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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68)주서(周書)(65)다사편(多士篇)(3) 이제 은(殷)의 유신(遺臣)들도 등용할 것이다.

             <서경(書經)>(168) 주서(周書)(65)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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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제 은(殷)의 유신(遺臣)들도 등용할 것이다. 

 

   王若曰(왕약왈)

   성왕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爾殷多士(이은다사)

   "그대 은나라의 많은 선비들이여!

   今惟我周王(금유아주왕)

   지금은 오직 나 주왕(周王)만이,

   丕靈承帝事(비령승제사)

   상제께서 내린 사명을 훌륭히 이어 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有命曰(유명왈)

   그리고 명(命)을 내려 말씀하시기를,

   割殷(할은) 告勑于帝(고래우제)

   ‘은(殷)나라를 베어라’고 하였는데, 이는 상제께서 이르신 바이다.

   惟我事不貳適(유아사불이적) 惟爾王家我適(유이왕가아적)

   나의 임무는 다른 것에 있지 아니하니, 그대들은 나를 따라야 한다.

   予其曰(여기왈) 惟爾洪無度(유이홍무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대들이 크게 법도에 어긋났다는 사실이다.

   我不爾動(아불이동)

   내가 그대들을 소란스럽게 한 것이 아니며,

   自乃邑(자내읍)

   그대들 나라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予亦念天卽于殷大戾(여역념천즉우은대려)

   나 역시 하늘이 곧 은나라에 크게 죄를 내리려 하심을 생각해 보았는데,

   肆不正(사부정)

   그대들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王曰(왕왈) : 왕은 또 말씀하셨다.

   (유) 告爾多士(고이다사)

   "아! 그대들 많은 관원들에게 이르노니,

   予惟時其遷居西爾(여유시기천거서이)

   나는 그대들을 서쪽으로 옮겨가서 살도록 하려고 한다.

   非我一人奉德不康寧(비아일인봉덕불강녕)

   나 한 사람의 성품이 덕을 받들고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時惟天命(시유천명) 無違(무위)

   이것은 하늘의 명인 것이니, 그대들은 이 명을 어기지 말라.

   朕不敢有後(짐불감유후) 無我怨(무아원)

   나는 감히 천명을 지체할 수 없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

   惟爾知惟殷先人有冊有典(유이지유은선인유책유전)

   그대들 은나라의 조상들에게 크고 작은 책들이 있으니,

   殷革夏命(은혁하명)

   은나라가 하나라의 국운을 바꾼 사실을 그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今爾其曰(금이기왈)

   이제 그대들은 다시 말하기를,

   夏迪簡在王庭(하적간재왕정)

   ‘하나라의 유신들은 선택되어 은나라 조정에 임명되었고,

   有服在百僚(유복재백료)

   모든 관리들 가운데 지위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予一人惟聽用德(여일인유청용덕)

   이 몸은 그대들의 말을 들어 덕이 있는 사람을 임용할 것이다.

   肆予敢求爾于天邑商(사여감구이우천읍상)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히 이 큰 상나라 고을에서 그대들을 구하려는 것이다.

   予惟率肆矜爾(여유솔사긍이)

   나는 그대들을 거느리고 함께 옳은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은,

   非予罪(비여죄) 時惟天命(시유천명)

   이는 결코 나의 죄가 아니라, 오직 하늘의 명(命)인 것이다"  

 

   *이 글에서 성왕은 주공의 동정(東征)이 곧 은나라 백성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고, 은나라

    의 유신들이 낙읍으로 옮겨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뒤에, 이들을 무마하는 방향으로 설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시세를 쫓는 무리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성왕은 곧 덕이 있는

    자를 조정에 등용하겠다고 약속하며 이들을 회유하고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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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67)주서(周書)(64)다사편(多士篇)(2) 하(夏)와 은(殷)은 하늘이 응징한 것이다.

             <서경(書經)>(167) 주서(周書)(64)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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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夏)와 은(殷)은 하늘이 응징한 것이다. 

 

   我聞曰(아문왈)

   "내가 들은 바를 말하자면,

   上帝引逸(상제인일)

   ‘상제는 편안함으로 인도한다’고 하였다.

   有夏不適逸(유하부적일) 則惟帝降格(즉유제강격)

   하나라는 적당한 편안함을 누렸기 때문에, 상제께서 강림하시어,

   嚮于時夏(향우시하) 弗克庸帝(불극용제)

   때를 맞춘 하나를 이끌었으나, 상제의 명에 따르지 않고,

   大淫泆(대음일) 有辭(유사)

   크게 지나친 향락으로 인하여, 죄를 짓게 되었다.

   惟時天罔念聞(유시천망념문)

   그래서 하늘이 그들을 돌보시지 않고 불쌍히 여기지 않아,

   厥惟廢元命(궐유폐원명) 降致罰(강치벌)

   커다란 명을 거두어 폐하고, 이에 벌을 내린 것이다.

   乃命爾先祖成湯革夏(내명이선조성탕혁하)

   곧 그대들 선조이신 성탕(成湯)에게 명하여 하나라의 명을 바꾸게 하고,

   俊民甸四方(준민전사방)

   뛰어난 인재들로 하여금 사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自成湯至于帝乙(자성탕지우제을)

   성탕에서 부터 제을(帝乙)에 이르기 까지,

   罔不明德恤祀(망불명덕휼사)

   덕을 밝히고 제사를 신중히 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亦惟天丕建保乂有殷(역유천비건보예유은)

   또한 하늘이 은나라를 세우고 보호를 하니 나라가 편안히 다스려 졌고,

   殷王亦罔敢失(은왕역망감실)

   은의 왕들도 상제의 뜻을 감히 어기지 않았다.

   帝罔不配天其澤(제망불배천기택)

   상제의 뜻을 거스리는 자가 없어서 나라의 은택이 빛나게 되었다. 

   在今後嗣王誕罔顯于天(재금후사왕탄망현우천)

   그런데 후대의 왕에 이르러 그는 자신의 덕을 하늘에 드러내지 못했으니,

   矧曰其有聽念于先王勤家(신왈기유청념우선왕근가)

   하물며 말하기를, ‘어찌 선왕들이 나라를 위해

   애쓰셨던 것을 살피고 돌보겠느냐?’ 면서, 

   誕淫厥泆(탄음궐일) 罔顧于天顯民祗(망고우천현민지)

   지나친 향락으로, 천도와 백성들의 고통을 돌보지 않았으므로,

   惟時上帝不保(유시상제불보) 降若玆大喪(강약자대상)

   상제는 이들을 보호하지 않았으니, 이와 같은 커다란 화를 내린 것이다.

   惟天不畀(유천불비) 不明厥德(불명궐덕)

   하늘은 그들에게 주지 않은 것은, 그 덕이 밝지 않았기 때문이니,

   凡四方小大邦喪(범사방소대방상)

   무릇 사방의 작고 큰 나라들의 멸망은,

   罔非有辭于罰(망비유사우벌)

   스스로가 지은 죄의 결과가 아닌 것이 없다"   

 

   *성왕은 앞절에서 계속하여 천도는 착하고 어진 사람을 가상히 여겨서 돌보아 주는 것이지만, 죄를짓고

    덕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죄를 기록해 두었다가 응징하는 것임을 설명하고, 하나라와 상나라

    는 모두 천도에 의해서 나라를 세웠다가도 죄를지었기 때문에 나라를 잃게된 것임을 강조하였다. 옛날

    에는 무슨일이든지 대의명분이 분명해야 하였다. 그래서 주공은 성왕의 명이라고 하면서, 은나라의 멸

    망은 곧 하나라의 경우와같이 하늘의 뜻인것이니,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라고 설득하고 있는 대

    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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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66)주서(周書)(63)다사편(多士篇)(1) 은나라는 스스로 명(命)을 저버렸다.

             <서경(書經)>(166) 주서(周書)(63)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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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편 다사편(多士篇)(1)

   다사(多士)는 상(商)나라 시대의 많은 관원들을 뜻하는 것인데, 이 편에서 다사(多士) 라고 하는 어휘가

   여러차례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편명(篇名)으로 삼은 것이다.감독의 편리를 기하기 위하여 주공이 성왕

   의 명이라고 하면서 상(商),곧 은(殷)나라의 모든 유신(遺臣)들에게 낙읍(洛邑)으로 이주할것을 설득하

   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편 역시 <금문상서>와 <위고문상서>에 모두 실려있는 작품으로 알

   려져 있으며, 그 내용면에 있어 다방편(多方篇)과 비슷하다고 한다.  

 

 

[1] 은나라는 스스로 명(命)을 저버렸다.  

 

   惟三月(유삼월) 周公初于新邑洛(주공초우신읍락)

   3월에, 주공은 처음으로 낙읍이라는 새로운 고을에서,

   用告商王士(용고상왕사)

   상왕(商王) 때의 관원들에게 말했다.

   王若曰(왕약왈)

   "왕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爾殷遺多士(이은유다사)

   ‘그대들 많은 은나라의 유신(遺臣)들이여!

   弗吊昊天大降喪于殷(불조호천대강상우은)

   불행히도 하늘은 은나라에 크게 멸망의 화를 내렸으며,

   我有周佑命(아유주우명)

   우리 주나라는 천명에 발 맞추어,

   將天明威致王罰(장천명위치왕벌)

   하늘의 밝히심과 정벌에 따라 왕이 된 자의 정벌을 실행하여,

   勑殷命終于帝(내은명종우제)

   은나라의 명이 상제에 의해 끝을 맺게 된 것이다.

   肆爾多士(사이다사)

   그러므로 그대들 많은 관원들은,

   非我小國敢弋殷命(비아소국감익은명)

   우리 작은 나라가 감히 은나라의 명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惟天不畀允罔固亂(유천불비윤망고란)

   오로지 하늘이 진실로 아첨하고 모함하고 고루하고

   어지럽히는 자들에게 주지 않으시고,

   弼我(필아)

   우리를 도운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我其敢求位(아기감구위)

   우리가 어찌 감히 왕위를 빼앗으려 할 수가 있겠는가?

   惟帝不畀(유제불비)

   오로지 상제께서 주지 않으심은,

   惟我下民秉爲(유아하민병위)

   우리 백성들의 심성과 행위 때문인 것이니,

   惟天明畏(유천명외)

   이는 오직 하늘의 두려움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절에서는 주공(周公)은 성왕을 대신하여, 상(商)나라의 유신(遺臣)들에게 말하고 있는 있는 대목이

    다. 성왕은 "결코 주나라가 한 집안의 영화를 위해서 상나라의 왕위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상(商)나라

    가 하늘의 뜻을 버버렸기 때문에 하늘이 대신하여 그들의 집안을 내세운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주

    나라가 비록 천하를 통일했다고 하여도 600여년이나 이어져온 은나라의 그 뿌리는 매우 깊었다. 그 좋

    은 예가 무경(武庚)의 반란이었으며, 은(殷)나라의 종친들과 제후들이 기회를 노린다고하지 않을수 없

    는 실정이었다. 이에 주공은 이들 은나라 귀족계급을 낙읍(洛邑)으로 이주시키고 그가 친히 이들을 다

    스리려고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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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65)주서(周書)(62)낙고편(洛告篇)(6) 성왕이 주공(周公)을 후사로 세우다.

             <서경(書經)>(165) 주서(周書)(62)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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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왕이 주공(周公)을 후사로 세우다.   

 

   戊辰(무진) 王在新邑(왕재신읍)

   무진일(戊辰日), 왕은 새로운 고을에서,

   烝祭歲(증제세)

   겨울 제사인 증제(烝祭)를 올리고,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하였는데,

   文王騂牛一(문왕성우일) 武王騂牛一(무왕성우일)

   문왕에게 붉은 소 한 마리를, 무왕에게도 붉은 소 한 마리를 바쳤다. 

   王命作冊逸祝冊(왕명작책일사책)

   왕은 책서(冊書)을 짓도록 명하고

   문서 관리인 일(逸)에게 책문(冊文)을 읽게 하였다.

   惟告周公其後(유고주공기후)

   그리고 주공(周公)을 후사(後嗣)로 세웠음을 보고하였다.

   王賓殺禋(왕빈살인)

   왕이 주공을 빈객으로 대접하여 짐승을 잡아 인제(禋祭)를 올리자,

   咸格(함격) 王入太室祼(왕입태실관)

   모든 심령들이 강림하였으며, 왕은 침묘(寢廟) 가운데

   위치한 큰 방에 들어가서 술을 땅에 뿌렸다.

   王命周公後(왕명주공후) 作冊逸誥(작책일고)

   왕이 주공을 후사로 세울 것을 명하여, 문서관인 일(逸)이 널리 알렸다.

   在十有二月(재시유이월)

   주공이 섭정이 끝난 것은 12월이었는데,

   惟周公誕保文武受命(유주공탄보문무수명) 惟七年(유칠년)

   이는 주공이 문왕과 무왕이 받은 천명을 지킨 지, 7년 째였다.   

 

     

 

    *이 글에서는 낙읍(洛邑)이 하나의 큰 고을로 규모를 갖추게 되었으므로 이에 제사를 올린 상황을 기록

     한것이다. 주공을 다시 성왕(成王)의 후계자로 삼았다고 하였으나, 그러나 주공(周公)은, 어린 조카 성

    왕을 도와 섭정하여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의 반란을 평정하고 제도와 예약을 정비 하였으며, 왕실의

    기초를 다진 후에 조카인 성왕이 장성하자, 스스로 왕실을 떠나 노(魯)나라를 책봉받게 되었다. 여기서

    분명히 밝혀 둘것은 이글이 낙읍이 도읍지로 책정이 되어서 성왕이 천도를 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낙읍은 단지 주나라의 세력이 동방으로 확대가 되자, 그 거점으로 건설되었을 뿐이다. 종주(宗周)가 주

    (周)나라의 처음 도읍이었고, 낙읍(뤄양)은 주공이 개척하고 나서, 훨씬 이후인 주(周)나라 평왕(平王)

    때 이 곳으로 동천(東遷)을 하게 된다. 지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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