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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66)주서(周書)(63)다사편(多士篇)(1) 은나라는 스스로 명(命)을 저버렸다.

             <서경(書經)>(166) 주서(周書)(63)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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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편 다사편(多士篇)(1)

   다사(多士)는 상(商)나라 시대의 많은 관원들을 뜻하는 것인데, 이 편에서 다사(多士) 라고 하는 어휘가

   여러차례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편명(篇名)으로 삼은 것이다.감독의 편리를 기하기 위하여 주공이 성왕

   의 명이라고 하면서 상(商),곧 은(殷)나라의 모든 유신(遺臣)들에게 낙읍(洛邑)으로 이주할것을 설득하

   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편 역시 <금문상서>와 <위고문상서>에 모두 실려있는 작품으로 알

   려져 있으며, 그 내용면에 있어 다방편(多方篇)과 비슷하다고 한다.  

 

 

[1] 은나라는 스스로 명(命)을 저버렸다.  

 

   惟三月(유삼월) 周公初于新邑洛(주공초우신읍락)

   3월에, 주공은 처음으로 낙읍이라는 새로운 고을에서,

   用告商王士(용고상왕사)

   상왕(商王) 때의 관원들에게 말했다.

   王若曰(왕약왈)

   "왕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爾殷遺多士(이은유다사)

   ‘그대들 많은 은나라의 유신(遺臣)들이여!

   弗吊昊天大降喪于殷(불조호천대강상우은)

   불행히도 하늘은 은나라에 크게 멸망의 화를 내렸으며,

   我有周佑命(아유주우명)

   우리 주나라는 천명에 발 맞추어,

   將天明威致王罰(장천명위치왕벌)

   하늘의 밝히심과 정벌에 따라 왕이 된 자의 정벌을 실행하여,

   勑殷命終于帝(내은명종우제)

   은나라의 명이 상제에 의해 끝을 맺게 된 것이다.

   肆爾多士(사이다사)

   그러므로 그대들 많은 관원들은,

   非我小國敢弋殷命(비아소국감익은명)

   우리 작은 나라가 감히 은나라의 명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惟天不畀允罔固亂(유천불비윤망고란)

   오로지 하늘이 진실로 아첨하고 모함하고 고루하고

   어지럽히는 자들에게 주지 않으시고,

   弼我(필아)

   우리를 도운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我其敢求位(아기감구위)

   우리가 어찌 감히 왕위를 빼앗으려 할 수가 있겠는가?

   惟帝不畀(유제불비)

   오로지 상제께서 주지 않으심은,

   惟我下民秉爲(유아하민병위)

   우리 백성들의 심성과 행위 때문인 것이니,

   惟天明畏(유천명외)

   이는 오직 하늘의 두려움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절에서는 주공(周公)은 성왕을 대신하여, 상(商)나라의 유신(遺臣)들에게 말하고 있는 있는 대목이

    다. 성왕은 "결코 주나라가 한 집안의 영화를 위해서 상나라의 왕위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상(商)나라

    가 하늘의 뜻을 버버렸기 때문에 하늘이 대신하여 그들의 집안을 내세운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주

    나라가 비록 천하를 통일했다고 하여도 600여년이나 이어져온 은나라의 그 뿌리는 매우 깊었다. 그 좋

    은 예가 무경(武庚)의 반란이었으며, 은(殷)나라의 종친들과 제후들이 기회를 노린다고하지 않을수 없

    는 실정이었다. 이에 주공은 이들 은나라 귀족계급을 낙읍(洛邑)으로 이주시키고 그가 친히 이들을 다

    스리려고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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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65)주서(周書)(62)낙고편(洛告篇)(6) 성왕이 주공(周公)을 후사로 세우다.

             <서경(書經)>(165) 주서(周書)(62)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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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왕이 주공(周公)을 후사로 세우다.   

 

   戊辰(무진) 王在新邑(왕재신읍)

   무진일(戊辰日), 왕은 새로운 고을에서,

   烝祭歲(증제세)

   겨울 제사인 증제(烝祭)를 올리고,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하였는데,

   文王騂牛一(문왕성우일) 武王騂牛一(무왕성우일)

   문왕에게 붉은 소 한 마리를, 무왕에게도 붉은 소 한 마리를 바쳤다. 

   王命作冊逸祝冊(왕명작책일사책)

   왕은 책서(冊書)을 짓도록 명하고

   문서 관리인 일(逸)에게 책문(冊文)을 읽게 하였다.

   惟告周公其後(유고주공기후)

   그리고 주공(周公)을 후사(後嗣)로 세웠음을 보고하였다.

   王賓殺禋(왕빈살인)

   왕이 주공을 빈객으로 대접하여 짐승을 잡아 인제(禋祭)를 올리자,

   咸格(함격) 王入太室祼(왕입태실관)

   모든 심령들이 강림하였으며, 왕은 침묘(寢廟) 가운데

   위치한 큰 방에 들어가서 술을 땅에 뿌렸다.

   王命周公後(왕명주공후) 作冊逸誥(작책일고)

   왕이 주공을 후사로 세울 것을 명하여, 문서관인 일(逸)이 널리 알렸다.

   在十有二月(재시유이월)

   주공이 섭정이 끝난 것은 12월이었는데,

   惟周公誕保文武受命(유주공탄보문무수명) 惟七年(유칠년)

   이는 주공이 문왕과 무왕이 받은 천명을 지킨 지, 7년 째였다.   

 

     

 

    *이 글에서는 낙읍(洛邑)이 하나의 큰 고을로 규모를 갖추게 되었으므로 이에 제사를 올린 상황을 기록

     한것이다. 주공을 다시 성왕(成王)의 후계자로 삼았다고 하였으나, 그러나 주공(周公)은, 어린 조카 성

    왕을 도와 섭정하여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의 반란을 평정하고 제도와 예약을 정비 하였으며, 왕실의

    기초를 다진 후에 조카인 성왕이 장성하자, 스스로 왕실을 떠나 노(魯)나라를 책봉받게 되었다. 여기서

    분명히 밝혀 둘것은 이글이 낙읍이 도읍지로 책정이 되어서 성왕이 천도를 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낙읍은 단지 주나라의 세력이 동방으로 확대가 되자, 그 거점으로 건설되었을 뿐이다. 종주(宗周)가 주

    (周)나라의 처음 도읍이었고, 낙읍(뤄양)은 주공이 개척하고 나서, 훨씬 이후인 주(周)나라 평왕(平王)

    때 이 곳으로 동천(東遷)을 하게 된다. 지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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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64)주서(周書)(61)낙고편(洛告篇)(5) 은(殷)나라 유민(遺民)들로 하여금 순종케 하십시오.

             <서경(書經)>(164) 주서(周書)(61)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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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은(殷)나라 유민(遺民)들로 하여금 순종케 하십시오.  

 

   周公拜手稽首(주공배수계수)(왈)

   주공은 엎드려 절하고, 이렇게 말했다.

   王命予來(왕명여래)

   "왕께서는 저를 불러,

   承保乃文祖受命民越(승보내문조수명민월)

   조상께서 하늘로부터 받은 백성들과,

   乃光烈考武王(내광렬고무왕)

   빛나는 공을 세우신 당신의 아버지 무왕을 받들어 보호하게 하시니,

   弘朕恭(홍짐공)

   저는 삼가 넓고도 깊이 받들 뿐입니다.

   孺子來相宅(유자래상택)

   젊은 그대가 거처를 살피러 왔으니,

   其大惇典殷獻民(기대돈전은헌민)

   은나라의 어진 인재들에게 크고 두터운 봉록을 내리시고,

   亂爲四方新辟(난위사방신벽)

   이들을 새로운 제후로 삼으시어,

   作周恭先(작주공선)

   주나라 왕업을 성취함에 있어 공손함을 우선으로 하게 하십시오.

  (왈) 其自時中乂(기자시중예) 萬邦咸休(만방함휴)

   말하건대, 이후부터 중원을 다스려, 만방이 아름다워 지게 되면,

   惟王有成績(유왕유성적)

   왕의 공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予旦以多子越御事(여단이다자월어사)

   이 단(旦)은 많은 공경대부와 관원들과 더불어,

   篤前人成烈(독전인성렬) 答其師(답기사)

   선인들이 이룩한 공을 두터이 하여, 은나라의 백성들에게 보답할 것이며,

   作周孚先(작주부선)

   주나라 왕업을 이룩함에 있어서 믿음을 우선으로 하여,

   考朕昭子刑(고짐소자형) 乃單文祖德(내단문조덕)

   우리 어진 법을 이루어, 조상의 미덕을 크게 떨칠 것입니다.

   伻來毖殷乃命寧(팽래비은내명녕)

   왕께서는 사자를 은(殷)으로 보내어 훈계를 하시고,

   予以秬鬯二卣(여이거창이유)

   저를 문안하게 하면서 두 병의 검은 기장술을 가져와,

  (왈) 明禋(명인)

   말하기를, ‘인제(禋祭)을 올리면서,

   拜手稽首休享(배수계수휴향)

   절하고 절하여 훌륭히 제사를 올려라’는 명을 전하십시오. 

   予不敢宿(여불감숙)

   그러면 저는 감히 하룻밤을 넘기지 않고,

   則禋于文王武王(즉인우문왕무왕)

   즉시 문왕과 무왕에게 인제(禋祭)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惠篤敍無有遘自疾(혜독서무유구자질)

   편안하고 순조로이 되어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萬年厭于乃德(만년염우내덕) 殷乃引考(은내인고)

   길이 그대의 덕에 만족하여, 은나라는 성장하고 이룩될 것입니다.

   王伻殷乃承敍(왕팽은내승서)

   왕께서 은나라 유민들로 하여금 순종케 하신다면,

   萬年其永觀朕子懷德(만년기영관짐자회덕)

   길이 우리 왕의 은덕을 사모함을 나타낼 것입니다"  

 

   *이 글에서 주공은 성왕의 당부에 답하여 성왕이 앞으로 해야 할 바를 간곡히 타이르고 있다. 이 편에서

    보듯이 주공은 은나라 유민들을 유화책으로 위로하였고,한편 종친들을 요소(要所)에 봉하여 은나라 때

    부터 제후들 사이에서 이들을 잘견제를 하게 하였다. 이로인하여 주나라의 기틀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

    으며, 그 후 40년 간은 형벌을 쓰지 않았다고 하는 시대게 찾아 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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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63)주서(周書)(60)낙고편(洛告篇)(4) 공(公)은 이곳에 남아 다스려 주십시오.

             <서경(書經)>(163) 주서(周書)(60)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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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公)은 이곳에 남아 다스려 주십시오.  

 

   王若曰(왕약왈)

   왕이 이와 같이 말했다.

   (공) 明保予沖子(명보여충자)

   "공이여! 힘써 이 젊은 사람을 지켜 주시오.

   公稱丕顯德(공칭비현덕)

   공은 밝은 덕을 드러내어,

   以予小子揚文武烈(이여소자양문무렬)

   이 어린 사람으로 하여금 문왕과 무왕의 공훈을 떨치게 해 주시오.

   奉答天命(봉답천명)

   삼가 천명에 보답하여,

   和恒四方民居師(화항사방민거사)

   사방의 백성들을 화목하고 순탄하게 하여 이 낙읍에서 살도록 해 주시오.

   惇宗將禮(돈종장례) 稱秩元祀(칭질원사)

   예를 두텁고 성대히 거행하여, 큰 제사를 올리도록 하시고,

   咸秩無文(함질무문)

   이에 질서가 문란하지 않도록 해 주시오.

   惟公德明光于上下(유공덕명광우상하)

   공의 덕이 밝아 그 빛은 하늘과 백성들에게 비치었으며,

   勤施于四方(근시우사방) 旁作穆穆(방작목목)

   사방에 그 수고로움을 펴시니, 두루 훌륭하기만 하고,

   迓衡不迷文武勤敎(아형불미문무근교)

   정권을 가졌어도 문왕과 무왕의 은근한 교훈을 어지럽히지 않았습니다.

   予沖子夙夜毖祀(여충자숙야비사)

   이 젊은 사람은 아침부터 밤까지 조심하여 제사를 올릴 뿐입니다"

   王曰(왕왈)

   왕은 또 말하였다.

   (공) 功棐迪篤(공비적독)

   "공이여! 그대의 공은 훌륭하고 또한 크니,

   罔不若時(망불약시)

   앞으로도 이와 같지 않음이 없도록 하십시오"

   王曰(왕왈)

   또 왕이 이렇게 말하였다.

   (공) 予小子其退卽辟于周(여소자기퇴즉벽우주)

   "공이여! 이 나이 어린 사람은 주나라로 돌아가서 왕위에 오르도록 하겠으니,

   命公後(명공후)

   공은 이곳에 남도록 하십시오.

   四方迪亂(사방적란) 未定于宗禮(미정우종례)

   사방은 어지러우며,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았고 제사의 예의에 대한 것도, 

   亦未克敉公功(역미극미공공)

   역시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迪將其後(적장기후)

   공이 이 곳에 남아서 주재하시면서,

   監我士師工(감아사사공)

   우리 선비들과 스승들과 기술자들의 관원들을 감독하시어,

   誕保文武受民(연보문무수민)

   문왕과 무왕께서 이어받은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亂爲四輔(난위사보)

   사방의 울타리 같은 제후국이 되도록 해 주십시오"

   王曰(왕왈)

   왕은 또 이렇게 말했다.

   公定(공정) 予往已(여왕이)

   공은 이제 안정시키십시오. 저는 이제 가야 하겠습니다.

   公功肅將祗歡(공공숙장지환)

   공의 일이 적어져서 기뻐할 수 있게 되었으니,

   公無困哉(공무곤재)

   공께서는 곤란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我惟無懌(아유무역) 其康事(기강사)

   제가 게으름이 없이 일을 하면, 모든 정사가 순조로워 질 것입니다.

   公勿替刑(공물체형)

   공이 모범이 됨을 저버리지 않으시면,

   四方其世享(사방기세향)

   사방은 대대손손 공물을 바치게 될 것입니다"  

 

   *성왕(成王)은 이글에서 주공의 공로를 치하를 하고, 낙읍에 남아서 동쪽의 땅을 잘다스려 주왕실에 기

    여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여 주공은 동쪽땅을 다스리게 되고 봉건종친의 제

    도를 확립시켰으며, 예의를 제정하고 음악을 장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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