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의 이 초상화는 연암의 손자 박규수 작품]
《과정록》(過庭錄, 1826) : 차남 박종채가 쓴 박지원 평전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http://kydong77.tistory.com/5411
박지원 년보
http://kydong77.tistory.com/8093
[주]특기사항을 표시하여 다시 읽어본다.
연암 박지원 년보
http://ko.wikipedia.org/wiki/%EB%B0%95%EC%A7%80%EC%9B%90_%EC%97%B0%EB%B3%B4
박지원/ 방경각외전 자서
http://kydong77.tistory.com/8092
이가원/열하일기 해제
http://kydong77.tistory.com/2356
연암소설
①初期九傳; 방경각외전 (放璚閣外傳) 自序(연암집 권8)
방경각외전에는 단편소설 9편 수록
마장전,
http://kydong77.tistory.com/7940
예덕선생전,
http://kydong77.tistory.com/7937
민옹전,
http://kydong77.tistory.com/7936
광문자전,
http://kydong77.tistory.com/7935
양반전,
http://kydong77.tistory.com/8091
http://kydong77.tistory.com/7934
김신선전,
http://kydong77.tistory.com/7933
우상전
http://kydong77.tistory.com/7932
(역학대도전,봉산학자전 二篇은 焚失)
http://kydong77.tistory.com/7931
②中期二篇;(연암집 권11~15, 別集 熱河日記 수록)
호질(권12 關內程史),
http://kydong77.tistory.com/8090
호질 후지
http://kydong77.tistory.com/7963
호질 김택영 발문
http://kydong77.tistory.com/7962
허생전(권14,玉匣夜話)
http://kydong77.tistory.com/8089
옥갑야화
http://kydong77.tistory.com/7961
허생후지1
http://kydong77.tistory.com/7960
.허생후지[진덕재야화] Ⅱ
http://kydong77.tistory.com/7959
③後期一篇; 열녀함양박씨전(권1, 연상각선본)
http://kydong77.tistory.com/7930
박지원/ 회우록서
http://kydong77.tistory.com/7939
박지원/ 原士
원사(原士) -선비란 무엇인가?
http://kydong77.tistory.com/7938
http://kydong77.tistory.com/17758 /재수록
[추가]
위키백과
박지원 (1737년)
http://ko.wikipedia.org/wiki/%EB%B0%95%EC%A7%80%EC%9B%90_%EC%97%B0%EB%B3%B4
목차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8093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목차
- 1 생애
- 1.1 생애 초반
- 1.2 청년기
- 1.3 학문 연구와 정치 활동
그는 노론임에도 열하와 베이징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청나라와 서구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서구의 문물과 청나라의 기술 중 성곽 축조, 제련 기술 등을 적극 받아들여야 된다고 주장하였고, 상행위를 천시할 것이 아니라 상행위와 무역을 적극 장려하고 무역항을 개설해야 한다는 것과 화폐를 이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수많은 동지들을 규합하고 문하생을 길러내 노론당 내에서도 북학파라는 학파/정파를 형성하였다.
그는 문하생에도 양반, 중인, 서자를 차별하지 않고 학문을 배우려는 자를 모두 받아들였다. 그는 서얼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며 능력과 실력에 따른 균등한 인재 등용을 주장하였다.
서류(서자)들을 금고하는 것은, 옛날의 법에서 상고해 보건대 그런 법이 없으며, 예률(禮律)에서 상고해 보건대 근거할 바가 없습니다. 이것은 국초에 좀스러운 신하가 기회를 틈타 앙갚음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 본디 개국했을 때 정한 제도가 아닙니다. 1백 년 뒤에 선묘(宣廟)께서 비로소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허락하였고, 인묘(仁廟) 때에 미쳐서 또 삼조(三曹)에 허통시켰습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열성조에서 고치고 변통한 성대한 뜻을 단연코 알 수가 있습니다.그는 선대에 조광조, 이이, 송시열이 서자들도 요직에 쓸 것을 건의했던 점을 계속 지적, 상소하여 서자들에게도 관직에 나갈 길을 줄 것과 실력에 따른 인재 등용을 주장하였다. 서얼 차별에 대해 그는 '서자를 금고하는 것은 왕조를 세운 초기에 어떤 좀스런 신하가 기회를 타서 앙갚음한데 지나지 않는다.'며 서얼을 차별할 이유가 없다고 부르짖었다. 또한 평민에게는 과거 응시 자격이 주어졌지만 과거에 응시할 수 없는 환경을 지적하여 평민들에게도 과거를 보도록, 나라에서 서당에 보낼 것을 역설하였다.
-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당대 양반 계층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 그는 기존의 시와 부, 문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썼다.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자신이 청나라나 일본을 다녀오고 그 당시 본 장면과 풍경을 그대로 기술하였다. 죽은 누나의 행장을 쓸 때는 부덕이나 현모양처임을 강조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어린 시절 자신이 누나에게 서운한 일이 있어, 누나의 화장품에 먹물을 타서 장난친 일 등을 기록하였다.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은 수필과 각종 글을 발표하였고, 글씨체 역시 기존의 서체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지었다.
-
1791년(정조 15년)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안의 현감으로 내려간 연암 박지원이 부임 첫날 지역 터줏대감들과 술자리에 앉았다.[8] 토호들은 그에게 놀이나 하나 하자며 엉뚱하게도 글짓기 경연(競演)을 시작한다. 벌칙은 술, 운자(韻字)는 '지'였다. "술술 잘 넘어가는 안의 막걸리/안주도 좋아라. 황석산 멧돼지." "촌사람 섣불리 보지 마소/ 안의 사람들 정말 무섭지" "아무리 짝사랑이라도 목은 왜 매나/ 벗겨나 보든지 한 번 대어나 보고 죽지[8]" 그를 보기좋게 길들이려던 토호들은 오히려 그에게 골탕을 먹었다고 한다.
안의현감 부임 직후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직접 응하지는 않았다.[5] 1792년 다시 정조가 문체반정을 명하며 남공철(南公轍)을 다시 보내 통해 순정문(醇正文)으로 지을 것을 명하다. 이에 남공철에게 속죄하는 내용의 답서를 보냈는데 정조가 그의 편지를 보고 문장에 감탄하였다.
1796년 지방관 임기 만료로 안의현감에서 물러나 한성부로 상경하였다. 이때 친구 유언호(兪彦鎬)의 부음을 듣고 그의 장레를 치루었으며, 한성부 계산동에 벽돌로 초당을 짓고 총계서숙(叢桂書塾[9])이라 이름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총계서숙은 그가 죽은 뒤에도 1830년대에까지 북학파 학자들이 후학을 양성하였다.
1796년 제용감주부, 의금부도사, 의릉령(懿陵令)이 되고, 1797년(정조 21년) 7월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1793년 정조는 그에게 《열하일기》로 잘못된 문체를 퍼뜨린 잘못을 속죄하라고 하교하였다. 박지원은 정조의 거듭된 경고에 이에 '답남직각공철서 (答南直閣公轍書)'를 썼다. 왕의 문책을 받은 처지로 새로 글을 지어, 글로써 만든 과거 잘못을 덮으려 하는 것은 오히려 누가 되는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덕무가 죽자, 정조는 그에게 지시하여 행장을 짓도록 하여 '형암 행장 (炯菴行狀)'을 썼다. 그해 이덕무의 유고집을 간행하는데 참여하였다.
- 2 사상과 신념
- 3 문학 세계
- 4 인물평
- 5 가족 관계
- 6 주요 저서와 관련서
- 7 평가
- 8 기타
- 9 함께 보기
- 10 참고 자료
- 11 각주
- 12 바깥고리
참고 자료[편집]
- 박희병, 《연암을 읽는다》. 돌베게. 2006년. ISBN 89-7199-237-9
- 최정동,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 푸른역사. 2005년. ISBN 89-91510-10-8
- 김지용, 《연암 박지원의 이상과 그 문학》. 명문당. 2005년.
- 박수밀, 《박지원의 미의식과 문예이론》. 태학사. 2005년.
-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2003년.
- 이현식, 《박지원 산문의 논리와 미학》. 이회문화사. 2002년.
- 김혈조, 《박지원의 산문문학》.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2년.
- 김지용,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 조선조 근대화의 기수》. 한양대학교출판부. 2000년.
- 강혜선, 《박지원 산문의 고문 변용 양상》. 태학사. 1999년.
- 김명호, 《열하일기 연구》. 창비. 1990년.
- 간호윤, 《개를 키우지 마라》. 경인문화사, 2005년.
- 김영동, 《박지원 소설연구》. 태학사, 1988년.
- 김영동, 증보《박지원 소설연구》. 태학사, 1993년.
[포스트 추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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