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중형[허봉]의 경흥압호정(慶興狎胡亭)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塞國悲寒望 새국비한망

人煙接鬼方 인연접귀방

山圍孤障外 산위고장외

水入毁陵傍 수입훼릉방

白屋經年病 백옥경년병

靑苗半夜霜 청묘반야상

登臨最蕭瑟 등림최소슬

衰鬢葉俱黃 쇠빈엽구황

국경에서 스산하게 바라다보니

인가의 연기는 귀방과 접했구나

산은 외로운 장막 밖을 에웠고

물은 무너진 능 옆으로 흘러드는구나

초가집에 해 바뀌도록 병들었는데

푸른 모에 한밤중 서리 내렸네

이곳에 오르자 가장 서글퍼지니

까칠한 수염은 낙엽과 함께 누렇구나

임자순(林子順)이 크게 칭찬하며 그 운자로 화답하려 하였으나 종일 궁리해도 뜻대로 되질 않자 시를 보내기를,

“ ‘백옥’과 ‘청묘’는 열 글자의 사기로다 (白屋靑苗十字史) ” 하였으니,

셋째와 넷째 구절이 사실(史實) 기록임을 말한 것이다.

금성 객관(金城客館)에 옛사람이 추(秋) 자로 압운하여 판각해서 못을 박아 걸어 놓았는데,

최고죽(崔孤竹)이 차운하기를,

殘角生古縣 잔각생고현

沈河急暝流 심하급명류

疏燈楚客夢 소등초객몽

半夜仲宣樓 반야중선루

寒雨雖逢霽 한우수봉제

歸心更値秋 귀심갱치추

서글픈 대평소 소리 옛고을에서 나는데

깊은 강물은 어둠속 급히 흐르네

으스레한 등불 아래 초객의 꿈이요

한밤중 중선의 다락일레

찬 비 비록 개었으나

고향 생각 또다시 가을을 만났네

라고 했다.

중씨가 이어 읊기를,

行人萬里去 행인만리거

駐馬飮寒流 주마음한류

芳草遍官道 방초편관도

晩煙生驛樓 만연생역루

旅懷渾似夢 여회혼사몽

春事半如秋 춘사반여추

나그네 만리길 가매

말 멈추어 차가운 물을 먹이네

큰 길엔 온통 꽃다운 풀들

저녁 연기 역루에서 피어오르네

나그네 회포는 어렴풋 꿈과 같아서

봄이라지만 거의 가을 같고나

라고 했다.

고죽이 보고,

“봄시를 가을 추(秋) 자로 압운하기는 가장 어려운 것인데 이 글귀는 옛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다.” 하였다.

'한문학 > 학산초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형수 / 학산초담 12  (0) 2010.02.09
누정의 현판시 / 학산초담 11  (0) 2010.02.09
임제 / 학산초담 09  (0) 2010.02.09
허난설헌 / 학산초담 08  (0) 2010.02.08
백광훈 / 학산초담 07  (0) 2010.02.08

9. 임제(林悌)의 자는 자순(子順)이니 나주인(羅州人)이다. 만력(萬曆 송신종(宋神宗)의 연호) 정축년(1577, 선조10)에 진사가 되었다. 본성이 의협심이 있고 얽매이질 않아서 세속과 맞질 않았으므로 불우했고 일찍 죽었다. 벼슬은 의제 낭중(儀制郎中 예조정랑 겸 지제교(禮曹正郞兼知製敎)의 별칭)에 그쳤다.

죽은 뒤에 어떤 이가 ‘역괴(逆魁 정여립(鄭汝立)을 말함)와 더불어 시사를 논하면서 항우(項羽)는 천하의 영웅인데 성공치 못한 것이 애달프다 말하고 나서 마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무함했는데 그 말이 삼성(三省)에 전해지자 그 아들 지(地)를 국문하니 지(地)가 그의 선친이 지은 오강(烏江)에서 항우를 조상한다는 부(賦)를 올리므로 인하여 용서받아 변방에 귀양 가게 되었다.

그의 평사 이영*을 보내는 시[送李評事瑩詩]는 다음과 같다.

朔雪龍荒道 삭설용황도

陰風渤澥涯 음풍발해애

元戎掌書記 원융장서기

一代美男兒 일대미남아

匣有干星劍 갑유간성검

囊留泣鬼詩 낭유읍귀시

邊沙暗金甲 변사암금갑

閨月照紅旗 규월조홍기

玉塞行應遍 옥새행응편

雲臺畫未遲 운대화미지

相看豎壯髮 상간수장발

不作遠遊悲 부작원유비

북방 눈 내리는 용황의 길

음산한 바람 부는 발해 바닷가

원융의 서기를 맡은 이는

일대의 미남아로다

칼집엔 별을 찌르는 칼 있고

주머니엔 귀신도 울릴 시가 들었네

변방 모래 바람 금갑옷에 자욱한데

쪽문 위의 달 홍기를 비치누나

옥문관 걸음 어딘들 안 가리오

공신각에 화상 걸기 머지 않으리

바라보니 머리카락 곤두세우고

먼 길 떠날 슬픈 빛 짓지 않네

시격(詩格)이 양영천[楊盈川: 당(唐)의 양형(楊炯)]과 매우 비슷하다.

제(悌)의 호는 백호(白湖), 벼슬은 북평사(北評事)를 지냈다. 《잠영보(簪纓譜)》를 상고해 보면 ‘제(悌)의 맏아들은 탄(坦)이고 호는 한정(閒亭)인데 벼슬을 하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기(垍)인데 호는 월창(月牕), 벼슬은 좌랑(佐郞)이다.’ 하였다.

탄(坦)은 혹 지(地)의 개명(改名)이 아닌지?

백호(白湖)의 규원시(閨怨詩)는 다음과 같다.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

羞人無語別 수인무어별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

泣向梨花月 읍향리화월

열다섯 살 월계 아가씨

남보기 부끄러워 말도 없이 헤어졌네

돌아와 겹문 닫고는

배꽃에 비친 달 보며 울었네

산사시(山寺詩)는 다음과 같다.

半夜林僧宿 반야림승숙

重雲濕草衣 중운습초의

巖扉開晩日 암비개만일

棲鳥始驚飛 서조시경비

한밤중 숲 속에 중이 자는데

무거운 비구름이 초의를 적시누나

느지막에 사립을 여니

깃든 새 그제서야 놀라서 나네

*영(瑩)은 고성인(固城人)으로 자는 언윤(彦潤), 호는 남고(南皐)이니 청파(靑坡) 육(陸)의 손자로 벼슬은 목사(牧使)를 지냈다.

'한문학 > 학산초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정의 현판시 / 학산초담 11  (0) 2010.02.09
허봉 / 학산초담 10  (0) 2010.02.09
허난설헌 / 학산초담 08  (0) 2010.02.08
백광훈 / 학산초담 07  (0) 2010.02.08
최경창 / 학산초담 06  (0) 2010.02.08


8.임오년(1582, 선조15)에 병으로 서울집에서 죽었다. 난설(蘭雪) 누님의 감우시(感遇詩)는 다음과 같다.

近者崔白輩 근자최백배

攻詩軌盛唐 공시궤성당

寥寥大雅音 요요대아음

得此復鏗鏘 득차복갱장

下僚因光祿 하료인광록

邊郡悲積薪 변군비적신

年位共零落 년위공령락

始信詩窮人 시신시궁인

요즘 최씨 백씨 무리들이

성당을 법삼아 시를 익혀

적막하던 대아의 음률이

이들 만나 다시금 크게 떨쳤네

하료는 마냥 광록이고

변방의 고을살이 적신이 슬프네

나이나 벼슬이 모두 쇠락하니

이제야 믿겠네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함을

난설헌(蘭雪軒)의 이름은 초희(楚姬)이고 자는 경번(景樊)이니, 초당(草堂) 엽(曄)의 딸이며 서당(西堂) 김성립(金誠立)의 아내이다.

난설헌의 강남곡(江南曲)은 다음과 같다.

人言江南樂 인언강남악

我見江南愁 아견강남수

年年沙浦口 년년사포구

腸斷望歸舟 장단망귀주

남들은 강남땅 좋다 하지만

나보기엔 강남땅 시름겹기만

해마다 모래톱 포구에 서서

애끊는 마음으로 가는 배만 바라보네

빈녀음(貧女吟)은 또 다음과 같다.

手把金剪刀 수파금전도

寒夜十指直 한야십지직

爲人作嫁衣 위인작가의

年年還獨宿 년년환독숙

가위를 손에 잡으니

추운 밤 열손가락 곱네

남 위해 시집갈 옷 지어주건만

해마다 도리어 혼자 살다니

채련곡(采蓮曲)은 다음과 같다.

秋淨長湖碧玉流 추정장호벽옥류

荷花深處係蘭舟 하화심처계란주

逢郞隔水投蓮子 봉랑격수투련자

剛被人知半日羞 강피인지반일수

가을이라 긴 호수엔 비취옥이 흐르는데

연꽃 깊숙한데 난주 매어두고

물건너 님을 만나 연밥을 던지다가

남의 눈에 그만 띄니 반나절이나 무안해라

'한문학 > 학산초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봉 / 학산초담 10  (0) 2010.02.09
임제 / 학산초담 09  (0) 2010.02.09
백광훈 / 학산초담 07  (0) 2010.02.08
최경창 / 학산초담 06  (0) 2010.02.08
삼당파시인 & 허봉 /학산초담 04-05  (0) 2010.02.08


7. 백광훈(白光勳)의 자는 창경(彰卿)이고, 글씨 쓰는 법은 왕희지ㆍ왕헌지에 가까우며, 첫 벼슬은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에 임명되었다. 언젠가 홍경사(弘慶寺)를 지나다가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秋草前朝寺 추초전조사

殘碑學士文 잔비학사문

千年有流水 천년유류수

落日見歸雲 낙일견귀운

가을풀 쓸쓸한 전조의 절

낡은 비석엔 학사의 글

유수는 천년토록 의구한데

해질 무렵 떠가는 구름을 보네

'한문학 > 학산초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제 / 학산초담 09  (0) 2010.02.09
허난설헌 / 학산초담 08  (0) 2010.02.08
최경창 / 학산초담 06  (0) 2010.02.08
삼당파시인 & 허봉 /학산초담 04-05  (0) 2010.02.08
조선시대 한시의 흐름 / 학샅초담 03  (0) 2010.02.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