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 러시아 소녀는 해맑은 피부에 분홍 셔츠까지 입혀 내 눈에는 석모도 제일의 진달래꽃으로 비쳤다. 갈매기의 환대도 가관이었고, 보문사 사진은 내가 보문사에 가면 매양 사진 짝는 그림 풍경이다. 아래 사진은 여름에 찍은 그림이다.
뜨락에 핀, 장미를 닮은 동백꽃을 한 컷 추가했다. 동백꽃의 빈틈없는 꽃잎의 조화와 분배도 이 러시아 소녀의 완벽한 이목구비의 볼륨과 배치를 당해내지 못했다. 보문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왼쪽 계곡의 소나무숲도 장관이었다. 속리산 법주사 일주문 근처에서나 만날 수 있는 솔향기여, 솔바람이여!
<석모도 진달래꽃>
Seoul International Hiker's Club 회원 30명과 석모도 해명산, 낙가산 트래킹에 나섰다.
회원들은 한국땅에서 밥벌어 먹고 사는 외국인들인데.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멤버 중에는 한국외대에서 스칸디아어(?)를 가르치는 중년의 스웨덴 아줌마, 서강대 교단에 서는, 외모가 인도인처럼 보이는 카나다인 가족, 그집 딸내미는 12 살이라고 했는데, 내가 초등학교인가 물었더니 미들스쿨이라고 답했다.
그 외에도 보문사에서 얘기를 나눈 스코틀랜드 아가씨는 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러시아인 가족. 포도를 걸을 때는 꼬맹이 딸을 목말 태우기도 했는데, 딸아이는 목말에 숙달이 된 듯, 동행한 러시아인이 아이의 팔을 잡고 위로 올리니 자동으로 중년 사내의 머리 위로 다리를 오무려 내려왔다.
그리고, 저번 금단산 산행에서 만났던 신디. 지난 번엔 오리건주인가 미국 같은 주에 사는 남자 친구와 동행했었는데 그는 지방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못 왓다고 했다. 신디는 강남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데 28세의 거구이지만 친밀감이 가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원기 왕성하여 네 시간이 넘는 산행 중에도 계속 영어를 쏟아냈다. 아무래도 그 파워펄한 에너지는 든든한 몸집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회원들은 고정멤버가 아니라 홈피의 공고를 보고 매주 토요일 모이는 사람들인지라 출신 국가나 연령층이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스스럼없이 만나서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고 헤어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신촌역 7번 출구에서 모여 시외버스로 강화도 외포리까지 이동, 거기서 석모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다. 말이 승선이지 승선 거리는 1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다. 배의 갑판은 언제나 그렇듯이 자동자로 가득차 있어 차량 사이를 비집고 객실로 이동했다. 객실은 비워둔 채 승객들은 대부분 뱃가에 붙어서서 갈매기와 친밀한 시간을 보냈다.
꼬마들이이나 연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새우깡을 갈매기가 입으로 나꿔채 가는 바람에 바로 눈앞을 스쳐가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갈매기를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향행 날아오는 갈매기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써 보았지만 비행 속도가 빨라 갈매기의 꼬리나 머리가 잘려나가기 일수였다.
크게 소리지르며 날아드는 갈매기떼는 정말 장관이었다. 갈매기는 배의 스크루프로펠러[screw propeller]가 바다 물속을 갈아엎는 바람에 물고기가 올라오는지 갈매기떼는 소리를 내지르며 스크루가 일으키는 포말 줄기로 모여들기도 했다.
한 칸자리 콘세트 안의 버스 매표원 할아버지는 7분이면 등산로 입구에 내려 준댔지만 여자 코디 박선생은 논길을 걷자는 제안을 선택했다. 해안을 바라보고 봄바람을 맞으며 들길을 걷는 운치도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정겨움이었다. 4월의 훈풍이 폐부에 쌓인 오염된 공기를 바닷바람, 산바람, 들바람으로 교체할 요량으로 심호흡도 해 보았다. 들길에서 중학동기 병근님은 더 전진하자고 했지만 내가 마을로 들어가자고 우겨 30분 중 절반 이상은 포장도로를 걸어서 이동했다.
해명산 등산로 입구에서 네시간 반에 걸친 등산이 시작되었다. 한길가 해명산 등산로 진입로에서부터 정상을 거쳐 낙가산 보문사로 하산, 4시간 반이 넘는 등산로는 평지 흙길이 많아 걷기에 그만이었다.
고려산 같은 진달래꽃밭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기대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 꽃밭은 없었다. 무더기로 핀 진달래꽃을 만나면 나는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다. 이 4시간 반이 넘는 산행길에 글쎄 6살이 될까말까한 이 러시아 소녀가 완주했다. 이 러시아 소녀는 해맑은 피부에 분홍 셔츠까지 입혀 내 눈에는 석모도 제일의 진달래꽃으로 비쳤다.
또래의 캐나다에서 온 소녀도 물론 완주했다.
눈 아래 서해안뻘을 내려다보며 이젠 완연한 봄바람을 호흡하니 신선이 따로 없었다. 길을 잘못 들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으나 코디 박선생은 천하태평이었다. 실제로 보문사쪽길이 안 보여 잠시 옆길로 새기도 했었다. 누가 잡은 코스인가 물었더니, 아니 글쎄 그녀는 차랑으로 한 번 와 봤는데 “강화도인데요, 뭐”하고 웃어넘겼다. 내 귀에는 길을 잃어봤자 강화도 안이라는 말로 들렸다.
나는 앞장서 걸으며 가끔 카메라 탐스런 진달래꽃 더미를 만나면 샷터를 눌러대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는졸지에 아무도 인정 안하는 산행 가이드를 자청한 꼴이 되었다. 보문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일행보다 10분 내지 20분 거리는 앞서가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천하태평의 느긋한 코디 때문에 보문사가 나타나기까지 조바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병근이는 같이 가지 왜 혼자 앞질러가냐고 몇 번이나 소리치더니 나중에는 그 일로 왜 혼자 다니냐고 신경질까지 부렸다. 나는 가이드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드디어 보문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산마루 너럭 바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한껏 안도감을 즐겼다. 보문사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70도는 되었으나 거기를 벗어나면 편안한 산길로 변했다. 길 양켠으로 군데군데 진달래밭이 풍성했으나 카메라로 포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카메라에 포착되는 건 시야에 들어온 것과 영 딴판으로 볼품 없었다.사찰 경내에 도착하여 보문사에 가면 매양 사진 찍는 사찰 풍경도 추가했다. 향나무 뒤의 석굴암자, 산중턱의 마애불쪽을 향해 샷터를 몇 방 눌렀다.
나는 영어를 할 줄 모르니, "Where from?" "what is your occupation ?" 잘 못 알아들으면 'Your job?"하고 묻거나 "Whom from do you learn Korean language?" 구문이 잘못된 듯하여, "Who teach you Korean language?"하고 묻는 게 내 질문의 전부였다. 그리고 자기 나라를 말하면 "Oh, very beautiful country." 하거나 상대의 말을 듣고 나서는"Oh yes,"가 고작이었다. 그리곤 꿀먹은 벙어리였다.
말하자면 그이후론 부모 때려죽인 원수처럼 눈길을 외면한 채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보문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왼쪽 계곡의 소나무숲도 장관이었다. 속리산 법주사 일주문 근처에서나 만날 수 있는 솔향기여, 솔바람이여!
그런데 코디의 느긋함은 저녁식사 후 돌변했다. 포구로 나오는 버스가 끊어져 포구쪽에 전화로 불렀다. 그나마 30명의 승객이 있어 버스를 보내주었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지만 거기가 섬이라는 걸 아무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섬이란 이름을 무시하다가 당한, 당해도 싼 봉변이었다.
8시 가까이 되니 석모도 포구의 밤의 바닷바람이 냉기를 끼쳐 배낭 속의 겨울 조끼도 꺼내입었지만 한기는 가시지 않았다. 바다 건너 눈앞의 외포리 포구쪽에는 불빛이 아름다웠지만 배는 움직이는 기색이 없었다. 관리인 말로는 8시반, 9시 배가 있다고 했다.
통화를 한 아내는 버스가 끊겼다는 나의 답변을 듣고는 강화도로 차를 가져갈까 물어왔다. 싱거운 병근님은 핸드폰에 대고 자고 갈거라고 외쳤다.
결국 강화섬 외포리로 건너긴 했으나 강화읍에 나가는 버스가 없어 박선생은 또 전화를 해대며 동동걸음을 쳤다. 강화읍에 나오니 신촌행 버스는 9시반, 10시편이 있었다. 두 번째의 안도감이 피로를 몰고와 잠을 퍼부었다. 신촌서 전철로 바꿔타고 11시가 지나 귀가했다.
내일 춘천 삼악산 가는 중학동기들의 산행이 잡혀 있었지만 새벽 1시반을 넘겨 잠자리에 들었다.9시 뉴스를 보며 잠자리에 드는 나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 시간만 더 있으면 이른 기상시각에 해당하는 시각이었다.
봄꽃 화원 & 꽃다발을 가슴 가득 앵겨 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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