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왕(甘蔗王)의 후손이며 석가(釋迦) 종족의 가장 훌륭한 왕으로서 깨끗한 재물과 순수한 덕 갖추었으니 그러므로 정반(凈飯)이라 이름하였네. 甘蔗之苗裔, 釋迦無勝王, 淨財德純備, 故名曰淨飯。
모든 중생들 즐겁게 우러러 바라봄이 마치 초생달을 대하듯 했네. 왕은 천제석(天帝釋) 같고 부인은 제석의 부인 사지(舍脂) 같았네. 群生樂瞻仰, 猶如初生月, 王如天帝釋, 夫人猶舍脂。
뜻을 잡아 지님은 땅처럼 안온하고 마음 깨끗함 연꽃 같았네 임시로 이름하여 마야(摩耶)라 했나니 그는 실로 세상에 견줄 이 없네. 執志安如地, 心淨若蓮花, 假譬名摩耶, 其實無倫比。
저 코끼리[象]에게 신(神)으로 하강하여 태(胎) 속에 들자 어머니는 온갖 걱정 시름 모두 여의고 허깨비 같은 거짓 마음 내지 않았네. 於彼象天后, 降神而處胎, 母悉離憂患, 不生幻僞心。
시끄러운 세속 일 싫어하고 미워하였고 텅 비고 한적한 숲에 살기 좋아했네. 저 람비니(藍毘尼)의 아름다운 동산 샘물 흐르고 꽃과 열매 무성하네. 厭惡彼諠俗, 樂處空閑林, 藍毘尼勝園, 流泉花果茂。 통합뷰어
고요하고 고요하여 선정[禪思] 들기 알맞기에 거기서 노닐기를 왕에게 청하시니 왕은 그 마음 알아차리고 기특한 생각이라 여기셨네. 寂靜順禪思, 啓王請遊彼, 王知其志願, 而生奇特想。
안팎의 권속들에 분부하시어 동산 숲으로 함께 나가게 하니 그때 왕후이신 마야(摩耶) 부인은 아기 낳을 때가 되었음을 스스로 아셨네. 勅內外眷屬, 俱詣彼園林, 爾時摩耶后, 自知產時至。
편안하고 좋은 침상에 눕자 백천 채녀(婇女)들 왕후를 모셨다. 마침 때는 4월 8일이라서 맑고 온화한 기운 고르고 알맞았다네. 偃寢安勝牀, 百千婇女侍, 時四月八日, 淸和氣調適。
재계(齋戒)하고 깨끗한 덕 닦았기에 보살은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셨네. 큰 자비로 온 세상 건지시려고 어머니를 고생스럽게 하지 않으셨네. 齋戒修淨德, 菩薩右脅生, 大悲救世閒, 不令母苦惱。
우류왕(優留王)은 다리로 태어났고 비투왕(卑偸王)은 손으로 태어났으며 만타왕(曼陀王)은 정수리로 태어났고 가차왕(伽叉王)은 겨드랑이로 태어난 것처럼 優留王股生, 卑偸王手生, 曼陁王頂生, 伽叉王腋生。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하셨네. 차츰차츰 태에서 나오시자 그 광명 두루 환하게 비추었다네. 菩薩亦如是, 誕從右脅生, 漸漸從胎出, 光明普照耀。
마치 허공에서 떨어진 듯 자궁문을 통해 탄생하지 않으셨네. 한량없는 겁(劫) 동안 덕을 닦으시어 나면서부터 죽지 않는 법 저절로 아셨네. 如從虛空墮, 不由於生門, 修德無量劫, 自知生不死。
조용하고 편안하여 허둥거리지 않고 밝게 드러난 모습 미묘하고 단정했네. 환하게 태(胎)에서 나타나는 모습 마치 처음 떠오르는 태양 같았네. 安諦不傾動, 明顯妙端嚴, 晃然後胎現, 猶如日初昇。
살펴보면 지극히 밝고 빛나지만 바라보는 눈동자에 해롭지 않고 아무리 보아도 눈부시지 않아 마치 공중의 달을 보는 것 같았네. 觀察極明耀, 而不害眼根, 縱視而不耀, 如觀空中月。
자기 몸의 광명 밝게 비춤이 햇빛이 등불 빛을 무색케 하듯 보살의 황금빛 몸의 광명이 두루 비춤도 그러하였네. 自身光照耀, 如日奪燈明, 菩薩眞金身, 普照亦如是。
바르고 참된 마음 흐트러지지 않고 편안하고 조용히 일곱 걸음 걸을 때 발바닥이 편편한 발꿈치는 영롱하게 빛남이 칠성(七星) 같았네. 正眞心不亂, 安庠行七步, 足下安平趾, 炳徹猶七星。
짐승의 왕 사자 같은 걸음으로 사방을 두루 관찰하면서 진실한 이치 환히 깨달았기에 이와 같은 말씀 할 수 있었네. 獸王師子步, 觀察於四方, 通達眞實義, 堪能如是說。
“이 생(生)은 부처 되기 위한 생으로서 최후의 마지막 생(生)이 되리라. 나는 오직 이 한 생에 기어코 모든 중생 제도하리라.” 此生爲佛生, 則爲後邊生, 我唯此一生, 當度於一切。
그때 마침 허공에서 한 줄기는 따뜻하고 한 줄기는 시원한 두 줄기 깨끗한 물 흘러 내려 정수리에 쏟아져 몸을 즐겁게 하였네. 應時虛空中, 淨水雙流下, 一溫一淸涼, 灌頂令身樂。
보배 궁전에 편안히 들어 유리 평상에 누워 계시자 천왕(天王)이 금꽃[金華] 같은 손으로 평상의 네 발을 떠받들었네. 安處寶宮殿, 臥於琉璃牀, 天王金華手, 奉持牀四足。
모든 하늘들 허공에서 보배 일산을 들어 모시고 그 위신(威神)을 찬탄하면서 불도(佛道) 성취하길 권청하였네. 諸天於空中, 執持寶蓋侍, 承威神讚嘆, 勸發成佛道。
모든 용왕(龍王)들 기뻐하면서 뛰어난 그 법을 간절히 우러렀네. 그들은 과거에도 부처님 받들었는데 지금 또 이 보살을 만나게 되었네. 諸龍王歡喜, 渴仰殊勝法, 曾奉過去佛, 今得値菩薩。 통합뷰어
만다라(曼陀羅)꽃을 뿌려대면서 오롯한 마음으로 즐겁게 공양했네. 여래가 이 세상에 나타나시자 정거천(淨居天)도 또한 기뻐하였네. 散曼陁羅花, 專心樂供養, 如來出興世, 淨居天歡喜。
애욕(愛欲)의 기쁨 이미 없건만 법을 위해 기뻐하고 좋아했으니 괴로움 바다에 빠진 중생들 해탈케 하기 위함이었네. 已除愛欲歡, 爲法而欣悅, 衆生沒苦海, 令得解脫故。
저 수미보산왕(須彌寶山王)이 이 대지를 굳게 지키고 있다가 보살이 이 세상에 나타나시자 그 공덕(功德)의 바람에 날리게 되어 온 대지가 울리고 흔들림이 마치 풍랑이 뱃전을 두드리듯 하였네. 須彌寶山王, 堅持此大地, 菩薩出興世, 功德風所飄。 普皆大震動, 如風鼓浪舟,
보드라운 가루 전단(栴檀)향 온갖 보배 연꽃들 바람 부는 대로 허공 따라 흐르고 어지럽게 휘날려 흘러내렸네. 栴檀細末香, 衆寶蓮花藏, 風吹隨空流, 繽紛而亂墜。
허공에선 하늘옷 내려와 몸에 닿자 오묘한 음악 생기고 해와 달은 평상시와 다름없건만 그 광명 밝기는 몇 배나 더하였네. 天衣從空下, 觸身生妙樂, 日月如常度, 光耀倍增明。
이 세계의 모든 불빛은 섶이 없어도 저절로 불타오르고 맑고 시원한 우물에선 깨끗한 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솟아올랐네. 世界諸火光, 無薪自炎熾, 淨水淸涼井, 前後自然生。
중궁(中宮)의 채녀(婇女)들은 이상히 여겨 일찍이 없던 일이라 찬탄하면서 다투어 달려가 마시고 목욕하자 모두 다 안락한 생각이 일어났다네. 中宮婇女衆, 怪歎未曾有, 競赴而飮浴, 皆起安樂想。
한량없는 하늘의 정령[部多天]들 법을 좋아해 다들 구름처럼 모여들어 람비니(藍毗尼) 동산의 나무숲 사이를 빼곡이 메워 섰네. 無量部多天, 樂法悉雲集, 於藍毘尼園, 遍滿林樹閒。
신기하고 특별한 온갖 묘한 꽃들은 제 철도 아니건만 활짝 피었고 흉악하고 사나운 중생 무리도 한꺼번에 자애로운 마음을 내었네. 奇特衆妙花, 非時而敷榮, 凶暴衆生類, 一時生慈心。
이 세상의 모든 질병(疾病)들 고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지고 어지럽게 울부짖던 날짐승과 길짐승들 잠자코 조용해져 아무 소리 없었네. 世閒諸疾病, 不療自然除, 亂鳴諸禽獸, 恬默寂無聲。
온갖 개울물은 모두 흐름을 멎고 흐린 물은 다 맑아졌으며 하늘에는 구름의 가리움 없고 하늘북[天鼓]은 저절로 울렸다네. 萬川皆停流, 濁水悉澄淸, 空中無雲翳, 天鼓自然鳴。
일체의 모든 세간들 모두 다 안온해지고 즐거움 얻었는데 마치 황폐하고 어려운 처지의 나라가 홀연히 현명한 임금을 만난 듯하였네. 一切諸世閒, 悉得安隱樂, 猶如荒難國, 忽得賢明主。
보살이 이 세상에 나오신 까닭은 온갖 고통에서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이니, 오직 저 악마의 하늘왕[魔天王]만 부들부들 떨면서 매우 근심하였네. 菩薩所以生, 爲濟世衆苦, 唯彼魔天王, 震動大憂惱。
부왕(父王)은 태어난 아드님을 보고 일찍이 없었던 기이하고 특별한 일이라 본래 성품은 평안하고 신중했으나 너무 놀라 보통 때의 얼굴 바뀌었네. 父王見生子, 奇特未曾有, 素性雖安重, 驚駭改常容。
두 숨결 가슴에 번갈아 일어나고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두려웠다네. 부인은 그 아드님이 평범한 방법으로 태어나지 않음을 알아차렸네. 二息交胸起, 一喜復一懼, 夫人見其子, 不由常道生。
여인의 성품에 겁 많고 나약하여 얼음이나 숯불을 품은 듯 두려워져 좋고 나쁜 얼굴상을 분별하지 못하고 도리어 근심하고 무서워하였네. 女人性怯弱, 怵惕懷冰炭, 不別吉凶相, 反更生憂怖。
오래 보살피던 여러 유모들 서로들 어지러이 신명(神明)께 기도하고 ‘원컨대 우리 태자를 편안하게 해주소서.’ 제각기 늘 섬기던 신을 청하였네. 長宿諸母人, 互亂祈神明, 各請常所事, 願令太子安。
그때 그 숲 속에는 관상을 잘 보는 바라문(婆羅門)이 있었는데 위의(威儀)와 많은 지식 갖추었고 훌륭한 말솜씨에 높은 명성 자자했다네. 時彼林中有, 知相婆羅門, 威儀具多聞, 才辯高名稱。
그는 이 태자의 상을 보고는 일찍 없었던 일이라 기뻐 뛰다가 놀라고 두려워하는 왕의 마음을 알고 진실한 내용을 왕에게 아뢰었다네. 見相心歡喜, 踊躍未曾有, 知王心驚怖, 白王以眞實。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특별하고 훌륭한 아들을 구하는데 왕이시여 태자는 뚜렷한 보름달과 같으니 마땅히 크게 기뻐하셔야 합니다. 人生於世閒, 唯求殊勝子, 王今如滿月, 應生大歡喜。
지금 나으신 특별하고 훌륭한 이 아드님은 반드시 종족(宗族)을 드러내 빛내리니 마음을 편히 하여 스스로 기뻐해 경하하고 아무런 의심이나 염려치 마십시옵소서. 今生奇特子, 必光顯宗族, 安心自欣慶, 莫生餘疑慮。
신령스런 상서가 이 나라에 모여 지금부터 갈수록 흥하고 성하리니 지금 나으신 이 특별하고 훌륭한 아들 반드시 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靈祥集家國, 從今轉休盛, 所生殊勝子, 必爲世閒救。
생각건대 이 상사(上士)의 몸은 황금빛 오묘한 광명이 있으니 이와 같이 특별하고 훌륭한 상(相)은 틀림없이 등정각(等正覺) 이루오리다. 惟此上士身, 金色妙光明, 如是殊勝相, 必成等正覺。
만일 세상의 즐거움 익히면 반드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드넓은 이 대지의 주인으로서 바른 법으로 강건히 다스릴 것입니다. 若習樂世閒, 必作轉輪王, 普爲大地主, 勇猛正法治。
4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어 모든 왕들을 통솔하고 제어함이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광명 중에서 햇빛이 가장 으뜸인 것 같을 것이오. 王領四天下, 統御一切王, 猶如世光明, 日光爲最勝。
또한 이 분이 만일 산림(山林)에 머문다면 오롯한 마음으로 해탈(解脫) 구하고 진실한 지혜를 성취하여 이 세상을 널리 비출 것이오. 若處於山林, 專心求解脫, 成就實智慧, 普照於世閒。
비유하면 수미산(須彌山)은 모든 산 가운데 왕이듯이 온갖 보배 중엔 황금이 제일이듯이 숱한 개울 중엔 바다가 제일이듯이 譬如須彌山, 普爲諸山王, 衆寶金爲最, 衆流海爲最。
모든 별 중엔 달이 제일이듯이 모든 광명 중엔 해가 제일이듯이 여래(如來)가 세상에 존재하시면 모든 사람 중에 제일이 될 것입니다. 諸宿月爲最, 諸明日爲最, 如來處世閒, 兩足中爲最。
길고도 넓은 청정한 눈 아래위로 깜빡일 땐 긴 눈썹 드러나며 바라보는 눈동자는 검푸른 빛으로서 밝고도 빛남이 반달 모양 같으니 이 상(相)을 어떻게 평등하고 특별하게 뛰어난 눈이 아니라 하리.” 淨目脩且廣, 上下瞬長睫, 瞪矚紺靑色, 明煥半月形。 此相云何非, 平等殊勝目,
그때 왕이 이생(二生)에게 말하였다. “만약 그대 말한 것과 같다면 이와 같이 기이하고 특별한 상은 어떠한 인연 담겨 있기에 선왕 때에는 감응하지 않다가 내 대에 이르러 나타났는가?” 時王告二生, 若如汝所說。 如此奇特相, 以何因緣故, 不應於先王, 乃現於我世,
바라문은 왕에게 아뢰었다. “부디 그런 말씀하지 마소서. 많은 지식과 밝은 지혜 명칭(名稱)과 그리고 갖가지 사업 등 이와 같은 네 가지 일들은 선후(先後)를 따져서 감응하는 것 아닙니다. 婆羅門白王, 不應如是說, 多聞與智慧, 名稱及事業, 如是四事者, 不應顧先後。
사물이 생겨나는 이치는 제각기 인연 따라 일어납니다. 이제 모든 비유를 들어 설명하리니 왕께서는 우선 자세히 들어 보소서. 物性之所生, 各從因緣起, 今當說諸譬, 王今且諦聽。
비구(毘求)와 앙기라(央耆羅) 이 두 선인(仙人) 종족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제각기 뛰어난 아들을 낳았소. 毘求央耆羅, 此二仙人族, 經歷久遠世, 各生殊異子。
하나는 비리하발저(毘利訶鉢低)이고 또 다른 사람은 숙가라(儵迦羅)였소. 그들이 제왕론(帝王論)을 지었지만 그들은 조상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오. 毘利訶鉢低, 及與儵迦羅, 能造帝王論, 不從先族來。
살라살(薩羅薩) 선인은 오랫동안 경론(經論)을 단절했었지만 그가 낳은 바라바(婆羅婆)는 그 뒤를 이어 경론을 밝혔으니 현재 지견(知見)이 태어난 것은 반드시 그 조상 때문이 아니라오. 薩羅薩仙人, 經論久斷絕, 而生婆羅婆, 續復明經論, 現在知見生, 不必由先胄。
비야사(毘耶娑) 선인은 온갖 경론을 많이 지었지만 그의 후손 발미(跋彌)는 게송(偈頌)의 장구(章句)를 널리 모았소. 毘耶娑仙人, 多造諸經論, 末後胤跋彌, 廣集偈章句。
아저리(阿低利) 선인은 의서(醫書)를 해득하지 못했지만 그의 후손 아저리(阿低離)는 온갖 병을 잘 치료했다오. 阿低利仙人, 不解醫方論, 後生阿低離, 善能治百病。
이생(二生) 구시(駒尸) 선인은 외도의 논서(論書) 익히지 않았지만 그의 후손 가제나왕(伽提那王)은 외도의 법을 모두 알았소. 二生駒尸仙, 不閑外道論, 後伽提那王, 悉解外道法。
감자왕(甘蔗王)의 시조는 바다의 조수(潮水)를 막지 못했지만 사가라왕(娑伽羅王)에 이르러서는 천 명의 왕자를 낳아 길렀소. 甘蔗王始族, 不能制海潮, 至娑伽羅王, 生育千王子。
큰 바다 조수까지 죄다 막아 정해놓은 경계를 넘지 못하게 했소. 사나구(闍那駒) 선인은 스승 없이 선도(禪道)를 터득했다오. 能制大海潮, 使不越常限, 闍那駒仙人, 無師得禪道。
명예와 칭송을 얻는 것이 다 제 힘에서 생기는 것이니 선조는 훌륭한데 후손이 못난 경우도 있고 후손은 훌륭한데 선조가 못난 경우도 있다오. 凡得名稱者, 皆生於自力, 或先勝後劣, 或先劣後勝。
모든 제왕(帝王)이나 모든 신선들 반드시 그 조상을 이어받지는 않는다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그 선후를 돌아보고 감응하는 것 아닙니다. 帝王諸神仙, 不必承本族, 是故諸世閒, 不應顧先後。
대왕이시여, 이제 이와 같나니 마땅히 기쁜 마음 내소서. 기쁜 마음을 내신다면 영원히 의혹을 여의게 될 것입니다.” 大王今如是, 應生歡喜心, 以心歡喜故, 永離於疑惑。
왕이 선인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공양을 더하면서 말했네. “내 이제 훌륭한 아들을 낳았으니 전륜왕의 자리를 물려주리라. 王聞仙人說, 歡喜增供養, 我今生勝子, 當紹轉輪位。
내 나이 어느새 늙어버렸으니 나는 집을 나가 범행(梵行)을 닦으라. 그리하여 성스런 왕자가 세상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는 일이 없게 하리라.” 我年已朽邁, 出家修梵行, 無令聖王子, 捨世遊山林。
마침 그때 그 근처 동산에는 아사타(阿私陀)라 이름하는 고행(苦行)을 실천하는 선인이 있었는데 관상 보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네. 時近處園中, 有苦行仙人, 名曰阿私陁, 善解於相法。
그는 왕궁의 문 앞에 와서 왕에게 말했다. “범천(梵天)이 응(應)한 상이며 고행으로 바른 법 닦기를 좋아할 상으로서 이 두 가지 상을 모두 나타낸다오.” 來詣王宮門, 王謂梵天應, 苦行樂正法, 此二相俱現。
범행의 상을 두루 갖추었으니 그때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곧 궁궐 안으로 맞아들여서 공경하고 또 공양을 베풀었다네. 梵行相具足, 時王大歡喜, 卽請入宮內, 恭敬設供養。
그가 궁(宮) 안으로 들어가서는 오직 왕자만 보는 것을 좋아할 뿐 아무리 아름다운 채녀들 있다 해도 텅 빈 숲에 머물 듯하였네. 將入內宮中, 唯樂見王子, 雖有婇女衆, 如在空閑林。 통합뷰어
올바른 법좌(法座)에 편안히 앉아 더욱 공경하여 받들어 섬기니 그 모습 마치 안저첩왕(安低牒王)이 바시타(波尸吒)를 섬기듯 하였네. 安處正法座, 加敬尊奉事, 如安低牒王, 奉事波尸咤。
그때 왕은 선인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서야 큰 이익을 얻었소. 큰 선인을 괴롭혀 수고롭게 하였더니 황송하게도 와서 나의 청을 들어주었소. 時王白仙人, 我今得大利, 勞屈大仙人, 辱來攝受我。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일 있으면 원컨대 그때그때 분부하시오.” 이렇게 권하여 청하기를 마치자 선인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네. 諸有所應爲, 唯願時教勅, 如是勸請已, 仙人大歡喜。
“훌륭하십니다. 상승왕(常勝王)으로서 온갖 덕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와서 구하기 좋아하는 자에게는 은혜 베풀고 바른 법 높이며 어질고 지혜로운 뛰어난 종성으로서 겸손하고 공손하며 잘 따라 순종했네. 善哉常勝王, 衆德悉皆備, 愛樂來求者, 惠施崇正法, 仁智殊勝族, 謙恭善隨順。
과거에 온갖 묘한 인연을 심어 훌륭한 그 열매 지금에야 나타났으니 지금 여기에 온 인연을 말하리니 왕께선 마땅히 내 말을 들어보소서. 宿殖衆妙因, 勝果現於今, 汝當聽我說, 今者來因緣。
나는 일도(日道:태양의 길)를 따라 오다가 공중에서 하늘의 말을 들었소. 지금 저 왕이 태자를 낳았는데 분명코 정각(正覺)의 도(道)를 이루리라고. 我從日道來, 聞空中天說, 言王生太子, 當成正覺道。
아울러 아까 상서로운 상을 보고 이제 일부러 여기에 이르렀나니 저 석가왕의 바른 법 깃대를 세우는 것 보고자 해서입니다.” 幷見先瑞相, 今故來到此, 欲觀釋迦王, 建立正法幢。
왕은 선인의 말을 듣고 결정코 의심의 그물을 없애버리려 태자를 데리고 나오도록 명하여 그 선인에게 상을 보였네. 王聞仙人說, 決定離疑網, 命持太子出, 以示於仙人。
선인이 태자의 상을 보았더니 발바닥엔 일천 개의 살 바퀴 있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엔 그물막이 있으며 눈썹 사이에는 흰 털이 감돌아 났네. 仙人觀太子, 足下千輻輪, 手足網縵指, 眉閒白毫跱。
양근(陽根)은 말[馬]처럼 감추어져 있으며 얼굴빛은 불빛처럼 빛났으니 도인은 일찍 없었던 일이란 생각 내어 눈물 흘리면서 크게 탄식하였네. 馬藏隱密相, 容色炎光明, 見生未曾想, 流淚長嘆息。 통합뷰어
왕은 그 선인이 우는 것 보고 아들 생각하는 마음에 전율(戰慄)하여 기운이 맺혀 가슴에 응어리지고 놀라고 두근거려 편안하지 못하였다네. 王見仙人泣, 念子心戰慄, 氣結盈心胸, 驚悸不自安。
얼떨결에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선인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선인에게 아뢰어 말하였다. “이 아이는 기이하고 특별하게 났고 不覺從坐起, 稽首仙人足, 而白仙人言, 此子生奇特。
얼굴도 지극히 단정하고 엄숙하여 하늘 사람이나 거의 다름이 없소. 사람 중에 제일이라 그대가 말해놓고 무슨 일로 근심하고 슬퍼하는가? 容貌極端嚴, 天人殆不異, 汝言人中上, 何故生憂悲。
혹 이 아이가 수명이 짧아 내가 근심하고 슬퍼할까 그러는 것 아닌가? 오랫동안 목마르다 감로(甘露) 얻었지만 다시 도로 그것을 잃지나 않을까 해서인가? 將非短壽子, 生我憂悲乎, 久渴得甘露, 而反復失耶。 통합뷰어
혹은 장차 재물 잃어 집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지나 않을까 해서인가? 만일 내게 훌륭한 아들이 있어 이 나라를 맡길 수만 있다면 將非失財寶, 喪家亡國乎, 若有勝子存, 國嗣有所寄。
나는 죽을 때에도 마음 기뻐서 안락하게 저 세상에 태어나리라. 비유하면 사람의 두 눈이 한 쪽은 감겨 있고 한 쪽은 뜬 듯 하리라. 我死時心悅, 安樂生他世, 猶如人兩目, 一眠而一覺。
가을 서리 내릴 때 꽃 피워 꽃을 피었으나 열매 없게 하지 말라. 세상 사람 친족들 중에 아들보다 더 깊은 사랑 없나니 마땅히 지금 미래를 예언하여 나의 근심 덜어 주소서.” 莫如秋霜花, 雖敷而無實, 人於親族中, 愛深無過子, 宜時爲記說, 令我得蘇息。
선인은 그의 부왕(父王)이 마음 속에 품은 큰 근심을 알아차리고 곧 그 대왕에게 말해 알렸다. “대왕이여, 너무 두려워하지 마소서. 아까 대왕께 이미 다 말씀드렸으니 부디 스스로 의심을 내지 마소서. 仙人知父王, 心懷大憂懼, 卽告言大王, 王今勿恐怖, 前已語大王, 愼勿自生疑。
지금의 상(相)도 전과 다름없나니 다시 다른 생각을 품을 것 없습니다. 그저 내 나이 늙은 것 생각하고 슬프고 애달퍼 울며 탄식할 뿐입니다. 今相猶如前, 不應懷異想, 自惟我年暮, 悲慨泣歎耳。
이제 내 목숨 끝나려 하는 즈음에 이 아드님 세상에 응(應)하여 나셨으나 다시 나지 않기 위해 세상에 나셨으니 이 분을 다시는 만나기 어려우리. 今我臨終時, 此子應世生, 爲盡生故生, 斯人難得遇。
거룩한 왕의 자리 던져 버리고 5욕(欲)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열심히 애써 고행 닦아서 진실한 이치를 깨달으신 뒤에는 當捨聖王位, 不著五欲境, 精勤修苦行, 開覺得眞實。
언제나 일체 중생을 위하여 어리석고 어두운 장애를 없애주고 이 세상을 영원히 환하게 밝히리니 지혜의 광명 태양 빛과 같으리. 常爲諸群生, 滅除癡冥障, 於世永熾燃, 智慧日光明。
중생이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 갖가지 병으로 물거품 삼고 쇠하고 늙음으로 큰 물살 삼으며 죽음으로 바다의 큰 물결 삼을 때 衆生沒苦海, 衆病爲聚沫, 衰老爲巨浪, 死爲海洪濤。
이 분은 가벼운 지혜의 배를 타고 온갖 흐름의 어려움을 건너리라. 지혜로 흐르는 물 거슬러 오르고 깨끗한 계(戒)로써 언덕을 삼으며 乘輕智慧舟, 渡此衆流難, 智慧泝流水, 淨戒爲傍岸。
삼매(三昧)는 청량(淸凉)한 못이 되고 정수(正受)는 온갖 기이한 새가 되리라. 이와 같이 매우 깊고도 넓은 바른 법의 큰 강물이 되리라. 三昧淸涼池, 正受衆奇鳥, 如此甚深廣, 正法之大河。
애욕에 목마른 모든 중생들 그것을 마심으로써 되살아나게 하리. 5욕의 경계에 물들어 집착하다가 온갖 괴로움에 핍박당하고 渴愛諸群生, 飮之以蘇息, 染著五欲境, 衆苦所驅迫。
나고 죽는 넓은 벌판 헤매면서 아득히 돌아갈 곳 알지 못하네. 보살이 이 세상에 나오신 까닭은 해탈의 길 터놓기 위해서라네. 迷生死曠野, 莫知所歸趣, 菩薩出世閒, 爲通解脫道。
이 세상 탐욕의 불길이 경계의 섶을 맹렬히 태울 때 대자비의 구름 일으켜 법비 내려 꺼지게 하리라. 世閒貪欲火, 境界薪熾燃, 興發大悲雲, 法雨雨令滅。
어리석음과 어둠은 두 겹 문이요 탐욕은 그 문의 자물쇠 되어 모든 중생들을 막아 가두지만 나고 죽음 초월하는 해탈의 문은 금강(金剛) 지혜가 못 빼는 도구 되어 은애와 애정의 화살촉을 뽑아낸다네. 癡闇門重扇, 貪欲爲關鑰, 閉塞諸群生, 出要解脫門, 金剛智慧鑷, 拔恩愛逆鑽。
어리석음의 그물에 스스로 묶여 곤궁하고 괴로워도 의지할 곳 없더니 법왕(法王)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능히 중생의 결박 풀어주시네. 愚癡網自纏, 窮苦無所依, 法王出世閒, 能解衆生縛。
왕이여, 부디 이 아드님 때문에 스스로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마시고 그보다는 저 중생들 욕심에 집착하여 바른 법 어김이나 근심하소서. 王莫以此子, 自生憂悲患, 當憂彼衆生, 著欲違正法。
저는 이제 늙음과 죽음에 시달려 성인의 공덕에서 멀어지고 말아 갖가지 선정(禪定)을 닦는다 해도 그 이익 얻지 못하리이다. 我今老死壞, 遠離聖功德, 雖得諸禪定, 而不獲其利。
현재 이 보살이 계신 곳에서 끝내 바른 법 듣지 못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 끝난 뒤에는 반드시 3난천(難天)에 태어날 것입니다.” 於此菩薩所, 竟不聞正法, 身壞命終後, 必生三難天。
왕과 모든 권속들 이 선인의 말을 듣고는 그 스스로의 근심 깨달았으니 그 때문에 두려움 모두 없어졌다네. “이 기이하고 특별한 아기 태어나 내 마음 매우 편안하게 되었다네. 王及諸眷屬, 聞彼仙人說, 知其自憂嘆, 恐怖悉以除, 生此奇特子, 我心得大安。
만일 그가 집을 떠나 세상 영화 버리고 선인(仙人)의 도(道)를 닦고 익힌다면 마침내 왕의 자리 이을 이 없어 다시 나로 하여금 언짢게 하리라.” 出家捨世榮, 修習仙人道, 遂不紹國位, 復令我不悅。
그러자 그때 그 선인은 왕을 향해 진실을 말하였다. “틀림없이 왕께서 걱정하는 것처럼 장차 정각도(正覺道)를 이룰 것입니다.” 爾時彼仙人, 向王眞實說, 必如王所慮, 當成正覺道。
선인은 왕의 권속들 가운데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 위로한 뒤에 스스로 자기의 신력(神力)으로써 허공을 날아 멀리 떠나 버렸다. 於王眷屬中, 安慰衆心已, 自以己神力, 騰虛而遠逝。
그때 백정왕(白淨王)은 아들의 기이하고 특별한 상호를 보고 또 이 아사타(阿私陀) 선인의 결정된 사실에 대한 말을 듣고는 爾時白淨王, 見子奇特相, 又聞阿私陁, 決定眞實說。
아들을 마음으로 공경하고 존중하며 보배처럼 보호하고 언제나 생각하여 천하에 큰 사면령을 내리고 감옥의 죄수들까지 모두 풀어 주었다네. 於子心敬重, 珍護兼常念, 大赦於天下, 牢獄悉解脫。
세상 사람들 아들 났을 때의 법을 따라 마땅히 취하고 버릴 일을 따랐다. 모든 경전(經典)의 방론(方論)에 의거하여 온갖 할 일을 모두 다했네. 世人生子法, 隨宜取捨事, 依諸經方論, 一切悉皆爲。
아들 낳은 지 만 열흘이 되면 안온하여 마음 이미 태평해지니 모든 천신(天神)께 모두 제사드리고 도(道) 있는 이에게 널리 보시한다네. 生子滿十日, 安隱心已泰, 普祠諸天神, 廣施於有道。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들은 주원(呪願)으로 길한 복 비네. 모든 신하들에게 은혜 베풀고 가난한 이들에게도 재물 주었네. 沙門婆羅門, 呪願祈吉福, 嚫施諸群臣, 及國中貧乏。
촌이나 도성의 채녀(婇女)들에게 소ㆍ말ㆍ코끼리ㆍ재물 따위를 저마다의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게 다 베풀어주었다네. 村城婇女衆, 牛馬象財錢, 各隨彼所須, 一切皆給與。
좋은 날짜를 점쳐 가려 아들을 데리고 본궁(本宮)으로 돌아갈 때 정반왕(淨飯王)ㆍ백반왕(白飯王)의 흰 코끼리와 7보(寶)로 장엄한 수레는 卜擇選良時, 遷子還本宮, 二飯白淨牙, 七寶莊嚴輿。
갖가지 빛깔의 구슬로 얽어 밝고 고와 지극히 찬란했네. 부인은 태자를 안고 두루 돌면서 천신께 예배하였네 雜色珠絞絡, 明焰極光澤, 夫人抱太子, 周帀禮天神。
그런 다음 보배 수레에 오르니 아릿다운 채녀들이 따라 모시고 왕은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모두 다 함께 그 뒤를 따랐네. 然後昇寶輿, 婇女衆隨侍, 王與諸臣民, 一切俱導從。
마치 저 제석천이 여러 하늘들에 둘러싸인 것 같았네. 또 저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이 갑자기 육면(六面)의 아들 낳으면 猶如天帝釋, 諸天衆圍遶, 如摩醯首羅, 忽生六面子。
갖가지 제구를 베풀어 공급하고 또 그를 위해 복을 청하는 것처럼 이제 이 왕도 태자를 낳고서 온갖 제구 베푸는 것 또한 그러했네. 設種種衆具, 供給及請福, 今王生太子, 設衆具亦然。
또 비사문(毘沙門) 천왕이 나라구바(那羅鳩婆)를 낳았을 때 저 모든 하늘 무리들 다 함께 매우 기뻐했는데 毘沙門天王, 生那羅鳩婆, 一切諸天衆, 皆悉大歡喜。
왕도 이제 태자를 낳자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의 온 나라 모든 백성들 자못 기뻐함이 그와 같았네. 王今生太子, 迦毘羅衛國, 一切諸人民, 歡喜亦如是。
제1 생품(生品)은 싯달타 태자의 출생을 기록하면서 그의 타고난 덕을 찬탄한다. 싯달타 태자는 석가족의 가장 우수한 왕인 정반왕(淨飯王)을 아버지로, 의지가 굳고 마음이 깨끗한 마야 부인을 어머니로 태어났다. 그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중생들이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고 온갖 욕심에서 벗어나 어두운 이 세상을 멀리하고 안온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2 처품(處品)은 화려했던 궁중 생활을 묘사한다. 싯달타 태자가 탄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 마야 부인이 죽자, 이모가 태자를 양육하였다. 자라서는 야쇼다라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다. 또 아버지 정반왕은 즐거운 생활을 하도록 궁전을 새로 지어 주기도 하였다.
제3 염환품(厭患品)은 거리에 나갔다가 늙은 사람, 병자, 시체 등을 만남으로써 인간 세상을 싫어하고 집을 떠나 수행하려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제4 이욕품(離欲品)은 여자에 대한 욕망을 떠났음을 말한다. 정반왕이 새로운 궁전을 마련하여 준 것은 애욕에 빠져서 쾌락을 즐기고 집을 떠나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태자는 늙음, 병, 죽음 등의 한계 상황을 목격하였으므로 그 같은 무상한 욕락에서 벗어나는 출가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5 출성품(出城品)은 출가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부왕은 "집을 떠나 도를 닦기에는 아직 이르다."라고 하면서 출가의 뜻을 포기하도록 만류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세상에서의 삶이 곧 불이 난 집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궁녀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시중을 드는 차닉(車匿)과 함께 몰래 궁을 빠져 나와 출가하였다.
제6 차닉환품(車匿還品)은 태자를 모시던 차닉이 홀로 왕궁으로 돌아간다. 태자는 차닉에게 스스로 가지고 있던 보배 구슬을 풀어 주면서 "왕에게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인정을 버리라고 말씀드려라. 나는 태어나고, 늙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 숲속에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이에 차닉은 태자의 옷을 바꾸어 입고 왕궁으로 돌아갔다.
불수행찬 卷2
제7 입고행림품(入苦行林品)은 태자가 숲속으로 들어가 고행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숲속의 고행자들이 닦는 고행은 속세에서 나지 않는 맑은 찬물을 마시기도 하며, 나무‧뿌리‧줄기‧잎‧꽃‧열매를 먹기도 하고, 사슴이 먹는 풀을 먹기도 해야 한다. 물 속에 있으면서 고기의 흉내도 내야 한다. 이러한 고행들을 통하여 인간 세상의 안락이나 죽은 다음에 하늘에 태어나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태자는 “고행으로 얻는 것이 인간의 안락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라 한다면 작은 괴로움은 면할 수 있으나 마침내는 더욱 큰 괴로움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비판하고 고행자들을 떠났다.
제8 합궁비우품(合宮悲愚品)은 태자가 출가한 뒤 온 왕궁이 슬픔에 잠겼음을 이렇게 말한다. “차닉과 백마가 절망 속에서, 통곡하며 돌아오는 모습 보고서, 흐느끼고 울부짖는 소리, 마치 부모 잃은 초상집 같다.”
제9 추구태자품(推求太子品)은 왕의 지시로 태자를 찾아나선 두 대신의 이야기다. 태자를 찾은 두 대신은 왕이 매우 슬퍼하고 괴로워한다고 말하면서 왕궁으로 돌아가자고 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태자는 “나를 왕으로 만들기 위하여 애쓰는 아버지의 사랑을 어기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것은 환자에게 맞지도 않는 약을 먹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차마 높은 곳의 어리석은 자리에 앉아 사랑하고 미워하는 속세의 일을 따라 갈 수 없다.”라고 거절하였다.
불수행찬 卷3
제10 병사왕예태자품(甁沙王詣太子品)은 석가족의 태자가 집을 떠났다는 소문을 듣고 병사왕 즉 빔비사라 왕이 태자를 찾아간다. 그 역시 자기 나라의 절반을 줄 용의가 있음을 말하면서 출가를 만류하고 있다. 태자의 출가에 대한 이 같은 만류는 “늙으면 그 기운 허하고 약하리니, 그때 가서 도를 닦으라.”라는 것이다. 이 같은 만류는 태자의 출가가 노년에 출가하는 브라만교의 출가와는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1 답병사왕품(答甁沙王品)은 병사왕의 권유에 대답하는 내용이다. “젊어서는 경솔하고 조급하므로 늙어서 도를 닦으라 하지만, 늙은 사람은 힘이 모자라 견디지 못하고, 뜻도 굳세지 못하여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대답한다. 태자를 설득하려던 병사왕은 오히려 태자의 논리에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제12 아라람울두람품(阿羅藍鬱頭藍品)에서는 아라람 즉 아라다와 울두람 즉 웃다카라는 두 선인(仙人)을 찾아가서 문답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찾아간 아라람과의 문답이 주된 것이며, 뒤에 찾아간 웃다카와의 문답은 간략하게 제시되어 있다. 아라람의 견해는 수론(數論) 학파가 정립한 전변설(轉變說)의 초기 형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싯달타 태자는 궁극적 자성이 있다면 그 역시 연기(緣起)의 이치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에서 아라다의 견해를 비판한다.
제13 파마품(破魔品)은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는 태자에게 악마 파순(波旬)이 독 화살, 갖가지 흉기로 무장한 악마의 무리, 여자들을 동원하여 방해하였으나 모두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제14 아유삼보리품(阿惟三菩提品)에서 아유삼보리는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는 의미이다. 태자는 악마를 항복받은 뒤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결과 마침내 12인연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제15 전법륜품(轉法輪品)은 최초의 설법을 담고 있다. 부처님은 바라나시로 가서 과거 함께 고행했던 교진여(憍陳如) 등 5비구에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양 극단을 떠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를 얻어야 한다고 설하였다.
불수행찬 卷4
제16 병사왕제제자품(甁沙王諸弟子品)은 병사왕과 여러 제자들을 교화한 일을 서술한다. 부처님은 장자의 아들 야사(耶舍)를 비롯한 54명을 교화하였다. 부처님은 이들을 각처로 보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게 하였다. 그런 뒤 스스로 병사왕을 찾아가서 모든 고통의 근원은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데 있으므로, 열반을 얻으려면 나와 내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설하셨다.
제17 대제자출가품(大弟子出家品)은 병사왕이 마련해 준 죽림 정사에서 지혜가 가장 뛰어난 제자 사리불(舍利弗),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제자 목련(目連), 검소한 생활에 철저하였던 가섭(迦葉) 등을 교화한 인연을 서술하였다.
제18 화급고독품(化給孤獨品)은 급고독 장자를 교화한 일을 서술한다. 죽림 정사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급고독 장자가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사위성(舍衛城)에 기원 정사를 세우겠다고 발원한다.
제19 부자상견품(父子相見品)은 부처님이 정반왕을 만난 일을 서술한다. 부처님이 애욕으로 인하여 생사의 길을 윤회함을 설하자 왕족 대신 귀족 출신의 여러 사람들이 다투어 집을 떠나 비구가 되었다.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도 그 후 집을 떠나 불도를 닦게 되었다.
제20 수기원정사품(受祇洹精舍品)은 급고독 장자가 세운 기원 정사를 헌납받고, 파사닉왕(波斯匿王)과 그 나라 사람들을 교화한 일을 서술한다.
제21 수재취상조복품(守財醉象調伏品)은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부처님을 해치기 위해서 술에 취한 코끼리를 내몰았으나 부처님의 설법으로 술에 취한 코끼리가 감복한 이야기이다.
불소행찬(佛所行鑽, Buddhacarita) 5권은 마명(馬鳴, Asvaghosa)이 지은 것을 북량(北涼)시대에 담무참(曇無讖, Dharmaksema)이 414년에서 426년 사이에 고장(姑藏)에서 번역하였다. 별칭으로 『불소행찬경』ㆍ『불소행찬전』이라고도 한다. 서기 1세기 경에 마명(馬鳴)이 지은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서사시이다. 현존하는 범본 『불소행찬』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처님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환국(還國)으로 결말짓고 있다.
2. 성립과 한역
저자 마명(馬鳴)은 심원한 사상을 가진 불교 사상가인 동시에, 재기(才氣)가 빛나는 천재적 시인이다. 그는 서기 1세기 후반부터 2세기 전반 무렵에 중인도 사위국(舍衛國) 바기다(婆枳多) 지방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바라문족의 출신으로서 바라문 교육을 받았고, 4베다(Veda)ㆍ6논(論)에 통달하였으며, 지혜는 깊고 식견은 높았으며, 말재주가 교묘하였다 한다.
그는 처음에는 유아사상(有我思想)을 주장하여 불교를 반대하였으나, 부나사(富那奢) 존자와 논쟁하다가 그에게 굴복하고 그의 제자가 되어 교화를 받고 불교에 귀의하여, 수도(修道)에 정진하는 동시에 교의의 그의 불교 사상은 대체로 소승의 일체유부(一切有部)에 속하여 있으므로 원시불교를 탈피하지는 못했지만 대중부(大衆部) 등의 진보 사상을 어느 정도 수용하였고, 그 문체와 내용을 보아 자유 사상을 가진 불교 시인으로 생각된다.
그의 저작으로 확실한 것은 이 『불소행찬』과 『손타라난타시(孫陀羅難陀詩)』이며, 다소 이론(異論)의 여지는 있으나,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ㆍ『금강침론(金剛針論)』ㆍ『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등도 그의 작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3. 주석서와 이역본
『불소행찬』은 불전 문학 중 백미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불전 중에서 비교적 완벽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불본행경(佛本行經), 보요경(普曜經) 등은 모두 불소행찬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된 것이다.
4. 구성과 내용
한역 『불소행찬』은 5권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문(譯文)은 아름다운 운문으로서 격조있고 장엄하며 그 말이 매우 아름답다.
현존하는 범본 『불소행찬』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14장 32송까지만 남아 있던 것에 14장 33송부터 17장까지는 후대에 부가하였다. 부처님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환국(還國)으로 결말짓고 있다.
그러나 한역(漢譯)과 서장역(西藏譯)은 모두 28장으로서 「생품(生品)」에서 시작하여 「분사리품(分舍利品)」으로 결말짓고 있다. 운문으로 이루어진 서사시이므로 번역본 또한 시로서 옮기고 있다.
제1 생품(生品)은 싯달타 태자의 출생을 기록하면서 그의 타고난 덕을 찬탄한다. 싯달타 태자는 석가족의 가장 우수한 왕인 정반왕(淨飯王)을 아버지로, 의지가 굳고 마음이 깨끗한 마야 부인을 어머니로 태어났다. 그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중생들이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고 온갖 욕심에서 벗어나 어두운 이 세상을 멀리하고 안온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2 처품(處品)은 화려했던 궁중 생활을 묘사한다. 싯달타 태자가 탄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 마야 부인이 죽자, 이모가 태자를 양육하였다. 자라서는 야쇼다라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다. 또 아버지 정반왕은 즐거운 생활을 하도록 궁전을 새로 지어 주기도 하였다.
제3 염환품(厭患品)은 거리에 나갔다가 늙은 사람, 병자, 시체 등을 만남으로써 인간 세상을 싫어하고 집을 떠나 수행하려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제4 이욕품(離欲品)은 여자에 대한 욕망을 떠났음을 말한다. 정반왕이 새로운 궁전을 마련하여 준 것은 애욕에 빠져서 쾌락을 즐기고 집을 떠나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태자는 늙음, 병, 죽음 등의 한계 상황을 목격하였으므로 그 같은 무상한 욕락에서 벗어나는 출가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5 출성품(出城品)은 출가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부왕은 "집을 떠나 도를 닦기에는 아직 이르다."라고 하면서 출가의 뜻을 포기하도록 만류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세상에서의 삶이 곧 불이 난 집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궁녀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시중을 드는 차닉(車匿)과 함께 몰래 궁을 빠져 나와 출가하였다.
제6 차닉환품(車匿還品)은 태자를 모시던 차닉이 홀로 왕궁으로 돌아간다. 태자는 차닉에게 스스로 가지고 있던 보배 구슬을 풀어 주면서 "왕에게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인정을 버리라고 말씀드려라. 나는 태어나고, 늙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 숲속에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이에 차닉은 태자의 옷을 바꾸어 입고 왕궁으로 돌아갔다.
제7 입고행림품(入苦行林品)은 태자가 숲속으로 들어가 고행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숲속의 고행자들이 닦는 고행은 속세에서 나지 않는 맑은 찬물을 마시기도 하며, 나무‧뿌리‧줄기‧잎‧꽃‧열매를 먹기도 하고, 사슴이 먹는 풀을 먹기도 해야 한다. 물 속에 있으면서 고기의 흉내도 내야 한다. 이러한 고행들을 통하여 인간 세상의 안락이나 죽은 다음에 하늘에 태어나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태자는 “고행으로 얻는 것이 인간의 안락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라 한다면 작은 괴로움은 면할 수 있으나 마침내는 더욱 큰 괴로움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비판하고 고행자들을 떠났다.
제8 합궁비우품(合宮悲愚品)은 태자가 출가한 뒤 온 왕궁이 슬픔에 잠겼음을 이렇게 말한다. “차닉과 백마가 절망 속에서, 통곡하며 돌아오는 모습 보고서, 흐느끼고 울부짖는 소리, 마치 부모 잃은 초상집 같다.”
제9 추구태자품(推求太子品)은 왕의 지시로 태자를 찾아나선 두 대신의 이야기다. 태자를 찾은 두 대신은 왕이 매우 슬퍼하고 괴로워한다고 말하면서 왕궁으로 돌아가자고 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태자는 “나를 왕으로 만들기 위하여 애쓰는 아버지의 사랑을 어기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것은 환자에게 맞지도 않는 약을 먹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차마 높은 곳의 어리석은 자리에 앉아 사랑하고 미워하는 속세의 일을 따라 갈 수 없다.”라고 거절하였다.
제10 병사왕예태자품(甁沙王詣太子品)은 석가족의 태자가 집을 떠났다는 소문을 듣고 병사왕 즉 빔비사라 왕이 태자를 찾아간다. 그 역시 자기 나라의 절반을 줄 용의가 있음을 말하면서 출가를 만류하고 있다. 태자의 출가에 대한 이 같은 만류는 “늙으면 그 기운 허하고 약하리니, 그때 가서 도를 닦으라.”라는 것이다. 이 같은 만류는 태자의 출가가 노년에 출가하는 브라만교의 출가와는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1 답병사왕품(答甁沙王品)은 병사왕의 권유에 대답하는 내용이다. “젊어서는 경솔하고 조급하므로 늙어서 도를 닦으라 하지만, 늙은 사람은 힘이 모자라 견디지 못하고, 뜻도 굳세지 못하여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대답한다. 태자를 설득하려던 병사왕은 오히려 태자의 논리에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제12 아라람울두람품(阿羅藍鬱頭藍品)에서는 아라람 즉 아라다와 울두람 즉 웃다카라는 두 선인(仙人)을 찾아가서 문답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찾아간 아라람과의 문답이 주된 것이며, 뒤에 찾아간 웃다카와의 문답은 간략하게 제시되어 있다. 아라람의 견해는 수론(數論) 학파가 정립한 전변설(轉變說)의 초기 형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싯달타 태자는 궁극적 자성이 있다면 그 역시 연기(緣起)의 이치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에서 아라다의 견해를 비판한다.
제13 파마품(破魔品)은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는 태자에게 악마 파순(波旬)이 독 화살, 갖가지 흉기로 무장한 악마의 무리, 여자들을 동원하여 방해하였으나 모두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제14 아유삼보리품(阿惟三菩提品)에서 아유삼보리는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는 의미이다. 태자는 악마를 항복받은 뒤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결과 마침내 12인연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제15 전법륜품(轉法輪品)은 최초의 설법을 담고 있다. 부처님은 바라나시로 가서 과거 함께 고행했던 교진여(憍陳如) 등 5비구에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양 극단을 떠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를 얻어야 한다고 설하였다.
제16 병사왕제제자품(甁沙王諸弟子品)은 병사왕과 여러 제자들을 교화한 일을 서술한다. 부처님은 장자의 아들 야사(耶舍)를 비롯한 54명을 교화하였다. 부처님은 이들을 각처로 보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게 하였다. 그런 뒤 스스로 병사왕을 찾아가서 모든 고통의 근원은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데 있으므로, 열반을 얻으려면 나와 내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설하셨다.
제17 대제자출가품(大弟子出家品)은 병사왕이 마련해 준 죽림 정사에서 지혜가 가장 뛰어난 제자 사리불(舍利弗),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제자 목련(目連), 검소한 생활에 철저하였던 가섭(迦葉) 등을 교화한 인연을 서술하였다.
제18 화급고독품(化給孤獨品)은 급고독 장자를 교화한 일을 서술한다. 죽림 정사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급고독 장자가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사위성(舍衛城)에 기원 정사를 세우겠다고 발원한다.
제19 부자상견품(父子相見品)은 부처님이 정반왕을 만난 일을 서술한다. 부처님이 애욕으로 인하여 생사의 길을 윤회함을 설하자 왕족 대신 귀족 출신의 여러 사람들이 다투어 집을 떠나 비구가 되었다.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도 그 후 집을 떠나 불도를 닦게 되었다.
제20 수기원정사품(受祇洹精舍品)은 급고독 장자가 세운 기원 정사를 헌납받고, 파사닉왕(波斯匿王)과 그 나라 사람들을 교화한 일을 서술한다.
제21 수재취상조복품(守財醉象調伏品)은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부처님을 해치기 위해서 술에 취한 코끼리를 내몰았으나 부처님의 설법으로 술에 취한 코끼리가 감복한 이야기이다.
제23 신력주수품(神力住壽品)은 세상에서 할 일을 다한 부처님이 악마 파순과 3개월 뒤에 열반에 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신통력으로 목숨을 부지하였음을 말한다.
제24 이차사별품(離車辭別品)은 부처님은 열반에 들겠다는 말을 듣고 슬퍼하는 아난을 위로하고 이차(離車) 즉 릿차비족과 작별한 일을 서술한다. 이차족의 장자(長者)들은 부처님과의 작별을 몹시 슬퍼하며 세상의 일을 한탄하고 있다.
제25 열반품(涅槃品)은 부처님의 열반 이전의 여러 가지 일을 말하고 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위하여 비사리 즉 바이샬리를 떠난 일, 순다(純陀)의 마지막 공양, 아난이 부처님의 열반을 위하여 행한 여러 가지 일을 서술하였다.
제26 대반열반품(大般涅槃品)에서는 부처님의 열반을 기록한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라.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므로 방일(放逸)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설법하셨다.
제27 탄열반품(歎涅槃品)은 부처님의 열반을 맞은 제자들이 슬퍼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가섭과 아나율(阿那律)을 비롯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였다.
제28 분사리품(分舍利品)은 부처님을 화장한 뒤 사리를 서로 가지려는 왕들이 많아서 사리를 공평하게 8등분하였음을 서술하였다.
5. 가치
기존의 불교 작품은 대개 무미건조하고 기술(記述)이 산만하거나 졸렬하였다. 그러나 이 불소행찬에 이르러 비로소 불전문학사(佛傳文學史) 적으로 여러 인도 순수문학 작품들에 견줄 수 있는 걸작을 가지게 된 것이다. 또 체계 없이 단편적이고 부분적이었던 기존의 부처님 전기가 이 불소행찬에 이르러 어느 정도 정확한 부처님 일대기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와(Mahabharata)』와 『라미야나(Ramavana)』 등의 인도 문학과 아함경(阿含經) 이후에 육성된 불교사상, 특히 불타관(佛陀觀)이 인도 문화에 배양된 천재 마명의 용광로에 용해되어 창작된 것이, 『불소행찬』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숭고한 부처님의 인격과 언행, 심원한 불교사상과 인도 사상이 인도 문학의 수려한 수사(修辭)에 의하여 장렬하고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실로 『불소행찬』은 인도 문화의 다른 순문학 작품과 반짝이는 불교의 마니(摩尼) 중에서도 특히 그 광명이 찬연한 주옥이라 할 것이다.
불교의 교조(敎祖)인 부처님께서는 불교 이상(理想)인 보리(菩提)의 체득자(體得者)인 동시에 승단의 지도자로서 불고의 교리도 부처님의 인격과 깨달음을 그 기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얼마 동안은 체계를 갖춘 전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율장(律藏) 중 단편적 항목과 『장아함경(長阿含經)』의 「대본경」 정도만 산재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지 오랜 시일이 지나고 그 제자들도 세상을 뜨게 되자 부처님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풍조가 높아짐과 동시에 부처님에 대한 기억을 온전하게 갖추어 전하기 위한 전기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불교 성전(聖典)에 전해지는 전설에 자신의 상상력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불타관(佛陀觀)을 보탠 전기가 성립되었는데 현존하는 『본생담(本生譚)』 등의 많은 불전문학(佛傳文學)이 그것이다.
그 많은 불전 중에서 이 『불소행찬』은 기존의 자료에 충실하면서도 사실적 내용을 적절히 가미한 아름다운 서사시로서 부처님의 생애와 그 교의와 인격을 찬탄함으로서 사람들에게 인격적 감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석가 왕족의 계보(系譜)와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부처님의 입멸(入滅)에 이르기까지 장중한 내용을 기술하면서도 너무 과장되거나 조잡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계통적으로 너무 과장되거나 조잡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계통적으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때문에 부처님의 생애 속에 불교의 교의가 교묘하게 녹아 있고, 생전의 부처님을 만난 듯한 생생한 묘사로 부처님께서 걸으신 고뇌의 도정(道程)과 자각자(自覺者)로서의 일깨움이 다른 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부처님께서는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절실하게 느껴 다시는 윤회함이 없는 열반의 경지를 구하여 고행설(苦行說)과 수론(數論)의 해탈론의 배격하여 오직 중도(中道)에 의해 득도하신 분이다. 『불소행찬』 속에서는 부처님의 이러한 깨달음이 성제(聖諦)와 팔정도(八正道)ㆍ육바라밀(六波羅密) 등의 수도관(修道觀)으로 정리되어 있고 법신(法身)의 상주(常住)를 중심으로 한 불신관(佛身觀) 등이 총망라 되어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마치 불교요설(佛敎要設)이라 할 정도로 불교의 이해를 돕는 지침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문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점으로 볼 때 이것은 번역작품이라기 보다 하나의 독립된 문학작품으로도 여겨진다. 한역 작품은 대부분 축자역(逐字譯)을 하면서도 때로는 원문을 생략하거나 아주 삭제하기도 하였고 또는 내용을 늘이거나 보충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그 사상(思想)에 있어서도 범본에 없던 후대의 사상을 삽입한 듯한 곳이 적잖게 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문장이 간결하기는 하나 이로 인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최근 중앙 아시아에서 마명의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희곡 『사리불극(舍利弗劇)』외에 두 작품이 발견되었는데, 인도의 희곡 및 언어 발달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은 여러 보살에게 말했다. “여러 불자들이여, 이것은 미묘한 설법입니다. 왜냐하면 일체 여래, 응공, 정등각은, 교화해야 할 중생을 그 근기를 따라 설법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치한 중생들이 번뇌에 결박되어 ‘나’와 ‘내것’을 헤아리고 ‘나’라는 견해에 집착하며, 항 상 착각을 따라 그릇된 견해를 추종하며 그릇되게 허망함에 집착하며, 번뇌에 결박되어 생사의 세계에 윤회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멀리하나니, 이런 중생을 위해 여래, 응공, 등정각은 세상 에 출현하신 것이다.
불자들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한 번만이라도 성내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모든 악 중에서 그보 다 더한 악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로서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진리의 문에 드는 길을 방해하는 백천 가지 장애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백천 가지 장애란 무엇입니까. 이른 바 보리(菩提)를 보지 못하는 장애와 바른 진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 나쁜 갈래에 태어나 는 장애, 여덟 가지 어려움이 있는 곳에 태어나는 장애, 병이 많은 장애, 비방을 많이 듣는 장 애, 지혜가 적은 장애, 눈, 귀, 코, 혀, 몸, 뜻 등의 장애, 나쁜 지도자를 가까이 하는 장애, 나 쁜 무리를 가까이 하는 장애, 나쁜 사람을 가까이 하는 장애, 악인과 같이 사는 장애, 선량한 사 람과 함께 수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장애, 바른 견해를 멀리하는 장애 등을 받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보살행을 빨리 갖추려면 열 가지 바른 법을 닦아야 합니 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일체 중생들을 버리지 않고 모든 보살에 대해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며, 언제나 일체 불법을 비방하지 않고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서 다함없는 지혜를 얻으며, 보살이 행하는 바를 공경하고 함께 기뻐하며, 허공과 법계와 같은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진리를 분별하며, 부처님의 힘을 성취 하여 저 언덕에 이르고 보살의 일체 변재를 닦아 익혀 중생을 교화하되 싫증을 내지 않으며, 일 체 세계에서 태어남을 나타내 보이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와 같은 열 가지 바른 법을 실천하는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청정한 법을 거두어 지닙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매우 깊은 법을 배워서 끝까지 청정하고, 선지식을 친근함이 청정하며,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 을 보호함이 청정하고, 허공계를 다 분별함이 청정하며, 법계에 들어감이 청정하고, 지혜로 마음 의 작용을 아는 것이 청정하며, 보살의 선근을 청정하게 하고 마음이 항상 모든 겁에 집착하지 않음이 청정하며, 지혜로 삼세를 관찰함이 청정하고, 모든 부처님의 종성(種姓)을 성취함이 청정 한 것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와 같이 청정한 바른 법에 편히 머무르는 보살 마하살은 열 가지 바른 지혜를 완전히 갖춥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중생의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분별하는 지혜, 중생의 모든 업보를 분별하는 지혜, 일체 불법을 두루 비추는 지혜, 모든 불법에서 방편의 차례를 얻는 지혜, 일체 문자와 변론을 성취하 는 지혜, 중생들의 모든 언어를 잘 아는 지혜, 일체 세계에 몸을 나타내는 지혜, 자비의 빛으로 일체 중생을 두루 비추는 지혜, 일체 갈래에서 얻는 일체의 지혜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떻게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는 지혜를 갖춘 보살 마하살은 열 가지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무릅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일체 세계의 말과 말이 아닌 법을 아는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물고, 일체 중생을 바로 생각하는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물며, 허공계와 같은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물고, 법계의 무량 무변한 바른 마 음에 편히 머물며,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따르는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물고, 매우 깊은 선법과 무너지지 않는 법을 아는 바른 마음에 편히 머뭅니다. 또 일체 의혹을 없애는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물고, 삼세의 법을 평등하게 관찰하는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물며, 삼세 모든 부처님의 평등을 아는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물고, 모든 부처님의 평등을 아는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물고,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힘을 아는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무는 것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와 같이 열 가지 바른 마음에 편히 머무는 보살은 곧 모든 부처님의 미묘한 방 편법을 얻습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미묘한 방편으로 일체 부처님의 깊은 법을 두루 비추고, 미묘한 방편으로 모든 부처님의 매우 깊고 훌륭한 법을 내며, 미묘한 방편으로 일체 부처님의 장엄한 법을 분별해 연설하고, 미묘한 방편으로 일체 부처님의 평등한 법에 깊이 들어가며, 미묘한 방편으로 갖가지 모양의 일체 불법 을 분별하고, 미묘한 방편으로 깨뜨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에 들어가며, 미묘한 방편 으로 일체 부처님의 모든 장엄한 법에 들어가고, 미묘한 방편을 얻어 한 방편으로 일체의 불법에 들어가며, 미묘한 방편으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모든 방편법에 들어가고 미묘한 방편으로 일체 불 법에서 마음이 자재함을 얻고는 물러나지 않는 것 등입니다.
불자여, 이것이 열 가지 미묘한 방편법입니다. 불자들이여!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일심으로 공경하면서 이 법을 듣고 지녀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이 법을 들으면 조그만 방편으로도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빨리 얻어 삼 세 부처님과 평등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티끌 수 같은 세계의 수많은 보살마하살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어 이 렇게 말하였다. “장하십니다. 불자여, 당신은 이렇게 모든 부처님의 서원과 수기하는 깊은 법을 잘 말했습니 다. 우리는 다같이 보현이라는 이름으로서, 저 보승(普勝) 세계에 계시는 보당자재(普幢自在)부 처님의 처소로부터 여기 왔습니다.
저 다른 일체 세계에서도 이 법을 연설하는데 그 글귀와 뜻과 일체의 행이 모두 꼭 같아서 조 금도 가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 와서 당신을 위해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신력과 자기 선근의 힘으로 시방과 모든 법계를 관찰하고는, 모든 보살행과 부처님의 보리를 밝히기 위해, 큰 서원을 말하기 위해, 일체 세계의 모든 겁을 분 별하기 위해, 때를 따라 부처님이 보이는 것을 밝히기 위해, 중생들이 그 근기를 따라 모두 교화 를 받게 하기 위해, 부처님이 여러 곳에서 행하는 설법에 허망이 없음을 밝히기 위해, 선근을 심 은 대로 그 과보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보살의 청정한 법신을 밝히고자 미묘한 음성을 내어 중생들을 깨우쳐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제 32장 여래성기품(如來性起品)
그때 부처님께서 두 눈썹 사이의 백호상(白豪相)으로부터 큰 광명을 놓으시니, 이름을 명여래 법(明如來法)이라 하였다. 그 무량한 아승지 광명으로 권속을 삼아서 시방의 일체 세계를 두루 비추고, 열 바퀴를 돌며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재로움을 나타내어 무수한 보살 대중을 깨우쳤다. 그때 모든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일체 악마의 광명을 가리어 마치 먹덩이처럼 만들었 다. 그리고 모든 보리를 나타내고 모든 대중을 나타내며, 장엄을 성취하여 법계 허공계 등 일체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그리고 다시 일체 보살 대중을 돌고는 여래성기묘덕(如來性起妙德)보살의 정수리로 들어갔다. 그때 모든 대중의 마음은 매우 기쁘고 몸과 뜻은 부드러워져 이렇게 생각하였다. ‘참으로 신기하고 희유하다. 부처님께서 지금 큰 광명을 놓으시고 반드시 매우 깊고 바른 법을 연설하실 것이다.’
그때 여래성기묘덕보살은 보현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부처님이 나타내시는 큰 위력은 불가사의합니다. 이것은 무슨 상서로운 징조입니까.” 보현보살은 여래성기묘덕보살에게 답하였다.
“불자여, 내 생각과 내가 본 바로는 과거 여래께서 큰 광명을 놓으시면 반드시 여래의 성품이 일어나는 바른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부처님이 큰 광명을 놓아 자재한 힘을 나타 내시는 것도 반드시 여래의 성품이 일어나는 바른 법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때 여래성기묘덕보살이 여래성기정법이라는 이름을 듣자 일체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면 서 무량한 광명이 나타났다. 여래성기묘덕보살은 보현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어떻게 하면 보살마하살이 여래의 성품이 일어나는 바른 법을 알 수 있습니까?” 보현보살은 여래성기묘덕보살에게 답하였다. “불자여 여기 모인 무수한 보살마하살은 청정한 모든 업을 잘 배워 수행하고 생각하는 지혜로 모든 부처님의 장엄을 성취하여 저 언덕에 도달하였습니다. 또 부처님의 위의에 머무르고 부처님 의 행을 갖추었으며, 모든 부처님을 바로 생각하되 어지러운 일이 없으며, 큰 자비로서 일체 중 생을 관찰하고 궁극의 지혜로 보살의 묘한 신통을 분별하며, 부처님의 신력을 얻고 모든 부처님 의 공덕에 머뭅니다. 이와 같이 다함없는 공덕을 성취한 보살이 모두 여기 와 모였습니다.
그대는 과거에 한량없이 무수한 부처님을 공경, 공양하면서 온갖 선근을 심어 보살의 위없는 묘한 행을 성취하고, 모든 삼매문에서 자재를 얻어 모든 부처님의 비밀의 법에 깊이 들어갔으며, 또 모든 불법에서 온갖 의혹을 없앴으며, 일체 중생의 근기를 잘 알고 그들의 성질을 따라 설법 하며, 부처님의 지혜를 따라 일체 불법을 분별해 연설하면서 저 언덕에 이르러 이런 한량없는 공 덕을 성취했습니다.”
그때 다시 여래성기묘덕보살이 보현보살에게 물었다. “훌륭하십니다. 불자여! 부처님의 성품이 일어나는 바른 법을 설명해 주십시오.” 그때 보현보살은 여래성기묘덕보살과 여러 대중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여래의 성품이 일어나는 바른 법은 불가사의합니다. 왜냐하면 조그만 인연으로는 깨달음을 이루어 세상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무량 무수한 백천아승지의 열 가지 인연이 있어야 깨달음을 이루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무량한 보리심을 내어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과거의 무수한 겁 동안 온갖 선근을 닦아 그 마음이 정직하고 깊은 것이며, 셋째는 무량한 자비로 중생을 구호하는 것이 요, 넷째는 무량한 수행을 닦아 큰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무량한 공덕을 쌓 되 충분하다는 마음이 없는 것이요, 여섯째는 무량한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며 중생을 교화하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무량한 방편의 지혜를 내는 것이요, 여덟째는 무량한 모든 공덕의 창고를 성 취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무량한 장엄의 지혜를 내는 것이요, 열째는 무량한 모든 법의 진실한 뜻을 분별해 연설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와 같은 무량 무수한 백천 아승지의 열 가지 법문이라야 등정각을 이룬 부처로 서 세상에 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은 또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여래의 성품이 일어나는 바른 법 은 그 공덕이 무량하나니, 그것은 행이 무량하기 때문이요, 시방에 충만하여 오고 감이 없기 때 문이며, 나고 머물고 멸함을 떠나 행이 없기 때문이요, 마음과 의식을 떠나서 몸이 없기 때문이 며, 성품이 허공과 같아 다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또 일체 중생에게는 ‘나’도 ‘내것’도 없고 그 끝도 없기 때문이며, 일체의 세계가 다함도 변함 도 없기 때문이며, 미래 세상은 끊어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기 때문이며, 미래 세상은 끊어지 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기 때문이며, 여래의 지혜에 의심이 없고, 둘이 없어 평등하며 유위(有 爲)와 무위(無爲)를 관찰하기 때문이며, 정각을 이루어 중생을 이롭게 하고 본래 행을 회향하여 자재하고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보현보살은 거듭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불자들이여, 여래를 알거나 보는 보살은 한량없는 공덕을 원만히 성취합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한 법이나 한 행이나 한 몸이나 한 세계로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한량없는 법과 한량없는 행과 한량없는 몸과 한량없는 세계를 갖춰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교화하기 때문입 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저 허공은 빛이 있는 곳이나 빛이 없는 곳이나 어디고 다 갑니다. 그러 나 그것은 가는 것도 아니요,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허공은 형상이나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래의 법신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장소, 일 체의 세계, 일체의 법, 일체의 중생, 어디에도 가지만 가는 곳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래의 몸은 정해진 몸이 아니기 때문이며, 교화할 곳을 따라 그 몸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허공이 아주 넓어 일체 중생을 다 수용하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 는 것처럼, 여래의 법신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과 세간의 선근을 비추면서도 세간의 선근을 떠 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법신은 일체의 집착을 모두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자들이여, 해가 세상에 나오면 한량없는 일로 중생을 이롭게 합니다. 즉 어두움을 없애고 일체 산림과 약초와 온갖 곡식과 풀, 나무 등을 기르며, 냉기와 습기를 없 애고, 허공을 비춰서 허공의 중생을 이롭게 하며, 연못을 비춰서 연꽃을 피게 하고, 세상을 두루 비추어 일체 빛깔과 형상을 나타내며 세간의 일들을 다 성취시킵니다. 왜냐하면 해는 광명을 두 루 놓기 때문입니다.
여래의 지혜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일로 일체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합니다. 또한 불자들이여, 해가 뜨면 먼저 큰산을 비추고 다음에는 일체 대지를 두루 비춥니다. 그러나 햇빛은 ‘나는 먼저 큰산을 비추고 차례로 대지를 두루 비추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산과 대지에 높고 낮음이 있기 때문에 그 비침에 먼저와 나중이 있을 뿐입니다.
또한 불자들이여, 저 해가 세상에 나타나더라도 태어날 적부터 장님인 중생은 그것을 보지 못 합니다. 왜냐하면 육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장님이 비록 해를 보지는 못하더라도 그 햇빛의 이익은 받습니다. 즉 그 햇빛 때문에 음식과 살림살이와 도구를 얻고 냉기와 습기를 없애 어 몸을 가뿐하게 하며, 바람기, 한기, 담증, 종기 등의 병을 모두 치료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지혜의 해가 세상에 나오는 것도 그와 같아서 일체의 그릇된 견해, 무지, 그릇된 생 활 등으로 날 적부터 장님이 된 중생은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자들이여, 그 장님이 여래의 지혜 햇빛은 보지 못하더라도 여래의 지혜 햇빛의 이익 은 얻습니다. 즉 사대(四大)의 모든 고통을 없애어 몸이 안락하고 일체의 번뇌와 고통의 근본을 끊습니다.
또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열 가지 한량없는 음성을 알아야 합니다. 열 가지 한량없는 음성이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허공과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그것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요, 법계와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사무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며, 중생계와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일체 중생들을 모두 기쁘게 하기 때문이요, 행 업(行業)과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일체의 과보를 두루 설명하기 때문이며, 번뇌와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끝까지 적멸하기 때문이요, 갖가지 음성과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교화받을 중생들이 다 그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또 욕락과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모든 해탈을 다 분별해 말하기 때문이요, 삼세와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한계가 없기 때문이며, 지혜와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모든 법에 깊이 들어가기 때문이요, 물러나지 않는 부처님의 경계와 같이 한량없음을 알고 보나니 여래의 법계에 순응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여래의 음성에 이런 열 가지 한량없는 아승지가 있음을 알고 봅니 다.”
그때 여러 보살들은 보현보살에게 물었다. “이 경은 무엇이라 이름해야 하며 또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불자들이여, 이 경의 이름은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진리의 창고’라 합니다. 그리하여 이것은 세간의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며 오직 여래만이 알고 있는 큰 지혜 광명으로서 여래의 종성(種 姓)을 개발하고, 일체 보살의 공덕을 기르며, 일체 여래의 경계에 순응하며, 일체 중생들을 다 청정하게 하고 부처님의 궁극의 법을 분별해 연설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경전은 다만 불가사의한 교법을 의지하는 보살마하살로서 한결같이 보리를 구 하는 이를 위해 분별해 연설할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경은 보살 이외에는 어떤 중생의 손에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전륜성왕이 가진 칠보는 첫째 부인이 낳은 왕자로서 원만한 성왕의 상을 갖춘 이 이외에는 아무도 가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불자들이여, 만일 전륜성왕에게 온갖 덕을 갖춘 왕자가 없다면, 그 왕이 목숨을 마친 뒤에는 그 보배들은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경도 그와 같아서, 여래의 참 아들로서 모든 여래의 종성의 집에 태어나 여래 의 성과 모든 선근을 심은 이 이외에는 어떤 중생의 손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부처님의 참 아들이 없다면 이 경은 곧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성문이나 연각은 이 경의 이름조차도 듣지 못하거늘 하물며 받아 지니며 쓰거 나 해설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보살 마하살은 이것을 스스로 외워 지니고 베껴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이 경의 이름이라도 들으면 기뻐하여 공경하고 정성껏 받 들어 지닙니다. 왜냐하면 보살 마하살은 이 경을 믿고 좋아하기 때문에 방편을 조금만 쓰더라도 반드시 위없는 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비록 무량 억 겁 동안 육바라밀을 행하고 도품(道品)의 선근을 닦아 익히더라도, 이 경의 이름을 듣지 못했거나, 들었더라도 믿고 받들지 않으면, 그들은 거짓 보살 로서, 여래 종성의 가문에 태어난 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경의 이름을 듣고는 그것을 믿고 받들어 지니거나 또 따 르면, 그는 참 불자로서, 부처님의 가문에 태어난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일체 여래의 경계에 순응하고, 일체 보살의 바른 법을 갖추어, 일체 종지(一切種智) 의 경계에 편히 머물고, 일체 세간의 모든 법을 멀리 떠나며, 여래의 행을 내어 기르고, 일체 보 살의 모든 법의 저 언덕에 이르러, 여래의 자재한 바른 법에 대해 의혹 하는 마음이 없으며, 스 승 없는 자리에 끝까지 편히 머물고, 일체 여래의 경계에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로서 이 경의 법을 듣는 이는 평등한 뜻의 행과 무량한 마음을 내고, 일체 허망한 생각을 멀리 떠나 끝까지 정직한 마음으로 평등하고 청정하기를 닦아 익힘이 허공과 같으며, 일체 보살의 행업을 분별하고 관찰하여 법계와 평등하고, 일체 종지를 완전히 성취하여 세간의 더러움을 멀리 떠날 것입니다.
또 청정한 마음을 내어 일체 시방 세계에 가득 채우고 보살의 법문에 깊이 들어가 삼세의 부처 님들을 평등하게 관찰하며, 선근의 공덕과 지혜를 완전히 갖추어 이런 모든 법에 깊이 들어가되 들어감이 없고, 한 법도 생각하지 않고 두 법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무량한 모든 법을 평등하게 다 관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런 공덕을 성취하면 조그만 방편으로도 스승 없는 지혜를 얻을 것 입니다.”
제 33장 이세간품(離世間品)
그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 적멸도량의 보광법당에 계시면서 연화장의 보배 사자좌에 앉아 정 각을 이루셨다. 그리하여 둘이 아닌 생각과 모양이 없는 생각을 관찰하고 부처님의 자리에 머물면서 일체 부처 님과 평등하여, 걸림 없는 세계에 이르러서는 물러나지 않는 법과 걸림 없는 경계를 얻었다.
불가사의한 경계에 머물러 삼세를 멀리 떠나고 일체 세계에서 그 몸을 두루 나타내며, 일체의 법을 알고 일체의 묘한 행을 원만히 성취하여 의혹을 아주 떠났으며 허망한 몸도 떠나 버렸다. 또 부처님의 둘이 없는 법에 머물면서 끝내 저 언덕에 이르러 일체 보살들에게 한량없는 지혜 를 주고 여래의 깨뜨릴 수 없는 지혜의 법문을 완전히 갖추어 무량무변한 허공계 법계와 같은 여 래의 모든 자리를 성취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부처님이 차례로 주는 수기를 환히 알고 그 세계에서 정각을 이루어 깨끗한 법 륜을 굴렸다. 부처님이 없는 세계에서는 그 몸을 나타내되, 부처님이 되어 세상에 나와서는 무명 에 가린 이들을 모두 청정하게 하며, 일체 보살의 업장을 없애며, 걸림 없는 법계에 들어가 있었 다.
그때 보현보살은 불화엄(佛華嚴)이라는 삼매에 들었다. 그가 삼매에 들자 시방의 모든 세계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진동하면서 미묘한 소리를 내니 일 체 세계의 중생들이 모두 다 들었다. 진동이 그치자 보현보살은 삼매에서 일어났다. 그때 보현보살은 대중이 구름처럼 모인 것을 알고 보현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의지하는 과보라고 하고, 어떤 것을 기특한 생각이라 하며, 어떤 것을 행이라 하고, 어떤 것을 선지식이라하며, 어떤 것을 부지런히 닦는 정진이라 하고, 어 떤 것을 바른 희망이라 하며, 어떤 것을 중생을 성취한다 하고, 어떤 것을 계율이라 하며, 어떤 것을 수기법(授記法)을 아는 것이라 하고, 어떤 것은 듦[入]이라하며, 어떤 것은 여래에 든다 하 고 어떤 것은 중생의 마음에 들어가 활동한다 하며, 어떤 것을 세계에 든다 하고 어떤 것을 겁 (劫)에 든다 하며, 어떤 것은 삼계(三界)에 드는 것이라 합니까.
또 어떤 것을 근심을 떠나 의혹이 없는 것이라 하고 어떤 것을 무너지지 않는 지혜라 하며, 어 떤 것을 다라니라 하고 어떤 것을 부처를 분별해 말할 줄 아는 것이라 하며, 어떤 것을 보현의 마음을 내는 것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보현의 행원(行願)이라 하며, 어떤 것을 대비(大悲)라 하 고 어떤 것을 보리심을 내는 인연이라 하며, 어떤 것을 선지식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라 합니까? 훌륭하십니다. 불자여, 이제 이 물음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보현보살은 여러 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행이 있으니 그 열 가지 행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 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오로지 바른 법을 구하게 하는 행이요, 선근을 완전히 성숙하게 하는 행이며, 일체 계율을 잘 배우는 행이요, 일체 선근을 기르는 행이며, 일심으로 삼매를 닦는 행이요, 일체 지혜를 분별하는 행이며, 일체의 닦을 바를 닦아 익히는 행이요, 일체 세계를 장엄 하는 행이며, 선지식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행이요, 모든 여래를 공경하고 공양하는 행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행이니, 만일 보살 마하살이 이 행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행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선지식이 있으니,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 바 보리심에 편히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요, 선근을 닦아 익히게 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바라밀을 다 성취하게 하는 선지식이요, 일체 법을 분별해 해설하는 선지식이며, 일체 중생을 성 숙시켜 편히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요, 변재를 갖추어 묻는 대로 대답하게 하는 선지식이며, 생사 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요, 보살행을 행하되 싫증을 내지 않게 하는 선지식이며, 보현의 행에 편히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요, 모든 부처님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게 하는 선지식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선지식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부지런히 닦는 정진이 있으니, 그 열 가지란 무엇입 니까. 이른바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닦는 정진과, 일체 법에 들어가기 위해 부지런히 닦는 정진과, 일체 세계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닦는 정진과, 일체 보살의 배울 바를 성 취하기 위해 부지런히 닦는 정진과,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악을 멸하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닦는 정진과, 일체 지옥, 아귀, 축생, 염라왕 등의 고통을 멸하기 위해 부지런히 닦는 정진과, 일체 악마를 항복 받기 위해 부지런히 닦는 정진과, 일체 중생의 청정한 눈이 되기 위해 부지런 히 닦는 정진과, 일체의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기 위해 부지런히 닦는 정진과, 일체 여래를 모두 기쁘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닦는 정진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부지런히 닦는 정진이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정 진에 머물면 그는 곧 여래의 위없는 정진 바라밀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바른 희망이 있으니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자신도 보리심에 머물고 중생도 보리심에 머물게 하는 희망과, 자신도 성냄과 다툼을 떠나고 중생들도 그것을 떠나게 하는 희망과. 자신도 우치를 떠나 불법에 편히 머물고, 중생들도 우치를 떠나 불법에 편히 머물게 하는 희망입니다.
또한 자신도 선근을 닦아 오로지 바른 법을 구하고 중생들도 선근을 닦아 오로지 바른 법을 구 하게 하려는 희망과, 자신도 모든 바라밀을 성취하여 저 언덕에 이르고 중생들도 모든 바라밀을 성취하여 저 언덕에 이르게 하려는 희망과, 자신도 여래 종성의 가문에 나고 중생들도 여래 종성 의 가문에 나게 하려는 희망과, 자신도 일체 법을 관찰하여 다함이 없는 성품에 깊이 들어가고 중생도 일체 법을 관찰하여 다함이 없는 성품에 깊이 들어가게 하려는 희망입니다.
또한 자신도 일체 불법을 비방하지 않고 중생들도 일체 불법을 비방하지 않게 하려는 희망과, 자신도 일체의 지혜와 소원을 성취하고 중생들도 일체의 지혜와 소원을 성취하게 하려는 희망과, 자신도 일체 여래의 다함없는 지혜의 창고에 깊이 들어가고 중생들도 일체 여래의 다함없는 지혜 의 창고에 들어가게 하려는 희망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바른 희망이니, 만일 보살 마하살이 법에 편히 머물 면 그는 곧 여래의 위없고도 평등한 큰 지혜의 바른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으로 중생을 성숙시킵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보시로 중생을 성숙시키고, 단엄한 색신으로 중생을 성숙시키며, 설법으로 중생을 성숙 시키고, 뜻을 같이하여 중생을 성숙시키며, 집착 없음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키고 보살행을 찬탄함 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키며, 일체 세계가 불붙는 것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키며, 여 래의 공덕을 찬탄함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키며, 신력의 자재함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중생을 성숙 시키고, 갖가지 교묘한 방편으로 치밀하게 세간행에 순응함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성숙시키는 열 가지 법이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법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일체 중생을 잘 성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계율이 있으니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보리심을 깨뜨리지 않는 계율과, 성문과 연각의 자리를 떠나는 계율과, 일체 중생을 관 찰하여 이롭게 하는 계율과, 일체 중생을 불법에 머물게 하는 계율과, 일체 소유가 없는 계율과, 일체 선근을 보리로 회향하는 계율과, 일체 여래의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계율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또 수기(授記)받음을 스스로 알게 하는 법, 열 가지가 있으니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한결같이 보리심을 내는 보살이 받는 수기와, 보살행을 싫어하지 않는 보살이 받는 수 기와, 일체의 겁(劫)에서 고행을 닦는 보살이 받는 수기와, 일체 불법에 순응하는 보살이 받는 수기와, 일체 여래의 말을 결정코 믿고 행하는 보살이 받는 수기와, 일체 선근을 원만히 닦아 익 히는 보살이 받는 수기와, 일체 중생을 보리에 굳게 머물게 하는 보살이 받는 수기와, 일체 선지 식과 더불어 화합하고 그를 따르는 보살이 받는 수기와, 일체 선지식을 여래라고 생각하는 보살 이 받는 수기와, 보리에 대한 본래의 서원을 수호하는 보살이 받는 수기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수기 받음을 스스로 알게 하는 열 가지 법이니, 그 보살이 스스로 알아서 받는 수기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열 가지 보현의 마음을 내나니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큰 자심(慈心)을 내나니 일체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서요, 큰 비심(悲心)을 내나니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일체의 고통을 받기 위해서이며, 보시가 가장 으뜸가는 보살행이라는 마음을 내 나니 일체의 소유를 다 버리기 위해서요, 일체지가 우두머리라고 바로 생각하는 마음을 내나니 일체의 불법을 즐겨 구하기 위해서이며, 공덕으로 장엄하려는 마음을 내나니 모든 보살행을 배우 기 위해서요, 금강 같은 마음을 내나니 일체의 태어남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또 큰 바다와 같은 마음을 내나니 일체 깨끗한 법을 다 흘러들게 하기 위해서요, 수미산왕과 같은 마음을 내나니 일체의 비방과 고언(苦言)을 참기 위해서이며, 안온한 마음을 내나니 일체 중생이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반야 바라밀다를 성취하여 저 언덕에 이르려는 마음을 내나니 일체의 법이 공(空)함을 잘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내는 열 가지 보현의 마음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마음 에 편히 머물면 조그만 방편으로 곧 보현의 묘한 방편의 지혜를 두루 갖출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은 보리심을 내는 열 가지 인연이 있으니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성숙시키려는 것이 보리심을 내는 인연이요,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려는 것, 일체 중생에게 갖가지 즐거움을 주려는 것, 일체 중생의 우치를 없애려는 것, 일체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혜를 주려는 것, 일체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려는 것, 여래의 가르침을 따라 부처님을 기쁘게 하려는 것, 부처님의 색신의 상호를 보려는 것, 일체 부처님의 지혜에 들 어가려는 것, 부처님의 힘과 두려움 없음을 나타내려는 것이 보리심을 내는 인연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보리심을 내는 열 가지 인연이니, 만일 보살 마하살이 보리 심을 내었으면 선지식을 공경, 공양하고 친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체지를 빨리 깨닫기 위해 서입니다. 또 그 보살마하살은 선지식을 공경, 공양하고 친근한 뒤에는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키나니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그 선지식에 대해 모시려는 마음, 그 선지식을 어기지 않으려는 마음, 따르려는 마음, 그 선지식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 이익을 구하지 않는 마음, 한결같은 마음, 선근을 같이하려는 마음, 서원을 같이하려는 마음, 그 선지식을 여래라고 생각하는 마음, 원만한 행을 같이하려는 마음 등을 일으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선지식에 대해 일으키는 마음 열 가지입니다. 불자들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런 열 가지 마음을 내면 그는 곧 열 가지 청정함을 얻습니 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정직한 마음이 청정하나니 끝까지 잃지 않았기 때문이요, 색신이 청정하나니 교화하는 이를 따라 누구나 다 보기 때문이며, 원만한 음성이 청정하나니 일체 언어의 법을 성취했기 때문 이요, 변재가 청정하나니 묘한 방편으로 불가사의한 모든 불법을 설명하기 때문이며, 지혜가 청 정하나니 일체의 우치를 없앴기 때문이요, 태어남이 청정하나니 보살의 자재한 힘을 완전히 갖추 었기 때문입니다.
또 권속이 청정하나니 과거에 같이 수행한 중생들이 온갖 선근을 성취하였기 때문이요, 과보가 청정하나니 일체의 업장을 없앴기 때문이며, 모든 원이 청정하나니 일체 보살들과 같기 때문이 요, 모든 행이 청정하나니 보현보살의 행을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청정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의 바라밀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무엇입니까. 이른바 보시바라밀이니 일체 소유를 버리기 때문이요, 계율바라밀이니 부처님의 계율을 깨끗하 게 하기 때문이며, 인욕바라밀이니 부처님의 인욕을 원만히 갖추었기 때문이요, 정진바라밀이니 언제나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며, 선정바라밀이니 바른 생각이 산란하지 않기 때문이요, 반야바라 밀이니 일체 법이 다 여여(如如)함을 보기 때문이며, 지혜바라밀이니 부처님의 힘에 깊이 들어가 기 때문이요, 서원바라밀이니 보현보살의 원행이 원만하기 때문이며, 신력바라밀이니 일체 신통 의 힘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요, 법의 바라밀이니 일체의 법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바라밀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물면 그는 곧 여래의 궁극적인 지혜바라밀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법문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한 몸이 일체 세계에 가득차는 법문과 일체 세계의 갖가지 무량한 빛깔 을 나타내 보이는 법문, 일체 세계가 한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법문, 일체 중생을 맡아 지니 는 법문, 여래의 장엄한 몸이 일체 세계에 가득차는 법문, 일체 세계에 두루 이르는 법문, 한 찰 나 사이에 일체 세계에 노니는 법문, 한 부처님의 세계에 일체 여래가 세간에 나오심을 나타내 보이는 법문, 한 몸이 일체 법계에 가득 차는 법문, 한 찰나 사이에 일체 부처의 신력을 나타내 보이는 법문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법문이니, 만일 보살 마하살로서 이 법문에 편히 머 무르면 그는 곧 여래의 위없는 법문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신통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전생을 생각해내는 신통과, 걸림 없이 들을 수 있는 신통, 일체 중생의 불가사의한 마음을 알아내는 신통, 걸림 없이 모든 세계를 보고 중생을 관찰하는 신통, 불가사의 하고 자재한 신력을 내어 중생을 나타내 보이는 신통, 한 몸에 불가사의한 세계를 나타내 보이는 신통, 한 찰나 사이에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나아가는 신통, 불가사의한 장엄 거리로 일체 세계를 장엄하는 신통, 헤아릴 수 없는 화신을 중생에게 나타내 보이는 신통, 말할 수 없는 세계에서 위 없는 궁극의 깨달음의 불가사의함을 이루어 중생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신통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열 가지 신통이니, 만일 보살 마하살로서 이 신통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위없는 큰 방편 지혜의 신통을 얻어 모든 부처님의 자재한 신력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해탈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번뇌로부터의 해탈과 사견(邪見)으로부터의 해탈, 치연(熾然)으로부터의 해탈, 음(陰), 계(界), 입(入)으로부터의 해탈, 성문, 연각의 지위를 뛰어넘는 해탈, 일체 부처 님의 세계와 일체의 중생과 일체의 법에 집착하지 않고, 무량 무변한 모든 보살의 지위에 머물면 서도 일체의 보살행을 떠나 여래의 자리에 머무는 해탈, 한 찰나 사이에 일체 삼세의 모든 법을 다 아는 해탈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해탈이니 만일 보살 마하살로서 이 해탈에 머무르면 그는 곧 일체 중생을 위해 위없는 불사를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의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깨달으려는 깊은 마음과, 모든 중생을 교화해 성숙 시키려는 깊은 마음, 모든 부처님의 종성을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깊은 마음, 선지식을 친근하려 는 깊은 마음,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서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려는 깊은 마음 등입니다.
또 오로지 대승과 모든 공덕을 구하려는 깊은 마음,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범행을 닦으면서 계율을 지키려는 깊은 마음, 모든 보살을 포용하려는 깊은 마음, 모든 불법을 가지려는 깊은 마 음, 모든 보살의 행과 원을 닦아 익히려는 깊은 마음, 모든 불법을 한결같이 구하려는 깊은 마음 등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일체 부처님의 버리지 않는 깊은 마음의 바른 법을 얻을 것입니 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법을 분별하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모든 법이 다 인연을 따라 일어남을 분별하고 모든 법이 다 꼭두각시 같 음을 분별하며, 모든 법이 다 다툼이 없음을 분별하고 모든 법이 다 무량무변함을 분별하며, 모 든 법이 다 의지함이 없음을 분별하고, 모든 법이 다 금강 같음을 분별하며, 모든 법이 바로 여 래임은 분별하고, 모든 법이 고요함을 분별하며, 모든 법이 바른 도임을 분별하고, 모든 법이 한 모양 한 뜻임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분별하는 열 가지 법이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미묘한 방편으로 일체 모든 법을 다 잘 분별할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보시의 방편이니 일체를 다 버리고도 그 갚음을 구하지 않기 위해서요, 일체의 학문을 배우고 일체의 계율을 지키며 두타(頭陀)의 행을 두루 갖추는 청정한 방편이니 남 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이며, 일체의 구속과 착각과 분노와 아만을 버리고 중생들의 모든 악을 참는 방편이니 일체의 ‘저’와 ‘나’라는 생각을 떠나기 위해서요,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는 방편이 니 삼업(三業)을 완성하여 잊지 않기 위해서이며, 일체의 선정과 삼매와 해탈과 신통의 방편이니 온갖 오욕과 번뇌를 멀리 떠나기 위해서입니다.
또 바로 지혜로 향하는 방편이니 모든 공덕을 기르되 만족하는 마음이 없기 위해서요, 대자(大 慈)의 방편이니 일체 중생이라 해도 중생이 없음을 말하기 위해서요, 일체 중생을 대신해 온갖 고뇌를 받으면서도 대비(大悲)를 버리지 않는 방편이니 모든 사물의 자성(自性)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요, 십력(十力)을 깨닫는 방편이니 결정코 걸림 없는 지혜를 일체 중생에게 보이기 위해서 이며, 물러나지 않는 법륜을 굴리는 방편이니 중생의 마음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방편이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법에 편히 머무르 면 그는 곧 일체 부처님의 위없는 큰 지혜의 방편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해탈로써 세계에 깊이 들어가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일체 세계를 한 세계에 넣고 한 세계를 일체 세계에 넣으며, 한 여래의 몸이 일체 세계에 다 충만하고 일체 세계가 모두 허공임을 나타내 보이며, 모든 부처님의 장엄으 로 일체 세계를 장엄하는 것입니다.
또 한 보살의 몸이 일체 세계에 충만하여 한 털구멍 속에 일체 세계를 넣어 두고 일체 세계를 한 중생의 몸 속에 넣으며, 한 부처님 도량의 한 보리수가 일체 세계에 충만하고 한 묘한 음성이 일체 세계에 충만하되, 그 응함을 따라 듣지 못하는 이가 없어 모두 기뻐합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해탈로써 세계에 깊이 들어가는 열 가지이니, 만일 보살 마 하살이 이 법에 편히 머무르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이 부처 세계를 내는 위없는 해탈을 얻을 것 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 바 용맹스런 마음이니 시작한 사업을 다 이루기 때문이요, 게으르지 않는 마음이니 온갖 선근을 쌓기 때문이며, 용맹하고 건실한 마음이니 일체의 악마를 다 항복 받기 때 문이요, 바로 생각하는 마음이니 일체 더러운 번뇌를 다 없애기 때문이며, 물러나지 않는 마음이 니 도량에 나아가 보리를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또 성품이 청정한 마음이니 마음은 가는 곳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음을 깨닫기 때문이요, 중생 을 아는 마음이니 중생의 성품을 따라 그를 깨우쳐 해탈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대범천에 들어가 불법에 머무르는 마음이니 갖가지 중생 성품을 다 구호하기 때문이요, 비고 모양 없고 소원 없고 행이 없는 마음이니 모양이 있다는 견해를 떠나 삼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금강처럼 장엄 한 마음이니 중생의 수와 같은 악마도 그 털 하나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마음이니, 만일 보살 마하살로서 이 마음에 굳건히 머물면 그는 곧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금강장(金剛藏)의 마음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깨끗한 보시가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평등한 마음의 보시이니 나쁜 중생이 없기 때문이요, 뜻을 따르는 보시이 니 일체의 원을 이루었기 때문이며, 어지러운 마음이 없는 보시이니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요, 가 리지 않는 보시이니 과보를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한결같은 보시이니 어떤 물건에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요, 안팎의 모든 보시이니 끝까지 청정하기 때문이며, 보리를 회향하는 보시이니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멀리 떠나기 때문이요, 중생을 교화하여 성숙시키는 보시이니 도량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세 가지가 원만 하고 청정한 보시이니 보시하는 이와 그것을 받는 이와 그 재물이 평등하고 청정하기가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깨끗한 보시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보시에 굳건히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청정한 큰 보시를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깨끗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평등한 마음의 깨끗한 사랑이니 중생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요, 이롭게 하 는 깨끗한 사랑이니 중생들에 대해 할 일이 있으면 모두 마련해 주기 때문이며, 구호하는 깨끗한 사랑이니 일체 중생을 생사의 험난에서 끝까지 구제해 주기 때문이요, 중생을 가엾이 여겨 버리 지 않는 깨끗한 사랑이니 유위(有爲)의 선근을 기리기 때문이며, 해탈시키는 깨끗한 사랑이니 중 생들의 온갖 번뇌를 없애 주기 때문입니다.
또 보리를 내는 깨끗한 사랑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즐겨 보리를 구하게 하기 때문이요, 중생들 에 대해 걸림이 없는 깨끗한 사랑이니, 무량한 광명을 놓아 중생들을 두루 비추기 때문이며, 허 공과 같은 깨끗한 사랑이니, 일체 중생을 구호하기 때문이요, 법에 의한 깨끗한 사랑이니 진실한 법을 깨닫기 때문이며, 반연이 없는 깨끗한 사랑이니 생멸을 떠난 법을 증득했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깨끗한 사랑이니,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사랑에 굳건히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청정한 큰 사랑를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청정한 슬픔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거룩한 슬픔이니 자재한 큰 슬픔이기 때문이요, 싫어함이 없는 청정한 슬 픔이니 중생들을 대신해 큰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며, 일체의 나쁜 세계에 사는 청정한 슬픔이니 생사를 받으면서 중생을 구제해 주기 때문이요, 천상 인간에 태어나는 청정한 슬픔이니 모든 법 은 다 무상하다는 것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정취(邪定聚)의 중생들을 위하는 청정한 슬픔이니 무량한 겁 동안 큰 서원의 장엄을 버리 지 않기 때문이요, 자기의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슬픔이니 중생들과 함께 즐거워하기 때문이며, 갚음을 바라지 않는 청정한 슬픔이니 스스로의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일체 중생 들의 착각과 의혹을 없애 주는 청정한 슬픔이니 진실한 법을 말하기 때문이며, 모든 법의 자성이 청정하여 아무것도 없는데 객진(客塵)에 물들어짐을 알아서 일으키는 청정한 슬픔이니 진실한 법 을 말하기 때문이요, 모든 중생들이 어리석어 진실한 법을 알지 못할 때 일으키는 청정한 슬픔이 니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의 마음을 내어 열반을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청정한 슬픔이니, 만약 보살 마하살로서 이 슬픔에 굳건히 머무르면, 그는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청정한 큰 슬픔을 얻을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생(生)이 있습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어리석음을 떠난 생이며, 큰 광명의 그물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 추는 생이며, 다시 윤회함이 없는 최후의 몸의 생이며, 나지 않는 생이며, 삼계의 모든 겁이 다 꼭두각시와 같음을 아는 생이며, 시방세계에 몸을 두루 나타내는 생이며, 일체지의 몸을 다 갖춘 생이며, 일체 여래의 광명을 놓아 중생들을 두루 비추어 깨우치는 생이며, 큰 지혜가 자재한 모 든 선정에 바로 드는 생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이 날 때에는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중생들은 다 해탈 을 얻으며, 일체 나쁜 갈래는 모두 없어지고, 모든 악마들의 광명은 다 덮이며, 한량없는 보살이 구름처럼 모여 옵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생이니,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 그런 생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또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일 때문에 고행을 나타내 보입니다.
마음이 옹졸한 중생들을 교화하고 성숙시키기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이며, 그릇된 견해에 집착 하는 중생을 건지기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이며, 업보가 없다는 그릇된 견해를 가진 중생들로 하 여금 업보를 알게 하기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이고, 오탁(五濁)세계의 중생들에게 순응하기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입니다.
또 게으른 중생들을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이고, 중생들로 하여금 즐겨 법을 구하게 하기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이며, 쾌락과 아락(我樂)에 집착하는 중생을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이고, 보살 의 뛰어난 행을 보이기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이며, 미래 중생들로 하여금 정진하게 하기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이고, 사람들의 근기가 성숙하지 못했을 때, 성숙할 때를 기다리게 하기 위해 고행을 나타내 보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고행을 나타내 보이는 열 가지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청정하고 훌륭한 행의 큰 법문이며, 모든 부처님 말씀의 무 량한 깊은 뜻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모든 지혜 있는 이를 다 기쁘게 하고, 일체 보살의 큰 서원을 이루며 그 행을 끊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 신심이 청정하여 그것을 비방하지 않고 그대로 수 행한다면, 그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빨리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부디 부처님 의 가르침 그대로 수행하고, 일심으로 이 경을 공경하고 믿으며 받들어 지녀야 할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경은 일체 보살행의 공덕과 깊고 묘한 이치의 꽃을 내며, 지혜에 깊이 들어가 일체 법문을 포함하며, 세간을 멀리 떠나 성문이나 연각, 일체 중생은 미치지 못하는 독특한 법 으로 선근을 길러 중생들을 제도합니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일심으로 이 경을 듣고 받들어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경을 받들어 지니면 그는 일체의 서원을 세워 조그만 방편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빨리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34장 입법계품(入法界品)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의 대장엄중각 강당에서 문수보살을 비롯한 오백 명의 보살마하살들과 함께 계셨다. 존자 사리불은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문수사리보살이 장엄을 갖추고 기원림을 나와 남방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도 문수사리보살과 함께 남방으로 가리라.’
그리하여 존자 사리불은 육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부처님께 경의를 표하고 문수사리보살에게로 향하였다. 그때 문수사라보살은 코끼리의 왕이 무리들을 위엄있게 바라보듯이 비구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비구들이며,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열 가지 큰 마음을 성 취하면 그는 여래의 지위를 얻을 것이거든 하물며 보살의 자리이겠는가.
그 열 가지란 바로, 광대한 마음을 내어 일체 선근을 기르면서 ㄱ까지 물러나지 않고 마음에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 공경, 공양하여 마음에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이 며, 일체의 불법을 구하여 마음에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이며, 보살의 모든 바라밀을 두루 행하면 서 마음에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이며, 보살의 모든 삼매를 구족하되 만족하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또 불국토를 장엄하여 시방에 가득히 채우되 만족하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일체 중생 을 교화해 성숙시키되 만족하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모든 국토와 모든 겁 동안에 보살행 을 하면서도 만족하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광대한 마음을 내어 모든 불국토의 티끌 수 같은 온갖 바라밀을 닦아 익혀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을 다 갖추되 만족하다 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이런 열 가지 큰 법을 성취하면, 그는 일체의 선근을 길러 생사의 갈래와 일체 세간의 성품을 떠나고, 성문과 연각의 지위를 뛰어난 여래의 가문에 태어나며, 보살 의 큰 서원을 모두 갖추고 보살의 행을 행하며, 보살의 지위에 머무르고, 여래의 공덕의 힘을 성 취하여 온갖 악마를 항복받고 모든 외도를 제어할 것이다.”
그 말씀을 들은 비구들은 모두 다 걸림이 없는 깨끗한 눈의 삼매를 얻었으며, 시방의 여래와 무량한 중생을 다 보며, 그 중생들의 생각과 근성 등을 알며, 그 중생들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다 알았다. 그때 문수사리보살은 비구들에게 보현의 행을 닦고 보현의 행에 머물도록 권하였다. 그리하여 비구들은 큰 서원을 세운 뒤 몸과 마음이 청정해져 불사(不死)의 밝은 길을 얻었다. 또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일체 여래의 법신을 내어 시방에 충만하고 일체의 불법을 원만히 갖 추었다.
그때 문수사리보살은 비구들의 보리심을 확립시킨 뒤, 그들과 함께 차츰 남방으로 내려가 각성 (覺城)의 동쪽에 이르러, 장엄당 사라숲 속의 큰 탑이 있는 곳에 머물렀다. 그곳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계시던 곳이며, 또 과거 부처님께서 보살로 있을 때 고행을 닦으 시던 곳으로서, 언제나 하늘, 용, 건달바, 아수라들의 공양을 받는 곳이었다. 그때 각성 사람들은 문수사리보살이 장엄당 사라숲의 큰 탑이 있는 곳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천 명의 우바새와 오백명의 우바이, 그리고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비롯한 오백 명의 동자와 오백 명의 동녀도 함께 문수사리보살의 처소에 나아갔다. 그들은 모두 문수사리의 발에 예배하고 물러 나 한 쪽에 앉았다.
그때 문수사리보살은 대중이 모인 것을 알고 그 알맞음에 따라 대자대비의 힘으로 그들을 기쁘 게 하고, 장차 설법하기 위해서 매우 깊은 지혜로 그들의 마음을 분별하고 큰 변재의 힘으로 그 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먼저 문수사리보살은 코끼리의 왕처럼 선재동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나는 그대를 위해 미묘한 법을 설하리라. 즉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분별하고, 부처님이 차 례로 세상에 나타나는 법과, 권속을 깨끗하게 하는 법과, 법륜을 굴리는 법과, 모든 부처님의 색 신과 상호의 청정하고 장엄한 법과, 일체 부처님의 법신을 갖추는 법과, 부처님 음성의 묘하고 장엄한 법 등을 분별하고 일체 여래의 평등하고 바른 법을 설하리라.” 그때 선재동자는 문수사리보살로부터 불법의 여러 가지 공덕을 듣고 일심으로 최상의 깨달음을 구하며, 문수보살에게 간청하였다.
“대성(大聖)이시여,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보살은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닦으며, 어떻게 보살의 행에 나아가 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행하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청정히 행하며, 어떻게 보살의 행에 들어가 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성취하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따라가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기억하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더 넓히며, 어떻게 보현의 행을 속히 성취할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고 보살의 행을 찾는구나. 중생이 위없는 보 리심을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발심하여 보살행을 닦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선남자여! 모든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를 성취하려면 반드시 진실한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선지식을 찾는 일에 지치거나 게으르지 말고, 선지식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하며, 선지식의 절 묘한 방편에 허물을 보지 말아야 한다.
이곳으로부터 남쪽으로 가면 승락(勝樂)이라는 나라가 있다. 그 나라의 묘봉산(妙峰山)에는 덕 운(德雲)이라고 하는 비구가 있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은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행을 닦으며, 어떻게 해야 보현행을 속히 성취합니까?’라고 물으라. 덕운 비구는 그대에게 말해 줄 것이다.” 선재동자는 이 말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문수보살에게 엎드려 절하고, 무수히 돌고 말없이 우러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직하고 남쪽으 로 떠났다.
선재동자는 덕운 비구를 찾아가 엎드려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여쭈었다. “대성(大聖)이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 떻게 보살행을 닦으며, 어떻게 해서 보현행을 속히 성취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듣자오니 성자께서는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자비를 베푸시어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어떻 게 하면 보살이 위없는 보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덕운 비구는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고 또 보살행을 물으니 이것은 어려운 일 중에도 어려운 일이다. 이른바 보살행을 구하며, 보살의 경계(境界)를 구하며, 보살의 벗어나 는 도를 구하며, 보살의 청정한 도를 구하며, 보살의 청정하고 광대한 마음을 구하며, 보살의 신 통을 성취하기를 구한다. 보살의 해탈문이 보이기를 구하며, 보살이 세간에서 짓는 업을 나타내 기를 구하며, 보살이 중생의 마음에 따라줌을 구하며, 보살의 생사와 열반문을 구하며, 보살이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관찰하되 마음에 집착이 없음을 구합니다.
선남자여, 나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지혜의 광명으로 두루 보는 법문은 얻었지만, 큰 보살들의 끝없는 지혜를 청정하게 수행하는 문이야 어떻게 알겠는가. 남쪽에 해문(海門)이라는 한 나라가 있는데 거기에 해운(海雲)비구가 있다. 그대는 그에게 가 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느냐’고 물으라. 그는 광대한 선근을 발하는 인 연을 분별하여 말해 줄 것이다.”
선재동자는 해운 비구의 처소에 가서 그 발 앞에 엎드려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합장하며 이와 같이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였고 또 위없는 지혜의 바다에 들고자 하오나, 보 살이 어떻게 세속의 집을 버리고 여래의 집에 나는지를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사의 바다를 건너 부처님의 지혜바다에 들어가며, 어떻게 범부의 자리를 떠나 여래의 자리에 들어가며, 어떻게 생사의 흐름을 끊고 보살행의 흐름에 들어가며, 어떻게 생사의 바퀴를 깨뜨리고 보살의 서원을 성취합니까.” 해운비구가 선재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가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였는가?” 선재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였습니다.” 해운 비구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중생들이 선근(善根)을 심지 않으면 위없는 보리심을 낼 수 없으니 보문(普門)의 선근 광명을 얻어야 한다.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대비심(大悲心)을 발하는 것이니, 모든 중생 을 널리 구제하기 때문이다. 크게 인자한 마음을 내어 모든 세간을 다 같이 복되게 해야 하며, 안락한 마음을 내어 모든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주어야 하며, 이롭게 하는 마음을 내어 모든 중 생들이 나쁜 업에서 떠나게 해야 하며, 애민심을 내어 두려워하는 이들을 다 수호해야 한다.” 이윽고 선재동자는 다시 선주(善住)비구 앞에 나아가 합장 예배하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지만, 보살이 어떻게 불법을 수행하며, 어떻게 불 법을 쌓아 모으며, 어떻게 불법을 갖추며, 어떻게 불법을 익히며, 어떻게 불법을 키우며, 어떻게 불법을 거두며, 어떻게 불법을 끝까지 구하며, 어떻게 불법을 깨끗이 다스리며, 어떻게 불법을 깨끗하게 하며, 어떻게 불법을 통달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듣건대 성자께서는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저에게 말씀해 주소 서.” 이때 선주 비구는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고, 이제 또 발심하여 불법과 모든 지혜 의 법과 자연의 법을 구하는구나.
선남자여, 나는 다만 빨리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는 데 걸림 없는 이 해탈문만 을 알뿐이다. 저 보살들은 대비계(大悲戒)와 바라밀계와 대승계, 보살이 중생을 도와 서로 응하는 계, 장애 가 없는 계, 물러남이 없는 계,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계를 지니고 있다. 또 항상 불법으로써 상 대할 이를 위한 계, 일체지(一切智)에 뜻을 두는 계, 허공과 같은 계, 모든 세간에 의지함이 없 는 계, 허물없는 계, 손해 없는 계, 모자람이 없는 계, 섞임이 없는 계, 흐름이 없는 계, 뉘우침 이 없는 계, 티끌을 벗은 계, 때를 벗은 계를 지닌다.
그러니 이와 같은 공덕을 내가 어떻게 다 알고 말하겠는가.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자재(自在) 라는 성이 있고 그곳에 미가(彌伽)라는 장자가 있다. 그대는 마땅히 그에게 가서 ‘보살은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는가’를 물으라.” 선재동자는 일심으로 법의 광명인 법문을 생각하면서 깊은 믿음으로 나아갔다. 오로지 부처님을 생각하고 삼보를 끊이지 않게 하며, 욕심을 떠난 성품을 찬탄하고 선지식을 생각하며, 삼세(三世)를 두루 비추어 큰 원을 기억하며, 중생을 널리 구제하되 유위(有爲)에 집 착하지 않고 끝까지 모든 법의 성품을 생각하였다. 선재동자는 여러 부처님의 도량에 모인 대중에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점점 남쪽으로 가다가 자 재성에 이르러 미가장자를 찾았다. 미가장자는 선재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였는가?” 선재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구나. 위없는 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부 처의 씨앗을 끊어지지 않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깨끗이 한다.
또 모든 중생을 성숙하게 하며, 모든 법의 성품을 통달하게 되고, 모든 업의 종자를 깨닫게 되 고, 모든 행이 원만하게 되며, 모든 큰 원을 끊이지 않게 되고, 탐욕을 떨쳐 버린 성품을 사실대 로 이해하고, 삼세의 차별을 분명히 보고, 믿는 지혜가 영원하여 허물어짐이 없다. 보살은 또 밝은 해와 같으니 지혜의 광명이 널리 비우기 때문이며, 수미산과 같으니 선근이 높 이 솟아나기 때문이며, 밝은 달과 같으니 지혜의 빛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용맹스런 장수와 같으니 마군을 굴복시키기 때문이며, 임금과 같으니 불법의 성중에서 자유자 재하기 때문이며, 맹렬한 불과 같으니 중생들의 애착심을 태우기 때문이다. 또 큰 구름과 같으니 한량없이 오묘한 법리를 내리기 때문에, 때에 맞추어 내리는 비와 같으니 모든 믿음의 싹을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뱃사공과 같으니 법 바다의 나루를 건네주기 때문이며, 다리와 같으니 생사의 흐름을 건너게 하기 때문이다.”
선재동자는 보살의 걸림 없는 지혜 다라니의 광명으로 장엄한 문을 생각하면서 보살의 말씀, 심연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선재동자는 12년을 다니다가 마침내 주림성(住林城)에 이르러 해탈장자를 만나게 되었다. 선재 는 그의 앞에 엎드려 절하고 일어서서 합장한 후, 말하였다. “성자시여, 제가 오늘에야 선지식의 회상(會上)에 함께 하게 되었으니 제가 마침내 광대한 좋 은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식은 보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렵고, 출현도 어렵고 받들어 섬기기도 어렵고, 가 까이 모시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함께 대하여 뵙기도 어렵고, 만나기도 어렵고, 함께 있기도 어렵고, 기쁘게 하기도 어렵고, 따라 다니기도 어려운데, 제가 이제 만났으니 이것이 어찌 좋은 이익을 얻은 것이 아니오리까. 듣건대 성자께서는 보살들을 잘 가르쳐 방편으로써 얻은 바를 밝히시고, 길을 보이시며 나루터 를 일러주고 법문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자시여,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으며, 닦아 익힌 것이 빨리 청정해지고 분명해지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이때 해탈장자가 삼매에서 일어나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아야 하리니 보살이 불법을 닦아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케 하며, 미묘한 행을 쌓아 중생을 조복하며, 큰 서원을 발하여 온갖 지혜에 들어가 자재하게 유희하며, 불가사의 한 해탈문으로 부처님의 보리를 얻으며, 큰 신통을 나타내고 모든 시방 법계에 두루 가며, 미세 한 지혜로 여러 겁(劫)에 널리 들어가는 이런 것들이 다 자기의 마음으로 인해서다. 그러므로 선남자여, 마땅히 착한 법으로 자기 마음을 붙들고, 법의 물로 자기 마음을 적시고, 모든 환경에서 자기 마음을 깨끗이 다스리고, 자기 마음을 굳게 하라.
인욕으로써 자기 마음을 평온케 하고, 지혜의 증득으로 자기 마음을 결백케 하고, 지혜로써 자 기 마음을 밝게 하고, 부처님의 자재함으로써 자기 마음을 개발하고, 부처님의 평등으로써 자기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부처님의 열 가지 힘으로써 자기 마음을 비추고 살펴야 한다. 나는 다만 이 여래의 걸림 없는 장엄해탈문에 드나들 뿐이다.
그러므로 저 보살마하살들은 걸림 없는 지혜를 얻고, 걸림 없는 행에 머물며, 모든 부처님을 항상 보는 삼매를 얻고, 열반의 틈에 머물지 않는 삼매를 얻었다.
또한 삼매의 보문(普門)경계에 통달하고, 삼세의 모든 법에 다 평등하고, 몸을 나누어 여러 세 계에 두루하고, 부처님의 평등한 경계에 머물고, 시방세계의 경계가 다 앞에 나타남을 지혜로 관 찰하여 분명히 안다. 몸 가운데 모든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나타내어도, 자기 몸과 여러 세계가 둘이란 생각을 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미묘한 행을 내가 어떻게 알며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선재동자는 일심으로 해탈장자의 가르침을 바로 생각하고, 그 가르침을 관찰하고, 그 불가사의 한 보살의 해탈문을 기억하고, 불가사의한 보살의 지혜광명을 생각하고, 불가사의한 법계문(法界 門)에 깊이 들어갔다.
그때 해당비구는 그 몸의 털구멍마다 아승지 세계의 티끌 수와 같은 광명을 발했다. 그 광명마 다 아승지 색상(色相)과 아승지 장엄과 아승지 경계와 아승지 사업을 갖추어 시방의 모든 세계에 충만하였다.
이때 선재동자는 일심으로 해당비구를 관찰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그 삼매의 해탈을 생각하였 다. 불가사의한 보살의 삼매를 생각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가사의한 방편을 생각하고, 불가사 의하고 작용이 없는 보장엄문(普莊嚴門)을 생각하고, 법계를 장엄하는 청정한 지혜를 생각하고, 부처님의 가피를 받는 지혜를 생각하고, 보살의 자재(自在)를 내는 힘을 생각하고, 보살의 큰 원 을 견고히 하는 힘을 생각하고, 보살의 모든 행을 넓히는 힘을 생각하였다.
선재동자는 찬탄하였다. “성자시여, 희유하고 기이합니다. 이와 같은 삼매는 가장 깊고 가장 광대합니다. 성자시여, 이 삼매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해당비구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 삼매의 이름은 넓은 눈으로 얻음을 버림[普眼捨得]이라 하고, 또는 반야바라밀 경계의 청정한 광명이라고도 하고, 모든 장엄을 완성한 청정문[普莊嚴淸淨門]이라고도 한다. 나 는 반야바라밀을 닦았으므로 이와 같은 모든 장엄을 완성한 청정삼매 등과 같은 백만 아승지 삼 매를 얻은 것이다.
선남자여, 나는 오로지 이 한 가지 반야바라밀 삼매의 광명만을 알뿐이다. 그러므로 저 보살들 은 지혜 바다에 들어가 법계의 경계를 깨끗이 하며, 모든 길에 통달하여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하며, 총지(總持)에 자재하여 삼매가 청정하며, 신통이 광대하여 변재가 다함없으며, 여러 경지 를 잘 말하여 중생의 의지처가 되는 일 등, 이같이 미묘한 행이야 내가 어떻게 다 알겠는가. 내가 어떻게 그 공덕을 말하며, 그 실천하는 바를 알며, 그 경계를 밝히며, 그 원력을 끝까지 마치며, 그 요문(要門)에 들어가며, 그 증득한 바를 통달하며, 그 진리에 이르는 길을 말하며, 그 삼매에 머물며, 그 심경을 보며, 그 가진 바 평등한 지혜를 얻겠는가.” 그때 선재동자는 휴사청신녀가 미묘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나아가 발에 절하 고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아직도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어떻 게 보살도를 닦는지 알지 못합니다. 듣사온즉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휴사청신녀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오로지 보살의 한 해탈문을 얻었으니, 나를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고 나와 함 께 있거나 공양하는 이는 모두 헛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중생들이 선근을 심지 않으면 선지식의 거두어 줌을 받지 못하고 부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니, 이런 사람은 끝내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중생이 나를 보게 되면 모두 위없는 보 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선재동자는 휴사청신녀에게 말하였다.
“이 해탈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 해탈의 이름은 근심을 떠난 편안한 당[離憂安隱幢]이라 한다. 나는 다만 이 한 가지 해탈문을 알뿐이지만, 저 보살 마하살들은 그 마음이 바다와 같아서 모 든 부처님의 법을 모두 다 받아들인다. 수미산과 같이 의지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며, 선견약 (善見藥)과 같아서 중생들의 무거운 번뇌 병을 치료하며, 밝은 해와 같아서 중생의 무명 업장을 깨뜨리며, 대지(大地)와 같아서 모든 중생의 의지처가 된다.
좋은 바람과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며, 밝은 등불과 같아서 중생들의 지혜광을 내며, 큰 구름과 같아서 중생들에게 적멸법(寂滅法)을 내리며, 밝은 달과 같아서 모든 중생을 수호한 다. 이와 같은 일들을 내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그 공덕의 행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 선자동자는 선지식에게 가장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광대하고 청정한 이해를 내어, 항 상 대승(大乘)을 생각하고 오로지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여 부처님 뵙기를 원하였다. 법의 경계를 관찰하되 걸림이 없는 지혜가 항상 앞에 나타나 모든 법의 실제(實際)와, 상주제 (常住際)와, 모든 삼세의 찰나제(刹那際)와, 허공과 같은 사이[際]와, 둘이 없는 사이, 모든 법 의 분별이 없는 사이, 모든 이치의 걸림이 없는 사이, 모든 겁의 무너지지 않는 사이, 모든 여래 의 사이 없는 사이[無際之際]를 분명히 알았다.
선재는 점점 남쪽으로 가다가 사자분신성(師子奮迅城)에 이르러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행동녀를 찾았다. 이 동녀는 사자당왕(師子幢王)의 딸인데 오백 동녀가 시종이 되어 비로자나장(藏) 궁전에 살면 서 미묘한 법을 설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선재동자는 왕궁을 찾아가 자행동녀를 만나려고 하던 참인데, 무수한 사람들이 궁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자행동녀에게 법을 들으러 간다고 하였다. 선재는 생각하기를, 이 왕궁의 문은 통제가 없으니 나도 이대로 들어가리라 하고 들어가 비로 자나장 궁전을 보았다.
그 안에 있는 자행동녀는 살갗이 금빛이고 눈은 자줏빛을 띠고 있고 머리카락은 검푸르렀는데, 범천의 음성으로 법을 설하고 있었다. 선재는 앞으로 나아가 그의 발에 예배드리고 무수히 돌고 합장한 후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어떻게 보살 도를 닦아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 왔으니 말씀해 주소서.”
자행동녀는 선재에 말하였다. “그대는 내 궁전의 장엄을 보라.” 선재는 예배드리고 나서 두루 살펴보았다. 벽과 기둥, 거울과 마니보배와 장엄거리와 황금 풍 경마다 온 법계의 여래께서 처음 발심하여 보살행을 닦고 큰 서원을 가득 채워 바른 깨달음을 이 루던 일이며, 미묘한 법을 설하시다가 열반에 드신 그런 일들이 영상처럼 나타났다. 마치 맑은 물 속에 해와 달과 별 등 온갖 형상이 비치듯 하였다. 이런 현상은 모두 자행동녀가 과거세에 심은 선근의 힘이었다.
선재동자는 방금 궁전의 장엄에서 본 부처님들의 여러 가지 모습을 생각하면서 합장하고 자행 동녀를 우러러보았다. 이때 자행동녀가 선재에 말하였다. “선남자여, 이것은 반야바라밀의 두루 장엄하는 문[普莊嚴門]이니 나는 항하사 부처님의 처소 에서 이 법을 얻었다. 저 여래들께서 각각 다른 문으로써 나로 하여금 이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 엄하는 문에 들게 하였으며, 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은 다른 부처님이 거듭 말씀하지 않으셨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하는 해탈문을 알뿐이다. 그러나 저 보살마하 살들은 마음이 광대하기 허공과 같고, 법계에 들어가 복덕을 가득 채웠으며, 출세간법에 머물러 세간의 행을 멀리 하였다.
또 지혜의 눈이 걸림 없어 법계를 두루 관찰하며, 지혜의 마음이 광대하여 허공과 같으며, 모 든 경계를 다 밝게 보며, 걸림 없는 지혜의 큰 광명장을 얻어 온갖 법과 뜻을 잘 분별한다. 세상 의 법을 행하여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이롭게 하되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모든 세상의 의지가 되어 중생의 마음을 두루 알고, 그들에게 알맞게 법을 설하고, 어느 때나 항상 자유자재 하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일들을 알며, 그 공덕의 행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 선재동자는 선견비구에게 나아가 발에 예배드리고 허리를 굽혀 합장하고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행을 구하고 있습니다. 듣자오니 성자께서 보살도를 잘 열어 보이신다 하시니, 원컨대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도를 닦 아야 할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선견비구는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어리고 출가한 지도 오래되지 않지만, 이승헤서 삼십팔 항하사 부처님의 처소 에서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았다. 어떤 부처님 처소에서는 하루낮 하룻밤에 범행을 닦았고, 어 떤 부처님 처소에서는 칠일 칠야 동안 범행을 닦았으며, 또 다른 부처님 처소에서는 반 달, 한 달, 혹은 일 년, 십 년을 지내기도 했었다.
이러는 동안 미묘한 법문을 듣고 그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며, 모든 서원을 장엄하고 증득할 곳 에 들어가 온갖 행을 닦아 육바라밀을 가득 채웠다. 또 그 부처님들의 성도와 설법이 각기 다르지만 어지럽지 않고, 남기신 가르침을 지니고 열반 에 드시기까지를 보았다.
또 그 부처님들의 본래 세운 서원과 삼매의 원력으로 모든 불국토를 깨끗이 장엄하며, 일체행 (一切行)삼매에 들어간 힘으로 모든 보살행을 청정하게 닦고, 보현(普賢)의 법인 벗어나는 힘으 로써 여러 부처님의 바라밀을 청정히 하심을 알았다.” 그때 선재는 자재주(自在主)동자의 발에 예배드리고 오른쪽으로 무수히 돌고 합장, 공경하면서 한 쪽에 서서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 아야 할지를 알지 못하니 원컨대 말씀해 주소서.” 자재주동자가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계산법을 안다. 보살의 계산법으로 한량없는 유순의 광대한 모랫더미 를 계산하여 그 안에 있는 알맹이 수효를 모두 알고, 동서남북 등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의 갖가 지 차별과 차례로 머물러 있음을 계산하여 안다.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의 넓고 좁고 크고 작은 것이며, 그 이름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겁의 이름, 모든 부처님의 이름, 모든 법의 이름, 모든 중생의 이름, 모든 업의 이름, 모든 보살의 이 름, 모든 진리의 이름을 다 분명히 안다.
나는 다만 이 온갖 공교한 큰 신통과 지혜 광명 법문만을 알 뿐이다. 그러나 저 보살 마하살 은 모든 중생의 수효를 알고, 모든 법의 종류와 수를 알며, 모든 법의 차별된 수를 알고, 모든 삼세의 수도 안다.
또 모든 중생의 이름을 알고, 모든 법의 이름을 알고, 모든 여래의 수를 알고, 모든 여래의 이 름을 알고, 모든 보살의 수를 알고, 모든 보살의 이름을 알고 있거늘 내가 어떻게 그 공덕을 말 하고, 그 수행을 보이겠는가.
또 내가 어떻게 그 경지를 드러내며 그 뛰어난 힘을 찬탄하며 그 좋아함을 말하겠는가. 그리고 그 도를 돕는 것을 말하며, 그 큰 원을 나타내며, 그 미묘한 행을 찬탄하며, 그 바라밀을 열어보 이며, 그 청정함을 연설하며, 그 뛰어난 지혜 광명을 펼 수 있겠는가.” 그때 선재동자는 보안(普眼)장자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리고 합장한 후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지만,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장자는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구나. 나는 모든 중생의 여러 가지 병을 안 다. 나는 풍병, 황달, 해소, 열병, 귀신과 독충, 수재, 화재로 인해 생기는 온갖 병을 모두 방 편으로 치료한다. 누구든지 병이 있는 이가 내게 오면 다 치료하여 낫게 하며, 향탕으로 목욕시 키고 향과 꽃과 영락과 좋은 옷으로 갈아 입히고, 음식과 재물을 보시하여 아쉬움이 없게 한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알맞은 법을 말해 준다. 탐욕이 많은 이에게는 부정관(不淨觀)을 가르치 고, 남을 미워하고 성을 잘 내는 이에게는 자비관(慈悲觀)을 가르치며, 어리석음이 많은 이에게 는 여러 가지 법의 모양을 분별하도록 가르치고, 이 세 가지가 균등한 이에게는 아주 뛰어난 법 문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부처의 거룩한 모습을 갖추게 하려고 보시바라밀을 찬탄하고, 부처의 깨끗한 몸을 얻 어 온갖 곳에 이르게 하려고 지계바라밀을 찬탄하고, 부처의 청정 불가사의한 몸을 얻게 하려고 인욕바라밀을 찬탄하고, 여래의 이길 이 없는 몸을 얻게 하려고 정진바라밀을 찬탄하고, 청정하 고 견줄 데 없는 몸을 얻게 하려고 선정바라밀을 찬탄하고, 여래의 청정한 법신을 드러내려고 반 야바라밀을 찬탄하느니라.”
그때 선재는 무염족왕의 처소에 나아가 그의 발에 예배드리고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성자께서는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말씀해 주소서.” 왕이 선재에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여환해탈(如幻解脫)을 얻었노라. 내 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살생과 도 둑질과 내지는 그릇된 소견을 가진 이가 많아서, 다른 방편으로는 그들의 나쁜 업을 버리게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을 조복하기 위해 악인으로 변신, 온갖 죄악을 지어 갖가지 고통을 받는 장 면들을 보여 주었다. 중생들이 이를 보고 무섭고 두려워하며 싫어하고 겁을 내어, 나쁜 업을 끊 고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교묘한 방편으로써, 중생들이 열 가지 나쁜 업을 버리고 열 가지 착한 길에 머 물러 항상 즐겁고 편안하게 하여 마침내 일체지(一切智)의 자리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선남자여, 나는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로써 아직까지 한 중생도 해친 적이 없다. 내가 차라 리 무간지옥에 들어가 고통을 받을지언정 한 순간이라도 모기 한 마리, 개미 한 마리 일지라고 괴롭게 하려는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사람은 복밭이다. 이는 모든 선한 법을 내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이 여환해탈(如幻解脫)을 얻었을 뿐이다. 그러나 저 보살마하살은 생사가 없는 법의 지혜인 무생인(無生忍)을 얻어, 모든 세계가 허깨비 같고, 보살행이 다 요술과 같으며, 모든 세 간이 그림자 같고, 모든 법이 꿈과 같은 줄을 안다. 그래서 실상의 걸림 없는 법문에 들어가 제석천의 그물 같은 행을 닦고, 걸림 없는 지혜로 경 계에 행하고, 모든 것이 평등한 삼매에 들어가 다라니에 자유자재를 얻는 일이야 내가 어떻게 알 며 어떻게 그 공덕의 행을 말하겠는가.”
그때 선재동자는 대광왕(大光王)의 발에 예배드리고 공경하여 오른쪽으로 무수히 돌고 합장하 고 서서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 도를 닦는지 알지 못합니다. 듣자오니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저에게 말씀해 주소 서.” 왕이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대자당행(大慈幢行)을 닦으면서 그것을 가득 채웠느니라. 나는 한량없 는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 법을 묻고 생각하고 관찰하고 닦아서 장엄하였다. 나는 왕이 되어서 이 법으로 가르치고, 또한 이 법으로 거두어 준다. 이 법으로 세상을 따라가 고, 이 법으로 중생을 인도하고, 이 법으로 중생들에게 수행케 하고, 이 법으로 중생들이 나아가 게 한다.
또 이 법으로 중생들에게 방편을 주고, 이 법으로 중생들이 익히도록, 이 법으로 중생들이 행 을 일으키게 하고, 이 행으로 중생들이 법의 성품에 머물러 생각케 한다. 또 이 법으로써 중생들이 인자한 마음에 머물러 인자함으로 근본을 삼아 인자한 힘을 갖추게 한다.
이와 같이 이로운 마음, 안락한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거두어 주는 마음, 중생을 보호하 며 버리지 않는 마음, 중생의 고통을 제거하는데 게으른 마음이 없게 한다. 나는 이 법으로써 모든 중생들이 끝까지 즐겁고 항상 기뻐하며, 몸에는 고통이 없고, 마음에는 시원함을 얻게 한다.
또 이 법으로써 생사의 애착을 끊고 바른 법의 낙을 즐거워하며, 번뇌의 때를 씻고 악업의 장 애를 깨도록 한다. 생사의 흐름을 끊고 진실한 법의 바다에 들어가며, 모든 윤회의 길을 끊고 온 갖 지혜를 구하며, 마음 바다를 깨끗이하여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내게 한다. 나는 이와 같이 이 대자당행에 머물러 바른 법으로써 세상을 교화한다.” 선재동자는 왕의 발에 예배드리고 무수히 돌고 우러르며 하직하고 길을 떠났다. 선재동자는 앞으로 나아가다가 누각성에 이르렀다. 한 뱃사공이 성문 밖 바닷가에서 수많은 상 인과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큰 바다의 법을 말하면서 부처님의 공덕 바다의 방편을 일러주고 있었다.
선재동자는 그 앞에 나아가 발에 예배드리고 무수히 돌고 합장한 후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지만,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 도를 닦는지 알지 못합니다. 듣자오니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말씀하여 주소서.” 뱃사공이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고, 이제 또 큰 지혜를 내는 근원을 묻 는구나.
모든 생사의 괴로움은 끊는 인(因)과 온갖 지혜의 큰 보물섬에 가는 인과 무너지지 않는 대승 (大乘)을 성취하는 인, 이승(二乘)들이 생사를 두려워하고 고요한 삼매의 소용돌이에 머무름을 멀리 떠나는 인, 큰 원의 수레를 타고 모든 곳에 두루하여 보살행을 행하여도 장애가 없는 청정 한 도의 인, 보살행으로 깨뜨릴 수 없는 지혜를 장엄하는 청정한 도의 인, 모든 시방세계의 법을 두루 살펴도 장애가 없는 청정한 도의 인, 온갖 지혜의 바다에 빨리 들어가는 청정한 도의 근원 을 묻는구나.
선남자여, 나는 이 성의 바닷가에 있으면서 보살의 대비당행(大悲幢行)을 깨끗이 닦았다. 나는 염부제에 있는 가난한 중생들을 이롭게 하려고 온갖 고행을 닦았다. 그들의 소원을 모두 만족케 하는데, 먼저 세상 물건을 주어 마음을 채워준 후, 다시 법의 재물 을 베풀어 환희케 한다. 복덕의 행을 닦게 하고, 지혜를 내게 하고, 선근의 힘을 북돋우고, 보리 심을 일으키게 하고, 보리의 원을 맑게 하고, 대비력(大悲力)을 견고케 한다. 생사를 없애는 도를 닦게 하고, 생사를 싫어하지 않는 행을 내게 하고, 모든 중생들을 거둬주 게 하고, 모든 공덕을 닦게 하고, 모든 법을 비추게 하고, 모든 부처님들을 보게 하고, 일체지의 지혜에 들어가게 한다.
어떤 중생이 내 몸을 보거나 내 법을 듣는 이는 영원히 생사의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고, 온갖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 애욕의 바다를 말리고, 지혜의 광명으로 삼세의 바다를 비추며 모든 중생 의 고통 바다를 끝나게 한다.
모든 중생의 마음 바다를 맑히고, 모든 세계의 바다를 빨리 청정하게 하며, 시방의 큰 바다에 들어가 중생의 근기를 알고, 모든 중생의 수행을 알고, 모든 중생의 마음을 두루 따른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대비당행(大悲幢行)을 얻었으므로, 나를 보거나 내 음성을 듣거나 나 와 함께 있거나 나를 생각하는 이는 모두 헛되지 않게 한다.
그러나 저 보살마하살들은 생사의 바다에 다니면서도 모든 번뇌에 물들지 않고, 허망한 소견을 버리며, 모든 법의 성품을 살피고, 네 가지 거두어주는 법으로 중생들을 제도한다. 이미 온갖 지혜의 바다에 머물러 모든 중생의 애착을 없애고, 모든 시간에 평등하게 있으면서 신통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고, 때를 놓치지 않고 중생들을 조복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알며 어떻 게 그 공덕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 선재동자는 사자빈신 비구니에게 합장하고 서서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 도를 닦는지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비구니가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모든 지혜를 성취하는 해탈을 얻었다.” “어째서 모든 지혜를 성취한다고 합니까.” “이 지혜의 광명은 잠깐 사이에 삼세의 모든 법을 비추기 때문이다.” “성자시여, 이 지혜의 광명은 그 경지가 어떻습니까.” 비구니가 말하였다. “나는 모든 중생을 보아도 중생이란 분별을 내지 않으니 지혜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온갖 말을 들어도 말이란 분별을 내지 않으니 마음에 집착이 없기 때문이며, 여래를 뵙고도 여 래라는 분별을 내지 않으니 법신을 통달했기 때문이며, 모든 법륜을 주지(住持)하면서도 법륜이 란 분별을 내지 않으니 법의 자성(自性)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한 생각에 일체 법을 두루 알면서 도 일체 법이란 분별을 내지 않으니 법이 허깨비 같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일체지를 성취하는 해탈을 알뿐이다. 그러나 저 보살마하살들은 마음에 분별이 없어 모든 법을 두루 안다. 한 몸이 단정히 앉아서도 법계에 가득하며, 자신의 몸 속에 모든 세계를 나타내며, 잠깐 동안에 모든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며, 자신의 몸 속에서 모든 부처 님의 신통력을 나타내며, 한 생각에 말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과 함께 있으며, 한 생각에 말할 수 없이 많은 겁(劫)에 들어가는 일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그 공덕의 행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 는가.”
그때 선재동자는 바수밀다 여인 앞에 나아가 예배드리고 합장한 후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지만,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듣자오니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원컨대 말씀해 주소 서.” 여인은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탐욕의 굴레를 벗어난 해탈을 얻었다. 나는 모든 중생의 욕락(慾樂)을 따라 현신(現身)하는데, 천인이 나를 볼 때에는 나는 천녀가 되어 모양과 광명이 견줄 데 없이 뛰어나 며, 이와 같이 인비인(人非人)이 볼 때에는 나도 인비인(人非人)의 여인이 되어 그들의 욕락대로 나는 보게 한다.
어떤 중생이 애욕에 얽매여 내게 오면, 나는 그에게 법을 말하여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집착 없는 경계의 삼매를 얻게 한다. 어떤 중생은 잠깐만 나를 보아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환희 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은 잠깐만 나와 이야기하여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걸림 없는 음성 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은 잠깐만 내 손목을 잡아도 탐욕이 사라지며 보살의 모든 부처 세계를 두루 가는 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 잠깐만 나를 관(觀)해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고요하게 장엄한 삼매를 얻으며, 어떤 중생은 잠깐만 내가 팔을 펴는 것을 보아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이 외도를 굴복시키는 삼 매를 얻으며, 어떤 중생은 내 눈이 깜짝이는 것을 보기만 해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이 구하는 부처님의 경계, 광명 삼매를 얻는다.
또 어떤 중생이 나를 끌어안으면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이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면서 떠나지 않는 삼매를 얻으며, 어떤 중생은 내 입술을 한 번만 맞추어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이 모든 중 생의 복덕을 늘게 하는 삼매를 얻는다.
이와 같이 중생들이 나를 가까이 하면 모두 탐욕을 떠나는 틈에 머물러 보살의 온갖 지혜가 앞 에 나타나는 걸림 없는 해탈에 들어간다.” 그때 선재동자는 관자재보살의 발에 예배드리고 오른쪽으로 무수히 돌고 합장하고 서서 말하였 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지만,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 도를 닦는지 알지 못합니다. 듣건대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보살이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내었구나. 나는 보살의 대비행(大悲行) 해탈 문을 성취하였다. 나는 끊임없이 이 대비행의 문으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인도한다. 나는 대비행의 문에 머물러 항상 모든 여래의 처소에 있으며, 모든 중생의 앞에 두루 나타난 다. 보시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하고, 사랑스런 말과 이롭게 하는 행과 같은 일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한다.
또 육신을 나타내어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하고, 온갖 불가사의한 빛과 맑은 광명을 나타내어 중생을 거두어 주기도 하며, 음성과 위의와 설법으로써 거두어 주기도 하며, 신통 변화를 나타내 기도 하며, 그 마음을 깨닫게 하여 성숙시키기도 하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함께 있으면서 성숙케 하기도 한다.
선남자여, 나는 이 대비행문을 수행하여 항상 모든 중생을 구호하려고 한다. 모든 중생이 험난 한 길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며, 번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미혹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고, 속박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살해의 두려움에 벗어나고, 가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원 한다.
또 생활하기 어려운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악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 어나고, 대중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나쁜 길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암흑의 두려움에서 벗어 나기를 원하다.
또 옮겨 다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원수를 만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몸을 핍박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마음을 핍박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걱정과 슬픔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또 중생들이 나를 생각하거나 내 이름을 부르거나 내 모습을 보게 되면, 다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다.
선남자여, 나는 이와 같은 방편으로 중생들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다시 가르쳐서 위없 는 보리심을 발하고 영원히 물러나지 않게 한다.
나는 다만 보살의 대비행문을 얻었을 뿐이다. 그러나 저 보살 마하살들은 보현의 모든 원을 맑 게 하고 보현의 모든 행에 머물러 있으면서, 온갖 착한 법을 항상 행하고, 모든 삼매에 항상 들 어가고, 모든 그지없는 겁(劫)에 항상 머문다. 모든 삼세법을 항상 알고, 모든 끝없는 세계에 항 상 가고, 모든 중생의 악을 항상 쉬게 하고, 모든 중생의 선을 항상 늘게 하고, 모든 중생의 생 사의 흐름을 항상 끊는 일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그 공덕의 행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 선재동자는 적정음해(寂靜音海) 주야신의 발에 예배드리고 무수히 돌고 합장한 후 말하였 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습니다. 저는 선지식을 의지하여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행에 들어가고 보살행을 닦고 보살행에 머물고자 하오니, 원컨대 자비로 가엾이 여기시고, 저를 위해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도를 닦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주야신이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선지식을 의지하여 보살행을 구하는구나. 나는 보살의 생각생각마 다 광대한 기쁨을 내는 장엄 해탈문을 얻었노라.” 선재동자가 말했다.
“성자시여, 그 해탈문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경계를 행하며, 어떤 방편을 일으키며, 어떤 관 찰을 합니까.” 주야신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청정하고 평등함을 좋아하는 마음을 내었다. 나는 또 모든 세간의 티끌을 떠 나 청정하고 견고하게 장엄하여 깨뜨릴 수 없는 좋아하는 마음을 내었으며, 불퇴전의 자리와 관 계하여 영원히 퇴전하지 않을 마음을 내었으며, 공덕 보배의 산을 장엄하여 동요되지 않는 마음 을 내었다. 나는 머무는 곳이 없는 마음을 내었으며, 모든 중생 앞에 두루 나타나 구호하는 마음을 내었으 며, 모든 부처님 바다를 보고도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을 내었으며, 모든 보살의 청정한 원력을 구하는 마음을 내었으며, 큰 지혜의 광명 바다에 머무는 마음을 내었다. 어떤 중생이 탐욕이 많으면 나는 그에게 부정관문(不淨觀門)을 설하여 생사의 애착을 버리게 하고, 어떤 중생이 성내는 일이 많으면 나는 그에게 대자관문(大慈觀門)을 설하여 부지런히 닦는 데 들어가게 하고, 어떤 중생이 어리석은 짓을 많이 하면 그에게 법을 설하여 밝은 지혜를 얻어 모든 법의 바다를 보게 하고, 어떤 중생이 삼독을 행하면 그에게 법을 설하여 여러 가르침의 바 다에 들게 한다.
어떤 중생이 생사의 낙을 좋아하면 법을 설하여 싫어서 떠나게 하고, 어떤 중생이 생사의 고통 을 싫어하여 여래의 교화를 받을 만 하면 법을 설하여 방편으로 일부러 태어나게 하고, 어떤 중 생이 오온(五蘊)에 애착하면 법을 설하여 의지함이 없는 경지에 머물게 한다. 어떤 중생이 그 마 음이 옹졸하면 나는 그에게 훌륭하게 장엄한 도를 보이고, 어떤 중생이 마음이 교만하면 그에게 평등한 법의 지혜를 말하고, 어떤 중생이 마음이 곧지 못하면 나는 그에게 보살의 곧은 마음을 말한다.”
그때 선재동자는 구파 여인에게 예배드리고 합장한 후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나 보살이 어떻게 생사 중에 있으면서도 생사의 근 심에 물들지 않으며, 법의 바탕[自性]을 깨달아 성문이나 벽지불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지를 아직 모릅니다.
또 어떻게 하면 불법을 갖추고도 보살행을 닦으며, 보살의 자리에 있으면서 부처님 경계에 들 어가며, 세상에서 초월해 있으면서 세상에 태어나며, 법신(法身)을 성취하고도 끝없는 갖가지 육 신을 나타내며, 상(相)이 없는 법을 증득하고도 중생을 위해 모든 상을 나타내며, 법이 설할 것 없는 줄 알면서도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며, 중생이 공한 줄 알면서도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버 리지 않으며, 부처님이란 불생불멸임을 알면서도 부지런히 공양하여 물러가지 않으며, 모든 법이 업도 없고 과보도 없는 줄 알면서도 어째서 온갖 선행을 닦아 항상 쉬지 않는지를 아직 알지 못 합니다.”
구파여인이 선재에게 말하였다. “장합니다. 선남자여, 당신이 이제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법을 묻는군요. 보현의 모든 행원을 닦는 이라야 이와 같이 물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어 당신에게 말하겠습니다.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인드라그물같이 넓은 지혜 광명인 보살행을 가득 채 우게 될 것입니다.
그 열 가지란, 선지식을 의지하고, 광대하고 뛰어난 이해를 얻고, 청정한 욕락을 얻고, 온갖 복과 지혜를 모으고, 여러 부처님 처소에서 법을 듣고, 마음에 항상 삼세 부처님을 버리지 않고, 모든 보살행과 같고, 모든 여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고, 큰 자비와 서원이 다 청정하고, 지혜의 힘으로 모든 생사를 끊는 일들입니다.
불자여, 보살이 선지식을 가까이 섬기면 물러남이 없는 정진으로 다함이 없는 불법을 닦아서 냅니다. 보살은 열 가지 법으로 선지식을 가까이 섬기는데 그것은 이렇습니다. 자기의 몸과 목숨 을 아끼지 않으며, 세상의 오락 기구를 탐내어 구하지 않으며, 모든 법의 바탕이 평등함을 알며, 모든 지혜와 서원에서 물러가거나 버리지 않으며, 모든 법계의 실상을 관찰하며, 마음은 항상 모 든 존재의 바다를 버리고 떠나며, 법이 공한 줄 알고 마음에 의지함이 없으며, 모든 보살의 큰 원을 성취하며, 모든 세계 바다를 항상 나타내며, 보살의 걸림 없는 지혜를 맑게 닦는 일들입니 다.”
그때 선재동자는 천궁에 가서 천주광(天主光)왕녀에게 예배드리고 합장하고 서서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지만,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 는지 알지 못합니다. 듣건대 성자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천녀가 답해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그 이름은 걸림 없는 생각의 청정한 장엄입니다. 나 는 이 해탈의 힘으로 지난 세상일을 기억합니다. 지나간 세월에 푸른 연꽃[靑蓮華]이라는 뛰어난 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 여래께 공양하였습니다. 그 여래들께서 처음 출가할 때부터 내가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여, 절을 짓고 도구들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저 부처님들께서 보살로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와 탄생할 때, 일곱 걸음을 걸을 때, 보리 수 아래서 정각을 이룰 때, 바른 법륜을 굴리며 부처님의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중생들을 교화하 고 조복할 때 여러 가지로 하시던 일들을, 초발심으로부터 법이 다할 때까지를 내가 다 똑똑히 기억하여 잊음이 없으며, 항상 눈앞에 나타나듯 하여 잊지 않습니다.
또 기억되는 것은, 과거에 선지(善地)라는 겁이 있었는데 나는 그 겁에서 열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부처님 여래께 공양하였습니다. 또 과거에 묘덕(妙德)이란 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에도 한 세계의 티끌 수 같은 부처님 여래께 공양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항하의 모래 수 겁을 두고 내가 부처님 여래 응공 정등각을 항상 버리지 않았음을 기억하며, 저 모든 여래께서 이 걸림 없는 생각의 청정한 장엄인 보살의 해탈을 듣고, 받아 지니 고 닦아 행하며 항상 잊지 않았습니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걸림 없는 생각의 청정한 해탈을 알뿐입니다.” 선재동자는 점점 남쪽으로 가다가 최적정(最寂靜)바라문의 마을에 이르렀다. 선재는 최적정 바 라문에게 예배드리고 합장 공경하면서 한 쪽에 서서 말하였다.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지만,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 는지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바라문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그 이름은 진실하게 원하는 말[誠願語]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보살들이 이 말로써 위없는 보리에서 물러가지 않았다. 또한 지금 물러가지도 않 고, 앞으로도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진실하게 원하는 말에 머물렀으므로 마음대로 하는 일이 모두 만족했다. 나는 다만 이 진실하게 원하는 말의 해탈을 알뿐이다. 그러나 저 보살마하살들은 진실하게 원 하는 말과 함께 다니고 멈춤에 어김이 없고, 그 말은 반드시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으며, 한량없 는 공덕이 여기에서 생기는 일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말할 수 있겠는가.”
선재동자는 점점 남쪽으로 가다가 묘의화문성(妙意華門城)에 이르러 덕생동자와 유덕동녀를 만 났다. 선재동자는 예배드리고 합장한 후 말하였다. “성자들이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지만,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도를 닦는지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자비를 베풀어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동자와 동녀가 선재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우리는 보살의 해탈을 증득했으니 그 이름은 환주(幻住)입니다. 이 해탈을 얻었으 므로 모든 세계가 다 환상[幻]처럼 머무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입니다. 일 체 중생이 다 환주와 같으니 업과 번뇌로 일어나기 때문이며, 일체 세간이 다 환주와 같으니 무 명과 존재와 욕망 등이 서로 인연이 되어 생기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 다 환주와 같으니 ‘나’라 는 소견 등 갖가지 환 같은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이며, 일체 중생의 생멸과 생로병사와 근심과 슬픔과 고뇌가 모두 환주와 같으니 허망한 분별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우리 두 사람은 다만 이 환주해탈을 알뿐입니다. 선남자여, 당신은 한 가지 선을 닦고, 한 가지 법을 비추고, 한 가지 행을 행하고, 한 가지 원 을 발하고, 한 가지 수기(授記)를 얻고, 한 가지 지혜에 머물러 구경(究竟)이란 생각을 내지 마 십시오, 한정된 마음[限量心]으로 여섯 바라밀을 행하거나 십지(十地)에 머무르거나 불국토를 맑 히거나 선지식을 섬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선근을 심어야 하고, 한량없는 보리의 도구를 모아야 하며, 한량없는 보리의 인(因)을 닦아야 하고, 한량없이 교묘한 회향(廻向)을 배워야 하며, 한량없는 중생계를 교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량없는 중생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한량없는 중생의 뿌리를 알아야 하고, 한량없는 중생 의 이해를 알아야 하고, 한량없는 중생의 행을 보아야 하고, 한량없는 중생을 조복해야 합니다. 또 한량없는 번뇌를 끊어야 하고, 한량없는 업의 버릇을 맑혀야 하고, 한량없는 사견(邪見)을 없애야 하고, 한량없이 물든 마음을 제거해야 하고, 한량없는 청정심을 발해야 하고, 한량없는 고통의 독화살을 뽑아야 하고, 한량없는 애욕의 바다를 말려야 하고, 한량없는 무명의 어둠을 깨 뜨려야 하고, 한량없는 교만의 산을 허물어야 하고, 한량없는 생사의 결박을 끊어야 하고, 한량 없는 존재의 흐름을 건너야 하고, 한량없이 태어나는 바다를 말려야 하고, 한량없는 중생들을 오 욕의 진창에서 나오게 하고, 한량없는 중생들을 삼계의 감옥에서 떠나게 하고, 한량없는 중생들 을 성스러운 길에 있게 합니다.”
그때 선재동자는 합장공경하며 미륵보살 마하살에게 말씀드렸다. “큰 성자시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 살도를 닦는지 알지 못합니다. 모든 여래께서 존자(尊者)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한 생[一生] 에 위없는 보리를 얻으라 하셨습니다.
큰 성자시여,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도를 닦아야, 그 닦고 배움을 따라 모든 불법을 빨리 갖출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해야 염려되는 중생을 다 제도할 수 있으며, 세 운 큰 원을 두루 채울 수 있으며, 일으킨 행을 두루 마칠 수 있으며,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널리 위로할 수 있으며, 자신을 등지지 않고 삼보(三寶)를 끊어지지 않게 하며, 모든 불보살의 종자를 헛되지 않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법안(法眼)을 지닐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은 일들을 말씀해 주 소서.” 미륵보살마하살은 선재동자의 온갖 공덕을 칭찬하여 무량 중생에게 보리심을 발하게 한 후, 선 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모든 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일체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 모든 부처님 법을 부지런히 구하기 위해 위없는 보리심을 발한 것이다. 그대는 좋은 이익을 얻었고, 사람의 몸을 얻었고, 수명이 길고, 여래의 출현을 만났고, 문수사 리 큰 선지식을 보았으니, 그대의 몸은 좋은 그릇이라 온갖 선근으로 윤택해졌다. 그대는 선한 법으로 유지되었으므로 이해와 욕구가 다 청정하였으며, 여러 부처님께서 함께 보호하고 염려한 바가 되었으며, 선지식들이 함께 거두어 주게 되었다.
왜냐하면 보리심은 씨앗과 같아 모든 불법을 내게 하며, 보리심은 좋은 밭과 같아 중생들의 깨 끗한 법을 자라게 하며, 보리심은 대지와 같아 세간을 지탱하며, 보리심은 맑은 물과 같아 모든 법뇌의 때를 씻어 주며, 보리심은 태풍과 같아 세간에 두루 걸림이 없다. 또 보리심은 타오르는 불과 같아 온갖 소견의 숲을 태우며, 보리심은 밝은 해와 같아 모든 세 간을 두루 비추며, 보리심은 보름달과 같아 깨끗한 법이 다 원만하며, 보리심은 밝은 등불과 같 아 갖가지 법의 광명을 발한다.
또한 보리심은 큰 산과 같아 모든 세간에서 우뚝 솟아 있으며, 보리심은 부처님의 탑과 같아 모든 세간에서 공양할바이다. 선남자여! 보리심은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니, 요약해 말하면, 보리심은 모 든 불법의 공덕과 같다. 왜냐하면, 보리심은 보살의 행을 낳게 하니 과거, 현재, 미래의 여래가 모두 보리심에서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없는 보리심을 내는 이는 이미 한량없는 공덕을 낸 것이며, 일체지의 길을 널리 거두어 가짐이다.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느냐고 했는데, 그대는 이 비로자나장엄장 큰 누각에 들어가 두루 살펴 보라. 곧 보살행을 배우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배우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할 것이다.”
이때 선재동자는 미륵보살마하살을 공경하며 오른쪽으로 돌고나서 여쭈었다. “원컨대 성자께서 이 누각문을 열어 제가 들어가게 하소서.” 미륵보살이 누각 앞에서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니 문이 곧 열리었다. 선재가 기뻐하며 들어 가니 문은 곧 닫기었다.
선재가 누각 안을 살펴보니, 넓고 크기가 무한하여 허공과 같았다. 아승지 보배로 땅이 되고, 아승지 궁전과 아승지 문과 아승지 창호, 아승지 섬돌, 아승지 난간, 아승지 길이 모두 칠보로 되어 있었다.
또 그 가운데 한량없는 누각이 있었는데, 크고 넓고 화려하기가 허공과 같아서 서로 장애되지 도 않고 어지럽게 섞이지도 않았다. 선재가 한 곳에서 모든 곳을 보듯이, 모든 곳에서도 다 이와 같이 보았다. 선재동자는 비로자나장엄장 누각이 이처럼 가지가지로 헤아릴 수 없이 자유자재한 경계를 보고 아주 기뻐했으며 몸과 마음이 유연해져서 모든 의혹이 사라졌다. 본 것은 잊지 않고 들은 것은 기억하며 생각이 어지럽지 않아 걸림없는 해탈문에 들어갔다. 마음을 두루 움직이며 모든 것을 두루 보고 널리 예경하였다.
잠깐 머리를 숙이자 미륵보살의 위신력으로 인해 자신의 몸이 누각마다 두루하여 있음을 보았 고, 갖가지 불가사의한 자재로운 경계를 보았다. 미륵보살이 처음 위없는 보리심을 발할 때의 이 름과 그 집안과 선지식의 깨우침으로 선근을 심던 일들을 보았다.
또 미륵보살이 처음 자심(慈心)삼매를 증득하고 난 그때부터 자씨(慈氏)라고 부르던 일을 보기 도 했고, 미륵보살이 묘행(妙行)을 닦으며 모든 바라밀을 이루던 일을 보기도 했고, 청정한 국토 를 성취하는 것을 보고, 여래의 바른 교법을 보호하며, 큰 법사가 되어 무생인(無生忍)을 얻고, 어느 여래에게 위없는 보리의 수기(授記)를 받던 일을 보기도 하였다.
또 여러 누각의 사방 벽은 온갖 보배로 장식되었는데, 낱낱 보배에서는 미륵보살이 과거세에 보살도를 수행하던 일을 나타내었다. 자신의 손과 발 등 온갖 지체를 보시하고, 병든 이를 치료 해주고, 길을 잘못 든 이에게 바른 길을 가르켜 주고, 혹은 뱃사공이 되어 바다를 건네 주던 일 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때 선재동자는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을 얻고, 시방을 보는 청정한 눈을 얻고, 잘 관찰하는 걸림없는 지혜를 얻고, 보살들의 자재한 지혜를 얻고, 보살들이 지혜의 자리에 들어간 광대한 이 해를 얻었기 때문에, 여러 누각 속에서 이와 같이 한량없고 불가사의하고 자재한 경계와 여러 가 지로 장엄된 일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사람이 꿈을 꾸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보는 것과 같았 다.
그때 미륵보살마하살이 신통력을 거두고 누각 안으로 들어와 손가락을 퉁겨 소리를 내고 선재 동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일어나라. 법의 바탕이 이와 같으니, 이는 보살의 모든 법을 아는 지혜의 인연의 현상이다. 이러한 자성(自性)이 환상과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영상같아서 다 성취하지 못 한다.” 선재동자는 이때 손가락 퉁기는 소리를 듣고 삼매에서 깨어났었다. 미륵보살이 다시 선재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가 보살의 불가사의한 자재해탈에 머물러 삼매의 기쁨을 받았으므로, 보살의 신통력을 지니고 도를 돕는 데서 흘러 나오는 원과 지혜로 나타난 여러 가지로 눈부시게 장엄한 궁전을 본 것이다. 보살의 행을 보고, 보살의 법을 듣고, 보살의 덕을 알고, 여래의 원을 이룬 것이다.”
선재동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반드시 보현보살을 뵙고 선근을 더욱 늘릴 것이며, 모든 부처님을 뵙고 보살의 광 대한 경계에 대해 궁극적인 이해를 내어 일체지를 얻을 것이다.’ 선재동자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일심으로 보현보살을 보려고 분발하여 정진하며 물러가지 않 았다. 넓은 눈으로 시방의 부처님과 보살들을 관찰하면서 보이는 것마다 다 보현보살을 뵙는다고 생각하였다.
지혜의 눈으로 도를 보니, 마음이 광대하기 허공과 같았고, 대비(大悲)가 견고하기 금강과 같 았으며, 미래가 다하도록 보현보살을 따라다니면서 순간마다 보현행을 수순하여 닦으려 하였고, 지혜를 성취하고 여래의 경지에 들어 보현의 자리에 머물려고 하였다. 이때 문득 보니, 보현보살이 여래 앞에 있는 대중 가운데서 보련화 사자좌에 앉아 있었다. 여 러 보살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가장 뛰어나 세간에 견줄 이가 없고, 지혜의 경지는 한도 끝도 없어 헤아리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려워 삼세 부처님과 같았으며, 보살들로는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다.
다시 보니, 보현보살의 몸에서 모든 세계의 미진수 광명구름을 내어 법계와 허공계의 모든 세 계에 두루하였고, 일체 중생의 괴로움과 근심을 없애어 보살들이 아주 기뻐하였다. 선재동자는 보현보살의 이와 같이 자재하고 신기한 경계를 보고 몸과 마음이 한량없이 기뻤다. 그리고 곧 열 가지 지헤바라밀을 얻었다.
즉, 순간마다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하는 지혜바라밀, 순간마다 모든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는 지혜바라밀, 순간마다 모든 여래께 공양하는 지혜바라밀, 순간마다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법 을 들고 받아지니는 지혜바라밀, 순간마다 모든 여래의 법륜을 생각하는 지혜바라밀, 순간마다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큰 신통을 아는 지혜바라밀, 순간마다 한 마디 법을 말하시는데 오는 세상이 끝나도록 변재가 다하지 않는 지혜바라밀, 순간마다 깊은 반야로 모든 법을 관찰하는 지 혜바라밀, 순간마다 모든 법계와 실상 바다에 들어가는 지혜바라밀, 순간마다 모든 중생의 마음 을 아는 지혜바라밀, 순간마다 보현보살의 지혜와 행이 모두 앞에 나타나는 지혜바라밀 등이다. 선재동자가 이 열 가지 지혜바라밀을 얻은 뒤 보현보살이 바른 손을 펴서 선재의 머리를 만졌 고, 머리를 만진 뒤에는 곧 모든 세계의 빠짐없는 삼매문을 얻었다.
원명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현재 한역본(漢譯本)으로는 권수에 따라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 번역한 60화엄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화엄, 반야(般若)가 번역한 40화엄 등 세 가지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통되었다.
60화엄에는 34품(品), 80화엄에는 39품이 들어 있으며, 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40화엄은 60권본과 80권본의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화엄경』의 완역본은 아니다.
이 한역본이 나타난 이래 우리나라 및 중국에 화엄사상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그 회통적인 철학성은 동양사상 속에서 하나의 강력한 흐름을 형성하였다.
이 경은 60화엄의 경우 7처(處:경을 설한 장소) 8회(會:경을 설하는 모임) 34품, 80화엄의 경우는 7처 9회 39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을 설한 장소를 60화엄에 의해서 살펴보면, 제1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와 제2 보광법당회(普光法堂會)는 지상(地上)이고, 제3 도리천회(忉利天會)와 제4 야마천궁회(夜摩天宮會), 제5 도솔천궁회(兜率天宮會), 제6 타화자재천궁회(他化自在天宮會)는 천상(天上)이며 제7은 다시 지상의 보광법당회와 제8 중각강당회(重閣講堂會)에서 설한다.
이 여덟 회좌(會座) 중 보광법당회가 두 번 있으므로 7처가 되고, 80화엄의 경우는 보광법당회가 세 번 있기 때문에 9회가 된다.
그 내용을 보면, 제1회는 석가모니불이 마가다국의 보리수나무 밑에서 이제 막 대각(大覺)을 이루고 묵묵히 앉아 광채를 발하고 있다. 그 둘레에는 많은 보살들이 있어 한 사람씩 일어나 부처님의 덕을 찬양한다. 이 때 석가모니는 이 경의 교주(敎主)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일체가 되어 있다.
제2회에서는 석가모니가 자리를 옮겨 보광법당의 사자좌(獅子座)에 앉아 있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먼저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四諦)의 법을 설한 뒤 10명의 보살들이 각각 열 가지의 심오한 진리를 설한다.
제3회부터는 설법 장소가 천상으로 옮겨진다. 제3회에서는 십주(十住)의 법을 설하고, 제4회에서는 십행(十行), 제5회에서는 십회향(十廻向), 제6회에서는 십지(十地)를 설한다. 이 제6회는 현재 범어의 원전이 남아 있는 십지품(十地品)이며, 『화엄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이 품은 『십지경(十地經)』으로 따로 편찬되었다.
『화엄경』과 『십지경』은 고려 및 조선 시대 승과(僧科)의 교종선(敎宗選) 시험과목으로 채택된 중요 경전이기도 하다. 이 십지품에서는 보살의 수행발전 단계를 열 가지로 나누어 설하고 있다.
십지의 제1은 환희지(歡喜地)로, 깨달음이 열려 기쁨이 넘쳐 있는 경지이다. 제2 이구지(離垢地)는 기본적인 도덕의 훈련 과정이며, 제3 명지(明地)는 무상(無常)의 성찰을 통하여 점차 지혜의 빛을 나타내며, 제4 염지(焰地)는 진리를 향한 열의로 그 지혜가 더욱 증대하며, 제5 난승지(難勝地)는 평등한 마음을 갖추어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지배를 받는 일이 없는 경지이다.
제6 현전지(現前地)는 십평등지(十平等地)를 갖추어 일체가 마음의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 허망한 것임을 깨달아 아는 경지이다.
제7 원행지(遠行地)는 일체불법(一切佛法)을 일으키는 경지로서 열반(涅槃)에도 생사(生死)에도 자유로이 출입하며, 제8 부동지(不動地)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는 경지로서 목적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이 자연히 솟아나오며, 제9 선혜지(善慧地)는 훌륭한 지혜를 성취하고 무애행(無碍行)이 이룩되는 경지로서 부처님의 법장(法藏:진리의 창고)에 들어가 불가사의한 큰 힘인 해탈의 지혜를 얻으며, 제10 법운지(法雲地)는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은 번뇌의 불길을 모조리 꺼 버린 해탈의 경지이다.
또한 이 십지품은 그 전체를 통하여 자기자신의 깨달음을 위해서 노력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한다는 이타행(利他行)의 수행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십지는 지혜와 자비가 완성됨에 따라 나타나는 여래성(如來性)의 흥기(興起)와 성기(性起)의 외적인 표현이며, 그에 관한 이론적 체계화로 평가되고 있다.
제7회는 다시 지상의 보광법당에서 지금까지의 설법을 요약해서 설한다. 제8회는 입법계품으로 이 또한 범어 원전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는 선재(善財)라는 동자가 53인의 선지식을 찾아 도(道)를 구하는 과정을 적어 정진이 곧 불교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만나는 선지식 중에는 뛰어난 보살만이 아니라 비구·비구니·소년·소녀·의사·장자(長者)·창부(娼婦)·외도(外道) 등 갖가지 직업과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다.
이는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보리심의 유무가 문제라는 대승불교의 수행 이상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 경에는 십현연기무애법문(十玄緣起無碍法門)·사법계설(四法界說)·육상원융론(六相圓融論) 등 불교의 세계관 및 인생관 등의 주요 사상들이 함축성 있게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이 경을 가져와서 강설한 이후 유포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경이 화엄사상으로서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이 경을 연구하고 화엄종을 창종함에 따라 본격화되었다.
그 뒤 우리나라 불교 교학(敎學)의 중심은 이 경과 『법화경(法華經)』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하였다. 특히 이 경은 선종(禪宗)에서도 그 연구가 활발하여 소의경전으로 삼았으므로, 선종이 주류를 이루었던 조선시대에도 선승들이 한결같이 이 경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특이한 흐름을 보이기도 하였다.
“불자여, 그 도리는 심원하여 알기 어렵고 믿기 어렵고 또한 이해하기가 어려우며, 설하기도 어 렵고 판별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그대에게 설하고자 합니다. 불자여, 예를 들면 어던 사람이 동방의 무수한 세계의 중생을 오랫동안 공양하고 그 뒤에 오계 (五戒)를 행한다고 합시다. 또 동방의 세계에서와 같이 사방팔방, 시방의 세계의 중생에게도 그와 같이 한다고 합시다. 이렇게 한다면 이 사람의 공덕은 많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제석천이 말했다.
“불자여, 모든 여래 이외에는 이 사람의 공덕과 비교될만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법혜보살이 제석천을 향하여 말했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이 아무리 많아도 초발심을 한 보살의 공덕에는 비할 수 없습니다. 비유 한다면, 그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백천분의 일, 억분, 백억분, 천억분 내지 헤아릴 수 없으며, 따 라서 그 공덕은 다함이 없고, 설할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불자여, 또 어느 사람이 시방의 무수한 세계의 중생을 오랫동안 공양하고 그 뒤에 십선(十善)을 행한다고 합시다.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중생에게 혜택을 베풀고자 하는 자비심으로 물질을 초월한 경계에 안정하도록 하며, 한 번 다시 태어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경계[一來]에 이르도록 하고, 미 혹의 세계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경계[不還]와 아라한(阿羅漢)의 경계에 이르도록 하며, 최후에 는 연각(緣覺)의 깨달음을 얻게 한다고 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이 사람의 공덕은 많다고 생각합니 까.”
제석천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 이외에는 이 사람의 공덕을 낱낱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법혜보살은 제석천을 향하여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초발심한 보살의 공덕에 비한다면 그 백분의 일, 천분의 일에도 지나지 않습니다. 초발심을 한 보살의 공덕은 헤아릴 수도 없으며 설할 수 없을 만 큼 많습니다.
불자여, 왜냐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은 시방세계의 무수한 중생을 오랫동안 공양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무수한 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오계(五戒)와 십선(十善), 사선(四嬋),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색정(四無色定), 예류(預流), 일래(一來), 불환(不還), 아라한(阿羅漢), 연각(緣覺) 등의 길을 행하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모든 보살이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菩提心]을 일으켰던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모든 세계는 스스로 청정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며, 모든 중생을 구하 고 깨달음을 열고자 생각하였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의 번뇌와 그 오염 그리고 이별의 아쉬움, 마 음의 움직임을 알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여기에서 죽고 저기에서 태어나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또 일체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평등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또 다음과 같은 예가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한 순간에 무량한 세계를 통과할 수 있을 만한 신통력을 가지고 그에 필적할 만한 긴 시간 동안 동방을 향하여 나아간다 하여도 세계의 끝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또 두 번째 사람이 앞 사람의 뒤를 이어서 다시 긴 시간동안 동방을 향하여 나아간다 하여도 역 시 세계의 끝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제 삼, 제 사, 내지 제 십의 사람이 동방을 향하여 나아간다 하여도 마찬가지로 그 끝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또 이 동방의 경우와 같이 시방세계에 있어서도 모두 합쳐서 백 명의 사람이 저마다의 방향을 향 하여 나아갈 때, 설사 시방의 세계의 끝에 이를 수가 있다고 가정한다 하여도 초발심을 한 보살의 공덕의 양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발심을 한 보살은 한정된 세계의 중생만을 위하여 보리심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 때 문입니다. 시방의 무변한 세계의 실정을 알고, 그 세계의 일체의 중생을 구하고자 생각하기 때문에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입니다.
또 작은 세계는 곧 커다란 세계라고 알고, 커다란 세계는 곧 작은 세계임을 알며, 넓은 세계는 곧 좁은 세계임을 알고, 좁은 세계는 곧 넓은 세계임을 알며, 하나의 세계는 곧 무량한 세계임을 알고, 무량한 세계는 곧 하나의 세계임을 알며, 무량한 세계는 곧 하나의 세계에 드는 것임을 알 고, 하나의 세계는 곧 무량한 세계에 드는 것임을 압니다.
또 더럽혀진 세계는 곧 깨끗한 세계임을 알고, 깨끗한 세계는 곧 더럽혀진 세계임을 알며, 하나 의 털구멍 속에 일체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일체의 세계 속에서 일체의 털구멍의 성질을 알며, 하 나의 세계로부터 일체의 세계가 생하는 것을 알고, 일체의 세계는 흡사 허공과 같음을 압니다. 또 일념 사이에 일체의 세계를 낱낱이 알고자 하기 때문에 보살은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향하여 마 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블자여, 또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 수 있습니다. 신통력을 가지고는 한 순간에 무량한 세계에 사는 모든 중생의 소망을 알 수 있지만, 사람이 아 득한 시간에 걸쳐 제 아무리 능력을 다해도 동방의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의 소망을 알 수는 없다 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 이, 제 삼, 내지 제 십의 사람이 그 뒤를 이어서 시간을 다해도 동방세계에 사는 중생의 소망을 낱낱이 알 수는 없습니다. 또 시방세계의 중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가령 시방의 무변한 세계에 사는 중생의 소망을 낱낱이 알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초발심 을 한 보살의 공덕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발심의 보살은 한정된 세계의 중생의 소망을 알기 위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위없는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킨 것은 일체 중생의 다함이 없는 소망의 대해(大海)를 알고자 하고, 중생의 욕망은 하나의 욕망이며, 하나의 욕망은 일체의 욕망임을 알고자 하며, 또 착 함[善]과 착하지 않음[不善]에 대한 욕망, 세간 혹은 출세간(出世間}에 대한 욕망, 커다란 지혜의 욕망, 청정한 욕망, 장애가 없는 지혜의 욕망, 장애를 받지 않는 지혜를 갖춘 욕망 등을 낱낱이 알 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혹은 또 중생의 감각기관, 희망, 방편, 마음, 움직임, 모든 업, 번뇌 등을 낱낱이 알고자 하는 것을 비유로 들 수 있습니다.
불자여! 혹은 또 다음과 같은 비유도 들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한 찰나에 동방의 무변한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부처님과 그 일체의 중생을 공경하고 찬탄, 예배하며 존경하고, 또 온갖 공양을 다하고 장엄할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지고 아득 한 오랜 시간을 다한다고 하면, 이같이 하여 동방세계와 마찬가지로 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과 일 체 중생을 공양할 수 있다고 하면, 불자여, 어떻겠습니까, 이 사람의 공덕은 많다고 생각합니까.” 제석천은 이에 대답하였다.
“오직 부처님만이 이 사람의 공덕을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법혜보살은 말했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초발심한 보살의 공덕에 비한다면, 그 백분의 일, 천분의 일에도 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초발심한 보살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따라서 설할 수도 없 습니다.초발심을 발한 보살이 보리심을 내면, 무한한 과거로부터 활동해 온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알 수 가 있으며, 무한한 미래를 향하여 활동하고자 하는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믿을 수가 있으며, 현재 의 모든 부처님이 설하는 지혜를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이 보살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믿고 가르침을 받으며 행하고 체득하여 모든 부처님 들의 공덕과 같게 됩니다. 왜냐하면, 초발심을 발한 보살이 최고의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다음의 이유에 근 거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보살은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본질을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커다란 자비심을 가지고 모 든 세계의 중생을 구하고자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 모든 중생의 오염이나 청정함이 생기는 실정을 알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중생의 마음의 움직임이나 남은 업으로 인한 번뇌를 낱낱이 알기 때문이며, 또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깨달음을 알고자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 삼세의 부처님께서 가지신 힘을 이 어받아 그 한없는 평등의 지혜를 얻고자 하기 때문에 이 보살은 위없는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 킨 것입니다.
이 초발심을 발한 보살이야말로 실은 부처님인 것입니다. 이 보살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 와 마찬가지로 여래의 한마음[一心]과 한량없는 마음[無量心]과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지혜 를 얻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세계를 비추고 모든 악도의 고통을 잠재우며, 모든 세계에서 성불하는 것을 실천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의 기쁨을 얻게 하고, 그 깊은 진리의 세계를 깨닫게 합니다. 또 모든 부처님의 본성을 지키며, 모든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을 얻고 있습니다.
초발심을 발한 보살은 항상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모든 보살 연각(緣覺)과 성문(聲 聞) 내지 그 법(法), 세간(世間), 출세간(出世間)의 법, 중생의 법 등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깨달 음을 구하며 그 지혜는 장애를 받는 일이 없습니다.”
그때 부처님의 신통력과 초발심을 발한 보살의 공덕을 찬탄하는 힘에 의하여 시방의 끝없는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리고 하늘의 꽃과 하늘의 향기와 하늘의 꽃다발과 하 늘의 보배가 비처럼 뿌려져 미묘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때 끝없는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은 낱낱이 그 몸을 법혜보살의 앞에 나타내시었다. 그리고 법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도다. 불자여, 그대는 능히 초발심의 공덕을 설하였다.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 님도 또한 낱낱이 초발심의 공덕을 설하고 있다. 그대가 초발심 보살의 공덕을 설하였을 때, 시방 의 중생은 모두 초발심 공덕을 얻고 무상한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킨다. 우리는 이제 중생들에 게 약속하나니 그들은 미래세에 저마다 동시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니라. 우리들은 미래의 모든 보 살들을 위하여 이 초발심의 법을 지키고 전하여야 한다.”
법혜보살이 이와 같이 사바세계의 수미산 정상(頂上)에서 초발심의 법을 설하고 중생을 교화한 것과 같이, 시방의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모든 세계 안에서도 초발심의 법을 설하고 중 생을 교화하였다. 그리고 이 법을 설하는 자를 각각 법혜라고 이름하였다.
그것은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하며, 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에 의하며, 지혜의 광명이 남김없이 비추는 것에 의하며, 제일의(第一義)를 깨닫는 것에 의하며, 모든 보살은 기쁨에 넘쳐 있음에 의하 며,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 것에 의하며, 모든 부처님의 평등함을 아는 것에 의하며, 또 법 계는 하나이며 둘이 아님을 깨닫는 것에 의하기 때문이다.”
그때 법혜보살은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관찰하고서, 중생의 미혹과 오염을 제거하고, 넓은 해탈을 얻게 하고자, 또 스스로의 깊고 청정한 공덕을 나타내기 위하여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다음과 같 이 게송을 읊었다.
“초발심의 보살은 일체 중생 안에서 항상 분노를 떠나 대자비를 일으키며, 남을 이롭게 하는 마 음을 기릅니다. 그 자비의 빛은 시방세계를 비추어 중생을 위한 의지처가 되도록 하며, 모든 부처 님은 이 보살을 지키고자 염원합니다.
그 어느 것도 이 보살의 신심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흡사 금강과 같이 견고하며, 항상 모든 여래의 밑에서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합니다. 보살은 부처님의 지혜를 완성하여 그 뜻에 막힘이 없습니다. 또 진실한 세계를 분명하게 깨달아 마음은 적멸하고 허망을 떠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힘은 고요하고 평안하며 지혜의 힘은 청 정합니다.
보살은 미래의 끝까지 다하여도 중생에게 힘을 바쳐 드디어는 해탈을 얻게 하고자 생각하며 다함 없는 생사 안에서 어떠한 지옥의 괴로움을 받아도 중생을 위하여 힘을 다합니다. 하나의 털구멍 안 에서 시방의 세계를 보니, 그 세계는 미묘하게 장엄한 모습을 띠고 있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 이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만약 시방세계 일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 받들고자 하며, 또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공덕을 얻고자 원하며, 혹은 또 일체 중생의 끊임없는 생사의 괴로움을 없애고자 생각한다면 진정으로 서 원을 세워서 곧 깨달음을 향한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제 17장 십행품(十行品)
그때 공덕림(功德林)보살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고 선복삼매(善伏三昧)에 들어 헤아릴 수 없 는 여러 부처님을 만나 뵈었다.
여러 부처님은 공덕림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거룩한 일이다. 불자여, 그대는 능히 이 선복삼매에 들었다. 시방 세계의 수없는 여러 부처님이 신통력을 주었기 때문에 그대는 이 선복삼매에 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로자 나불의 본원력과 위신력(威神力)이, 그리고 여러 보살의 선근의 힘이 그대로 하여금 이 삼매에 들게 하고 마침내 깊고 깊은 법을 설하게 할 것이다.
즉 보살이 십행(十行)을 일으키는 것은 일체의 지혜를 증장하려 함이요, 모든 장애를 떠나서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며, 진실에 사는 한량없는 방편을 얻기 위한 것이고,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고 몸으로 행하기 위해서이다.
불자여! 그대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이 미묘한 법을 설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부처님은 공덕림보살에게 걸림 없는 지혜, 안정된 지혜, 스승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혜, 한량없는 지혜, 물러섬이 없는 지혜를 주시었다. 왜냐하면 이 삼매력은 법에 의해서 성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여러 부처님은 제각기 오른손을 내밀어 공덕림보살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공덕림보 살은 삼매에서 일어나 많은 보살들을 향해 십행의 설법을 시작하였다. “여러 불자들이여, 보살의 행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 광대함은 마치 법계와 같으며 무량 무변하기가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삼세의 여러 부처님이 행하는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보살에게는 삼세의 여러 부처님이 설하신 십행(十行)이 있습니다. 십행이란 무엇입니까.
불자여, 첫째 보살의 환희행(歡喜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평등한 마음을 갖고 자기의 모든 것을 일체 중생에게 보시합니다. 보시하고 나서도 아 까운 생각이 없으며 과보를 바라지 않고 명예를 바라지 않으며 좋은 세계에 태어나려고 생각하지 도 않습니다.
오직 바라는 것은 일체 중생을 구하고 거두며, 여러 부처님의 행을 생각하고 배우고 몸에 지니고 실현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환희행입니다. 보살이 환희행을 닦을 때 일체 중생은 환희하고 공경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그곳으로 가서 재보(財寶)를 줍니다.
수 없는 중생이 보살에게로 와서 ‘우리는 가난하고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아무쪼록 자비로 써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하고 말하면, 보살은 그 요구에 응하여 모두 다 만족시키고 기쁘게 해 주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중생이 구하는 바가 있어서 오면 보살은 위없는 대자비심을 일으켜 더욱 환희 하여 이렇게 생 각합니다.
‘나는 바라던 일을 얻었다. 이들 중생은 나의 복전(福田)이며 나의 선지식이다. 내가 구하지 않았는데도 이 중생들은 와서 나를 가르치고 나를 발심시키고 불도를 수행시킨다. 나는 이와 같 이 수행하여 널리 중생을 기쁘게 해주자. 내가 닦은 공덕으로 어서 속히 청정의 법신을 완성하고 중생의 요구에 응하여 모두 다 환희를 얻을 수 있기를.
또 이 공덕으로 여러 중생이 모두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를. 나는 먼저 일체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키자. 그 후에 나의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완성하리 라.’
보살이 이렇게 생각할 때 보살은 주는 것을 보지 않고, 그 받는 것을 보지 않고, 재물을 보지 않고, 복전을 보지 않고, 업보를 보지 않고 결과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보살은 삼세의 중생을 관찰하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중생은 어리석음에 덮이고 번뇌에 싸이고 항상 생사 속에서 흔들리고 고해(苦海)를 헤매며 조금도 견고한 진실을 얻지 못하고 있다.나는 여러 부처님들이 배우신 것을 모두 배우고 중생을 위하여 힘을 다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얻게 하자.’ 이것이 보살의 환희행입니다.
불자여, 두 번째로 보살의 요익행(饒益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계율을 청정하게 지켜서 어떠한 감각의 대상에 있어서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중생 을 위해서도 무집착의 법을 설하여 스스로의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굳게 계율을 견고하 게 가지고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모든 번뇌와 두려움, 슬픔, 고통을 떠나 중생의 소원을 어기지 않고 아침에는 위없는 최 고의 깨달음을 얻도록 하자.’보살이 이와 같이 계율을 수호할 때 여러 마왕이 아름다운 천녀를 수없이 데리고 와서 보살을 유혹하려고 하여도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 오욕(五慾)은 불도의 장애가 된다. 이에 집착해서는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수 없 다.’ 그래서 보살은 직접 부처님을 만나뵈온이래 한 생각의 욕심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기 가 마치 부처님과 같아졌습니다.
그때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중생은 광야와 같은 생사 가운데서 오욕을 생각하고 오욕을 즐기며 오욕에 집착하고 오욕에 헤매며 오욕에 침몰하며 오욕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여러 마왕, 천녀 및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의 계율을 세우게 하자. 또 가르쳐서 불퇴전(不退轉)의 경지를 얻게 하고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게 하자. 왜나 하면 이것이 내가 할 일이며 여러 부처님도 모두 이와 같이 행하였기 때문이다.
온갖 법은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하며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견고하지도 못하다. 그것은 마치 환상처럼 중생을 현혹케 한다.모든 존재는 꿈과 같고 번개와 같이 무상한 것이라고 깨닫는 사람은 능히 생사를 헤아려 열반 에 통달할 수가 있다. 또한 번뇌를 극복하지 못한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극복케 하고, 고요하 지 못한 중생들로 하여금 고요하게 하며, 청정하지 못한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케 하고, 열반에 통달하지 못한 중생들로 하여금 열반에 통달케 할 수가 있다.’
이것이 보살의 요익행입니다.
불자여, 세 번째로 보살의 무에한행(無喪限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항상 인내의 법을 행하고 스스로 겸손하고 남을 공경하며 온유한 얼굴로 상냥한 말을 쓰고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하지도 않으며 항상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항상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고 모든 악을 떠나게 하자. 즉 탐욕, 노여움, 어리석은 마 음, 교만심, 어지러운 마음과 질투심을 떠나게 하여 큰 지혜 속에서 안온케 하자.’
보살이 이와 같이 인내의 법을 완성하면, 예컨대 수 없는 중생이 나쁜 소리를 내어 보살을 욕 하고 헐뜯고 또한 여러 무기로써 박해를 가하더라도 보살은 언제나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이 고통으로 해서 노여운 생각을 일으킨다면 나 스스로 번뇌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요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않으며, 자기 몸을 애착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물며 어떻게 남으로 하여금 환희의 마음을 일으켜 망집에서 빠져 나오게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아득한 옛적부터 여러 가지 고뇌를 받았다. 그러므로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 스스로 번 뇌를 극복하자. 왜냐하면 나는 위없는 법에서 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보살은 중생으로 하여금 이 법을 얻게 하기를 원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 몸은 공적(空寂)하고 나도 없으며, 나에게 속한 것도 없으며 진실의 본성도 없다. 모든 고 락도 그 실체가 없다. 모든 것은 공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능히 깨닫고 사람들을 위해 널리 설하 리라.
가령 내가 지금 고뇌나 박해를 겪더라도 능히 그것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 즉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중생을 안락케하여 중생을 거두어 붙들고 중생으로 하여금 불퇴전의 경지를 얻게 하여 마 침내는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시키고자 생각하여, 부처님이 행하던 법을 나도 또한 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보살의 무에한행입니다.
불자여, 네 번째로 보살의 무진행(無盡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항상 많은 노력을 하고 정진을 행합니다. 보살은 오욕 때문에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노여움, 어리석음, 교만, 질투, 원망 때문에 번뇌하 는 일이 없습니다. 또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어떠한 중생도 괴롭히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정진을 행한다. 또 모든 번뇌를 떠나려고 생 각하여 모든 중생의 생사, 번뇌, 희망, 마음의 움직임을 알려고 생각하며, 여러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알려고 생각하고, 청정한 평등의 법을 알려고 생각하고, 여러 부처님은 무량무변하여 불가 사의하다는 것을 알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진을 행한다.’
보살이 이와 같은 정진을 완성할 때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물을 것입니다. ‘수 없는 세계의 하나 하나의 중생을 위해 당신은 천만억년 동안 지옥의 고통을 받고 그 중생 들로 하여금 열반에 들어가게 하려고 생각합니까.
또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수 없는 중생들에게 가지가지 낙을 받게 하여도 당신은 낱낱이 지옥의 고통을 겪은 후 비로소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생각합니까.’ 이에 보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나는 수 없는 세계의 하나 하나의 중생을 위하여 지옥의 고통을 받으리라. 또한 여러 부처님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에게 기쁨을 주어도 나는 지옥의 고통을 두루 떠맡은 후에야 비로소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리라.’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예컨대 당신이 한 개의 털끝으로 큰 바다의 물을 찍어내어 그 바다를 마르게 하고, 또한 수 없는 세계를 부수어 티끌로 만든 후, 그 티끌을 낱낱이 셀 정도의 수많은 겁을 지내도 당신은 진 리를 구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겠습니까?’ 보살은 이와 같은 말을 들어도 결코 퇴전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큰 기쁨과 노력으로 정진 을 행하고 그리고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바를 얻을 수가 있다.
무량무변의 세계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은 나에 의해서 영원히 고통을 벗어날 것이다.’ 다시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일체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마침내 모두 열반을 얻게 할 것이다.’ 이것이 보살의 무진행입니다.
불자여, 다섯 번째로 보살의 이치란행(離癡亂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을 산란케 하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정법을 들어왔습니다.
보살은 정법을 들으면서 아직 일찍이 정법에서 물러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불도를 행할 때 아직 일찍이 중생의 삼매를 산란시킨 일이 없고 또한 정법이나 지혜를 끊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남의 험담을 들어도, 또한 칭찬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습니다. 선정(禪 定)도 산란치 않고, 보살행도 산란치 않고, 보리심을 성숙시키는 데도 산란치 않고, 염불 삼매도 산란치 않으며, 중생을 가르쳐 인도하는 지혜도 산란치 않습니다.
보살은 선정 가운데서 모든 음성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본성을 알고 있습니다. 가령 다른 사람 으로부터 좋고 나쁜 소리를 들어도 애증(愛憎)의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살 은 모든 소리는 실체가 없고 무차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동작, 말, 마음이 적정하므로 법에서 퇴전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정에 안주하여 지혜는 깊어지고, 모든 음성을 떠난 삼매를 얻어 자비의 마음을 키우고, 일념 일념 속에서 한량 없는 삼매를 얻고, 마침내는 일체의 지혜를 완성하게 할 것입니다.
보살은 다른 사람의 나쁜 소리를 듣고 나서도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마음으로 안락케 하고 모든 지혜를 얻게 하여 마침내는 큰 열반의 세계를 완성시킬 것이다.’ 이것이 보살의 이치란행입니다.
불자여, 여섯 번째로 보살의 선현행(先現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동작, 말, 마음이 청정하며 모든 것이 실체가 없다는 지혜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보살의 동작, 말 마음에는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의 행동은 의지하는 곳 이 없고 머무르는 곳이 없습니다. 다만 마음에 따라 나타나고 마음에 따라 움직입니다.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일체 중생은 자성(自性)이 없는 것을 자성으로 삼고, 일체의 것은 적멸을 성품으로 삼고, 일 체 국토는 형체가 없음으로 형체를 삼았다. 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오직 말뿐이고, 모든 말이 여러 법 가운데 의지한 곳이 없고 모든 법이 말 가운데 의지한 곳이 없다.’ 보살은 이와 같이 깊은 진리를 깨닫고, 모든 세계를 두루 다니며 고요한 것을 알고, 일체 여러 부처님의 심심한 묘법을 깨닫고, 불법과 세간법과는 동일하여 구별이 없다고 깨닫고 있습니다. 세간의 법은 부처님의 법과 일치하며 부처님의 법은 세간의 법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부처님의 법과 세간의 법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보살은 삼세의 평등한 진리에 안주하여 자비심을 버리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는 마음 을 버리지 않고, 대자대비의 마음을 성숙시켜서 일체 중생을 구하기를 원합니다.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내가 중생의 덕을 완성시키지 않으면 누가 완성시킬 수 있겠는가. 내가 중생의 번뇌를 극복하 지 않으면 누가 극복시킬 수 있겠는가. 내가 중생의 고뇌를 가라앉히지 않으면 누가 가라앉힐 수 있겠는가. 내가 중생의 마음을 청정케 하지 않으면 누가 청정케 할 수 있겠는가.’ 또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중생의 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나 홀로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잘못이 다. 나는 우선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며 한없는 겁 동안 보살행을 수행하여 중생의 덕을 완성시 키자.’
보살이 이와 같은 행에 안주할 때, 여러 천인,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이 보살을 보고 마음으로 부터 환희하고 공경할 것입니다. 만약 중생이 이 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며 그 법에 따르면 마침내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얻 을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선현행입니다.
불자여, 일곱 번째로 보살의 무착행(無着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생각하며, 수 없는 불국토를 관찰하고, 수 없는 여래가 계신 곳 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공양합니다.
보살은 부처님의 광명을 받아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또 부처님의 설법을 들어도 혹은 시방 세계와 부처님과 보살과 일체 대중 속에 있어도 집착이 없습니다. 보살은 청정하지 않은 나 라를 보아도 마음에 미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그 마음이 적멸(寂滅)하고 모든 것은 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것은 청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고, 암흑도 아니며, 광명도 아니고, 분별도 없으며, 무분별도 없고, 희망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며, 안락도 아니고, 위험도 아니며, 정도도 아니고, 사도(邪道)도 아니라고.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것의 진실한 모습을 관찰하고, 중생의 본성에 들어가 교화하고 인도하 여 덕을 완성하였으므로 집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또 보살은 보살의 마음을 버리지 않기에 부처님의 세계에 머물면서도 집착하지 않고, 여러 가 지 말에도 집착하지 않고, 중생의 속에 들어가도 그 속에 집착하지 않고, 여러 선정을 분별하고 그 안에 들어가도 마음에 집착함이 없으며,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들어가 그 불국토를 보아도 집착하지 않고, 혹은 그 불국토를 떠날 때에도 미련을 갖지 않습니다.
그때 보살은 일체 중생이 여러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대비심을 일으켜 다음과 같이 생각 합니다.
‘나는 시방 세계의 하나 하나의 중생을 위해 한량없는 겁을 지내면서 항상 중생과 더불어 지내 고 그 덕을 성취시키며 어떠한 경우에도 중생을 버리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생각 생각마다 대비심을 일으켜서 끊어지는 일이 없고 또 중생에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또 보살은 모든 보살행을 학습하고 몸에 갖추었으나 신체에 집착하지 않고, 진리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소망에 집착하지 않고, 선정에 집착하지 않고, 적정(寂靜)에 집착 하지 않고, 깊은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 인도하여 그 덕을 성취시키는 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세계는 환상과 같고 여러 부처님의 설법은 번개와 같고 보살의 행동은 꿈과 같고 듣는 불법은 메아리와 같다.’
보살은 일념 속에서 널리 시방 세계에 충만하여 보살의 행을 거둡니다. 그 행의 광대함은 마치 법계와 같으며 무량무변하기가 마치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온갖 것이 무아(無我)라는 것을 관찰하였기에, 대비심을 일으켜 모든 사람들 을 구하고, 아직 덕을 성취하지 못한 사람은 성취케 하고, 아직 번뇌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번 뇌를 극복하게 하고, 세간을 초월해 있으면서 더구나 세간에 따르게 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무착행입니다.
불자여, 여덟 번째로 보살의 존중행(尊重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항상 여러 부처님의 훌륭한 진리를 즐기고 오로지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여 잠시 동안도 보살의 대원(大願)을 버리지 않고 한량없는 겁 동안 보살의 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보살은 생각 생각마다 끝없는 생사의 고통을 벗으려는 대원을 키우고 있습니다. 만약 중생이 이 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고 또한 그 소원을 들을 수가 있다면 중생은 불퇴전의 자리에 머물러 반드시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보살은 한 중생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며 많은 중생에게 집착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많은 중생 을 소홀히 여기지도 않으며, 한 중생에게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는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깊은 진리의 세계를 깨닫고 형체 없는 형체로 머물면서 온갖 불국토에 몸을 나타내어도 그 불국토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또한 보살은 모든 일에 대하여 욕망을 떠나 있어도 보살의 도를 그만두지 아니하고 보살의 행 을 버리지 않습니다.
보살이 지니고 있는 공덕의 보물 창고는 다할 수가 없으며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는 것도 또 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즉, 보살은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해 있는 것도 아니며 도달해 있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세간의 일도 아니며 부처님의 진리도 아니고 범부도 아닙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지혜의 마음을 성취하여 항상 보살의 행을 닦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나쁜 길에서 떠나게 하고,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삼세의 여러 부처님의 진리 속에 편안히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모든 중생은 은혜와 옳은 것[思議]을 모르고 서로 해치며, 사심이 불타오르고 정도(正道)를 어겨서 번뇌가 많으며, 무지의 어둠에 덮여 있다. 나는 오로지 일체 중생의 번뇌를 극복하고 일 체 중생을 청정케 하고 또한 구하려고 생각할 뿐이다.’ 이것이 보살의 존중행입니다.
불자여, 아홉 번째로 보살의 선법행(善法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일체 중생을 위하여 청정한 진리의 연못이 되며 정법을 수호하여 부처가 될 씨앗[佛種] 이 끊어지지 않게 합니다.
보살은 중생의 바람과 능력에 따라 설하고 하나 하나의 말에 한량없는 의미를 담고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가령 중생이 수 없는 말을 알고 한량없는 숙업이나 인과응보를 알고 있고, 그와 같은 중생이 한량없이 세계에 충만해 있어도, 보살은 그 안에 있으면서 진리의 말로써 이들 사람들의 마음을 눈뜨게 합니다.
그때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한 오라기 털끝 만한 곳에도 잠깐 사이에 수 없는 중생이 와서 모인다. 이와 같이 해서 일념 일념 사이에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모이더라도 중생은 다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중생들의 말은 같지 아니하고 그 물음은 제각기 다르더라도, 나는 그 중생의 문제를 마 음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모두 들어서 단 한 마디로써 의문의 그물을 부수고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기쁘게 할 것이다.’
보살이 설법하는 말은 진실이며, 한 마디 한 마디 가운데 한량없는 지혜가 담겨져 있으며, 그 지혜의 광명은 일체의 세계를 비추고 중생의 공덕을 완성합니다. 보살은 선법행에 머물며 스스로 청정한 가운데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합니다. 불자여, 이 보살에게는 열 가지 몸이 있습니다.
첫째, 무량무변의 법계에 들어가는 몸입니다. 그것은 일체 세간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둘째, 미래신(未來身)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국토에서도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셋째, 불생신(不生身)입니다. 그것은 일찍이 난 일이 없다는 진리를 얻고 있습니다.
넷째, 불멸신(不滅身)입니다. 그것은 일찍이 멸한 일이 없다는 진리를 얻고 있습니다.
다섯째, 진실신(眞實身)입니다. 그것은 진실의 도리를 얻고 있습니다.
여섯째, 무지를 떠나 있는 몸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바람에 응하여 교화하고 인도합니다.
일곱째, 과거도 미래도 없는 몸입니다. 그것은 여기서 죽고 저기서 난다는 일이 전혀 없습니 다.
여덟째, 불괴(不壞)의 몸입니다. 그것은 법계의 본성은 파괴할 수가 없다는 진리를 얻고 있습 니다.
아홉째, 일상(一相)의 몸입니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낼 도리가 없습니다.
열째, 무상(無相)의 몸입니다. 그것은 법이 형체를 잘 관찰하고 있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은 열 가지 몸을 완성하여 일체 중생을 위하여 스스로 집이 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선(善)의 능력을 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을 구호합니다. 왜냐하면 중생에게 두려움이 없는 마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의 귀의처가 됩니다. 왜냐하면 중생으로 하여금 평안한 세계에 안주하도록 하 기 때문입니다.보살은 일체 중생의 지도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중생에게 무상도(無上道)에 이르는 문을 열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의 스승이 됩니다. 왜냐하면 중생으로 하여금 진실의 법에 들게 하기 때문입 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의 등불이 됩니다. 왜냐하면 중생에게 인과응보를 환히 보게 하기 때문입니 다. 보살은 일체 중생의 밝은 지혜가 됩니다. 왜냐하면 중생으로 하여금 미묘한 불법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의 횃불이 됩니다. 왜냐하면 중생에게 여래의 자재력(自在力)을 나타내기 때 문입니다. 이 보살은 선법행에 머물러 일체 중생을 위하여 청정한 진리의 연못이 됩니다. 왜냐하면 보살 은 심심 미묘한 불법의 근원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선법행입니다.
불자여, 열 번째로 보살의 진실행(眞實行)이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진리의 말을 성취하고 그 말대로 행하고 또 행하는 대로 설법합니다. 보살은 삼세 부처님들의 진실의 말을 배우며 삼세 부처님들의 본성에 들어가 삼세 부처님들의 공덕과 함께 합니다. 보살은 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일체 중생이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이것을 구하려고 생각한다. 만약 아 직 중생을 구하기 전에 스스로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이룬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나는 먼저 보살의 대원을 만족한 후,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와 무여 열반(無餘涅 槃)을 얻게 하며 성불케 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은 나에게 의뢰하여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보리심을 일으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종류의 지혜를 얻게 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체 중생 가운데 가장 으뜸이다. 왜냐하면 중생에게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일체의 암흑을 떠나 있다. 왜냐하면 중생의 끝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을 거두고 있다. 왜냐하면 삼세 부처님들에게 수호되고 생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살은 본래의 서원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최고의 지혜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보살은 일체 중생의 바람에 응하여 교화하고 인도하며 그 본래의 소원에 따라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키고 모두 청정케 합니다. 보살은 생각 생각마다 널리 시방의 세계에 유행(遊行)하며, 생각 생각마다 한량없는 부처님 나 라에 두루 나아가며 생각 생각마다 한량없는 부처님들을 만나 뵙니다.
보살은 여래의 자재한 신통력을 나타내며, 그 마음은 법계와 허공계와 동등합니다. 그 몸은 한 량없어 중생의 바람에 응하여 나타나고, 몸과 마음 모두가 방해를 받는 일이 없으며 의지함이 없 습니다. 보살은 자신 가운데 일체 중생, 일체 법과 삼세의 여러 부처님들이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보살은 중생의 갖가지 생각과 갖가지 욕망과 갖가지의 업보를 알며, 중생의 요구에 응하여 그 몸을 나타내고 중생의 번뇌를 가라앉힙니다.
보살은 대비심에 머물러 부처님의 큰 가르침을 실천하며 적정(寂靜)의 세계를 관찰하고 있습니 다. 보살은 또 부처님의 위신력을 얻어 자유자재로 보배로 엮은 그물과 같은[因陀羅綱]법계에 들 어 여래의 해탈을 성취하고, 지혜의 큰 바다를 관찰하여 항상 일체 중생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 다. 이것이 보살의 진실행입니다.”
그때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시방의 모든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으며, 하늘에서 꽃비, 향 비, 영락의 비, 보배의 비가 내렸다. 또한 하늘의 광명은 두루 일체를 비추고 하늘의 음악은 스 스로 미묘한 울림으로 퍼져나왔다.
그때 수 없는 불국토에서 수 없는 보살들이 와서 저마다 공덕림보살에게 말하였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불자여, 그대는 능히 여러 가지 보살의 행을 설법해 주셨습니다. 우리 들은 당신과 같은 이름인 공덕림이며 우리들의 국토는 공덕당(功德幢), 우리들의 부처님은 보공 덕(普功德)입니다.
불자여, 우리들은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고 이 국토에 와서 당신의 설법을 증명합니다.”
제 18장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그때 공덕림보살은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불자여, 보살에게는 열 가지의 보장(寶藏)이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들이 이미 말 씀하신 바입니다. 열 가지의 보장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장(信藏), 계장(戒藏), 참장( 藏), 괴장(愧藏), 문 장(聞藏), 시장(施藏), 혜장(慧藏), 정념장(正念藏), 지장(持藏), 변장(辯藏)입니다.
첫째로, 보살이 얻는 믿음의 보물 창고[信藏]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일체 법이 공(空)함을 믿고, 일체 법이 형태가 없음을 믿고, 일체 법에는 이것을 만드 는 주체가 없음을 믿고, 일체 법은 불생(不生)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은 신심(信心)을 완성하면 가령 부처님, 중생, 법계, 열반계 등의 불가사 의한 것에 관하여 들어도 놀랍고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또 가령 과거세, 미래세, 현재세의 불가사의한 것에 관하여 놀랍고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습니 다. 왜냐하면 보살은 여러 부처님 밑에서 닦은 신심이 견고하여 무너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무량무변의 지혜를 갖추고 계십니다. 더욱이 시방 세계에 무수한 부처님들이 계시어 이미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고, 이미 열반에 들었습니다. 부처님들의 지혜는 더하는 일도 없고, 덜하는 일도 없고, 생기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무변무진한 믿음의 보물 창고를 완성하여 여래의 큰 힘을 타고 나아가며, 모 든 불법을 지키고 보살의 일체의 덕을 닦고, 모든 여래의 덕에 따르고 모든 부처님들의 방편에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보물 창고는 결코 퇴전하지 않는 믿음, 산란하지 않는 믿음, 깨뜨리지 않는 믿음, 집착하는 일이 없는 믿음, 여래 본성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다함없는 믿음의 보물 창고입 니다.
불자여, 둘째로, 보살이 얻는 계율의 보물창고[戒藏]한 무엇입니까. 보살은 여러 가지 계를 성취합니다. 첫째는 요익계(饒益戒)입니다. 보살은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고 중생을 안락케 합니다. 둘째는 불수계(不受戒)입니다. 보살은 외도(外道)의 여러 가지 계를 받지 않고 과거, 현재, 미 래의 부처님들이 설하신 평등의 계를 지킵니다. 셋째는 무착계(無着戒)입니다. 보살은 어떠한 세계의 계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넷째는 안주계(安住戒)입니다. 보살은 어떠한 계도 깨뜨리지 않고 청정하여 의심도 후회도 없 는 계를 성취합니다.
다섯째는 부쟁계(不諍戒)입니다. 보살은 항상 열반으로 향하는 계에 따르고 이 계를 위하여 중 생을 괴롭히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이 계를 지니는 것은 다만 중생의 이익을 생각하고 중생을 환 희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섯째는 불뇌해계(不惱害戒)입니다. 보살은 계를 지님으로써 중생을 괴롭히거나 주술(呪術)을 배우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계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일곱째는 불잡계(不雜戒)입니다. 보살은 한 쪽의 견해를 떠나야만 인연을 관찰하고 청정의 계 를 갖습니다. 여덟째는 이사명계(離邪命戒)입니다. 보살은 다만 청정한 계를 지니고 오로지 불법을 구하며 일체의 지혜를 성취하려고 생각할 뿐입니다.
아홉째는 불악계(不惡戒)입니다. 보살은 스스로 교만하여 ‘나는 계율을 잘 지키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계를 범하는 사람을 보고도 경멸하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다만 일심으로 계를 지닐 뿐입니다. 열째는 청정계(淸淨戒)입니다. 보살은 살생, 도둑질, 바르지 못한 성관계(性關係), 거짓말, 나 쁜 말, 이간하는 말, 성내는 일, 어리석음, 바르지 못한 소견 등에서 떠나 오로지 계를 지킵니 다.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만약 중생이 계를 범한다면 그것은 중생의 그릇된 생각에 의한 것이다. 모든 부처님들은 중생 이 그릇된 생각에 의하여 계를 범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나는 오로지 불도를 구하고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하여 널리 중생을 위해 진실의 법을 설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그릇 된 생각을 떠나 청정의 계를 지니게 하고 모두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케 하자.’ 이것이 보살의 다함없는 계장입니다.
불자여, 셋째로, 보살이 얻는 참회의 보물 창고[ 藏]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스스로 자기의 과거세를 생각합니다. ‘나는 한량없는 옛적부터 부모 형제들에게 죄를 범해 왔다. 혹은 상대를 업신여기고 스스로 교 만하였으며, 혹은 믿음이 산란하여 바른 믿음을 잃고 화를 내어 친근함이 없어졌으며, 이와 같이 혼미하여 여러 가지 악을 지어 왔다. 일체 중생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죄를 범하고 있다. 이럴진대 어찌하여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스스로 죄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하고 또한 중생을 위 하여 진실의 법을 설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죄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 하도록 하자.’ 이것이 보살의 다함 없는 참회의 보물 창고입니다.
불자여, 넷째로, 보살의 부끄러움을 아는 보물 창고[愧藏]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스스로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나는 옛날부터 감각의 대상이나 처자 형제나 재산이나 보물 등에 관한 탐욕이 끝이 없었다. 이러한 일은 그만두지 않으면 안된다.’ 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중생은 나쁘고 거친 마음을 품고 서로 해치고 있다. 그러나 중생들은 그것을 조금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혼미 속에 빠져 끝없는 고뇌를 받고 있다. 삼세의 부처님들은 모두 이것을 아시고 있다.
나는 자기의 행위를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여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하고 널리 중생을 위하여 이 진리를 설하고 불도를 완성시키자.’ 이것이 보살의 끝없이 부끄러움을 아는 보물 창고입니다.
불자여, 다섯째로, 보살이 법문을 듣는 보물 창고[聞藏]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많은 진리를 듣습니다. 이를테면 보살은 어떤 일이 있음으로 해서 다른 일이 있고, 어떤 일이 없음으로 해서 다른 일 이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니까 다른 일도 일어나고 어떤 일이 멸하니까 다른 일도 멸한다는 상 대 관계를 알고 있습니다.
혹은 또 보살은 이 세계에 있어서의 진리, 이 세계를 초월하고 있는 진리, 모양이 있는 세계의 진리 등을 알고 있습니다.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중생은 혼미의 세계에서 수많은 윤회를 거듭하면서 불도를 닦을 줄을 모른다.
그러니 나는 노력, 정진하여 불도를 배우고 일체 부처님들의 법을 지녀서 위없는 최고의 깨달 음을 완성하고 또한 널리 중생을 위하여 진실의 법을 설하고 위없는 궁극의 불도를 완성시키자.’ 이것이 보살의 끝없이 법문을 듣는 보물 창고입니다.
불자여, 여섯째로, 보살이 행하는 보시의 보물 창고[施藏]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열 가지 종류 의 보시를 합니다. 즉 수습시법(修習施法}, 최후난시법(最後難施法), 내시법(內施法), 외시법(外 施法), 내외시법(內外施法), 일체시법(一切施法), 과거시법(過去施法), 미래시법(未來施法), 현 재시법(現在施法), 구경시법(究景施法)입니다.
첫째로, 보살의 수습시법(修習施法)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어떠한 귀중한 물건과 맛있는 음식에도 스스로 집착하지 않고 모두 사람들에게 보시합 니다.
보시한 후에 만약 남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그것을 먹고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내가 식사를 하는 것은 내 몸 속의 약 팔만 마리 가량의 작은 벌레들을 위해서이다. 나의 몸 이 안락하면 그들도 또한 안락하고 나의 몸이 굶주림에 고통받으면 그들도 또한 굶주림에 고통스 러울 것이다.’
이와 같이 보살이 식사를 하는 것은 몸 속의 벌레를 위한 것이며 그 맛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또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자기 몸을 위해 마실 것, 먹을 것을 탐해 왔다. 나는 조속히 이 몸을 떠나는 일에 노력 정진하자.’
둘째로, 보살이 행하는 가장 어려운 보시법[最後難施法]이란 무엇입니까. 만약 보살이 갖가지 맛있는 음식이나 의복, 그 밖의 생활 도구를 자기를 위해 사용하면, 목숨 을 연장하여 쾌적한 인생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만약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시한다 면 보살은 곤궁해지며 목숨이 단축될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 어떤 거지가 나타나 보살에게 모든 것을 소망해 왔습니다.
그때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는 여태까지 목숨을 버린 일은 수없이 많았으나 남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다행히 맛있는 음식과 의복을 얻은 것은 더없는 기쁨이다. 이제 나는 목숨 을 버리고 일체를 바쳐서 중생을 위해 아끼지 않고 큰 보리를 완성하자.’ 이것이 보살이 최후에 행하는 가장 어려운 보시입니다.
셋째로, 보살이 신명을 버려 행하는 보시[內施法]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젊었을 대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에다 맑은 얼굴을 가졌으며 청정한 의복에 장식을 달 고 국왕의 자리에 앉아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거지가 나타나서 왕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늙고 병들고 쇠약하고 고독하고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대로 있으 면 반드시 죽어 버릴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아무쪼록 나를 살려 주십시오. 만약 내가 당신처럼 왕의 몸을 얻을 수가 있다면 나는 당신의 수족, 혈육, 뇌수(腦髓) 등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아 무쪼록 자비하신 마음으로 나에게 보시해 주십시오.’ 보살은 그때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의 몸도 마침내는 거지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만약 죽어 버리면 무엇 하나 보시할 수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조속히 이 몸을 버리고 목숨을 구하자.’ 보살은 기꺼이 자기 몸을 거지에게 보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보살이 신명을 버려 행하는 보시법입니다.
넷째로, 보살이 자신의 지위를 버려 보시하는 법[外施法]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젊었을 때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에 그 얼굴은 더욱 맑았으며 깨끗한 옷을 입고 장식을 몸에 달고 국왕의 자리에 앉아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거지가 나타나서 왕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이 많고 병들고 쇠약해서 마침내 빈곤 속에서 목숨이 끊어질 것입니다. 저와는 달리 대왕께서는 모든 즐거움을 몸에 지니고 계십니다. 대왕이시여, 아무쪼록 왕위를 저에게 보시해 주십시오, 나는 천하를 다스려 왕의 행복을 만끽할 것입니다.’ 보살은 그때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부귀는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침내 빈천(貧賤)으로 변할 것이다. 만약 빈천해지면 남에게 보시할 수도 없고 그 소원을 이루어 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조속히 왕위를 버리고 거지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자.’ 이때 보살은 기꺼이 왕위를 보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보살이 자신의 지위를 버려 보시하는 법입니다.
다섯째로, 보살이 안과 밖의 모든 것을 버려 행하는 보시의 법[內外施法]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젊었을 때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에다 그 얼굴은 더욱 맑았으며 청정한 의복을 입고 장 식을 몸에 달고 국왕의 자리에 앉아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거지가 나타나 왕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이 많고 병으로 쇠약하여 은근히 대왕의 생활을 바라고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아무쪼록 당신의 자리와 천하를 저에게 보시해 주십시오.’ 보살은 그때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나의 몸과 재보(財寶)는 모두 덧없는 것이며 마침내 사라져 갈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이도 젊 고 힘도 왕성하여 천하의 부(富)를 갖고 있는데 더구나 구걸하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 있다. 나 는 이제 이 덧없는 것 가운데서 영원한 진실을 구하자.’
보살은 이와 같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려서 거지에게 보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보살이 안과 밖의 모든 것을 버려 행하는 보시의 법입니다.
여섯째로, 보살이 일체 모든 것을 버려 행하는 보시의 법[一切施法]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젊었을 때 단정하고 엄숙한 모습에 그 얼굴은 더욱 맑았으며 향기 높은 탕에서 목욕을 하고 청정한 의복을 입고 장식을 몸에 달고 국왕의 자리에 앉아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거지가 나타나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대왕의 이름은 널리 세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멀리서 왕의 이름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대왕이시여, 바라옵건대 대왕의 모든 지위와 재보를 나의 소망에 맡겨서 이 마음을 만족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그 거지는 왕의 나라와 성, 처자, 권속, 수족, 혈육, 두뇌 등 모두를 요구해 왔습니다. 그때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만나면 마침내 헤어지기 마련이다. 지금 남에게 보시를 안하면 그 소 원을 이루어 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조속히 탐애의 마음을 떠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남을 위해 힘을 다하자.’ 보살은 이와 같이 마음으로 생각하여 기꺼이 거지에게 모든 것을 보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버려 행하는 보시의 법입니다.
일곱째로, 보살이 과거의 여러 부처님들과 보살들의 보시법을 본받아 행하는 보시법[過去施法] 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과거의 부처님의 행이나 보살의 행이나 공덕을 들어도 그에 집착하지 않고, 망상도 일 으키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을 교화하고 인도하기 위하여 몸을 나타내고 널리 법을 설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을 완성시키려고 생각할 뿐입니다. 또 보살은 가령 시방 세계를 두루 아니며 과거의 여러 법을 관찰하더라도 그 실체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과거의 여러 가지 보시의 법을 모두 본받아 행하자.’ 이것이 보살이 과거의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의 보시법을 본받아 보시를 실행하는 일입니다. 여덟째로, 보살이 행하는 미래의 보시법[未來施法]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미래의 여러 부처님과 보살의 행이나 공덕에 대해 들어도 그 모습을 그리지 않고, 집착 하지 않으며, 그 부처님 나라에 탄생하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욕심을 내지도 않으며, 싫어하지도 않고, 마음을 닦아 산란하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을 성숙시키게 하려고 진실을 관찰할 뿐 입니다. 이 진실의 법은 그 소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보살이 미래의 보시법을 실행하는 일입니다.
아홉째로, 보살이 행하는 현재의 보시법[現在施法]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사천왕, 삼십 삼천, 야마천, 도솔천 등 온갖 천상의 세계, 혹은 성문, 연각의 공덕을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마음은 미혹하지 않고, 두려움을 품지 않고, 항상 고 요하여 집착하지 않습니다. 보살은 다만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모든 현상은 꿈과 같고 모든 행은 모두 진실이 아니다. 중생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미혹의 세계에 유전하는 것이다.’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널리 설법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악을 떠나 불도를 완성시키고 이와 같이 스스로 보살의 도를 닦아 마음에 미혹이 없습니다. 이것이 보살이 현재의 보시법을 실행하는 일입니다.
열째로, 보살이 행하는 궁극의 보시법[究竟施法]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중생 가운데는 눈, 귀, 코, 수족들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보살에게 ‘우리들은 불구자이며 불행한 몸입니다. 바라옵건대 보시로써 우리들을 완전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 다.
그때 보살은 기꺼이 자기의 것을 보시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보살은 가령 자기가 한량없는 겁 동안 불구자가 되어도 일념의 후회도 일으키지 않 습니다. 다만 보살은 스스로 자기 몸을 관찰해 보건대 ‘이미 수태(受胎) 때부터 부정(不淨)하고 악취를 뿜으며 한 조각의 실체도 없고, 골절이 서로 연결된 그 위에 피와 살이 덮이고 여러 구멍에서는 항상 부정한 물이 흐르고, 이리하여 마침내는 시체가 된다’고 보았기에 일념의 애착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또 보살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 몸은 연약하고 위태롭다. 어찌하여 이 몸을 애착하겠는가. 기꺼이 사람들에게 보시하여 그 소원을 만족시켜 주자. 그리고 마침내는 중생의 마음을 열고 교화하며 인도하고 모두 청정한 법 신(法身)을 얻게 하며 심신의 몸에서 떠나게 하자.’ 이것이 보살이 행하는 궁극의 보시법입니다. 이상이 보살이 행하는 보시의 보물 창고입니다.
불자여, 일곱째로 보살이 얻는 지혜의 보물 창고[慧藏]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형상의 세계와 마음 세계의 고뇌, 그 고뇌의 원인, 그 고뇌가 소멸한 열반, 고뇌를 소 멸하는 실천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또 근본 무지의 고뇌, 그 원인, 그 멸한 열반, 소멸의 방법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또 성문, 연각, 보살의 제각기의 법, 그 열반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살은 이 가르침을 어떻 게 알고 있는 것입니까.
보살은 온갖 것은 모두 숙업의 과보이며 인연에 따라 생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는 자아의 실체가 없고 견고하지 않으며 진실이 아니고 모두가 공(空)하다는 것을 알라 고 있으며 널리 중생을 위해 진실의 법을 설하고 있습니다. 즉 ‘온갖 것은 마침내 파괴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형상의 세계, 마음의 세계는 파괴되는 것이 아니고 근본 무지도 파괴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성 문, 연각, 보살의 제각기의 법도 파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온갖 것은 스스로 행한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불 생(不生)이고 불멸(不滅)이며, 보시하는 것도 아니고 받는 것도 아니며, 말로써 나타낼 수가 없 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이와 같은 무진의 혜장을 완성하고 스스로 구극의 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살이 얻는 다함없는 지혜의 보물 창고입니다.
불자여! 여덟째로 보살이 얻는 기억의 보물 창고[正念藏]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무지의 암흑에서 떠나 과거의 한 생, 열 생, 백 생 내지는 한량없이 많은 생애와 세계 와 생성 소멸의 되풀이를 마음에 생각합니다.
또 보살은 한 부처님 혹은 한량없이 많은 부처님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한 부처님의 출현이나 혹은 많은 부처님들의 출현을 기억하고, 한 부처님의 한 설법이나 많은 부처님들의 많은 설법을 기억하고, 하나의 번뇌나 많은 번뇌를 기억하고, 하나의 삼매나 많은 삼매를 기억합니다. 이와 같은 보살의 기억에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즉 고요한 기억, 청정한 기억, 탁하지 않은 기억, 분명한 기억, 티끌을 여읜 기억, 가지가지의 티끌을 여읜 기억, 때를 여읜 기억, 광명이 빛나는 기억, 사랑스러운 기억, 장애가 없는 기억입 니다.
보살이 이 기억을 할 때 어떠한 세간도 보살의 마음을 교란시킬 수는 없고 어떠한 악마도 그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보살은 부처님의 진리를 마음에 견지하고 분명히 그 까닭을 깨달아 아직 그릇된 일이 없습니 다. 이것이 보살의 다함없는 기억의 보배 창고입니다.
불자여, 아홉째로 보살이 얻는 가르침의 보물 창고[持藏]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여러 부처님에게서 하나의 경전 내지 한량없이 많은 경전을 배우고, 한 자나 한 구절도 잊은 일이 없습니다. 일생 동안이나 잊지 않고 또한 많은 생애 동안도 잊은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한 부처님 내지 많은 부처님들의 이름을 들어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세계 내지 많은 세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법회 내지는 많은 법회를 맡아보고 있습니다. 또 한때의 설법 내지 많은 때의 설법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번뇌 내지는 많은 번뇌를 분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삼매 내지 많은 번뇌에 드나들고 있습니다.
불자여, 열째로 보살이 얻는 말씀의 보물 창고[辯藏]란 무엇입니까. 이 보살은 깊은 지혜를 완성하여 일체 중생을 위하여 여러 가지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 다. 보살은 한 경전의 진리 내지는 한량없이 많은 경전의 진리를 설하고 또 한 부처님의 이름 내지 수 없는 부처님들의 이름을 설하고, 또 하나의 세계, 하나의 법회, 하나의 설법, 하나의 번뇌, 하나의 삼매 내지 제각기 수없이 많은 세계, 집회, 설법, 번뇌, 삼매를 설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구절 내지 하나의 법을 설하여도 끝이 없으며 한량없이 오랜 시간에 한 구절 내지 하나의 법을 설하여도 끝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의 흐름을 다하는 일은 있어도 한 구절이나 혹은 하나의 설법을 다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열 가지 다함없는 보물 창고를 완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체의 불 법을 닦고 있으며 다라니(陀羅尼)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이 다라니에 의해서 일체 중생을 위해서 불법을 전하니 그 미묘한 음성은 시방의 세계 에 충만하여 중생의 번뇌를 제거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들 환희케 합니다. 보살은 중생의 모든 음성, 언어, 문자를 분별하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여래의 종자를 끊기지 않도록 하며 불법을 전하는 데 조금도 권태를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커다란 허공에 충만하는 청정의 법신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다함없는 말씀의 보물 창고입니다.
불자여, 이상이 보살이 얻는 열 가지 보물 창고이며 이에 의해서 일체 중생은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완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