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임자순(林子順:임제)은 스스로 소치(笑癡)라 호하였다. 우리 중형이 언젠가 기생들의 고사를 모아 글을 지었는데, 화치(和癡)의 고사를 따서 이십사령(二十四令)을 지었다.


자순(子順)이 칠언시로 제하기를,


揀得名花二十四 간득명화이십사

笑癡之物一無之 소치지물일무지

人間萬事皆虛僞 인간만사개허위

處處風流說笑癡 처처풍류설소치


추리고 가린 명기 스물넷인데

소치의 차지는 하나도 없네

인간 만사 다 거짓이라고

곳곳마다 풍류랑은 소치라 말들 하네


라 하였는데, 그의 글은 흔히 볼 수가 없다. 이른바 《수성지(愁城志)》라는 것은 문자가 생긴 이래로 특별한 글이니, 천지간에 절로 이런 문자가 없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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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당 나라 장우(張祐)와 최애(崔涯)가 창루(娼樓)에 제시(題詩)를 해 주었는데, 만약 칭찬을 하면, 네 말[馬]이 끄는 수레가 그 문을 메우고, 그 시가 기생을 헐뜯으면 손님도 끊겼다.
신차소(申次韶:신종호) 선생이 상림춘(上林春)이라는 기생에게 준 시에,

第五橋頭煙柳斜

제오교두연유사

晩來風日轉淸和

만래풍일전청화

緗簾十二人如玉

상렴십이인여옥

靑瑣詞臣信馬過

청쇄사신신마과

제오교 머리에 내 낀 버들 비꼈고

밤들자 바람 자고 날씨도 해맑아라

노르스름한 열두 난간에 아가씨 옥과 같으니

대궐 안 시인들도 말 가는 대로 찾아드네

라 하니, 기생의 명성은 이로 인해 십배나 올랐다.


이익지(李益之:이달)가 옥하선(玉河仙)이란 기생을 비웃기를,

頭如刷箒色如銀

두여쇄추색여은

黙坐無言似鬼神

묵좌무언사귀신

遍身綺羅疑借著

편신기라의차저

只宜終嫁郭忠輪

지의종가곽충륜

빗자루 같은 머리털 그나마 센데다가

아무말 않고 앉은 꼴 귀신 같구나

몸에 걸친 비단옷도 얻어 입은 듯

고작해야 곽충륜에게나 시집가겠군

이라 하였다.

충륜(忠輪)은 장님인데 돈은 있었다.
이 기생은 유명했었으나 익지(益之)의 시가 나오자 문득 그 집이 쓸쓸해졌다. 똑같이 이름난 기생이로되, 한 시로 그 값을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었으니, 어찌 다만 기생뿐이겠는가? 대개 선비도 이와 같았다.
차소(次韶)의 이름은 종호(從護), 호는 삼괴(三魁)로 고령인(高靈人)이다. 벼슬은 예조 참판에 이르렀는데, 연경에 사신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송도에서 죽었다.

삼괴(三魁:신종호)의 상춘(傷春) 절구에,

茶甌飮罷睡初醒

다구음파수초성

隔屋聞吹紫玉笙

격옥문취자옥생

燕子不來鸎又去

연자불래앵우거

滿庭紅花落無聲

만정홍화락무성

한 사발 차 마시자 졸음 막 깨니

이웃에서 들려오는 붉은 옥피리 소리

제비도 오잖고 꾀꼬리도 날아갔는데

뜰에 가득 붉은 꽃잎만 소리 없이 떨어지네

라는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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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3609ksk/130081977254


임제(林悌)의 위기 탈출

임제(林悌-1549~1587)의 호는 백호(白湖). 조선 宣祖 9년에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동서 양당의 싸움을 개탄하고 낙향하여 명산을 찾아 다니며 여생을 마쳤다.

그는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詩에도 능했고, 절세의 美男으로 천하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였다.

그가 28세 때 춘삼월 어느날 한양에서 술에 만취하여 수원 어느 주막까지 갔는데, 그 집 주모와 눈이 맞아 하룻밤을 동침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주모의 남편에게 발각되었다.
그 남편이 칼을 들고 들어와 죽이려고 하자, 이왕 죽을 바에야 詩나 한 수 짓고 죽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남편이 허락하므로 즉석에서 詩 한 수를 지었다.

昨夜長安醉酒來(작야장안취주래) : 어제밤 장안에서 술에 취해 여기오니
桃花一枝爛漫開(도화일지란만개) : 복승아꽃 한 가지가 아름답게 피었네.
君何種樹繁華地(군하종수번화지) : 그대 어찌 이꽃을 번화한 땅에 심었는가
種者非也折者非(종자비야절자비) : 심은者가 그른가 꺾은 者가 그른가.

백호는 詩를 다 적은 후에 이제 죽이라고 목을 내밀었다.
그 남편은 이 詩를 보고 요염한 복숭아꽃의 유혹, 그리고 꽃(마누라)을 쉽게 꺾을 수 있는 곳, 뭇 남자와 격의 없이 접촉할 수 있는 술집에 둔 자신의 잘못도 있음을 꼬집은 글귀에 감복하였다.

그는 임제의 호탕한 성품과 출중한 인품에 매료되어 술상을 들여와서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도 있음을 인정, 백호의 罪를 용서하였다.

 

 

53. 동파(東坡)의 시에,

 

惆悵沙河十里春 추창사하십리춘一番花老一番新 일번화로일번신小樓依舊斜陽裏 소루의구사양리不見當時垂手人 불견당시수수인

 

슬프다 사하 물가 십리의 봄 한 차례 꽃 이울자 다음 꽃 새로워라 비낀 저녁 놀에 작은 누각 예 같건만 그 당시 춤추던 이 어디 갔는지

 

 

라는 것이 있는데, 손곡(蓀谷,이달)이 죽은 아내를 슬퍼한 시에도 또한 동파의 말을 답습했으니 그 시는 다음과 같다.

 

羅幃香盡鏡生塵 라위향진경생진門掩桃花寂寞春 문엄도화적막춘依舊小樓明月在 의구소루명월재不知誰是捲簾人 부지수시권렴인

 

깁 방장엔 향내 가시고 거울엔 먼지 닫힌 문엔 복사꽃만 쓸쓸한 봄날 작은 누각엔 옛날처럼 달은 밝은데 발 걷고 달 즐길 이 그 누구런가

 

이 시는 무르녹게 곱고 정겨워 전사람의 말을 쓴 줄도 모를 정도다. 익지(益之,이달)가 기생을 너무 좋아한 것으로 남에게 비방을 받으면서도 정에 끌린 것이 이러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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