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李益之少時學杜詩於湖陰。一日命取架上諸書看之。

이달(李達)은 어릴 적에 두시(杜詩)를 호음(湖陰)에게 배웠는데 하루는 이달에게 서가 위의 여러 책을 가져오도록 명했다.

到春亭集擲之地。梅溪集則展看笑掩之。蓋輕之也。

그리하여 호음이 그것을 보니, 《춘정집(春亭集)》이 나오니 땅에 던져버렸고, 《매계집(梅溪集)》은 펴보고 웃으며 덮었는데 대개 가볍게 여긴 것이었다.

唯取佔畢集。熟看不已。

오직 《점필재집(佔畢齋集)》만은 집어들고 익히 보기를 마지않았다.

覘之則悉自批抹。蓋好之而取材爲料也。

그를 엿보니, 모두 뽑아서 줄을 그으니 대개 그들을 좋아하여 소재로 취해 시의 자료로 하려는 것이었다.

嘗問平生得意句則曰。

언젠가 평생에 가장 마음에 만족하게 여기는 시구를 물었더니,

山木俱鳴風乍起。산목구명풍사기。

江聲忽厲月孤懸。강성홀려월고현。

산 나무 함께 우니 바람 언뜻 일어나고

강물 소리 문득 높았는데 달이 홀로 걸렸네

人以爲峭麗。

라는 구절을 사람들이 깎은 듯 아름답다고들 하고,

峯頂星搖爭缺月。 봉정성요쟁결월。

樹顚禽動竄深叢。 수전금동찬심총。

산꼭대기에 깜빡이는 별은 조각달과 빛을 다투고

나무 위에 움직이는 새는 깊은 떨기에 숨는고야

亦巧思。

라는 시구 역시 시상(詩想)은 교묘하지만

而終

마침내,

雨氣壓霞山忽暝。우기압하산홀명。

川華受月夜猶明。천화수월야유명。

비의 기운 노을 눌러 산은 문득 어두워지고

냇물빛은 달을 받아 밤에도 밝구나

不若 似有神助也。

라 한 구절보다는 못하니, 이는 마치 신이 도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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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湖陰黃山驛詩曰。

호음 정사룡의 황산역시(黃山驛詩)는

昔年窮寇此殲亡。석년궁구차섬망。

鏖戰神鋒繞紫芒。오전신봉요자망。

漢幟豎痕餘石縫。한치수흔여석봉。

斑衣漬血染霞光。반의지혈염하광。

商聲帶殺林巒肅。상성대살림만숙。

鬼燐憑陰堞壘荒。귀린빙음첩루황。

東土免魚由禹力。동토면어유우력。

小臣摸日敢揄揚。소신모일감유양。

지난날 쫓긴 왜구 이곳에서 섬멸할 때

혈전 벌인 신검(神劍)에는 붉은 빛깔 둘렸다네

한(漢)의 깃대 꽂힌 흔적 돌 틈에 남아 있고

얼룩진 옷 적신 피는 노을빛을 물들이네

소슬바람 살기 띠어 수풀 뫼는 엄숙하고

도깨비불 음기 타니 성루는 황량하네

동방 사람 어육(魚肉) 면킨 우(禹) 임금의 덕일진댄

소신(小臣)이 해를 그려 어찌 감히 칭찬하리

奇傑渾重。眞奇作也。

기걸(奇杰)하고 혼중(渾重)하니 참으로 훌륭한 작품이다.

浙人吳明濟見之。批曰。

절강(浙江)의 오명제(吳明濟)가 이 시를 보고 비평하기를,

爾才屠龍。乃反屠狗。惜哉。蓋以不學唐也。然亦何可少之。

"그대의 재주는 용을 잡을 만한데 도리어 개를 잡고 있으니 애석하다."고 했는데 대개 당시(唐詩)을 배우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찌 그를 작게 평가할 수야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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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鄭湖陰少推伏。只喜訥齋詩。

호음 정사룡(鄭士龍,1491-1570)은 굴복하는 경우가 적었고 다만 눌재 박상(朴祥, 1475-1530)의 시를 좋아하였다.

嘗書

일찍이 [벽에] 쓰기를,

西北二江流太古。 서북이강류태고。

東南雙嶺鑿新羅。 동남쌍령착신라。

서북의 두 강은 태고부터 흘러오고

동남의 두 봉우리 신라(新羅)를 파고 드네

彈琴人去鶴邊月。 탄금인거학변월。

吹笛客來松下風。 취적객래송하풍。

거문고 타는 사람이 가니 학이 달을 비껴 날아가고

피리 부는 나그네 오니 소나무 아래로 바람이 불어오네

之句於壁上。自嘆以爲不可及。

라는 시구를 써서 벽에 놓고, 스스로 탄식하며 미칠 수 없다고 여겼다.

又云許宗卿有

또 이르기를, "허종경(許宗卿)의 시에,

野路欲昏牛獨返。 야로욕혼우독반。

江雲將雨燕低飛。 강운장우연저비。

들길이 저물어 오는데 소는 홀로 돌아오고

강 구름이 장차 비오려 하니 제비가 낮게 나네

之句。可與姜木溪

라는 구절은 목계 강혼(姜渾)의,

紫燕交飛風拂柳。

靑蛙亂叫雨昏山。

자주빛 제비 어지러이 날자 바람은 버들 스치고

청개구리 시끄럽게 울자 비 오는 산은 날이 저무네

之語。相當也。

이라 한 시구와 서로 대적할 만하다."고 했다.

其時稱申企翁衆體皆具。而湖陰獨善七言律。似不及焉。

그 당시 '기재 신광한의 시는 중체(衆體)를 모두 갖추었으나 호음 정사룡은 칠언율시에만 능했으니 그에게 못 미칠 것 같다.'고들 했는데,

湖陰曰。渠之衆體。安敢當吾一律乎。其自重如此。

정사룡은 '그의 중체가 감히 내 율시 한 구를 당할소냐.' 했으니 그의 자부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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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我朝詩。至中廟朝大成。

국조(國朝)의 시는 중종조(中宗朝)에 이르러 크게 성취되었다.

以容齋相倡始。而朴訥齋祥,申企齋光漢,金冲庵淨,鄭湖陰士龍。竝生一世。炳烺鏗鏘。足稱千古也。

용재 이행 상공(相公)이 시작을 열어 눌재(訥齋) 박상(朴祥)ㆍ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ㆍ충암(冲庵) 김정(金淨)ㆍ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이 일세(一世)에 나와 휘황하게 빛을 내고 금옥(金玉)을 울리니 족히 천고(千古)에 칭할 만하게 되었다.

我朝詩。至宣廟朝大備。

국조의 시는 선조조(宣祖朝)에 이르러서 크게 갖추어지게 되었다.

盧蘇齋得杜法。而黃芝川代興。崔,白法唐而李益之闡其流。

소재 노수신(盧守愼,1515-1591)은 두보(杜甫)의 법을 깨쳤는데 황정욱(黃廷彧,1532-1607))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은 당(唐)을 본받았는데 이달이 그 흐름을 밝혔다.

吾亡兄歌行似太白。姊氏詩恰入盛唐。其後權汝章晩出。力追前賢。可與容齋相肩隨之。猗歟盛哉。

우리 망형(亡兄)[許筬]의 가행(歌行)은 이태백(李太白)과 같고 누님의 시는 성당(盛唐)의 경지에 접근하였다. 그 후에 권필(權)이 뒤늦게 나와 힘껏 전현(前賢)을 좇아 이행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니 아,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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