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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202)주서(周書)(99)고명편(顧命篇)(5) 군주가 즉위하는 의식의 절차

             <서경(書經)>(202) 주서(周書)(99)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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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군주가 즉위하는 의식의 절차 

  

   二人雀弁(이인작변) 

   두 사람이 참새 머리같은 검붉은 작변(雀弁)을 쓰고,

   執惠(집혜) 立于畢門之內(입우필문지내)

   세모창인 혜(惠)를 잡고, 묘당의 안문인 필문(畢門)안에 서 있었다.

   四人綦弁(사인기변) 

   네 사람이 연두빛 기변(綦弁)을 쓰고,

   執戈上刃(집과상인) 夾兩階戺(협량계사)

   칼날이 밖으로 향하게 창을 잡고, 섬돌을 끼고 양쪽에 서 있었다.

   一人冕(일인면) 執劉(집유)

   한 사람이 면(冕)을 쓰고, 끝이 뾰족한 도끼를 잡고,

   立于東堂(입우동당) 

   동쪽 묘당에 서 있었다.

   一人冕(일인면) 執鉞(집월)

   한 사람이 면(冕)을 쓰고, 부월(斧鉞)의 도끼를 잡고,

   立于西堂(입우서당) 

   서쪽 묘당에 서 있었다.

   一人冕(일인면) 執戣(집규)

   한 사람이 면(冕)을 쓰고, 긴 삼지창인 규(戣)를 잡고,

   立于東垂(입우동수) 

   동쪽 가에 서 있었다.

   一人冕(일인면) 執瞿(집구)

   한 사람이 면(冕)을 쓰고, 짧은 삼지창인 구(瞿)를 잡고,

   立于西垂(입우서수) 

   서쪽 가에 서 있었다.

   一人冕(일인면) 執銳(집예)

   한 사람이 면(冕)을 쓰고, 뾰족한 창인 예(銳)를 잡고,

   立于側階(입우측계) 

   북쪽의 섬돌에 서 있었다.      

 

   *새로운 왕이 많은 신하들의 알현을 허락하였으므로 경호하는 사람들이 방안에 들어 갔다. 두사람은 검

    푸른 관을 쓰고 삼각의 칼날이 붙은 창을 들고 왕의 방에 가까운 문 안에 서서 경호를 하고 있다. 네 사

    람은 검푸른 관을 쓰고 창을 들고 날을세워 위로 향하게 하고, 궁(宮)에 오르는 두 섬돌을 끼고 네 명이

    두명씩 나누어 서 있다. 그리고 또 한명은 동쪽 당(堂)에 면(冕)을 쓰고 유(劉)를 들고 서있고, 또 한 명

    은 큰 부월을 들고 서 있으며, 또 한 명은 역시 면을 쓰고, 월(鉞)을 들고 서쪽 당에 서 있다. 한 명은 또

    면을 쓰고 날이 셋으로 갈라진 창을 들고 동쪽 가에 서있고, 또 한명은 면을 쓰고 구(瞿)를 들고 서쪽가

    에 서있으며, 또 한명은 면을 쓰고 예(銳)를 들고 가의 섬돌 위에 서서 새로운 왕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

    고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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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201)주서(周書)(98)고명편(顧命篇)(4) 성왕(成王)의 고명을 강왕(康王)이 받들다.

             <서경(書經)>(201) 주서(周書)(98)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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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왕(成王)의 고명을 강왕(康王)이 받들다. 

  

   丁卯(정묘) 命作冊度(명작책도)

   정묘일(丁卯日)에, 성왕의 고명을 기록하게 하였으며,

   越七日癸酉(월칠일계유) 

   칠일이 지난 계유일(癸酉日)에,

   伯相命士須材(백상명사수재) 

   방백이며 재상인 소공(召公)이 명하여 필요한 물건을 갖추게 하였다.

   狄設黼扆綴衣(적설보의철의) 

   악공을 시중드는 적인(狄人)이 검고 흰 도끼 무늬의 병풍인 보의(黼扆)와

   햇빛 가리개인 철의(綴衣)를 설치하였다.

   牖間南嚮(유간남향) 

   들창과 문 사이에 남쪽을 향하여,

   敷重篾席黼純(부중멸석보순) 

   보(黼) 무늬의 천으로 장식된 비단으로 꾸민 대자리를 깔고, 

   華玉仍几(화옥잉개) 

   고인이 생전에 쓰던 오색의 구슬인 화옥(華玉)의 안석을 놓았다.

   西序東嚮(서서동향) 

   서쪽 행랑에는 동쪽을 향하여,

   敷重底席綴純(부중저석철순) 

   잡색의 비단으로 꾸민 저석(底席)을 겹쳐서 깔고,

   文貝仍几(문패잉궤) 

   아름다운 조개 장식을 한 안석을 두었다.

   東序西嚮(동서서향) 

   동쪽 행랑에는 서쪽을 향하여,

   敷重豐席畫純(부중풍석화순) 

   무늬비단으로 꾸민 풍석(豐席)을 겹쳐서 깔고,

   雕玉仍几(조옥잉궤) 

   무늬가 새겨진 구슬로 평소에 쓰던 안석에 놓았다.

   西夾南嚮(서협남향) 

   서쪽의 협실에는 남쪽을 향하여,

   敷重筍席玄紛純(부중순석현분순) 

   검은 색 끈으로 짠 푸른 대자리인 순석(筍席)을 겹으로 깔고,

   漆仍几(칠잉궤) 

   옷칠을 하여 평소에 쓰던 안석에 놓았다.

   越玉五重(월옥오중) 

   또한 옥을 겹으로 다섯으로 나누어 놓으니, 

   陳寶(진보) 赤刀(적도)  

   진나라 구슬과, 빛 붉은 구슬칼과,

   大訓(대훈) 弘璧(홍벽) 琬琰(완염)

   큰 교훈이 새겨진 구슬과, 위가 둥근 구슬과, 위가 뾰족한 구슬을,

   在西序(재서서) 

   서쪽 행랑에 놓았다.

   大玉(대옥) 夷玉(이옥)

   화산에서 나는 구슬과, 동쪽 오랑캐의 구슬과,

   天球(천구) 河圖(하도) 在東序(재동서) 

   하늘빛 구슬과, 황하에서 나는 무늬 있는 구슬은, 동쪽 행랑에 놓았다.

   胤之舞衣(윤지무의)  

   악공인 윤(胤)이 춤옷을 받들고,

   大貝(대패)

   산의생(散宜生)이 강회(江淮)에서 얻었다는 수레 바퀴만한 큰 조개와,

   鼖鼓(분고) 在西房(재서방)

   큰 북인 분고(鼖鼓)는, 서쪽 방에 놓았다.

   兌之戈(태지과) 和之弓(화지궁) 

   악공(樂工)인 태(兌)가 만든 창과, 악공(樂工)인 화(和)가 만든 활과,

   垂之竹矢(수지죽시) 在東房(재동방) 

   악공(樂工)인 수(垂)가 만든 대나무 화살은, 동쪽 방에 놓았다.

   大輅在賓階面(대로재빈계면) 

   천자가 타는 수레인 대로(大輅)는 

   빈객들이 오르내리는 빈계(賓階)의 서쪽 섬돌 앞에,

   綴輅在阼階面(철로재조계면) 

   금으로 꾸민 철로(綴輅)는 주인이 오르내리는 동쪽 섬돌 앞에,

   先輅在左塾之前(선로재좌숙지전) 

   상아로 꾸민 수레인 선로(先輅)는 왼편 문간방의 앞에,

   次輅在右塾之前(차로재우숙지전) 

   나무로 만든 수레인 차로(次輅)는 오른쪽 문간방 앞에 놓았다.

    

   *강왕의 후견인격인 소공석이 진두지휘를 하여 성왕의 장례식을 치르는 대목이다. 소공석은 기록을 작

    성하는 사관에게 일체의 기록을 정리하게 하고,  성왕이 죽은 전후의 사실과,  새롭게 즉위하는 강왕의

    즉위식에 따른  모든 것을 기록하게 하였으며, 또한 장례와 즉위에 칠요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도록 하

    였다. 왕을안장한 모습과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복장이며, 식장을 호위하는 병사들의 무기에서부터,

    패옥과 찬란하게 꾸민 기물들을 나열하여 예식을 준비하고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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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200)주서(周書)(97)고명편(顧命篇)(3) 태자인 교(釗)가 종주(宗主)가 되었다.

             <서경(書經)>(200) 주서(周書)(97)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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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태자인 교(釗)가 종주(宗主)가 되었다. 

 

   茲旣受命還(자기수명환) 

   이미 명을 받은 뒤에 군신들은 돌아갔다.

   出綴衣于庭(출철의우정) 

   이에 빛을 가리는 철의(綴衣)를 뜰에 내다 놓았다.

   越翼日乙丑(월익일을축) 王崩(왕붕) 

   이튿날 을축일(乙丑日)에, 왕이 붕(崩)하였다.

   太保命仲桓南宮毛(태보명중환남궁모) 

   태보(太保)는 중환(仲桓)과 남궁모(南宮毛)에 명하여,

   俾爰齊侯呂伋(비원제후려급) 

   제나라 제후(齊侯)인 여급(呂伋)을 이끌게 하고,

   以二干戈虎賁百人(이이간과호분백인) 

   이로써 두 사람이 방패와 창을 들고 왕의 호위병 백명을 거느리고,

   逆子釗於南門之外(역자교어남문지외) 

   태자인 교(釗)를 남쪽 문 밖에서 맞아들였다.

   延入翼室(연입익실) 

   옆방인 익실(翼室)에 인도하여 상복(喪服)을 입히고,

   恤宅宗(휼댁종) 

   종주(宗主) 노릇을 하게 하였다.

 

   *종주(宗主)란 종묘(宗廟)의 위패를 모시는 주인(主人) 이란 뜻으로, 사람이 죽으면 상주(喪主)의 노릇

    을 할수 있는 후계자(後繼者)를 의미하는 말이다. 곧 태자(太子)인 교(釗)가 종주(宗主)가 되어 태보인

    소공석(召公奭)의 지휘 아래 먼저 중환(仲桓)과 남궁모(南宮毛)라는 두 신하와 무관(武官)을 지휘하는

    제후(齊侯)인 여급(呂伋)에게 명하여, 왕의 좌우를 호위하는 경호병 백명을 인솔하여 태자인 교(釗)를

    남문(南門)에서 맞이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즉위할 새로운 임금을 맞이하는 절차를 서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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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99)주서(周書)(96)고명편(顧命篇)(2) 태자인 교(釗)를 세워 고명을 받들라.

             <서경(書經)>(199) 주서(周書)(96)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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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자인 교(釗)를 세워 고명을 받들라. 

 

   昔君文王武王宣重光(석군문왕무왕선중광) 

   "지난 날 문왕과 무왕은 빛나는 덕을 거듭 펴서,

   奠麗陳敎(전려진교) 則肄(즉이)

   법을 정하고 가르침을 베푸느라, 수고로웠다.

   肄不違(이불위) 

   수고롭지만 도에 어긋남이 없어서, 

   用克達殷(용극달은) 集大命(집대명)

   은나라의 왕명을 주나라로 인도하여, 대명을 성취하였다. 

   在後之侗(재후지통) 

   후사(後嗣)가 된 나는 미련하고 어리석었으나, 

   敬迓天威(경아천위) 

   하늘의 위엄을 공경히 맞아 들이고,

   嗣守文武大訓(사수문무대훈) 

   문왕·무왕의 큰 교훈을 이어받고 지키어,

   無敢昏逾(무감혼유) 

   감히 어둡거나 지나치지 않았다.

   今天降疾(금천강질) 殆弗興弗悟(태불흥불오)

   지금 하늘이 병을 내리어, 일어나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爾尙明時朕言(이상명시짐언) 

   그대들은 바라건대 나를 밝게 살필 때이다. 

   用敬保元子釗(용경보원자교) 弘濟于艱難(홍제우간난)

   공경히 태자 교(釗)를 삼가 보호하고, 어려움을 널리 구제하라.

   柔遠能邇(유원능이) 

   먼 나라들은 달래고 가까운 나라들은 도와서,

   安勸小大庶邦(안권소대서방) 

   크고 작은 여러 나라들을 편안하게 하라.

   思夫人(사부인) 自亂于威儀(자난우위의)

   무릇 사람마다 생각하기를, 스스로 위의를 어지럽힐 수 있으니,

   爾無以釗(이무이교) 

   그대들은 교(釗)로 하여금,

   冒貢于非幾(모공우비기) 

   옳지 못한 짓을 범하게 하지 않도록 하라"

 

   *성왕은 자신이 어려서 즉위했기 때문에 다행히 주공의 보살핌으로 무난히 왕노릇을 마칠 수가 있었다.

    이제 병환이 위중하여 정신이 혼미하고 일어날 기력이 없어, 이에 마지막 고명으로 자식인 교(釗)가 왕

    노릇을 잘 할 수 있도록 여러 대신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대목이다. 교(釗)가 왕(王)으로서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릴수 있도록 모두가 합심하여, 먼곳에 있는자는 불평이 없도록 무마시키고, 가까운 나라는

    보호하며 백성들을 잘교화하여, 큰 나라나 작은 나라나 다같이 화락하게 다스리도록 지도해 주기를 당

    부하였다. 성왕은 이처럼 자신이 죽은 뒤의 일을 명(命)으로 남긴 다음에 을축일날 세상을 떠났던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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