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은 문장가, 시인 등의 시부(詩賦)를 나타낸 것으로, 명문장을 찬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과시(科試)의 고시관이었던 금의(琴儀)에 의해 배출된 많은 제자들의 시(詩), 부(賦)를 찬양함으로써 신진(新進) 사류(士類)들의 당당한 기개를 엿보는 듯하다. 특히, 끝 구절 ‘위 날조차 몃부니잇고’는 자만에 넘치는 기개라 할 수 있으며, 당시 상층 문인들의 의식 세계를 엿보는 듯하다.
고려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유생들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경기체가. 8장. <고려사>․<악장가사> 모두에 고종 때 한림의 제유(諸儒)가 지은 작품이라 한 것으로 보아 <한림별곡> 제1장에 나타나는 8명의 문인들이 지은 듯하다.
창작 연대는 1215(고종 2)~16년경으로 추측되는데 1215년 5월 궁에서 최충헌에 의해 추천희가 열렸다고 한 것과 <한림별곡>의 마지막 장이 추천 광경을 읊은 것을 맞추어 보면 그 시기와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제1장에는 유원순․이인로․이공로․이규보․진화․유충기․민광균․김양경의 장기인 창작 분야를 노래했고, 제2장에서는 서적(書籍), 제3장에서는 글씨, 제4장에서는 술, 제5장에서는 꽃, 제6장에서는 음악, 제7장에서는 경치, 제8장에서는 여럿이 그네를 띄우며 즐겁게 노는 정경을 노래했다.
이 노래에는 질탕하게 노는 내용이 많은데 이것은 퇴폐적이기보다는 새롭게 성장해 가는 신진사대부들의 득의에 찬 기상을 그려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사의 기본 음수율은 3․3․4로 별곡체(別曲體)라는 독특한 음률과 구법을 가지고 있다. 이 노래가 이루어진 근원이나 동기에 대해서는 중국의 사악(詞樂)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속악(俗樂)의 선율이 변주곡 형태를 띤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 뒤 안축(安軸)의 <관동별곡(關東別曲)>․<죽계별곡(竹溪別曲)> 등의 경기체가가 나왔고 조선 초기에도 많은 경기체가가 지어졌다. <악학궤범>․<악장가사>에 국한문 가사가 전하며, <고려사> 악지에는 한문과 이두로 우리말 부분이 삭제된 채 실려 있다.
♠ 연대 : 고려 고종 2, 3년경(1215~1216)
♠ 갈래 : 경기체가
♠ 운율 : 3음보, 3․3․4조
♠ 구성 : 전 8장의 분절체
♠ 성격 : 과시적, 향락적, 풍류적
♠ 의의 : 최초의 경기체가
♠ 출전 : 악장가사
♠ 지은이 : 한림제유
◉ 후에 儒林歌(유림가)와 戀君歌(연군가)의 형식을 낳았다는 주장도 있음.
(현실 도피도 아니고, 노장적 퇴폐사상도 아니요, 오히려 당시 가제 진사에 급등한 문인들이 최충헌, 최이 부자에게 아첨하기 위하여 지어진 것)
[은자주]김기동님은 경기체가를 속요와 대응하여 별곡체라 한다. 가사에도 '별곡'을 붙여 장르의 명칭으로는 혼란이 예견된다.
고려 때의 궁중음악인 正樂(正曲)에 대하여 별곡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翰林曲’이라 하지 아니하고 〈翰林別曲〉이라고 하게 되면서 〈翰林別曲〉을 모방한 대부분의 작품의 제목에 ‘別曲’을 붙였다. 그 개념이 후대에 혼용되기 시작하여 속요의 작품인 <청사별곡> <서경별곡>에도 사용되었고(김기동 교수는 별곡이 붙은 속요는 한림별곡 이후의 所作으로 봄), 또한 이조가사의 歌名에도〈관동별곡〉〈성산별곡〉 등 ‘별곡’의 명칭을 쓰게 된 것은 개념의 혼동이 초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상층 지배계층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상이나 향락적 기풍을 담아 퇴폐적 성격을 지닌다.
◇경기체가의 작품구조[조동일, 민요의 형식을 통해서 본 시가의 전개]
가(3) 나(3) 다(4)
라(3) 마(3) 바(4)
사(4)아(4)자(4)
위(감탄사) (차)景(3) 긔 엇더(3)하니잇고(4)
카(4)타(4)카(4)타(4)
위 (파)景(3) 긔 엇더(3)하니잇고(4)
※[가~ 자], [카~ 타]는 개별화의 원리에 따라 열거된 세계상.
[차], [파]는 개별적인 것으로 제시된 사물들을 하나의 종합적 개념으로 묶는 포괄적 개념을 나타냄. 포괄화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