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log.daum.net/thddudgh7/16534225?category=1425252

 

<서경>(43)하서(夏書)(13)우공편(禹貢篇)(13) 우(禹)가 구주(九州)의 모든 역사(役事)를 완수하였다.

             <서경(書經)>(43) 하서(夏書)(13)         하(夏)는 우(禹)를 비롯한 그의 자손들이 중국을 다스렸던 왕조를 가리킨다. 하서(夏書)는 하 왕조(夏王   朝)의 사관(史官)이 기록하.

blog.daum.net

 

 

[13] 우(禹)가 구주(九州)의 모든 역사(役事)를 완수하였다. 

   

   九州攸同(구주유동) 

   아홉 주가 이와 같이 잘 다스려지게 되자,

   四隩旣宅(사오기댁) 

   사방의 바닷가까지 사람이 살수 있게 되었다.

   九山刊旅(구산간려) 

   9산(九山)의 모든 산은 나무를 베어 젖혀 정돈이 되고,

   九川滌源(구천척원) 

   9천(九川)의 모든 하천이 수원(水源)부터 잘 소통이 되어, 

   九澤旣陂(구택기피) 

   9택(九澤)의 모든 호수는 방죽을 쌓게 되었다.

   四海會同(사해회동) 

   이어 사해(四海)의 제후들이 함께 모여 임금을 받들고,

   六府孔修(륙부공수) 

   여섯 가지 물자인 육부(六府)가 크게 다스려져,

   庶土交正(서토교정) 

   모든 지방이 다 같이 바로 잡혔다.

   底愼財賦(저신재부) 

   재물과 부세(賦稅)를 신중히 다루어,

   咸則三壤(함칙삼양) 成賦中邦(성부중방)

   모두 세 가지 등급의 땅에 따라, 중국의 부세(賦稅)를 정하였다.

   錫土姓(석토성) 祗台德先(지태덕선) 

   땅을 백성들에게 내려 주고, 공경히 덕을 먼저 하니,

   不距朕行(부거짐행) 

   ‘내가 하는 일에 거역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시기에 이르렀다.   

   

     *이 절에서는 우(禹)의 업적을 크게 칭송함으로써 그 결론을 맺는 대목이다. 

 

 

m.blog.daum.net/thddudgh7/16534223?category=1425252

 

<서경>(41)하서(夏書)(11)우공편(禹貢篇)(11) 우(禹)의 업적을 물(水)을 중심으로 기록하다.

             <서경(書經)>(41) 하서(夏書)(11)         하(夏)는 우(禹)를 비롯한 그의 자손들이 중국을 다스렸던 왕조를 가리킨다. 하서(夏書)는 하 왕조(夏王   朝)의 사관(史官)이 기록하.

blog.daum.net

 

 

 [11] 우(禹)의 업적을 물(水)을 중심으로 기록하다.   

 

   導弱水(도약수) 至于合黎(지우합려)

   약수(弱水)를 인도하여, 합려산(合黎山)으로 흐르게 하였고, 

   餘波入于流沙(여파입우류사) 

   나머지 물은 유사(流沙)로 끌어 넣었다. 

   導黑水(도흑수) 至于三危(지우삼위) 

   흑수(黑水)를 인도하여, 삼위산(三危山)으로 흘러,

   入于南海(입우남해) 

   남해(南海)로 흘러 들게 하였다.

   導河(도하) 積石(적석)

   황하(黃河)를 인도하여, 적석산(積石山)을 거쳐, 

   至于龍門(지우룡문)

   용문산(龍門山)에 이르게 하였다.

   南至于華陰(남지우화음) 

   그리고 남쪽으로 화산(華山) 북쪽 기슭에 이르도록 하였으며,

   東至于厎柱(동지우지주) 

   동쪽으로 지주산(厎柱山)에 이르서는,  

   又東至于孟津(우동지우맹진) 

   다시 동으로 흘러 맹진(孟津)에 이르게 하였다.

   東過洛汭(동과낙예) 

   동쪽으로 낙수(洛水)를 굽이쳐 흐르게 하여,

   至于大伾(지우대비) 

   대비산(大伾山)에 이르게 하였다.

   北過洚水(배과강수) 至于大陸(지우대륙) 

   북쪽으로 강수(洚水)를 지나, 대륙호(大陸湖)에 이르게 하였다. 

   又北播爲九河(우배파위구하) 

   다시 북쪽으로 아홉 가닥으로 나뉘어 지게 하였다가,

   同爲逆河(동위역하) 入于海(입우해)

   같은 황하(黃河)의 줄기와 합류하여, 바다로 빠지게 하였다. 

   嶓冢導漾(파총도양) 

   파총산(嶓冢山)의 양수(漾水)를 끌어, 

   東流爲漢(동류위한)

   동쪽으로 흘러 한수(漢水)를 이루게 하였다.

   又東爲滄浪之水(우동위창낭지수) 

   다시 동쪽으로 흘러 창랑지수(滄浪之水)를 이루도록 하였다. 

   過三澨(과삼서) 至于大別(지우대별)

   삼서(三澨)를 지나, 대별산(大別山)에 이르도록 하였다.

   南入于江(남입우강) 

   남쪽으로 장강(長江)에 흘러들게 하였는데,

   東匯澤(동회택) 爲彭蠡(위팽려) 

   동쪽으로 고인 물이 호수가 되니, 팽려호(彭蠡湖)가 되었다.

   東爲北江(동위배강) 入于海(입우해) 

   또한 동쪽으로는 북강(北江)이 되어, 바다로 흘러 들었다.

   

    *이 절에서는 우(禹)의 업적을 강물을 중심으로 하여 다시 보완 하고 정리한 것인데, 

     약수(弱水), 흑수(黑水), 황하(黃河), 양수(漾水)를 다스린 기록을 편의상 먼저 취급한 것이다.

 

 

m.blog.daum.net/thddudgh7/16534222?category=1425252

 

<서경>(40)하서(夏書)(10)우공편(禹貢篇)(10) 우(禹)의 업적을 산(山)을 중심으로 기록하다.

             <서경(書經)>(40) 하서(夏書)(10)         하(夏)는 우(禹)를 비롯한 그의 자손들이 중국을 다스렸던 왕조를 가리킨다. 하서(夏書)는 하 왕조(夏王   朝)의 사관(史官)이 기록하.

blog.daum.net

 

 [10] 우(禹)의 업적을 산(山)을 중심으로 기록하다.  

    導岍及岐(도견급기) 

   견산(岍山)과 기산(岐山)으로부터 시작하여,

   至于荊山(지우형산) 

   형산(荊山)에 이르렀다. 

   逾于河(유우하) 壺□雷首(호구뇌수) 

   황하(黃河)를 건너, 호구산(壺□山)과 뇌수산(雷首山)을 거쳐,

   至于太岳(지우태악) 

   태악(太岳)에 이르렀다.

   底柱析城(저주석성) 

   저주산(底柱山)과 석성산(析城山)을 거쳐, 

   至于王屋(지우왕옥)

   왕옥산(王屋山)에 이르렀다.

   太行恒山(태행항산) 

   태행산(太行山)과 항산(恒山)을 거쳐,

   至于碣石(지우갈석) 入于海(입우해) 

   갈석산(碣石山)에 이르러, 바다에 다다랐다.

   西傾朱圉鳥鼠(서경주어조서) 

   서경산(西傾山)·주어산(朱圉山)·조서산(鳥鼠山)에서 시작하여,

   至于太華(지우태화) 

   태화산(太華山)까지 이르렀다.

   熊耳外方桐栢(웅이외방동백) 

   웅이산(熊耳山)·외방산(外方山)·동백산(桐栢山)을 거쳐,

   至于陪尾(지우배미) 

   배미산(陪尾山)에 이르렀다.

   導嶓冢(도파총) 至于荊山(지우형산) 

   파총산(嶓冢山)으로 부터 시작하여, 형산(荊山)까지 이르렀다.

   內方(내방) 至于大別(지우대별) 

   내방산(內方山)을 거쳐, 대별산(大別山)에 이르렀고,

   岷山之陽(민산지양) 至于衡山(지우형산)

   민산(岷山) 남족 기슭을 거쳐, 형산(衡山)에 이르렀으며,

   過九江(과구강) 至于敷淺原(지우부천원)

   아홉 줄기 강을 지나, 부천산(敷淺山)·원산(原山)까지 다다랐다.

     

 

    *이 절에서는 중국의 산을 중심으로 하여 우(禹)의 업적을 기록해나간 것이다.

앞에서 차례로 주(州)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전후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부분을

여기에서 다시 산을 중심으로 보충설명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우(禹)의 업적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말하였다.

견산(岍山)과 기산(岐山)에서부터 바다에 도달했다고하는 첫부분은 북조(北條)로 일컬었고,

서경산(西傾山)부터 배미산(陪尾山)까지의 둘째 부분을 중조(中條)라 했으며,

파총산(嶓冢山)으로 시작된 마지막 부분을 남조(南條)라고 일컬었다.

 

 

m.blog.daum.net/thddudgh7/16534221?category=1425252

 

<서경>(39)하서(夏書)(9)우공편(禹貢篇)(9) 옹주(雍州)의 치수(治水)와 부세(賦稅)

             <서경(書經)>(39) 하서(夏書)(9)         하(夏)는 우(禹)를 비롯한 그의 자손들이 중국을 다스렸던 왕조를 가리킨다. 하서(夏書)는 하 왕조(夏王   朝)의 사관(史官)이 기록하..

blog.daum.net

 

 

[9] 옹주(雍州)의 치수(治水)와 부세(賦稅)  

 

   黑水西河惟雍州(흑수서하유옹주) 

   흑수(黑水)와 서하(西河) 사이가 옹주(雍州)이다.

   弱水旣西(약수기서) 

   약수(弱水)를 서쪽으로 흐르게 하고,

   涇屬渭汭(경속위예) 

   경수(涇水)를 모아 위수(渭水)가 굽이치는 곳으로 흘러 들게 하였다.

   漆沮旣從(칠저기종) 灃水攸同(풍수유동)

   칠수(漆水)와 저수(沮水)를 유통시키고, 풍수(灃水)도 위수로 합쳤다.

   荊岐旣旅(형기기려)  

   형산(荊山)과 기산(岐山)을 정리하고,

   終南惇物(종남돈물)

   종남산(終南山)과 돈물산(惇物山)을 거쳐,

   至于鳥鼠(지우조서) 

   조서산(鳥鼠山)까지 이르게 되었다.

   原隰底績(원습저적) 至于豬野(지우저야)

   평원과 진펄에서 공을 이루고, 저야호(豬野湖)까지 다스렸다.

   三危旣宅(삼위기댁) 

   삼위산(三危山) 지방도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되어,

   三苗丕叙(삼묘비서) 

   삼묘족(三苗族)도 크게 질서가 잡혔다. 

   厥土惟黃壤(궐토유황양) 

   그곳의 흙은 누렇고 부드러웠으며,

   厥田惟上上(궐전유상상) 厥賦中下(궐부중하)

   그 밭은 상상(上上)의 1등인데, 부세(賦稅)는 중하(中下)의 6등이었다.

   厥貢惟球琳琅玕(궐공유구림랑간) 

   공물은 옥경(玉磬)의 옥(玉) 구슬과 푸른 옥과 옥돌이었다.

   浮于積石(부우적석) 

   그들은 적석산(積石山) 기슭에서 배를 띄우면,

   至于龍門西河(지우룡문서하) 

   용문산(龍門山) 서하(西河)에 이를 수 있었고,

   會于渭汭(회우위예) 

   위수(渭水)가 굽이치는 북쪽에 이를 수 있었다.

   織皮(직피) 

   짐승의 털가죽으로 짠 융단은,

   崑崙析支渠搜(곤륜석지거수) 

   곤륜(崑崙)과 석지(析支)와 거수(渠搜) 지방에서 났으며,

   西戎卽叙(서융즉서) 

   이들 서융(西戎)도 잘 다스려져 질서가 잡혔다. 

 

    *옹주(雍州)는 지금의 섬서성(陝西省)과 감숙성(甘肅省)에 해당하며,

지금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곳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곳을 수천 년 전에 우(禹)가 개발하였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우(禹)는 9주(九州)의 물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안주 시킨 사실을 차례로 더듬어 보았다.

미 서술한바 있거니와, 옛날 중국의 홍수는 매우 극심하여 백성들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거의 해마다 황하가 범람하였고 물길을 바꾸면서 천하를 휩쓸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물길을 우(禹)가 천신만고 끝에 다스려 백성들을 안주시키니,

자연 민심은 우(禹)에게로 쏠리게 되었고,

순임금이 재위를 물려 주려고 할 때 고요(皐陶)를 천거하였으나, 

순임금은 이를 받아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 아홉 절에서 치산치수의 공적은 물론 이려니와,

여러 옥구슬에서 그 당시의 조각술(彫刻術)을 엿볼 수가 있고,

여러금속으로 제련술(製鍊術)이 발전했음을 알수가 있다.

당시의 문명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늘날에 와서 그 정교함을 자랑하는 수많은 공예품들이 이미 수천년 전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