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보락(保樂) 김안로(金安老)가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春融禹甸山川外 춘융우전산천외

樂奏虞庭鳥獸間 낙주우정조수간

봄은 우 임금이 정리한 산천에 무르녹고

풍악은 순 임금 뜰 새짐승 사이에 아뢴다네

라는 시를 보이면서,

“이 구절은 그대가 평생 드날릴 점(占)이라네.”

하였다.

꿈을 깨고 보니, 무슨 뜻인지도 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연산군이 병인년(1506, 연산군12)에 율시로 제를 내는데, 바로 ‘봄날 이원제자가 악보를 본다[春日梨園弟子閱樂譜]’라는 것이었고 간(間) 자로 압운(押韻)하라는 것이었다.

보락(保樂)이 갑자기 꿈속의 구절이 생각났는데 글제의 뜻과 꼭 들어맞으므로 이것으로 항련(項聯)을 메웠다. 그때 문경공(文敬公) 김감(金堪)은 대제학이고, 문경공 김안국(金安國)은 예조 좌랑으로 대독관(對讀官)이 되었는데, 시를 읽다가 이 구절에 이르러,

“이 시는 귀신의 말이다.”

하였다.

그러나 김감은 그렇게 여기질 않았다. 모재(慕齋 김안국의 호)가 말하기를,

“이름을 떼어 본 뒤 이 수재(秀才)를 불러서 따져 물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김감이 방을 내어 걸고, 보락을 불러 물어보니, 과연 꿈속에 신이 일러 준 것이었다. 이 일로 해서 모재를 시를 잘 알아보는[藻鑑] 사람이라 일컫게 되었다.

감(堪)의 자는 자헌(子獻), 호는 선동(仙洞)이고 또 다른 호는 일재(一齋)인데 연안인(延安人)이다. 벼슬은 일상(一相)에 이르렀다. 안국(安國)의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이고 의성인(義城人)이다. 벼슬은 일상(一相)에 이르렀고 인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송와잡설(松窩雜說)》에는 이 일이 정소종(鄭紹宗)의 일로 되어 있는데 근거가 분명하며, 또한 《국조방목(國朝榜目)》을 참고해 보아도, 연산군 갑자년(1504) 11월 별시에 어제(御題)는 춘방이원한열방악(春放梨園閒閱放樂)이었고 시는 칠률(七律)이었는데 제4등은 정소종(鄭紹宗)으로 되어 있어, 송와(宋窩 이기(李墍)의 호)가 기록한 것과 딱 들어맞는다. 여기서 김안로(金安老)라 한 것은 잘못 전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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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고이순(高而順) [이순은 고경명(高敬命)의 자]의 귤시(橘詩)는 다음과 같다.


平生睡足小江南 평생수족소강남

橘柚林中路飽諳 귤유림중로포암

朱實宛然親不待 주실완연친부대

陸郞雖在意難堪 육랑수재의난감

평생을 소강남에서 마음껏 조으니

귤밭 속 길이란 훤하여라

주황빛 열맨 예같건만 어버인 기다려 주질 않으시니

육적(陸績)이 있은들 그 뜻 어이하리


심어촌(沈漁村 어촌은 심언광(沈彦光)의 호)의 두견시(杜鵑詩)는 다음과 같다.


三月無君弔此身 삼월무군조차신

杜鵑聲裏更悲辛 두견성리경비신

山中不廢爲臣義 산중불폐위신의

準擬西川再拜人 준의서천재배인

삼월이라 임금 여읜 이 마음 아픈데

두견새 울음에 한결 더 슬프구나

산중에서도 신하의 도리 폐치 않으니

서천에서 재배하던 사람에 비기노라


이 두 시의 뜻은 너무도 서글프니 모두 충심에서 나온 것으로 어버이 생각, 임금 사랑하는 정성이 말 밖에 넘친다. 저 화려하게 꾸미기나 하는 자는 정말 시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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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김충암(金冲庵)의 비로봉에 올라서[登毗盧峯]란 시에


落日毗盧峯 낙일비로봉

東溟杳遠天 동명묘원천

碧巖敲火宿 벽암고화숙

聯袂下蒼煙 연몌하창연

해는 비로봉 위에 지고

동해는 먼 하늘인 양 아스라해라

푸른 바위에 불을 지펴 자고

옷소매를 나란히 자욱한 안개 속을 내려오다


하였는데, 우리 중형의 시는,


八月十五夜 팔월십오야

獨立毗盧峯 독립비로봉

桂樹天霜寒 계수천상한

西風一雁影 서풍일안영

팔월이라 한가위 밤에

비로봉 위에 홀로 서다

계수나무에 하늘 서리 차갑고

하늬바람결에 외기러기 그림자


라 하였으니 충암(冲庵)의 시와 같은 가락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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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정용(鄭鎔)의 아들 백련(百鍊)이 일찍이 중풍에 걸렸는데 하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어떤 젊은 서생을 만났는데, 연화관(蓮花冠)을 쓰고 용모는 눈빛[玉雪] 같았다. 그는 스스로 이르기를 ‘나는 당 나라의 아사(雅士) 요개(姚鍇)로 이장길(李長吉 장길은 이하(李賀)의 자)과 친한 친구 사이인데, 안탕산(雁蕩山)에 산 지 2백년이 된다. 조선의 산천이 가장 아름답다기에 한라산에 옮겨 산 지도 천 년 가까이 되었다. 다시 금강산으로 가려고 하다가 자네와 인연이 있으므로 삼각산에 와 살게 되었다. 그런 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여기에 왔다.’고 했다.”고 하였다.

그의 시는 다음과 같다.


萬里鯨波海日昏 만리경파해일혼

碧桃花影照天門 벽도화영조천문

鸞驂一息空千載 난참일식공천재

緱嶺靈笛半夜聞 구령령적반야문


만리라 큰 바다에 날은 저문데

벽도꽃 그림자 하늘문에 비치네

신선 수레 한 번 쉬면 천년이 훌쩍 지난다던데

구령의 신선 피리 소리 한밤에 들리누나


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棲身三角三十春 서신삼각삼십춘

日日每向南雲哭 일일매향남운곡

松風不如龍吟聲 송풍불여용음성

蘭雁又下三陵鶴 난안우하삼릉학

三陵鶴不來 삼릉학불래

蜀道峯前秋月黑 촉도봉전추월흑


삼각산에 깃든 지 삼십년인데

남녘 구름 바라보며 늘 울었네

솔바람 소리는 용음 소리만 못한데

난안은 또 삼릉학만 못하도다

삼릉학은 오지를 않고

촉도봉 앞엔 가을 달만 어둡구나


어떤 이가 난안(蘭雁)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난초가 시들 무렵이면 철새인 기러기가 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렇게 한 해 남짓 지나더니 시마(詩魔)가 떠나자 병도 나았다. 이현욱(李顯郁)의 시마는 장편 대작도 다 지을 수 있었고, 산문(散文)도 다 원숙했는데, 정백련에게 걸린 시마는 격은 현욱보다 나았지만 율시는 절구에 못 미쳤으니, 더구나 그 문(文)이야 말할 게 있겠는가. 요개(姚鍇)의 이름은 전기(傳記)나 소설(小說)에도 보이지 않으니, 혹 당 나라 말기에 절구로 이름난 이가 아닌가 한다. 우리 중형은 그의 오언 절구를 사랑하여 성당(盛唐)에 못지 않다고 여겼다.


그가 노산(魯山)의 구택(舊宅)에 제(題)한 시는 다음과 같다.


人度桃花岸 인도도화안

馬嘶楊柳風 마시양류풍

夕陽山影裏 석양산영리

寥落魯王宮 요락노왕궁


사람은 복사꽃 핀 강 언덕을 지나가고

말은 버들에 스치는 바람 소리에 운다

노을진 산 그림자 속에

노산군댁은 쓸쓸도 하여라


청명날 남에게 주다[淸明日贈人]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二月燕辭海 이월연사해

千村花滿辰 천촌화만신

每醉淸明節 매취청명절

至今三十春 지금삼십춘


이월이라 제비가 바다를 뜨니

고을마다 꽃이 가득할 때로다

청명이면 으레 취한 지도

올 들어 하마 삼십년일세


춘만(春晩)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酒滴春眠後 주적춘면후

花飛簾捲前 화비렴권전

人生能幾何 인생능기하

悵望雨中天 창망우중천


봄잠 자고 나서 술잔 따르니

걷은 발 앞에 꽃이 흩날리네

덧없는 인생 얼마나 살리

비 내리는 하늘을 창연히 바라보네


추일(秋日)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菊垂雨中花 菊垂雨中花

秋驚庭上梧 추경정상오

今朝倍惆悵 금조배추창

昨夜夢江湖 작야몽강호


국화는 빗속에 꽃 드리우고

뜨락의 오동잎은 가을에 놀래누나

오늘아침 갑절이나 서글퍼짐은

어젯밤 시골 꿈을 꾸어서일세


그의 문금(聞琴)이란 시는 이러하다.

佳人挾朱瑟 가인협주슬

纖手弄柔荑 섬수롱유이

忽彈流水曲 홀탄류수곡

家在古陵西 가재고릉서


아름다운 여인 붉은 비파를 끼고

삐비 같은 섬수를 희롱하누나

갑자기 유수곡 타니

집이 고릉 서녘에 있네


익지가 또,

明月不知滄海暮 명월부지창해모

九疑山下白雲多 구의산하백운다


밝은 달은 큰 바다 저문 줄도 모르고

구의산 기슭엔 흰 구름만 자욱


이란 구절을 전해 주었는데, 이런 구절은 이미 꿈의 경지에 든 것이다.


백련(百鍊)의 아우 감(鑑)은 나와 절친하므로, 상세한 얘기를 갖추 들었다.


용(鎔)의 호는 오정(梧亭)이고 해주인(海州人)이다. 시로 세상에 알려졌으나 일찍 죽었다. 감(鑑)의 호는 삼옥(三玉)인데 벼슬은 정랑(正郞)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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