.
亦不應災患, 爲惡亦非過, 淨與不淨業, 斯由自在天。
만일 자재천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세상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으리라. 아들이 아비에게서 생겨난 것 같으리 누가 그 아비를 모른다 하리.
若自在天生, 世閒不應疑, 如子從父生, 孰不識其尊。
사람이 궁하고 괴로운 때를 만나도 도리어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요 모두 자재천을 숭상할 것이니 마땅히 다른 신(神)은 받들지 않으리라.
人遭窮苦時, 不應反怨天, 悉應宗自在, 不應奉餘神。
자재천이 정말 지은 것이라면 자재천이라 이름해선 안 될 것이니 그는 곧 지은 이이기 때문에 그는 마땅히 늘 지어야 하리.
自在是作者, 不應名自在, 以其是作故, 彼則應常作。
언제나 지으면 스스로 고달플 것이니 어떻게 자재(自在)라 할 수 있으랴. 만일 아무 생각 없이 지었다 하면 어린애 장난과 같을 것이네.
常作則自勞, 何名爲自在, 若無心而作, 如嬰兒所爲。
만일 작심하고서 지었다 하면 마음이 있으니 자재가 아니리라. 괴롭고 즐거움이 중생 때문이라면 그것은 자재천이 지은 것 아니네.
若有心而作, 有心非自在, 苦樂由衆生, 則非自在作。
자재천이 괴로움과 즐거움 내었다면 그에게 사랑과 미움이 있음이니 이미 사랑하고 미워함이 있다면 마땅히 자재천이라 일컫지 않으리.
自在生苦樂, 彼應有愛憎, 已有愛憎故, 不應稱自在。
만일 다시 자재천이 지었다면 중생들은 잠자코 있어야 할 것이니 그의 자재한 힘에 맡겼거늘 무엇 하러 구태여 선(善)을 닦으리.
若復自在作, 衆生應默然, 任彼自在力, 何用修善爲。
정령 또 선악을 닦는다 해도 마땅히 그 업보가 없기 때문이네. 만일 자재천이 그 업(業)을 내었다면 일체는 모두 그 업이 같아야 할 것이네.
正復修善惡, 不應有業報, 自在若業生, 一切則共業。
만일 모두가 업이 같다면 모두 자재천이라 일컬어야 할 것이네. 만일 자재천이 인(因)이 없다면 일체도 또한 인이 없어야 할 것이네.若是共業者, 皆應稱自在, 自在若無因, 一切亦應無。통합뷰어 만일 다른 자재천을 의지한다면 자재천은 마땅히 끝이 없어야 하리. 그러므로 저 모든 중생들 아무도 지은 이 없네.
若因餘自在, 自在應無窮, 是故諸衆生, 悉無有作者。
마땅히 알라. 자재천의 이치는 이 이론(理論)에 마주치면 곧 깨어져서 일체 이치가 서로 어긋나니 만일 설명할 수 없다면 곧 허물이 있다네.
當知自在義, 於此論則壞, 一切義相違, 無說則有過。
또 만일 자성(自性)에서 생겼다 해도 그 허물 또한 이와 같으리. 저 모든 인명론자(因明論者)들 일찍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네.
若復自性生, 其過亦如是, 諸明因論者, 未曾如是說。
의지할 것도 없고 또한 그 인(因)이 없이도 능히 지어지는 것이 거기 있다고 말하네. 그러나 세상 모든 것 다 인을 말미암음이 마치 종자를 의지하는 것 같네.
無所依無因, 而能有所作, 彼彼皆由因, 猶如依種子。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성(自性)에서 생긴 것 아닌 줄 아네. 이 세상의 모든 지어진 것들 오직 한 인으로 생긴 것 아니건만
是故知一切, 則非自性生, 一切諸所作, 非唯一因生。
그러면서 여기 한 자성을 말하나니 그러므로 그것은 인이 아니네. 혹은 말하기를 그 자성은 온갖 곳에 두루하다고 하지만
而說一自性, 是故則非因, 若言彼自性, 周滿一切處。통합뷰어 만일 온갖 곳에 두루하다면 지은이도 지어진 이도 없을 것이니 이미 지은이도 지어진 이도 없다면 그것은 곧 인이 되지 않으리.若周滿一切, 亦無能所作, 旣無能所作, 是則非爲因。
만일 온갖 곳에 두루하다면 그 온갖 것을 만든 이 있으리니 그것은 곧 온갖 때에 있어서 늘 만드는 이가 있어야 하리.
若遍一切處, 一切有作者, 是則一切時, 常應有所作。
만일 늘 만드는 이가 있다고 하면 때를 기다렸다가 물건을 낼 리 없으리니 그러므로 또한 마땅히 알라. 자성이 인(因)이 되는 것 아니라네.
若言常作者, 無待時生物, 是故應當知, 非自性爲因。
또한 말하기를 그 자성은 일체의 구나(求那)를 여의었다 하지만 그러면 저 만들어진 모든 것들 또한 반드시 구나를 여의어야 하리.
又說彼自性, 離一切求那, 一切所作事, 亦應離求那。
그러나 이 모든 세간은 다 구나가 있음을 보나니 그러므로 또한 이 자성은 일체의 인이 아님을 아네.
一切諸世閒, 悉見有求那, 是故知自性, 亦復非爲因。
만일 저 자성에 대해 구나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상(常)으로써 인을 삼기 때문에 그 성질 다르지 않아야 할 것이네.
若說彼自性, 異於求那者, 以常爲因故, 其性不應異。
그런데도 중생은 구나와 다르니 그러므로 자성은 그 인이 아니요. 자성이 만일 항상한 것이라면 사물 또한 무너지지 않아야 하리.
衆生求那異, 故自性非因, 自性若常者, 事亦不應壞。
만일 자성으로 그 인을 삼는다면 인과(因果)의 이치는 같아야 하리라. 그러나 세간의 무너짐을 보나니 그러므로 따로 인이 있음을 아네.
以自性爲因, 因果理應同, 世閒見壞故, 當知別有因。
만일 그 자성이 인(因)이 된다면 마땅히 해탈을 구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그 자성 있기 때문에 그것의 나고 멸함에 맡겨야 할 것이네.
若彼自性因, 不應求解脫, 以有自性故, 應任彼生滅。
가령 해탈을 얻는다 하더라도 자성은 도리어 결박되게 될 것이네. 만일 자성을 보지 못하면서 그 법의 인을 본다고 한다면
假令得解脫, 自性還生縛, 若自性不見, 爲見法因者。
그것 또한 인이 되지 못하리니 인과의 이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간의 모든 보이는 일들 인과 과가 다 함께 나타나네.
此亦非爲因, 因果理殊故, 世閒諸見事, 因果悉俱見。
만일 자성에 마음이 없다면 마음엔 인이 있을 수 없네. 연기를 보고 불을 아는 것처럼 인과 과는 서로 구하는 게 비슷하다네.若自性無心, 不應有心因, 如見煙知火, 因果類相求。
그 인을 보지 못하고는 그 일을 볼 수 없네. 금(金)으로 그릇이나 옷을 만드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금과는 떨어질 수 없다네.
非彼因不見, 而生於見事, 猶金造器服, 始終不離金。
자성을 이 일의 인이라 한다면 처음과 끝이 어찌 다를 수 있으랴. 만일 때[時]로 말미암아 만드는 이 있게 되면 마땅히 해탈을 구하지 않으리니
自性是事因, 始終豈得殊, 若使時作者, 不應求解脫。
그 때란 항상하기 때문에 그 시절(時節)에 맡겨야 마땅하리라. 이 세간은 끝이 없는 것처럼 시절도 또한 그와 같다네.
以彼時常故, 應任彼時節, 世閒無有邊, 時節亦復然。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도 마땅히 방편을 구하지 않아야 하네. 다라표구나(陀羅驃求那)라는 세상의 또 다른 주장이 있네.
是故脩行者, 不應方便求, 陁羅驃求那, 世閒一異論。
비록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기는 하나 인(因)이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하네. 만일 내[我]가 짓는다고 한다면 반드시 하고픈 대로 생하였을 것이네.
雖有種種說, 當知非一因, 若說我作者, 應隨欲而生。
그러나 지금은 하고픈 대로 되지 않나니 어떻게 내가 짓는다 하리. 갈구하지 않는데 그것을 얻고 갈구하는데 도리어 얻지 못하네.
而今不隨欲, 云何說我作, 不欲而更得, 欲者反更違。
괴로움과 즐거움에 자재롭지 못한데 어떻게 내가 짓는다 하리. 만일 내가 짓는 것이라 한다면 나쁜 갈래의 업은 없었을 것이네.
苦樂不自在, 云何言我作, 若使我作者, 應無惡趣業。
그런데 갖가지 업의 과(果) 생기나니 그러므로 내가 짓는 것 아님을 아네. 나는 때[時]를 따라 짓는다고 한다면 때를 따라 오직 착한 일만 지었을 것인데
種種業果生, 故知非我作, 言我隨時作, 時應唯作善。
선(善)과 악(惡)이 인연 따라 생겨나니 그러므로 내가 짓는 것 아님을 알리. 만일 인(因) 없이 지어졌다면 마땅히 방편 닦을 일 없어야 하리라.
善惡隨緣生, 故知非我作, 若使無因作, 不應修方便。
일체는 저절로 정해져 있거늘 무엇 하러 구태여 인을 닦으리. 세간에서는 갖가지 업을 지어 갖가지로 결과를 거둔다네.
一切自然定, 修因何所爲, 世閒種種業, 而獲種種果。
그러므로 일체 세간에는 인 없이 지어진 것 없음을 아네. 마음이 있고 또 마음 없음은 모두 인연 따라 일어난다네.
是故知一切, 非爲無因作, 有心及無心, 悉從因緣起。
그러므로 이 세간의 일체법은 인 없이 생긴 것 하나도 없네.” 장자는 마음이 열리고 풀려 훌륭하고 묘한 이치 밝게 통달했다네.
世閒一切法, 非無因生者, 長者心開解, 通達勝妙義。
한 모양의 진실한 지혜가 생겨 결정코 참된 이치 밝게 알았네. 세존의 발에 공경스레 예배하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네.
一相實智生, 決定了眞諦, 敬禮世尊足, 合掌而啓請。
“이 사바제(舍婆提)8)에 머무소서. 토지는 풍족하고 또 안락합니다. 이 나라의 바사닉(波斯匿) 대왕은 사자원족(師子元族)의 후손입니다.
居在舍婆提, 土地豐安樂, 波斯匿大王, 師子元族胄。
복덕(福德)의 그 이름 널리 퍼져 멀고 가까운 모든 곳에서 존경합니다. 제가 이제 정사(精舍)를 세우고자 하니 부디 가엾게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福德名稱流, 遠近所宗敬, 欲造立精舍, 唯願哀愍受。
부처님 마음은 평등하시므로 거처의 안락함을 구하시지 않겠지만 이 중생들 가엾게 여기시어 제 간청 어기시지 않을 줄 압니다.”
知佛心平等, 所居不求安, 愍彼衆生故, 不違我所請。
부처님께서는 그 장자의 마음에 크게 보시할 생각 일으키면서 물듦도 없고 집착하는 바도 없이 중생의 마음 잘 보호할 줄 아셨네.
佛知長者心, 大施發於今, 無染無所著, 善護衆生心。
“너는 이미 참된 진리 보았고 본 마음 보시하기 좋아하나니 돈과 재물과 범상치 않은 보배를 마땅히 내어 보시해야 하리.
汝已見眞諦, 素心好行施, 錢財非常寶, 宜應速施爲。
마치 창고가 불에 탔을 때 이미 낸 물건 보배라 해도 밝은 사람은 덧없음 알아 재물 내어 널리 은혜 베풂 같다네.
如藏庫被燒, 已出者爲珍, 明人知無常, 出財廣行惠。
탐욕이 많은 이는 지키고 아껴 다할까 두려워 쓸데 쓰지 않고 또한 덧없음을 두려워할 줄 모르다가 속절없이 잃고는 근심하고 후회 더하네.
慳貪者守惜, 恐盡不受用, 亦不畏無常, 徒失增憂悔。
때맞춰 근기에 따라 베풀기 마치 건장한 사내가 도적을 만나 능히 베풀고 능히 싸우듯 하면 이는 용감하고 지혜 있는 장부라네.
應時應器施, 如健夫臨敵, 能施而能戰, 是則勇慧士。
베푸는 이는 뭇 사람 사랑 받고 좋은 이름은 널리 두루 퍼지며 어질고 착한 이를 벗하기 좋아하니 그 목숨 마쳐도 마음 항상 기쁘네.
施者衆所愛, 善稱廣流聞, 良善樂爲友, 命終心常歡。
뉘우침 없고 두려움도 없으며 아귀 세계에 태어나지 않으리. 이것은 곧 꽃의 결실이 되어 그 열매 또한 생각키 어려우리.
無悔亦無怖, 不生餓鬼趣, 此則爲花報, 其果難思議。
여섯 갈래 세계를 윤회할 때 좋은 짝은 보시보다 더한 것 없나니 만일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 태어나면 뭇 대중이 받들고 섬길 것이요.
輪迴六趣中, 良伴無過施, 若生天人中, 爲衆所奉事。
비록 축생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보시의 과보를 따라 즐거움 누리리. 지혜로서 고요한 선정을 닦는 것은 의지함도 없고 헤아림도 없다네.
生於畜生道, 施報隨受樂, 智慧脩寂定, 無依無有數。
아무리 감로(甘露)의 도 얻었다 해도 오히려 보시를 바탕하여 이룬 것이네. 그는 은혜로운 보시를 연(緣)하여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닦고
雖獲甘露道, 猶資施以成, 緣彼惠施故, 脩八大人念。
그 생각 따라 기쁜 마음 있으며 결정코 삼마제(三摩提)를 얻는 것이네. 삼매(三昧)는 지혜를 증가시켜 능히 나고 멸함을 바로 보게 하나니
隨念歡喜心, 決定三摩提, 三昧增智慧, 能正觀生滅。
나고 멸함을 바르게 관찰한 다음 차례차례 해탈을 얻게 된다네. 재물 버려 은혜로 베푸는 이는 탐욕과 집착을 없애 버리네.
正觀生滅已, 次第得解脫, 捨財惠施者, 蠲除於貪著。
자비롭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베풀어 미움ㆍ성냄ㆍ거만을 아울러 버리네. 은혜로 베푼 결과를 분명하게 보고 베풂 없는 어리석음 버려지는 것 보아
慈悲恭敬與, 兼除嫉恚慢, 明見惠施果, 無施癡見除。
모든 맺음[結]의 번뇌를 멸하나니 이것은 다 은혜로 베푼 결과라네. 그러므로 은혜로 베풂이야말로 해탈의 인(因)이 됨을 알아야 하리.
諸結煩惱滅, 斯由於惠施, 當知惠施者, 則爲解脫因。
마치 사람이 씨 뿌리고 가꾸는 것 그늘과 꽃과 열매 얻기 위함이듯 보시도 또한 그와 같아서 과보의 즐거움이 대열반이라네.
猶如人種栽, 爲蔭花果故, 布施亦如是, 報樂大涅槃。
견고하지 않은 재물의 보시로서 그 값으로 견고한 결과를 얻는다네. 음식을 보시하면 오직 힘만 얻고 옷을 보시하면 좋은 몸을 얻네.
不堅固財施, 獲報堅固果, 施食唯得力, 施衣得好色。
만일 정사(精舍)를 세우면 온갖 결과 구족함을 이룬다네. 혹은 보시로서 5욕(欲)을 구하거나 혹은 큰 재물을 탐해 구하네.
若建立精舍, 衆果具足成, 或施求五欲, 或貪求大財。
혹은 명예를 위해 보시 행하거나 혹은 하늘에 태어나 즐거움 누리기 위함이네. 혹은 가난과 괴로움 면하기를 원하는데 오직 그대만의 생각 없는 보시는
或爲名聞施, 有求生天樂, 或爲免貧苦, 唯汝無想施。
보시 중에서 최상의 보시로서 무슨 이익이든 얻지 못할 게 없으리. 그대의 마음가짐 크고 넓으니. 마땅히 빨리 성취케 해야 하리.
施中之最上, 無利而不獲, 汝心有所弘, 宜令速成就。
어리석은 애욕의 마음으로 왔지만 맑고 깨끗한 눈을 떠 돌아가라.” 장자는 부처님의 가르침 받고 은혜로운 마음 더욱 밝아졌다네.
癡愛心來遊, 淸淨眼開還, 長者受佛教, 惠心轉增明。
이내 저 우바저사(優波低舍)를 청해 어진 벗되어 함께 돌아가지만 그들은 저 교살라국(憍虄羅國)으로 돌아가 두루 돌아다니며 좋은 터를 찾다가
請優波低舍, 賢友而同歸, 還彼憍薩羅, 周行擇良墟。
그 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기원(祇園)의 숲과 물이 지극히 맑고 고요함을 보았네. 그들은 태자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 밭을 사려고 청해 보았네.
見太子祇園, 林流極淸閑, 往詣太子所, 請求買其田。
그러나 태자는 귀한 보배처럼 아껴서 아예 팔 생각을 내지 않았네. “비록 황금을 가득히 깔더라도 오히려 그 땅은 내놓을 수 없으리.”
太子甚寶惜, 元無出賣心, 設布黃金滿, 猶尚地不遷。
장자는 마음으로 매우 기뻐해 곧 황금을 두루 깔았네. 기타(祇陀)태자가 말했네. “내가 주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금을 까는가.”
長者心歡喜, 卽遍布黃金, 祇言我不與, 汝云何布金。
장자가 말했네. “주지 않으려면 어찌 황금을 깔라 하였소.”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다투다 관청에서 송사까지 벌이게 되자
長者言不與, 何言滿黃金, 二人共諍說, 延及斷事官。
여러 사람들 모두 기특하다 찬탄하였고 기타 태자 또한 그 정성 알게 되었네. 그 이유를 자세히 물었을 때 대답하여 말했네. “정자를 세워
衆皆歎奇特, 祇亦知其誠, 廣問其因緣, 辭言立精舍。
여래와 제자들 그리고 비구들에게 공양하려 한다네.” 태자는 부처라는 이름을 듣고 그 마음에 곧 깨달음 생겼네.
供養於如來, 幷及比丘僧, 太子聞佛名, 其心卽開悟。
다만 그 황금의 반만 받고 화해 구하고 함께 정사 세우자 했네. “그대는 땅을, 나는 숲을
우리 함께 부처님께 공양하자.”
唯取其半金, 求和同建立, 汝地我樹林, 共以供養佛。
그래서 장자는 땅을, 태자는 숲을 바쳐 사리불로 감독관을 삼아 경영하기 시작해 정사를 세울 때 밤낮으로 꾸준히 해 어느새 완성되었네.
長者地祇林, 以付舍利弗, 經始立精舍, 晝夜勤速成。
높이 드러나고 훌륭하게 장엄함이 마치 사천왕의 궁전 같았네. 법을 따르고 도(道)에 맞추어 여래의 쓰임에도 알맞았네.
高顯勝莊嚴, 猶四天王宮, 隨法順道宜, 稱如來所應。
세간에 일찍이 없던 일로서 사위성을 더욱더 빛내었네. 여래께서는 신비한 공덕을 나타내고 제자들 모여들어 안거(安居)할 때
世閒未曾有, 增暉舍衛城, 如來現神蔭, 衆聖集安居。
시자(侍者) 없는 이에겐 시자를 내려주고 시자 있는 이에겐 도에 필요한 물자를 대었네. 장자는 이 복으로 말미암아 그 목숨 끝나자 하늘에 태어났고 자손들은 그 업을 이어 받아 대대로 복밭[福田]을 심었네.
그때 병사왕은 세존께 머리를 조아리고 죽림(竹林)으로 옮기실 것을 간청하자 가엾게 여겨 허락하셨기에 잠자코 계셨네.
爾時甁沙王, 稽首請世尊, 遷住於竹林, 哀受故默然。
왕은 이미 진실한 이치 깨달은 뒤에 받들어 예배하고 궁성으로 돌아갔고 세존께서는 대중들과 함께 자리를 옮겨 죽원(竹園)에 편안히 머무셨네.
王已見眞諦, 奉拜而還宮, 世尊與大衆, 徙居安竹園。
모든 중생들 제도하기 위해 지혜의 등불 세워 밝히시되 범(梵)과 하늘과 또 성현이 머무는 방법으로 머무셨네.
爲度衆生故, 建立慧燈明, 以梵住天住, 賢聖住而住。
그때 저 아습파서(阿濕波誓)는 마음 조복하고 모든 감관 제어하고 때가 되자 걸식하기 위해 왕사성(王舍城)으로 들어갔었네.
時阿濕波誓, 調心御諸根, 時至行乞食, 入於王舍城。
용모는 세상에 뛰어나 특별하고 위의(威儀)는 편안하고 자상하였다. 성안에 사는 모든 남녀들 보는 이마다 모두들 기뻐하였네.
容貌世挺特, 威儀安序庠, 城中諸士女, 見者莫不歡。
가던 사람 너나없이 걸음 멈추고 앞에선 맞이하고 뒤에선 따라갔네. 그때 가비라(迦毘羅)라는 선인이 많은 제자를 널리 제도하였네.
行者爲住步, 前迎後風馳, 迦毘羅仙人, 廣度諸弟子。
그 중에 제일 훌륭하고 많이 들은 이 그 이름 사리불(舍利弗)이었네. 그는 이 비구의 조용하고 여유로움과 모든 감관의 고요함을 보고
第一勝多聞, 其名舍利弗, 見比丘庠序, 閑雅靜諸根。
길에서 주춤한 채 그가 오길 기다려 손을 들어 청하여 물었다. “젊은이로서 조용한 그 태도 내 일찍 보지 못했었네.
躕路而待至, 擧手請問言, 年少靜儀容, 我所未曾見。
어떤 훌륭하고 묘한 법 얻었으며 어떤 스승을 숭배하고 섬겼는가. 그 스승은 어떤 말로 가르쳤는가. 말하여 내 의심 풀어주기 바라네.”
得何勝妙法, 爲宗事何師, 師教何所說, 願告決所疑。
비구는 그의 물음 기뻐하면서 온화한 얼굴로 공손히 대답했네. “일체지(一切智)를 두루 갖추고 훌륭한 감자족(甘蔗族)의 출생으로서
比丘欣彼問, 和顏遜辭答, 一切智具足, 甘蔗勝族生。
하늘ㆍ사람 중에서 가장 높은 이 그가 곧 우리의 큰 스승이시네. 나는 나이 아직 어리고 또 공부한 날도 얼마 되지 못하네.
天人中最尊, 是則我大師, 我年旣幼稚, 學日又初淺。
어찌 우리 큰 스승의 깊고 묘한 이치를 펼 수 있으리. 그러므로 이제 옅은 지혜로 스승님께서 가르치신 법 간략히 말하리라.
豈能宣大師, 甚深微妙義, 今當以淺智, 略說師教法。
‘일체 유위법[有法]이 생기는 것은 다 인연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네. 나고 멸하는 법은 다 없어지나니 도(道)를 말한 것은 방편이라네.”
一切有法生, 皆從因緣起, 生滅法悉滅, 說道爲方便。
이생(二生)인 우파제(優波提:舍利弗)는 듣자마자 그 말이 마음속에 스며 모든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청정한 법안이 생겼네.
二生憂波提, 隨聽心內融, 遠離諸塵垢, 淸淨法眼生。
“내 이전에 닦던 것은 결정코 인(因)과 인 없음을 아는 것으로 일체는 아무것도 짓는 바 없고 모두 자재천(自在天)을 말미암는다 했네.
先所脩決定, 知因及無因, 一切無所作, 皆由自在天。
그러나 이제 인연법을 듣고 나서 무아(無我)의 지혜를 열어 밝게 하였네. 이 세상 가르침은 모든 번뇌를 더해 능히 끝까지 없앨 수 없었는데今聞因緣法, 無我智開明, 增微諸煩惱, 無能究竟除。통합뷰어 오직 여래의 가르침만이 영원히 번뇌 다하여 남음이 없네. 내 것을 거두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나 그러나 능히 나를 떠나네.
唯有如來教, 永盡而無遺, 非攝受我所, 而能離吾我。
밝음은 해와 등불로 인해 일어나지만 누가 능히 그것에 광명이 없다 하리. 혹 연꽃 줄기를 끊을 때 가는 실은 오히려 이어지지만
明因日燈興, 孰能令無光, 如斷蓮花莖, 微絲猶連緜。
부처의 가르침은 번뇌를 끊기 마치 돌을 끊은 듯 남음이 없네.” 그는 비구 발에 공손히 예배한 뒤 물러나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갔네.
佛教除煩惱, 猶斷石無餘, 敬禮比丘足, 退辭而還家。
비구도 걸식을 마친 다음에 죽원으로 돌아갔었네. 사리불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얼굴빛 매우 온화하고 맑았네.
比丘乞食已, 亦還歸竹園, 舍利弗還家, 貌色甚和雅。
그의 좋은 벗 목련(目連)은 매우 친한 사이로 앎과 재주 비등했네. 그는 멀리서 사리불의 매우 기뻐하는 얼굴 모습 보고 말했네.
善友大目連, 同體聞才均, 遙見舍利弗, 顏儀甚熙怡。
“내 지금 자네를 보니 보통 때의 얼굴과는 다름이 있네. 본성(本性) 지극히 무뚝뚝한데 기뻐하는 모습 지금에야 보이네.
告言今見汝, 而有異常容, 素性至沈隱, 歡相見於今。
이런 모습 까닭 없지 않겠거니 반드시 감로법을 얻은 것이다.” “오늘 여래의 말씀을 듣고 실로 일찍이 없던 법 얻었다네.”
必得甘露法, 此相非無因, 答言如來告, 實獲未曾法。
그가 곧 청하자 그를 위해 설명하니 그는 그것을 듣고 마음 열리고 모든 티끌과 때도 또한 없어져 이내 바른 법안(法眼)이 생겼나니
卽請而爲說, 聞則心開解, 諸塵垢亦除, 隨生正法眼。
오랫동안 묘한 인과(因果) 심었었기에 마치 손바닥의 등불 보듯 하였네. 부처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 얻어 둘은 함께 부처님께 나아갔네.
久殖妙因果, 如觀掌中燈, 得佛不動信, 俱行詣佛所。
그 제자 무리들 250명의 사람도 함께하였네.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두 현인(賢人)을 보고 모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네.
與徒衆弟子, 二百五十人, 佛遙見二賢, 而告諸衆言。
“저기 오는 두 사람은 다 내 으뜸가는[上首] 제자이니라. 한 사람은 그 지혜 짝이 없을 것이요 또 한 사람은 신족(神足) 제일이니라.”
彼來者二人, 吾上首弟子, 一智慧無雙, 二神足第一。
깊고 깨끗한 범음(梵音)으로 말씀하셨다. “너희들 잘 왔구나. 여기는 맑고 시원한 법이 있나니 출가자의 맨 마지막 도(道)이니라.”
以深淨梵音, 卽命汝善來, 此有淸涼法, 出家究竟道。
손에는 셋으로 갈라진 지팡이 짚고 머리 틀고 물병 지닌 그들 잘 왔다는 부처님 소리 듣자 곧 변하여 사문(沙門) 되었다.
手執三掎杖, 縈髮持澡甁, 聞佛善來聲, 卽變成沙門。
두 스승과 그 제자들은 모두 다 비구의 모습 갖추자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는데
二師及弟子, 悉成比丘儀, 稽首世尊足, 卻坐於一面。
부처님께서 그들 위해 설법하시자 모두 다 아라한도(阿羅漢道) 얻었네. 그때 어떤 이생(二生)이 있었는데 가섭(迦葉)족의 밝은 등불로서 들은 것 많고 몸 모양 원만하며 많은 재물에 아내 또한 어질었으나
隨順爲說法, 皆得羅漢道, 爾時有二生, 迦葉族明燈, 多聞身相具, 財盈妻極賢。
마음속에 해탈도를 구하였기 때문에 그 모든 것 버리고 집을 나와 다자탑(多子塔)으로 접어드는 길에 갑자기 저 석가문(釋迦文)을 만났네.
厭捨而出家, 志求解脫道, 路由多子塔, 忽遇釋迦文。
빛나는 얼굴 환하게 비춤이 마치 하늘 사당[祠天]의 깃대 같았네. 그는 엄숙하게 온몸으로 공경하고 머리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며 말했네.
光儀顯明耀, 猶若祠天幢, 肅然擧身敬, 稽首頂禮足。
“존귀한 분은 나의 큰 스승이시며 나는 곧 존귀한 분의 제자입니다. 오랫동안 어리석은 어둠을 쌓아왔으니 원컨대 저를 위해 등불 되어 주소서.”
尊爲我大師, 我是尊弟子, 久遠積癡冥, 願爲作燈明。
부처님께서는 저 두 생(生)이 기쁜 마음으로 해탈을 숭상함 아시고 청정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소리로 잘 왔다고 그에게 말씀하셨네.
佛知彼二生, 心樂崇解脫, 淸淨軟和音, 命之以善來。
그는 이 말을 듣자 마음이 태평하고 몸과 정신의 피로가 확 풀리며 마음은 훌륭한 해탈(解脫)의 경지에 깃들어 지극히 고요하여 모든 티끌 여의었네.
聞命心融泰, 形神疲勞息, 心拪勝解脫, 寂靜離諸塵。
부처님께서는 그가 호응하는 바를 따라 그를 위해 간략히 해설하시자 그는 모든 깊은 법 한꺼번에 이해하고 네 가지 걸림 없는 변재 이루어 큰 덕이 사방에 널리 퍼졌으므로 대가섭(大迦葉)이라 이름하였네.
大悲隨所應, 略爲其解說, 領解諸深法, 成四無㝵辯, 大德普流聞, 故名大迦葉。
‘본래는 몸과 나[我]는 다르다 보고 혹은 나를 곧 몸이라 보며 나도 있고 내 것[我所]도 있다고 보았지만 지금은 이 견해 아주 없어졌다네. 이 몸은 오직 온갖 괴로움 덩어리 괴로움을 떠나면 남음 없다고 보네.
本見身我異, 或見我卽身, 有我及我所, 斯見已永除, 唯見衆苦聚, 離苦則無餘。
계(戒)를 가지고 고행 닦으며 인(因)이 아닌 것을 인이라 보았지만 평등하게 그 괴로움의 성질을 보아 저 다르게 쌓인 마음 영원히 없앴네.
持戒修苦行, 非因而見因, 平等見苦性, 永無他聚心。
혹은 있다고 보고 혹은 없다고 보면 이 두 견해는 망설임을 내지만 평등하게 참 진리 깨달으면 결정코 다시는 의심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