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백석이 함흥 영생고보 교사 재직 시절로 졸업앨범에 실린 모던보이의 시절. 이런 백석이 기생 신분인 자신과 사랑에 빠지다니, 김자야는 <내 사랑 백석>을 집필할 수밖에. 물론 그후 방응모 사장과의 인연으로 조선일보에 근무함.부모의 자야와의 결혼 거부와 창씨개명을 피하기 위해 농사지을 땅을 찾아 이주한 한국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모여 살던 만주로 도피함. 자야는 서울로 이주.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친 후에 일본에서 1934년아오야마 가쿠인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하였다. 1934년 5월 16일자 《조선일보》에 산문 〈이설(耳說) 귀고리〉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가와 번역가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1월 20일에는 그간 《조선일보》와 《조광》(朝光)에 발표한 7편의 시에, 새로 선보이는 26편의 시를 보태어 시집 《사슴》을 당시 경성부 통의동(通義洞)에서 자비로 100권 출간했다. 이후 1948년 《학풍》(學風) 창간호(10월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을 내놓기까지 60여 편의 시를 여러 잡지와 신문, 시선집 등에 발표했으나 정작 시인 자신은 《사슴》 외에는 시집을 더 이상 출간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길상화는 눈오는 날 길상사 경내에 유해흫 뿌려 달라고 유언했다. 사당과 아래의 공덕비, 아래쪽에는 백석의 위 시 판액을 둔 것으로 보아 유해는 이곳에 뿌려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길상화의 심정으로는 자신의 공덕비 자리에 백석의 이 시를 석각해 두기를 서원했으리라 본다. 기생 자야는 영어교사 백석의 시를 사랑했고, 태원각 1천억의 재산은 백석의 시 한 줄에도 비길 수 없다고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스님에게 장담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