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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_양혜왕_원문+해석본

梁惠王章句上 凡七章 上 1장 01-01-01 孟子見梁惠王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뵈니 [集註]梁惠王 魏侯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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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9장

02-09 01 孟子見齊宣王曰 爲巨室則 必使工師求大木 工師得大木 則王喜以爲能勝其任也 匠人斲而小之 則王怒以爲不勝其任矣 夫人幼而學之 壯而欲行之 王曰 姑舍女所學而從我則何如

맹자께서 제선왕을 뵙고 말하길: 큰 궁전을 만들고자하시면 반드시 장인의 우두머리(工師)로 하여금 커다란 목재를 구해오게 하시고, 공사(工師)가 큰 목재를 구해오면 왕께서 기뻐하시어 능히 그 소임을 다했다라고 여십니다. 그 아래 목수들이 깍아서 작게하여 못쓰게한다면 왕께는 노하여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였다 여길 것입니다. 무릇 사람들이 어려서 그것을 배우는 것은 장성해서 그것을 행하고자 함입니다. 왕게서 말하시길 우선 너의 배운 바를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集註]巨室大宮也 工師匠人之長 匠人 衆工人也 姑且也 言賢人所學者大 而王欲小之也

巨室은 큰 궁전이다. 工師는 장인의 우두머리이다. 匠人은 여러 기능공이다. 姑는 우선이다. 현인이 배운바가 크나 왕이 그것을 작게하고자 하는 것을 말함이다.

02-09 02 今有璞玉於此 雖萬鎰 必使玉人彫琢之 至於治國家 則曰姑舍女所學 而從我 則何以異於敎玉人彫琢玉哉

지금 여기에 옥돌이 있어 비록 20만냥이나 된다면 반드시 옥을 다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새기고 깍게하실 것입니다.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 이르러서는 즉 말씀하시길 우선 너의 배운 바를 버려두고 나를 쫓아라하신다면 어찌 옥인으로 하여금 옥을 다듬고 깍게하시는 데와 다르게 하십니까?

[集註]璞 玉之在石中者 鎰 二十兩也 玉人 玉工也 不敢自治而付之能者 愛之心也 治國家 則徇私慾而不任賢 愛國家不如愛玉也 ○范氏曰 古之賢者 常患人君不能行其所學 而世之庸君亦常患賢者不能從其所好 是以 君臣常患自古以爲難 孔孟終身而不遇 蓋以此耳

璞은 옥이 돌속에 있는 것이다. 鎰은 스무냥이다. 玉人은 옥을 다루는 장인이다. 감히 스스로 다루지 못해 능한자에게 맡기는 것은 그것을 아끼는 마음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 즉 사욕만을 따라서 현인에게 맡기지 않는 것은 국가를 아낌이 옥을 아끼만 못한 것이다. ○범씨왈: 예날의 현인은 항상 군주가 능히 그 자신이 배운 바를 행하지못할 것을 근심했고, 당세의 용렬한 군주는 또한 항상 현자가 능히 그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쫓지않을 것을 근심했다. 이러므로 군주와 신하는 서로 만나기가 예로부터 어려움이 됬었다. 공자와 맹자께서 종신토록 그러한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이것 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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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_양혜왕_원문+해석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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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8장

02-08-01 齊宣王問曰 湯放桀 武王伐紂 有諸 孟子對曰 於傳有之

제선왕이 물어 말하길: 탕왕은 폭군 걸을 내치고, 무왕은 폭군 주를 정벌하였다하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대왈: 옛 책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集註]放置也 書云 成湯放桀于南巢

放은 놓아두는 것이다. 서경에 이르길: 탕왕은 폭군 걸을 남소지방으로 내쫓았다.

02-08-02 曰臣弑其君可乎

왈: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는 것이 가할 수 있습니까?

[集註]桀紂 天子 湯武 諸侯

桀과 紂는 천자였고 湯왕과 武왕은 제후였다.

02-08-03 曰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왈: 인(仁)을 해치는 것을 賊이라하고, 의(義)를 해치는 것을 殘이라하니 殘賊한 사람을 한사람의 남자라고 합니다. 일개의 남자 주를 베어죽였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소리는 못들었습니다.

[集註]賊害也 殘傷也 害仁者 凶暴淫虐 滅絶天理 故 謂之賊 害義者 顚倒錯亂 傷敗彛倫 故 謂之殘 一夫 言衆叛親離 不復以爲君也 書曰 獨夫紂 蓋四海歸之 則爲天子 天下叛之 則爲獨夫 所以深警齊王 垂戒後世也 ○ 王勉曰 斯言也 惟在下者有湯武之仁 而在上者有桀紂之暴 則可 不然 是未免於篡弑之罪也

賊은 해함이다. 殘은 상함이다. 인을 해치는 사람은 흉포하며 음란하고 잔학해서, 천리를 멸하고 끊어버리니 고로 賊이라 한다. 의를 해치는 사람은 위아래가 뒤바뀌게(顚倒)하고 섞여 혼란하게(錯亂)하여 고로 殘이라 한다. 一夫는 많은 사람들이 배반하고 왕족들이 떠나가서 다시 군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서경에 이르길 홀로된 남자 紂라 했으니, 대개 사해가 그에게 귀의하면 천자가 되고, 천하가 그를 배반하면 독부(獨夫)가 되니, 제나라 왕을 깊게 경고하고 거듭 후세에 경계하는 까닭이 된다. ○ 왕면왈: 이 말은 오직 아래에 있는 자가 탕왕과 무왕같은 인을 가지고 있고서 위에 있는 자가 폭군 걸과 주와 같은 포학함을 가지고 있게되면 가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찬탈하고 시해한 죄에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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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_양혜왕_원문+해석본

梁惠王章句上 凡七章 上 1장 01-01-01 孟子見梁惠王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뵈니 [集註]梁惠王 魏侯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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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7장

02-07-01 孟子見齊宣王曰 所謂故國者 非謂有喬木之謂也 有世臣之謂也 王無親臣矣 昔者所進 今日不知其亡也

맹자께서 제선왕을 뵙고 말하길: 소위 오래된 나라라는 것은 (사직단의) 높은 나무가 있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대대로 충직한 신하가 있는 것을 말함입니다. 왕께서는 당대의 충직한 신하마저 없고 예전에 나아갔던 이가 오늘 그 없음을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集註]世臣 累世勳舊之臣 與國同休戚者也 親臣 君所親信之臣 與君同休戚者也 此言喬木世臣 皆故國所宜有 然 所以爲故國者 則在此而不在彼也 昨日所進用之人 今日有亡去而不知者 則無親臣矣 況世臣乎

世臣은 누대에 걸쳐 공이 있는 오래된 신하로 국가와 더불어 함께 즐기고 근심하는 자이다. 親臣은 군주가 친애하여 믿을 수 있는 신하로 군주와 더불어 함께 즐기고 근심하는 자이다. 이것은 교목(喬木)과 세신(世臣) 모두 오래된 나라에 마땅히 있는 바이지만, 그러나 오래된 나라가 되는 까닭은 즉 이것(세신)에 있지 저것(교목)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제 나아가 썼던 사람이 오늘 떠나가 없는데도 알지못하는 것은 친신(親臣)마져도 없는 것인데 하물며 세신(世臣)이야?

02-07-02 王曰 吾何以識其不才而舍之

왕왈: 내가 어찌하면 그 재주가 안되는 사람을 알아 그를 버릴 수 있습니까?

[集註]王意以爲此亡去者 皆不才之人 我初不知而誤用之 故今不以其去爲意耳 因問何以先識其不才而舍之邪

왕의 의도는 여기 떠나서 없는 사람이 모두 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내가 애초에 알지못하여 잘못 그를 썼다고 여기는 것이다. 고로 지금 그 떠나가는 것으로서 뜻을 삼지 않을 뿐이다. 질문으로 인하여 어찌 먼저 그 재주없음을 알아서 그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02-07-03 曰國君進賢 如不得已 將使卑踰尊 疏踰戚 可不愼與

왈: 군주가 현인(세신)을 나아가게 하는데 만일 부득이하다면 장차 낮은 신분을 더욱 높게하고 소원한 사람을 더욱 가깝게하는데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集註]如不得已 言謹之至也 蓋尊尊 親親 禮之常也 然或尊者親者未必賢 必進疏遠之賢而用之 是使卑者踰尊 疎者踰戚 非禮之常 姑不可不謹也

如不得已는 근신하기를 지극히 하는 것을 말한다. 대개 존경받을 이를 존경하고, 친히 대하여야 할 이를 친히대하는 것은 예(禮)의 상도(常道)이다. 그러나 혹 존경받아야할 이가 반드시 현명하지 않으면 반드시 소원한 현인을 내세워 써야 한다. 이것이 낮은 자를 더욱 높이고 소원한 자를 더욱 가깝게 하는 것으로서 예(禮)의 상도가 되지는 않는다. 고로 삼가지 않는 것은 불가하다.

02-07-04 左右皆曰賢 未可也 諸大夫皆曰賢未可也 國人皆曰賢然後 察之 見賢焉然後用之 左右皆曰不可 勿聽 諸大夫皆曰不可 勿聽 國人皆曰不可然後 察之 見不可焉然後去之

좌우가 모두 현명하다 말해도 아직 불가하고, 모든 대부들이 다 현명하다 말해도 아직 불가하고, 온나라 사람들이 모두 현명하다 말한 연후에 그를 자세히 살펴보고, 그의 현명함을 본 이후에 그를 써야합니다. 좌우가 모두 불가하다 말해도 듣지말고, 모든 대부가 불가하다 말해도 듣지말며, 온나라 사람이 모두 불가하다 말한 연후에 그를 자세히 살펴야보고, 그의 불가함을 본 연후에 버려야 합니다.

[集註]左右近臣 其言 固未可信 諸大夫之言 宜可信矣 然猶恐其蔽於私也 至於國人 則其論 公矣 然猶必察之者 蓋人有同俗以爲衆所悅者 亦有特立以爲俗所憎者 故必自察之 而親見其賢否之實然後 從而用舍之 則於賢者 知之深 任之重 而不才者不得已幸進矣 所謂進賢如不得已者 如此

左右는 가까운 신하로 그 말이 진실로 가히 믿을 수 없다. 모든 대부의 말은 의당 믿을만 하지만 그러나 오히려 사사로움에 그 가리워짐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온나라 사람에 이르르게되면 그 논의가 공적(公的)이지만, 그러나 오히려 반드시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대개 사람들이 같은 풍속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바라고 여기는 것이 있고, 또한 우뚝 서 세속으로 인하여 미워하는 바라고 여기는 것이 있다. 고로 반드시 스스로 그것을 살펴서 친히 그 현부(賢否)의 실체를 본 연후에 쫓아 쓰고 버리게되면 현인을 알아보기를 깊게하게되고, 책임을 중하게 맡기면 재주가 없는 사람이 부득이 요행수로 나아가게 될 수 없다. 소위 현인을 나아가게 하는데 부득이 한다는 것은 이와 같다.

02-07-05 左右皆曰可殺 勿聽 諸大夫皆曰可殺 勿聽 國人皆曰可殺然後 察之 見可殺焉然後殺之 故曰國人殺之也

좌우가 모두 가히 죽일만하다 말해도 듣지말고, 모든 대부가 다 가히 죽일만하다 말해도 듣지말고, 온나라사람들이 모두 가히 죽일만하다 말한 연후에 그것을 자세히 살펴 그것에 가히 죽일만 함을 본 연후에 죽여야 합니다. 고로 온나라사람이 그를 죽였다 말하는 것입니다.

[集註]此言非獨以此進退人才 至於用刑 亦以此道 蓋所謂天命天討 皆非人君之所得私也

이것은 다만 이것으로서 인재를 나아가게하고 물러가게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의 사용에 이르러서도 또한 이방법으로서 하여야 함을 말한다. 대개 소위 하늘이 명했고 하늘이 토벌했다했으니 모두 군주가 사사로이 할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02-07-06 如此然後 可以爲民父母

이와같은 연후에 가히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集註]傳曰 民之所好 好之 民之所惡 惡之 此之謂民之父母

대학 전에 왈: 백성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고 백성이 미워하는 바를 미워한다. 이것이 백성의 부모가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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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_양혜왕_원문+해석본

梁惠王章句上 凡七章 上 1장 01-01-01 孟子見梁惠王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뵈니 [集註]梁惠王 魏侯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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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5장

02-05-01 齊宣王問曰 人皆謂我毁明堂 毁諸已乎

제선왕이 물어 말하길: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명당(明堂)을 헐어버리라고 하니 헐어야 합니까? 그쳐야 합니까?

[集註]趙氏曰 明堂 泰山明堂 周天子東巡守朝諸侯之處 漢時遺址尙在 人欲毁之者 蓋以天子不復巡守 諸侯又不當居之也 曰問 當毁之乎 且止乎

조씨왈: 明堂은 태산에 있는 명당이다. 주나라 천자가 동쪽으로 순수나와서 제후에게 조회를 받던 곳으로 한(漢)나라 당시까지 유지하여 여전히 존재해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헐어버리고자 한 것은 아마도 천자가 다시는 순수(巡守)를 하지못하였고 제후가 또 마땅히 그곳에 거처할 수 없었기에 <마땅히 헐어야 합니까? 이것을 그쳐야 합니까?>라고 물어 말한 것이다.

02-05-02 孟子對曰 夫明堂者 王者之堂也 王欲行王政則 勿毁之矣

맹자대왈: 무릇 명당(明堂)이라는 것은 왕천하하는 왕의 당(堂)입니다. 왕께서 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그것을 헐지 마소서.

[集註]堂王者所居以出政令之所也 能行王政 則亦可以王矣 何必毁哉

堂은 왕천하의 왕이 거처하는 곳이며 정치의 명령이 나오는 장소이다. 능히 왕도정치를 행한다면 또한 가히 왕천하의 왕이 될 수 있으니 어찌 반드시 헐수 있으리오?

02-05-03 王曰 王政可得聞與 對曰 昔者文王之治岐也 耕者九一 仕者世祿 關市 譏而不征 澤梁無禁 罪人不孥 老而無妻曰鰥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 幼而無父曰孤 此四者 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 詩云 哿矣富人 哀此煢獨

왕왈: 왕도정치에 대해 가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대왈: 옛날 문왕이 기(岐)땅을 다스릴 때, 밭가는 사람에게 1/9의 세금을 걷었고, 백성에게 공이 있는 관리는 대대로 녹을 주었고, 관문과 시장에서는 살피기만 하고 세금을 걷어들이지 않았으며, 저수지에 어망놓기를 금하지 아니하였고, 죄인에게는 처자식까지 연좌하지 않았습니다. 늙어서 처가 없는 것을 왈 홀아비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왈 과부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을 왈 고아라 하는데, 이 네부류는 천하에 곤궁에 처한 백성으로 연고가 없는 것이어서 문왕이 정치를 펼치실 때 반드시 이 네부류를 먼저 하셨습니다. 시경에 이르길 <부유한 사람은 그래도 가하기도 하지만 이 의지할 데 없고 근심많은 이가 애닯기도 하구나!>

[集註]岐 周之舊國也 九一者 井田之制也 方一里爲一井 其田九百畝 中畫井字 界爲九區 一區之中 爲田百畝 中百畝 爲公田 外八百畝 爲私田 八家各受私田百畝 而同養公田 是九分而稅其一也 世祿者 先王之世 仕者之子孫 皆敎之 敎之而成材 則官之 如不足用 亦使之不失其祿 蓋其先世嘗有功德於民 姑 報之如此 忠厚之至也 關 謂道路之關 市 謂都邑之市 譏察也 征稅也 關市之吏 察異服異言之人 而不征商賈之稅也 澤 謂瀦水 梁 謂魚梁 與民同利 不設禁也 孥妻子也 惡惡止其身 不及妻子也 先王養民之政 導其妻子 使之養其老而恤其幼 不幸而有鰥寡孤獨之人 無父母妻子之養 則尤宜憐恤 故必以爲先也 詩 小雅正月之篇 哿可也 煢困悴貌

岐는 주나라의 옛날 수도이다. 九一이라는 것은 정전의 제도이다. 사방 1리를 하나의 정(井)으로 삼았고 그 토지는 9백묘로 중앙에 정(井)자를 그어 9구역의 경계로 삼았다. 한구역 안의 밭은 백묘(百畝)가 되며, 중앙의 백묘는 공전(公田)으로 삼았고 외각 8백묘는 사전으로 삼았다. 여덟 가구가 각각 사전 백묘씩을 받으면서 공전을 함께 경작하였다. 이것이 9분으로 나누면서 그 하나를 세금으로 취하는 것이었다. 世祿이라는 것은 선왕시대적 관리의 자손은 모두 가르쳤고, 가르쳐 재목이 되면 관직을 주었다. 만일 쓰기에 부족하면 또한 그로 하여금 그 녹을 잃지 않게 하였다. 아마도 그 선왕의 시대에 일찍이 백성에게 공덕(功德)이 있어 고로 보답하기를 이와같이 했다. 이것은 충직(忠直)하고 淳厚(순후)함의 지극함이 된다. 關은 도로의 관문을 말한다. 市는 도성과 읍의 시장을 말한다. 譏는 살피는 것이다. 征은 세금걷어들이는 것이다. 관문과 시장의 관리는 다른 복장 다른 말씨를 쓰는 사람을 살피기만 하고 상인에게는 세금을 걷어들이지 않았다. 澤은 물을 담아두는 것을 말하고 梁은 어망을 말한다. 백성들과 함께 이로움을 같이하여 금지령을 세우지 않았다. 孥는 처와 자식이다. 악을 미워하기를 그 당사자 몸에 그쳐서 처자식에게는 미치지 않았다. 선왕이 백성을 기르는 정치할 때 그 처자식을 인도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그 노인을 봉양하게하고 그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기게 하였다. 불행히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의 사람이 있어 부모나 처자식의 봉양을 받을 수 없게되면 더욱 마땅히 가련하고 불쌍히여겼기 때문에 반드시 우선으로 삼았다. 詩는 소아 정월의 편이고 哿는 가함이다. 煢은 피곤하고 초췌한 모습이다.

02-05-04 王曰 善哉言乎 曰王如善之則何爲不行 王曰 寡人有疾 寡人好貨 對曰 昔者公劉好貨 詩云 乃積乃倉 乃裹餱糧 于橐于囊 思戢用光 弓矢斯張 干戈戚揚 爰方啓行 故居者有積倉 行者有裹糧也然後 可以爰方啓行 王如好貨 與百姓同之 於王何有

왕왈: 좋기도 하구나 말씀이여! 왈: 왕께서 그것을 좋아하신다면 어찌 행하지 않으십니까? 왕왈: 과인은 병폐가 있으니 과인이 재화을 좋아합니다. 대왈: 옛적에 공유란 분도 재물을 좋아하셨습니다. 시경에 이르길: <이내 노적가리를 이내 창고에 가득채웠네. 마른 양식을 꾸려 전대와 자루에 담아 백성이 평화롭게 모여서 광대한 국가를 만들 것을 생각하네. 활과 화살을 갖추시고 방패와 외날도끼, 양날도끼를 들고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나셨네.> 고로 머무르는 사람은 노적가리 가득한 창고가 있고, 길떠나는 사람은 양식을 꾸릴 수 있게된 연후에 가히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께서 만일 재화를 좋아하시길 백성과 더불어 그것을 함께 좋아하신다면 왕천하하는데에 어떤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集註]王自以爲好貨 故 取民無制 而不能行此王政 公劉后稷之曾孫 詩 大雅公劉之篇 積露積也 餱乾糧也 無低曰橐 有低曰囊 皆所以盛餱糧也 戢安集也 言思安集其民人 以光大其國家也 戚斧也 揚鉞也 爰於也 啓行 言王遷于豳也 何有 言不難也 孟子言 公劉之民 不足如此 是公劉好貨而能推己之心 以及民也 今王好貨 亦能如此 則其於王天下也 何難之有

왕은 재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백성에게 취하기를 제도없이하여 능히 이와 같은 왕도정치를 할수 없다고 스스로 여겼다. 公劉는 후직의 증손자이다. 詩는 대아 公劉의 편이다. 積은 드러나게 쌓는 것이다. 餱는 마른 양식이다. 바닥이 없는 것을 왈 橐(탁)라 하고 바닥이 있는 것을 왈 囊이라 하며 모두 마른 양식을 담는 것이 된다. 戢은 편안히 모으는 것이으로 그 백성을 편안히 모아서 그 국가가 광대하게 되는 것을 생각함을 말한다. 戚은 외날 도끼이다. 揚은 양날 도끼이다. 爰은 “이에”이다. 啓行은 왕이 빈땅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何有는 어렵지 않음을 말한다. 맹자의 말은 공유의 백성이 부유하고 풍족하기가 이와 같아서, 이는 공유가 재화를 좋아하여 능히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나가 그 백성에게 미쳤다는 것이다. 지금 왕이 재화를 좋아하길 또한 능히 이와같이 한다면 그 왕천하하는 것에 어떤 어려움이 있겠는가?

02-05-05 王曰 寡人有疾 寡人好色 對曰 昔者大王好色 愛厥妃 詩云 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當是時也 內無怨女 外無曠夫 王如好色 與百姓同之 於王何有

왕왈: 과인은 병폐가 있으니 과인은 색을 좋아합니다. 대왈: 옛적에 주나라 태왕이 색을 좋아하여 그 궐비를 사랑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길: <고공단보께서 말을 달려 조회할 곳을 찾아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의 밑에 이르렀네. 이에 부인 강녀와 함께 마침내 집터를 살피셨네.> 이 당시에 안으로는 처녀들의 원망이 없었으며 밖으로는 짝없는 장부가 없었었으니, 왕께서 만일 색을 좋아하길 백성과 더불어 그것을 함께 좋아하신다면 왕천하하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集註]王又言此者 好色則心志蠱惑 用度奢侈 而不能行王政也 大王公劉九世孫 詩 大雅綿之篇 古公 大王之本號 後乃追尊大王也 亶父 大王名也 來朝走馬 避狄人之難也 率循也 滸水涯也 岐下岐山之下也 姜女大王之妃也 胥相也 宇居也 曠空也 無怨曠者 是大王好色而能推己之心 以及民也

왕이 또 이것을 말한 것은 색을 좋아하게 되면 심지가 흐려져 유혹됨이 있어 사치의 법도를 사용하게 되어 능히 왕도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大王은 공유의 9대손이며 詩는 대아 면의 편이다. 古公은 태왕의 본래 호칭으로 후에 곧 태왕으로 추존되었다. 亶父는 태왕의 이름이다. 來朝走馬는 적인(훈육)의 난리를 피했던 것이다. 率은 따르는 것이다. 滸는 물가이다. 岐下는 기산의 아래이다. 姜女는 태왕의 비(妃)이다. 胥는 살펴봄이다. 宇는 거쳐함이다. 曠은 비워있는 것이다. 無怨曠이라는 것은 이 태왕이 색을 좋아하여 능히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나가 백성에게 미쳤다는 것이다.

○ 楊氏曰 孟子與人君言 皆所以擴充其善心 而格其非心 不止就事論事 若使爲人臣者論事 每如此 豈不能堯舜其君也 愚謂此篇 自首章至此 大意皆同 蓋鍾鼓苑囿游觀之樂 與夫好勇 好貨 好色之心 皆天理之所有 而人情召所不能無者 然天理人欲 同行異情 循理而公於天下者 聖賢之所以盡其性也 縱欲而私於一己者 衆人所以滅其天也 二者之間 不能毫髮 而其是非得失之歸 相去遠矣 故孟子因時君之問 而剖析於幾微之際 皆所以遏人欲而存天理 其法似所以實密 其事似易而實難 學者以身體之 則有以識非曲學阿世之言 而知所以克己復禮之端也

양씨왈: 맹자께서 군주와 더불어 말함이 모두 그 선한 마음을 넓혀 채워주려는 까닭이였고, 그 삐뚜러진 마음을 바로잡아 한가지 일에 나아가 한가지 일에만 논하는데에 그치지 않았다. 만일 신하된 자로 하여금 일을 논할 때 매번 이와같이 하게한다면 어찌 능히 그 군주를 요순임금처럼 되게하지 않겠는가? 내가 이편을 살펴봄에 첫장에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큰 뜻은 모두 같다. 대개 鍾鼓, 苑囿, 游觀의 즐거움과 무릇 好勇, 好貨, 好色의 마음은 모두 천리에 있는 바이며 사람들 성정(性情)에 능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리와 인욕이 함께 행해지지만 실정을 다르다. 이치에 따라서 천하에 공적으로 대하는 것은 성현이 그 성을 다하는 까닭이 되고, 인욕을 함부로 쫓아 자기 일신(一身)에만 사사로이 대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천리를 소멸되게 하는 까닭이 된다. 두가지의 사이가 능히 털끝만큼도 되지 않지만 그 옳고 그름, 얻고 잃음의 귀결은 서로 벌어져 멀어지게 된다. 고로 맹자께서 당시의 군주의 질문으로 인하여 기미의 사이를 파헤치고 분석하신 것은 모두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려는 까닭이였다. 그 논법이 엉성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치밀하였고, 그 일이 쉬워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려웠었다. 배우는 사람이 몸소 그것을 체득하게되면 맹자의 말씀이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말이 아님을 알 수 있고, 극기복례의 단서가 되는 까닭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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