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전 -초기구전 (0) 2008.08.04

방경각외전 자서 -초기구전 (0) 2008.08.04

연암 박지원 년보 (0) 200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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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소설 포스트 정리

[연암 박지원 초상] [이 초상화는 연암의 손자 박주수 작품] 연암소설 (22) 연암 박지원 (38)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연암소설 목록 http://kydong77.tistory.com/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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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原士

원사(原士) -선비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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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原士) -선비란 무엇인가?

원사(原士) -선비란 무엇인가? 엄화계수일 잡저(罨畫溪蒐逸雜著), 연암집 제 10 권 별집 [은자주]이 글을 문집에 챙겨 넣은 아들 종채의 주석도 흥미롭겨니와 사마천의 <사기>, 유학 경전의 인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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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차례 포털의 이전과정으로 인하여 글씨가 흐려졌으니, 그 내용을 읽고자 하시는 분들은 블로그의 글을 복사하여 한글 문서에 재복사하시면 읽기에 편리합니다.

참고로 양반은 문반과 무반을 지칭합니다. 동반과 서반이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사회적 지배계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단에 자세한 설명을 첨부합니다.

 

양반전兩班傳

-초기구전

[은자주] 고전번역원의 주석을 첨가하였다. 주석의 필요성을 느꼈으니 번거로움을 피해왔는데, 민추의 해박한 주석이 있어 여기에 옮긴다. 어구가 맞지 않더라도 바로위의 주석임을 감안하고 보면 된다.

앞에서 생략할 요량이었으나 워낙 명문인지라 초기구전묶음에서 다시 한 번 읽어보기로 하였다. 앞의 선비론인<원사>와 함께 읽어주기 바란다.

 

◇ <兩班傳>의 성공 비결

1)충격적 소재: 양반 매매. 중세의 가치관과 질서의식 파괴 - 양반과 천부의 전도(顚倒). 신분을 맞바뀜.

2)수사법: 반어법(신분과 부의 불일치, 士族의 존칭에서 멀어진 양반론), 열거법(두 문권)

3)허상과 실상의 대비: 제1문권에서는 양반 행동양식의 허위의식을, 제2문권에서는 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를 고발함.

 

1]권위의 상징인 양반의 처지가 땅바닥에 떨어지다

兩班者 士族之尊稱也.

'양반'이란 사족(士族)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旌善之郡 有一兩班 賢而好讀書.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현명하고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每郡守新至 必親造其廬而禮之.

그래서 군수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반드시 그 집에 몸소 나아가서 예의를 갖추었다.

然家貧 歲食郡糶 積歲至千石.

그러나 그는 살림이 가난해서, 해마다 관가에서 환자를 빌어먹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보니, 환곡(還穀)은 천 석이나 되었다.

觀察使巡行郡邑 閱糶糴 大怒曰,

관찰사가 여러 고들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환곡의 출납을 검열하고는 매우 노하였다.

“何物兩班 乃乏軍興?”

"어떤 놈의 양반이 군량미를 이렇게 축냈단 말이냐?"

命囚其兩班

그 양반을 가두도록 명령하였다.

郡守意哀 其兩班貧 無以爲償.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길이 없는 것을 없으니

不忍囚之 亦無可奈何.

차마 가두고 싶지 않았지만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兩班日夜泣 計不知所出.

그 양반은 밤낮으로 울음을 삼켰지만 대책은 세우지 못했다.

其妻罵曰,

그의 아내는 불평을 털어 놓았다.

“生平 子好讀書 無益縣官糴. 咄 兩班. 兩班不直一錢.”

"한평생 당신은 글읽기를 좋아했지만, 관가의 환곡을 갚는데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군요.

쯧쯧, 양반! 양반은한 푼짜리도 못 되는 구려.”

[주D-001]한 푼짜리도 ……구려 : 양반(兩班)을 양반(兩半)으로 풀어 한 냥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풍자한 것이다.

 

2]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사서 양반이 되다.

其里之富人 私相議曰,

그 마을의 부자가 가족들과 서로 의논하였다.

“兩班雖貧 常尊榮 我雖富 常卑賤 不敢騎馬.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언제나 높고 영광스럽지만, 우리들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언제나 낮고 천하여 감히 말을 탈수도 없다.

見兩班 則跼蹜屛營 匍匐拜庭

양반만 보면 저절로 기가 죽어서 굽실거리며 엉금엉금 기어가서 뜰 밑에서 절해야 한다.

曳鼻膝行 我常如此 其僇辱也.

코가 땅에 닿도록 무릎으로 기다시피 하면서, 우리네는 줄창 이렇게 창피를 당해야 한다.

今兩班貧 不能償糴 方大窘.

지금 저 양반이 가난해서 환자를 갚지 못해 몹시 곤란해질 모양이야.

其勢誠不能保其兩班 我且買而有之.”

참으로 그의 가세가 양반 신븐을 보전할 수 없으니 내가 그것을 사서 가지려 한다."

遂踵門 而請償其糴.

부자는 곧 양반의 집을 찾아가서 그 환자를 대신 갚겠다고 청하였다.

兩班大喜許諾.

양반은 크게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於是 富人立輸其糴於官.

그래서 부자가 곧 그 환곡을 관가로 수송했다.

郡守大驚異之 自往勞其兩班 且問償糴狀.

군수는 매우 놀라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직접 양반에게 찾아가 위로하면서, 환자를 갚은 사정을 물으려 하였다.

兩班氈笠衣短衣 伏塗謁稱小人 不敢仰視.

그러자 양반은 벙거지를 쓰고 베잠방이를 입은 채로 길바닥에 엎드려, '쇤네'라고 칭하면서 감히 올려다보지를 못하였다.

[주D-002]벙거지 : 하인들이 쓰던 털모자.

郡守大驚 下扶曰,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그를 부축하며,

“足下 何自貶辱若是?”

"선생께서 어찌 이다지도 스스로를 욕되게 하시는지요." 하였다.

兩班益恐懼 頓首俯伏曰,

양반은 더욱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惶悚 小人非敢自辱 已自鬻其兩班 以償糴 里之富人 乃兩班也.

"황송하옵니다. 쇤네가 감히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쇤네는 벌써 스스로 양반을 팔아 환자를 갚았으니, 마을의 부자가 바로 양반이옵니다.

小人安敢冒其舊號 而自尊乎?”

쇤네가 어찌 다시금 뻔뻔스럽게 옛날처럼 양반 행세를 하면서 스스로 높이겠습니까?"

郡守歎曰,

군수가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君子哉 富人也 兩班哉 富人也.

"군자답구려 부자시여. 양반답구려 부자시여.

富而不吝 義也 急人之難 仁也 惡卑而慕尊 智也 此眞兩班.

부유하면서도 아끼지 않음은 의(義)요, 남의 어려움을 돌봐 줌은 인(仁)이요, 낮은 신분을 싫어하고 높은 자리를 그리워함은 지(智)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양반이로다.

雖然私自交易 而不立券 訟之端也.

비록 그러하더라도 사사로이 신분을 바꾸고 문권(文券)을 작성하지 않으면 소송의 단서가 된다.

我與汝約 郡人而證之 立券而信之 郡守當自署之.”

내가 그대와 약조하노니, 고을 사람들을 모아 증인을 세우고, 문권을 작성하여 증거하리라. 군수인 내가 마땅히 서명해야 하네."

 

於是 郡守歸俯 悉召郡中之士族 及農工商賈 悉至于庭.

군수가 곧 동헌으로 돌아와서 온 고들 사족과, 농민, 공장(工匠), 장사치까지 모두들 불러 뜰에 모았다.

富人坐鄕所之右 兩班立於公兄之下.

부자는 향소(鄕所)의 오른쪽에 앉히고 양반은 공형(公兄)의 아래에 세웠다.

[주D-003]향소(鄕所) : 향청(鄕廳)의 좌수(座首).

[주D-004]공형(公兄) : 호장(戶長)과 이방(吏房) 및 수형리(首刑吏)를 삼공형(三公兄)이라 한다.

 

3]문권 작성

 

1)제1문권 -양반의 행동규범[허위의식]

乃爲立券曰,

바로 증서를 작성하였다.

“乾隆十年九月日 右明文段

"건륭(乾隆) 10년 9월 모일에 아래와 같이 문권을 밝힌다.

[주D-005]명문(明文) : 증명서란 뜻으로, ‘적발’이라고도 한다.

국(厂下屮2)賣兩班 爲償官穀 其直千斛.

*厂下屮2(국):持也

양반을 팔아서 관가의 곡식을 갚은 일이 생겼는데, 그 곡식은 천 섬이나 된다.

維厥兩班 名謂多端

이 양반의 이름은 여러 가지다.

讀書曰士 從政爲大夫 有德謂君子

글만 읽으면 '선비'라 하고,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大夫)'라 하며, 착한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라고 한다.

武階列西 文秩敍東 是謂兩班.

무관의 계급은 서쪽에 벌여 있고, 문관의 차례는 동쪽에 자리 잡았으며, 이들을 '양반'이라고 한다.

[주D-006]무관 …… 동쪽이라 : 궁궐에서 무관과 문관이 각각 서쪽과 동쪽에 나누어 서는 것을 가리킨다.

任爾所從 絶棄鄙事 希古尙志

이 여러 가지 양반 가운데서 그대 마음대로 골라잡되, 오늘부터는 지금까지 하던 야비한 일들을 깨끗이 끊어 버리고, 옛 사람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가져야 한다.

五更常起 點硫燃脂

오경(五更)이 되면 언제나 일어나서 성냥을 그어 등불을 켜고,

目視鼻端 會踵支尻

눈으로 코끝을 내려다보며, 두 발굽을 한데다가 모아 볼기를 괴고 앉아서

[주D-007]눈은 …… 보며 : 호흡법의 일종이다. 주자(朱子)의 조식잠(調息箴)에 보인다. 《연암집》 권4 담원팔영(澹園八詠) 중 소심거(素心居)를 노래한 제 3 수에도 나온다.

東萊博議 誦如氷瓢.

"동래박의"처럼 어려운 글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외워야 한다.

[주D-008]《동래박의(東萊博議)》 : 남송(南宋) 때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를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주제를 취해 평론한 것인데, 과거(科擧)에서 논설을 짓는 데 도움 되는 책으로 중국과 조선에서 널리 읽혔다.

 

忍饑耐寒, 口不說貧

叩齒彈腦 細嗽嚥津 *嗽(수):기침.

굶주림과 추위를 인내하며 입에는 가난이라는 말을 담지 않는다.

아래 윗니를 맞부딪쳐 똑똑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튕긴다.

가는 기침이 나면 가래침을 씹어 넘기고,

袖刷毳冠 拂塵生派.

[주D-009]이빨을 …… 삼키며 : 도가(道家)에서 유래한 양생법(養生法)이다. 가볍게 윗니와 아랫니를 36번 부딪치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뒷골을 24번 퉁긴다. 입 안에 고이게 한 침을 가볍게 양치질하듯이 부걱부걱하기를 36번 하면 이를 수진(漱津)이라 하여 맑은 물이 되는데, 이것을 3번에 나누어 꾸르륵 소리를 내며 삼켜서 단전(丹田)에 이르게 한다. 퇴계(退溪) 선생의 유묵(遺墨)으로 전하는 명(明) 나라 현주도인(玄洲道人) 함허자(涵虛子)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 자세하다. 《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 7월 6일 조를 보면 연암이 고치탄뇌(叩齒彈腦)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털 감투를 쓸 때에는 소맷자락으로 털어서 티끌 물결을 일으킨다.

盥無擦拳 潄口無過. *潄(수):양치질하다.

세수 할 때에는 주먹의 때를 비비지 말 것이며, 양치질할 때에는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주D-010]냄새 …… 닦고 : 원문은 ‘漱口無過’인데, 입냄새를 구과(口過)라 한다. 당(唐)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송지문(宋之問)이 재주 있는 시인임을 알았으나 그의 입냄새가 심한 것을 싫어하여 기용하지 않았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수록되어 있는 송지문의 걸작 명하편(明河編)은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라고 한다.

長聲喚婢 緩步曳履

긴 목소리로 '아무개야' 계집종을 부르고, 느리게 걸으면서 신뒤축을 끌어야 한다.

古文眞寶 唐詩品彙 鈔寫如荏 一行百字.

『고문진보』나 『당시품휘』 같은 책들을 깨알처럼 가늘게 배껴 쓰되, 한 줄에 백 자씩 써야 한다.

[주D-011]《당시품휘(唐詩品彙)》 : 명(明) 나라 때 고병(高棅)이 편찬한 당시집(唐詩集)이다. 모두 90권으로 시인 620인의 작품 5700여 수를 형식별로 수록하였다. 따로 습유(拾遺) 10권이 있다.

手毋執錢 不問米價

손에 돈을 지니지 말 것이며, 쌀값을 묻지도 말아야 한다.

暑毋跣襪 飯毋徒髻

날씨가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도 맨상투 꼴로 앉지 말아야 한다.

食毋先羹 歠毋流聲*歠(철):마시다.

식사하면서 국물부터 먼저 마셔 버리지 말며, 마시더라도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下箸毋舂 毋餌生葱

젓가락을 내리면서 밥상을 찧어 소리 내지 말며, 생파를 씹지 말아야 한다.

飮醪毋嘬鬚 吸煙毋輔窳.*嘬(최):물다. *窳(유):비뚤다.

막걸리를 마신 뒤에 수염을 빨지 말며, 담배를 태울 때에도 볼이 오목 파이도록 빨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忿毋搏妻 怒毋踢器

아무리 분하더라도 아내를 치지 말며, 화가 나더라도 그릇을 차지 말아야 한다.

毋拳毆兒女 毋罵死奴僕. *毆(구):때리다.

맨주먹으로 아녀자들을 때리지 말며, 죽일놈의 종놈이라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

[주D-012]뒈져라고 …… 말고 : 《연암집》 권3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에도 “뒈져라고 악담하다〔惡言詈死〕”와 같은 표현이 있다.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 권1 사전(士典) 1 언어조(言語條)에, 종에게 ‘뒈질 놈〔可殺〕’ ‘왜 안 뒈지냐〔胡不死〕’와 같은 욕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叱牛馬 毋辱鬻主.

말이나 소를 꾸짖으면서 팔아먹은 주인을 들추지 말아야 한다.

病毋招巫 祭不齋僧

병이 들어도 무당을 불러오지 말고, 제사에 중을 불러다 재(齋)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

爐不煮手 語不齒唾

화롯가에 손을 쬐지 말며, 말할 때에 침이 튀지 말아야 한다.

毋屠牛 毋賭錢.

소백정 노릇을 하지 말며, 도박도 하지 말아야 한다.

凡此百行 有違兩班 持此文記 卞正于官.

이러한 여러 가지 행위 가운데 양반의 규범에 한 가지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양반은 이 증서를 가지고, 관청에 와서 송사하여 바로잡을 수 있다.

城主 旌善郡守 押. 座首別監 證署.”

성주(城主) 정선 군수 화압(花押)

좌수(座首) 별감(別監) 증서(證署)

於是 通引搨印 *搨(탑):박다, 베끼다.

증서를 다 쓰고는 통인(通引)이 인(印)을 받아서 찍었다.

錯落聲中嚴鼓 斗縱參橫.

뚜욱뚜욱하는 그 소리는 마치 엄고(嚴鼓) 치는 소리 같았고, 그 찍어 놓은 모습은 마치 북두칠성이 세로 놓인 듯, 삼성(參星)이 가로놓인 듯 벌렸다.

[주D-013]엄고(嚴鼓) : 임금이 행차할 때 치던 큰북이다.

戶長讀旣畢.

호장(戶長)이 읽기를 마쳤다.

“兩班只此而已耶? 吾聞兩班如神仙 審如是 太乾沒. 願改爲可利.”

"양반이 겨우 이것뿐입니가? 나는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들었지요. 정말 이와 같다면, 너무 지나치게 재산을 몰수합입니다. 아무쪼록 좀 더 이롭게 고쳐 주시오."

[주D-014]너무도 …… 셈이니 : 원문은 ‘太乾沒’인데, ‘乾沒’은 물을 말려 없애듯이 남의 재산을 마구 횡령하거나 몰수하는 것을 말한다. 부자가 양반을 대신해서 환곡 천 석을 갚아 주었으나 그 대가가 너무도 보잘것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2)제2문권-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

於是 乃更作券曰,

그래서 다시 증서를 만들었다.

“維天生民 其民維四

"하늘이 백성을 낳으실 때에, 그 갈래를 넷으로 나누셨다.

四民之中 最貴者士 稱以兩班 利莫大焉.

이 네 갈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이가 선비이고, 이 선비를 양반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양반보다 더 큰 이문은 없다.

不耕不商 粗涉文史 大決文科 小成進士.

그들은 농사 짓지도 않고, 장사하지도 않는다. 옛글이나 역사를 대략만 알면 과거를 치르는데, 크게 되면 문과(文科)요, 작게 이르더라도 진사(進士)다.

文科紅牌 不過二尺 百物備具 維錢之橐. *橐(탁):전대

문과의 홍패(紅牌)는 두 자도 채 못 되지만, 온갖 물건이 이것으로 갖추어지니 돈 자루나 다름없다.

進士三十 乃筮初任 猶爲名蔭

진사는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이름난 음관(蔭官)이 될 수 있다.

[은자주] 연암도 쉰 살에 음관으로 처음 출사하였다.

善事雄南 耳白傘風 腹皤鈴諾

지체 높은 음관을 잘 섬기면, [수령 노릇을 하느라고] 귓바퀴는 일산(日傘) 바람에 희어지고, 배는 동헌(東軒) 사령(使令)들의 '예이'하는 소리에 살찌게 됩니다.

[주D-015]웅남행(雄南行) : 음관을 남행(南行)이라 한다. 웅남행은 위품(位品)이 높은 음관을 가리킨다.
[주D-016]일산 …… 처지며 :
수령은 행차할 때 일산을 받쳐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므로 햇빛을 쏘이지 않아 귀가 희어지고, 일을 시킬 때 설렁줄을 당겨 사람을 부르면 되므로 편해서 배에 살만 찐다는 뜻이다.

室珥治妓 庭穀鳴鶴.

방안의 귀고리로 기생이나 놀리고, 뜰 앞에 곡식으로 학을 기른다.

[주D-017]방 안에 …… 것이요 : 기생이 놀다 간 뒤라 귀걸이가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기》 골계열전에서 순우곤(淳于髡)이 제(齊) 나라 위왕(威王)에게 자신의 주량(酒量)을 설명하며 한 말 중에, 주려(州閭)의 모임에 남녀가 뒤섞여 앉아 술을 즐겁게 마시고 나면 “앞에는 귀걸이가 떨어져 있고 뒤에는 비녀가 남겨져 있다.〔前有墮珥 後有遺簪〕”고 하였다.

窮士居鄕 猶能武斷.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더라도, 무력을 마음대로 단행할 수 있다.

先耕隣牛 借耘里氓 孰敢慢我?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내어 내 밭을 김 매게 하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나를 괄시하랴.

灰灌汝鼻 暈髻汰鬢 無敢怨咨.”*暈(훈):무리. *咨(자):묻다.

네 놈의 코에 잿물을 따르고 상투를 범벅이며 수염을 뽑더라도 원망조차 못하리라."

 

4]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포기하다

富人中其券 而吐舌曰,

부자가 그 증서 만들기를 중지시키고, 혀를 빼면서 말하였다.

“已之已之 孟浪哉. 將使我爲盜耶?”

"그만 두시오. 제발 그만 두시오. 참으로 맹랑합니다. 나를 도둑놈이 되게 하시렵니까?"

掉頭而去

농부는 머리를 내두르며 달아났다.

終身不復言兩班之事.

그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양반'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7934?category=48743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9479

 

문반(文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회 시에 국왕을 중심으로 동쪽에 품계순으로 정렬했기에 동반(東班)이라고도 한다. 용례상 반열로서의 문반은 중국 당제에서 연원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고려시대부터 시작해 조선 말기까지 존재하였다. 문반은 976년(경종 1)의 전시과(田柴科) 제도를 보면, 관계(官階)를 기준으로 모든 직산관(職散官)을 관복의 색에 따라 자(紫)·단(丹)·비(緋)·녹삼(綠衫)으로 나누고, 자삼층을 제외한 단·비·녹삼층을 문반·무반·잡업으로 구분, 전(田)·시지(柴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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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9050

 

무반(武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조선 전기의 오위(五衛)를 대신하여 서울과 외곽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훈련도감(訓鍊都監)·어영청(御營廳)·총융청(摠戎廳)·금위영(禁衛營) ·수어청(守禦廳)등을 포함하는 5군영제(五軍營制)가 편제되었다. 이 때 여러 무반 관아가 신설되었고, 이에 수반된 여러 무관직이 무반에게 제수되었다. 광해군 때는 궁중의 입직(入直) 군사를 보충하기 위해 충장위(忠壯衛)를 설치하였고, 1629년(인조 7)에는 무신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능마아청(能麽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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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어별(無語別)>

ㅡ 임제(林悌)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 십오세 꽃다운 아가씨 

羞人無語別

(수인무어별) 남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이별하네.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  돌아와 문을 겹겹이 닫아 걸고

泣向梨花月

(읍향이화월)  배꽃처럼 하얀 달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네.

 

 [운영자 주]  

서시(西施)는 중국 월(越) 나라 악야계(若耶溪) 출생,

월녀오희(越女吳姬). 월과 오나라는 미녀 배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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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왕창령, 규방의 원망

265 규원(閨怨)-왕창령(王昌齡) 규방의 원성-왕창령(王昌齡) 閨中少婦不曾愁(규중소부부증수) : 규중의 젊은 아낙 시름한 적 없었는데 春日凝粧上翠樓(춘일응장상취루) : 봄날에 화장하고 푸른 누각에 올랐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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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閨怨(규원)-王昌齡(왕창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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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閨怨(규원:아내의 원망) - 王昌齡(왕창령)

당시삼백수 권6 칠언절구265.閨怨(규원)-王昌齡(왕창령)〈아내의 원망〉 閨怨(규원) 王昌齡(왕창령) 閨中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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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시삼백수]閨怨(규원:아내의 원망) - 王昌齡(왕창령)|작성자 swings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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閨怨(규원)- 허난설헌(許蘭雪軒)

閨怨(규원) 1.(許蘭雪軒(허난설헌;1563-1589) 여자의 원망 月樓秋盡玉屛空(월루추진옥병공) 달 밝은 누각에 가을이 다 가는데 나홀로 빈방에 있고 霜打廬洲下暮鴻(상타여주하모홍) 서리 내린 갈대섬에는 저녁 기러기 찾아드네. 瑤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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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筠 /학산초담(鶴山樵談) 1

허균 (許筠 ; 1569~1618) 조선시대 중기 문신·소설가로서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단보(端甫)이고,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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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許筠 /학산초담(鶴山樵談) 1|작성자 모르니 어이리

 

白湖(백호) 林悌(임제) 선생의 규원시(閨怨詩)를 소개합니다.

□無語別(무어별) 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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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전문 보기 - 규원가 (閨怨歌)

1. 閨怨歌 1 엊그제 젊었더니 하마 어이 다 늙거니 2 소년행락 생각하니 일러도 속절없다 3 늙어야 섦은 말씀 하자하니 목이 멘다 4 부생모육 신고하여 이내 몸 길러낼 제 5 공후배필 못 바라도 군자호구 원하더니 6 삼생의부업이오 월하의 연분으로 7 장안유협 경박자를 꿈 같이 만나있어 8 당시에 용심하기 살얼음 디디는 듯 9 삼오 이팔 겨우 지나 천연여질 절로 이니 10 이 얼굴 이 태도로 백년기약 하였더니 11 연광이 훌훌하고 조물이 다시하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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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가사

조선시대 영조 때 주로 양반집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된 가사. ‘가 ’ 또는 ‘두루마리’라는 이름 아래 창작, 전파, 애독되다가 6 · 25사변 이후 소멸되었다. 내방가사(内房歌辭) · 규중가도(閨中歌道) · 규방문학(閨房文學) · 규중가사(閨中歌辭) 등으로도 불린다. 규방가사도 영남지방에서 발생 · 창작되어 널리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그 분포현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권영철(權寧徹)이 수집한 작품수는 6천여편으로 이들 작품들을 안동문화권과 경주문화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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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반가사의 표기문자가 국한문혼용체이며 한자를 즐겨 쓰는 데 비해 규방가사는 한글을 주로 쓰고 있다.
2) 양반가사의 명칭은 ‘가사(歌辭 · 歌詞)’ · ‘별곡(別曲)’ · ‘곡(曲)’ · ‘사(詞)’ · ‘가(歌)’ 등으로 다양하고 제목 또한 이에 준하는 데 비해 규방가사의 명칭은 ‘가사’ 또는 ‘두루마리’이며, 제목은 거의가 ’○○○가라’는 접미사 ‘라’를 붙인다.
3) 양반가사의 구성은 입체적인 면과 단일형을 취하는 데 비해 규방가사의 구성은 평면적인 면과 복합형을 많이 보인다.
4) 양반가사는 4음보에 3 · 4조가 우세한 것도 있지만 규방가사는 4음보에 4 · 4조가 정제일관(整齊一貫)된 것이 우세하다.
5) 양반가사는 민요형식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규방가사는 민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6) 양반가사는 소설 · 내간(内簡) · 제문을 흡수하지 않았으나 규방가사는 이들을 흡수하였다. 내간 · 제문 등도 4 · 4조를 읊는 형식이 바로 그것인데 특히 제문의 경우는 서두의 항용구인 ‘유세차……감소고우’까지는 산문의 형식을 취하나 그 다음부터 분문에 가서는 4 · 4조로 된 가사형식을 원용하고 말미에 ‘상향’ 두 자만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였다.
7) 양반가사의 많은 작품들이 시조의 종장형식을 답습하고 서두구(序頭句)에는 전형이 없으며 발문이 없는 데 비해, 규방가사는 서두구와 종결형식과 발문에 독특한 것이 있다. 먼저 서두구를 보면 ‘어와세상 사람들아 이내말삼 드러보소.’와 같은 호소청유형, ‘어화 애달할 샤이 내 신세 애달할샤 이 내 신세 애달할샤 사 건곤부모 졍한 후의 녀 되엿도다.”와 같은 여신인과형(女身因果形), ‘이 때는 어느 땐고 고 삼월춘풍 조흔 때라.’와 같은 계절형. ‘산아산아 일월산아 영남 에 솟은 산아.’와 같은 민요형 등의 전형을 보인다. 다음으로 종결형식은 4 · 4조 그대로 연장되다가 끝나며, 불교적인 것은 ‘나무아미타불’로 끝난다. 전형적인 규방가사들의 끝에는 일정한 형식의 발문이 붙어 있다.
8) 그 체제와 보존형식도 양반가사와는 달리 두루마리 형식으로 필사하여 둥글둥글하게 말아두는 체제를 취하고 있다.

규방가사의 내용은 각양각색이나, 그 주제와 소재는 거의가 양반부녀들의 생활주변에서 얻은 것이다. 엄격한 유교적 윤리관에 입각해서 주제와 소재를 택하였기에 교훈적인 것이 원류를 이루며, 속박된 여성생활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문물제도 · 인심 · 풍속, 자연에의 관조, 가문의 기쁨, 놀이의 행락 등이 아류를 이룬다.

내용을 유형별로 나누어보면

1) 시집갈 또는 시집간 딸이 지켜야 할 내용을 노래한 <계녀가> · <규행가>와 같은 계녀교훈류(誡女敎訓類),

2) 여자인 자신의 주변환경을 탄식한 <여탄가> · <여자탄식가>와 같은 신변탄식류,

3) 부모를 생각하고 그리는 <사친가> · <상사몽>과 같은 사친연모류,

4) 이별한 임을 생각하고 느낀 바를 노래한 <사녀가> · <붕우사모가>와 같은 상사소회류(),

5) 놀이의 풍류를 노래한 <화젼가> · <화슈가>와 같은 풍류소영류(風流嘯咏類>,

6) 친척 · 가문의 자랑을 노래한 <향원행락가(香園行樂歌)>와 같은 가문세덕류(家門世德類),

7) 부모의 장수와 가정의 영화를 축원하고 송축한 <슈신가> · <수연연하찬문>과 같은 축원송도류,

8) 죽음을 슬퍼하거나 그에 따른 제사를 묘사한 <인산가> · <로젼제문>과 같은 제전애도류(祭典哀悼類)>,

9) 아름다운 곳을 찬미한 <순행가(巡行歌)> · <청량산가(清涼山歌)>와 같은 승지찬미류(勝地讃美類),

10) 은덕을 갚고자 하는 <인산가>와 같은 보은사덕류(報恩謝德類),

11) 인간세계를 동식물에 비유한 <화조가> · <화초가>와 같은 의인우화류,

12) 여행노정을 기록한 <부여노정기(扶餘路程記)>와 같은 노정기행류,

13) 선을 권하고 신앙을 권하는 <권독가> · <혜원가>와 같은 신앙권선류,

14) 매달마다 계절마다 행할 농사일과 풍속을 노래한 월령계절류(月令季節類),

15) 노동과 그 과정을 노래한 <보촌가> · <농부가>와 같은 노동서사류,

16) 언어유희를 노래한 언어유희류,

17) 소설을 규방가사화하거나 내간을 규방가사화한 <상장가사(上狀歌辭)> · <양귀비가>와 같은 소설내간류,

18) 한말의 개화와 계몽을 노래한 <긔교사)와 같은 개화계몽류,

19) 한문학을 번안하거나 역사를 노래한 <장한가(長恨歌)> · <긔완별곡>과 같은 번안영사류(飜案詠史類),

20) 남자가 노래한 것을 노래한 <망실애사(亡室哀詞)>와 같은 남요완상류(男謠玩賞類),

21) 기타 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규방가사 [閨房歌辭]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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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전문 보기 - 노처녀가 (老處女歌)

48 우리문벌 이러니 풍속좃기 어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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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 세상 사람들아 이내 말씀 들어보소.
2
인간 만물 생긴 후에 금수초목 짝이 잇다.
3
인간에 생긴 남여 부부 자손 갖건마는
4
이내 팔자 험구즐손 날 가튼 이 또 잇는가.
5
백년을 다 사러야 삼만육천 날이로다.
6
혼자살이 천년 살면 정녀(貞女) 되야 만년 살가.
 
7
답답한 우리부모 가난한 좀(스런) 양반이
8
양반인체 도를 차려 처사(處事)가 불민(不敏)하여
9
괴망(怪妄)을 일삼으니 다만 한 딸 늘거 간다.
10
적막한 빈 방 안에 적료(寂寥)하게 홀로 안자
11
전전불매(輾轉不寐) 잠 못 이뤄 혼자 사설 드러 보소.
12
노망(老妄)한 우리 부모 날 길러 무엇하리.
13
죽도록 날 길러서 자바 쓸가 구어 쓸가.
14
인황씨(人皇氏) 적 생긴 남녀 복희씨(伏羲氏) 적 지은 가취(嫁娶)
 
15
인간배필 혼취(婚娶)함은 예로부터 잇건마는
16
어떤 처녀 팔자 조하 이십 전에 시집 간다.
17
남녀 자손 시집장가 떳떳한 일이건만
18
이 내 팔자 기험(崎險)하야 사십까지 처녀로다.
19
이런 줄을 아랏스면 처음 아니 나올 것을
20
월명 사창(紗窓) 긴긴밤에 침불안석(寢不安席) 잠 못 드러
21
적막한 빈방 안에 오락가락 다니면서
22
장래사 생각하니 더욱 답답 민망하다.
23
부친하나 반편이오 모친하나 숙맥불변(菽麥不辨)
24
날이 새면 내일이오 세(歲)가 쇠면 내년이라.
 
25
혼인 사설 전폐하고 가난 사설뿐이로다.
26
어대서 손님 오면 행여나 중매신가
27
아희 불러 힐문(詰問)한즉 풍헌(風憲) 약정(約正) 환자(還子) 재촉(催促)
28
어대서 편지 왓네 행혀나 청혼선가
29
아희다려 무러 보니 외삼촌의 부음이라.
30
애닯고 서른지고 이 내 간장을 어이할고.
31
앞집에 아우아기 발서 자손 보단 말가.
32
동편집 용골녀는 금명간에 시집가네.
33
금명간(今明間)에 무정세월 시집가서 풀렷마는
34
친구 없고 혈속 업서 위로하리 전혀 업고
35
우리 부모 무정하여 내 생각 전혀 없다.
36
부귀빈천 생각 말고 인물풍채 마땅커든
37
처녀 사십 나이 적소 혼인 거동 차려주오.
 
38
김동이도 상처(喪妻)하고 이동이도 기처(棄妻)로다.
39
중매할미 전혀 없네 날 차즈리 어이 없노.
40
감정암소 살져 잇고 봉사(奉祀) 전답(田畓) 갖건마는
41
사족(士族) 가문(家門) 가리면서 이대도록 늙히노니
42
연지분도 잇건마는 성적단장(成赤丹粧) 전폐하고
43
감정치마 흰 저구리 화경거울 앞에 노코
44
원산(遠山) 가튼 푸른 눈섭 세류(細柳) 가튼 가는 허리
45
아름답다 나의 자태 묘하도다 나의 거동
46
흐르는 이 세월에 앗가울손 나의 거동
47
거울다려 하는 말이 어화답답 내 팔자여.
48
갈 데 없다 나도 나도 쓸데없다 너도 너도
49
우리 부친 병조판서 한아바지 호조판서
50
우리 문벌 이러하니 풍속 좇기 어려워라.
 
51
어느덧 춘절 되니 초목군생(草木群盛) 다 즐기네.
52
두견화 만발하고 잔디 닢 속닢 난다.
53
사근 바자 재생(再生)하고 종달새 도두 뜬다.
54
춘풍야월(春風夜月) 세우시(細雨時)에 독숙공방 어이할고.
55
원수의 아희들아 그런 말 하지마라.
56
앞집에는 신랑 오고 뒷집에는 신부 가네 .
57
내 귀에 듯는 바는 늣길 일도 하고 만타.
58
녹양방초(綠楊芳草) 저믄 날에 해는 어이 수이가노
59
초로(草露) 가튼 우리 인생 표연(飄然)히 늘거가니
60
머리채는 옆에 끼고 다만 한숨뿐이로다
61
긴 밤에 짝이 없고 긴 날에 벗이 없다
62
안잣다가 누엇다가 다시금 생각하니
63
아마도 모진 목숨 죽지 못해 원수로다.

 

[상단은 젊은 날의 초상화, 하단은 "자사진찬"까지 쓴 주름진 늙으막의 초상화]

 

*심경호 교수는 '천재의 광기'란 제목으로 동영상을 올렸지만, 국법이나 자신에게 닥칠 위협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렬(車裂)당한 사육신들의 시신을 노량진 언덕에 거둔 것이나 은둔과 방랑으로 길 위의 삶을 선택한 것도, 죽는 날까지 "How to live?"의 문제를 고심한 자취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시습이야말로 만해 한룡운 선생의 선범(先範)이었다. 승려의 길을 선택하여 同安常察의 <十玄談>   주해한 것까지도. 두 분은 삶의 본질을 간파하고 그 역사적 행위의 정당한 평가까지 확보한 천재들이셨다.

이런 취지의 시각에서 글제목을 <천재의 당위론적 삶>으로 바꾸었다. 그분들은 예견되는 앞날의 고통과 고난애도 불구하고 언제나 정의로운 삶을 선택했다. 통치자들의 위협도 감내해 가면서.....

그들이 名詩를 남긴 것은 다름 아닌 삶의 진정성 표출에 있다고 하겠다. 만해 선생이 당시 유행하던 3음보 형식을 버리고 산문시를 쓴 것도 그 초점은 진정성의 전달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타고르의 영향도 컸다고 할 수 있겠지만.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8B%9C%EC%8A%B5

 

김시습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시습(金時習, 1435년 ~ 1493년)은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이자 불교 승려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강원도 강릉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본관은 강릉, 자(字)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불교 법명은 설잠(雪岑)이다.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의 아들이다. 수양대군이 자행한 단종에 대한 왕위 찬탈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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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찬(自寫眞贊)

-위 사진.

 

俯視李賀(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다 볼 만큼

優於海東(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謾譽(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眇(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의이치지) 네 몸을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구학지중) 금오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23023002&wlog_tag3=naver#csidx5cb1eef2c190ffca8ad78f9df6ab14d

*[운영자 주]

번역에 '금오산'은 운영자가 덧붙임. 산골짝은 경주 남산 삼릉계곡. 그래서 기존 번역의 제목인 '나의 초상에 쓰다'를 바꾸어 '자화상 찬'이라 했다.

작품집 이름에 '금오'를 얹은 것은 금오산에서 유래함.

김시습은 34세 때 경주 남산 삼릉계곡 용장사 거소에서 <금오신화> 5편을 창작함.

*이하 李賀, Li He (791-817)

26세에 요절한 당대 천재시인.

문맥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이 글의 하단에 그의 시 <將進酒>를 소개한다.

 

<금오신화>에 수록된 김시습의 '自寫眞贊'부터 그는 기인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젊은 날의 자기 모습에다 노년의 오만상을 찌푸린 모습까지 그렸으나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젊은 날의 모습은 노추에도 변함없다. 허나 주름 때문인가 많이 온화한 모습이다

자화상이야 서구에도 많지만 찬을 쓴다는 게 희귀한 발상이다.

贊(찬)이란 찬양, 찬미의 의미다. 자기 자랑 해 봤자 듣는이는 귓전으로 듣는다. 그래서인지 내용인즉 찬이 아니라 자기 비하다. 5세 때 세종으로부터 하사받은 비단 필을 허리에 묶어 끌고 나오던 神童의 그런 호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그는 47세 때 환속하여 재혼했으나 1년도 못견뎌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는 참으로 별난 천재고, 그의 삶은 별난 인생살이였다. 우리는 이를 험한 산길에 비유하여 흔히 기구하다(崎嶇--) 고 말한다. '69다방'까지 경영했던 <날개>의 작가 이상도 그렇거니와 왜 천재들은 박복하고 불행한가? 그것이 알고 싶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008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kydong77.tistory.com/18008

 

천재의 광기 김시습 & 권필과 남효온의 한시

자화상 찬(自寫眞贊) -위 사진 상단. 俯視李賀(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다 볼 만큼 優於海東(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謾譽(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어이숙봉) 네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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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정리

이 블로그 운영자가 정리한 금오신화 자료는 다음과 같다. 김시습전 -율곡 이이 http://kydong77.tistory.com/8088 만복사저포기 상 -김시습 http://kydong77.tistory.com/8087 만복사저포기 하 -김시습 htt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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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安常察,十玄談/ 김시습,십현담요해 & 한룡운, 십현담주해

십현담 [十玄談]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51358&cid=40942&categoryId=31543 중국 당나라의 선승(禪僧) 동안상찰(同安常察)이 조동종(曹洞宗)의 가풍과 수행자의 실천 지침 등을 칠언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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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광기, 매월당집과 금오신화(심경호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HDSfozlsM3w



https://www.youtube.com/watch?v=Ik4TafwYOHw

 

https://www.youtube.com/watch?v=D-kYr9I-fvo&t=17s

 

https://www.youtube.com/watch?v=H_xpnS1rWfY

 

 

https://www.youtube.com/watch?v=JHC0jiuyrCQ

 

 Non ti scorda di me/ Tenor Placido Domingo

Non ti scordar di me 나를 잊지 마세요 / E. D. Curtis

Partirono le rondini dal mio paese freddo e senza sole
제비들이 떠났습니다 차갑고 태양이 없는 나의 나라에서
Cercando primavere di viole, nidi d’amore e di felicità.
오랑캐 꽃들이 피는 봄을 찾아서, 그리고 사랑과 행복의 둥지를 찾아서.

La mia piccola rondine partì
나의 어여쁜 제비는 떠났습니다
Senza lasciarmi un bacio senza un addio partì.
나에게 한 번의 입맞춤도 남기지 않고, 작별의 인사도 없이 떠났습니다.

Non ti scordar di me, la vita mia è legata a te
나를 잊지 말거라, 나의 삶은 너와 연결이 되어 있단다
Io t’amo sempre più, nel sogno mio rimani tu.
나는 너를 여전히 더욱 사랑한다, 나의 꿈 속에 너는 남아 있단다.

출처: https://foneclassic.tistory.com/174 [포네클래식]

 

https://www.youtube.com/watch?v=CVpjQPU4A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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