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최고죽(崔孤竹) 등이 언젠가 말하기를,

“우리나라 지명은 중국만 못하여 시 지을 때 지명을 구사할 수 없다.”

하며 늘 한스럽게 여겼는데,

소재(蘇齋)의 시에,

路盡平邱驛 로진평구역

江深判事亭 강심판사정

길은 막다른 평구역이오

강물은 깊어라 판사정 앞에

라는 것을 보니, 상하구가 모두 속어를 썼건만 구법이 온당 적절하다.

그러니 대가의 솜씨는 자연 여느 사람과 다름을 알겠다.

'한문학 > 학산초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혼 /학산초담 20  (0) 2010.02.12
양사언 & 이달 / 학산초담 19  (0) 2010.02.11
이옥봉 /학산초담 17  (0) 2010.02.11
허봉과 허초희의 시참 / 학산초담 15-16  (0) 2010.02.10
허봉 / 학산초담 14  (0) 2010.02.10


17. 이옥봉(李玉峯)은 사문(斯文) 조원(趙瑗)의 소실이다. 그 시가 몹시 맑고 강건하여, 거의 아낙네들의 연지 찍고 분 바르는 말들이 아니다.

남편을 따라 진주부(眞珠府)로 가는 길에 노산묘(魯山墓)를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五日長干三日越 오일장간삼일월

哀歌唱斷魯陵雲 애가창단노릉운

妾身亦是王孫女 첩신역시왕손녀

此地鵑聲不忍聞 차지견성불인문

닷새는 장간이요 사흘은 영월이라

참담한 노릉 구름 슬픈 노래 끊어지네

이 몸도 또한 왕손의 딸이라서

이 땅 두견새소리 차마 들을 수 없구려

서군수(徐君受)의 소실이 액서(額書)와 단율(短律)을 부쳐준 데 사례하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瘦勁寫成天外態 수경사성천외태

元和脚跡見遺蹤 원화각적견유종

眞書翥鳳飄揚裏 진서저봉표양리

大字崩雲結密中 대자붕운결밀중

試掛山軒疑躍虎 시괘산헌의약호

乍臨江閣訝騰龍 사림강각아등룡

衛夫人筆方知健 위부인필방지건

蘇惹蘭才豈擅工 소야란재기천공

體若蕙枝思則壯 체약혜지사칙장

手纖蔥玉掃能雄 수섬총옥소능웅

神交萬里通文墨 신교만리통문묵

爲報螭珠白玉童 위보리주백옥동

여위고도 굳세게 하늘밖의 정취 써서 이루니

유공권(柳公權) 서체의 남은 자취 보여주네

진서는 나부끼는 가운데 봉새처럼 날아오르고

큰 글씨는 뭉게구름이 응집되었네

시험삼아 산헌에 걸고 보니 호랑이가 뛰는 듯

문득 강각에 거니 용이 오르는 양

위부인 필재 바야흐로 건장한 줄 알거니와

소야란의 재주라고 어찌 공교함을 독차지할 것인가

몸은 마치 혜초가지 같아도 생각은 씩씩하며

가녀린 손 파대공 같건만 글씨를 쓰면 웅장하여라

정신적인 사귐이 만리를 문묵으로 통하니

여의주를 갚기 위해 백옥동자에게 알리노라

그 아우 또한 시를 잘 지어, 언젠가 절구 한 수를 읊었는데, 그 하구는 다음과 같다.

開窓步曉月 개창보효월

露濕梅花枝 로습매화지

창 열고 새백 달빛 아래 거니노라니

이슬은 매화가지에 함초롬하구나

그 전집을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옥봉(玉峯)의 이름은 원(媛)이고 완산인(完山人)인데, 충의(忠義) 봉(逢)의 딸이다.

원(瑗)의 자는 백옥(伯玉), 호는 운강(雲江), 임천인(林川人)으로 벼슬은 승지(承旨)이다.

서군수(徐君受)의 이름은 익(益), 호는 만죽(萬竹), 부여인(扶餘人)으로 벼슬은 부사(府使)다.

옥봉의 규정시(閨情詩)에,

有約郞何晩 유약랑하만

庭梅欲謝時 정매욕사시

忽聞枝上鵲 홀문지상작

虛畫鏡中眉 허화경중미

언약하신 서방님 어이 이리 더디신가

뜰가의 매화는 이울려 하는데

갑자기 가지 위에 까치소리를 듣고

헛되이 거울 비쳐 눈썹 그리네

'한문학 > 학산초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사언 & 이달 / 학산초담 19  (0) 2010.02.11
노수신 / 학산초담 18  (0) 2010.02.11
허봉과 허초희의 시참 / 학산초담 15-16  (0) 2010.02.10
허봉 / 학산초담 14  (0) 2010.02.10
심언광 / 학산초담 13  (0) 2010.02.10

 

15. 중형[허봉]이 귀양 가기 전 옥당(玉堂)에 있을 때 꿈속에서 시를 짓기를,

 

稼圃功夫進 

가포공부진, 텃밭에 채마 부치노라니 솜씨야 늘었다만

煙霄夢寐稀 

연소몽매희,  천상은 꿈결에도 어렴풋 

唯殘賈生淚 

유잔고생루 , 오직 가의의 눈물만 남아 

夜夜濕寒衣 

야야습한의, 밤마다 차가운 옷을 적실 뿐


하더니, 가을이 되자 갑산(甲山)에 귀양 가게 되었다.

 

누님[허초희, 호는 난설헌]이 평시에 또한 꿈속에서 지은 시에.

碧海浸瑤海

벽해침요해, 푸른 바단 신선 사는 요해에 젖어들고 

靑鸞倚彩鳳

청란의채봉, 푸른 난새는 채봉을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朵

부용삼구타, 연꽃 스물일곱 송이 

紅墮月霜寒

홍타월상한, 서리같이 싸늘한 달빛 아래 지는구나

 

하더니, 이듬해 신선되어 올라가니, 3에 9를 곱하면 27로서 누님 나이와 같으니,

인사에 있어 미리 정해진 운명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16. 누님[허초희]의 시문은 모두 천성에서 나온 것들이다.

유선시(遊仙詩)를 즐겨 지었는데 시어(詩語)가 모두 맑고 깨끗하여, 음식을 익혀 먹는 속인으로는 미칠 수가 없다.

문(文)도 우뚝하고 기이한데 사륙문(四六文)이 가장 좋다.

백옥루상량문(白玉樓上樑文)이 세상에 전한다.

중형이 일찍이,“경번(景樊)의 재주는 배워서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모두가 이태백(李太白)과 이장길(李長吉)의 유음(遺音)이다.” 라고 한 적이 있다.

아, 살아서는 부부금슬이 좋지 못했고, 죽어서는 제사받들 자식이 없으니 옥이 깨진 원통함이 한이 없다.

 

'한문학 > 학산초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수신 / 학산초담 18  (0) 2010.02.11
이옥봉 /학산초담 17  (0) 2010.02.11
허봉 / 학산초담 14  (0) 2010.02.10
심언광 / 학산초담 13  (0) 2010.02.10
임형수 / 학산초담 12  (0) 2010.02.09


14. 중씨[허봉]가 근래 시인을 평하되, 소재 상공(蘇齋相公:노수신)을 대가로 여기고,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을 그 다음으로 쳤다. 이익지(李益之) [익지는 이달(李達)의 자]는 중씨의 시ㆍ문이 모두 고공(高公)보다 낫다고 치는데 논란은 오래되었으나 결판이 나지 않았다. 내가 권응인(權應仁)을 만나게 되어 물어보니, 이익지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권응인이 갑산(甲山)으로 귀양 가는 중씨를 보내는 시의 항련(項聯)에,

家居丁卯唐詩士 가거정묘당시사

降在庚寅楚逐臣 항재경인초축신

정묘교 곁에 살던 당 나라 시인이고

경인일에 태어나 내쫓긴 초 나라 신하로다

라 하니,

고사 인용이라든가 대우(對偶)가 다 적절하다.

중형이 서애(西厓:류성룡)에게 부친 시에 또,

莫言甲子泥塗日 막언갑자니도일

應値庚寅下降年 응치경인하강년

갑자년 참상을 말하지 마라

응당 경인년에 하강하는 때를 맞으리

하였다.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자는 과회(寡悔)니 광산인(光山人)이다. 벼슬은 영의정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자는 이순(而順)이니 장흥인(長興人)이다. 벼슬은 목사이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자는 이견(而見)이니 풍산인(豐山人)이다. 벼슬은 영의정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한문학 > 학산초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옥봉 /학산초담 17  (0) 2010.02.11
허봉과 허초희의 시참 / 학산초담 15-16  (0) 2010.02.10
심언광 / 학산초담 13  (0) 2010.02.10
임형수 / 학산초담 12  (0) 2010.02.09
누정의 현판시 / 학산초담 11  (0) 2010.02.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