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鄭圃隱非徒理學節誼冠于一時。其文章豪放傑出。在北關作詩曰。

정포은[정몽주]은 한갓 성리학뿐만 아니라 절의도 한세상에 뛰어났으며, 그 문장도 호방하고 걸출하였다.

그가 북관에 있으면서시를 지었다.

定州重九登高處。 정주중구등고처。

依舊黃花照眼明。 의구황화조안명。

浦漵南連宣德鎭。 포서남련선덕진。

峯巒北倚女眞城。 봉만북의녀진성。

百年戰國興亡事。백년전국흥망사。

萬里征夫慷慨情。만리정부강개정。

酒罷元戎扶上馬。주파원융부상마。

淺山斜日照行旌。천산사일조행정。

정주에서 중굿날 높은 곳에 오르니

국화는 예전과 같이 눈 앞에 비쳐오네

개펄은 남쪽으로 선덕진과 이어지고

묏부리는 북쪽으로 여진성에 기대있네

백년 나라싸움의 흥망하던 일 만리길

나그네에게도 감개스럽게 느껴지네

술자리 끝내고 원수를 붙들어 망에 올리니

낮은 산에 기운해가 깃발을 비추네

音節跌宕。有盛唐風格。

음절이 질탕하여 성당의 풍격이 있다.

又曰。

또,

風流太守二千石。 풍류태수이천석。

邂逅故人三百杯。 해후고인삼백배。

풍류태수는 이천 석의 높은 벼슬

뜻밖에 친구를 만나 삼백 잔 술을 마시네

又曰。

또,

客子未歸逢燕子。 객자미귀봉연자。

杏花纔落又桃花。 행화재락우도화。

나그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제비는 벌써 돌아오고

살구꽃 막 떨어지자 복사꽃 또 피네

又曰。

또,

梅窓春色早。매창춘색조。

板屋雨聲多。판옥우성다。

매화 핀 창가에는 봄빛이 이르고

판자 지붕에는 빗소리 더욱 크네

皆翩翩豪擧。類其人焉。

싯귀들도 모두 훨훨 나는 듯하니, 마치 시를 지은 그 사람과 같다.

圃隱詩。

포은이 지은 시에 아래 작품도 있다.

江南女兒花揷頭。 강남녀아화삽두。

笑呼伴侶游芳洲。 소호반려유방주。

盪槳歸來日欲暮。 탕장귀래일욕모。

鴛鴦雙飛無恨愁。 원앙쌍비무한수。

강남의 여자아이가 머리에 꽃을 꽂고

웃음 띠고 제짝 부르네 화초로 덮인 물가에서 노니네

상앗대를 씻고서 돌아오려니 날도 저물어가네

원앙도 쌍으로 나니 내 시름 끝이 없어라

風流豪宕。輝映千古。而詩亦酷似樂府

풍류가 호탕하여 천고애 빛났으며, 시 또한 악부와 거의 비슷하다.


15.元送孼僧來也。擧國震駴。

원나라에서 얼승을 보내왔을 때, 온 나라가 깜짝 놀랐다.

我太祖以偏師大破之。德興遁去。玄陵賞其功。

우리 태조께서 적은 군사로 그들을 크게 깨뜨려 덕흥이 달아나자, 현릉이 그 공을 칭찬하였다.

凱還。命文靖及太祖幷參大政。

이기고 돌아오자, 문정공[이색의 시호] 및 태조에게 함께 대정에 참여토록 명하였다.

宣麻之日。玄陵喜謂左右曰。

임명하던 날에 현릉이 기뻐하여, 옆에 모시고 섰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文臣用李穡。武臣用李某。予之用人如何。

“문신으로는 이색을 쓰고, 무신으로는 이모를 썼으니 나의 사람 기용이 어떠한가?”

太祖與文靖交甚厚。請以軒名。

태조는 문정공과 매우 깊이 사귀었는데, 어느 날 당호를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文靖以松軒命之。而作說以勖之。又著桓祖碑文。

그래서 문정이 송헌이라고 이름지어 주었으며 그 호를 설명하는 글까지 지어서 권장하였다.

문정은 또 환조의 비문까지도 지어 주었다.

後文靖流竄于外。子種學種善俱遠謫。

그 뒤에 문정이 외방으로 귀양가고, 그의 아들 종학과 종선까지도 모두 멀리 귀양갔다.

而門人鄭摠,鄭道傳反攻之。不遺餘力。

게다가 그의 제자였던 정총과 정도전까지도 그를 공격하여, 남은 힘마저 없게 하였다.

公作詩曰。

이 때 공이 지를 지었는데,

松軒當國我流離。 송헌당국아류리。

夢裏何曾有此思。 몽리하증유차사。

二鄭況聞參大議。 이정황문참대의。

一家完聚更何時。 일가완취경하시。

송헌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자 나는 떠돌아다니네

일찍이 꿈속에선 어찌 이런 생각해 보았겠느냐?

하물며 정씨 두 사람까지도 대정에 들어갔다고 하니

다시 어느 때에 가서야 한 가족이 다모이랴


13.李文靖昨過永明寺之作。不雕飾不探索。偶然而合於宮商。詠之神逸。

이문정공이 영명사를 지나며 지은 시는 꾸미지도 않고 애써 찾아낸 것도 아니지만 우연히 가락에 어울렸고, 읊조린 것이 뛰어나게 신묘하였다.

許穎陽見之曰。

你國亦有此作耶。

허영양이 보고서,

“너의 나라에도 이런 작품이 있었느냐” 물으니,

其浮碧樓大篇。其曰。

그가 부벽루 큰 현판에 적은 시 가운데,

門端尙懸高麗詩。 문단상현고려시。

當時已解中華字。 당시이해중화자。

문 끝에 아직도 고려 때의 시를 걸어 놓으니,

그때에 벌써 중국의 글자를 알고 있었네.

者。

라고 한 것은

雖藐視東人。亦服文靖之詩也。

비록 우리나라 사람을 깔보고 쓴 글이지만, 또한 문정공의 시에 탄복한 것이다.

14. 文靖入元。中制科應奉翰林。

문정공이 원나라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고, 응봉한림이 되었다.

歐陽圭齋 玄虞道園 集 輩皆推 奬之。

규재 구양현․ 도원 우집 등의 무리들이 모두 그를 받들어 칭찬했다.

圭齋嘆曰。吾衣鉢當從海外傳之於君也。

규재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 나의 옷과 바리는 마땅히 바다 바깥 나라로 나가서, 자네에게 전해 주어야겠네”

其後文靖困於王氏之末。流徙播遷。門生故吏。皆畔而下。

그뒤 고려 왕조 말엽에 문정공은 어려움을 겪었다.

귀양을 가기도 하고 벼슬자리가 마구 옮겨지기도 하니, 제자와 벗들이 모두 그에게서 멀어졌다.

石公嘗作詩曰。

그래서 하석공이 일찍이 시를 지었다.

衣鉢當從海外傳。 의발당종해외전。

圭齋一語尙琅然。 규재일어상랑연。

近來物價俱翔貴。 근래물가구상귀。

獨我文章不直錢。 독아문장불직전。

옷과 바리를 마땅히 해외로 전하겠다던

규재의 한 마디 아직도 낭랑한데

요즘 들어 물가는 모두 뛰어 올랐지만

유독 나의 글솜씨만은 돈 값어지가 안 나가네.

蓋自傷其遭時不淑也。

대개 때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여, 스스로 슬퍼하는 것이다.


11. 人言崔猊山悉抹益齋詩卷。只留

사람들이 말하길,

“최예산[최행귀]이 익재의 시권을 모두 버리고, 다만

紙被生寒佛燈暗。 지피생한불등암。

沙彌一夜不鳴鍾。 사미일야불명종。

應嗔宿客開門早。 응진숙객개문조。

要見庭前雪壓松。 요견정전설압송。

종이 이불 덮으니 몸이 차갑고 등불도 어두운데,

어린 중은 밤새도록 종을 울리지 않네

문 일찍 연다고 잠자던 나그네 응당 꾸짖을 테지만

암자 앞에 눈 덮인 소나무는 꼭 보아야만 하겠네

益齋大服以爲知音。此皆過辭也。益齋詩。好者甚多。

익재가 크게 탄복하면서 그를 지음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말이고, 익재의 시 가운데 좋은 것이 많다.

和烏棲曲及澠池等古詩。俱逼古。諸律亦洪亮。

그가 지은 화오서곡이라든가 민지와 같은 고시는 모두 옛 가락에 가깝고, 운율 또한 매우 밝다.

至於小作詠史

작은 작품으로 사기를 읊조린 시에,

誰知鄴下荀文若。 수지업하순문약。

永愧遼東管幼安。 영괴료동관유안。

업 땅의 손문약을 누가 알아 주겠나?

요동 땅의 관유안에게 길이 부끄러울 뿐이다.

不解載將西子去。 불해재장서자거。

越宮還有一姑蘇。 월궁환유일고소。

서자를 싣고서 가지 않았더라면,

월나라 궁궐엔 아직도 서시가 있었을 텐데

劉郞自愛蠶叢國。 류랑자애잠총국。

故里虛生羽葆桑。 고리허생우보상。

유랑은 스스로 잠총의 나라를 사랑했는데

고향 땅에는 헛되게 일산같은 뽕나무가 생겼구나

此等作俱入窾發前人未發者。烏可小看。

와 같은 것들은 옛사람들이 나타내지 못한 것을 말한 글들이니, 어찌 작게만 보아넘길 수 있겠는가?

此亦英雄欺人。不可盡信。

이것도 또한 영웅이 사람을 속인 것이라, 모두 믿을 수 없네.

12. 益齋婦翁。卽菊齋公也。夫婦享年九十四。而夫人先公卒。公輓其婦翁詩一聯。

익재[이제현]의 장인은 곧 국재공이다. 부부가 여든네 해를 세상에서 살았는데, 부인이 먼저 죽었다. 국재공까지 죽자, 익재가 그를 위해 만장을 지었다.

姮娥相待廣寒殿。 항아상대광한전。

居士獨歸兜率天。 거사독귀두솔천。

항아가 광한전으로 먼저 가서 기다리는데

거사는 홀로 도솔천으로 돌아갔다네.

權公喜佛。以樂天兜率比之。不妨姮娥竊藥。自古詩人例於煙火中。喩其仙去。用之於妻母。似亦不妥。

권공이 불도를 좋아하였으니, 도솔천으로 비유하여도 거리낄 것이 없다. 그러나 항아가 약을 훔쳐 갔다는 것은 예부터 시인이, 화식하던 사람이 신선으로 되어갔을 때에 비유하는 말이다. 이것을 그의 장모에게다 끌어 쓴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