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보현(普賢)보살은 동방세계에서 헤아릴 수 없는 보살들 과 함께 사람들에 에워싸여 존경을 받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는 온갖 국토를 진동시키고 연꽃의 비를 내리며 수백 수천의 악기를 연주시키면서 보살의 위대한 위력, 위대한 신변(神變), 위대한 신통력, 위대한 존엄, 위대한 삼매의 힘을 보이고, 위 대한 기적을 보이면서 많은 천신들, 용, 야차, 건달바, 아수 라, 가루다, 긴나라. 마후라가, 인간과 인간 이외의 것들에 둘 러싸여 존경받고 있었다. 이처럼 사고를 초월한 신통력에 의한 기적을 보이면서 보현보살은 이 사바세계에 도착했다. 그는 산의 왕인 그리드라쿠타 산으로 가서 세존이 계시는 곳 에 가까이 가자,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대고 예배한 뒤 세존 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돈 다음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 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위덕상왕(寶威德上王)여래의 불국토로 부터 왔사옵니다. 이 사바세계에서 ‘바른 가르침의 백련’이라 는 법문을 설한다는 말을 듣고 그 법문을 듣기 위해 석가여래 께로 왔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수백 수천의 이 모든 보살들도 그 법문을 듣기 위해 왔사오니, 세존께서는 부디 이 보살들을 위해 그 법문을 설해 주시옵소서.” 이 말을 듣고 세존께서는 보현보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보살들은 간단히 설명하면 금방 진리를 이해 할 수 있는 이들인데, ‘바른 가르침의 백련’이라는 법문은 순 수한 진실이니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 보살들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이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비구, 비구니, 신남, 신녀 들은 ‘바른 가르 의 백련’이라는 법문에 안주시키기 위해 세존께서는 보현보살 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네 가지의 특성을 갖춘 선여인은 이 ‘바른 가르 침의 백련’이라는 법문을 손에 넣을 것이다. 네 가지란 세존의 가호를 받게 되는 것, 선근을 심은 이가 되는 것, 바른 방향으 로 결정된 사람들 속에 들어가는 것, 모든 중생들을 수호하기 위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향해 발심하는 것, 이 네 가지다. 선남자여, 네 가지 특성을 갖춘 여성은 ‘바른 가르침의 백련’ 이라는 법문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때 보현보살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후세에 5백 년 동안 이 경전을 수지하는 비구들을 수호하고 행복하게 해주며 벌을 받지 않게 하고 독이 퍼지지 않도록 하겠사옵니다. 어떤 이도 그 설법자들의 허점을 노려 덤벼들지 않도록 하고 마왕과 마왕의 아들, 마계에 속하 는 천자들, 마왕의 딸, 마왕의 권속들이 허점을 노려 덤벼들지 않도록 할 뿐만 아니라, 두 번 다시 마왕의 무리로부터 괴롭힘 을 당하지 않도록 언제나 그 설법자를 수호하겠사옵니다. 또 천자들, 야차, 아귀, 푸타나, 크리티야, 베타다가 설법자의 허 점을 노려 덤벼들지 않도록 언제나 끊임없이 설법자를 수호하 겠사옵니다. 그리고 설법자가 이 법문에 대해 사색의 수행에 전념해서 경행(經行)장소로 갈 때, 저는 상아가 여섯 개인 왕 후같은 흰 코끼리를 타고 보살들에 둘러싸여 이 법문을 지키기 위해 설법자에게로 다가가겠사옵니다. 설법자가 이 법문에 대 한 사색의 수행에 전념하고 있을 때, 이 법문 중 한 구절이나 한 자라도 빠졌다면, 저는 상아가 여섯 개인 왕후 같은 흰 코 끼리를 타고 설법자 앞에 나타나 이 법문을 빠짐없이 복창하겠 사옵니다. 그러면 그 설법자는 제 모습을 보고 이 법문을 빠짐 없이 들었기 때문에, 만족해서 기뻐하며 이 법문에 더욱 정진 노력할 것이옵니다. 저를 보자마자 삼매를 얻을 것이며, 선 (旋)이라는 다라니, 백천만억선(百天萬億旋)이라는 다라니, 법 음방편(法音方便)이라는 다라니를 얻을 것이옵니다. 또 세존이시여, 후세 5백 년 동안 비구, 비구니, 신남, 신녀 의 누구라도 이 경전을 수지 독송해서 옮겨 적고 이 법문을 위 해 21일 동안 경행 장소에서 노력한다면 저는 모든 중생들이 보고 기뻐하는 저의 몸을 나타내겠사옵니다. 상아가 여섯 개인 흰 코끼리를 타고 보살들에 둘러싸여 꼭 21일째에 그 설법자들 의 경행 장소에 가서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해서 기쁘게 하겠사 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라니를 주고, 누구로부터도 폭력을 당하지 않게 하고, 인간과 인간 이외의 것에게 허점이 잡히지 않게 하며, 부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그들을 수호하고 행복하게 해주며, 벌을 받지 않도록 하고, 독이 퍼지 지 않도록 하겠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설법자들에게 이런 다라니의 주문을 주겠사옵니다. 세존이시여, 그 다라니의 주문은 이와 같사옵니다.
아단테, 단다 파티, 단다 아발타니, 단다 크샤레, 단 다 수다리, 수다리, 수다라 파티, 붓다 파슈야네, 살 바 다라니, 아발타니, 산발타니, 상가 파리크시테, 상가 닐가타니, 다르마 파리크시테, 살바 삿트바 루 타 카우샬야 아누가테, 싱하 비크리디테, 아누발테, 발타니, 발타리, 스바하
세존이시여, 이 다라니의 주문이 그 보살의 귀에 들리는 것 은 보현보살인 저의 가호력 때문이옵니다. 또 세존이시여, 이 ‘바른 가르침의 백련’이라는 법문이 사바 세계에서 퍼져 어떤 보살들의 손에 있다면, 그 설법자들은 보 현보살의 위력과 위광에 의해 이 법문이 우리들 손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그 중생들은 보현행을 닦 은 이가 될 것이며, 많은 부처님들 아래에서 선근을 심은 이가 될 것이며, 여래께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실 것이옵니다. 세존이 시여, 이 경전을 옮겨 적어 수지하는 이는 저에게 기쁨을 안겨 줄 것이며, 옮겨 적는 이도 그 의미를 깨달은 이도 모두 죽어 서 삼십삼천의 신들의 일원으로 태어날 것이옵니다. 태어나자 마자 8만 4천의 천녀들이 다가올 것이며, 천자가 된 그들은 보 석으로 된 관을 쓰고 천녀들 속에서 지낼 것이옵니다. 선남자들이여, 이 법문을 옮겨 적기만 해도 이런 복덕이 있 을 정도이니, 이 법문을 가르치고 독송하고 사색하며 심혈을 기울이는 이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선남 자들이여, 이 ‘바른 가르침의 백련’이라는 법문을 전심을 기울 여 주의 깊게 옮겨 적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흩트리지 않고 옮겨 적는 이에게는 천 분이나 되는 부처님들께서 손을 뻗치실 것이며, 임종 때에는 천 분의 부처님들께서 그의 눈앞에 나타 나실 것입니다. 그는 악도에서 괴로움을 겪지 않고, 도솔천에 태어날 것입니다. 거기서는 32상(相)을 갖춘 미륵보살이 보살 들에 둘러싸여 수백 수천의 천녀들의 존경을 받으며, 가르침을 설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선남자나 선여인은 누구나 이 ‘바른 가르침의 백련’이라는 법문을 경건한 태도로 옮겨 적고 가르치고 독송하고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법문을 옮겨 적고 가르치고 독송하고 수습하며 마음을 기울이면 헤아 릴 수 없는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까닭에 현자인 선남자, 선여인은 ‘바른 가 르침의 백련’이라는 법문을 수지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들은 많은 공덕을 쌓을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가호 력으로 이 법문이 사바세계에서 유포되도록 해주시옵소서. 저 는 먼저 이 법문을 수호하겠사옵니다.” 석가여래께서는 보현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구나, 보현이여, 그대가 세상을 자비로이 여겨 그렇 게 많은 이들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수행하고 사고를 초월한 덕성을 갖추며, 그대가 깊은 서원과 발심으로 이 설법자들을 수호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누구든 보현보살의 이름을 소중히 하는 이들은 석가여래를 뵙는 것이 되며, 석가 세존으로부터 친히 ‘바른 가르침의 백련’이라는 법문을 들은 것이 되며, 석가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되며, 석가여래께서 설 하실 때 칭찬을 받은 것이 되며, 이 법문을 듣고 기뻐한 것이 되며, 석가여래께서 머리를 쓰다듬으신 것이 되며, 석가여래께 서 그들에 의해 법의를 입힌 것이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보현이여, 선남자, 선여인들은 여래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 했으며, 순세외도(順世外道)를 좋아하지 않고, 시서(詩書)에ㅤ 몰두하는 이를 좋게 생각하지 않고, 연예인, 격투하는 이, 권 투하는 이, 술 장사, 양고기 장사, 새고기 장사, 돼지고기 장 사, 매춘숙의 주인들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이런 경전을 듣거나 옮겨 적거나 수지하거나 독송하는 외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이들은 본성적으로 덕성을 갖추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이들은 각자 독특한 근원적인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 복덕의 힘을 얻고, 중생들이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또 이 경전을 수지하는 비구들은 탐욕, 증오, 무지, 질투, 인색함, 모욕, 교만심 잘못된 자책으 로 고통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보현이여, 그 설법자들은 자신이 얻은 것에 만족할 것이다. 보현이여, 후세 5백 년 동안 ‘바른 가르침의 백련’이라는 법문 을 수지하는 비구들을 보면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해야 할 것 이다. ‘이 선남자들은 보리좌에 나아가 악마의 사악한 무리들을 물 리치고 법륜을 굴릴 것이다. 이분은 가르침의 큰북을 두드리고 가르침의 법나패를 울리고 가르침의 비를 뿌리며 가르침의 사 자좌에 오를 것이다.’ 후세 5백 년 동안 이 법문을 수지하는 비구들은 욕심이 없을 것이다. 법의나 탁발에 욕심부리지도 않고, 마음이 곧으며 세 가지의 해탈을 얻은 분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당장 생기는 현 세의 과보와 점차 생기는 내세의 과보가 있을 것이다. 이 경전 을 수지하는 설법자인 비구들을 미혹하는 이들은 내세에는 장 님로 태어날 것이며, 이 경전을 수지하는 비구들을 비난한 사 람들의 몸에는 금생에 반점이 생길 것이다. 또 이 경전을 옮겨 적는 이들을 놀리고 업신여기는 이들은 이가 부러지고 빠지며, 입술은 엉망이고, 코는 비뚤어지고, 손발과 눈은 거꾸로 될 것 이며, 몸에서는 악취가 나고, 종기나 부스럼, 습진이 온몸에 퍼질 것이다. 이 경전을 옮겨 적는 이, 독송하는 이, 수지하는 이, 해설하는 이에게 진심에서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말을 함부 로 하는 이들은 아주 무거운 죄업을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보현이여, 그러니 사람들은 여래께 경의를 표하는 것과 마찬가 지로 이 법문을 수지하는 비구들을 보면 멀리서 일어나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이 ‘보현보살’의 장이 설해졌을 때, 강가 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보살들이 백천만억선이라는 다라니를 얻었다.
무릇 사물을 원인이 있어 생기지만 그 원인도 여래는 설하셨다. 그리고 그 소멸도. 위대한 사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숯불이 활활타는 불구멍 깊이 잠겨들고 칼산(劍山)을 밟게 되더라도 선남자는 이 경전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이 ‘바른 가르침의 백련’의 법보(法寶)를 옮겨 적으면 그 복덕으로 세상사람들이 이 가르침의 보물을 담는 그릇이 될 것이다.
‘바른 가르침의 백련’은 최상의 법문이고 가장 훌륭한 경전 이며 광대하며 보살을 위한 가르침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지 지하시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들의 가장 깊은 가르침이며, 모 든 부처님께서 비장(秘藏)하시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께서 설 하신 것이며, 모든 부처님의 비밀의 도리이며, 모든 부처님의 보리좌이며,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의 바퀴가 도는 것(轉法輪) 이며, 모든 부처님의 완전무결한 유신(遺身)이며, 모든 절묘한 방편이며, 일승(一乘)을 설하는 가르침이며, 최고의 진실을 실 현하는 가르침이다. 이 ‘바른 가르침의 백련(妙法蓮華經)’이 끝났다.
1권 또는 2권. 40권본 『화엄경』 안에 수록되어 있으며, 정식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다. 이 책은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에 의해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53선지식(善知識)을 차례로 찾아가서 도를 묻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찾았을 때 보현보살이 설한 법문을 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옛부터 보현보살의 행원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여 방대한 『화엄경』에서 따로 분리시켜서 이 한 품을 별도 책으로 간행, 유포시켰다.
그 내용은 부처의 공덕을 성취하고자 하면 보현보살의 열 가지 큰 행원을 닦아야 함을 밝힌 것이다.
먼저 보현보살의 10대원이,
①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
② 부처를 찬탄하는 것,
③ 널리 공양(供養)하는 것,
④ 업장(業障)을 참회하는 것,
⑤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
⑥ 설법하여 주기를 청하는 것,
⑦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
⑧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
⑨ 항상 중생을 수순(隨順)하는 것,
⑩ 지은 바 모든 공덕을 회향하는 것임을 밝힌다.
그런 후에 이들 열 가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하나씩 구분하여 밝히고 있다. 즉 예배·찬탄·공양·참회 등 어느 하나를 행할지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행하되 허공계(虛空界)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업(衆生業)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 때까지 행하여야 하며, 그 생각이 끊어짐이 없을 뿐 아니라 몸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10대원의 실천이 지니는 공덕이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음과, 이 10대원을 듣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하여 설하는 사람의 공덕이 어떠한지를 밝힌 뒤, 이 모든 사람들이 마침내 생사에서 벗어나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됨을 밝혔다.
본문에 이어서 보현보살이 본문의 뜻을 요약하여 읊은 게송(偈頌)을 수록하였다. 마지막으로 선재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불제자들이 이를 받들어 행하였음을 밝히고 끝을 맺었다.
이 책은 불교의 신행(信行)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구체적이고도 쉽게 밝히고 있다. 화엄종이 크게 교세를 떨쳤던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이 책의 실천을 중요시하였고, 고려의 균여(均如)는 이 책을 근거로 하여 「보현십종원왕가(普賢十種願往歌)」를 지어 유포하였다.
보리(菩提)는팔리어와산스크리트어에서 수행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참다운 지혜[1][2]·깨달음또는앎의 경지를 일컫는 단어 bodhi(बोधि)에서 나왔다.[3][4]이는 깨어나다, 알게 되다, 알리다, 알다, 혹은 이해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어근 budh로부터 형성된 추상 명사로,[5]팔리어 동사 bujjhati나 산스크리트어 동사 bodhati 및 budhyate 등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보제(菩提)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보리는고타마 붓다와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나한들이 얻었다고 하는 깨달음, 또는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 과정을 일컫는다.[3]이는우주의 참 모습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묘사되기도 하며, 보리를 얻은 뒤에는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난다고 가르친다. (해탈참고.)
(중국어)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불교용어해설] 보리(普提)
「보리」는 범어의 보오디(bodhi)를 적은 우리 불교의 관용어인데 한문으로는 「普提」라고 적는다. 원 뜻은 깨달았다는 의미다. 지혜 또는 도(道)라고도 번역된다.
이 깨달음은 부처님 뿐만 아니라 성문·연각 모든 tdj자가 성스러운 도과를 얻은 것 까지도 의미하지만 그중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이 최상이으로 「보리」라고 일러오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득각 또는 무상보리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리」는 부처님의 무상보리를 의미한다.
이 깨달음을 구하여 수행하는 수행자를 보살이라고 하는데 보살은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이라는 뜻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인도 부다가야 숲에서 아슈바타라는 나무밑에 앉아 수행하여 무상보리를 이루셨는데 그 나무를 보리수. 부다가야를 보리도량이라고 한다. 어쨌든 보리는 세존의 깨달음과 관련된 모든 여건에 붙여서 즐겨 쓰는 말이 됐다.
그런데 부처님의 깨달으신 보리란 무엇일까. 「이것이 보리」다 하고 과실을 손을 쥐어주듯이 일러 주어도 알기 어려운 것이 보리다. 그러나 방대한 경전에 나타난 것을 유추하여 보리의 내용을 대강 말하기도 한다. 사제(四諦), 십이연기(十二緣起), 중도(中道)의 가르침이라든가 무상(無常), 무아(無我) 열반의 가르침이라든가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교설 등을 들어 보리의 내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산스끄리뜨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라 번역된다.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한역되며, 빠알리 원어(anuttara sammasambodhid)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번역된다. 한문의 음사표기는 아누다라삼막삼보제(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지만, 속화된 발음의 변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읽는다.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금강경』의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에서 ‘붓다가 설하시길 붓다가 연등불이 계신 곳에서 무유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佛於然燈佛所 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아함경(阿含經)』 계열의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서 붓다가 사성제를 통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설한 장면을 비롯해 경전에서 무수히 언급되고 있다.
산스끄리뜨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라 번역된다.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한역되며, 빠알리 원어(anuttara sammasambodhid)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번역된다. 한문의 음사표기는 아누다라삼막삼보제(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지만, 속화된 발음의 변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읽는다.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금강경』의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에서 ‘붓다가 설하시길 붓다가 연등불이 계신 곳에서 무유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佛於然燈佛所 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아함경(阿含經)』 계열의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서 붓다가 사성제를 통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설한 장면을 비롯해 경전에서 무수히 언급되고 있다.
산스끄리뜨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라 번역된다.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한역되며, 빠알리 원어(anuttara sammasambodhid)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번역된다. 한문의 음사표기는 아누다라삼막삼보제(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지만, 속화된 발음의 변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읽는다.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금강경』의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에서 ‘붓다가 설하시길 붓다가 연등불이 계신 곳에서 무유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佛於然燈佛所 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아함경(阿含經)』 계열의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서 붓다가 사성제를 통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설한 장면을 비롯해 경전에서 무수히 언급되고 있다.
산스끄리뜨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라 번역된다.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한역되며, 빠알리 원어(anuttara sammasambodhid)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번역된다. 한문의 음사표기는 아누다라삼막삼보제(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지만, 속화된 발음의 변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읽는다.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금강경』의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에서 ‘붓다가 설하시길 붓다가 연등불이 계신 곳에서 무유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佛於然燈佛所 無有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아함경(阿含經)』 계열의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서 붓다가 사성제를 통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설한 장면을 비롯해 경전에서 무수히 언급되고 있다.
인연(因緣)에서 인(因)은 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이며 직접적인 원인을 가리키고, 연(緣)은 이를 돕는 외적이며 간접적인 원인을 가리킨다.[17] 일반적으로는 양자를 합쳐 원인의 뜻으로 쓴다.[17]
연기(緣起)는 영어로는 "dependent arising (의존하여 생겨남)"[18], "conditioned genesis (조건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 (의존된 상호발생)"[19][20] 또는 "interdependent arising (상호의존하여 생겨남)"[21] 등으로 번역되는데, 연기(緣起)의 법칙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라고 서술된다.[1] 이 서술에서 "이것"과 "그것"의 두 항목은 서로 연기관계(緣起關係), 즉 인과관계(因果關係)에 있다고 말한다.[1] 즉, "그것"은 "이것"을 의존하여(조건으로하여) 일어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제설(四諦說)인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하는 항목을 합하여 병렬한 것이다.[1]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 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 연기(緣起)하는 항목들로는 이들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열 두 항목을 사용하여 설명된 연기설이 12연기설이다.[1]
이 경전들에 따르면,연기법특히유전연기(流轉緣起)의 정의 즉법(法)은연(緣)과기(起)를 뜻하는데, '연(緣)'이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此有故彼有]는 것을 의미하고, '기(起)'란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此起故彼起]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연(緣)'은무명연행(無明緣行) ·행연식(行緣識) ·식연명색(識緣名色) ·명색연6입(名色緣六入) ·6입연촉(六入緣觸) ·촉연수(觸緣受) ·수연애(受緣愛) ·애연취(愛緣取) ·취연유(取緣有) ·유연생(有緣生) ·생연노사(生緣老死)의 일련의인과관계적 과정을 말하고, '기(起)'는 이 과정을 통해추(愁: 걱정) ·탄(歎: 한탄) ·고(苦: 괴로움) ·우(憂: 근심) ·뇌(惱: 번뇌, 고요하지 못함)가일어나는것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뜻의 '연(緣)'과 '기(起)'를 총체적으로 간략히 말하면순대고취(純大苦聚) 즉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 또는 순수하게 큰 괴로움의 무더기 즉5취온(五取蘊)이형성[集]되는 것을 말한다.5취온이 형성된다는 것은생사윤회를 반복한다는 것을 뜻한다.[6][7][8][9]
인연(因緣)에서 인(因)은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이며 직접적인 원인을 가리키고, 연(緣)은 이를 돕는 외적이며 간접적인 원인을 가리킨다.[17]일반적으로는 양자를 합쳐원인의 뜻으로 쓴다.[17]
연기(緣起)는영어로는 "dependent arising (의존하여 생겨남)"[18], "conditioned genesis (조건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 (의존된 상호발생)"[19][20]또는 "interdependent arising (상호의존하여 생겨남)"[21]등으로 번역되는데,연기(緣起)의 법칙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라고 서술된다.[1]이 서술에서 "이것"과 "그것"의 두 항목은 서로연기관계(緣起關係), 즉인과관계(因果關係)에 있다고 말한다.[1]즉, "그것"은 "이것"을 의존하여(조건으로하여) 일어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사제설(四諦說)인고집멸도(苦集滅道)는집과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도와멸이라는 연기하는 항목을 합하여 병렬한 것이다.[1]여기에서집은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도는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고집멸도는고통의 원인이집착또는갈애이며고통을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도라는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연기(緣起)하는 항목들로는 이들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열 두 항목을 사용하여 설명된연기설이12연기설이다.[1]
연기설은, 일반적으로, 세계인생의 일반적인 생멸변화(生滅變化)의 제현상의 관계항목을 보여주는 12지(支 ·항목)의 연기로 설명된 철학적인 이론 또는 담론인 것처럼 보이기 쉬우나, 연기가 설명된 본래의 목적은 그러한 일반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고뇌가 생기고 또 어떠한 인연조건(因緣條件)에 의해서 고뇌를 면할 수가 있는가 하는, 인생의 현실을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또 그 현실을 초극(超克)하는 방법과 길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30]
연기설이 문제로 하고 있는 현상은 선악업(善惡業)과 그 과보(果報)로서의고락과 같은 종교적 ·윤리적인 가치관계의 현상이다.[30]그 경우 현상이 가치적으로 악화하는, 즉고(苦)가 생기(生起)하는 연기관계를유전연기(流轉緣起) 혹은연기의 순관(緣起의 順觀) 혹은순연기(順緣起)라고 한다.[30][31]
연기의 순관은 구체적으로는 "무명(無名)에 연(緣)해서행(行)이 있고 행에 연해서식(識)이 있으며 식에 연해서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에 연해서6입(六入)이 있으며 6입에 연해서촉(觸)이 있으며 촉에 연해서수(受)가 있고 수에 연해서애(愛)가 있고 애에 연해서취(取)가 있으며 취에 연해서유(有)가 있고 유에 연해서생(生)이 있으며 생에 연해서노사(老死)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의 갖가지고(苦)가 생긴다"라는 정형적(定型的)인 글로 표현되어 있다.[30]
한편, 연기의 순관은 현실의 노사(老死) 등의 고(苦)에서 소급해서 고의 근본으로서의 무명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며 그것이 본래의 모습이라고도 하는 견해가 있지만, 불교 경전에 설명된 정형적인 글로는 무명에서 고가 생겨나는 연기가 설명되어 있다.[30]
12연기설을 구성하는 열 두 항목 각각과 이들 간의 유전연기(연기의 순관: 고통과 번뇌가 계속되게 하는 인과관계)는 다음과 같다. 아래에서 각 지분에 대한 설명은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과 《연기경(緣起經)》에 나타난고타마 붓다의 설명, 그리고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등에 나타난 현대 학자들의 해석이다.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무명은 아래의 목록에 나타난 것들을 통칭한다.[32][33]무명에 대한 설명에서부지(不知) 즉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데, 불교에서앎[知]이란정지(正知) 즉바른 앎을 말하는 것으로,앎[知] 또는정지는여실정행(如實正行) 또는정행(正行)과 동의어이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앎[知]이란 불교의진리즉4성제·12연기등의이치에 대한 이론적인앎에 실천이 더해져서획득하고성취하게 된 실천적인앎을 말한다.[34][35][36][37][38][39]역으로 그리고 엄격히 말하자면, 바른 행위 또는 바른 실천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불교에서 정의하는앎[知] 또는정지(正知)가 아니다. 다만, 좀 더 완화된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론적인앎이 실천적인앎의 출발점 또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이론적인앎도 실천적인앎[知] 또는정지(正知)의 일부이다. 즉,유루혜인3혜가운데문혜와사혜도, 비록세간의 정견에 포함되는 것이기는 하지만,정견에 포함된다.
과거[前際]를 알지 못하는 것[不知],미래[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과거와미래[前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
죄가 됨[有罪]과죄가 되지 않음[無罪], 익혀야 할 것[習]과 익히지 않아야 할 것[不習],열(劣: 저열한 것)과승(勝: 뛰어난 것),염오(染污)와청정(清淨), 그리고 이들의분별(分別: 식별하는 것, 식별력)과연기관계[緣起]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이들 모두를 남김없이 즉 완전히 알지 못하는 것[皆悉不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것[不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보지 못하는 것[不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의 앎[知: 실천적 앎]에 대해서라도 '간격없이 동등함[無間等]' 즉 '완전한계합'이 없는 것[無無間等],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고 컴컴한 것[癡闇],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밝음이 없는 것[無明],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크게 어두운 것[大冥]
연기경
《연기경》의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무명은 다음을 뜻한다.[41][42]앞의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에서는무명에 대한 설명에서부지(不知) 즉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 반면, 《연기경》에서는무지(無知) 즉 '앎이 없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과거[前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無知],미래[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과거와미래[前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안[內]에 대해 앎이 없는 것,밖[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안팎[內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업(業)에 대해 앎이 없는 것,이숙(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업과이숙[業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불보[佛]에 대해 앎이 없는 것,법보[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승보[僧]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고제[苦]에 대해 앎이 없는 것,집제[集]에 대해 앎이 없는 것,멸제[滅]에 대해 앎이 없는 것,도제[道]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원인[因]에 대해 앎이 없는 것,결과[果]에 대해 앎이 없는 것,원인이 일으켜생겨나는온갖법(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연(緣), 이생(已生: 생겨나서 지금 존재하는 것) 혹은6촉처(六觸處: 6입, 6처, 6근)에 대해여실히 통달하는 앎이 없는 것[如實通達無知], 즉연(緣), 이생(已生) 혹은6촉처(六觸處)를진리[實]에계합[如]하는 상태에 있게끔 제어[通達]하지 못하는 것[無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여실한 앎이 없는 것[如實無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바른 견해가 없는 것[無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현관이 없는 것[無現觀],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어리석은 것[愚癡],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밝음이 없는 것[無明],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몹시 캄캄한 것[黑闇]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행(行)은 행위와 그 행위 경험의 축적(蓄積)을 뜻한다.[1]또는, 다른 학자에 따르면,행(行)은 조건지워진 상태 또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특히 정신적인 기질 또는 성향을 의미한다.[54]또한 현대의 승려비쿠 보디(Bhikkhu Bodhi)에 따르면,행은 능동적인 측면에서 의지적인 행위도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정신적인 기질 또는 성향은 의지적인 행위의 결과로서 형성되고 또 현재의 의지적인 행위는 미래의 의지적인 행위를 일으키는인과연이 되기 때문이다.[55]
그리고,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를 때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마음(의식)은행위[行, 業] 또는운동을 바탕하여발생한다는 것이다. 근원적연기관계에서 볼 때,마음(의식)이행위를 낳는 것이 아니라행위가마음(의식)을 낳는다는 것이다. 즉,인간을 포함한 모든유정이 행하는행위즉몸·말또는뜻으로 행하는행위는 단순히행위자체에 그치지 않으며 반드시 그유정속에서 어떤마음(의식)을 낳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식(識)은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의전5식(前五識)에 의한감각작용과제6의식에 의한 지각(知覺) ·추리(推理) ·기억(記憶) ·판단(判斷) 등 일체의의식작용및 이러한 작용을 하는 주체적존재를 총칭하는 것으로서, 과거의 모든 행위[行]가잠재의식이 되어서 작용하게 된 것이다.[1]
입처(入處)라는 낱말은입(入)과처(處)가 합쳐서 이루어진 낱말이다.입(入)은 섭입(涉入: 거두어들임) 또는 촉입(趨入: 재촉하여 들임)의 뜻으로6근(六根)과6경(六境)이 서로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가리킨다.처(處)는 소의(所依) 즉 발동근거 ·의지처 ·도구라는 뜻으로,6경에 대하여6식이 생겨날 때6근이소의즉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입처(入處)는6식의 수동적 작용이라는 입장에서는6근과6경이 서로를 거두어 들여서6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또한,6식의 능동적 작용이라는 입장에서는,입처(入處)는6식이6근을 통해6경을거두어들임으로써6경을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74][75][76]여기서 '인식한다는 것'은대상에 대한앎또는요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대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마음작용들이일어나는것도 포함하는 말이다.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면,처(處)는생장문(生長門)을 뜻하는 것으로,마음과마음작용이생겨나게하고증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뜻한다.[77][78]즉,6근은6식즉마음의 단순한 인식도구가 아니다.6근은마음의 인식도구일 뿐만 아니라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마음작용을현행하게 하고 그 세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6근가운데의근(意根)의 경우 이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6내입처(六內入處): 6가지내적인입처(入處).6식이6경을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6식과 그 관련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내적인어떤 것
안입처(眼入處):눈[眼]이라는 입처.안식의 입처.안식이색경(색깔과 형태)을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안식과 그 관련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이입처(耳入處):귀[耳]라는 입처.이식의 입처.이식이성경(소리)을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이식과 그 관련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비입처(鼻入處):코[鼻]라는 입처.비식의 입처.비식이향경(냄새)을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비식과 그 관련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설입처(舌入處):혀[舌]라는 입처.설식의 입처.설식이미경(맛)을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설식과 그 관련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신입처(身入處):몸[身]이라는 입처.신식의 입처.신식이촉경(감촉)을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신식과 그 관련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의입처(意入處):뜻[意]이라는 입처.의식의 입처.의식이법경(법, 정신적 존재, 즉명색의명)을 비롯한6경을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의식과 그 관련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명색연6입(名色緣六入) 또는연명색6입(緣名色六入), 즉명색(名色)이 있으므로6입(六入)이 있다는 것은심신(心身)의그릇된상태 즉 심신의 부조화가 있기 때문에6입즉6처즉6근의그릇된상태가생겨나게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6식즉마음이6경을인식할 때6근이 인식도구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생겨나기도 하고 혹은마음과마음작용을 생겨나게 하고 증장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때로는그릇된방향으로 생겨나게 하고 증장시킨다는 것을 뜻한다.명색연6입(名色緣六入) 또는연명색6입(緣名色六入)은 또한 이미발생한6입즉6처즉6근의그릇된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원인이 되는심신(心身)의그릇된상태 즉 심신의 부조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순대고취(純大苦聚) 즉5취온이형성[集]되어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6촉신(六觸身): 6가지촉(觸)들, 6가지촉(觸)의 집합;6촉(六觸)은6근·6경·6식의화합들을 말하고, 6촉신(六觸身)은 이러한화합들의 집합을 총칭한다. 6촉과 6촉신은 사실상 같은 말이며, 6촉은 6촉신의 줄임말이라 할 수 있다.6근·6경·6식의화합의 상태는6식즉인식대상에 대한 6가지인식또는요별가운데 개별 또는 다수가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안촉신(眼觸身):안촉(眼觸)들,안촉(眼觸)의 집합;안촉(眼觸)은안근·색경·안식의화합을 말한다. 이러한화합의 상태는안식즉인식대상의색경(색깔과 크기와 모습)에 대한인식또는요별이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눈으로대상의색깔과크기와모습을 보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촉신(耳觸身):이촉(耳觸)들,이촉(耳觸)의 집합;이촉(眼觸)은이근·성경·이식의화합을 말한다. 이러한화합의 상태는이식즉인식대상의성경(소리)에 대한인식또는요별이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귀로대상의소리를 듣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비촉신(鼻觸身):비촉(鼻觸)들,비촉(鼻觸)의 집합;비촉(鼻觸)은비근·향경·비식의화합을 말한다. 이러한화합의 상태는비식즉인식대상의향경(냄새)에 대한인식또는요별이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코로대상의냄새를 맡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설촉신(舌觸身):설촉(舌觸)들,설촉(舌觸)의 집합;설촉(舌觸)은설근·미경·설식의화합을 말한다. 이러한화합의 상태는설식즉인식대상의미경(맛)에 대한인식또는요별이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혀로대상의맛을 감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신촉신(身觸身):신촉(身觸)들,신촉(身觸)의 집합;신촉(身觸)은신근·촉경·신식의화합을 말한다. 이러한화합의 상태는신식즉인식대상의 촉경(촉감)에 대한인식또는요별이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몸으로대상의촉감을 감촉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의촉신(身觸身):의촉(身觸)들,의촉(身觸)의 집합;의촉(身觸)은 의근 ·법경 ·의식의화합을 말한다. 이러한화합의 상태는의식즉인식대상의법경(정신적 측면)에 대한인식또는요별이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의식으로대상의 정신적 측면을 감지 또는요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의식즉제6의식은의근을 통해 단지법경만을 요별하지 않으며의근을 통해5경에 대해서도 요별하는데, 이 경우의촉은의근·6경·의식의화합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화합의 상태는인식대상에 대한제6의식의 전체적 ·종합적인식또는요별이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제6의식이대상을 전체적 ·종합적으로 감지 또는요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6입연촉(六入緣觸) 또는연6입촉(緣六入觸), 즉6입(六入)이 있으므로촉(觸)이 있다는 것은, 촉은 마음과 항상 같이 일어나는 마음작용(변행심소또는대지법)으로, 그 자체로서는 바르지도 그릇되지도 않은, 선도 불선도 아닌 무기이지만,6입즉6처즉6근의그릇된상태가 있기 때문에촉의그릇된상태가생겨나게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진리에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의근의6근, 즉진리에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눈·귀·코·혀·몸·뜻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상태의근·경·식3사화합'이 생겨난다. 특히, 마지막의의근또는뜻은6식이과거로낙사한 것, 즉 과거 경험의 총체를 말한다. 이와 같이과거의 행위들은 누적이 되어현재의6근의 상태를 형성하고6근의 작용의발동근거가 되는데, 현재의그릇된상태의6근은 '그릇된상태의3사화합'이 생겨나게 한다. 그리고 '그릇된상태의3사화합'은대상에 대한현행하는인식이대상에 대한 진실한인식즉대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인식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초기불교를 비롯한 불교 일반에서는 이러한 상태를전도(顚倒)라고 하고, 부파불교(상좌부와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교학(아비달마)에서는비리작의(非理作意: 그릇된작의,팔리어:ayoniso-manasikāra) 또는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라 하고, 특히 대승불교의유식유가행파에서는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상태라고 하고선종에서는 망상(妄想)이라고 한다.
고타마 붓다는 《디가 니까야》 제22경 〈대념처경〉에서열반을증득하기 전의 상태 즉 유전연기의 상태 즉무명에 바탕하여 비리작의에 처해 있는 상태 즉4성제의집제의 상태와, 환멸연기를 통해 즉37도품·6바라밀등의 수행을 통해 점차무명을 극복하여 비리작의를 짓는 상태를 여리작의(如理作意: 바른 작의,팔리어:yoniso-manasikāra)를 짓는 상태로 변형함으로써 마침내 열반을 증득한 후의 상태 즉 4성제의멸제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런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의근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의근의 대상인]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안식은 … 이식은 … 비식은 … 설식은 … 신식은 … 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
다시 비구들이여, 그런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소멸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의근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의근의 대상인] 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안식은 … 이식은 … 비식은 … 설식은 … 신식은 … 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위의 인용문에서 고타마 붓다는18계를 말씀하고 있는데, 18계는 곧일체법이다. 즉5온이고12처이며 일체의 만물이다. 고타마 붓다는 일체법이 조금의 변경도 없이 그대로번뇌이며 그대로열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번뇌와보리,윤회와열반,생멸과 진여사이에 일호의 간격도 없는 것이 제법실상이라는 것이다. 일호의 간격도 없으니 번뇌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고 보리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으므로, 번뇌도 없고 보리도 없으며, 윤회도 없고 열반도 없으며, 생멸도 없고 진여도 없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해,무명도 없고 무명의 다함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비리작의 즉 망상이 있으면 이들 사이에 간격이 생기고 점점 벌어져 번뇌도 있고 보리도 있으며, 윤회도 있고 열반도 있으며, 생멸도 있고 진여도 있게 된다. 달리 말해, 번뇌와 보리, 윤회와 열반, 생멸과 진여가 분리된다. 이 때문에 선종에서는 다만 망상을 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중관학파에서는 윤회와 열반 사이에 간격이 없는 것을승의제또는진제라고 하고 간격이 있는 것을속제라고 한다. 간격이 있거나 더 벌어지는 것을 선종에서는 특유의 용어로 분별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분별심이 없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비리작의 즉 망상이 있을 때,그만큼보리 ·열반 ·진여와 분리된 번뇌 ·윤회 ·생멸은 단지 심리의 일부인 논리 공간의 개념 즉 철학적 이해로서만이 아니라 실제의 현실로서 존재하고 현실의 삶에서6근을 통해마음이 실감하는그만큼의 실제의 추(愁: 걱정) · 탄(歎: 한탄) · 고(苦: 괴로움) · 우(憂: 근심) · 뇌(惱: 번뇌, 고요하지 못함)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고상속하는 것은엄격한 인과의 법칙,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혹업고의 3도의 법칙, (동시인과이건이시인과이건) 연기의 법칙을 따른다. 유전연기는 이와 같이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는 실제의 과정 즉 점점 더 제법실상에서 멀어져 가는 현실의 과정 즉 점점 더 그릇되어 가는 현실의 삶, 즉,출세간의 마음을 획득하지 못하여3유에서윤회하는 삶을 밝힌 것이다.
촉연수(觸緣受) 또는연촉수(緣觸受), 즉촉(觸)이 있으므로수(受)가 있다는 것은촉(觸)의그릇된상태가 있기 때문에수(受)의그릇된상태가생겨나게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현행하는인식이대상을 있는 그대로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있기 때문에그릇된상태의고수·낙수·불고불락수의3수(三受)가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그릇된상태의3수는전도된 상태의3수를 말하는 것으로고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낙또는불고불락의 대상이라 여기고,낙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고또는불고불락의 대상이라 느끼고,불고불락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고또는낙의 대상이라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12연기설의 12지 가운데 제1지분인무명(無明)과 제8지분인애(愛)와 제9지분인취(取)는선·불선·무기의3성에 따라 살펴보면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불선또는번뇌이다. 이에 비해 나머지 지분들은 그 성질이무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지분들은선이 될 수도 있고불선이 될 수도 있다. 즉 바른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그릇된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즉청정한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오염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12연기의유전연기는 이들 지분들이그릇된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며, 반면12연기의환멸연기는 이들 지분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무명(無明) ·애(愛) ·취(取)는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불선즉악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다만 이들을끊음으로써 더 이상마음이 이들과계합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을 뿐이다.[118]따라서환멸연기에서 이들 3가지 지분은변형[轉依]의 대상이 아니라단멸(斷滅) 즉원리(遠離: 멀리 떠남)의 대상이다.
취(取)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가짐또는취함인데,[125]모니어 모니어윌리엄스(Monier Monier-Williams)의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에 따르면 취(取)의산스크리트어원어우파다나(upādāna)의 일반적인 의미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취하는 행위(the act of taking for one's self),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전용(轉用: 쓸 곳에 쓰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려서 씀)하는 행위(appropriating to one's self), 받아들임(accepting), 허용함(allowing), 취함(taking), 획득함(acquiring) 등이 있고, 불교 용어로서는 '갈애즉탐욕이 원인이 되어존재를 꽉 붙잡는 것 또는집착하는 것으로유즉 새로운 태어남들의 원인이 되는 것(grasping at or clinging to existence caused by tṛṣṇā, desire, and causing bhava, new births)'이라고 정의되어 있다.[126]이 후자의 불교 용어로서의 정의는애연취(愛緣取)와취연유(取緣有)의 의미를 합쳐서취(取,upādāna)를 정의한 것이다.
현대의 불교 사전들에 따르면,취(取)라는 낱말의 일반적인 의미는집지(執持: 잡아서 가짐, 잡아서 지님, 잡은 후 버팀, 잡은 후 유지함[127]) ·집취(執取: 잡아서 가짐, 잡아서 취함, 잡은 후 받아들임, 잡은 후 의지함[128])인데, 좁은 뜻으로는집착(執著: 꽉 붙잡은 후 들러붙음,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함)이라는번뇌를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모든번뇌(煩惱)를 뜻한다. 즉, 후자의 넓은 뜻으로는취(取)는번뇌의 다른 말인데,4취(四取)라고 할 때의취(取)는 이 후자의 뜻이다. 그리고 어떤번뇌를취(取)라고 할 때는마음이 해당번뇌의대상을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떠나지못한다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다.[129][130][131]
4취(四取)는 모든번뇌를취(取)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 4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즉대상을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떠나지못한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번뇌를 4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설명하기 좋은 순서대로 말하면, 대체로견취(見取)는그릇된 견해에 들러붙어떠나지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계취(戒取) 또는계금취(戒禁取)는그릇된계율과그릇된금지조항에 들러붙어떠나지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욕취(欲取)는욕계의사물에 들러붙어떠나지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아취(我取) 또는아어취(我語取)는색계·무색계의사물에 들러붙어떠나지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다. 구체적으로는4취는 다음과 같다.[129][130]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계금취견(戒禁取見)은 한편으로는자재천등이 5온과 세계의 참된 원인이 아님에도 그것을 참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현행의 결과, 즉4성제가운데고(苦), 즉5취온에 대한 바른 관찰이 있을 때, 즉고제현관(苦諦現觀)이 있을 때 바로끊어지는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견고소단이다. 다른 한편으로는계금취견은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고행이 참된 길이 아닌데 그것을해탈과열반에 이르는 참된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견도소단이다. 따라서3계각각에계금취견이 있으므로계금취견으로는 총 6가지의 번뇌가 있다.[140](참고로5견과의는 모두견소단의번뇌이다.5견과의의 구체적인5부분별에 대해서는 '견소단(見所斷)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아취또는아어취에 속한색계와무색계의탐(貪) ·만(慢) ·무명(無明) ·의(疑)를5부에 따라 나누면,색계와무색계의탐·만·무명에는 모두5부가 존재하기 때문에색계에 15가지 번뇌가 있고무색계에 15가지의 번뇌가 있어 총 30가지의 번뇌가 있다.
의는 오직견소단의 번뇌이기 때문에5부가운데수도소단이 제외되므로색계에 4가지가 있고무색계에 4가지가 있어서 총 8가지의 번뇌가 있다.
따라서,아취또는아어취에는 총 38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들38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38사(三十八事)라고 한다. 즉,108번뇌중38번뇌가아취또는아어취에 속한다. (참고로5견과의는 모두견소단의번뇌이다.5견과의의 구체적인5부분별에 대해서는 '견소단(見所斷)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애연취(愛緣取) 또는연애취(緣愛取), 즉애(愛)가 있으므로취(取)가 있다는 것은번뇌또는불선인애(愛)가 있기 때문에108번뇌, 즉근본번뇌와수번뇌를 합한 온갖번뇌또는불선이생겨나게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욕계·색계·무색계의3계의사물들에 들러붙어서떠나지못하는 상태인욕애(欲愛) ·색애(色愛) ·무색애(無色愛)의3애(三愛)가 원인이 되어서 그러한 들러붙음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또한 더욱 고착화되는 것을 말한다.
애연취(愛緣取) 또는연애취(緣愛取)는 또한 이미발생한취(取) 즉3계의 갖가지번뇌가 있고3계의사물에 아주 확고히 들러붙어 있어서 이들로부터떠나는것이 거의 기대도 되지 않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원인이 되는욕애(欲愛) ·색애(色愛) 또는무색애(無色愛)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순대고취(純大苦聚) 즉5취온이형성[集]되어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취(取)는집착(執着) 또는번뇌(煩惱)를 의미하는데, 제8지분인애(愛)를연하여 일어나는,대상에 대한 강한 취사선택(取捨選擇)의 행동이다.[1]다른 학자에 따르면,취(取)는번뇌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아집(我執) 즉번뇌장(煩惱障)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142]아집(我執)은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는 견해로,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중생으로 하여금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뜻에서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의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5온으로 하여금5취온이 되게 하는 근본 요인은욕탐(欲貪)이다.고타마 붓다는 "5온이 곧취(取:구역에서는 受라고도 함)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5온이취(取)와 다른 것도 아니다.5온에욕탐(欲貪)이 있으면5온이 곧5취온이 된다[非五陰即受 亦非五陰異受 能於彼有欲貪者 是五受陰]"고 말하고 있다.[149][150][151][152]
취연유(取緣有) 또는연취유(緣取有), 즉취(取)가 있으므로유(有)가 있다는 것은욕취(欲取) ·견취(見取) ·계취(戒取) ·아취(我取)의4취(四取) 즉108번뇌에 물든 상태가 있기 때문에5취온이생겨나게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갖가지번뇌가 있기 때문에욕계의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색계의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무색계의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취연유(取緣有) 또는연취유(緣取有)는 또한 이미발생한유(有) 즉욕유(欲有) ·색유(色有) 또는무색유(無色有)로서의 존재가 있고 이러한 존재 상태를벗어나지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원인이 되는취(取)가 존재한다는 것, 즉 갖가지번뇌에 물든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연기관계를 통해 이제순대고취(純大苦聚) 즉5취온이형성[集]되었으며,5취온의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명근(命根)을득하는 것[得命根]은 생에서 생으로윤회할 때 즉5온이 생에서 생으로상속되고유전할 때전생(前生)에 쌓은 원인에 따라 일정한수명을 부여받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또한 그 수명 동안 살아가는 것 즉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란, 그 생애 동안무명(無明)에서유(有) 즉5취온으로 이어지는유전연기를 행하거나무명(無明)을단멸시키고 나아가유(有) 즉5취온을5무루온으로 변형시키는환멸연기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유연생(有緣生) 또는연유생(緣有生), 즉유(有)가 있으므로생(生)이 있다는 것은욕유·색유·무색유의3유가운데 어느 하나의 존재, 즉5취온의 상태가 있으므로, 즉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가 있으므로태어남이생겨난다는 것 즉 다른 일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5취온은 죽음으로 그냥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생으로상속되고유전된다는 것을 뜻한다.
유연생(有緣生) 또는연유생(緣有生)은 또한 이미발생한생이 있다면, 즉생사윤회를벗어나지못하여 받은 삶이 있다면, 즉 자신이3계를벗어나지못하는 상태라면, 반드시 그원인이 되는유(有)가 존재한다는 것, 즉5취온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연기관계를 통해순대고취(純大苦聚)의 상태의 즉5취온의 상태의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老) 즉늙음은 털이 하얗게 세고 정수리가 벗겨지며, 가죽이 늘어지고5근[根]이 문드러지며, 4지[支]가 약해지고 등이 굽어지며, 머리를 떨어뜨리고 끙끙 앓으며, 숨이 짧아져 헐떡이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몸이 검게 변하며, 온몸에 저승꽃이 피며, 정신이 희미해져 멍청히 있으며, 거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지는 것을 말한다.[159][160]
사(死) 즉죽음은 각각의중생(衆生)이해당되는 무리로부터 사라지고 천이(遷移)하며, 몸이 무너지고,수(壽)가 다하고, 따뜻한 기운[火]이 떠나고,명(命)이 소멸하여,음(陰: 5온)을 버릴 때가 온 것을 말한다.[159][160]
생연노사(生緣老死) 또는연생노사(緣生老死), 즉생(生)이 있으므로노사(老死)가 있다는 것은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늙음과죽음이 있다는 것으로,열반에 이른 상태가 아닌 한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미발생한노사(老死) 즉늙음과죽음이 있다면, 반드시 그 기본 전제가 되는생(生) 즉태어남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연기관계를 통해순대고취(純大苦聚)의 상태의 즉5취온의 상태의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老) 즉늙음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변하며, 피부가 늘어지고 쭈그러지며, 온몸이 쇠약해지고 제 모습을 잃어가며, 몸과 등은 구부러지고 굽으며, 검버섯이 몸의 여기저기에 피어나며, 숨결은 가빠지며, 몸의 모양은 구부정해져서 지팡이에 의지하며, 정신은 혼미하고 몸은 파리하여 줄어들고 쇠퇴하며,5근[諸根]이 노화하여 기능을 상실해가며,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우며, 몸의 형태가 무너져 가는 것을 말한다.[161][162]
사(死) 즉죽음은 각각의유정(有情)이해당되는 무리로부터 마침내 사라지고 없어지며,수(壽)와 온기[煖]를 버리고,명근(命根)이 다하여 없어지고, 모든온(蘊: 5온)을 버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 그 운용[運]이 다한 것을 말한다.[161][162]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무명은 아래의 목록에 나타난 것들을 통칭한다.[32][33]무명에 대한 설명에서 부지(不知) 즉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데, 불교에서 앎[知]이란 정지(正知) 즉 바른 앎을 말하는 것으로, 앎[知] 또는 정지는 여실정행(如實正行) 또는 정행(正行)과 동의어이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앎[知]이란 불교의 진리 즉 4성제·12연기 등의 이치에 대한 이론적인 앎에 실천이 더해져서 획득하고 성취하게 된 실천적인 앎을 말한다.[34][35][36][37][38][39] 역으로 그리고 엄격히 말하자면, 바른 행위 또는 바른 실천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불교에서 정의하는 앎[知] 또는 정지(正知)가 아니다. 다만, 좀 더 완화된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론적인 앎이 실천적인 앎의 출발점 또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이론적인 앎도 실천적인 앎[知] 또는 정지(正知)의 일부이다. 즉, 유루혜인 3혜 가운데 문혜와 사혜도, 비록 세간의 정견에 포함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견에 포함된다.
과거[前際]를 알지 못하는 것[不知], 미래[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 과거와 미래[前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
죄가 됨[有罪]과 죄가 되지 않음[無罪], 익혀야 할 것[習]과 익히지 않아야 할 것[不習], 열(劣: 저열한 것)과 승(勝: 뛰어난 것), 염오(染污)와 청정(清淨), 그리고 이들의 분별(分別: 식별하는 것, 식별력)과 연기관계[緣起]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이들 모두를 남김없이 즉 완전히 알지 못하는 것[皆悉不知]
6촉입처(六觸入處)[40] 즉 6입(六入) 즉 6처(六處) 즉 6근(六根)을 여실히 즉 실답게 관찰하고 알지 못하는 것[不如實覺知], 즉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의근의 6근을 진리[實]와 계합[如]하는 상태에 있게끔 제어[覺知]하지 못하는 것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것[不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보지 못하는 것[不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의 앎[知: 실천적 앎]에 대해서라도 '간격없이 동등함[無間等]' 즉 '완전한 계합'이 없는 것[無無間等],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고 컴컴한 것[癡闇],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것[無明],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크게 어두운 것[大冥]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무명은 다음을 뜻한다.[41][42] 앞의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에서는 무명에 대한 설명에서 부지(不知) 즉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 반면, 《연기경》에서는 무지(無知) 즉 '앎이 없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과거[前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無知], 미래[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과거와 미래[前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안[內]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밖[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안팎[內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업(業)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이숙(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업과 이숙[業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불보[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법보[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승보[僧]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고제[苦]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집제[集]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멸제[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도제[道]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원인[因]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결과[果]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원인이 일으켜 생겨나는 온갖 법(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연(緣), 이생(已生: 생겨나서 지금 존재하는 것) 혹은 6촉처(六觸處: 6입, 6처, 6근)에 대해 여실히 통달하는 앎이 없는 것[如實通達無知], 즉 연(緣), 이생(已生) 혹은 6촉처(六觸處)를 진리[實]에 계합[如]하는 상태에 있게끔 제어[通達]하지 못하는 것[無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여실한 앎이 없는 것[如實無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바른 견해가 없는 것[無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현관이 없는 것[無現觀],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은 것[愚癡],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것[無明],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몹시 캄캄한 것[黑闇]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행(行)은 행위와 그 행위 경험의 축적(蓄積)을 뜻한다.[1] 또는, 다른 학자에 따르면, 행(行)은 조건지워진 상태 또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특히 정신적인 기질 또는 성향을 의미한다.[54] 또한 현대의 승려 비쿠 보디(Bhikkhu Bodhi)에 따르면, 행은 능동적인 측면에서 의지적인 행위도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정신적인 기질 또는 성향은 의지적인 행위의 결과로서 형성되고 또 현재의 의지적인 행위는 미래의 의지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인과 연이 되기 때문이다.[55]
여기서 신(身, 산스크리트어: kāya)은 이 단어의 일반적 의미인 몸 즉 신체의 뜻의 명사로 사용된 경우가 아니라, 복수 · 집합을 뜻하는 복수형 접미사 '~들'로서 사용된 경우이다. 따라서, 안식신은 안식들 또는 안식들의 집합을 뜻하는데, 온갖 시각적의식들의 집합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이식신·비식신·설식신·신식신은 각각 온갖 청각적·후각적·미각적·촉각적의식들의 집합을 말하며, 의식신은 온갖 정신적의식들의 집합을 말한다. 그리고 6식신(六識身)은 이들 6가지 식신(識身) 즉 이들 6가지 식(識)들의 집합을 말한다.[58][59] 이들 6가지 식신(識身)들은 일반적으로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이라고 불리며, 6식신(六識身)은 6식(六識)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를 때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마음(의식)은 행위[行, 業] 또는 운동을 바탕하여 발생한다는 것이다. 근원적 연기관계에서 볼 때, 마음(의식)이 행위를 낳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마음(의식)을 낳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정이 행하는 행위 즉 몸·말 또는 뜻으로 행하는 행위는 단순히 행위 자체에 그치지 않으며 반드시 그 유정 속에서 어떤 마음(의식)을 낳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식(識)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의 전5식(前五識)에 의한 감각작용과 제6의식에 의한 지각(知覺) · 추리(推理) · 기억(記憶) · 판단(判斷) 등 일체의 의식작용 및 이러한 작용을 하는 주체적 존재를 총칭하는 것으로서, 과거의 모든 행위[行]가 잠재의식이 되어서 작용하게 된 것이다.[1]
입처(入處)라는 낱말은 입(入)과 처(處)가 합쳐서 이루어진 낱말이다. 입(入)은 섭입(涉入: 거두어들임) 또는 촉입(趨入: 재촉하여 들임)의 뜻으로 6근(六根)과 6경(六境)이 서로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처(處)는 소의(所依) 즉 발동근거 · 의지처 · 도구라는 뜻으로, 6경에 대하여 6식이 생겨날 때 6근이 소의 즉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입처(入處)는 6식의 수동적 작용이라는 입장에서는 6근과 6경이 서로를 거두어 들여서 6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또한, 6식의 능동적 작용이라는 입장에서는, 입처(入處)는 6식이 6근을 통해 6경을 거두어들임으로써 6경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74][75][76] 여기서 '인식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앎 또는 요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대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 마음작용들이 일어나는 것도 포함하는 말이다.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면, 처(處)는 생장문(生長門)을 뜻하는 것으로, 마음과 마음작용이 생겨나게 하고 증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뜻한다.[77][78] 즉, 6근은 6식 즉 마음의 단순한 인식도구가 아니다. 6근은 마음의 인식도구일 뿐만 아니라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마음작용을 현행하게 하고 그 세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6근 가운데 의근(意根)의 경우 이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6내입처(六內入處): 6가지 내적인 입처(入處). 6식이 6경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6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어떤 것
안입처(眼入處): 눈[眼]이라는 입처. 안식의 입처. 안식이 색경(색깔과 형태)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안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이입처(耳入處): 귀[耳]라는 입처. 이식의 입처. 이식이 성경(소리)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이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비입처(鼻入處): 코[鼻]라는 입처. 비식의 입처. 비식이 향경(냄새)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비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설입처(舌入處): 혀[舌]라는 입처. 설식의 입처. 설식이 미경(맛)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설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신입처(身入處): 몸[身]이라는 입처. 신식의 입처. 신식이 촉경(감촉)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신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의입처(意入處): 뜻[意]이라는 입처. 의식의 입처. 의식이 법경(법, 정신적 존재, 즉 명색의 명)을 비롯한 6경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의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명색연6입(名色緣六入) 또는 연명색6입(緣名色六入), 즉 명색(名色)이 있으므로 6입(六入)이 있다는 것은 심신(心身)의 그릇된 상태 즉 심신의 부조화가 있기 때문에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6식 즉 마음이 6경을 인식할 때 6근이 인식도구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생겨나기도 하고 혹은 마음과 마음작용을 생겨나게 하고 증장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때로는 그릇된 방향으로 생겨나게 하고 증장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명색연6입(名色緣六入) 또는 연명색6입(緣名色六入)은 또한 이미 발생한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심신(心身)의 그릇된 상태 즉 심신의 부조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신(身, 산스크리트어: kāya)은 이 단어의 일반적 의미인 몸 즉 신체의 뜻의 명사로 사용된 경우가 아니라, 복수 · 집합을 뜻하는 복수형 접미사 '~들'로서 사용된 경우이다.[58][59] 그리고 촉(觸)은 마음작용들 가운데 하나로 근(根) ·경(境) ·식(識) 3사(三事)의 화합을 말한다.[84][85]
6촉신(六觸身): 6가지 촉(觸)들, 6가지 촉(觸)의 집합; 6촉(六觸)은 6근·6경·6식의 화합들을 말하고, 6촉신(六觸身)은 이러한 화합들의 집합을 총칭한다. 6촉과 6촉신은 사실상 같은 말이며, 6촉은 6촉신의 줄임말이라 할 수 있다. 6근·6경·6식의 화합의 상태는 6식 즉 인식대상에 대한 6가지 인식 또는 요별 가운데 개별 또는 다수가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안촉신(眼觸身): 안촉(眼觸)들, 안촉(眼觸)의 집합; 안촉(眼觸)은 안근·색경·안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안식 즉 인식대상의 색경(색깔과 크기와 모습)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눈으로 대상의 색깔과 크기와 모습을 보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촉신(耳觸身): 이촉(耳觸)들, 이촉(耳觸)의 집합; 이촉(眼觸)은 이근·성경·이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이식 즉 인식대상의 성경(소리)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귀로 대상의 소리를 듣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비촉신(鼻觸身): 비촉(鼻觸)들, 비촉(鼻觸)의 집합; 비촉(鼻觸)은 비근·향경·비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비식 즉 인식대상의 향경(냄새)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코로 대상의 냄새를 맡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설촉신(舌觸身): 설촉(舌觸)들, 설촉(舌觸)의 집합; 설촉(舌觸)은 설근·미경·설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설식 즉 인식대상의 미경(맛)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혀로 대상의 맛을 감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신촉신(身觸身): 신촉(身觸)들, 신촉(身觸)의 집합; 신촉(身觸)은 신근·촉경·신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신식 즉 인식대상의 촉경(촉감)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몸으로 대상의 촉감을 감촉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의촉신(身觸身): 의촉(身觸)들, 의촉(身觸)의 집합; 의촉(身觸)은 의근 · 법경 · 의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의식 즉 인식대상의 법경(정신적 측면)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의식으로 대상의 정신적 측면을 감지 또는 요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의식 즉 제6의식은 의근을 통해 단지 법경만을 요별하지 않으며 의근을 통해 5경에 대해서도 요별하는데, 이 경우 의촉은 의근·6경·의식의 화합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인식대상에 대한 제6의식의 전체적 · 종합적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제6의식이 대상을 전체적 · 종합적으로 감지 또는 요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6입연촉(六入緣觸) 또는 연6입촉(緣六入觸), 즉 6입(六入)이 있으므로 촉(觸)이 있다는 것은, 촉은 마음과 항상 같이 일어나는 마음작용(변행심소 또는 대지법)으로, 그 자체로서는 바르지도 그릇되지도 않은, 선도 불선도 아닌 무기이지만,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촉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진리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의근의 6근, 즉 진리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눈·귀·코·혀·몸·뜻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상태의 근·경·식3사화합'이 생겨난다. 특히, 마지막의 의근 또는 뜻은 6식이 과거로 낙사한 것, 즉 과거 경험의 총체를 말한다. 이와 같이 과거의 행위들은 누적이 되어 현재의 6근의 상태를 형성하고 6근의 작용의 발동근거가 되는데, 현재의 그릇된 상태의 6근은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이 생겨나게 한다. 그리고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은 대상에 대한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에 대한 진실한 인식 즉 대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초기불교를 비롯한 불교 일반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전도(顚倒)라고 하고, 부파불교(상좌부와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교학(아비달마)에서는 비리작의(非理作意: 그릇된 작의, 팔리어: ayoniso-manasikāra) 또는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라 하고, 특히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서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상태라고 하고 선종에서는 망상(妄想)이라고 한다.
고타마 붓다는 《디가 니까야》 제22경 〈대념처경〉에서 열반을 증득하기 전의 상태 즉 유전연기의 상태 즉 무명에 바탕하여 비리작의에 처해 있는 상태 즉 4성제의 집제의 상태와, 환멸연기를 통해 즉 37도품·6바라밀 등의 수행을 통해 점차 무명을 극복하여 비리작의를 짓는 상태를 여리작의(如理作意: 바른 작의, 팔리어: yoniso-manasikāra)를 짓는 상태로 변형함으로써 마침내 열반을 증득한 후의 상태 즉 4성제의 멸제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런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의근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의근의 대상인]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안식은 … 이식은 … 비식은 … 설식은 … 신식은 … 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
다시 비구들이여, 그런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소멸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의근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의근의 대상인] 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안식은 … 이식은 … 비식은 … 설식은 … 신식은 … 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위의 인용문에서 고타마 붓다는 18계를 말씀하고 있는데, 18계는 곧 일체법이다. 즉 5온이고 12처이며 일체의 만물이다. 고타마 붓다는 일체법이 조금의 변경도 없이 그대로 번뇌이며 그대로 열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번뇌와 보리, 윤회와 열반, 생멸과 진여 사이에 일호의 간격도 없는 것이 제법실상이라는 것이다. 일호의 간격도 없으니 번뇌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고 보리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으므로, 번뇌도 없고 보리도 없으며, 윤회도 없고 열반도 없으며, 생멸도 없고 진여도 없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해, 무명도 없고 무명의 다함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비리작의 즉 망상이 있으면 이들 사이에 간격이 생기고 점점 벌어져 번뇌도 있고 보리도 있으며, 윤회도 있고 열반도 있으며, 생멸도 있고 진여도 있게 된다. 달리 말해, 번뇌와 보리, 윤회와 열반, 생멸과 진여가 분리된다. 이 때문에 선종에서는 다만 망상을 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중관학파에서는 윤회와 열반 사이에 간격이 없는 것을 승의제 또는 진제라고 하고 간격이 있는 것을 속제라고 한다. 간격이 있거나 더 벌어지는 것을 선종에서는 특유의 용어로 분별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분별심이 없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비리작의 즉 망상이 있을 때, 그만큼 보리 · 열반 · 진여와 분리된 번뇌 · 윤회 · 생멸은 단지 심리의 일부인 논리 공간의 개념 즉 철학적 이해로서만이 아니라 실제의 현실로서 존재하고 현실의 삶에서 6근을 통해 마음이 실감하는 그만큼의 실제의 추(愁: 걱정) · 탄(歎: 한탄) · 고(苦: 괴로움) · 우(憂: 근심) · 뇌(惱: 번뇌, 고요하지 못함)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고 상속하는 것은 엄격한 인과의 법칙,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혹업고의 3도의 법칙, (동시인과이건 이시인과이건) 연기의 법칙을 따른다. 유전연기는 이와 같이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는 실제의 과정 즉 점점 더 제법실상에서 멀어져 가는 현실의 과정 즉 점점 더 그릇되어 가는 현실의 삶, 즉, 출세간의 마음을 획득하지 못하여 3유에서 윤회하는 삶을 밝힌 것이다.
6입연촉(六入緣觸) 또는 연6입촉(緣六入觸)은 또한 이미 발생한 촉(觸)의 그릇된 상태 즉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이 있다면, 즉 그릇된 상태의 안촉·이촉·비촉·설촉·신촉·의촉이 이미 발생한 상태라면,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미 발생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 즉 진리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6근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촉연수(觸緣受) 또는 연촉수(緣觸受), 즉 촉(觸)이 있으므로 수(受)가 있다는 것은 촉(觸)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수(受)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있기 때문에 그릇된 상태의 고수·낙수·불고불락수의 3수(三受)가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릇된 상태의 3수는 전도된 상태의 3수를 말하는 것으로 고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낙 또는 불고불락의 대상이라 여기고, 낙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고 또는 불고불락의 대상이라 느끼고, 불고불락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고 또는 낙의 대상이라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12연기설의 12지 가운데 제1지분인 무명(無明)과 제8지분인 애(愛)와 제9지분인 취(取)는 선·불선·무기의 3성에 따라 살펴보면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 또는 번뇌이다. 이에 비해 나머지 지분들은 그 성질이 무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지분들은 선이 될 수도 있고 불선이 될 수도 있다. 즉 바른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그릇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즉 청정한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오염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12연기의 유전연기는 이들 지분들이 그릇된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며, 반면 12연기의 환멸연기는 이들 지분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무명(無明) ·애(愛) ·취(取)는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 즉 악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다만 이들을 끊음으로써 더 이상 마음이 이들과 계합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을 뿐이다.[118] 따라서 환멸연기에서 이들 3가지 지분은 변형[轉依]의 대상이 아니라 단멸(斷滅) 즉 원리(遠離: 멀리 떠남)의 대상이다.
수연애(受緣愛) 또는 연수애(緣受愛), 즉 수(受)가 있으므로 애(愛)가 있다는 것은 수(受)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번뇌 또는 불선인 애(愛)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욕계·색계·무색계의 3계의 사물들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전도된 3수(三受)로부터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수연애(受緣愛) 또는 연수애(緣受愛)는 또한 이미 발생한 애(愛) 즉 3계의 어떤 사물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면, 욕계·색계·무색계의 3계의 각각을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수(受)의 그릇된 상태 즉 전도된 고수·낙수·불고불락수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애(愛)는 갈애(渴愛)라고 하여 맹목적인 애념(愛念)을 말한다. 고락 등의 감수작용이 강하면 그만큼 애증(愛憎)의 염(念)도 강해진다. 즉, 쾌락이 크면 그 쾌락을 가지려는 염이 강해지고, 고통이 크면 그 고통을 피하려는 염이 강해진다.[1]
취(取)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가짐 또는 취함인데,[125]모니어 모니어윌리엄스(Monier Monier-Williams)의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에 따르면 취(取)의 산스크리트어 원어 우파다나(upādāna)의 일반적인 의미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취하는 행위(the act of taking for one's self),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전용(轉用: 쓸 곳에 쓰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려서 씀)하는 행위(appropriating to one's self), 받아들임(accepting), 허용함(allowing), 취함(taking), 획득함(acquiring) 등이 있고, 불교 용어로서는 '갈애 즉 탐욕이 원인이 되어 존재를 꽉 붙잡는 것 또는 집착하는 것으로 유 즉 새로운 태어남들의 원인이 되는 것(grasping at or clinging to existence caused by tṛṣṇā, desire, and causing bhava, new births)'이라고 정의되어 있다.[126] 이 후자의 불교 용어로서의 정의는 애연취(愛緣取)와 취연유(取緣有)의 의미를 합쳐서 취(取, upādāna)를 정의한 것이다.
현대의 불교 사전들에 따르면, 취(取)라는 낱말의 일반적인 의미는 집지(執持: 잡아서 가짐, 잡아서 지님, 잡은 후 버팀, 잡은 후 유지함[127]) ·집취(執取: 잡아서 가짐, 잡아서 취함, 잡은 후 받아들임, 잡은 후 의지함[128])인데, 좁은 뜻으로는 집착(執著: 꽉 붙잡은 후 들러붙음,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함)이라는 번뇌를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모든 번뇌(煩惱)를 뜻한다. 즉, 후자의 넓은 뜻으로는 취(取)는 번뇌의 다른 말인데, 4취(四取)라고 할 때의 취(取)는 이 후자의 뜻이다. 그리고 어떤 번뇌를 취(取)라고 할 때는 마음이 해당 번뇌의 대상을 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한다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다.[129][130][131]
4취(四取)는 모든 번뇌를 취(取)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 4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즉 대상을 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한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 번뇌를 4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설명하기 좋은 순서대로 말하면, 대체로 견취(見取)는 그릇된 견해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계취(戒取) 또는 계금취(戒禁取)는 그릇된계율과 그릇된 금지조항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욕취(欲取)는 욕계의 사물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아취(我取) 또는 아어취(我語取)는 색계·무색계의 사물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다. 구체적으로는 4취는 다음과 같다.[129][130]
설일체유부의 번뇌론에서 모든 근본번뇌는 견고소단(見苦所斷) ·견집소단(見集所斷) ·견멸소단(見滅所斷) ·견도소단(見道所斷) ·수도소단(修道所斷)의 5부(五部)의 관점에서 나뉘는데, 각각의 근본번뇌마다 5부 모두가 있는 경우도 있고 특정한 몇 부(部)만 있는 경우도 있다. 욕취에 속한 탐(貪) ·진(瞋) ·만(慢) ·무명(無明) ·의(疑) ·10전(十纏)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욕계의 탐·진·만·무명에는 모두 5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총 20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의는 견소단의 번뇌이므로 수도소단을 제외한 4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4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10전은 수번뇌인데 비록 수번뇌에 대해서도 5부 분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108번뇌를 헤아릴 때는 수번뇌는 5부로 나누는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136][137][138][139] 따라서 그대로 10가지의 번뇌가 되므로, 총 34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들 34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4사(三十四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4번뇌가 욕취에 속한다.
이상의 설명대로, 유신견에 3가지, 변집견에 3가지, 사견에 12가지, 견취견에 12가지의 번뇌가 있어서 견취는 총 30가지의 번뇌로 이루어져 있다.[140] (참고로 5견과 의는 모두 견소단의 번뇌이다. 5견과 의의 구체적인 5부 분별에 대해서는 '견소단(見所斷)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계금취에 속한 3계의 계금취견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총 6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이들 6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6사(六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6번뇌가 계금취에 속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계금취견(戒禁取見)은 한편으로는 자재천 등이 5온과 세계의 참된 원인이 아님에도 그것을 참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현행의 결과, 즉 4성제 가운데 고(苦), 즉 5취온에 대한 바른 관찰이 있을 때, 즉 고제현관(苦諦現觀)이 있을 때 바로 끊어지는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계금취견은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고행이 참된 길이 아닌데 그것을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참된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견도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계금취견이 있으므로 계금취견으로는 총 6가지의 번뇌가 있다.[140] (참고로 5견과 의는 모두 견소단의 번뇌이다. 5견과 의의 구체적인 5부 분별에 대해서는 '견소단(見所斷)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구체적으로는, 색계와 무색계의 탐(貪) ·만(慢) ·무명(無明) ·의(疑)를 말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이들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한다. 욕취의 경우와는 달리 아취 또는 아어취에는 진(瞋)이 포함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진(瞋)은 욕계에만 존재하는 번뇌이기 때문이다.[141]
아취 또는 아어취에 속한 색계와 무색계의 탐(貪) ·만(慢) ·무명(無明) ·의(疑)를 5부에 따라 나누면, 색계와 무색계의 탐·만·무명에는 모두 5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색계에 15가지 번뇌가 있고 무색계에 15가지의 번뇌가 있어 총 30가지의 번뇌가 있다.
의는 오직 견소단의 번뇌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수도소단이 제외되므로 색계에 4가지가 있고 무색계에 4가지가 있어서 총 8가지의 번뇌가 있다.
따라서, 아취 또는 아어취에는 총 38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들 38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8사(三十八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8번뇌가 아취 또는 아어취에 속한다. (참고로 5견과 의는 모두 견소단의 번뇌이다. 5견과 의의 구체적인 5부 분별에 대해서는 '견소단(見所斷)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애연취(愛緣取) 또는 연애취(緣愛取), 즉 애(愛)가 있으므로 취(取)가 있다는 것은 번뇌 또는 불선인 애(愛)가 있기 때문에 108번뇌, 즉 근본번뇌와 수번뇌를 합한 온갖 번뇌 또는 불선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욕계·색계·무색계의 3계의 사물들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인 욕애(欲愛) ·색애(色愛) ·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가 원인이 되어서 그러한 들러붙음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또한 더욱 고착화되는 것을 말한다.
애연취(愛緣取) 또는 연애취(緣愛取)는 또한 이미 발생한 취(取) 즉 3계의 갖가지 번뇌가 있고 3계의 사물에 아주 확고히 들러붙어 있어서 이들로부터 떠나는 것이 거의 기대도 되지 않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욕애(欲愛) ·색애(色愛) 또는 무색애(無色愛)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취(取)는 집착(執着) 또는 번뇌(煩惱)를 의미하는데, 제8지분인 애(愛)를 연하여 일어나는, 대상에 대한 강한 취사선택(取捨選擇)의 행동이다.[1] 다른 학자에 따르면, 취(取)는 번뇌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 아집(我執) 즉 번뇌장(煩惱障)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142]아집(我執)은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는 견해로,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뜻에서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의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5온으로 하여금 5취온이 되게 하는 근본 요인은 욕탐(欲貪)이다. 고타마 붓다는 "5온이 곧 취(取: 구역에서는 受라고도 함)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5온이 취(取)와 다른 것도 아니다. 5온에 욕탐(欲貪)이 있으면 5온이 곧 5취온이 된다[非五陰即受 亦非五陰異受 能於彼有欲貪者 是五受陰]"고 말하고 있다.[149][150][151][152]
취연유(取緣有) 또는 연취유(緣取有), 즉 취(取)가 있으므로 유(有)가 있다는 것은 욕취(欲取) ·견취(見取) ·계취(戒取) ·아취(我取)의 4취(四取) 즉 108번뇌에 물든 상태가 있기 때문에 5취온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갖가지 번뇌가 있기 때문에 욕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색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무색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취연유(取緣有) 또는 연취유(緣取有)는 또한 이미 발생한 유(有) 즉 욕유(欲有) ·색유(色有) 또는 무색유(無色有)로서의 존재가 있고 이러한 존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취(取)가 존재한다는 것, 즉 갖가지 번뇌에 물든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이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었으며, 5취온의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명근(命根)을 득하는 것[得命根]은 생에서 생으로 윤회할 때 즉 5온이 생에서 생으로 상속되고 유전할 때 전생(前生)에 쌓은 원인에 따라 일정한 수명을 부여받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또한 그 수명 동안 살아가는 것 즉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란, 그 생애 동안 무명(無明)에서 유(有) 즉 5취온으로 이어지는 유전연기를 행하거나 무명(無明)을 단멸시키고 나아가 유(有) 즉 5취온을 5무루온으로 변형시키는 환멸연기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유연생(有緣生) 또는 연유생(緣有生), 즉 유(有)가 있으므로 생(生)이 있다는 것은 욕유·색유·무색유의 3유 가운데 어느 하나의 존재, 즉 5취온의 상태가 있으므로, 즉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가 있으므로 태어남이 생겨난다는 것 즉 다른 일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5취온은 죽음으로 그냥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상속되고 유전된다는 것을 뜻한다.
유연생(有緣生) 또는 연유생(緣有生)은 또한 이미 발생한 생이 있다면, 즉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하여 받은 삶이 있다면, 즉 자신이 3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유(有)가 존재한다는 것, 즉 5취온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순대고취(純大苦聚)의 상태의 즉 5취온의 상태의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老) 즉 늙음은 털이 하얗게 세고 정수리가 벗겨지며, 가죽이 늘어지고 5근[根]이 문드러지며, 4지[支]가 약해지고 등이 굽어지며, 머리를 떨어뜨리고 끙끙 앓으며, 숨이 짧아져 헐떡이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몸이 검게 변하며, 온몸에 저승꽃이 피며, 정신이 희미해져 멍청히 있으며, 거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지는 것을 말한다.[159][160]
사(死) 즉 죽음은 각각의 중생(衆生)이 해당되는 무리로부터 사라지고 천이(遷移)하며, 몸이 무너지고, 수(壽)가 다하고, 따뜻한 기운[火]이 떠나고, 명(命)이 소멸하여, 음(陰: 5온)을 버릴 때가 온 것을 말한다.[159][160]
생연노사(生緣老死) 또는 연생노사(緣生老死), 즉 생(生)이 있으므로 노사(老死)가 있다는 것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으로, 열반에 이른 상태가 아닌 한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미 발생한 노사(老死) 즉 늙음과 죽음이 있다면, 반드시 그 기본 전제가 되는 생(生) 즉 태어남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순대고취(純大苦聚)의 상태의 즉 5취온의 상태의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老) 즉 늙음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변하며, 피부가 늘어지고 쭈그러지며, 온몸이 쇠약해지고 제 모습을 잃어가며, 몸과 등은 구부러지고 굽으며, 검버섯이 몸의 여기저기에 피어나며, 숨결은 가빠지며, 몸의 모양은 구부정해져서 지팡이에 의지하며, 정신은 혼미하고 몸은 파리하여 줄어들고 쇠퇴하며, 5근[諸根]이 노화하여 기능을 상실해가며,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우며, 몸의 형태가 무너져 가는 것을 말한다.[161][162]
사(死) 즉 죽음은 각각의 유정(有情)이 해당되는 무리로부터 마침내 사라지고 없어지며, 수(壽)와 온기[煖]를 버리고, 명근(命根)이 다하여 없어지고, 모든 온(蘊: 5온)을 버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 그 운용[運]이 다한 것을 말한다.[161][162]
이른바 괴로움을 모르고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무명이라 한다.
행(行)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행에는 세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이른바 몸의 행·입의 행·뜻의 행이니, 이것을 행이라 하느니라.
식(識)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6식이니, 여섯이란 이른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다. 이것을 식이라 한다.
명(名)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느낌[痛]·생각[想]·기억[念]·접촉[更樂]·사유(思惟)이니, 이것을 명이라 한다.
색(色)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4대와 4대로 이루어진 몸이니 이것을 색이라 하며, 명과 색이 각각 다르므로 명색(名色)이라 하느니라.
6입(入)이란 무엇인가?
안의 6입이니, 여섯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안입(眼入)·이입(耳入)·비입(鼻入)·설입(舌入)·신입(身入)·의입(意入)이니, 이것을 6입이라 한다.
접촉[更樂]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여섯 가지 접촉[六更樂身]이다. 여섯 접촉이란 즉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의 접촉이니, 이것을 접촉이라 하느니라.
느낌[痛]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다. 어떤 것이 셋인가? 즉 즐거운 느낌·괴로운 느낌·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 이것을 느낌이라 한다.
애욕[愛]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세 가지 욕망[三愛身]으로서 욕계의 욕망[欲愛]·색계의 욕망[有愛]·무색계의 욕망[無有愛]이니, 이것을 애욕이라 한다.
집착[受]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네 가지 집착이 그것이다. 어떤 것이 넷인가? 즉 애욕의 집착·소견에 대한 집착·계율에 대한 집착·나라는 집착이다. 이것을 네 가지 집착이라 한다.
존재[有]란 무엇인가?
이른바 3유(有)이다. 어떤 것이 셋인가? 욕유(欲有)·색유(色有)·무색유(無色有)이니, 이것을 존재라 한다.
태어남[生]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태어남이란 어느 집에 태어나 갖가지 존재를 받아 5음을 얻고 여러 감각기관을 받는 것이니, 이것을 태어남이라 하느니라.
늙음[老]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이런저런 중생들이 그 몸에서 이가 빠지고 머리털이 세며, 기력이 쇠하고 감각기관이 문드러지며, 수명이 날로 줄어들어 본래의 정신이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늙음이라 한다.
죽음[死]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이런저런 중생들이 받은 몸의 온기가 없어지고 무상하게 변하여 가까이했던 다섯 가지가 제각기 흩어지며, 5음의 몸을 버리고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죽음이라 한다.
비구들아, 알라. 그러므로 늙음·병듦·죽음이라 하느니라.
이것이 인연법으로서 그 이치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모든 부처 여래가 큰 자비를 일으켜 수행해야 할 일을 나는 이제 마쳤다. 너희들은 나무 밑이나 한데, 혹은 무덤 사이에서 이것을 생각하고 좌선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지금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면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으리라."
그 때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비구들을 위해 매우 심오한 인연법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찰하기엔 그다지 심오한 이치가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쳐라, 그쳐라, 그런 생각 말라. 왜냐 하면 이 12인연법은 매우 심오하고 심오해 보통 사람은 능히 밝게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옛날 이 인연법을 깨닫기 전에는 생·사에 흘러 다니면서 벗어날 기약이 없었느니라.
그리고 아난아, 이 인연법을 그다지 심오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비단 오늘의 너만이 아니다. 옛날에도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다. 내 이제 그 사실을 말해주리라.
지나간 세상에 수염(須焰)이라는 아수륜왕(阿須倫王)이 가만히 '해와 달을 붙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바다 밖으로 나가 그 몸을 아주 크게 변화시키자 바닷물이 허리춤에 왔다.
그 때 그 아수륜왕의 아들 구나라(拘那羅)는 그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저도 지금 바닷물에 목욕하고 싶습니다.'
수염은 말하였다.
'바다에 들어가 목욕하려 하지 말라. 왜냐 하면 바닷물은 매우 깊고 또 넓어 결코 거기서는 목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나라는 아뢰었다.
'제가 지금 그 물이 대왕의 허리춤까지 밖에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데 왜 매우 깊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래서 아수륜왕은 곧 아들을 들어다 바다에 넣었다. 아들은 그 발이 물밑에 닿지 않자 매우 두려워하였다.
이 때 수염이 아들에게 말하였다.
'내 아까 너에게 바닷물이 매우 깊다고 타일렀었다. 그러나 너는 두려울 것 없다고 말했다. 오직 나만이 바다에서 목욕을 할 수 있으니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때의 수염 아수륜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달리 생각하지 말라. 그는 곧 나이니라. 그리고 그때의 그 아들은 바로 너이니라. 그 때 내가 바닷물이 매우 깊다고 했을 때 너는 두려울 것 없다고 말하더니, 지금 또 매우 심오한 12인연법을 너는 그다지 심오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구나. 모든 중생들은 12인연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사에 헤매면서 거기서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이다. 모두들 미혹하고 행의 근본을 알지 못하여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고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면서 영원히 다섯 가지 번뇌 속에 있으니, 벗어나기를 구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라.
나도 처음 불도를 이루었을 때 12인연을 깊이 사유하였기 때문에, 악마의 권속들을 항복 받고 무명을 없애 지혜의 밝음을 얻어 온갖 어두움이 아주 없어지고 티끌과 때가 없어졌느니라.
또 아난아, 나는 이 12인연설을 세 번 굴렸고 그렇게 했을 때 곧 도를 깨달았느니라. 이런 사실로도12인연법은 매우 심오하고 심오한 것으로서 보통 사람이 능히 밝혀 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마땅히 깊고 깊이 생각하여 이 12인연법을 받들어 행하라. 그와 같이 공부하려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於是 淨諸業障菩薩 在大衆中卽從座起 頂禮佛足 右繞三匝 長跪叉手 以白佛言 어시 정제업장보살 재대중중 즉종좌기 정례불족 우요삼잡 장궤차수 이백불언 이 때 정제업장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의 발에 예를 갖추고, 오른쪽으로 세번 돌고 무릎을 꿇고 차수한 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선남자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있어 온 몸이 조화롭고 마땅하여 홀연히 나의 몸을 잊었다가 영양 섭취가 어그러지고 모남으로 인해 사지에 맥박이 빠르고 늦게 뛰어서 침과 쑥(쑥뜸)을 정교히 가한 즉, 내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과 같느니라. (건강할 땐, 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요.몸이 뻐근하면 그때 몸이 뻐근함으로 인해 내가 있음을 알게 된다는 의미)
선남자여. 단지 모든 중생이 명확하게 증득하고 명확하게 깨달으면, 다 아상과 인상이 되니 아상과 인상이 미치지 못하는 것에 요달한 존재가 있다고 여기면, 이름하여 중생상이라고 하느니라. (요달한 존재란 깨달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존재(실체/나)라는 건 없습니다.)
단지, 마땅히 항상 부지런히 수행하며, 번뇌를 항복받고 큰 용맹심을 일으켜서 얻지 못한 것으로 하여금 얻게 하고 끊지 못한 것으로 하여금 끊게 하고, 탐욕/분노/애욕/자만과 아첨/왜곡/미움/질투의 경계를 대하여 생기지 않게 하고, 너와 나의 은애를 모두 다 적멸케하면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이 사람은 점차 성취하리라...고 하실 것이니라.