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놈이 나온다 跍礏功無獂(고급공무원) 나온다. 풍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淸白吏(청백리)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헤끗헤끗, 피둥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 못해 문드러져 汚吏(오리)가 분명쿠나 산같이 높은 책상 바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功(공)은 쥐뿔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請(청)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料亭(요정)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 탈 없다더냐.
그 무렵 드라마 등 여러 방송 매체에 얼굴을 비쳐 최신간이었던 이 책이 광고 효과로 불티나게 팔렸다. 덕분에 이 책으로 이 작가를 작가로서 처음 접한 사람이 제법 있을 정도. 내용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호불호가 갈린다. 몇년 전에나 쓰던 인터넷 용어나 유머, 말장난이나 쓰는 최악의 악서라는 말도 있다. 책을 비판하는 의견에 대해서 이 작가는 총을 탓할게 아니라 총을 쏘는 포수를 탓하라고 대답했다.
다른건 둘째쳐도 분량이 너무 적고 여백의 미를 지나치게 살렸다. 결국 가격 비싸고 + 내용 적고 + 호불호가 갈리는 삼관왕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말았다. 여백이 많다는 비판에 대해 이외수는 "여백이 많아서 불만이면 이 책 대신 여백이 없는 전화번호부를 읽으세요" 라고 응수했다.
사실 이 책은 디시인사이드의 이외수 갤러리와의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등장과 낮은 평가가 모두 여기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해당 항목을 참고하면 이 책이 까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책 역시 이외수의 기인스러운 어구가 드러나 있는데, 아래는 내용 중 일부다.
나방 몇 마리 소문을 들었는지 방충망에 붙어서 방 안을 곁눈질하고 있다. 가서 놀아라. 오늘은 야동 안 본다.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는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하였던 박형국. 그는 어린시절에 광부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유복한 동생 형기를 맞이하지만 태어나서 울지도 않고 심상치 않은 운명을 타고난 아이로 알려져서 재앙덩어리로 낙인되고 그의 어머니는 두 형제를 데리고 광산촌을 떠나 동원시로 이사한다. 그 때 노승이 찾아와서 장독대에 앉아있는 형기를 보면서 송장을 만들지 않으려면 산으로 보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형기를 구박하게 되고 그런 와중에도 형기는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특이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성장하여 학교에 입학하지만 친구를 사귄 적이 없고 피라미드 같은 비과학적인 것이나 철학을 독학하는 분위기를 보인다.
형국이 육군 병장으로 복무하던 시절에 어머니가 버스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 휴가를 나오며 집으로 왔을 때 이미 형기가 어머니 제사를 치르고 보상까지 받으며 스스로 산으로 올라갔다는 쪽지를 남기고 떠나게 되자 그는 전역 후 선배로 불리는 정기문의 주선으로 곤충채집 아르바이트를 하게되고 희귀하고 아름다운 곤충들을 선배가 아는 일본인에게 파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산으로 갔다는 동생이 찾아왔는데 그의 모습은 완전히 산(山)사람이 되어서 예전 모습이 아니었지만 신비한 분위기를 보인다.
이외수가 2002년 발표한 소설. 날 때부터 한쪽 눈이 함몰된(그의 전생과 연관이 있다.) 엄친아이자 사이코패스인 전진철이라는 악역 주인공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그와 연관된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얽혀서, 전진철의 경우는 1인칭 시점으로, 주변 인물들의 경우는 대개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미평시라는 가상의 인구 분리 목적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중 서술로 추정해 보았을 때 위치는 가평군과 춘천시 사이의 어딘가로 추정된다. 전생, 사이비 종교 이야기도 나오며, 벽오금학도 등 이외수 중기의 히트작처럼 약간의 동양적 판타지 요소가 있다. 여기에 어번(urban) 판타지적인 요소를 접목시키려 했으나 평가는 벽오금학도나 칼 같은 중기 걸작에 비하면 못 미친다는 게 중론. 결말도 다소 김빠진다는 평이다.
그 무렵 드라마 등 여러 방송 매체에 얼굴을 비쳐 최신간이었던 이 책이 광고 효과로 불티나게 팔렸다. 덕분에 이 책으로 이 작가를 작가로서 처음 접한 사람이 제법 있을 정도. 내용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호불호가 갈린다. 몇년 전에나 쓰던 인터넷 용어나 유머, 말장난이나 쓰는 최악의 악서라는 말도 있다. 책을 비판하는 의견에 대해서 이 작가는총을 탓할게 아니라 총을 쏘는포수를 탓하라고 대답했다.
다른건 둘째쳐도 분량이 너무 적고여백의 미를 지나치게 살렸다.결국 가격 비싸고 + 내용 적고+ 호불호가 갈리는 삼관왕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말았다. 여백이 많다는 비판에 대해 이외수는 "여백이 많아서 불만이면 이 책 대신 여백이 없는전화번호부를 읽으세요" 라고 응수했다.
사실 이 책은 디시인사이드의이외수 갤러리와의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등장과 낮은 평가가 모두 여기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해당 항목을 참고하면 이 책이 까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책 역시 이외수의 기인스러운 어구가 드러나 있는데, 아래는 내용 중 일부다.
나방 몇 마리 소문을 들었는지 방충망에 붙어서 방 안을 곁눈질하고 있다. 가서 놀아라. 오늘은 야동 안 본다.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는다.
이외수는 오래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서 심심치 않게 각종 시사적, 정치적 발언을 남겼는데 대중적 인지도가 오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일종의 논객이 되었다. 전체적인 성향은 민족주의에 가깝고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사회적 논란과 물의를 빚어왔기 때문에 그런 그의 모습을 탐탁찮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2008년 12월 자신의 홈페이지에다가 올린 수정된 교과서-애국애족 대신 매국매족을?이라는 글에서 뉴라이트의 수정된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을 올리며 "김구 선생을 테러분자라고 가르치는 세상이 왔으니 머지않아 이순신 장군을 살인마라고 가르치는 세상도 오겠네" 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로 김구=테러리스트 논란은 물론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여부를 놓고 네티즌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후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해명을 올렸다.
강은백이란 아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도로무기소에 빠지고, 오학동이라는 선계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여러가지를 사흘간 구경하다 벽오금학도와 금학의 깃털을 얻고 머리가 센 채로 돌아온다. 강은백은 스물 세살이 되어 노파에게 구형 디지털 시계를 차여주고, 얼마 못가 계모의 계략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다. 계모에게 하사받은 한남동 한옥을 팔곤 무육점이라는 정육점을 차리다가 엄청난 화가인 고산묵월, 그때 시계를 준 노파와 함께 다시 선계로 돌아온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떨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여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러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추억을 인정하자 애써 지우려던 내 발자국의 무너진 부분을 이제는 지켜보며 노을을 맞자. 바람이 흔들린다고 모두가 흔들리도록 버려 둘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또 잊어야 했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육신의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 내 가슴에 쓰러지는 노을의 마지막에 놀라며 남은 자도 결국은 떠나야 한다.
아무도 객관적인 생각으로 남의 삶을 판단해선 안된다. 그 상황에 젖어보지 않고서 그의 고민과 번뇌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가졌던 그 숱한 고통의 시간을 느껴보지 않고서, 그누구도 비난해선 안된다. 너무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지만 그래도 가슴 아득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절망은 어쩔 수 없고 네 개의 가시로 자신은 완전한 방비를 했다면 그것은 가장 완전한 방비인 것이다
나로 인해 고통 받는 자 더욱 철저히 고통하게 해 주라. 고통으로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남이 받을 고통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닌 것은 아닌 것일 뿐 그의 고통은 그의 것이다. 그로 인해 일어난 내 속의 감정은 그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 뿐 아닌 것은 언제나 아닌 것이다 그로 인한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국은 옳은 길을 걸은 것이다.
나의 신을 볼 얼굴이 없다. 매일 만나지도 못하면서 늘 내 뒤에 서 있어 나의 긴 인생길을 따라다니며 내 좁은 이기심과 기회주의를 보고 웃으시는 그를, 내 무슨 낯을 들고 대할 수 있으리.
부끄러움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지만 자랑스레 내어 놓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기에 좀더 살아 자랑스러운 것 하나쯤 내어 보일 수 있을 때가 되면 자신있게 신을 바라보리라 지만, 언제가 되어질지는, 아니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겠기에 <나>가 더욱 작게 느껴지는 오늘 나를 사랑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나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시행착오에 대한 질책으로 어두운 지하 심연에 영원히 홀로 있게 된대도 그 모두 나로 인함이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리 내 사랑하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 유황부에 타더라도 웃으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있는 그 어디에도 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벅찬데 나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든 신의 또다른 뜻은 무엇일까
보고 싶은 마음을오래 참으면별이 된다고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하늘이유난히 맑다. 늘상 시행착오 속에 살면서나를 있게 해 준 신이나에게 원하는 게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숱한 밤을 밝혀도아직도 나는나의 얼굴을 모르고 있다.
2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역에서그냥 그렇게자신을 속이고 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지만발길을 막고 서 있는 건내 속에나 혼자 있는 게아니기 때문인가새로운 자리를 찾아나서는풀씨들만큼 충실한씨앗이 되지 못했다. 그리움이 익으면별이 된다고내 속에서 빛나는 건 미처 못 지운절망의 아픔들만아직도 눈을 뜨고 있다.
3
노래가 질펀한 거리를그대는 걷고 있다.시간은 내 속에 정지해 있고어쩌면 눈물만이 아프다. 혼자 불끄고 누울 수 있는용기가언제쯤이면 생겨날 수 있나모든걸 이해하고용서할 수 있을 때가나에게 있을까. 잊음조차 평온함으로 와 닿을 때아,나의 흔들림은이제야 끝났는가.
4
내가 준 고통들이지금 내가 안고 궁그는 아픔보다더 크고,그럴지라도그 맑은 미소가다시 피어나길 기도하는 것조차알량한 자기 위한일 뿐나에게 손 내밀어줄 신이정말 있을까.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숱한 다짐들이어떤 바람에도 놀라게 한다.굳건히 설 수 있을 때까진잊어야지내 속에 흐르는 강물이결국은 바다로 간다는 걸깨닫기 까지.
5
나는 여기 있는데내 마음은 어디를 다니고 있는 지아직 알 수가 없다. 아프게 살아온 날들이모두 돌아볼 수 없도록 참담하고흔들리는 인간이흔들리는 나무보다 약하다.지하도를 빠져나오는 느낌이모두 같을지라도바람부는 날홀로 굳건할 수 있다면내 속에 자라는 별을 이제는하늘로 보내 줄 수 있을텐데 아직도 쓰러져 있는그를 위해나는 꽃을 들고 있다.
6
술잔 속에서 그대가웃고 있을때, 나는노래를 부른다,사랑의 노래를,보고 싶은 마음들은언젠가 별이 되겠지그 사랑을 위해목숨 걸 때가 있다면내 아픔들은 모두 보여 주며눈물의 삶을 얘기 해야지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을 위해썩어지는 육신을 위해우리는 너무 노력하고 있다. 노을의 붉은 빛을 닮은사랑의 얼굴로이제는 사랑을 위해내가 서야 한다.서 있어야 한다.
7
안다.너의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나만은 그 아픔을느낄 수 있기에 말하지 않는다절망조차 다정할 수 있을 때그대는 나의 별이 되어라.흔들리는 억새풀이 애처롭고그냥 보이지 않는 곳에서피었다 지는 들꽃이더욱 정겹다. 그냥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사랑하기 위해 애쓰자.사랑없는 삶으로우리는 자신을 속일 수 없다내 꿈으로 뛰운 별이이제는누구의 가슴에 가 닿을지를고민하지 말아야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사슴』.1936 ; 『백석전집』. 실천문학사. 1997 )
[네이버 지식백과]백석 [白石] - 빼어난 토속어 지향, 그 시적 보고 (나는 문학이다, 2009. 9. 9., 장석주)
여우난골족
[여우 난 골族]
-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고무 고무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이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불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깎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이름 뒤에 쓴 '方'은 상대방이 전세나 하숙을 하고 있을 경우 편지 봉투의 주인 이름 뒤에 사용하는 존칭의 하나.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본명(本名)은 백기행(白夔行)이고 아명은 백기연(白夔衍, 1915년에 백기행(白夔行)으로 개명)이며 1945년 일본국 패망 및 조선국 광복 후 사실상 백석(白石)으로 개명(改名)한 그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석(石)이라는 이름은 일본 시문학가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작품을 매우 좋아하여 그 이름의 석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생애
1912년평안북도정주군에서 백시박(白時璞)과 이봉우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백시박은자가 용삼(龍三)이고 후에 백영옥(白榮沃)으로 개명했다. 백영옥이 태어난 해는 1882년으로 되어 있으나 호적 신고를 몇 년씩 미루는 당시의 관습과 후에 백석의 신상조사서에 적힌 것으로 비춰볼 때 1875년에 태어난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 기사 생활을 했던 아버지 백영옥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으나, 오산고보의 설립을 위한 건축기금을 마련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 37세에 백석을 낳은 백영옥은 그를 귀하게 여겼다. 어머니 이봉우는 1888년생으로, 24세에 서울에서 시집을 왔다. 백석의 외조부 이양실과 그의 기생 출신 첩 사이에서 태어난 만큼, 나이 차가 많은 백영삼과 결혼했다. 그 시절 당시 결점(어머니가 아버지의 첩인 여성의 경우 등)이 있는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성과 결혼하는 것은 일반적인 특정 풍조였다.[2]그러나 어머니 이봉우는 매사에 정결하고 음식 솜씨가 뛰어나오산학교교장조만식은 자주 백석의 집에서 하숙을 했다. 조만식은 아버지 백영옥과 친분이 있었고조선일보를 운영했던방응모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후에 백영옥이 하숙집을 시작할 때 백석 가족은 오산학교 앞쪽의 집으로 이사해 살았다.[3]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후에 일본에서 1934년아오야마 가쿠인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하였다. 1934년 5월 16일자 《조선일보》에 산문 〈이설(耳說) 귀고리〉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가와 번역가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1월 20일에는 그간 《조선일보》와 《조광》(朝光)에 발표한 7편의 시에, 새로 선보이는 26편의 시를 보태어 시집 《사슴》을 당시 경성부 통의동(通義洞)에서 자비로 100권 출간했다. 이후 1948년 《학풍》(學風) 창간호(10월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을 내놓기까지 60여 편의 시를 여러 잡지와 신문, 시선집 등에 발표했으나 정작 시인 자신은 《사슴》 외에는 시집을 더 이상 출간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백석은 작품에 평안도 방언을 비롯하여 여러 지방의 사투리와 고어를 사용했으며 1948년 이후 많은 활동을 하지 못했다. 백석은 당시의 조선 땅(오늘날의 남북한)과만주일대를 유랑하며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시는 한민족의 공동체적 친근성에 기반을 두었고 작품의 도처에는 고향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이 담겨 있다.
남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시인이라는 이유로 백석 시의 출판이 금지되었으나 1987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 이후로 백석의 많은 작품들이 활발히 소개되고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주목받고 평가되고 있다. 평북 지방을 비롯한 여러 지방의 사투리와 사라져가는 옛것을 소재로 삼아 특유의 향토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뚜렷한 자기 관조로 한국모더니즘의 또다른 측면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64년경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한때 대한민국과 일본에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연구 결과 1996년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요 작품
《사슴》: 1936년 1월 20일 자가본(自家本)으로 발행한 시집이다.
《사슴》에는 총 33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1부 ‘얼럭소새끼의 영각’에 〈가즈랑집〉·〈여우난곬족(族)〉·〈고방〉·〈모닥불〉·〈고야〉(古夜)·〈오리 망아지 토끼〉 등 6편,
2부 ‘돌덜구의 물’에 〈초동일〉(初冬日)·〈하답〉(夏畓)·〈주막〉(酒幕)·〈적경〉(寂境)·〈미명계〉·〈성외〉 등 9편,
3부 ‘노루’에 〈산비〉·〈쓸쓸한 길〉·〈머루밤〉·〈노루〉 등 9편이 실려 있다.
4부 ‘국수당 너머’에 〈절간의 소이야기〉·〈오금덩이라는 곳〉·〈정주성〉(定州城)·〈통영〉(統營) 등 9편이 각각 실려 있다.
《사슴》의 판권지 상단에는 ‘詩集(시집) 사슴 百部 限定版 定價 二圓(100부 한정판 정가 2원)’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그 하단에는 ‘著作兼 發行者 白石(저작 겸 발행자 백석)’이라고 되어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8년에 발표한 시로 현실을 초월한 이상, 사랑에 대한 의지와 소망을 노래한 작품이다.
〈서행시초〉(西行詩抄): 1939년 《조선일보》에 재입사한 백석이 4회에 걸쳐 발표한 연시로 자신의 고향인 평안도를 여행하면서 발표한 작품이다.
〈팔원〉(八院): 연시 〈서행시초〉(西行詩抄)의 세 번째 시인 〈팔원〉은 승합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던 도중 차에 오르는 ‘나이 어린 계집아이’의 모습을 보고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한국 민족의 비극적 삶을 떠올리며 이를 형상화한 내용이다. 승합자동차 안팎의 상황을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남행시초〉(南行詩抄): 《조선일보》에 4회에 걸쳐 발표한 연시로 경상남도 통영, 고성, 창원, 사천을 여행하면서 발표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