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최원정(崔猿亭:최수성)이 항상 화(禍) 입을까 두려워 세상 밖에 방랑했건만, 마침내 그의 숙부(叔父)의 참소를 받아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되었는데, 그가 만의사(萬義寺)에 제(題)한 시는 다음과 같다.

古殿殘僧在 고전잔승재

林梢暮磬淸 임초모경청

曲通千里盡 곡통천리진

墻壓衆山平 장압중산평

木老知何歲 목노지하세

禽呼自別聲 금호자별성

艱難憂世網 간난우세망

今日愧余生 금일괴여생

옛 불전에 중 몇이 있고

나뭇가지엔 저물녘 경쇠소리 맑아라

산굽이는 천리나 아스라한데

담장은 우뚝 뭇산 하마 낮아 뵈네

나무는 하 늙었으니 몇 살이나 되었는지?

새들의 지저귐도 곳에 따라 유달라라

어려운 세상 죄의 그물 근심했더니

오늘이야말로 부끄럽다. 나의 삶이여!

시어(詩語)가 맑고도 빼어났다. 끝구는 대체 그 화 입을 것을 미리 헤아렸단 말인가?

원정의 이름은 수성(壽城), 자는 가진(可鎭), 강릉인(江陵人)이며, 처사(處士)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그의 숙부 세절(世節)의 자는 개지(介之), 벼슬은 호조 참판(戶曹參判)이다.

원정의 망천도시(輞川圖詩)는 다음과 같다.

秋月下西岑 추월하서잠

暝煙生遠樹 명연생원수

斷橋兩幅巾 단교양폭건

誰是輞川主 수시망천주

가을달이 서녘산에 내리니

어두운 연기 먼 나무에 피어나네

끊어진 다리에 복건쓴 두 사나인

그 누가 망천의 주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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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응교(應敎) 기준(奇遵)이 온성(穩城)으로 귀양 가 있는데, 서울로부터 사약이 내려왔다. 그는 조용히 시를 읊어 스스로 만사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日落天如墨 일락천여묵

山深谷似雲 산심곡사운

君臣千載意 군신천재의

惆悵一孤墳 추창일고분

해 지자 하늘은 먹빛 같고

산 깊어 골짜기는 구름 같구나

천년토록 지키자던 군신의 의는

슬프다 하나의 외로운 무덤뿐

이 시를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심장과 간장이 다 찢어지게 한다.

기준의 자는 자경(子敬), 호는 복재(服齋), 행주인(幸州人)이며, 벼슬은 응교(應敎)에 그쳤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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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연산군이 집정하였을 때, 강혼(姜渾)은 도승지(都承旨)가 되어 가장 총애를 받았다. 언젠가 연산군이 출제하기를,

寒食園林三月近 한식원림삼월근

落花風雨五更寒 락화풍우오경한

한식동산에 삼월은 다가오고

비바람에 꽃지는 새벽은 싸늘해라

하고, 승지ㆍ사관ㆍ경연관에게 칠언율시를 지어 바치게 하였는데, 강혼의 시는 다음과 같다.

淸明御柳鎖寒煙 청명어류쇄한연

料峭東風曉更顚 료초동풍효경전

不禁落花紅襯地 불금락화홍친지

賸敎飛絮白漫天 승교비서백만천

高樓隔水搴珠箔 고루격수건주박

細馬尋香耀錦韉 세마심향요금천

醉盡金樽歸別院 취진금준귀별원

綵繩搖曳畫欄邊 채승요예화란변

청명이라 대궐 버들 찬 연기 서렸는데

쌀쌀한 봄바람 새벽들어 한층 더 미친 듯하구나

붉은 꽃잎 땅을 덮도록 내버려두고

휘날리는 버들개지 온 하늘에 자옥하구나

물건너 높은 누각에 구슬발 걷히니

꽃구경 가는 좋은 말 비단안장 빛나네

금동이술 다 마시고 취하여 별원으로 돌아오노라니

단청한 난간가에 오색드림 나불리네

하였다. 연산군이 크게 칭찬을 하며 금은 보화를 많이 하사하였다.

강혼(姜渾)의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木溪), 진주인(晉州人)이며 벼슬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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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익지(李益之:이달)는 젊어서 화류계(花柳界)에 출입한 실수로 말미암아, 그 재주를 시새우는 자들이 그것을 가지고 비방하였고, 심지어는 ‘어머니도 잘 대우하지 않고 부인과의 예의도 닦지 않았다.’ 하며 비난해 마지않았다.

양봉래(楊蓬萊:양사언)가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부임했을 때 그를 빈사(賓師)의 예로 대우하자, 강샘하는 이들이 선대부(先大夫 허균의 아버지 허엽(許曄)을 가리킴)에게 무근한 말을 하여 선대부께서 편지로 익지를 사절토록 권하였다. 양봉래가 답장을 보내기를,

“오동꽃은 밤비에 지고, 바닷가 나무는 봄구름 속에 사라진다.[桐花夜雨落 海樹春雲空]

라고 시를 짓는 이달(李達)을 만약 소홀히 대접한다면 진왕(陳王)이 갓 응탕(應瑒)과 유정(劉楨)을 잃을 때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였다.

그 후에 대우가 약간 소홀해지자, 익지[이달]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작별하였다.

行子去留際 행자거류제

主人眉睫間 주인미첩간

今朝失黃氣 금조실황기

舊宇憶靑山 구우억청산

魯國爰居饗 노국원거향

南征薏苡還 남정의이환

秋風蘇季子 추풍소계자

又出穆陵關 우출목릉관

나그네의 떠나고 머무름은

주인의 눈썹 사이에 달렸나니

오늘 아침 반기는 빛 없으니

우리 집 고향산 그리워지네

노 나라에선 원거를 잔치해 주고

남정에는 의이로 돌아갔다네

가을바람에 소계자의 신세로

또다시 목릉관을 떠나노라

이에 양봉래가 놀라고 뉘우쳐 대접하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봉래(蓬萊)의 이름은 사언(士彦), 자는 응빙(應聘), 청주인(淸州人)으로 벼슬은 부사(府使)이다.

선대부(先大夫)의 이름은 엽(曄),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이며 벼슬은 부제학(副提學)이다.

봉래의 국도시(國島詩)는 다음과 같다.

金屋樓臺拂紫煙 금옥누대불자연

濯龍雲路下群仙 탁용운로하군선

靑山亦厭人間世 청산역염인간세

飛入滄溟萬里天 비입창명만리천

단청한 누대에 보라빛 연기 떨치며

구름길에 용을 타고 여러 신선 내려오네

청산도 또한 인간속세 싫어선지

푸른 바다 같은 만리장천으로 날아드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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