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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233)주서(周書)(130)진서편(秦誓篇)(1) 남에게 꾸짖음을 듣고 고치기는 매우 어렵다.

             <서경(書經)>(228) 주서(周書)(130)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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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2편 진서편(秦誓篇)(1)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은 장병들로 하여금, 정(鄭)나라를 치게 하였다. 진(晉)의 양공(襄公)이 대군을

   이끌고서 진군(秦軍)을 진(晉)의 요충지이던 효(崤)에서 격파 하였다. 진(秦)나라의 장군들이 포로가 되

   었다가 풀려나서 돌아 왔을 때, 목공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출전시켜 패하게 만든 자신의 과

   오를 뉘우치면서, 신하들을 경계하는 훈시를하고 있는데, 그것에 의거하여 이 진서편(秦誓篇)을 기록하

   게 한 것이다. 진(秦)의 목공(穆公)은 건숙(蹇叔)등 장로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정(鄭)을 쳤다가 대패(大

   敗)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글의 내용도 장로의 뜻을 존중해야 함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1] 남에게 꾸짖음을 듣고 고치기는 매우 어렵다.   

 

   公曰(공왈) : 진(秦) 목공(穆公)이 말하였다.

   (차) 我士(아사) 聽無譁(청무화)

   "아, 나의 신하들이여! 떠들지 말고 들으시오!

   予誓告汝羣言之首(여서고여군언지수) 

   내가 맹세하여 그대들에게 모든 말 중에 근본인 것을 알리노라.

   古人有言(고인유언) 曰(왈)

   옛사람들의 말씀이 있으니, 말하기를,

   民訖自若是多盤(왈민흘자야시다반) 

   ‘백성들은 모두 제멋대로 하기만을 즐거워 하는 법이니,

   責人斯無難(책인사무난) 

   남을 책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惟受責俾如流(유수책비여류) 

   오직 자신의 과오를 남이 꾸짖으면 물이 흐르듯, 

   是惟艱哉(시유간재) 

   이것을 고치기는 어려운 일이다’라고 하였소.

   我心之憂(아심지우) 日月逾邁(일월유매)

   내가 염려를 하는 것은, 해와 달이 빨리 흘러,

   若弗云來(약불운래) 

   두번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는 것이오"   

 

   *진(秦)나라가 정(鄭)나라를 치려고  군대를 내세웠다가, 도중에서 진(晉)나라 군대에게 저지를 당하고

    참패를 맛본 목공(穆公)이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대들에게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근본이되는 것만 맹세할 작정이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백성들은 모두 자신의 즐거움만

    따르는 것에 급급할 뿐, 스스로 반성하여 지나간 과실을 삼갈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

    을 꾸짖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반대로 남의 꾸짖음을 듣고서, 마치 물이 흐르듯이 즉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깊이 반성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였다.목공 자신은 이미 그러한 과실을 범한 사람이

    어서 나라가 조금 왕성해 졌다고 하여 그 힘을 미끼로 더욱 야심을 채우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 이웃 나

    라를 토벌하려다가 오히려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이제 자신의 과오를 후회하고 하루속히 과실을 보상

    하고 싶지만 날이 가고 달이 가기만 할 뿐, 보상의 날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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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從)(235)주서(周書)(132)진서편(秦誓篇)(3) 나라의 불안과 안정은 한 사람에게 달렸다.

             <서경(書經)>(235) 주서(周書)(132)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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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라의 불안과 안정은 한 사람에게 달렸다.

  

    昧昧我思之(매매아사지)

   "나는 곰곰히 그것을 생각해 보았는데,

   如有一介臣(여유일개신) 斷斷猗無他技(단단의무타기)

   만일 한 굳은 신하가 있어서, 정말로 다른 재주는 없으나,

   其心休休焉(기심휴휴언) 其如有容(기여유용)

   그의 마음이 착하면, 그와 같은 자는 받아 들이겠소.

   人之有技(인지유기) 若己有之(약기유지)

   남의 재주를, 마치 자기가 가진 듯이 생각하고,

   人之彦聖(인지언성) 其心好之(기심호지)

   남의 뛰어나고 어진 덕을, 그의 마음속에서 좋아하면,

   不啻如自其□出(불시여자기구출) 

   그 뿐만이 아니라 그의 입으로 나오는 것 같이 ,

   是能容之(시능용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오.

   以保我子孫黎民(이보아자손려민) 

   이로써 우리 자손과 백성들을 보전케 하면,

   亦職有利哉(역직유리재) 

   또한 이로움이 있게 될 것이오.

   人之有技(인지유기) 冒疾以惡之(모질이악지) 

   남이 재주가 있는 것을, 시새워서 그를 미워하며,

   人之彦聖(인지언성) 而違之(이위지)

   남이 뛰어나고 어진 것을, 그것을 거슬러,

   俾不達(비부달) 是不能容(시불능용)

   이루지 못하게 하면,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오.

   以不能保我子孫黎民(이불능보아자손려민) 

   이들로서는 우리 자손과 백성들을 보전치 못할 뿐 더러,

   亦曰殆哉(역왈태재) 

   또한 위태롭다 할 것이오.

   邦之杌隉(방지올얼) 曰由一人(왈유일인)

   나라가 위태로워 불안정한 것은, 한 사람에서 말미암는 것이며,

   邦之榮懷(방지영회) 

   나라가 영화롭고 편안한 것은,

   亦尙一人之慶(역상일인지경) 

   또한 한 사람의 경사에 달려 있는 것이오" 

 

   *이처럼 마음이 어질고 아량이 있는 인물이나 나라 일을 돌보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교도하면 상

    하의 백성들이 모두 이익을 얻게되고 나라의 기틀이 확립될 것이다. 이러한 인물을 등용한다는것은 매

    우 중요한 일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여 이후로는 그런인물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반대로 어떤 사

    람이 뛰어나면서도 이것을 질투하거나 시샘하여 그것을 방해하고 그의 의견이 실행될 수 없게 하는 자

    들도 있다. 이런 자에게는 나라일을 맡기면 자손을 보좌하고 백성들을 편안히 이끌수가 없으므로 실로

    위험한 인물이라 하겠다. 나라가 위태로운 것이나 백성들이 마음놓고 생활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위

    에 있는 임금 한 사람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을 때 생기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임금된 자는 그러한

    과실을 범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나라가 번영하여, 백성들이 안락하게 되는 것도, 임금이

    힘써 나라를 다스릴 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웃사람의 마음 하나로 나라가 번영하고 쇠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임금된 자가 그 신하를 등용하는 자세를 밝힌 대목이라 하겠다. 이<진서편(秦誓篇)>은 앞에

    나온 <비서편(費誓篇)>과 함께 <서경(書經)>에서는 유일하게, 여러 다른 편과는 달리 천자에 관한 것

    이 아닌 제후의 기록을 담고 있어서 주(周)나라의 쇠퇴와 더불어 진(秦)이나 진(晉)등의 새로운 세력이

    확대되어 있던 당시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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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229)주서(周書)(126)문후지명편(文侯之命篇)(2) 그대의 공적을 나는 아름답게 여기오.

             <서경(書經)>(229) 주서(周書)(126)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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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대의 공적을 나는 아름답게 여기오. 

 

   父義和(부의화) 

   "의화(義和) 숙부(叔父)여!

   汝克昭乃顯祖(여극소내현조) 

   그대가 능히 밝으신 선조(先祖)들을 빛내셨으니, 

   汝肇刑文武(여조형문무) 

   그대는 문왕과 무왕을 본받기 시작하였으니,

   用會紹乃辟(용회소내벽) 

   그대의 주군인 나를 현양케 하여,

   追孝于前文人(추효우전문인) 

   옛날 무덕있는 사람들을 좇아 효도를 행하시오.

   汝多修扞我于艱(여다수한아우간) 

   그대는 많은 전공을 세워 나를 어려움에서 구해 주셨으니,

   若汝予嘉(야여여가) 

   그와 같은 그대의 공적을 나는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오"

 

  王曰(왕왈) : 평왕은 또 말하였다.

   父義和(부의화) 

   "의화(義和) 숙부(叔父)여!

   其歸視爾師(기귀시이사) 寧爾邦(영이방)

   그대는 돌아가서 백성들을 보살펴, 그대의 나라를 평안히 하시오.

   用賚爾秬鬯一卣(용뢰이거창일유) 

   이제 그대에게 검은 기장술 한 통과, 

   彤弓一(동궁일) 彤矢百(동시백)  

   붉은 활 한 개와, 붉은 화살 백대와, 

   盧弓一(노궁일) 盧矢百(노시백) 

   검은 활 한 개와, 검은 화살 백 대와,

   馬四匹(마사필) 

   말 네 필을 내리는 바이오.

   父往哉(부왕재) 

   숙부(叔父)께서는 돌아 가실지어다!

   柔遠能邇(유원능이) 

   먼 곳의 있는 자를 회우하면, 가까운 사람들도 다스릴 수 있을 것이오. 

   惠康小民(혜강소민)  

   낮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편안하게 해 주시오.

   無荒寧(무황녕) 簡恤爾都(간휼이도)

   지나치게 편히 놀지 말고, 당신의 도읍을 살피고 걱정하여,

   用成爾顯德(용성이현덕) 

   당신의 밝은 덕을 이루시오"  

 

   *이제 문공인 숙부께서는 진(晉)나라의 문덕을 구비한 옛임금의 뜻을 이어받고, 또한 문왕과 무왕의 도

    에 따라서 평왕 자신을 도와 달라. 진(晉)나라에는 그 첫 임금인 당숙(唐叔)을 비롯하여 훌륭한 군주들

    이 많이 나왔었다. 특히 그 가운데 진(晉)의 문공(文公)은 빼어난 명군(名君)으로 일컬어진다.  때문에

    문공이 평왕이 곤란에 빠지자 그를 보호하여 왕위를 보전할 수 있게 한 것은 그의 조상의 뜻을 잇는 대

    단하고 착한 행실 이라고 하여 그의 공적에 대하여 깊이 감사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평왕은 문

    공을 진나라로 귀국하도록 허락하면서 감사의 표시로 왕이 선조를 제사하거나 신을제사할때 사용하는

    검은 기장으로 만든 술 한동이와, 붉은 색을 칠한 활 하나와 붉은 색을 칠한 화살 100대와,검정 빛으로

    된 활 하나와 검정 빛으로 칠한 화살 100대와, 말 네필을 하사하였다. 이것은 모두 무공을 표창한 것으

    로 반란군들을 토벌한 무용을 표창한 것이다. 그런 다음 평왕은 돌아가는 문공에게 웃사람으로서의 도

    (道)를 다시 한번 얘기하고 있다. 이제 그대 나라에 돌아 가면 먼 곳의 사람들과 교분을 가지고 친근하

    게 하고, 가까운 곳의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없는지 보살펴 제후로서의 직무를 이무렇게나 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안일한 태도록 군주의 자리에 임하지 말고, 도읍을 중심으로 널리 은혜를 베

    풀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그대의덕이 백성들사이에 칭송을 받게 되

    고, 또한 나라 역시 밝게 다스려질 것이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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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228)주서(周書)(125)문후지명편(文侯之命篇)(1) 견융의 침입으로 나라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

             <서경(書經)>(228) 주서(周書)(125)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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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0편 문후지명편(文侯之命篇)(1)

   이 글은 주(周)나라의 평왕(平王)이 그의 제후인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에게 기

   장으로 빚은 술과 규찬(圭瓚)을 하사할 때, 책명(策命)을 기록한 것이다.목왕(穆王)에서부터 평왕(平王)

   까지는 7대를 거쳐간다. 평왕의 아버지인 유왕(幽王)은 포사(褒姒)라고 하는 여자에게 빠져서 평왕의 어

   머니인 신황후(申皇后)를 버리고, 태자이던 의구(宜臼)인 평왕을 추방 하였다. 평왕은 어머니 나라인 신

   (申)나라에 도망가 있었는데, 얼마 후에 유왕은 견융(犬戎)일족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 때 진(晉) 문공

   (文公)과, 정(鄭) 무공(武公)이 의구를 옹립하여  평왕으로 세웠다. 평왕은 동도(東都)인 낙읍(洛邑)으로

   천도를 하고, 거기에서 진(晉) 문공(文公)을 방백(方伯)에 임명하였다. 평왕은 주나라 13대 왕이고, 무왕

   에서 부터 9대째의 왕이다. 이 평왕 때 주나라는 호경에서 낙읍으로 천도를 하였는데, 이 천도 이후를 동

   주(東周)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때부터 대륙의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진(晉)문공(文公)의 이름은 구(仇)

   인데, 성왕(成王)의 동생인 당숙(唐叔)의 후손이다. <사기(史記)>에서는, 이 편이 후대의 주(周)나라 양

   왕(襄王)때 진(晉)문공(文公) 중이(重耳)에게 준글이라고 한다. 한편 <상서석의(尙書釋義)>에서는 <사

   기(史記)>의 주장을 부인하면서 역시 평왕때의 글로 보고 있다.  

 

  [1] 견융의 침입으로 나라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소.  

   王若曰(왕약왈)

   평왕은 이와 같이 말하였다.

   父義和(부의화) 

   "의화(義和) 숙부(叔父)여!

   丕顯文武 克愼明德

(비현문무 극신명덕) 

   크게 밝으신 문왕과 무왕은, 덕을 삼가 밝히시어,

   昭升于上  敷聞在下

(소승우상  부문재하) 

   위로 밝게 올라가고, 널리 세상에 알려졌었으니,

   惟時上帝 集厥命于文王

 (유시상제  집궐명우문왕)

   이리하여 상제께서는, 그의 명을 문왕께 내리셨던 것이오.

   亦惟先正 克左右

  (역유선정 극좌우)

   또한 옛날 관장인 선정(先正)들이, 잘 보좌하여,

   昭事厥辟 越小大謀猷

(소사궐벽  월소대모유) 

   그들의 임금을 밝게 섬겨, 이에 작고 큰 계책들에,

   罔不率從

 (망불솔종) 

   모두가 따르지 않는 이가 없게 되어,

   肆先祖懷在位

  (사선조회재위) 

   옛 조부께서는 편안히 임금 자리에 계실 수 있으셨소.

   嗚呼  閔予小子

(오호  민여소자) 

   아아, 가련하고 이 부족한 사람이,

   嗣造天丕愆

 (사조천비건) 

   임금 자리에 올라 하늘의 큰 허물을 지었으니,

   殄資澤于下民

  (진자택우하민) 

   낮은 백성들에게는 재물과 은택이 끊기고,

   侵戎我國家純

  (침융아국가순) 

   견융의 침입으로 나라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소.

   卽我御事

  (즉아어사)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어사(御事)가, 

   罔或耆壽俊 在厥服

  (망혹기수준 재궐복) 

   혹 늙고 유덕한 사람들이, 적당한 지위에 앉지를 못했고, 

   予則罔克

  (여즉망극) 

   나도 역시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오"

 

   曰(왈)

   평왕이 말하였다.

   惟祖惟父 其伊恤朕躬

  (유조유부 기이휼짐궁)

   "조부와 숙부들이여! 나의 몸을 걱정해 주시오.

   嗚呼 有績予一人

 (오호 유적여일인) 

   아아, 공을 이루는 이가 있다면 나 한 사람은,

   永綏在位

  (영수재위) 

   영원히 편안히 자리에 있게 될 것이요"   

 

   *이 대목에서는 평왕이 나라가 어지러운 때에 즉위를 하여 서쪽 오랑캐의 침범을 두려워 하지만 노련한

    군대통솔자가 없음을 고백하고 종친인 문공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대목이다. 주(周)나라가 문왕시절

    부터 크게 덕을 밝히고 백성들을 안락하게 하는데 힘썼으므로, 하늘도 도와서 번성하게 되었다. 일찌기

    천명을 문왕에게 내려서 문왕이 천하를 다스리게 하였으나, 문왕은 원체가 덕이 큰 분이어서 신하된 신

    분을 내세워 이를 사양하고 천하를 택하지 않으니, 그의 아들인 무왕에 이르러서야 천하를 택하게 되었

    다. 그러나 평왕 자신은 덕도없고 힘도없는 사람이어서 하늘이 크게 화(禍)를 내려서 반란을 일으킨 자

    의 손에 아버지가 죽고, 백성들은 하늘의 은혜가 없는, 쇠퇴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나라가 혼

    란하니, 경험이 많고 뛰어난 현신들이 맡은 바 직책을 다할 수 없게 이른 것이다. 이러한때에 문공이 왕

    을 도와서 나라를 태평하게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만민들을 편안케 하는 일

    에 진력하여야 비로소 큰 공적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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