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EyYJmn9-Fzc 

 

 

 

 

https://www.youtube.com/watch?v=A6TVjChB6tQ 

 

https://www.youtube.com/watch?v=b8mXwh5kNig 

 

https://www.youtube.com/watch?v=f8NWPXJW9oo 

 

 

 

*제목의 속뜻은 '간호사들, 이 늙은이가 인격체로 안 보이지요? 망령난 할망구일 뿐.'

This poem was reportedly written by a woman who died in the geriatric ward of Ashludie Hospital near Dundee, Scotland. It was found among her possessions and so impressed the staff that copies were made and distributed to every nurse in the hospital.

Though it was addressed to the nurses who surrounded the woman in her last days, it cries for recognition of a common humanity…it could have been written to all of us.  

No information is available concerning her — who she was or when she died.

Reprinted from the “Assessment and Alternatives Help Guide” prepared by the Colorado Foundation for Medical Care.

이 시는 스코틀랜드 던디 인근 애슐루디 병원 노인병동에서 사망한 여성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은 그녀의 소유물에서 발견되었고 직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사본을 만들어 병원의 모든 간호사에게 배포했습니다. 

말년에 그 여자를 에워쌌던 간호사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공통된 인간성을 인정하기 위해 외친다… 그녀에 관한 정보는 없습니다. 

그녀가 누구인지 또는 언제 사망했는지. 

Colorado Foundation for Medical Care에서 준비한 "평가 및 대안 도움말 가이드"에서 재인쇄함.

 

https://www.youtube.com/watch?v=VtorOf1m7GA 

 

 

What do you see, nurse… what do you see?

Are you thinking – when you look at me:

A crabbed old woman, not very wise;

Uncertain of habit with far-away eyes,

무엇을 보십니까, 간호사… 무엇을 보십니까?
당신은 생각을 하고 있는가요? - 당신이 나를 볼 때 :
게으른 노파, 그다지 현명하지 못함.
흐릿한 눈에다 습관조차 알 수 없고,

 

Who dribbles her food and makes no reply

When you say in a loud voice ‘I do wish you’d try.'

” Who seems not to notice the things that you do

And forever is losing a stocking or shoe;

누가 음식을 흘렸냐고, 대답을 빨리빨리 못하냐고

큰 소리로 말하라고 다구칠 때면 나는 정말 당신들이 노력하기를 원했습니다.

당신들이 귀찮다고 주먹질을 할 때는 맞아가면서도

난 정말 안 움직이는 몸 속에서 용기를 내어 싸우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일을 못 알아차리는 것 같이 보이고

언제나 스타킹이나 신발을 잃어버는 노망난 늙은이로 보이시나요?

 

Who, resisting or not, lets you do as you will

With bathing and feeding, the long day to fill.

Is that what you’re thinking, is that what you

Then open your eyes, nurse. You’re not looking at me!

거부하든 말든 누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까?

목욕과 수유로 긴 하루를 채우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당신이 보는 것입니까?

그럼 눈을 뜨세요, 간호사님. 당신은 나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I’ll tell you who I am as I sit here so still.

As I move at your bidding, eat at your will:

I’m a small child of ten with a father

내가 여기 앉아 있는 동안 내가 누군지 말해줄게.

내가 당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때 당신의 뜻대로 먹으십시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열 살짜리 작은 아이입니다.

 

Brothers and sisters who love one another;

A young girl of sixteen with wings on her feet,

서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발에 날개가 달린 열여섯 살의 어린 소녀,

 

Dreaming that soon a love she’ll meet;

A bride at twenty, my heart gives a leap,

곧 그녀가 만날 사랑을 꿈꾸며;

스무살의 신부, 내 마음은 뛰고,

 

Remembering the vows that I promised to keep;

– At twenty-five now I have young of my own

내가 지키겠다고 약속한 서원을 기억하며; 

– 이제 스물다섯에 나는 내 자신의 젊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Who need me to build a secure, happy home.

– A woman of thirty, my young now grow fast.

안전하고 행복한 집을 짓기 위해 내가 필요한 사람.

 – 서른 살의 여자, 내 젊은이는 이제 빨리 자랍니다.

 

Bound together with ties that should last.

At forty, my young sons have grown up and gone,

지속되어야 하는 관계로 함께 묶입니다.

마흔에 내 어린 아들들은 자라서 떠났습니다.

 

But my man’s beside me to see I don’t mourn;

– At fifty once more babies play ‘round my knee

그러나 내 남자는 내가 슬퍼하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내 옆에 있습니다. 

– 50세에 한 번 더 아기들이 내 무릎을 꿇고 놀아요,

 

Again we know children, my loved ones and me

다시 우리는 아이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압니다.

 

Dark days are upon me, my husband is dead.

I look at the future, I shudder with dread.

For my young are all rearing young of their own,

And I think of the years and the love that I’ve known.

어두운 날이 닥쳤고 남편은 죽었습니다.

나는 미래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몸서리를 친다.

내 새끼들은 모두 스스로 새끼를 키우고 있으니,

나는 세월과 내가 알던 사랑을 생각합니다.
.

I’m an old woman now, and nature is cruel.

‘Tis her jest to make old age look like a fool.

The body, it crumbles, grace and vigor depart.

There is a stone where I once had a heart.

나는 이제 노파이고 자연은 잔혹하다.

'노년을 바보처럼 보이게 하려는 그녀의 농담이다.

몸이 무너지고 은혜와 활력이 사라집니다.

한때 마음에 담아 두었던 돌이 있습니다.

 

But inside this old carcass a young girl still dwells,

And now again my bittered heart swells;

I remember the joys, I remember the pain

and I’m loving and living life over again;

그러나 이 오래된 시체 안에는 어린 소녀가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나는 기쁨을 기억하고 고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I think of the years, all too few, gone too fast

And accept the stark fact that nothing can last;

So open your eyes, nurse, open and see… not a crabbed old woman.

나는 너무 짧고 너무 빨리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고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눈을 뜨세요, 간호사님, 눈을 뜨고 보십시오… 게으른 노파가 아닙니다.

 

Look closer… see me!

자세히 봐... 날 봐!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노망난 노파가 아니야.)

*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여 번역을 꿰맞혀 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O7GCSAcQk4

 

 

https://blog.daum.net/dfgiyo/6139344

 

스코틀랜드 양로원 어느 할머니의 시

스코틀랜드 양로원 어느 할머니의 시 가슴이 찡해요. 스코틀랜드 어느 작은 요양병원에서,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간호사들이 조촐한 그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다가, 이 "시"를 발견하였습

blog.daum.net

 

스코틀랜드 양로원 어느 할머니의 시

  

가슴이 찡해요. 스코틀랜드 어느 작은 요양병원에서,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간호사들이 조촐한 그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다가, 이 "시"를 발견하였습니다.

 내용에 감동받은 간호사들이, 이 "시"를 복사하여, 모든 간호사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한 간호사는 이 시를 '북 아일랜드' '정신건강협회', '뉴스지의 크리스마스'판에 실리게 하였습니다!

 

단순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이 시는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소개되기도 했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시"를 소개합니다.

 

간호사님들! 무엇을 보시나요?

댁들이 저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What do you see, nurses?

What do you see?

What are you thinking?

When you're looking at me?)

 

현명하지도 않고, 변덕스러운 성질과

초점 없는 눈을 가진,

투정부리는 늙은 할머니로?

(A crabby old woman, not very wise,

Uncertain of habit, with faraway eyes?)

 

왜 이렇게 음식을 질질 흘리고,

왜 이렇게 대답을 빨리 빨리 못하냐고,

큰 소리로 말할 때면, “전 정말 댁들이

좀 더 노력하기를 바랬답니다!”

(Who dribbles her food and makes long reply.

When you say in a loud voice, "I do wish you'd try!")

 

댁들이 하는 일도 못 알아차리는 것 같아 보이고,

스타킹이나 신발 한 짝을 항상 잃어버리는 늙은 할머니로?

(Who seems not to notice the thing that you do,

And forever is losing a stocking or shoe?)

 

저항을 하든 말든, 목욕을 시키고, 음식을 먹이며'

하루 종일 댁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늙은 할머니로?

(Who, resisting or not, lets you do as you will,

with bathing and feeding, the long day to fill?)

 

댁들은 저를 그런 식으로 생각 하시나요?

댁들은 저를 그런 식으로 보시나요? 간호사님들!

그렇다면 이제 눈을 뜨고,

그런 식으로 절 보지 말아 주십시오.

(Is that what you're thinking?

Is that what you see?

Then open your eyes, nurses, you're not looking at me!)

 

이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으면서, 댁의 지시대로 행동하고,

댁의 의지대로 먹고 있는,

제가 누군 인지 말하겠습니다!

(I'll tell you who I am as I sit here so still,

As I do at your bidding, as I eat at your will.)

 

제가 '열 살'된 어린 아이였을 땐,

서로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있었고,

형제들과 자매들도 있었답니다.

(I'm a small child of ten with a father and mother,

Brothers and sisters, who love one another.)

 

'열여섯' 꿈 많은 소녀였을 땐, 발에 날개를 달고,

이제 곧 사랑할 사람을 만나러 다녔답니다.

(A young girl of sixteen with wings on her feet,

dreaming that soon now a lover she’ll meet)

 

'스무 살' 땐, 신부가 되어 평생 지키기로,

'약속한 결혼 서약'을 기억하며,

가슴이 고동을 쳤었답니다!

(A bride soon at twenty, my heart gives a leap,

Remembering the vows that I promised to keep.)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땐, 안 싸주고, 감싸주는,

행복한 가정을 필요로 하는 어린 자녀들이 생겨났답니다.

(At twenty-five now, I have young of my own,

who need me to guide and a secure happy home.)

 

'서른 살' 여자가 되었을 땐,

어리기만 했던 자녀들이, 급속히 성장해서,

서로 오래도록, 지속될 관계가 맺어졌답니다.

(A woman of thirty, my young now, grown fast,

Bound to each other with ties that should last)

 

'마흔 살'이 되었을 땐,

어리기만 했던 아들들과 딸들이 성장해서,

집을 떠나게 되었지만,

남편은 제 곁에 있어, 슬프지 않았답니다.

(At forty, my young sons and daughters have grown,

and are gone, But my man’s

beside me to see I don’t mourn)

 

'오십' 살이 되었을 땐,

다시 한 번 손주들의 아기들이,

제 무릎 주위에서 노는 걸 보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자녀들과 손주들과,

사랑하는 남편과 저 자신을 알게 되었답니다.

(At fifty once more,

my children's babies play round my knee,

Again we know the children,

my loved one and me.)

 

마침내, 어두운 날이 찾아와, 남편이 사망하게 되면서,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 보니

두려운 마음에 몸이 오싹해졌답니다.

(Dark days are upon me, my husband is dead,

I look at the future, I shudder with dread.)

 

자녀들이 모두 자기의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난 내가 알고 있던,

지난날들과 사랑을 한 번 생각해 봤답니다.

(For my young are all rearing young of their own,

And I think of the years and the love that I’ve known.)

 

전, 이제 할머니가 되었는데,

참으로 우습게도, 늙은이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세월은 참으로 잔인한 것 같습니다.

(I’m now an old woman and nature is cruel:

It's just to make old age look like a fool.)

 

몸은 망가지고, 우아함과 활기는 떠나 버렸고,

한 때는 마음이었던 곳이

이제는 무딘 돌이 되어 버렸답니다.

(The body, it rumbles, grace and vigor depart,

There is now a stone where I once had a heart.)

 

시체와도 같은, 이 늙은이의 속에는 아직도,

소녀 같은 마음이 살아 있어,

때론 다 망가진 이 가슴이 부풀어 오는 때가 있답니다.

(But inside this old carcass a young girl still wells,

And now and again, my battered heart swells.)

 

즐거웠던 일들을, 기억해 보기도 하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기억해 보기도 하면서,

난 지금 다시 한 번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I remember the joys, I remember the pain,

And I’m loving and living life over again.)

 

너무 짧고, 너무 빨리 지나간,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답니다.

(I think of the years all too few, gone too fast,

And accept the stark fact that nothing can last.)

 

이제 사람들이여,

눈을 떠 보십시오. 눈을 떠 보십시오!

투정부리는 늙은 할머니로 보지 말고,

좀 더 자세히 "절" 봐 주십시오!

(So open your eyes, people, open and see!

Not a crabby old woman; look closer. see ME!)

 

 

https://www.youtube.com/watch?v=cUYVsKEk33Y 

 

 

 

https://kydong77.tistory.com/21437

 

이해인, 어느 노인의 고백/ 스코틀랜드 양로원의 어느 할머니의 시

어느 노인의 고백 ​ㅡ 이해인(수녀, 시인) ​ ​하루 종일 창 밖을 내다보는 일이 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 누가 오지 않아도 창이 있어 고맙고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벗이 됩니다 ​ 내 지나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yhP1tN4hkkI 

 

 

https://www.youtube.com/watch?v=34UOW1aC7n8 

 

 

[토막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v=HW5a1S0_pnk 

*10/16 대구 첫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WI3-XDg7TGA 

 

https://www.youtube.com/watch?v=DfVse3O-54M 

 

 

 

 

https://www.youtube.com/watch?v=e61URR6lU24 

 

 

속도 

ㅡ 유자효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달린다.
너무 바쁘게 달린다.
주위에 모두 ..

 

일어나서
다시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나는 무얼 했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 할 시간조차 없이 달리면서 사는 인생.

 

1분은 60초..
1시간은 60분..
하루는 24시간..
다시 또 같은 일상을 정신없이 반복하면서
그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본들..
결국 무엇을 더 얻었는가?

 

매일 긴장하고
좀 더
더욱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찾고
미친듯히 헤매다가 돌아 온 자리 결국 제자리..

 

허겁지겁 살다보니
한 페이지의 책을 바쁘게 넘기고
악셀을 밟으면서 마구 달린다.
의미도 없는 미친짓인 줄 진작 알면서

 

자주 뒤돌아 봐야겠다.
아침에 창문 너머 먼 산도 봐야겠다.
기다리는 걸 배워야 겠다.
여유로움을 익혀야 겠다.
피어있는 꽃을 보지 말고 꽃이 피는 걸 봐야겠다.
책의 행간에 묻어있는 의미를 읽어 봐야겠다.

 

천천히 걸어야겠다.
천천히 살아야겠다.

출처: https://duga.tistory.com/2488 [지구별에서 추억 만들기:티스토리]

 

 

https://www.youtube.com/watch?v=FRbBQCor7O0 

 

 

https://www.youtube.com/watch?v=vDdO7BYyvC0 

 

 

https://www.youtube.com/watch?v=KD5TuFTL7yk 

 

 

https://www.youtube.com/watch?v=bBikYTgsMi0 

 

 

https://www.youtube.com/watch?v=CxDG20hLw7M 

 

 

https://www.youtube.com/watch?v=4V4vHfblAtc 

 

 

 

https://www.youtube.com/watch?v=AcFqfsLNcb0 

 

 

https://www.youtube.com/watch?v=r2c2OdfY1Kc 

 

 

[역사 다시 보기]

https://biz.chosun.com/policy/politics/2021/11/30/T5MK3PZK5NEMXDD5HVCYKZAJDQ/

 

홍준표, 윤석열 향해 “이회창 때 7상시가 대선 망쳤는데”

홍준표, 윤석열 향해 이회창 때 7상시가 대선 망쳤는데 윤석열, 측근 파리떼들에게 포위돼 있다 2년 전에는 이회창, 7상시 쳐내 총선 승리

biz.chosun.com

 

https://ko.wikipedia.org/wiki/%EC%8B%AD%EC%83%81%EC%8B%9C

 

십상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십상시(十常侍)는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때에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중상시, 즉 환관들을 말한다. 역사서 《후한서》(後漢書)에는 십상시들이

ko.wikipedia.org

십상시(十常侍)는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때에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중상시, 즉 환관들을 말한다.

역사서 《후한서》(後漢書)에는 십상시들이 많은 봉토를 거느리고 그들의 부모형제는 모두 높은 관직에 올라, 그 위세가 가히 대단하였다고 쓰여 있다. 특히 그들의 곁에서 훈육된 영제는 십상시의 수장인 장양(張讓)을 아버지, 부수장인 조충(趙忠)을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다.

후한서에 등장하는 십상시와 삼국지 연의에 나오는 십상시는 그들의 이름과 숫자가 약간 차이가 난다. 《후한서》에서는 12명, 《삼국지연의》에서는 10명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RahhYCdzVc 

 

 

https://www.youtube.com/watch?v=ht2wU1OWIHc 

 

 

https://namu.wiki/w/%EB%82%B8%EC%8B%9C%20%ED%8E%A0%EB%A1%9C%EC%8B%9C

1940년 3월 26일 (82세)

 

 

https://www.youtube.com/watch?v=Z6p0u5Q7z9A 

 

 

https://www.youtube.com/watch?v=qUxjDsQSEt4 

 

 

천상병 문순옥 결혼 사진 

 

 

https://www.youtube.com/watch?v=4jETSJz0XZQ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kywind2018&logNo=221394448283 

 

시인 천상병 귀천과 새

그날은-새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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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출처- [새] 조광출판사(1971)

 

 

https://blog.daum.net/mun6144/5444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

천상병(1930-1993) 시인은 1967년 6월 25일,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6개월 동안 세 차례의 전기고문 등 숱한 고문을 받았다. “간첩인 친구 강빈구에게 공포감을 조성해 500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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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1930-1993) 시인은 1967년 6월 25일,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6개월 동안 세 차례의 전기고문 등 숱한 고문을 받았다.

“간첩인 친구 강빈구에게 공포감을 조성해 500원, 1000원씩 받아쓰면서도 수사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앙중보부의 주장(불고지죄, 국가보안법 위반, 공갈죄)이었다.

훗날 그는 당시의 고초를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그 날은 새, 1971)이라고 한 바 있다.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 등이 연루됐다던 그 사건은 2006년 과거사 진실위원회에서

"중앙중보부가 과장한 것으로 정부는 관련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정의했다.

고문은 그의 육체뿐만 아니라 시인의 감수성과 상상력마저 파괴했다.

재판정 뒷줄에 서 있는 피고 천상병의 모습이 평소의 그와 같지 않게 비감하다.

다리미에 눌렸던 그는 그의 ‘아름다운 소풍’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이라도 한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겪은 후 그는 실종과 정신병원 입원 그리고 가난 속에서 살다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한 채 하늘로 돌아갔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kywind2018&logNo=221394448283 

 

시인 천상병 귀천과 새

그날은-새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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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ㅡ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재록합니다.

 

그날은

ㅡ 천상병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1954년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그만두고 문학에 전념한다.
그는 이 때 『현대문학』에 월평을 쓰는가 하면 외국 서적의 번역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다가 1964년부터 2년 동안 부산 시장의 공보 비서로 일하는데,
이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생활인 셈이다.
1967년에 어이없게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정도 옥고를 치른 그는
죽을 때까지 다른 직업 없이 오직 시인으로 살아간다.

 

[참고]천상병의 아내

알려진대로 천상병 시인의 아내 문순옥 씨는 원래 천 시인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여고생 때 천 시인을 만난 문씨는 오빠처럼 천재 시인을 따랐는데,
천상병 시인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동백림 사건’이라는 어마어마한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채 풀려나게 된다.
그 후 천 시인은 술에 의지해 살았고, 하루는 쓰러져 길에 누워 있다가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정신병원에 끌려가기도 했다.
문순옥 씨를 비롯한 지인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그의 유고시집을
내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지만 마침내 그를 병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천상병 시인은 문순옥 씨의 극진한 간호 끝에 건강을 얼마간 되찾았다.
퇴원 후 두 사람은 결혼했다. 

93년 천상병 시인이 타계할 때까지 21년 동안 문순옥 씨의 헌신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대소변을 못 가려 기저귀를 차고 있던 남편을 돌보고 씻기고
인사동에 ‘귀천’이라는 찻집을 열어 시를 쓸 수 있도록 밤낮으로 뒷바라지했다.
기행을 일삼는 남편을 ‘아이처럼 천진하고 사랑스럽다’며 끝까지 사랑한 그녀였다.
문순옥 씨는 남편이 하늘나라로 돌아간 후에도 인사동의 찻집 ‘귀천’을 운영하며
천상병 시인 관련 기념사업을 주관해 왔다.

부인 문순옥(文順玉 1935~2010) 여사는 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오빠 친구였던 천 시인과 1972년 결혼했으며 평생을 무직으로 살았던
천 시인의 뒷바라지를 했다.
1985년부터 인사동에서 전통찻집인 '귀천'을 운영했으며, 천 시인이 별세한 뒤
2008년 천상병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고인을 추모하는 작업을 해왔다.
2010년 8월 10일 별세한다.

* 찻집 '귀천'은 인사동의 명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DliQu-JJFI 

 

 

https://www.youtube.com/watch?v=7rBumHxP4Rg 

 

소릉조(小陵調)

     - 70년 추일(秋日)에 -

ㅡ 천상병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시집 <새>(1971) -

 

 

https://kydong77.tistory.com/18534

 

상주 함창 공갈못에/ 상주아리랑, 명주 길쌈

공갈못 소재지: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https://www.youtube.com/watch?v=-DgErZN4_0Y https://kydong77.tistory.com/manage/newpost/18534?type=post&returnURL=https%3A%2F%2Fkydong77.tistory.com%2Fmanage%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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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Z0Cc_I6Yc24 

*가사 표기중 '뺌이'는 '배미'의 잘못임.

'배미'는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의 구획을 이르는 말로 논두렁을 뜻한다. 토지구획정리 이전의 왕년의 논두렁이 뱀처럼 구불구불했던 데서 생겨난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LMJkcYQ3BM 

박수관 - 상주모내기

http://kydong77.tistory.com/14481

①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 아가
연밥 줄밥 내 따 주마 우리 부모 모셔(섬겨)다오.

② 이 배미 저 배미 다 심어 놓고 또 한 배미가 남았구나.
지가야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

③ 고초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 하더라.
나도야 죽어 후생가면 시집살이는 안 할라네.

④ 문어야 대전복 손에 들고 친구 집으로 놀러 가세.
친구야 벗님은 간 곳 없고 손님떼만 모여든다.

⑤ 능청능청 저 비 끝에 시누 올케 마주 앉아.
나두야 죽어 후생가면 낭군 먼저 섬길라네.
(후략)

상주모심기소리 (국악정보, 2010. 7., 국립국악원)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534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www.youtube.com/watch?v=4wXH2ngoBKY 

 

연밥따는 노래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이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가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줌세
백 년 언약 맺어다오
백 년 언약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간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418

 

https://kydong77.tistory.com/18534

 

상주 함창 공갈못에/ 상주아리랑, 명주 길쌈

공갈못 소재지: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https://www.youtube.com/watch?v=-DgErZN4_0Y https://kydong77.tistory.com/manage/newpost/18534?type=post&returnURL=https%3A%2F%2Fkydong77.tistory.com%2Fmanage%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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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경상'는 경주와 상주의 첫음절을 취한 말로 신라 9주의 하나였다. 너른 들판이 있어 고검면 양정리에 민요의 '공갈못'(공검못)을 만들었다. 현재는 상류 지역에 새로운 저수지를 조성했다.

◆공갈못=상주시 공검면 양정리에 있다. 제천의 의림지, 김제의 벽골지, 밀양 수산지와 더불어 삼한시대 4대 저수지의 하나로 꼽힌다. 한때 못의 둘레가 8㎞가 넘어 볶은 콩 한 되를 먹으면서 돌아도 콩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한다. 연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공갈못 구경을 못하면 저승에 가서도 돌려보낸다는 전설이 있다. 1964년 정부가 쌀 증산을 위해 못을 주민에게 분양, 농지로 바꾸면서 면적이 크게 줄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GIVt0iGT90 

 

 

http://www.kbsm.net/news/view.php?idx=331719 

 

전통방식의 명주 생산하는 삼백의 고장, 오랜 역사 자랑하는 공검지 축조·전설… 고녕가야국 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곳이 선정되어 국내외로 널리 알려지면서 도로의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상주가 품고 있는 아름다운 길을 소개하고자 5곳을 선정해 이야기

www.kbsm.net

함창읍은 본래 고녕가야국(古寧伽倻國)인데 신라에서 취하여 고동람군(古冬攬郡)을 만들었고, 경덕왕이 고령군(古寧郡)으로 고쳐서 가선현(嘉善縣)과 관산현(冠山縣)을 관장하였다. 
고려 광종(光宗) 15년(964) 갑자에 함녕군(咸寧郡)이 되었다가 현종 9년(1018) 함창군(咸昌郡)으로 고쳤으며 조선에서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 13년(1413)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고쳤다고 세종지리지에 전해지고 있다.
 

함창읍은 본래 고녕가야국(古寧伽倻國)인데 신라에서 취하여 고동람군(古冬攬郡)을 만들었고, 경덕왕이 고령군(古寧郡)으로 고쳐서 가선현(嘉善縣)과 관산현(冠山縣)을 관장하였다.

 
고려 광종(光宗) 15년(964) 갑자에 함녕군(咸寧郡)이 되었다가 현종 9년(1018) 함창군(咸昌郡)으로 고쳤으며 조선에서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 13년(1413)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고쳤다고 세종지리지에 전해지고 있다.
 
 
* 한국사는 한 왕조의 건국이 오백년의 당위성을 지니는데, 함창이란 지명은 천년이나 되는 유구한 역사를 지녔군요. 상주를 삼백(三白- 상주의 특산물인 쌀, 명주, 곶감)의 고장이라 선전하는데 실상 삼백의 생산지는 함창입니다. 상주군을 대표하는 고장이라 하겠습니다.

 

[참고]

'공갈못'노래의 유래

AD 600 년 경에 만들었다는

상주시 공검면 소재 공갈못 - 지금은 공검면 양정리에 옛터가 남아 있고,

여기서 4 km 서쪽 상류에 '오태池'1955 년 경에 크게 만들어져 있다.

이 '오태池'가 이지대, 공검면, 사벌면, 외서면, 상주시 쪽의 논물 공급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Opb9SddRak 

 

 

상주의 대표 관광지

https://kydong77.tistory.com/20926

 

상주 경천섬 낙강교(洛江橋)와 범월교/ 이규보, 洛江泛舟&<東明王篇>

https://www.youtube.com/watch?v=fzQhM7NHbyA 이규보[李奎報, 1168년(의종 22) ~1241년(고종 28)] 同朴侍御將向梁州舟黃山江口占 ㅡ 박 시어와 함께 양주로 떠나려 하면서 황산강에 배를 띄우고 입으로 부르다..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0IbCq_Vzxto 

 

 

 

 

https://www.youtube.com/watch?v=45fCvCnN5FI 

 

 

 

https://www.youtube.com/watch?v=t3s7hf2BBa4&list=RDt3s7hf2BBa4&start_radio=1 

 

 

https://www.youtube.com/watch?v=m8TrrwRYqLw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535

 

김소월(金素月)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본관은 공주(公州).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김성도(金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

encykorea.aks.ac.kr

1923년 일본 도쿄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오산학교 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이돈화(李敦化)·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문단의 벗으로는 나도향(羅稻香)이 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시작활동은 1920년 『창조(創造)』에 시 「낭인(浪人)의 봄」·「야(夜)의 우적(雨滴)」·「오과(午過)의 읍(泣)」·「그리워」·「춘강(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작품발표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인데,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년 『개벽』에 실린 「금잔디」·「첫치마」·「엄마야 누나야」·「진달래꽃」·「개여울」·「제비」·「강촌(江村)」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삭주구성(朔州龜城)」·「가는 길」·「산(山)」, 『배재』 2호의 「접동」, 『신천지(新天地)』의 「왕십리(往十里)」 등이 있다.
그 뒤 김억을 위시한 『영대(靈臺)』 동인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 무렵에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을 게재지별로 살펴보면, 『영대』에 「밭고랑 위에서」(1924)·「꽃촉(燭)불 켜는 밤」(1925)·「무신(無信)」(1925) 등을, 『동아일보』에 「나무리벌노래」(1924)·「옷과 밥과 자유」(1925)를, 『조선문단(朝鮮文壇)』에 「물마름」(1925)을, 『문명(文明)』에 「지연(紙鳶)」(1925)을 발표하고 있다.
소월의 시작활동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1925년 5월『개벽』에 시론 「시혼(詩魂)」을 발표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집에는 그동안 써두었던 전 작품 126편이 수록되었다. 이 시집은 그의 전반기의 작품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당시 시단의 수준을 한층 향상시킨 작품집으로서 한국시단의 이정표 구실을 한다.
민요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고 있다.
생에 대한 깨달음은 「산유화」·「첫치마」·「금잔디」·「달맞이」 등에서 피고 지는 꽃의 생명원리, 태어나고 죽는 인생원리, 생성하고 소멸하는 존재원리에 관한 통찰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시 「진달래꽃」·「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먼후일」·「꽃촉불 켜는 밤」·「못잊어」 등에서는 만나고 떠나는 사랑의 원리를 통한 삶의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민요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생에 대한 인식은 시론 「시혼」에서 역설적 상황을 지닌 ‘음영의 시학’이라는, 상징시학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집 『진달래꽃』 이후의 후기 시에서는 현실인식과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하게 부각된다.
민족혼에 대한 신뢰와 현실긍정적인 경향을 보인 시로는 「들도리」(1925)·「건강(健康)한 잠」(1934)·「상쾌(爽快)한 아침」(1934)을 들 수 있고, 삶의 고뇌를 노래한 시로는 「돈과 밥과 맘과 들」(1926)·「팔벼개 노래」(1927)·「돈타령」(1934)·「삼수갑산(三水甲山)·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1934) 등을 들 수 있다.
시의 율격은 삼음보격을 지닌 7·5조의 정형시로서 자수율보다는 호흡률을 통해 자유롭게 성공시켰으며, 민요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독창적인 율격으로 평가된다. 또한, 임을 그리워하는 여성화자(女性話者)의 목소리를 통하여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족적 정감을 눈뜨게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김소월(金素月))]

 

https://blog.daum.net/ulsanedu/7430225

 

김소월의 시, 초혼에 얽힌사연

김소월의 시, 초혼에 얽힌사연 초혼이 뭔가? 사람이 죽었을 때 그 혼을 소리쳐 부르는 일이 아닌가? 김소월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처절한 슬픔이 담겨진 사연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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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은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났다.
김정식이 3살 때 아버지는 일본인들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

정식은 할아버지 집에서 아픈 상처를 가진 채 성장했다.
이후 오산학교에 진학한 그는 3살 많은 누나 오순을 알게 된다.
정식은 종종 오순과 마을 폭포수에서 따로 만나며 마음을 의지했다.

정식이 14살이 될 때 까지 둘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일제강점기 하에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정식에게 행복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가 14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가 강제로 혼인을 올리도록 명령한 것이다.
혼인의 상대는 할아버지 친구의 손녀 홍단실이었다.
당시엔 집안 어른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정식은 말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홍단실과 결혼한다.

세월이 흘러 오순이 19살이 됐을 때 다른 사람과 결혼식을 올린다.
이후 둘의 연락은 끊겼지만 자신의 아픔을 보듬어주던 오순을 잊지 못한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이후에 일어난다. 
3년 뒤에 오순이 남편에게 맞아 사망한 것이다.
오순의 남편은 의처증이 심했고 폭력을 일삼았다.
정식은 아픈 마음을 안고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때 사랑했던 오순을 기리며 적은 시가 초혼(招魂)이다.
 

초혼

ㅡ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가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https://m.blog.naver.com/sub28/221701938235

 

#김소월(素月)의 삶과 시

소월 김정식은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났고, 32세의 젊은 나이로 193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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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에게
ㅡ 김소월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모를 딴 세상의 네길거리에
애달피 날 저무는 갓 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https://www.youtube.com/watch?v=Uy4G-dN0j5w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ㅡ 김소월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당신이 하도 못 잊게 그리워서
그리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잊히지도 않는 그 사람은
아주나 내버린 것이 아닌데도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가뜩이나 설운 맘이
떠나지 못할 운(運)에 떠난 것도 같아서
생각하면 눈물이 쉬르르 흘러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86%8C%EC%9B%94

 

김소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평안북도 곽산군에서 성장하였다. 1904년 처가로 가던 부친 김성도는 정주군과 곽산군을 잇는 철도 공사장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당한 후 정신 이상자가 되었다. 이후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조부의 손에서 컸다. 김소월에게 이야기의 재미를 가르쳐 주어 영향을 끼친 숙모 계희영을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평안북도 곽산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평안북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조만식과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을 만났다. 김억의 격려를 받아 1920년 동인지 《창조》5호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5년에는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을 발간했다.

1916년 오산학교 재학 시절 고향 구성군 평지면의 홍시옥의 딸 홍단실과 결혼했다.

3·1 운동 이후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해서 졸업했다. 1923년에는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 무렵 서울 청담동에서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영대》동인으로 활동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도왔으나 일이 실패하자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구성군 남시면에서 개설한 동아일보 지국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 본래 예민했던 그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로 세월을 보냈으며, 친척들한테도 천시를 받았고 일본의 압박으로 부인과 동반자살 기도까지 했다.

류머티즘으로 고생을 하다가 1934년 12월 24일 평안북도 곽산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2] 향년 33세였다.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 라면서 쓴웃음지으며 우울해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소월이 자살한 거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소월의 증손녀가 증언한 바로는, 김소월은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아편을 먹곤 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인해 아편 과다복용의 후유증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서울 남산 시비

 

    가족 관계

  • 아버지: 김성도
  • 어머니: 장경숙
  • 작은어머니(숙모): 계희영
  • 부인: 홍단실(풍산 홍씨) - 홍시옥의 딸
    • [추가]홍단실은 <임꺽정>을 지은 벽초 홍명희의 손녀. 벽초의 아들 홍기문은 북한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완역한 사람이자 북한 향가 연구의 대가인 유명 국학자.
    • 첫째 딸: 김구생[10]
    • 둘째 딸: 김구원[10]
    • 첫째 아들: 김준호[10]
    • 둘째 아들: 김은호[10]
    • 셋째 아들: 김정호 - 1953년 반공포로로 석방, 김소월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남한에 거주하였다.
      • 손녀: 김은숙
      • 손자: 김영돈
    • 넷째 아들: 김낙호[10]

 

[참고]

부인: 홍단실(풍산 홍씨) - 홍시옥의 딸 - 벽초 홍명희의 손녀

벽초 홍명희

https://namu.wiki/w/%ED%99%8D%EB%AA%85%ED%9D%AC

일제강점기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이자 북한의 정치인이다. 호는 벽초(碧初)[2]이다.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천재'로 알려진[3] 인물로 실제로 셋은 죽마고우였으며 홍명희는 이 중 유일하게 친일로 변절하지 않았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렸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4]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6.25전쟁 당시 이광수가 납북되자 신변을 보호해주었으며 이광수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출생으로 할아버지 홍승목은 일본에 우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5] 아버지 홍범식은 대한제국의 관료로 한일병합에 치욕을 느껴 자결하였다. 그로 인해 일본에 있는 대성중학교를 다니다가 한일병합이라는 비보에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1919년 고향에서 3.1 운동에 참가하였고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보고 왔다.[6] 1927년 신간회 창설에 참가하여 부회장 직을 맡는 등 굵직한 항일 운동들을 전개해 나간다. 이후에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대일보> 사장,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소설 <임꺽정(林巨正)>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데 소설 <임꺽정>이 1928년부터 13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된 것을 비롯해 1930년대 쓴 거의 모든 글은 <조선일보>와 자매지 <조광>에 발표됐다. 

  • 홍명희는 한국인 최초로 에스페란토를 배운 사람이다. 벽초(碧初)란 호 자체가 '최초의 청록인', 즉 최초의 에스페란티스토를 의미하는 거라고 한다.
  • 그의 아들 홍기문은 조선왕조실록을 완역한 사람이자 북한 향가 연구의 대가인[11]유명 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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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시세계

*[운영자 생각]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통해 일제에게 말살당한 민족혼을 일깨우고 주권회복의 염원을 토로한 작품으로 해석함이 맞을 것 같네요. 술에 취해 아편 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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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김소월

나는 꿈 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다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 손에
새라새롭은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가임은, 별빛이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늘은 길이 이어갈. 나는 나아가리라
한걸음 한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새벽 동무들 저 혼자 -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개벽>, 1923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251 

 

 

 

https://www.youtube.com/watch?v=eWdDSpaZmhU 

 

 

https://www.youtube.com/watch?v=KhLexw_eGTk 

 

[왕십리 역전광장]

 

 

https://www.youtube.com/watch?v=SMvQxm2NgSA 

 

 

https://www.youtube.com/watch?v=iRfmRbjd_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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