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근세에 이현욱(李顯郁)이라는 이가 있어 시마(詩魔)에 걸렸는데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호] 상공(相公)은 그런 줄도 모르고 굉장히 칭찬을 하였다.

이익지(李益之:이달)가 어느 날 상공을 뵈러 가니 상공은 현욱(顯郁)의 시를 보여주며 그에게 고하(高下)를 품평케 하였다.

그러자 이익지는,

步復無徐亦不忙 보복무서역불망

東西南北遍春光 동서남북편춘광

봄이 오는 걸음걸인 느릴 것도 없고 서두는 것도 아닌데

봄빛은 동서남북으로 고루 비치네

라는 구절을 들어,

“이것은 정말 문장가의 말투입니다. 우리나라 서ㆍ이(徐李) 같은 분도 일찍이 이런 말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나이도 어리니 필경 시마(詩魔)가 붙은 것입니다.”

하였지만, 상공은 그렇게 여기질 않았으나 얼마 있다가 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그가 허영주(許郢州)에게 차운한 시에

春山路僻問歸樵 춘산로벽문귀초

爲指前峯石逕遙 위지전봉석경요

僧與白雲還暝壑 승여백운환명학

月隨滄海上寒潮 월수창해상한조

世情老去渾無賴 세정노거혼무뢰

遊興年來獨未銷 유흥년래독미소

回首孤航又陳迹 회수고항우진적

疏鐘隔渚夜迢迢 소종격저야초초

봄 산길 외져 돌아가는 나무꾼에게 물으니

손가락으로 앞산 돌길을 가리키네

중도 백운도 어두운 골짜기로 돌아간 뒤

달은 푸른 바다 찬 밀물을 따라 오르네

세상살이 늙을수록 도무지 믿을 수 없는데

유흥만은 요즘에도 삭을 줄 모르누나

둘러보니 외로운 배 벌써 자취 아득한데

물 건너 드문 종소리만 한밤에 은은해라

라 하였고,

이익지에게 차운한 시는 다음과 같다.

風驅驚雁落平沙 풍구경안락평사

水態山光薄暮多 수태산광박모다

欲使龍眠移畫裏 욕사용면이화리

其如漁艇笛聲何 기여어정적성하

바람에 휘몰려 놀란 기러긴 편편한 모래밭에 내려앉고

물맵시 산빛엔 어스름 빛 자욱해라

용면(龍眠)시켜 이 경치 그림폭에 옮기려 하는데

고깃배의 젓대소린 이를 어쩐다지

말들이 모두 속기가 없고 격이 또한 노숙하다. 시마(詩魔)가 떠난 뒤로는 일자무식이 되어 마치 추매(椎埋)처럼 되어버렸다.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자는 여수(汝受)이고 한산인(韓山人)인데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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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한호(韓濩) 경홍(景洪)은 글씨를 잘 쓸뿐더러 시도 잘 지었다. 그러므로 한경당(韓敬堂) [경당은 한세능(韓世能)의 호]ㆍ등북해(滕北海) [북해는 등계달(滕季達)의 호]ㆍ황규양(黃葵陽) [규양은 황홍헌(黃洪憲)의 호]이 모두 그를 시인으로 대접했다.

임궁아집시(琳宮雅集詩)를 경홍(景洪)에게도 운을 화작하게 하였으니, 중국인이 그를 중히 여기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았다.

언젠가 《봉주집(鳳洲集)》을 보니, 한 태사(韓太史)의 《동행록(東行錄)》에 발문을 지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서 한석봉(韓石峯)의 글씨를 칭찬하되 액자(額字)는 양속(羊續)보다 나아서 성난 사자가 돌을 후벼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였고 해서(楷書)는 왕헌지(王獻之)와 비슷하고 초서(草書)는 바로 회소(懷素)와 같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경홍을 잘 알아주었다고 하겠다.

다른 책을 상고하면 호(濩)의 자는 경호(景浩)인데, 여기서 경홍(景洪)이라 하였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혹은 자가 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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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이망헌(李忘軒) [망헌은 이주(李冑)의 호]이 진도(珍島)로 귀양 갈 때,

이낭옹(李浪翁) [낭옹은 이원(李黿)의 자]을 작별하는 시에,

海亭秋夜短 해정추야단

一別復何言 일별복하언

怪雨連鯨窟 괴우연경굴

頑雲接鬼門 완운접귀문

素絲衰鬢色 소사쇠빈색

危涕滿痕衫 위체만흔삼

更把離騷語 경파이소어

憑君欲細論 빙군욕세론

바닷가 정자에 가을밤도 짧은데

이번 작별에 새삼 무슨 말 할꼬

궂은비는 깊은 바닷속까지 연하였고

험상궂은 구름은 변방에까지 이었네

흰 구레나룻에 파리한 안색

두려운 눈물 자국 적삼에 그득

이소경(離騷經)의 말을 가지고

그대와 꼼꼼히 따질 날 그 언제런가

라 하였다.

그가 제주도로 이배(移配)될 제, 배가 막 뜨려는데 친동생이 뒤쫓아 왔다.

떠나면서 시 한 수를 읊어 작별하기를,

强停鳴櫓痛平生 강정명로통평생

白日昭昭照弟兄 백일소소조제형

若敎精衛能塡海 약교정위능전해

一塊耽羅可步行 일괴탐라가보행

찌걱거리는 노 굳이 멈추고 한평생을 서러워하니

백일은 밝게밝게 우리 형제를 비추네

정위새 와서 바다를 메우기만 한다면

한 덩이 탐라도를 걸어서도 가련만

하였으니 천년 뒤에도 읽는 이의 애를 끊어지게 하리라.

김경림(金慶林, 경림은 봉호) 명원(命元) 이 우리 형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낭옹(浪翁)의 이름은 원(黿), 호는 재사당(再思堂)이며, 경주인(慶州人)이다. 벼슬은 예조 정랑에 이르렀다. 무오년에 장류(杖流)되었고, 갑자년에 원통하게 죽었다.

망헌(忘軒)의 아우의 이름은 여(膂), 자는 홍재(弘哉)이고 벼슬은 수찬(修撰)에 이르렀다.

명원(命元)의 자는 응순(應順), 호는 주은(酒隱)이고 경주인이다.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우리 형의 이름은 성(筬), 자는 공언(功彦)인데 벼슬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호는 악록(岳麓)이다.

망헌(忘軒)의 만성시(漫成詩)에

老怯風霜病益頑 노겁풍상병익완

一簷朝旭坐蒲團 일첨조욱좌포단

隣僧去後門還掩 인승거후문환엄

只有山雲過石欄 지유산운과석란

나이 드니 풍상은 두렵기만 하고 짓궂은 병은 더욱 떠날 줄 모르는데

외로운 처마 아침해에 포단에 앉았네

이웃 중이 가버린 뒤 사립 다시 닫았는데

산구름만 돌난간을 스쳐 지날 뿐

이라는 것이 있다.

중에게 준[寄僧] 시는 또 다음과 같다.

鍾聲敲月落秋雲 종성고월낙추운

山雨翛翛不見君 산우소소불견군

鹽井閉門唯有火 염정폐문유유화

隔溪人語夜深聞 격계인어야심문

종소리는 달을 두드려 가을 구름에 지고

산비는 주룩주룩 그대는 안 보이네

염정은 닫히고 불길만 보이는데

개울 너머 인기척 밤깊도록 두런두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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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익지(益之:이달)의 시를 세상 사람들은 기생에 대한 실수 때문에 트집을 잡지만,

그의 동산역시(洞山驛詩)에,

隣家少婦無夜食

린가소부무야식

雨中 刈麥草間歸

우중예맥초간귀

靑薪帶濕煙不起

청신대습연불기

入門兒女啼牽衣 입문아녀제견의


이웃집 어린 며느린 저녁거리도 없어

비맞으며 보리 베어 풀섶길로 돌아오네

축축한 생솔가지 불도 안 붙는데

들어서자 어린 것들 옷 잡고 칭얼대네


라 하였으니, 시골 살림의 식량 딸리는 보릿고개 실정을 직접 보는 듯하다.


그의 <이삭줍기노래>[拾穗謠,습수요]에는,

田間拾穗村童語

전간습수촌동어

盡日東西不滿筐

진일동서불만광

今歲刈禾人亦巧

금세예화인역교

盡收遺穗上官倉

진수유수상관창

논에서 이삭 줍는 어린이 하는 말

온 종일 이리저리 주워야 소쿠리도 안 차요

올해는 벼 베는 이 솜씨 하 좋아

한 톨이라도 흘릴세라 관창에 다 바쳤대요


라 하였으니, 흉년에 시골 사람의 말을 마치 친히 듣는 듯하다.


영남도중(嶺南道中)이란 시에서는,

老翁負鼎林間去

로옹부정림간거

老婦携兒不得隨

노부휴아부득수

逢人却說移家苦

봉인각설이가고

六載從軍父子離

육재종군부자리


영감은 솥 지고 숲길로 가버렸는데

할멈은 어린 것을 데리고 따라가질 못하네

사람 만나 떠돌아다니는 괴로움 넋두리하되

종군하기 육년이라 부자도 이별이라오

라 하였으니, 부역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살 수 없어 유리 신고하는 모습이 한 편에 갖추 실려 있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이 시를 보고 가슴 아파하며 놀라 깨달아, 고달프고 병든 자를 어진 정치로 잘 살게 한다면, 그 교화에 도움됨이 어찌 적다 할 것인가.
문장을 지음이 세상 교화와 관계가 없다면 한갓 짓는데 그칠 뿐일 것이니, 이러한 작품이 어찌 소경의 시 외는 소리나 솜씨 있는 간언보다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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