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파의 잡지 〈메르키르 드 프랑스〉를 창간하였으며, 비평과 미학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 노르망디의 명문 출신이다. 26세 때 결핵의 일종인낭창에 걸려 얼굴이 추해지자, 문 밖 출입을 하지 않고 고독한 생애를 보냈다. 그는 상징주의의 이론가일 뿐 아니라, 자유로운 입장에서 세련된 취미와 학식을 가지고 시·소설·평론을 썼다. 그의 대표적인 상징시인 〈낙엽〉은 전 세계에서 널리 읽혀지고 있다. 소설로는 《룩셈부르크의 하룻밤》, 평론집으로 《프랑스어의 미학》, 《문학 산책》등이 있다.
이럴 때 제대로 된 사람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 자본주의 필멸(必滅)론은 나와 마르크스·레닌파와 서울대 경제학 교수들의 잘못이었구나” 하고, 오류를 솔직담백하게 인정했어야 한다. 박정희 산업화가 승리했음을, 극좌 혁명이 실패했음을, 흔쾌히 인정했어야 한다. 그게 최소한의 지적(知的) 양심이다.
김문수는 양심의 길로, 정직한 길로 과감히 나아갔다. 진짜 용기였다.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의 기존 관점이 오류임이 판명됐을 때 즉각 그 잘못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인정해야, 새 격상(格上)된 길이 보일 것이다. 인정하지 않고 바락바락 우기면, 한낱 유사종교로 전락할 뿐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의 주인공은 이제 도(道)를 이뤘나 하면 오류를 발견하고, 그래서 다시 시작하고, 이제는 다 됐겠거니 하면 또 오류를 발견하고, 그래서 또 새로 시작하고, 하면서 마지막 숨을 들이쉴 때까지 정진(精進)을 멈추지 않았다.
"김문수는 안 돼" 하는 사람들은?
그러나 일부는 이런 길을 가지 않고 그야말로 바락바락 우기며 싯다르타 같은 새로운 탐구를 험구하곤 한다. 김문수 전 지사(知事)가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 하마평(下馬評)에 오르자, 그들은 일제히 “김문수는 안 돼”라며 고함을 지른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언하려 한다.
김문수 전 지사는 영혼이 맑은 캐릭터입니다. 그가 새롭게 시작했던 길은, 대한민국과 자유 체제와 노동계 혁신과 이 나라 정치·경제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5년간 이 나라를 아프게 했던 한국병(病) 치유를 위해, 너무나도 적실(適實)한 길입니다. 사사건건 윤석열 정부가 실패하기만 바라는 쪽의 아우성에 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확신을 가지세요. 계속 달리세요, 김문수와 함께.
운동권 집권세력에 야합한 바른미래당...자살선언-좌경화 선택-與2중대 자인 한국정치와 한반도 정치에서 '중간'은 허위이자 허구 한반도 싸움은 보수-진보 싸움 아니라 '자유'냐 '전체주의'냐의 싸움 내년 총선에서 자유인들이 개헌저지선 확보 못하면 대한민국 종막의 시작 한국인들, 나라 운명에 대한 각자의 책임 절감하고 선택해야
섬진강을 지나 영산강 지나서 가자 친구여 西海바다 그 푸른꿈 지나 언제나 그리운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언제나 그리운 압해도로 가자 창밖엔 밤새도록 우리를 부르는 소리 친구여 바다가 몹시도 그리운 날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언제나 그리운 압해도로 가자
(간주)
하이얀 뭉게구름 저멀리 흐르고 외로움 짙어가면 친구여 바다소나물 사잇길로 가자 늘리보다 더 외로운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언제나 그리운 압해도로 가자
압해도 사람들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이마받이을 하고 문득 눈을 들면 사람보다 더 놀란 압해도 귀가 없는 압해도 반 고호의 마을로 가는지 뿔테 안경의 아이들이 부는 휘파람 소리 일렬로 늘어선 풀들이 깨금발로 돌아다니고 집집의 지붕마다 귀가 잘려 사시사철 한쪽 귀로만 풀들이 피는 나지막한 마을
작은 창문을 돋보기처럼 매단 늙은 우체국을 지나가면 청마가 생각난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창유리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청마 고층 빌딩들이 라면 상자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는 머나먼 하늘나라 우체국에서 그는 오늘도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까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고 우체국 옆 기찻길로 화물열차가 납작하게 기어간다 푯말도 없는 단선 철길이 인생이라는 경적을 울리며 온몸으로 굴러간다 덜커덩거리며 제 갈 길 가는 바퀴 소리에 너는 가슴 아리다고 했지 명도 낮은 누런 햇살 든 반지하에서 너는 통점 문자 박힌 그리움을 시집처럼 펼쳐놓고 있겠다 미처 부치지 못한 푸른 편지를 들고 별들은 창문에 밤늦도록 찰랑이며 떠 있겠다
K읍기행(K邑紀行)
ㅡ 노향림
오랜만에 만나는 분위기.
하나의 선(線)이 되어 평야(平野)가 드러눕는다.
일대(一帶)는 무우밭이 되어
회색집들을 드문 드문
햇볕 속에 묻어 놓고
몇 트럭씩
논밭으로 실려나가는
묶인 고뇌(苦惱)와
고장난 시간(時間)들
지나다 보면
낯이 선 사투리들이
발길에 툭 툭 채였다.
길가 사람들 속에서
구부정한 말채나무가
혼자 목을 쳐들고.
할 일 없이 혼자 쳐들고 있다.
[시인의 말]
시인이란 바꾸어 말하면 꿈꾸는 사람이다. 그들은 아름답고 바른 삶을 꿈꾸며, 향기가 우러나는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꾸기를 뒤집어보면 우리의 삶이 아름답지도 못하고 바르지도 못하다는 어두운 실상이 나타난다.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떨어져 있는 슬픔이며 서로 알지 못하는 낯설음임을 깨우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