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이익지(李益之:이달)가 최가운(崔嘉運,최경창의 자)을 따라 영광(靈光)에 노닐 적에, 사랑하는 기생이 있어 자금(紫錦)을 사주려는데, 그 비단 살 돈을 마련할 수 없어, 익지가 시로써 다음과 같이 빌었다.

 

商胡賣錦江南市

상호매금강남시

朝日照之生紫煙

조일조지생자연

人欲取爲裙帶

미인욕취위군대

手探囊中無直錢

수탐낭중무치전

 

장사아치 강남 저자에서 비단을 파니

아침 해가 비치자 자주빛 안개가 피어나는구나

미인은 그걸 사서 치마며 허리띠를 만들려는데

주머니 더듬어야 돈은 없구려

가운(嘉運,최경창)이 말하기를,“손곡(蓀谷)의 시는 한 자가 천금이니 감히 비용을 아끼랴.”하고는

한 자에 각각 세 필씩 쳐서 그 요구에 응해 주었으니, 그 재주를 아낌이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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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한익지(韓益之:한준겸)가 어떤 일로 파직되어 농사를 짓기로 하고 온 식구가 원주로 내려갔다. 배가 종실(宗室) 순치수(順致守)의 별장에 닿았는데, 수(守)는 마침 활을 쏘고 약을 캐던 터라 사람을 달려 보내어 누구냐고 물어왔다.

익지(益之)는 대답을 하지 않고 절구 한 수로 대구하기를,

公子風流自不群 공자풍류자불군

春來漁釣杏花村 춘래어조행화촌

扁舟過客勤相問 편주과객근상문

我是衿陽舊使君 아시금양구사군

공자의 풍류가 무리에 뛰어나니

봄이 오자 살구꽃 마을에 낚시질하네

쪽배 탄 나그네가 정겹게 문안드리니

이 사람은 금양의 옛 원이라오

라 하자 수가 배를 타고 뒤쫓았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그때 한익지는 금천 군수로 있다가 파면되어 가는 중이고, 순치(順致)는 금천에 은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익지(益之)의 이름은 준겸(浚謙), 호는 유천(柳川)이다. 청주인(淸州人)으로 벼슬은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며, 인조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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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복원(復元:차천로)이 <이필이 형산에 돌아가기를 비는 표>[李泌乞還衡山表]를 지었는데,

屢犯客星於帝坐 누범객성어제좌

常叩卿月於天閽 상고경월어천혼

객성이 임금 자릴 여러 번 침범하고

늘 경월이 천혼을 두드렸네

라는 구절이 있어 세상에서 적절하다고 일컬었다.

우리 중형이 상주 목사(尙州牧使)로 가는 윤칠계(尹漆溪)를 보내는 시의 항련(項聯)에 역시.

卿月暫辭天北極 경월잠사천북극

福星先照洛東江 복성선조낙동강

경월이 잠시 대궐을 하직하자

복성이 먼저 낙동강을 비추누나

라는 구절이 있으니, 차천로의 표에 비하면 나은 것 같다.

칠계(漆溪)의 이름은 탁연(卓然), 자는 상중(尙中), 호는 중호(重湖)이며 칠원인(漆原人)으로 벼슬은 형조 판서에 이르렀고 시호는 헌민(憲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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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차천로(車天輅) 복원(復元, 차천로의 자)의 글은 당시 사람들이 웅문(雄文)이라 일컬었다. 글(文)이란 기(氣)로써 주를 삼아야 하건만 복원(復元)은 하찮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았고, 사륙문(四六文)은 전아(典雅)해야 하는데도 복원의 사륙문은 순정치 못하고 거칠다.

시는 그보다 더 못하다. 그의 일본기행고(日本紀行稿)가 매우 많아 천여 수나 되지만, 읊을 만한 글귀는 하나도 없다.

다만 명천(明川)으로 귀양 갈 때 지은,

天外怒聲聞渤海 천외노성문발해

雪中愁色見陰山 설중수색견음산

하늘가에 성난 소린 발해의 파도

눈속에 시름겹긴 음산의 빛이로다

라는 구절은 정말 웅혼(雄渾)하다. 그러나 전편이 다 그렇지는 못하다. 만약 복원이 조금만 사리를 추구하여 많이 짓거나 빨리 짓는 데 치우치지만 않았다면, 고인의 경지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천로(天輅)의 호는 오산(五山)이며, 연안인(延安人)으로 벼슬은 봉정(奉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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